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6. 21.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전 24)
본문 : 딤전 3:11-13
제목 : 여자들도 이와 같이.
“11.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 12.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 13.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
오늘날은 자격증 시대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자격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일을 하면 잘못될 수가 많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사람의 목숨을 취급하는 의사들은 고도의 기술이 있어야 합니다. 사람의 죄를 판단하는 검사나 판사나 변호사들도 법에 대한 고도의 지식을 가져야 합니다. 하다못해 음식을 만드는 조리사도 자격을 갖춘 사람이 조리를 하면 더 맛이 있고 좋은 영양분을 얻을 수 있습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더 엄격한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하는 일이 이 세상의 일보다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일뿐 아니라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너무나 중요한 일을 하기 때문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오늘날 목회자들은 신학교에서 공부를 많이 해야 합니다. 공부하는 중간중간 많은 시험을 통과해야 하고 졸업시험이나 목사고시는 참 어렵습니다. 목사 한 사람이 어떤 지식을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서 수많은 사람의 영원한 생명이 좌우되기 때문에 세상의 모든 자격증을 가진 사람들보다 더 확실한 자격증을 가져야 합니다.
옛날 목사님들은 신학 공부를 많이 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회를 잘한 것은 이론보다 경험이 더 풍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만나고 삶 속에서 깨달은 믿음의 경험들이 많았기 때문에 신학을 많이 몰라도 목회를 잘했습니다. 오히려 요즘 목사들은 이론적으로는 많이 배워도 그런 삶의 체험이 없기 때문에 신앙을 잘 가르치지 못합니다.
목회자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주님의 일을 하는 모든 직분자들도 자격을 갖추어야 합니다. 성경의 지식도 많아야 하겠지만 특별히 인격적인 면에서 자격을 먼저 갖추어야 합니다. 목사 외의 다른 직분자들은 말로써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삶으로서 본을 보이며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그동안 여러 시간에 걸쳐서 교회 직분자들의 인격적인 면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어떤 인격을 가진 사람이 일꾼의 자격이 있는가를 살펴보고 있습니다. 성경을 많이 알고 신학의 깊은 지식이 있어야 하겠지만 그 사람의 삶이 어떤가가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은 “여자들도 이와 같이”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여기 ‘여자’는 여자 혹은 아내로 번역이 되는 말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모든 여자 직분자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여자 집사로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사람들은 집사의 아내라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모든 여자 직분자들을 말하거나 여자 집사를 말하거나 집사의 아내를 말하거나 별 차이는 없습니다. 이 말씀의 목적이 교회의 직분을 구별하는 것이 아니라 교회 안에 있는 모든 직분자들의 자격을 말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본문 11절에 “여자들도 이와 같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여자들”은 앞서 말씀드린 대로 모든 여자 직분자나, 여자 집사나, 집사의 아내로 생각할 수 있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여자라는 단어가 여자 혹은 아내로 번역되는 말이기 때문에 여자 직분자 혹은 집사의 아내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또 앞서서 집사들에 관한 내용과 연결되기 때문에 여집사로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생각 중에 어떤 사람이라고 해도 상관이 없습니다. 교회에서 일하는 사람이나 또는 일하는 사람과 힘을 합해야 하는 그의 아내가 다 이런 인품을 갖추어야 합니다.
저는 여기 여자를 아내로 보고 본문 앞 절에서 말한 집사의 아내로 보는 것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신학자 칼빈도 아내라고 했고 영어 성경 대부분이 아내로 번역을 하고 있습니다. 또 앞뒤 문장을 살펴보면 집사의 아내로 번역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됩니다.
앞에서 집사의 자격을 이야기하고 있었고 또 바로 뒷절에서 다시 집사의 자격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중간에 여자 집사나 일반 여자 직분자를 말하는 것보다 집사의 아내로 보는 것이 자연스럽다고 생각합니다.
집사의 아내들도 집사와 같이 어떤 수준의 몸가짐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부부는 일심동체로 보기 때문입니다. 남편이 잘못됐을 때 아내도 잘못된 사람으로 보고, 아내가 잘못됐을 때 남편도 똑같은 사람으로 봅니다. 그래서 주의 일을 하는 일꾼은 남편이나 아내가 다 같이 좋은 사람이어야 합니다.
목사님들이 교회의 장로님이나 집사님을 뽑을 때 그의 아내도 살펴봅니다. 일꾼으로 뽑을 남편이 좀 부족해도 아내의 신앙이 좋은 사람은 일꾼으로 세웁니다.
그러나 남자가 훌륭해도 아내가 신앙이나 인품이 부족한 사람은 많이 망설입니다. 아내가 남편을 조정해서 일을 망칠 때가 많기 때문입니다. 회의할 때 좋다고 하고서는 집에 가서 아내 말 듣고 그다음 날 반대하는 사람도 많다고 합니다.
“정숙하고”라고 했습니다.
8절에 집사의 자격을 시작하면서 “이와 같이 집사들도 정중하고”라고 했습니다. 집사들도 정중해야 하는 것처럼 그의 아내들도 정숙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정중이라는 단어와 정숙이라는 단어는 같은 단어입니다. 품위가 있고, 신중하고, 단정하고, 진지하고, 존경받을 만하다는 뜻입니다. 교회에서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이 예의가 바르고 모든 사람에게 존경받을 만한 인품을 갖추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남자 집사의 자격을 이야기할 때는 정중이라고 했으나 여자에게는 정숙이라고 번역했습니다. 여자로서 행실이 곧고 마음씨가 맑고 곱다고 할 때 정숙이라는 말을 쓰기 때문일 것입니다.
“모함하지 아니하며”라고 했습니다.
남을 비방하거나 흉을 보는 일을 금하고 있습니다. 남을 비방하고 흉을 보고 수다를 떠는 것은 남자나 여자나 다 하는 일이지만 특별히 여자들은 모여서 남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
남자 집사의 경우에는 일구이언을 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한입으로 두 가지 말을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언제나 한결같은 말을 하라는 것입니다.
여자의 경우에 언어에 대해서 조심할 것은 남을 비방하거나 흉을 보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모여서 험담하는 것이 여자의 경우에 더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 교회 할머니 한 분이 노인정에 잘 놀러 가셨는데 놀러 가면 맨 끝에 나오신다고 했습니다. 놀고 있다가 어떤 사람이 나가면 그 사람 흉을 보더랍니다. 같이 흉보던 사람이 나가면 그 사람도 욕을 하고 나가는 사람마다 흉을 봐서 그런 욕 안 먹으려고 맨 끝에 나온답니다.
대통령도 안 보이는 데서는 흉보고 욕하는 세상이니까 누군들 흉을 안 보겠습니까? 그러나 교회 안에서 일을 하는 직분자나 그의 아내는 그렇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칭찬하는 말 좋은 말만 해야 합니다.
“절제하며”라고 했습니다.
언어생활에 있어서 절제는 남을 흉보지 않기 위해서는 말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하고 싶은 말을 다 하면 결국 남을 흉보는 말도 많이 나오기 때문에 말을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질적인 면에서도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사고 싶은 것 다사고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살려면 그로 인해서 경제적인 손실이 많아집니다. 꼭 필요하지 않은 것은 참을 줄 알아야 경제적인 어려움을 당하지 않습니다.
남편들이 더러운 이익을 탐하지 않게 하려면 아내들이 절제할 줄 알아야 합니다. 가정에서 아내들이 돈을 많이 쓰기 시작하면 그 돈을 대기 위해서 남자들이 더러운 이익에 손을 댈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충성이라는 말은 진실한 믿을 만한 이라는 뜻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을 해도 그 말에 대한 신실성이 없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나는 좋은 말을 한다고 하는데 사람들이 그 말을 믿어주지 않는다면 소용이 없습니다. 무슨 일을 할 때도 신실성이 없는 사람이 일을 한다고 하면 사람들이 협조하지 않을 것입니다.
말을 할 때나 일을 할 때나 믿을만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도 우리의 믿음을 보시지만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믿음이라는 것이 소중합니다. 모든 일에 즉, 하나님을 대할 때나 사람들을 대할 때 진실되게 대하시기 바랍니다. 말을 할 때나 일을 할 때나 진실한 것이 제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본문 12절에 “집사들은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리는 자일지니”라고 했습니다.
앞 절에서 집사의 아내들이 “정숙하고 모함하지 아니하며 절제하며 모든 일에 충성된 자라야 할지니라”라고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녀들의 남편인 집사들에게 한 아내의 남편이 되어 자녀와 자기 집을 잘 다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내들이 그런 정숙한 여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 남편이 선행적으로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남편이 남편의 의무를 다할 때 그의 아내도 정숙한 아내가 되기 때문입니다.
앞서 감독의 자격을 말할 때도 “한 아내의 남편이 되며”, “자기 집을 잘 다스려 자녀들로 모든 공손함으로 복종하게 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유를 “사람이 자기 집을 다스릴 줄 알지 못하면 어찌 하나님의 교회를 돌보리요”라고 했습니다.
한 남편이 한 아내에게 서로 충실하고 살라는 뜻이라고 했습니다. 지금 같이 살고 있는 남편이 아내가 서로에게 남편으로서 아내로서 임무를 잘 감당하면서 서로에게 주어진 임무대로 잘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축첩을 하면 안 된다는 교훈이라고 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에게는 일부다처제가 합법적이었고 능력이 있는 사람들은 많은 아내를 두고 살 수 있었습니다. 우리나라에도 옛날에는 양반들 집안에는 첩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집사들도 한 아내의 충실한 남편으로서 남편의 의무를 다하며 아내를 사랑하고 살아야 합니다. 제일 가까운 아내도 사랑할 수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사랑하면서 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자녀들과 집안을 잘 다스릴 줄 알아야 합니다. 다스린다는 것은 앞장서서 일하는 사람 앞에 서서 모범을 보이는 사람으로 해석할 수 있는 말이라고 했습니다.
다스린다고 해서 가족을 일꾼처럼 부리는 사람이 아니라 자신이 먼저 앞장서서 힘든 일을 하면서 또 모범을 보이면서 가족을 이끌어나가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가정에서도 먼저 앞장서서 힘든 일을 하고 모범을 보이는 사람이라야 교회에서 일을 할 때도 그렇게 먼저 앞장서서 힘든 일을 할 수 있고 사람들에게 본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본문 13절에 “집사의 직분을 잘한 자들은 아름다운 지위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교회에서 봉사하는 집사의 직분은 너무나 귀한 것이기 때문에 그런 직분을 맡을 자는 엄격한 자격을 갖춘 자라는 것을 이야기 하고 나서 그런 직분을 잘 감당한 사람에게 줄 보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름다운 지위”를 얻는다고 했습니다.
지위란 계급이나 위치를 말합니다. 아름다운 지위란 높은 위치, 영광스러운 계급 가치가 있는 자리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라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엄청난 지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거룩한 백성 즉 성도의 자리는 우리 인간에게 있어서 최고의 가치를 지닌 최고의 지위입니다.
그래서 더 이상 올라갈 자리가 없습니다. 아무런 죄도 없는 깨끗한 의인으로 인정받고 하나님의 자녀로 천국 백성이 되어서 영원토록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나라에서 사는 영광스러운 지위에 올랐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바랄 것이 없고 더 이상 높은 자리를 탐낼 필요도 없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최고의 신분을 가진 최고로 영광스러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아름다운 지위라고 하는 것은 교회의 일을 함에 있어서 더 아름답고 더 귀한 지위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당시 초대교회 때는 집사 중에서 목사나 장로들을 뽑았습니다. 오늘날도 장로는 집사 중에서 세웁니다.
초대교회 일곱 집사들도 식탁 봉사나 구제하는 일을 했다는 기록이 없습니다. 그들은 곧바로 복음을 전하는 전도자들이 된 것 같습니다. 빌립이나 스데반 같은 사람은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된 것을 봅니다. 스데반은 설교를 하다가 순교를 당한 것을 봅니다.
영광스러운 자리란 이렇게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고 설교자가 되고 복음을 위해서 순교하는 순교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해서 순교하는 것은 최고의 영광스러운 자리였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고난을 받는 것이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아무리 큰 교회당을 짓고 수천수만의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의 목사라고 해도 그가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희생하고 헌신하지 않으면 영광스러운 지위에 오른 사람은 아닙니다. 비록 작은 교회의 목회자라고 할지라도 복음을 선포하고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서 고난을 받으면 그는 영광스러운 지위에 오른 사람입니다.
제가 후배 목사들에게 가끔 이야기합니다. 큰 교회를 목표로 큰 교회 목사들 흉내 내서 복음이 아닌 사람들이 좋아하는 설교를 하면 당신들은 실패자일 뿐이다. 그러나 복음을 전하다가 어려움을 당하면 순교의 길 영광스러운 길로 가는 사람이 된다.
주님의 일에 있어서 높은 자리 영광스러운 자리란 자신이 출세를 하고 더 좋은 대우를 받고 사람들에게 박수를 받는 그런 자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맡겨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더 잘 전하는 일에 희생하고 헌신하는 자리가 영광스러운 자리입니다.
“믿음에 큰 담력을 얻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담력은 믿음의 확신을 말합니다. 복음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복음을 전할 수가 없습니다. 당시에는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순교를 각오해야 하는데 복음에 대한 확신도 없이 그런 위험한 일을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집사의 직분을 잘 감당한 사람에게 복음을 확실히 믿을 수 있게 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담대함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순교를 당한다고 해도 복음을 외쳐야 되겠다는 담대한 마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동안 우리는 교회에서 일하는 감독과 집사의 자격을 살펴보았습니다. 감독이나 집사는 교회의 여러 봉사자를 말한다고 했습니다. 직분자가 아닌 사람이라고 해도 성도라면 갖춰야 할 성품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교회의 일은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구원받게 하는 소중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이 귀한 일을 하는 사람은 거기에 맞는 품위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귀한 일을 한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바른 몸가짐으로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