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 3.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62)
본문 : 행 4:15-17
제목 :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15.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16.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 17.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성경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살펴보면 그들에게 공통점이 하나 있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부분이 잘못을 저지른다는 것이고 그 잘못에 대해서 인정을 하지 않고 변명을 하거나 그 잘못을 정당화하려고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에 다윗이나 신약성경의 베드로는 아주 특별하게 그들이 잘못했을 때 잘못을 깨닫고 회개하고 오히려 더 바른 삶을 살려고 노력을 했던 아주 특별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못을 저지르고도 그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뉘우치거나 회개하지도 않고 오히려 자신들이 한 일에 대해서 변명을 하고 정당성을 주장합니다.
아담과 하와는 우리 인간의 대표이면서 그런 특징을 가진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아담과 하와는 명백하게 죄를 지은 사람입니다.
당시에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유일한 법을 어긴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서 죄를 지적했을 때 그들은 자신의 잘못을 숨기고 핑계를 댑니다.
사실 그들은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욕심에서 먹지 말라고 한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서 먹은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그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야 했습니다.
예 저희들이 욕심 때문에 그만 하나님과 같아지려는 아주 악한 마음을 가지게 되었고 그러기 위해서 그 열매를 따서 먹었습니다.
이렇게 진실 되게 잘못을 고백하고 용서를 빌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오히려 변명으로 자기들의 정당성을 주장했던 것입니다.
아담은 하와 핑계를 댑니다.
저는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하나님께서 만들어서 나랑 같이 살게 해준 이 여자가 먹자고 해서 그만 먹어버렸습니다.
하와는 뱀 핑계를 댑니다.
저는 그럴 생각이 없었는데 이 뱀이 자꾸 유혹하는 바람에 어쩔 수가 없이 먹게 되었습니다.
자신들의 욕심을 숨기고 욕심 때문에 잘못했던 행동을 감추고 변명을 한 것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 먹은 것보다 더 큰 죄였을 것입니다.
솔직하게 잘못을 고백하지 못하고 변명한 것이 큰 잘못이라는 것입니다.
노아시대의 사람들은 생각하는 것이나 계획하는 것이 다 악해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아주 없애버리셨습니다.
노아 가족만 남기고 세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을 지면에서 없애버리셨습니다.
살아남은 노아의 후손들 사이에 이 사건은 아주 중요하게 전달되는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하나님께 죄를 지어서 다 홍수로 멸망을 했는데 우리 가족만 특별히 살려주셨다는 이 이야기는 아버지가 아들에게 아들이 그 아들에게 생생하게 알려주었을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그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잘못을 하지 않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하기보다는 잘못을 저질러도 죽지 않을 방법을 연구하였습니다.
그래서 바벨탑을 쌓아서 하늘까지 닿게 해서 하나님이 벌을 내리더라도 도망갈 길을 마련하려고 한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주 특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인류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그 일을 하는데 부르심을 받고 쓰임을 받은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아직까지 예수님을 믿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몰라보고 십자가에 못박아버렸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그 죄를 지적했습니다.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다고 증언을 하면서 그들이 지은 죄를 지적했습니다.
그런데 당시에 권력을 잡고 있던 지도자들이 자기들의 권력을 빼앗길까봐서 자기들이 지금 가지고 있는 이권을 지키기 위해서 자기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들을 핍박하고 제거하려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 때문에 아직도 이스라엘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기들이 저지른 흉악한 범죄를 감추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들의 잘못을 알았습니다.
본문 15-16절 말씀에 “명하여 공회에서 나가라 하고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이 사람들을 어떻게 할까 그들로 말미암아 유명한 표적 나타난 것이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에게 알려졌으니 우리도 부인할 수 없는지라”라고 했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아 와서 혼을 내려고 했는데 오히려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바른 말을 하고 그 물증들을 들이대니까 그들이 오히려 곤란해졌습니다.
재판을 하다가 말고 베드로와 요한을 나가 있으라하고 자기들끼리 의논을 합니다.
이들이 말하는 것이 거짓말이 아니고 또 이 사실을 이 사람들만 아는 것이 아니고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이미 알고 있으니까 어떻게 해야 할지를 의논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사실들을 다 살펴보니까 이 사람들의 말이 옳은 것 같고 우리들도 부인을 할 수 없게 되었으니까 어떻게 할 것인지 대책을 세우자는 것입니다.
당시에 예수님께서 행한 일은 갈릴리 한 구석에서 일어난 일이 아닙니다.
온 이스라엘에서 특별히 예루살렘에서 모든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일어난 일입니다.
당시에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은 그냥 설교 몇 편 하시는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그동안 그들이 잘못알고 잘못 행하고 있었던 것들을 확실하게 말씀해주셨고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구원에 대해서 아주 엄청난 진리를 너무나 확실하게 말씀해주셨습니다.
당시에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누가 보아도 예수님이 보통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알 수 있는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중풍병자들이 벌떡 일어나고 귀신 들려서 고생하는 자들이 자유를 얻고 죽은 사람도 살아나고 하는 엄청난 일이었습니다.
자연현상까지도 예수님의 말씀에 복종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말씀 한 마디에 풍랑도 잔잔해지고 물위로 걷기도 하시고 물이 포도주로 변하게 하시고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먹이고도 남게 했습니다.
더 놀라운 일은 분명히 십자가에 못을 박아서 죽게 했는데도 예언하신 말씀대로 다시 살아나셨다는 것입니다.
다시 살아나셔서 40일 동안 이 세상에 계시면서 사람들에게 살아나신 증거를 보여주시고 해야 할 일도 말씀해 주시고 승천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후에 약속대로 성령님을 보내주셨고 성령님께서 임하실 때도 사람들이 알 수 있는 기적들이 일어났습니다.
엄청난 바람소리 같은 소리가 들리고 타지 않는 불이 각 사람 머리 위에 임하고 사람들을 각 나라 사람들이 다 자기나라 말로 알아들을 수 있는 방언을 했습니다.
최근에 일어난 일은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날 때부터 불구자로 태어나서 40이 되도록 성전 문 앞에서 구걸을 하던 앉은뱅이를 일으켜 세웠다는 것입니다.
그 고침을 받는 사람이 재판정에 증인으로 와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재판정에 모였던 당시의 권력자들이 이 사실을 부인을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가 되심을 부인 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몰라보고 십자가에 못 박은 그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가 되시고 그 예수님 이름 외에 구원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는 것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예수님께 대해서 잘못을 저지른 것이 얼마나 끔찍한 죄이고 얼마나 하나님께 큰 벌을 받아야 하는 엄청난 잘못임을 부인할 수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그 부인할 수 없는 사실들을 다시 살펴보든지 다시 점검을 해 보든지 그런 일들이 사실이라면 지금 우리가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은 일일지를 의논해 보아야 할 것입니다.
살펴보고 잘못된 일이 있으면 고치고 회개하고 바른 길을 찾아서 모든 사람들이 살 수 있는 바른 길을 찾는 대책회의를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정말로 진실 된 눈으로 세상을 보고 우리 자신을 살펴보면 하나님 앞에서 사람들 앞에서 우리가 엄청난 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 스스로 지은 죄 때문에 늙어가고 병들어가고 죽어간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진지한 눈으로 성경을 읽어보면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구주가 되신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귀한 축복인가를 알게 됩니다.
나 스스로 착한 일을 할 수 없고 나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기 때문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잡고 그 십자가 앞에 무릎을 꿇고 그 십자가를 의지해야 한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없게 됩니다.
우리가 조금만 더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꿈과 같은 세상이고 죽음이 얼마나 허무한 것인가를 알게 됩니다.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영원한 생명이고 영원한 하나님나라라는 것을 부인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이런 문제들 앞에서 대책을 세워야 하지 않겠습니까?
내가 잘못 되었으면 회개할 기회를 찾아야 할 것이고
내가 잘못된 길로 가고 있다면 바른 길을 찾아서 가야 할 것이고.
내가 영원한 생명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들어갈 길을 알 수 있다면 그 길을 바로 알고 그 길로 들어가기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잘못을 알고도 회개하지 않고 그 사실을 감추려고 했습니다.
본문 17절 말씀에 “이것이 민간에 더 퍼지지 못하게 그들을 위협하여 이 후에는 이 이름으로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게 하자 하고” 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부인할 수 없는 확실한 증거가 나타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잘못했다는 것이 천하에 다 드러났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잘못이 온 이스라엘을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되게 하고 멸망의 길로 달려가게 했음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조금만 마음을 고쳐먹으면 온 이스라엘 사람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 오히려 그 잘못을 감추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더 이상 그 사실이 세상에 알려지지 않도록 제자들의 입을 막으려고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더 이상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하게 하려고 하는 것입니다.
진리를 외치는 자들의 입을 막아서 자신들의 죄를 은폐하고
진리를 외치는 사람들의 입을 막아서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는 길을 막아보자는 것입니다.
왜 그런 엄청난 죄를 저지르려는 것일까요?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는 유대교의 지도자들이 왜 그렇게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의 길을 막으려고 안달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자기들이 누리고 있는 권력을 내려놓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종교를 이용해서 온갖 이권에 개입하고 호사를 누리고 사는 이런 것들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그러는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이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이고 그런 것에 관해서는 관심이 없고 오직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려는 그런 욕심 때문에 그러는 것입니다.
거기 모인 그 많은 지도자들 가운데 한 두 사람이라도 바른 생각을 가졌더라면 갑론을박 서로 의논이라도 했을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한번 생각해보자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었을 것입니다.
한 사람도 자신들의 잘못을 이야기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 사람도 현실을 직시해보자고 하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한 사람도 우리가 해야 할 바른 일이 무엇인지를 찾아보자고 하는 사람도 없었습니다.
하나같이 다 죄를 덮으려고 하고 자기들의 이권을 지키자고 하고 남이야 어떻게 되든지 나라가 어떻게 되든지 관심이 없었던 것입니다.
오직 나의 돈, 오직 나의 권력, 오직 이 세상의 행복, 오직 이 세상의 출세에만 관심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다 같이 작당해서 나쁜 짓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완전히 망해버리고 말았습니다.
예루살렘은 완전히 점령을 당하고 성전도 돌 위에 돌 하나도 남겨지지 않고 다 무너져 버렸고 2천년동안 나라도 없이 세상을 떠도는 민족이 되고 말았습니다.
물론 아직도 그들은 예수님을 믿지 않고 예수님이 주인공인 성경을 세상 사는데 필요한 윤리교과서로나 사용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도 마찬가지입니다.
기득권을 가진 사람들이 자기들 기득권을 내려놓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에 많은 사람들이 불행한 삶을 살고 있습니다.
돈이 많은 사람들이 자기들 돈을 지키기 위해서 안달이 되고 쓰지도 못한 돈들을 쌓아놓고 있습니다.
같이 나누면 모든 사람들이 행복해질 것을 알면서도 자기들만 도 잘 살기 위해서 돈을 더 이용해서 더 많이 가져가기 때문에 없는 사람은 더 가난해지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들이 많이 배운 사람들이 자기들만 잘 살려고 하기 때문에 머리가 나쁘고 많이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더 어렵게 살게 됩니다.
머리좋은 사람들이 그 좋은 머리로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만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정치를 하는 사람들도 자기들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파벌을 형성하고 자기파에 속한 사람들만 잘 되게 해주니까 다른 사람에게 기회가 돌아가지 않고 바른 정치를 하지 못합니다.
교회는 어떻습니까?
교회는 그런 파벌이 없고 교회는 그런 기득권이 없고 교회는 그런 이권을 중요하게 여기는 사람이 없습니까?
교회는 더하면 더 했지 그런 것이 없다고 말하지 못할 것입니다.
교회가 일부 잘못된 욕심을 가진 목회자들 때문에 자꾸 자꾸 대형화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그 욕심을 버리지 못하고 대형화 상업화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더 큰 교회를 짓고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고 더 많은 헌금을 내게 해서 엄청난 세력을 만들려고 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일부 잘못된 권력욕을 가진 목회자들 때문에 목사가 성도들 위에 군림을 하고 자기의 권위를 가지고 성도들을 괴롭히고 있습니다.
자기의 권력을 가지고 자기의 잘못을 감추고 자기 잘난 척하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교회는 소규모여야 하고 소수의 사람들이 서로 모여서 서로 교제하고 함께 마음을 합하고 서로 도와주면서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해야 한다고 말은 하면서도 자신의 교회를 소형교회 바른 교회로 만들려고 하지 않습니다.
가정교회나 두 날개 프로그램을 만들어서 작은 교회 흉내를 내려고 하지만 자기들의 기득권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외쳐야 할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일부 잘못된 교회의 목사들은 그 복음을 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부끄러워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감추고 엉뚱한 세상 이야기로 강단을 메우고 있습니다.
조금만 진실하게 가슴을 열고 성경을 보면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지를 알게 되는데 왜 그런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일까요?
그 귀한 복음을 외쳐야 하는 강단에서 윤리 강연이나 하고 웃기는 코미디나 하고 사람들 자랑이나 하는 것일까요?
그까짓 돈이 무엇이기에
그까짓 권력이 무엇이기에
그까짓 세상 행복이 무엇이기에
불타고 없어지고 말 허무한 것들에 목숨을 걸고 사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불타고 없어지고 말 이런 세상 것들 때문에 너무나 귀한 믿음을 무시하고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이직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잘 모르십니까?
알면서도 세상의 것들 때문에 믿음을 귀하게 여기지 않고 사시는 것은 아니십니까?
욕심 때문에 엄청난 하늘의 신령한 복을 놓치고 사는 사람이 한 사람도 없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 사람들은 자신이 얼마나 흉악한 죄인이라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알면서도 세상의 것들 때문에 진리의 길을 따르지 않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감추고 합리화하고 진리를 부인하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지신이 흉악한 죄인이라는 것을 알고 회개하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 것인가를 잊지 마기 바랍니다.
그 믿음을 고백하는 진실한 고백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믿음을 바로 알고 진실 되게 고백할 때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소유하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