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1. 1.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전 43):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2020. 11. 1.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전 43)
본문 : 딤전 6:6-8
제목 :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6.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7.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 8.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종교란 원래 자연의 재해나 질병 앞에 연약함을 느낀 인간들이 이 세상을 지배하는 절대적인 신을 찾아서 섬김으로 이런 고통에서 벗어나고자 함에서 시작했습니다.
또 어떤 종교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늙고 병들고 죽어감을 보고 선을 행하고 고행을 하여서 다음 세상에서는 더 행복한 세상에서 살려고 노력함에서 시작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세월이 흐르면서 인간들의 삶의 질이 향상되고 많은 것을 알게 되면서 종교는 조금씩 변하기 시작합니다. 신을 절대적으로 숭배하기보다는 적당히 이용하여 이익을 챙기려고 하고 다음 세상보다 이 세상에서 더 행복하게 사는 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독교도 종교의 하나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여러 가지 면에서 전혀 다르기 때문에 종교라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인간이 하나님을 더듬어서 찾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와 주셨기 때문이며 인간이 만든 법칙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알려주신 방법으로 구원에 이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기독교도 세월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질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려고 하기보다는 적당하게 이용해서 이익을 챙기려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영원한 천국으로의 구원보다는 이 세상에서 더 잘살아보려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경건, 즉 예수님을 믿고 신앙 생활하는 것이 이익의 도구로 사용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경건을 이익의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경건을 이익의 도구로 삼는 사람들과 달리 바른 교훈을 따라 바르게 신앙생활 하는 사람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은 영원한 곳이 아니고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야 하는 나그네와 같은 삶을 사는 곳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자족하는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이 오히려 경건을 통해서 더 큰 이익을 얻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
본문 6절에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경건을 이익의 도구로 사용하지 않고 오히려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더 큰 이익을 우리에게 준다는 것입니다. 거짓 선생들의 말에 속아서 경건을 잘못 이해하는 사람들은 눈앞에 보이는 이 세상의 이익 때문에 더 큰 이익을 놓치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경건이라는 말은 헬라어 '유세베이아'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좋은’이라는 단어와 ‘예배’라는 단어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단어입니다. 지난 시간에 말씀드린 대로 하나님을 바로 섬기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고 하나님께 참된 예배를 드리는 것을 경건이라고 말합니다.
경건이라는 말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 앞으로 배우게 될 디모데후서 3장의 말씀을 인용해보겠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 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3:5)라고 했습니다.
말세가 되면 고통의 때가 오는데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고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보다 더 사랑할 것이라고 하면서 이런 사람들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기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경건의 모양이 있다는 말은 겉으로는 신앙이 있는 사람처럼 보인다는 것입니다. 교회도 잘 다니고 예배도 잘 드리고 겉으로 볼 때는 신앙이 있는 사람처럼 행동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경건의 능력은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여기 경건의 능력이란 믿음의 능력을 말합니다. 구원을 얻게 하는 하나님의 능력은 믿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로마서 1장 16절 말씀에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라고 하셨는데 우리의 믿음 속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 구원의 능력을 부인한다는 것입니다.
구원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 구원을 받게 해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모르기 때문에 경건을 이 세상에서 어떤 이익이나 챙기려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의 욕심에는 만족이라는 것이 없습니다. 항상 부족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있는 사람이나 없는 사람이나 돈에 눈이 어두워지고 믿음마저도 소중한 것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우리에게 큰 이익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경건을 가지고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복을 더 받고 돈을 더 벌려고 하지 않아도 믿음 그 자체가 큰 이익을 가져다준다는 것입니다.
여기 자족함이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먼저 자족함이란 나에게 물질이 없어서 가난한 사람이 된다고 해도 내가 이미 받은 복에 만족한다는 것입니다.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원한 천국을 소유한 사람이 되었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는 거지처럼 산다고 해도 괜찮다는 것입니다. 더 이상 바랄 것도 없이 지금 이대로 만족하면서 살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해석해도 맞습니다. 천국에서 영원토록 부자로 왕같이 살 사람인데 짧은 이 세상에서 어떻게 산들 무슨 상관이 있겠습니까? 잘 살면 잘 사는 대로 못 살면 못사는 대로 만족하며 사는 것이 자족하는 사람일 것입니다.
또 하나의 견해는 우리가 이 세상을 경건하게 즉 믿음으로 살 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다 채워주실 줄로 믿고 만족하게 사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습니다.
시편 34장 10절에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젊은 사자가 사냥을 못 해서 주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을 따르는 사람에게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시편 23편 1~2절에도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사는 한 우리가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고 섬기면서 사는 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한 길로 인도하시고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사는 것이 꼭 천국에서만 행복하게 사는 것은 아닙니다. 천국에서 영원토록 잘살 것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는 고생하면서 살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서도 가정을 이루며 자녀를 양육하며 신앙생활을 잘하면서 살 수 있도록 선한 일을 하면서 살 수 있도록 그런 일에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무것도 주시지 않고 일만 시키지 않으십니다. 우리에게 교회를 섬기고 선한 일을 하면서 살라고 말씀만 하시고 아무것도 주시지 않는 분이 아니십니다. 우리가 하려고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도록 채워주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은 어떤 것을 원하십니까?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이 보장되어 있으니까 이 세상에서는 그냥 아무렇게나 사시렵니까? 아니면 이 세상에서도 좋은 일 하면서 더 보람 있게 더 행복하게 사시고 싶으십니까?
우리가 잘 아는 칼빈은 뒤의 해석이 옳다고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천국에 간다고 이 세상에서 가난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믿음으로 더 풍성한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바른 믿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을 하나님께서 특별히 돌보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왕이면 이 세상에서도 더 좋은 일 많이 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좋은 일 하고자 하는 마음만 먹으시면 하나님께서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것을 주실 것입니다.
다만 잊지 말 것은 너무 지나친 욕심은 갖지 말라는 것입니다. 내게 주시는 것으로 만족하고 주신 범위 내에서 좋은 일 하면 됩니다. 한 달란트 받은 사람은 한 달란트 만큼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은 다섯달란트만큼 일하시면 됩니다.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본문 7절에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것에 만족할 수 있는 비결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빈손으로 태어난 것처럼 이 세상을 떠날 때도 모두가 다 빈손으로 돌아가는 것을 알라는 말씀입니다.
물론 부모님 덕분에 태어날 때부터 금수저를 가지고 태어나는 사람도 있습니다. 아주 부잣집에서 많은 재산을 상속받아서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떠나갈 때는 금수저나 흙수저나 상관없이 다 같이 빈손으로 돌아갑니다.
지난주에 삼성그룹 이건희 회장이 돌아가셨습니다. 그가 가진 재산이 18조 2천억이라고 합니다. 18조 원이 얼마나 많은 돈인지 상상도 할 수 없는 어마어마한 돈입니다.
그가 한 일은 우리 같은 사람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하고 갔습니다. 삼성그룹을 400여 배나 성장시켜서 세계 일류회사로 발전시켰고 세계 1위 제품이 13개나 된다고 했습니다. 삼성그룹 직원 수가 20만 명이나 되고 협력사나 납품업자와 그의 가족들을 합하면 엄청나게 많은 사람을 먹여 살린 사람입니다.
그렇게 좋은 일을 하고 그렇게 많은 재산을 가진 사람이었지만 이 세상을 떠나갈 때는 역시 빈손으로 돌아갔습니다. 남들보다 화려한 장례식을 치르고 화려한 무덤은 남기고 갔지만 손에 들고 간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우리가 욕심을 내서 많은 재산을 모은다고 해도 가지고 가지는 못할 것이고 이 세상에 살면서 써야 합니다. 다 쓸 수도 없이 모으기만 하는 것은 미련한 짓일 것입니다. 내가 쓸 수 있는 것만큼만 욕심을 내는 것이 자족하는 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이 이 세상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할 뿐만 아니라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될지도 모른 채로 세상을 떠나서 미지의 세계로 들어갑니다.
사람이 죽은 후에 어디로 가게 되는지 꼭 가지고 가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세상을 살다가 떠나는 사람처럼 불행한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더 불행한 사람은 알면서도 대비하지 않고 살다가 죽는 사람일 것입니다.
어디로 가는지 무엇이 필요한지를 모르는 사람들은 불필요한 것들을 모으느라 한평생을 보냅니다. 돈을 모으느라 한평생을 보내고 좋은 집 좋은 차 좋은 가전제품을 사서 쓰는 것을 행복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알고 보면 그런 것은 이 세상에 살면서는 필요한 것들이지만 이 세상을 떠날 때는 아무 소용도 없는 것이고 가지고 갈 수도 없는 것들입니다. 가지고 갈 수 있다고 한들 가져가봤자 아무 소용이 없는 것들입니다.
어떤 사람이 평생 모은 돈으로 황금보석을 사서 천국에 가지고 갔다고 합니다. (가져갈 수는 없지만 이야기니까) 베드로 사도가 그것을 보고 “야 그 쓰레기를 왜 가지고 오느냐”라고 핀잔을 하더랍니다. 천국에는 길도 황금으로 만들고 집도 진주로 보석으로 만드는데 천지 널려 있는 것을 가지고 온다고 애만 쓴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을 떠나면서 반드시 꼭 가지고 가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람의 눈에는 보이지 않지만 우리의 손에는 우리의 가슴에는 아주 소중한 것 꼭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9장 7-8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어린 양의 혼인 기약이 이르렀고 그의 아내가 자신을 준비하였으므로 그에게 빛나고 깨끗한 세마포 옷을 입도록 허락하셨으니 이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로다 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사탄의 세력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멸망한 후에 영원한 천국이 시작되는 것을 혼인 잔치에 비유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린양이신 예수님이 신랑이 되고 우리 성도들이 신부가 되어서 혼인 잔치를 하는데 아내인 성도가 자신을 위하여 준비한 것이 있는데 그것을 깨끗한 세마포 옷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세마포 옷은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라고 했습니다.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란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착하고 선한 일을 행한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산 삶을 말합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그 믿음을 따라 하나님께 바른 예배를 드리고 믿음을 따라 살려고 노력한 삶을 말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한 경건의 삶을 말합니다.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서 자족하면서 사는 삶을 말하고 가지고 가지 못하는 세상 재물을 탐내지 않고 산 삶을 말합니다.
세상의 것들은 아무리 좋은 것이라고 해도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사시기 바랍니다. 꼭 가지고 가야 할 것은 세마포 흰옷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믿음을 지키기 위한 삶이 경건한 삶을 살려고 노력한 성도들의 옳은 행실이 우리가 꼭 가지고 가야 할 세마포 흰옷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
본문 8절에 “우리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고 난 후에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고 빈손으로 간다는 것을 안 사람이라면 그저 먹을 것이 있고 입을 것이 있으면 만족하면서 살라는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먹을 것 입을 것 때문에 걱정하고 살았습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하루 벌어서 그날 먹을 것 사다가 먹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날 일을 못 해서 돈을 못 벌면 굶어야 하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 시절의 소원은 먹을 것 입을 것 걱정하지 않고 사는 것이었습니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은 먹고살 것은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것 같습니다. 경제도 발전하고 복지가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아서 나라에서 굶고 살거나 집이 없어서 거리에서 사는 사람은 없게 만들고 있습니다.
좀 더 좋은 것을 먹고 좀 더 좋은 집에서 좀 더 누리면서 살려고 노력하는 것이지 먹고 사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습니다. 요즘은 웬만하면 아파트나 좋은 집에서 작은 차라도 한 대 굴리면서 삽니다.
요즘 저는 참 행복한 삶을 삽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원룸 같은 작은 집에서 살고 작은 교회의 목사로 사니까 좀 불쌍해 보일지 모르지만 저는 참 행복하게 삽니다.
먹을 것이 풍성합니다. 시장에 가면 아주 싼 채소나 과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조금 시들었거나 조금 못생긴 것을 사면 거저 얻는 것처럼 쌉니다. 옷도 바자회 덕분에 평생 입을 옷 다 있습니다.
화려하게 살지는 못해도 나름대로 아주 행복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라고 하셨는데 먹을 것과 입을 것이 넘치니까 얼마나 감사합니까.
여기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영적으로 한번 생각해 보겠습니다. 먹을 것은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의 양식을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사람들에게 오병이어의 기적으로 육신의 양식을 주자 예수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이 더 이상 육신의 양식을 주지 않자 모두가 다 예수님을 떠났을 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도 가려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때 베드로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되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요 6:68)라고 했습니다.
입을 것은 앞서 말씀드린 세마포 흰옷입니다. 즉 성도들의 경건 생활 믿음으로 사는 삶이 입을 옷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믿음으로 사는 것이 우리가 의의 옷을 입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의 양식과 입을 옷이 있는 것으로 만족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더 만족할 것은 우리에게 영의 양식과 입을 옷이 있다는 것입니다. 생명의 양식인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 말씀의 핵심인 복음을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습니다.
그 믿음을 따라 사는 삶이 있습니다. 복음을 믿고 그 복음에서 나오는 바른 교훈들을 따라서 사는 삶이 있습니다.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만족한 삶을 살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경건은 우리에게 엄청난 이익을 주는 것입니다. 경건하게 사는 사람은 더이상 세상에서 바랄 것이 없는 엄청난 것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가지고 가지 못할 헛된 것을 위해서 살지만 우리는 꼭 가지고 가야 할 필요한 것을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육신의 먹을 것 입을 것만 아니라 영의 양식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영생의 말씀을 가지고 있고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받게 할 세마포 흰옷인 믿음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우리가 옳은 삶을 살려고 마음만 먹으면 하나님께서 그 필요한 모든 것을 채워주신다는 말씀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삶뿐만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서의 삶도 우리를 위해 준비하고 계신다는 것을 기억하며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