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8. 2.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75)
본문 : 행 5:17-26
제목 :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서.
“17.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 18.사도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었더니 19.주의 사자가 밤에 옥문을 열고 끌어내어 이르되 20.가서 성전에 서서 이 생명의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라 하매 21.그들이 듣고 새벽에 성전에 들어가서 가르치더니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들이 와서 공회와 이스라엘 족속의 원로들을 다 모으고 사람을 옥에 보내어 사도들을 잡아오라 하니 22.부하들이 가서 옥에서 사도들을 보지 못하고 돌아와 23.이르되 우리가 보니 옥은 든든하게 잠기고 지키는 사람들이 문에 서 있으되 문을 열고 본즉 그 안에는 한 사람도 없더이다 하니 24.성전 맡은 자와 제사장들이 이 말을 듣고 의혹하여 이 일이 어찌 될까 하더니 25.사람이 와서 알리되 보소서 옥에 가두었던 사람들이 성전에 서서 백성을 가르치더이다 하니 26.성전 맡은 자가 부하들과 같이 가서 그들을 잡아왔으나 강제로 못함은 백성들이 돌로 칠까 두려워함이더라.”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간들이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하나님께로 돌아 와서 원래 하나님께서 주셨던 영원한 생명과 참된 행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런 기회를 주셨지만 인간들이 그 기회를 활용하지 못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지 못하는 것은 인간들이 뭘 잘 몰라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모릅니다.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그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자신이 어떤 위치에 있는지를 잘 모릅니다.
하나님을 떠난 인간이 얼마나 비참한 위치에 있는가를 모르고 삽니다. 자신이 의로운 사람인지 흉악한 죄인인지 잘 모릅니다. 자신이 바른 삶을 살고 있는지 나쁜 삶을 살고 있는지 잘 모릅니다. 자신의 마음속에 사탄이 주는 악한 마음이 있다는 것을 잘 모릅니다.
그래서 그렇게 악한 삶을 살면서도 그렇게 비참한 최후를 향해 가고 있으면서도 당당하게 자신 있게 교만하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 타락한 인생입니다. 악한 삶을 살면서도 바르게 잘 사는 것처럼 착각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 인생들이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는 기쁜 소식을 우리는 복음이라고 합니다.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갈 수 있다는 기쁜 소식입니다.
우리가 배우고 있는 사도행전은 그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어떻게 세상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어떻게 사람들이 믿고 따랐는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그 복음 즉 그 믿음의 위대함을 알게 된 사람들이 그 위대한 믿음을 어떻게 고백했는지 어떻게 다른 사람들도 그 믿음을 고백하도록 했는지를 보여주는 책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사람들로 하여금 그 복음이 진실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서 여러 가지 표적과 기사들을 일으켜서 사람들에게 보여주었습니다. 그런 표적을 보고 제자들이 전한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사람도 있었고 돌아오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을 보니까 믿지 않고 따르지 않는 것은 좋은데 복음을 전하는 것을 반대하고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잡아다가 옥에 가두고 죽이려고 하는 사람들도 있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든지 말든지 자기들만 안 믿으면 되고 자기들 나름대로 살면 되는데 남들이 잘되는 것이 배가 아파서 시기하고 질투를 해서 남 잘 되는 것을 가로막고 반대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
본문 17절에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라고 했습니다.
사도행전에는 복음을 전파하려고 하는 사도들과 사도들을 따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하고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와 반대로 복음전파를 방해하고 복음 전하는 사람들을 죽이려고 덤비는 대제사장과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무조건 복음을 반대합니다. 복음을 알아보고 말고 할 필요도 없습니다. 복음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 살펴볼 마음도 없습니다. 그냥 무조건 반대입니다.
그렇다고 이 사람들이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이들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들도 아닙니다.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사람도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려고 하는 사람들도 아닙니다. 하나님도 알고 성경도 알고 말씀도 잘 지키려고 하는 착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이야기만 하면 다른 사람이 됩니다. 예수님 복음만 전하면 눈에 쌍불을 켜고 달려듭니다. 세상 사람들의 입에서 아주 예수라는 이름을 없애버리려고 난리를 치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는 최고의 책임자인 대 제사장이 그 대제사장을 보필하여 하나님을 잘 섬겨야 할 유대인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야이신 예수님을 왜 그렇게 반대를 하는 것일까요?
그들이 정말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정말로 하나님을 섬기고 정말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대제사장이나 그런 직책들을 맡은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뒷전이고 그들에게는 그것이 밥 먹고사는 직업입니다. 그 직책을 가지고 이권에 개입을 하고 부귀영화를 누리고 삽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시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그러면 더 이상 자기들을 무서워할 사람도 없어지고 자기들에게 충성할 사람도 없어지기 때문에 반대를 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이제 제사도 지낼 필요가 없고 절기를 지킬 필요도 없고 그렇게 되면 자기들은 이제 할 일이 없어지고 돈을 벌 일도 권세를 행할 수도 없게 되어버리기 때문에 반대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동안 자기들을 따르며 자기들의 말 한마디에 벌벌 떨던 사람들이 다 없어져 버리기 때문에 예수님을 반대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도 이렇게 힘이 드는 것은 기득권을 가진 자들이 자기들이 가진 권력을 내려놓으려고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이 말은 국민들을 위한다고 하지만 자기들이 가진 권리는 내려놓지 않습니다. 자기들이 가난해지고 자기들이 가진 권력을 잃으면서까지 백성들을 위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런 권력을 빼앗길까봐 전전긍긍하는 것이 그들입니다.
가진 자들이 조금만 내려놓으면 모든 사람들이 다 잘 살 수가 있는데 자기가 가진 것을 내려놓으려고 하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이 가진 것까지 빼앗아서 더 부자가 되고 더 잘살려고 하고 절대로 포기하지 않습니다.
오늘날의 교회 안에도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노골적으로 반대를 하지는 않지만 다른 복음을 전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교회에 오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교회에 와서 직분을 맡는 목적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의 직업으로 생각하는 목사들이 많습니다. 직업의식이 강하면 교회를 부흥시키고 헌금이 많이 들어오게 하고 자기가 누리는 권세도 많아지게 하려고 엄청 노력을 합니다.
그들의 눈에는 성도들의 진정한 행복이나 영원한 생명은 별로 안중에 없습니다. 그들의 눈에 하나님의 뜻은 별로 중요하지 않습니다. 자기들 생각, 자기들 이익, 자기들이 누릴 행복에만 관심이 많습니다. 세상에서 누리며 잘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십자가의 복음은 별로 흥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추구하는 것에 방해가 될 뿐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복음이 아닌 이 세상의 복음에 관심이 많습니다. 하늘에 속한 신령한 복보다는 이 땅에 속한 복들을 더 좋아합니다.
우리 성도들의 마음에도 이 세상의 행복이나 부귀영화를 내려놓지 못하고 끝까지 가지고 있으면 바른 신앙생활은 할 수가 없습니다. 주님을 위해서 믿음을 위해서 모든 것을 버릴 각오가 되어있지 않은 사람은 진정한 의미의 신앙고백자가 아닙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을 섬기고 따르는 척 하면서 속으로는 자기의 이익 이 세상의 복을 바라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진정한 성도가 아닙니다. 이 세상의 욕심 이기심 세상의 행복을 버리지 못하고 오히려 그런 것들을 얻으려고 교회에 다니는 것은 진정으로 신앙을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진심으로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17절 말씀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있는 사람 즉 사두개인의 당파가 다 마음에 시기가 가득하여 일어나서”라고 했습니다.
대제사장과 그와 함께 하는 사람들 즉 사두개인들의 마음에 시기가 일어났다고 했는데 그 사람들 모두 다 마음에 시기가 일어났고 시기가 마음에 가득하게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사도들의 마음에는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했고 이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시기가 충만해 있었다는 것입니다.
헬라어에서 시기라는 말은 원래 “열심이 있는”, “열정적인”이라는 뜻이 함께 들어 있는 말입니다. 무엇이든지 자기 일에 열정적이고 열심을 내다가 보니까 자기가 하는 일보다 남이 하는 일이 잘 되는 것이 배가 아프고 시기가 나고 질투가 난다는 것입니다.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은 정말로 열심이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시시하게 놀기만 하고 봉급이나 받고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나름대로 옳은 일에 열정적으로 일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문제는 자신들이 가는 방향이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열심을 내면 낼수록 더 나쁜 일만 하게 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방향이 잘못되었다면 더 빨리 갈수록 더 많이 갈수록 목적지는 더 멀어진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지 열심을 내고 열정적으로 하는 것은 좋은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일이 바른 일인가를 판단하는 것이 우선이 되어야 합니다. 하지 말아도 될 일에 열심을 내고 하지 말아야 할 일에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기 자랑을 위해서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열심을 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공부 열심히 해서 좋은 대학에 들어가고 출세를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만 행복하게 살면 다른 사람들에게는 그 사람이 내 행복을 빼앗아 간 경쟁대상일 뿐입니다. 열심히 노력을 해서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그래서 그 돈을 자기를 위해서만 쓴다면 그것은 우리가 가지고 있어야 할 것을 빼앗아가는 도적일 뿐입니다.
열심을 내서 하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그 열심히 옳고 바른 일에 열심이어야 하고 자기의 유익만이 아닌 다른 사람의 유익도 위한 일이어야 합니다. 특별히 우리 성도들의 열심은 하나님나라와 교회를 위한 열심이어야 하고 교회 안의 성도들 위한 열심이어야 합니다.
잘못된 목적의 열심을 가진 사람이나 자기의 유익만을 위한 열심을 가진 사람은 남이 하는 일에 대해서 시기를 하게 됩니다. 남이 하는 일이 잘 되는 것을 싫어하고 인정을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오로지 자기가 하는 일이 최고입니다.
대제사장과 사두개파 사람들과 당시의 유대교 지도자들이 나름대로 성경을 연구하고 나름대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았습니다. 자신들이 가는 길이 옳은 길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한 일에 대해서 비판을 하고 다른 것이 옳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생겼다는 것을 그들은 인정하기 싫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을 모독하고 백성들을 혼란에 빠뜨렸다고 해서 십자가의 형벌을 내리게 하고 죽였는데 그 예수님이 하나님이시고 그 예수님 하나님의 백성을 구하러 오신 메시야가 되신다는 것을 그들은 인정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자기들이 죽여 버렸는데 그 예수님의 부활을 믿어야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고 하니 그들에게 있어서는 청천병력과 같은 소리였을 것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예수님께서 그렇게 다시 살아나셨고 그 증거들이 여기저기서 나오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기적들을 행하고 다니고 정말로 그들 편에 하나님이 계시는 것을 확인했다면 그만 포기하고 우리가 잘못되었나보다 하고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될 것인데 왜 저렇게 고집을 부리고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그들이 가진 열심이 자기들만 옳다고 하는 자부심이 다른 사람들이 하는 일을 좋게 보고 따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자기들보다 훌륭한 사람들이 그런 말을 하면 혹시 모르겠지만 별 볼일 없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말에 귀를 기울일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여기 좋은 것이 있다고 하고 여기 정말로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 있다고 하면 한번 알아나 보고 그것이 정말이면 한번 따라와 보려고 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그 자존심이 강한 사람들이 절대로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죽을병이 걸렸거나 망해서 거지가 되면 몰라도 그러기 전에는 절대로 자기 자신을 구원이 필요한 죄인이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
초대교회 당시의 유대교인들처럼 오늘날의 불교나 유교 인들처럼 자기 스스로 착한 일을 해야 한다고 주장을 하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지 않습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싫어하고 무시합니다. 영원한 천국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싫어합니다. 이 세상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의 행복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종교를 이용해서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고 이 세상을 행복하게 살려고 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을 해야 할 것은 그들이 이런 좋은 조건에서도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이유가 따로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고 성령님께서 그 속에 역사하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 마음속에는 사탄이 주는 시기와 질투가 있는 것이고 시기와 질투가 있을 때 아무리 좋은 것을 준다고 해도 믿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여기 이렇게 와 있는 것은 비록 표적과 기사를 직접 보지도 못했고 특별히 잘나고 똑똑하지 못한 사람임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바르게 믿게 된 것은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우리를 사랑하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을 해주셨고 성령님을 보내주셨고 성령님의 강한 역사로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는 교회가 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버려야 할 것들
오늘 본문에 나와 있는 대제사장과 사두개파 사람들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하셨습니까? 여기에 이런 기사를 기록하고 오늘 우리에게 들려주는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도 잘못하면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도 하나님의 뜻과 정 반대의 길을 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제자들의 편이 아니라 십자가의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편에 설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1)이기심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대한 욕심을 버리지 않는 한 진정한 신앙인이 될 수 없습니다. 교회는 이 세상에서 잘되고 잘 살고자 하는 욕망을 채워주는 곳이 아닙니다. 이 세상의 삶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아야 하는 곳입니다. 나 자신만 잘되겠다는 욕심을 내려놓고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위해서 살려고 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2)자기가 옳다는 교만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먼저 배운 것들 우리가 먼저 경험한 것들을 중요시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그 먼저 배운 것이 십자가의 복음이 아니고 다른 복음을 배웠다고 하면 그것이 참된 진리를 받아들이는데 방해가 됩니다. 길거리에 앉아 있는 할아버지 할머니들보고 전도를 하면 뭐라고 그러는지 아세요? 자기들의 경황과 지식을 내세워서 복음을 듣지 않으려고 합니다. 아 이 사람아 인생을 살아도 내가 더 살았고 당신이 뭐라고 해도 그런데 혹하게 넘어갈 내가 아니야 나를 뭐로 보고 그런 말을 하는 거야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교회를 오래 다니신 분들은 비교적 설교를 잘 안 듣습니다. 이미 알만한 것은 다 안다는 이야기입니다. 내가 목사보다 더 잘 안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완전히 이해를 하고 따르고 있다고 자신하면 더 들을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가슴에 와 닿을 때까지 정말로 그 십자가 앞에서 가슴을 치고 회개의 눈물이 나올 때까지 우리의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 믿음일 줄 알고 진실한 고백이 나올 때까지 성경을 읽으시고 설교를 들으셔야 합니다.
3)시기와 질투를 버려야 합니다.
시기나 질투는 자존감이 없는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얼마나 위대한 사람인지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나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위대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잘 된다고 해도 나보다 더 잘 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이 가지고 있는 시기와 질투가 혹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일을 시기하고 방해해서는 더욱 안 됩니다. 우리의 공동의 목표가 이 복음을 전하고 이 복음을 따라 사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는 초대교회의 복음을 반대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살펴보았습니다. 대제사장과 그를 따르는 사두개파 사람들이 자기들의 기득권을 포가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대한 욕심 때문에 복음의 반대편에 서 있었던 것을 보았습니다. 세상을 향한 지나친 욕심과 나 자신의 교만과 시기와 질투 때문에 그 좋은 복음을 받지 못하고 그 좋은 믿음을 가지지 못한 어리석은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우리는 그들의 전철을 밟지 않도록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복음을 전하는 자로서 복음의 증인으로서의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