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 17.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64)
본문 : 행 4:20-22
제목 : 우리는 보고 들을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20.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하니 21.관리들이 백성들 때문에 그들을 어떻게 처벌할지 방법을 찾지 못하고 다시 위협하여 놓아 주었으니 이는 모든 사람이 그 된 일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림이라 22.이 표적으로 병 나은 사람은 사십여 세나 되었더라.”
우리 기독교가 시작 되면서 가장 처음 있었던 재판이고 가장 중요한 재판의 기록을 보고 있습니다.
오순절 날에 성령님이 임하시고 성령님께서 거기 모인 제자들에게 충만하게 역사하시자 제자들은 방언으로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에 관해서 증언을 하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앉은뱅이를 일으키는 이적을 행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세상 만방에 전파하여 세상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음으로 영원한 생명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얻게 하기 위해서 증인으로서 보고 들은 바를 설교했습니다.
그러자 당시의 종교지도자들과 정치 지도자들인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과 대 제사장의 가문이 모여서 이들을 붙잡아다가 재판을 했습니다.
재판의 결과 그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도 제자들을 정죄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이 너무나 정확한 사실이고 이들이 하는 일이 너무나 좋은 일이었고 백성들에게 있어서 너무나 소중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재판관들이 의논을 한 끝에 결론을 내렸습니다.
제자들에게 경고를 하는 것입니다.
다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경고를 했던 것입니다.
그 경고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 너희의 말을 듣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옳은가 판단하라”라고 했습니다.
너희들이 무슨 말을 한다고 해도 너희들이 하는 말보다 하나님의 말씀이 더 중요하다고 대답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누구도 이 사실을 부인할 수 없는 말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확실하게 보았고 우리가 정확하게 들은 사실을 말하지 않고 그냥 있을 수가 없다고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신 일이 제일 중요하고 그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들었고 그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보았는데 그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당신들이 가진 권력을 가지고 우리의 입을 틀어막고 우리의 목숨을 빼앗아가려고 한다고 해도 우리가 너무나 귀하고 나무나 소중한 이 사실을 전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당당하게 말하자 엄청난 힘을 가진 권력자들이지만 감히 그들을 처벌을 하지 못하고 위협하고 놓아주었습니다.
사도들이 정확한 사실을 당당하게 말하고 그 말을 들은 백성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40여세나 된 병 나은 사람이 증인으로 거기 서 있었기 때문에 위협만 하고 돌려보내주었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고 듣는지가 중요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 가운데서 이 세상을 살다가 간 모든 사람들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을 보고 들은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사람으로 오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이 세상에서 그들이 사는 생애 가운데서 만난 사람들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시는 가장 중요한 말씀을 직접 들었으며 예수님께서 행하신 가장 중요한 일을 직접 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영원한 생명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공생애를 시작하시면서 처음하신 말씀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마4:17)라는 말씀이었습니다.
그리고 처음 설교하시면서 시작하시는 말씀이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마5:3)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나라 영원한 천국이 있다는 것이고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서 지금까지 잘못된 삶을 회개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하시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영원한 천국 영원한 생명에 관한 말씀으로 들은 것은 아닙니다.
그저 인생을 살아갈 때 지키면 좋은 율법이나 도덕적인 말씀으로 들은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이 세상에서 행복한 삶을 살까 하는 정도로 들은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이 나를 따르려면 부모도 형제도 재산도 다 버려야 하고 자기가 가진 재산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고 나를 따르라는 말씀에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포기한 사람도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서 예수님께서 이 세상의 왕이 되실 때 한자리 차지하려고 하고 예수님께서 주신 능력을 받아서 이 세상에서 한번 멋있게 살아보려던 사람들이 포기하고 돌아간 것입니다.
정작 예수님께서 가장 중요한 말씀을 하실 때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실 것이라는 말씀을 들었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소수의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여 영생의 말씀이 주께 있사오니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이까” 라고 고백하고 예수님을 따랐던 것입니다.
당시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못한 것은 그동안 그들이 들은 세상 사람들의 말이 너무나 그들 가슴 속에 강하게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잘못된 종교지도자들이 하는 말이 그들의 가슴 속에 너무나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었기 때문에 그렇게 소중한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하나님께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말씀을 믿지 못하고 따르지 못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따른다고 하지만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이 너무나 예수님을 싫어하고 너무나 죄악이 강하게 역사하고 있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자꾸 우리를 사로잡으려고 합니다.
하나님은 없어, 교회에 다녀봐야 별 볼일 없어, 이 세상이 얼마나 좋은 곳인데, 돈이 얼마나 좋은 것인데, 먹고 마시고 연애도 하고 그러면서 살아야 해, 좋은 일하다가 바르게 살려고 하다가 쪽박만 차게 돼, 바보같이 그렇게 살지 말고 인생 즐기면서 살아…….
이전 저런 세상 사람들이 하는 말이 자꾸 우리 귀속에 들어오고 그런 말을 들으면 자꾸 믿음이 사라지고 세상을 향해 한걸음 두 걸음 나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도 이상한 것들을 가르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어서 우리를 혼란에 빠지게 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이 무슨 소용이야 그것은 그냥 기본으로 믿는다고 하고 더 중요한 것이 있어 기도해서 복을 받아서 이 세상도 잘 살아야 하고, 예수님 믿는다는 것이 뭐야 행복하게 잘 살려고 교회에 다니지, 그래서 믿습니다, 믿습니다. 하고 앉아 있지 말고 복 받는 비결을 잘 배워서 이 세상에서도 잘 살고 누리며 살아…….
아직도 로마서나 서신서의 이신칭의를 붙잡고 있어?
창세기를 봐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신 축복을 봐 형통하게 하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고 자자손손 복을 받게 해 주신다는 그런 말씀을 봐야지
신명기를 봐 들어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고 집에서도 복을 받고 밭에 나가서도 복을 받고 이런 말씀 좋잖아
여호수아서를 봐 땅을 정복하고 땅을 분배 하고 땅이 얼마나 중요하고 좋은 것인지 몰라?
이런 사람들 때문에 정말로 중요한 십자가의 복음은 잘 들으려고 하지도 않고 들어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 오늘날 교회입니다.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에 와서 거의 매주일 이 십자가의 복음을 듣는데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특별히 사랑하셔서 특별하게 주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이런 복음의 말씀을 듣지 않고 다른 말씀들을 많이 들었다면 참된 진리를 알지도 못하고 그냥 교회나 왔다 갔다 하는 형식적인 교인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진리의 말씀을 듣게 된 것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보고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시며 하나님이신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행하신 기적적인 일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수많은 병자들이 나음을 받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기도 하고 물이 포도주가 되게 하기도 하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시는 것도 보았습니다.
말씀으로 풍랑도 잔잔하게 하시고 물위로 걸어오기도 하시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보통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이심을 알았습니다.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즉 하나님이심을 믿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면서 끝까지 참으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부활하신 예수님도 보았습니다.
승천하시는 모습도 보았고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약속하시는 말씀과 해야 할 일을 지시하시는 말씀도 들었습니다.
예수님 당대에 살았던 많은 사람들이 이런 예수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런 모습을 보고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우리를 구원하러 오신 구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알지 못하고 믿지 못했습니다.
그냥 예수님 만나서 병이나 고쳐볼까 하고 예수님을 따라 다녔습니다.
예수님 만나서 이 세상에서 좀 잘 살아볼까 하는 마음으로 예수님을 따라다녔습니다.
예수님 흉내나 내서 병든 자나 고쳐보고 그래서 돈이나 좀 챙겨볼까 하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왜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셨는지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의 의미가 무엇인지
왜 십자가에서 죽으셨는지 왜 부활하셨는지 그 의미를 바르게 아는 사람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했습니다.
그들이 보기는 보았지만 듣기는 들었지만 그들 속에 있는 죄악이 그들 속에 있는 세상을 향한 욕심이 바르게 볼 수 없게 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볼 때 성경의 중심이 되시는 예수님을 볼 수 있는 것은 나무나 중요한 일입니다.
예수님을 볼 때 예수님께서 지신 십자가가 얼마나 소중한지를 볼 줄 아는 것이 너무나 중요합니다.
성경 속에서 이신칭의의 진리를 깨닫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해 주신다는 말씀이 복음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꼭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좋은 말을 하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하는 나쁜 말을 하지 않고 좋은 말만 하고 사는 것이 신앙생활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입니다.
목회를 오래 해보니까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하는가를 보면 그 사람의 신앙상태를 알 수 있습니다.
자신도 모르게 하는 말 속에 그 사람의 마음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욕을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옛날에는 아주 무식한 사람들이나 낮은 계층의 사람들이나 하는 것이 욕인데 요즘은 아무나 욕을 합니다.
우리 동네에 어떤 사람이 아주 작고 예쁜 차를 주차해 놔서 한번 유심히 보았습니다.
예쁜 그림을 붙여놓았는데 그 옆에 우리가 그 뜻을 알고는 차마 입에 올릴 수 없는 욕을 붙여놨습니다.
그냥 낙서한 것이 아니라 장식으로 그림과 같이 써 붙여 놓았습니다.
뭐하는 사람이 이렇게 예쁜 차에 이렇게 험한 욕을 써 붙이고 다닐까 궁금했습니다.
아마도 작은 차타고 다닌다고 깔보지 말라는 경고 같았습니다.
나 깔보지 마 나 꽤 힘 있는 사람이야 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조폭들이 몸에 용이나 호랑이 그림으로 문신을 하고 다니면서 자신이 조폭임을 과시하고 다른 사람에게 위협을 주는 것처럼 그 차도 욕으로 자신의 힘을 과시하는 것 같았습니다.
사람들이 욕을 할 때 그 욕으로 자신이 힘이 있는 사람임을 과시합니다.
이렇게 막말을 할 수 있는 악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어서 함부로 덤비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욕이 자신의 힘을 과시하려고 했든지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는 것이든지 이웃을 사랑하고 이웃에게 좋은 말을 해 주라는 하나님의 뜻을 어기는 죄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원망하고 불평하는 말을 많이 합니다.
자신의 형편과 처지를 원망하고 자신 곁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불평을 합니다.
자신의 잘못을 찾으려고 하지 않고 사람들을 원망하고 세상을 원망하고 삽니다.
이런 원망은 세상을 지으신 하나님을 원망하는 것이고
이런 불평은 우리 곁에 있을 사람들을 정해주신 하나님께 대한 불평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어떤 사람은 자신을 자랑하는 말을 많이 합니다.
입만 열면 왕년에 내가 이런저런 일을 했다고 자랑합니다.
입만 열면 나는 바르게 산다고 자랑합니다.
이런 자랑들은 흉악한 죄에 빠진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평가절하 하는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나는 구원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 흉악한 죄인임을 날마다 고백하는 것이 우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에베소서 1장 3절의 “찬송하리로다.”라는 말씀의 뜻을 잘 아실 것입니다.
이 말은 헬라어로 율로게오(εὐλογέω)인데 좋은 이라는 말과 말씀이라는 말이 합해진 단어입니다.
그래서 이 말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쓰시면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는 말씀이 됩니다.
우리에게 좋은 말씀을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너는 내가 창세전에 선택한 특별한 사람이다.
너는 왕 같은 제사장이다.
너는 영원한 천국을 상속받을 내 아들이다.
너를 구원하려고 유일한 아들을 보내 대신 십자가에 죽게 하고 구원해 낸 아주 특별한 사람이다.
하나님께 이런 좋은 말씀을 듣고 사는 사람들이 우리라는 것입니다.
그 누구도 우리를 정죄할 수 없고 그 어떤 세력도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는 너무나 소중하고 특별한 사람이 우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가 하나님께 좋은 말씀을 드리는 것이 신앙고백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너무나 좋으신 분이십니다.
우리 하나님은 너무나 큰 은혜를 우리에게 베푸신 분이십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사랑합니다.
하나님 미력한 힘이나마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귀한 복음을 전파하게 복음의 증인으로서 살겠습니다.
이런 좋은 말씀을 하나님께 해드리는 것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에게도 이런 좋은 말을 전해주는 것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당신도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당신은 너무나 귀한 분입니다.
이런 좋은 말을 해 주는 것이 우리 성도들입니다.
이런 좋은 말 가운데 우리가 정말로 꼭 해야 할 말이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예수님이 우리의 구주가 되신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날 대신 십자가에 죽어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서 부활해 주심으로 우리도 부활 할 서 있다는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의 능력은 너무나 위대해서 그 믿음을 고백하는 모든 사람들이 다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것이 우리가 영원히 살 길이며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을 가게 하는 너무 귀한 것임을 날마다 증언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임무입니다.
이 복음의 증인으로서 이 복음을 증언하면서 사는 것이 우리의 임무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이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아직 교만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아직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교만한 착각 때문에 이 복음을 아멘으로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이 천국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유는 세상을 향한 욕심이 그들에게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 좀 더 잘 살아보겠다는 세상을 향한 욕심이 많이 있기 때문에 천국 복음보다 이 세상의 복을 사모하면서 사는 것입니다.
진리를 선포하고 복음의 증인으로 살아야 할 목사들이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지 않고 다른 복음을 전하는 이유는 그들에게도 교만함과 세상의 욕심이 남아 있기 때문입니다.
종교를 이용해서 힘을 가지고 잘 살아보려고 했던 유대교 지도자들의 악한 마음에 그들에게 있기 때문에 유대교 지도자들처럼 예수님의 이름을 행하지도 가르치지도 않으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한다고 하면서도 예수님의 뜻과는 다른 것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팔아서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사람들 때문에 교회의 강단에서 마땅히 해야 할 말인 십자가의 복음이 선포되지 않고 있는 것이 오늘날의 현실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이신칭의의 진리 십자가의 복음이 꼭 전파되어야 할 진리의 말씀이고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말씀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와 요한은 그 막강한 세력 앞에서도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그 죽음의 위협 속에서도 당당하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아니할 수 없다.
이것이 너무나 확실한 것이고 나무나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너희들이 우리를 죽이려고 한다고 해도 꼭 이 말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그 진리를 알고 있습니다.
우리도 그 복음을 보고 들었습니다.
우리도 이 진리의 복음을 당당하게 외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