본문 : 마 7:24
제목 : 듣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옛날 사극을 보면 신하가 왕명을 받는 장면이 가끔 나옵니다.
사신이 어명이요 하면 어명을 받을 신하가 달려 나와서 무릎을 꿇고 임금님이 계시는 왕궁을 향하여 절을 하고 어명을 전달 받습니다.
아무개에게 사약을 내리니 사약을 받으라. 라고 하면 성은이 망극하여이다. 부디 만수무강 하옵소서 라고 예의를 표하고 공손하게 사약을 받아서 먹고 죽임을 당합니다.
그 사약을 받는 사람들은 대부분 누명을 쓰고 억울하게 사약을 받습니다.
자신은 충성을 다 했는데 간신배가 음모를 꾸며가지고 억울한 누명을 쓰게 만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 경우에도 그렇게 반항을 하거나 변명을 하거나 억울해 하거나 도망을 가지 않고 명령에 복종하는 것을 보면 어리석은 것인지 착한 것인지 잘 구별이 안 됩니다.
명령을 내리는 분이 그 나라의 왕이라는 것 하나 때문에
명령을 받는 사람이 그 나라의 백성이라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억울한 일이지만 비참하게 죽임을 당하는 일이지만 그 명령에 복종을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을 주여 주여 라고 부를 때 하나님은 우리의 주인이시오 만왕의 왕이심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우리가 그 왕의 신하요 백성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하나님의 말씀을 왕명으로 알고 그 명령에 절대 순종해야 합니다.
그것이 천국백성 된 자의 의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왕명으로 받고 그 말씀에 순종하는 사람은 하나님나라에서 사는 것이고
그 말씀을 무시하고 자기 마음대로 사는 사람은 하나님나라 밖에서 사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이 포함된 24-27절의 말씀은 산상보훈의 말씀을 마치면서 결론적으로 다짐을 받는 부분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는 마치 그 집을 반석위에 지운 자와 같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도 그 주초를 반석위에다가 세웠기 때문에 무너지는 일이 없는 것처럼 흔들리거나 무너짐이 없는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은 이 말씀 중에 이 말씀을 듣는 자가 복이 있다는 부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사람들은 오늘 이 본문 말씀에서 행함을 강조하여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그 행함이 어디에서 오는가가 중요합니다.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대로 행하는 것이 중요하지 말씀을 잘 알아듣지 못하고 무조건 무엇이든지 많이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행함이 있는 신앙이 되기 전에 먼저 말씀을 들을 줄 알아야 합니다.
말씀을 듣되 그 말씀 속에서 하나님의 원하시는 뜻이 무엇인지를 발견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듣고 이해하고 그 말씀 속에 있는 진리를 깨닫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이유를 바르게 알고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하겠다고 다짐을 하고 그 말씀대로 실천을 할 때 비로소 우리가 복이 있는 삶을 사는 사람들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듣기 전에 우리가 듣는 이 말씀이 하나님의 말씀 즉 왕명 그것도 만왕의 왕이 되시는 진짜 왕의 명령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왕명이 선포될 때 옛날 왕정시대 우리나라 사람들처럼 왕명을 받들어서 받아야 합니다.
성경봉독은 그 왕명의 선포입니다.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고 공손하게 받아야 합니다.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 앞에선 신하처럼 백성처럼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1. 말씀을 듣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의 말씀은 복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신하이기 때문에, 백성이기 때문에, 그 나라의 왕의 명령을 받는 것이 의무이고 도리입니다.
그 말씀이 억울한 말씀이든지, 누명을 쓴 말씀이든지, 나에게 벌을 내리고 사약을 내리는 말씀이든지, 그 말씀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이 왕이 되시어서 친히 다스리시는 하나님나라의 백성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왕이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왕의 명령인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복이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세상 왕이 하달하는 명령과는 차원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세상 왕의 명령은 백성에게 하기 싫은 일을 시키거나 벌을 내리거나 때로는 억울하게 누명을 쓰게 하거나 고통을 주는 달갑지 않은 명령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왕이신 하나님의 명령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명령입니다.
벌을 내리시고 집행하라는 명령이 아니라 벌을 받아야 하는 우리에게 그 집행정지를 내리는 기쁨의 명령입니다.
사극에 이런 장면도 가끔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사형을 당하는 순간 어디서 어명이요 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당장 사형을 멈추고 누명을 벗기고 죄인을 복권시키고 영의정의 자리에 복권시키라는 어명이요.
우리 하나님의 어명은 바로 이런 어명입니다.
우리의 죄를 사함 받게 해 주시고 우리를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해 주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라는 신분을 회복시켜주는 어명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하나님의 말씀을 복된 소식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교회는 이 하나님의 복된 소식 즉 복음을 선포하는 곳입니다.
성도들은 이 하나님의 복된 말씀을 기쁨으로 받아서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할 때 왕명으로 받고 기쁨으로 받고 그 말씀을 삶에 적용시키고 실천해서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앞서서 배운 말씀에서 우리는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 갈 수 없다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리고 주여 주여 부를 뿐만 아니라 주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도 하고 귀신도 쫓아내고 능력도 행하였어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뜻대로 주님을 부른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고 이것은 오히려 불법을 행하는 것이기 때문에 주여 주여 부르고도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것을 행하고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기 위해서 늘 하나님의 뜻을 기록한 성경말씀을 읽고 그 말씀을 쉽게 해석해 주는 설교 말씀을 듣고 하나님의 기쁘신 뜻을 발견해 나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고백하지 않는 모든 신앙의 고백들이 헛된 것이며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지 않은 모든 행함들이 오히려 불법을 행하는 것이 된다는 사실을 알고 말씀을 잘 들으시고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시기 바랍니다.
3) 참된 행복을 말씀해 주기 때문입니다.
말씀을 잘 들으시면 여러분이 행복해집니다.
인생의 참된 의미도 알게 되고 복된 삶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고
무엇이 성공인지도 알게 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거짓된 정보들을 제공합니다.
돈만 많이 벌면 모든 세상의 삶들이 다 행복해질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사람들을 밟고 일어서서 출세를 하라고 가르칩니다.
다른 사람 생각은 할 필요 없이 너만 위해서 살라고 가르칩니다.
즐겁게 재미있게 살라고 가르칩니다.
이 세상에 잇는 재미있는 일들을 찾아서 누리며 살라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은 그와 반대로 가르칩니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을 희생할 줄 알고 나보다는 남을 위해서 살라고 가르칩니다.
이 세상에서의 쾌락보다는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고 이 세상에서는 경건한 삶을 살라고 가르칩니다.
사람들은 이런 성경의 가르침을 싫어합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해 보면 좋은 방법처럼 보이지 않고 그렇게 살아서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세상을 많이 살고 보면 성경의 말씀대로 사는 것이 참된 행복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세상이 주는 거짓된 행복을 따르다가 실망하고 후회하지 않으려면 말씀을 잘 들으셔야 합니다.
4) 말씀을 잘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늘 조리 있게 단계적으로 서로 연결해서 잘 설명을 해 줍니다.
제가 이렇게 늘 강해설교를 하는 것은 서로 연결된 말씀을 잘 정리해서 성경에 나타난 진리를 전체적으로 알고 정리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중간 중간 말씀을 끊어서 들으면 무슨 말인지 잘 정리를 하지 못합니다.
부분적으로만 알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말씀을 어느 한 부분만 듣고 그 부분만 실천하면 절름발이 신앙이 되고 맙니다.
모든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잘 정리하는 것이 중요한데 그렇게 하려면 매주 매주 말씀을 잘 들어야 합니다.
잘 듣고 기억하고 그 말씀들이 정리가 되어서 전체의 뜻을 바르게 이해해야 합니다.
2. 말씀을 깨닫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말씀을 듣는 것은 그 말씀 속에 들어 있는 진리를 깨닫기 위함입니다.
말씀을 그냥 듣기만 한다면 별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말씀을 이해하고 아 정말 그런 진리가 있었구나. 감격하고 가슴 깊이 간직을 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들으면서 진리를 깨달으면 마음에 감동이 옵니다.
아멘이 나오고 기쁨이 넘치게 됩니다.
말씀을 항상 들어도 감동이 없고 기쁨이 없는 것은 말씀에서 진리를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깨닫지 못하는데 무슨 기쁨이 오겠습니까?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보면 말씀을 다 같이 받기는 받는데 그 말씀을 받는 밭들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결실을 맺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고 했습니다.
길가와 같이 마음이 딱딱한 사람들에게는 복음의 씨가 내려도 그 씨앗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맙니다.
새들이 와서 씨를 먹어 버리기 때문에 씨만 손해를 보는 것입니다.
어떤 때는 제가 설교를 열심히 준비해서 설교를 하는데도 사람들이 별로 반응이 없으면 참 섭섭합니다.
준비한 시간이 아깝고 하나님의 말씀이 아깝습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이 돌짝밭과 같아서 복음이 뿌리를 내리지 못합니다.
마음속에 있는 죄악의 습성들이 다 없어지지 않고 그대로 있어서 말씀을 받지만 뿌리를 내리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마음의 밭이 가시덩쿨과 같아서 세상의 염려와 근심 때문에 말씀을 받아도 그 말씀이 열매를 맺을 수가 없게 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보다는 세상을 의지하고 하나님을 바라고 소망하기 보다는 세상에 되어지는 환경을 보기 때문에 말씀을 감동으로 받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진리를 깨닫고 마음에 감동을 받기 위해서는 이런 밭들이 아닌 옥토와 같은 마음의 밭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실을 알고 보면 우리가 이렇게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옥토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오셔서 이미 옥토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성령님이 아니시면 우리의 마음이 옥토가 아니었다면 이렇게 믿음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문제는 옥토와 같은 마음의 밭을 가진 우리가 왜 나쁜 밭을 가진 사람들처럼 말씀을 듣고 감동을 받지 못하느냐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병이 들었든지 세상에 너무 깊이 빠져 있든지 정상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정상적인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반드시 말씀에서 진리를 깨닫고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해 주실 때 택함을 받지 못한 세상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없도록 말씀하시고 우리들은 그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은 미스터리입니다.
알아들을 수 있는 자격을 가진 사람만 알아듣는 신비한 비밀의 말씀입니다.
교만해서 듣지 않으려고 하니까 그렇지 들으려고 마음만 먹으면 들립니다.
깨달으려는 열심이 없어서 그렇지 진리를 깨달아 알려는 마음만 있으면 신비한 진리의 비밀들을 깨달아 알고 기쁨으로 말씀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냥 매주 교회에 와서 세월만 보내지 말고 진리를 깨닫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보훈의 말씀을 시작하면서 복 있는 사람에 대해서 말씀을 먼저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거기서도 우리의 마음의 상태가 어떤 가에 따라서 복이 있는 자가 된다고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해야 하고 애통하는 마음이 있어야 하고 온유한 마음과 청결한 마음을 가져야 하고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되어야 복 있는 사람이 된다고 하셨습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은 참으로 겸손한 사람입니다.
영적으로 더 알고 싶어 하고 더 깊은 진리를 알고 싶어 하고 어떻게 하면 더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을까를 늘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에게는 말씀이 정말 귀하게 들리고 한마디 한 마디에 귀한 깨달음을 얻습니다.
교만한 사람은 어릴 때 설교 몇 편 들은 것 가지고 다 안다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합니다.
날마다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영적인 일용할 양식을 무시합니다.
지금 나에게 하실 말씀이 있으신데 안 듣고 지나갑니다.
그래가지고 무슨 하나님의 일을 하겠습니까?
자신을 살펴서 아직도 자신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죄성에 대해서 안타까운 마음을 가지고 애통해할 줄 아는 사람은 이 구원의 말씀 이 용서의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 감격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얼마나 흉악한 죄인인지를 아직도 깨닫지 못해서 맒도 듣지 않고 깨달음도 없는 것입니다.
3. 말씀을 지키려고 다짐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설교를 하고 난 다음에 성도들의 삶을 보면 기억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흔적이 없어 보일 때 참 안타깝습니다.
늘 들으니까 잘 안 듣기도 하고 듣기는 들어도 타성적으로 한 귀로는 듣고 한 귀로는 흘리고 그럴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복된 말씀을 전했는데도 기쁨이 없고 들은 흔적도 없고 엉뚱한 소리들을 합니다.
싸우지 말고 사이좋게 지내라고 설교를 하는 날 더 싸우고 미워합니다.
자랑하지 말고 겸손하게 지내라 내가 왕년에 그런 말 하지 말라고 성고를 했으면 그 날이라도 그렇게 해야지 바로 올라가서 내가 왕년에 바로 자랑합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은 그 말씀을 지키려고 마음의 다짐을 해야 합니다.
말씀을 실천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씀이면 뭐합니까?
아무리 많은 진리를 깨달았다고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들은 말씀이 깨달은 진리가 효과를 나타내려면 그 말씀을 우리의 삶에 적용을 시키고 그 말씀대로 실천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들을 그 때 우리가 다짐을 해야 합니다.
이 말씀을 실천해야지 말씀대로 한번 살아봐야지 굳게 다짐을 해야 합니다.
그런 다짐이 있어도 막상 실천하려면 잘 안 되는데 들을 때조차도 별 실천하고자 하는 의지가 없다면 그것은 별 소용이 없는 것입니다.
오늘도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아무나 이 말씀을 들을 수 없는 것이기 때문에 듣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그냥 들리는 대로 듣기도 하고 한 귀로 흘리기도 했지만 이제부터는 말씀을 잘 듣겠다고 다짐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말씀 듣는 시간에 될 수 있는 대로 많이 참석하고
또 참석해서는 정말 귀를 기우려서 잘 듣자고 스스로 다짐들을 하시기 바랍니다.
말씀을 들을 때 말씀 속에 있는 진리를 깨달아야 되겠다고 다짐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사모하고 하나님의 뜻을 사모하고 그 뜻을 깨닫고 감격하고 감사해야 되겠다고 다짐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제부터는 정말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 보아야 되겠다고 다짐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매주 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말씀을 실천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살겠다고 다짐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산상보훈의 말씀을 우리에게 주신 우리 주님의 뜻입니다.
이 귀한 말씀을 듣고 헛되이 흘려버리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에서 진리를 깨닫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씀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을 실천하려고 다짐을 하시기 바랍니다.
그 귀한 말씀들을 지켜서 행함으로 참으로 행복한 삶을 사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