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7. 2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74)
본문 : 행 5:12-16
제목 :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12.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13.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14.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15.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16.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
누가라는 사람이 누가복음과 사도행전 두 권의 책을 썼습니다. 물론 원 저자는 성령님이시지만 누가를 통해서 기록을 했다는 것입니다. 누가복음은 예수님의 행적에 대한 글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과 행하심 그리고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그 예수님의 복음이 어떻게 세상에 전해지는가를 기록한 책입니다. 겨우 열두 명밖에 되지 않았고 그것도 아무런 힘도 권세도 없는 연약한 제자들이 어떻게 당시 권력자들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세상 끝가지 복음을 전하려고 했는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금 그 사도행전 강해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사도들의 사역을 기록했지만 성령행전이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사도들에게 임하셔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이 강하게 나타나 있기 때문입니다.
5장까지 공부해 오시면서 성령님의 강한 역사를 보셨을 것입니다. 오순절에 성령님께서 임하실 때 나타났던 놀라운 현상들도 보셨습니다. 성령님께서 임하셨을 때 제자들이 방언으로 설교를 하는 모습도 보셨습니다.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일어서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성전에 들어가서 찬송하는 모습도 보셨습니다. 유대의 최고 권력기구인 산헤드린공회 앞에 나가서도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외치는 제자들의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리고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성령님을 속인 죄로 그 자리에서 즉사하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이런 모든 특별한 일들은 사도들이 전하는 예수그리스도의 복음이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이며 이 복음을 세상에 전파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심을 사람들에게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이것을 “표적과 기사”라고 했습니다.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라고 했습니다. 표적(shmei'on)이라는 말은 초자연적으로 일어나는 징후나 신호나 상징을 말합니다. 사람의 상식으로 도저히 상상할 수 없는 기적적인 일이 일어나는데 그 일이 그냥 우연히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상징이나 신호를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기사(tevra")라는 말도 징조라는 뜻인데 역시 표적처럼 예삿일이 아니라 기적적인 놀라운 일을 말하는 것입니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파할 때 성령님께서 역사하시어서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기적적이고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서 그들이 전하는 복음이 하나님의 복음이며 믿을 수 있는 진실한 것임을 알게 해주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표적과 기사라는 말로 쓰고 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을 통해서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신 하나님께서 이제는 방향을 돌려서 다른 방법으로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고 계십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반대로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을 받는 사람들을 고쳐주시는 일로서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12절 말씀에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라고 했습니다.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났는데 누구에게 일어났느냐고 하면 “민간”에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민간은 보통 사람들을 말합니다. 어떤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 보통 사람들에게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특별하게 예수님을 잘 믿었다거나 기도를 많이 했거나 특별하게 선한 일을 많이 했다거나 그런 특별한 사람이 아니고 보통 사람들 사이에 이런 기적적인 놀라운 일들이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표적과 기사는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사도들에 의해서 나타나기는 했지만 그것이 사도들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사도들의 손을 통해서 일어났다고 했습니다. 사도들에게 능력이 있어서 그런 놀라운 일들을 한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하신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성령하나님께서 사도들의 손을 빌려서 놀라운 기적들을 행하셨다고 하는 것입니다.
15절과 16절에는 그 표적과 기사가 어떤 것이었는지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심지어 병든 사람을 메고 거리에 나가 침대와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가 지날 때에 혹 그의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일까 바라고 예루살렘 부근의 수많은 사람들도 모여 병든 사람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다 나음을 얻으니라.”라고 했습니다.
병든 사람인데 침대나 요 위에 누워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혼자 걸을 수 없는 중중환자를 말하는 것 같습니다. 물론 걸을 수 있는 사람이 순서를 기다리기 위해서 누워있을 수도 있지만 사람의 힘으로 고칠 수 없고 움직일 기력조차 떨어진 중환자를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 병자들과 더러운 귀신에게 괴로움일 받는 사람을 데리고 와서 나음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귀신이 들려도 더러운 귀신이 들려서 귀신 들린 사람이 고통을 당하고 있었습니다. 귀신도 어떤 귀신은 사람에게 들어와서 돈을 벌게 해 주는 귀신도 있습니다. 요즘도 신 내림을 받아서 점을 쳐주고 굿을 해주고 돈 벌이 잘하는 사람들 많습니다. 우리가 잘 몰라서 그렇지 점보고 굿하고 하는 돈이 교회에 헌금하는 돈보다 더 많다는 통계가 있습니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무당에게 돈을 갖다 바치고 저주에서 풀려나서 복 받는 사람이 되려고 한답니다. 그런데 귀신도 아주 더러운 귀신은 돈벌이가 아니라 사람을 아프게 해서 괴롭히는 귀신이 있습니다. 사람을 괴롭히는 그런 더러운 귀신도 쫓아내서 나음을 받게 했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 특이할 일은 환자들을 침대나 요 위에 누이고 베드로 사도가 지나갈 때 그림자라도 누구에게 덮이기를 바랐다는 것입니다. 그림자가 덮일 때 나은 사람이 있어서 그랬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사도들에게 스치기만 해도 병이 나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병이 나으려고 하면 뭔가 좀 해야 될 텐데 침대에 드러누워서 그림자라도 지나가기를 바란다는 것은 좀 상식적으로 맞지 않는 것 같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한다든지 나는 꼭 나아야 될 외아들이라고 하든지 중요한 일을 할 사람이라고 이야기라도 해야 먼저 고쳐줄 것이 아니겠습니까? 아니면 좀 많이 고통스러운 척이라도 해서 동정심이라도 유발을 하든지 해야 고침을 받을 것인데 그냥 누워만 있다는 것은 이해가 안 되는 부분입니다.
그런데 끝에 보니까 모든 사람이 다 나음을 얻었다고 했습니다. 그냥 돌아가는 사람이 없이 다 낫게 되니까 그렇게 기다리고 있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고쳐주고 어떤 사람은 그냥 보내고 하면 고침을 받기 위해서 별별 수를 다 쓸 텐데 어차피 다 치료를 받고 나음을 받으니까 그렇게 안심하고 기다렸을 것입니다.
모든 사람이 다 고침을 받았다. 중병이 들린 사람이나 더러운 귀신이 들려서 고통을 당하는 사람이나 누구든지 다 고침을 받았다. 고침을 받는 사람이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그냥 드러누워서 베드로 사도의 그림자만 지나가도 고침을 받았다. 고쳐주는 사도도 기도를 열심히 하거나 약을 주거나 몸을 만지거나 하지 않고 그냥 고쳐주었다. 이런 이야기를 통해서 무엇을 느끼십니까? 사람이 하는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다. 하나님이 아니시면 이런 일을 이렇게 할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는 이 일을 표적과 기사라고 표현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놀라운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본문 12절에서 14절까지를 다시 한 번 읽어보겠습니다. “사도들의 손을 통하여 민간에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매 믿는 사람이 다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 믿고 주께로 나아오는 자가 더 많으니 남녀의 큰 무리더라.”
표적과 기사가 많이 일어나니까 어떤 현상이 벌어졌다고 했습니까? 믿는 사람은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이고 그 나머지는 즉 믿지 않는 사람은 감히 믿는 사람들과 상종하지도 못하였다고 했습니다. 믿지 않는 사람보다 믿고 주께로 나오는 자가 더 많더라고 했습니다.
그 정도의 기적적인 일이 일어났으면 모든 사람들이 다 예수님을 믿을 것이고 마음을 같이하여 솔로몬 행각에 모였을 것인데 그래도 믿지 못하는 사람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다행히 믿는 사람이 좀 더 많기는 했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도 있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5장에 들어와서 두 종류의 특별한 일을 만나게 됩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표적과 기사를 만나게 되는데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 가지는 1절에서 11절까지 소개된 아나니아와 삽비라의 사건을 통해서 본 하나님의 특별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거짓말 한번 했다고 무자비 하게 목숨을 잃게 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누가 예수님을 믿으려고 하겠습니까? 모르긴 해도 예수님을 믿다가도 그런 일을 보면 도망을 가버리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번에는 정 반대의 일을 가지고 표적과 기사를 보여주십니다. 병들어서 죽게 된 사람 더러운 귀신이 들려서 고통을 받고 있는 사람 누구든지 사도들 앞으로 오기만 하면 다 낫게 해주는 그런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두렵고 떨리는 일이 일어나면 다 도망을 갈 것 같고 좋은 일이 일어나면 모든 사람들이 다 올 것 같은데 그렇지가 않더라는 것입니다. 두렵고 떨리고 힘 드는 일이 있어도 예수님 믿을 사람은 믿고 정말로 좋은 일이 있어도 믿지 못할 사람은 믿지 못하고 떠날 사람은 떠나더라는 것입니다.
13절 말씀에 의하면 “그 나머지는 감히 그들과 상종하는 사람이 없으나 백성이 칭송하더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그 나머지는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을 말합니다. 그렇게 좋은 일을 목격했으면서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과 상종을 하지 않고 떠났다는 것입니다. 백성들이 칭송을 하면서도 믿지는 않더라고 했습니다. 모든 사람들을 모든 병을 다 고쳐주었는데 거기대고 욕을 하는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요즘 같으면 병원의 의사들이 돈벌이 할 일이 없어졌다고 불평을 하겠지만 당시에는 그런 병원도 잘 없을 때니까 극소수의 의사들만 빼고 욕을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렇게 잘했다고 칭찬을 하면서도 예수님은 믿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병을 고쳐주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은 좋은 일이고 칭찬을 받을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예수님을 믿는 일과는 별개로 생각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엄한 일로 보여주시거나 선하고 좋은 일을 통하여 보여주시거나 그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게 하기 위함이라는 것입니다. 표적과 기사를 일으킨 목적은 하나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고 교회로 모이게 하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우리도 세상을 살면서 인간의 머리로 상상할 수 없는 일들이 더러 일어납니다. 사람의 힘으로 할 수 없는 일 사람의 능력으로 해결할 수 없는 일들이 우리의 삶 속에 더러 나타납니다. 건강하게 살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죽을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죽을병에 걸린 사람이 기적적으로 고침을 받기도 합니다. 생각하지도 못했던 좋은 직장에 들어가기도 하고 좋은 직장에 다니던 사람이 갑자기 해고를 당하기도 합니다. 어렵게 시작한 사업이 물을 만난 고기처럼 잘 되기도 하고 잘 되던 사업이 어느 날 갑자기 망하기도 합니다. 좋은 사람만나서 행복하게 지나가도 어느 날 잘 지내던 사람에게 배반을 당하기도 합니다.
이럴 때 나타나는 현상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 아닌 사람은 잘 되어도 교회를 떠나고 못되어도 교회를 떠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은 잘 되어도 더욱 교회에 잘 나오고 어려움을 당해도 더더욱 교회에 잘 나와서 꿋꿋하게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교회에 좀 다니신 분들은 웬만하면 20여년이 다 되신 분들인데 그동안 무슨 일이 없었겠습니까? 이런저런 일로 상처도 받으시고 실망도 더러 하셨을 것입니다. 그래도 오늘 우리가 여기 있는 것은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여기 진리의 말씀이 있고 여기 영생의 말씀이 있기 때문에 오늘도 우리가 여기 이렇게 모인 것입니다.
오늘날의 표적과 기사
우리가 이런 말씀을 대하면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동일하신 분이시고 동일한 능력으로 우리를 돌보시는 분이신데 왜 그 세대처럼 이런 기적적인 일이 일어나지 않는 것일까 라는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그 때처럼 신유의 은사가 있다고 주장하면서 그 은사를 받기 위해서 그 은사를 사용하기 위해서 열심히 기도하고 있습니다. 신문에 광고를 내서 은사 집회를 하기도 하고 산 속에 기도원을 차리고 신유은사가 있다고 광고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눈에 우리 같은 목사는 목사도 아닙니다. 기도해서 병든 사람 한 사람도 고칠 줄 모르는 사람이 무슨 목사냐는 것입니다. 만약에 그 사람들이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처럼 사람을 고친다고 한다면 우리가 가짜이고 그 사람들이 진짜 목사일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서 역사하시고 계신다면 우리는 가짜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다 나음을 받고 무슨 병이든지 그것이 귀신이 들린 병이든지 죽을병이든지 다 낫고 아무런 조건도 없이 무조건 다 낫는다고 한다면 그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표적이고 기사일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그런 일이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기적적으로 치료해준다고 기도원이나 집회에 가보면 믿음이 있어야 된다, 기도를 많이 해야 한다, 미리 감사헌금을 해야 한다. 이런저런 조건이 많습니다. 그러고도 이병은 안 되고 저병은 안 되고 이 사람은 안 되고 자 사람은 안 되고 어쩌다 수백 수천 명 중에 소 뒷다리로 쥐 잡듯이 어쩌다가 한 두 사람 고쳐놓고 대단한 일을 한 것처럼 자랑을 합니다. 오늘날 신유 은사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초대교회 당시처럼 그런 표적과 기사로서의 특별한 신유은사는 없다는 것입니다.
당시에는 구약 성경만 있었고 아직 신약성경이 완성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래서 그런 일들이 성경에 기록이 되어야 하고 성경을 모르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고 교회를 이루어야 하고 복음을 전해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에 특별한 기적을 행하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미 그 복음을 책으로 가지고 있습니다. 성경 말씀만 읽어보면 다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잘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가진 성경이 표적과 기사입니다. 성경 속에 기록된 표적과 기사가 다 우리를 위해서 기록이 된 것이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성경을 읽으면서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 말씀만 바르게 읽고 바르게 알 수 있으면 예수님을 확실하게 믿을 수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기적적인 일이 일어남으로 인해서 성경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할 이단들이 생기기 때문에 표적과 기사를 더 이상 없게 하신 것입니다. 표적과 기사를 통해서 예수님을 믿게 해야 하는데 예수님을 믿고 나면 더 이상 그런 것들이 필요 없어야 정상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표적과 기사를 행해야 된다고 속이는 것이 이단들입니다. 예수님 믿어야 소용없고 이런 기적들을 체험해야 된다고 속이면서 쓸데없는 짓을 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표적과 기사는 교회에서 성경 말씀이 바르게 해석이 되어서 설교를 하는 것입니다. 성경의 핵심인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나타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성경 말씀만 바르게 해석을 해서 성경의 핵심인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전하기만 하면 거기는 기적이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교회의 표지를 말씀과 성례와 권징으로 정했습니다. 무엇이 교회이고 무엇이 교회가 아닌가를 판단 할 때 말씀과 성례와 권징 이 세 가지를 본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성경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시는 표적과 기사를 보았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우리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 기록된 말씀의 바른 선포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큰 은혜를 깨닫고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로 나아오게 되었습니다. 우리교회의 강단을 통해서 바른 복음 진리의 말씀이 선포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 말씀을 통해서 많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주님께로 돌아오는 기적의 역사가 일어나도록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