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4.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전 39)
본문 : 딤전 5:21-22
제목 : 내가 엄히 명하노니.
“21.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불공평하게 하지 말며 22.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 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
“사람이 먼저다”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먼저라는 말은 아주 당연한 말입니다. 사람이 짐승보다 먼저이고 사람이 돈이나 재물보다 먼저입니다. 사람이 주인공으로 사는 이 세상에서 사람보다 우선이 될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은 당연한 말일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을 잘못 사용하게 되면 매우 위험한 말이 됩니다. 사람이 먼저라고 해서 사람이 하나님보다 먼저가 되어서는 절대로 안 되기 때문입니다.
지금 유행하고 있는 사람이 먼저라는 말에는 다분히 이런 위험요소가 있습니다. 사람을 하나님보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보다 더 우위에 두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명이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예배드리지 말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행복이 중요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만드신 법칙 따위는 지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사람이 원한다면 하나님께서 정하신 자연법칙을 무시해도 된다고 말합니다. 남자와 남자가 결혼을 해도 되고 남자가 여자로 변신해도 된다고 말합니다.
젊은 사람들 중에는 그런 것이 무슨 상관이 있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 중심이냐 인간 중심이냐 하는 것은 우리 기독교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핵심적인 쟁점이었습니다.
중세시대 종교개혁 전후로 해서 하나님 중심 사상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보다 인간의 선행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인간의 이성이 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이 이해할 수 없으면 인정할 수 없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인간중심의 사상들이 교회를 어지럽히기 시작했고 신앙의 근간을 바꿔버리는 엄청난 비극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런 인간중심의 사상이 오늘날 기독교를 그저 세상에서 사람이나 행복하게 해주는 종교 중에 하나로 만들어버렸습니다.
하나님이 먼저이고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 먼저이고 하나님의 말씀이 먼저라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깨진 교회는 더 이상 교회가 아닙니다. 그런 교회는 돈이나 명예나 세상의 재미가 인간을 더 행복하게 만든다고 이야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 행복은 가짜 행복이며 멸망의 길로 빠지게 만드는 악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지난주 말씀과 연결되어 있는 말씀입니다. 교회의 지도자인 장로와 목사들이 잘못했을 때 어떻게 해야 하는가에 대한 말씀과 연결된 말씀입니다.
교회의 장로들이 잘못을 저질렀을 때 그것이 사실인지를 분명히 살펴서 신중하게 판단해야 하지만 그것이 사실일 때는 분명하게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서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죄에 대한 두려운 마음을 가지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한번 말씀하시기를 편견이 없게 하고 불공평하게 하지 말고 정당하게 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을 하시면서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라고 했습니다. “내가 엄히 명하노니”가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엄하게 명령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불공평하게 하지 말며
본문 21절에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불공평하게 하지 말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라고 했습니다.
지금 사도바울이 디모데에게 “내가 엄히 명하노니”라고 하면서 사도바울의 그 명령이 자신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을 통하여 디모데에게 하나님의 뜻을 전한 것이고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고 따르는 후세의 모든 교회의 지도자들에게 그리고 성도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의 엄한 명령은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하는 명령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거부할 수 없는 엄한 명령입니다.
개혁주의 교회, 즉 올바른 신학으로 올바른 신앙생활을 하는 교회의 삶의 원리는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 중심”입니다. 이것이 우선되지 않는 교회는 교회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 삶의 원리 제일 첫 번째가 “하나님 중심”입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의 제일 우선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 사람의 제일가는 목적이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면서 사는 것이 사람의 제일가는 삶의 원리가 됩니다.
이 우선순위가 무시되고 이 원칙이 바뀌면 그것은 하나님을 섬기고 사는 기독교가 아닙니다. 변질된 교회이고 신앙을 가지고 사람의 마음을 속이고 빼앗아 가는 사이비 종교일 뿐입니다.
사람이 먼저라는 말에 익숙해져서 사람 중심으로 살면서 하나님을 무시하는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하나님을 외면하고 살았던 역사 속의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진노하심을 받아서 패망의 길로 갔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의 엄한 명령은 그리스도 예수님 앞에서라고 했습니다.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대신 죽으신 예수님의 사랑으로 명령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하는 명령은 그 명령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는 명령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모든 명령은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가지게 하고 그로 인해서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로 만드시기 위한 것이라는 뜻입니다.
기독교의 가장 중심적인 사역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을 먼저 죄에서 구원받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나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서 사는 것은 먼저 구원받아서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된 이후의 일입니다.
하나님은 죄인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죄인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선한 일 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먼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고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은 후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이나 예배를 드리는 일이나 말씀대로 사는 일을 허락하십니다.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라고 했습니다.
택하심을 받은 천사란 타락한 천사들과 구별해서 하시는 말씀이기도 하고 우리 각 사람을 보호하고 도와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파송한 천사를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우리 마음대로 우리 혼자 사는 것 같지만 항상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없으면 우리는 금방 타락의 길로 가기 쉽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서 우리를 도와주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주시고 인도하시는 방법은 성경 말씀을 통해서입니다. 우리가 성경 말씀을 읽고 설교를 듣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할 때 그 말씀을 중심으로 살게 하시고 그 말씀대로 살기가 어려울 때 천사가 도와줍니다.
“너는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 아무 일도 불공평하게 하지 말며”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인 목사와 장로를 고발할 때 두세 사람의 증인이 없으면 그 고발을 받지 말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증인이 있고 잘못한 것이 밝혀지면 반드시 모든 사람 앞에서 꾸짖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이런 판단을 할 때 잘잘못을 가릴 때 그것이 바른 판단이 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엄연히 잘못된 사람을 죄가 없다고 하거나 잘못한 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죄인으로 정죄한다고 하면 그 결과는 엄청난 비극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편견이 없이 이것들을 지켜”라고 했습니다.
편견이라는 말은 미리 심판하거나 판단한다는 말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여기서는 선입관을 가지고 한쪽에 치우치는 것을 말합니다.
사람들에게는 자신이 살아온 환경에 따라서 편견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신학 공부를 하는 사람도 어떤 신학 사상을 가진 신학교에서 공부했느냐에 따라서 엄청 다른 신앙을 가질 수 있습니다. 자유주의 신학을 공부한 사람은 그가 배운 잘못된 신학 때문에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지도자가 잘못된 신학 사상이나 잘못된 신앙을 가지고 있다면 정말로 큰 일입니다. 그의 가르침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모든 성도들이 잘못된 길로 가기 때문에 지도자는 편견을 가지면 절대로 안 됩니다.
여러분 개개인들도 여러분이 살아온 환경이나 배운 지식으로 인해서 잘못된 편견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편견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아무 일도 불공평하게 하지 말며”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참 불공평한 세상입니다. 어떻게 하든지 모든 사람이 다 똑같을 수는 없기 때문에 모두가 다 공평할 수는 없습니다.
여기서 공평이란 노력한 것만큼 얻는 것을 말합니다. 선한 일을 한 사람은 복을 받고 악한 일을 한 사람은 벌을 받는 것이 공평한 일입니다. 열심히 노력한 사람이 많은 것을 얻고 게으르고 나태한 사람은 많은 것을 얻지 못하는 것이 공평한 일입니다.
사람들이 공평하다고 할 때 이런 노력이나 수고와 관계없이 모든 사람이 다 같아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공평이 아니라 불공평한 것입니다.
바르게 가르치는 사람을 칭찬하고 바르게 가르치지 못한 사람을 꾸짖는 것이 공평한 일입니다. 그 사람과 친하다거나 좋은 관계가 있다고 해서 잘못한 것을 눈감아 주는 것은 불공평한 일입니다.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본문 22절에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 네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라고 했습니다.
“아무에게나 경솔히 안수하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교회의 지도자인 목사나 장로를 안수해서 세울 때는 신중을 기해서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의 지도자 한 사람이 잘못된 길을 가면 교회 전체가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세시대 교회가 타락했을 때 교회의 직분을 돈을 주고 사기도 했습니다. 신부가 신부직을 돈을 주고 사서 본전을 뽑기 위해서 자신도 신부직을 돈을 받고 안수하기도 하고 교회의 돈을 사적으로 이용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날도 목회자들 가운데 자격이 부족한 사람이 목회자가 되는 경우도 더러 있습니다. 작은 신학교에서 짧은 기간 형식적으로 공부하고 목회를 할 만한 지식이 없는 상태에서 목사 안수를 받는 경우도 많이 있습니다.
신학적인 지식이 목회 전부는 아니지만 그래도 기본적으로 목회를 할 수 있을 정도의 기본 신학은 공부해야 하는데 제대로 배우지 못한 사람이 안수를 받고 목사가 되기도 합니다.
신학교의 난립 목회자의 난립이 한국교회의 문제 중에 하나입니다. 각 교단이 목사 안수를 할 때 신중을 기해야 할 것입니다. 인격을 갖추고 참된 신앙인이 되고 남을 가르칠만한 신학지식을 갖춘 사람을 선별해서 안수해야 합니다.
인격이나 신앙이나 신학지식도 중요하겠지만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사명감일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고자 하는 사명의식이 필요합니다. 이런 사명감이 없는 사람은 다른 복음을 전하거나 돈을 벌기 위해서 직업적으로 목회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며”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의 죄에 간섭하지 말라는 말은 다른 사람의 죄에 동참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다른 사람이 죄를 지을 때 거기 동조하거나 묵인해서는 안 된다는 뜻입니다.
본문에서 다른 사람의 죄에 동참하는 것은 함부로 안수하는 일과 관계된 말씀입니다. 자격이 없는 사람을 안수해서 목회를 하게 될 때 그 사람이 잘못을 범하는 죄가 안수한 사람에게도 전가된다는 것입니다.
자격이 없는 사람을 안수하여 성도들을 잘못된 길로 인도하게 되면 그 여파는 모든 성도들에게 돌아오게 됩니다. 그가 속한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바른 신앙을 버리고 잘못된 길로 가게 되면 정말로 큰 일입니다.
지도자 한 사람 때문에 모든 성도가 지옥으로 가게 되는 불행한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이런 엄청난 죄가 그 사람을 안수한 사람에게까지 책임을 묻게 될 것이기 때문에 함부로 안수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비단 목사뿐만 아니라 장로나 교회의 모든 지도자들이 정말로 조심해야 할 일이 이 일입니다. 모든 성도가 지도자를 선택하거나 선출할 때 정말로 조심해야 합니다. 그 지도자가 잘못될 때 그 지도자를 선택한 모든 사람이 그 잘못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너 자신을 지켜 정결하게 하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잘못을 저지르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나 때문에 다른 사람이 죄를 범하거나 다른 사람의 죄에 동참하거나 다른 사람의 죄를 용납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더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의 문제입니다. 나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깨끗한 삶을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나 자신이고 나 자신의 죄입니다. 나 자신이 깨끗하지 못한다면 다른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죄를 밝혀내기에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죄를 지적함으로 나는 깨끗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내 눈에 들보를 두고 남의 눈에 티를 빼려고 하는 것처럼 어리석은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나 자신의 잘못을 발견하려고 애쓰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모든 불행이 나 자신의 잘못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 죄 문제를 회개하고 새사람이 되려고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과 그리스도 예수와 택하심을 받은 천사들 앞에서 내가 엄히 명하노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그리스도 예수님의 말씀이 우리가 순종하며 따라야 할 최고의 소중한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모든 일에 편견이 없이 공평하게 해야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지도자를 함부로 안수하지 말아야 하며 진리의 복음을 바르게 가르치는 지도자가 최고의 지도자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