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4. 2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61)
  본문 : 행 4:13-14   
  제목 :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


  강해설교가인 마틴 로이드 존스 목사는 오늘 본문 말씀을 설교하면서 기독교의 특징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 했습니다.

  기독교는 종교나 철학이나 어떤 사상이 아니라 역사에 있었던 사건이라고 했습니다.
  누군가가 사색을 통해 연구를 통해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는 이 역사 현장에서 하나님의 일을 행하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사건은 보통의 사건이 아니라 인간들이 깜짝 놀랄 수밖에 없고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보통일이 아니고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특별한 일을 하심으로 사람들로 하여금 이 일이 중요하고 믿을 수 있는 일임을 알게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요즘 우리가 배우고 있는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는 사건이 그 사실을 잘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 일은 도저히 인간들이 흉내도 낼 수 없는 특별한 기적입니다.
  이 일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행하여진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이 일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배우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날 때부터 앉은뱅이로 태어나서 40세가 되도록 성전 문 앞에서 구걸을 하며 먹고 살던 사람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고쳐주었습니다.

  그 사건을 계기로 많은 사람들이 베드로와 요한 앞에 모이게 되었고 베드로와 요한은 그 모인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을 반대하는 유대인들의 지도자들이 나타나서 베드로와 요한을 체포하여 당시 최고 사법기관인 산헤드린 공회 앞에서 재판을 받게 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을 잡아왔던 제사장들과 성전 맡은 자와 사두개인들 그리고 재판정에서 심문을 하고 있는 관리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은 당대 최고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대제사장 안나스와 가야바와 그들의 문중은 당대 최고의 권력을 가진 문중이었습니다.
 
  그런 막강한 권력자들에 비교하면 베드로와 요한은 정말로 보잘 것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훌륭한 가문의 자손들도 아니고 많이 배운 사람들도 아니고 권력을 가진 사람들도 아니었습니다.
  촌에서 올라온 초라한 사람들일뿐이었습니다.

  그런데 베드로와 요한이 하는 말을 들어보면 엄청난 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말을 하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으로서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엄청난 이야기를 아주 담대하게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권력자들이 초라하고 별 볼 일이 없는 베드로와 요한의 말에 비난할 말을 찾지 못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우리 기독교를 반대하는 막강한 세력들이 있습니다.
  세상에서 똑똑하고 돈도 많고 권력도 많은 사람들이 우리 기독교를 업신여기고 비난합니다.

  다른 종교들이 막강한 세력을 가지고 우리는 비난합니다.
  기독교라고 하면서도 우리와 다른 생각을 가진 세력들이 우리가 가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비웃습니다.
  그들이 숫자의 우세를 앞세우고 세력을 자랑하면서 우리를 비웃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그들이 감히 비난하지 못할 너무나 소중한 진리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에게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도 세상을 향하여 세상의 권력자들을 향하여 우리가 가진 이 복음을 담대하게 외쳐야 할 것입니다.
  그래야 세상이 우리를 비난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고 있습니다.
  온갖 욕이라는 욕은 다 먹고 있습니다.
  그래서 욕을 먹지 않고 칭찬을 받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욕을 먹지 않기 위해서 세상과 타협을 하고 세상 사람들이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그들에게 비난할 말을 없애버리기 위해서는 그들과 타협을 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복음을 담대하게 외쳐야 합니다.
  우리가 그들과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담대하게 전해야 합니다.

  본문 13절에 “그들이 베드로와 요한이 담대하게 말함을 보고 그들을 본래 학문 없는 범인으로 알았다가 이상히 여기며” 라고 했습니다.

  지금 베드로와 요한은 범죄자로 끌려와서 재판을 받고 있는 피고인에 불과했습니다.
  그렇다고 변호인이 있는 것도 아니고 그들을 지지하는 세력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배운 것도 없는 무식한 촌사람에 불과 했습니다.
  특별한 것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보통사람에 불과했습니다.
  당장 사형을 선고해서 처형을 한다고 해도 누구하나 뭐라고 할 사람이 없는 연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이들을 벌할만한 근거를 찾지 못하고 그들을 반대할만한 말을 찾지 못하더라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엄청난 철학을 이야기 하거나 사람들이 심오하게 생각할 종교적인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인 놀랄만한 새로운 것을 개발하여 발표한 것도 아닙니다.
  이렇게 하면 돈을 엄청나게 벌 수 있다거나
  이렇게 하면 이스라엘이 로마로 부터 독립을 할 수 있다거나
  이렇게 하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다거나
  그런 세상 사람들의 호감을 살만한 이야기를 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무엇을 했는지를 지적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행한 일에 대해서 비난을 퍼붓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버린 그들의 잘못을 담대하게 지적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냥 예수님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님을 하나님이 다시 살리셨다.
  너희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그 예수님이 우리의 구원자가 되시며 예수님 외에 구원을 받을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지 않으려면 다른 이야기 하지 말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하고 예수님의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영생에 이른다는 이 엄청난 진리를 선포해야 합니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의 비난을 받지 않으려고 세상을 향해서 착한 일 선한 일을 하려고 합니다.
  사랑나누기도 참여하고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서 여러 가지 좋은 일들을 하려고 합니다.
  주차장도 만들어서 동네 사람들에게 사용하게 하고 스포츠 센터도 만들어서 사용하게 하고 무료급식도 하고 이런 저런 일들을 많이 합니다.

  그런데 그런다고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칭찬합니까?
  그런 일을 하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고 그런 일을 하지 않으면 욕을 하는 것이 세상입니다.

  교회는 그렇게 세상을 향해서 봉사하라고 있는 곳이 아닙니다.
  세상 사람들을 잘 살게 하기 위해서 세상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기 위해서 교회가 존재하는 곳이 아닙니다.

  오히려 세상을 향해서 그들의 죄악에 대해서 외쳐야 합니다.
  너희들이 얼마나 흉악한 죄인인지를 지적해야 합니다.
  지금 그런 생각을 가지고 살면 저주를 받고 형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이야기해야 합니다.
  그들이 지금 영원한 죽음의 불구덩이로 들어가고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교회에게 주신 사명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명을 잊어버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환심이나 사려고 그들이 좋아하는 말을 하고 그들에게 칭찬이나 받으려고 하면 안 됩니다.

  그들에게 환심을 사서 뭐하게요
  그들에게 칭찬을 받아서 뭐하게요
  그렇게 사람들 끌어 들여서 큰 교회 만들고 큰 세력을 만들어서 뭐하겠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게 해서 세상 사람들의 마음을 얻는 것이 교회가 해야 할 일입니까?
  당연히 아닙니다. 그것은 너무나 잘못된 일입니다.
  담대하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하여 예수님을 믿어서 구원을 얻게 하는 것이 교회가잔 가장 핵심적인 사명이라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과 함께 있음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본문 13절에 “또 전에 예수와 함께 있던 줄도 알고”라고 했습니다.

  유대교 지도자들이 막강한 권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별 볼일 없는 베드로와 요한의 하는 말에 비난할 말을 찾지 못한 것은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과 함께 있었던 것을 그들이 보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비록 못 배운 촌사람에 불과했지만 그들이 예수님의 제자였다는 사실 때문에 그들을 비난할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예수님에 대해서 증언을 하는데 그냥 어디서 들은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삼년이 넘도록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 
  예수님이 전하는 하나님나라의 복음을 들었고 
  예수님이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직접 목격을 했고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것과 그 예수님이 부활하신 것과 하나님나라로 승천하시는 것을 직접 본 사람들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났지만 끝까지 예수님 곁에 있었던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좋아서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적인 일에 놀라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다고 할 때 그들은 모두 다 예수님을 떠났습니다.
  예수님을 통해 구원을 받고 영생을 받는다는 사실을 안 소수의 사람들만 예수님 곁에 끝까지 있었습니다.

  끝까지 예수님과 함께한 그들이 산 증인으로서 보고 들은 것을 담대하게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 말에 대해서 비난할 말을 찾지 못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있으려면 어떻게 해야 될까요?
  지금 예수님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예수님이 계신 곳에 가서 함께 있을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보내주신 예수님의 영인 성령님과 함께 있는 것이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오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알게 하고 믿고 하고 따르게 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불러주시고
  우리 속에 있는 흉악한 죄를 깨달아 알고 회개하게 하시고
  믿음을 가지게 해 주시고 
  의롭다 칭해 주시고
  거룩한 삶을 살게 해 주시고 언제나 함께 해주십니다.
  
  그 성령님을 따라 예수님을 믿는 믿음생활을 하는 것이 예수님과 함께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 줄 믿습니다.
  그 믿음 안에 있을 때 우리가 위대한 사람이 되고 이 세상의 어떤 세력도 겁내지 않고 싸워 이길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배운 로마서 8장 38-39에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무엇을 가지고 세상을 이기겠습니까?
  교회가 힘을 키우고 세력을 키우고 인재를 길러서 대항한다고 세상을 이길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만이 세상을 이길 유일한 능력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것이 아무리 막강한 것이라고 해도 우리가 가진 이 귀한 신분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도 없고 하나님나라를 유업으로 받을 수도 없고 하나님의 사랑과 칭찬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 주님이 재림하시고 그들이 범죄자로 재판을 받을 때 우리는 시상대에서 상을 받고 있을 것입니다.
  그들이 슬피 울며 이를 갈 때 우리는 기뻐 뛰며 춤을 출 것입니다.
  그들이 영원한 지옥으로 끌려갈 때 우리는 영원한 복락의 나라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로 들려올라갈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제일로 여기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십자가 앞에서 무릎을 꿇고 그 십자가를 붙들고 있기 때문입니다.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본문 14절 말씀에 “또 병 나은 사람이 그들과 함께 서 있는 것을 보고 비난할 말이 없는지라”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증언을 하고 있는 그 곁에 예수님의 이름으로 고침을 받은 그 사람이 서 있었기 때문에 감히 비난할 말을 찾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이런 기사를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나 예수님 제자들의 흉내를 내려고 합니다.
  어디 가서 병자를 고쳐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합니다.

  그런데 신유의 은사니 뭐니 해서 어설프게 병자들을 고친다고 하면서 오히려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전파를 가로막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이런 기사를 보여주는 것은 그렇게 따라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따라 해서 세상 사람들에게 인기를 얻으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런 특별한 기적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믿고 예수님의 복음을 믿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기적은 세상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아주 확실하고 특별한 일이어야 합니다.
  그냥 야 좀 신기하다. 대단한데 그런 정도를 가지고 복음을 전하면 사탄도 따라하고 사람들도 따라 해서 오히려 복음이 거짓이 되게 하는 일이기 때문에 조심을 해야 합니다.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던 앉은뱅이는 40세가 된 사람이었는데 그가 언제부터 성전 문 앞에서 구걸을 했는지 알 수가 없지만 꽤 오랜 세월동안 모든 사람들이 그가 불구자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자신이 신유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사이비 부흥사가 멀쩡한 사람을 못 걷는 사람 흉내를 내게 하고 그에게 안수 기도를 해서 낫게 한 것처럼 사기를 치는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이 흉내를 낼 수 없도록 이런 오랫동안 선천적으로 불구자가 되어서 많은 사람들이 다 볼 수 있었던 그 사람을 낫게 한 것입니다.

  고침을 받는 장면도 여러분이 들어서 아시겠지만 기도 한번 할 때 조금 낫고 또 하면 조금 낫고 그렇게 고친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 자리에서 일어나고 서서 걷고 뛰고 하게 만들었습니다.
 
  오랫동안 여러 번 기도해서 병을 고쳤다고 이런 기적적인 일과 비교를 해서는 안 됩니다.

  감기에 걸리면 병원에 가면 7일 안가면 일주일이라는 말이 있는 것처럼 우리 몸에는 건강을 회복하는 능력이 있어서 세월이 가면 자연스럽게 고쳐지는 병도 있습니다.
  그렇게 고치려면 의사가 더 잘 고치고 의사가 아니라도 고칠 수 있습니다. 

  앉은뱅이의 치유는 세상 사람들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어설프게 흉내를 내서 이런 하나님의 일을 오히려 가치 없게 만들어 버리면 안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기 위해서 사도들을 통하여 하신 아주 특별한 일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확실한 증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이런 성경 기록을 통해서 그것이 역사적인 사실임을 알고 거기에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줄을 알고 그들이 전한 복음을 사실로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적들을 성경을 기록할 때에 그 성경 기록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믿게 하기 위해서 행하셨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세상 사람들에게 보여 주어야 할 확실한 증거는 내 삶의 변화입니다.
  내가 사는 것이 과거에 세상에 있었던 때와 확연하게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은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주일날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는데 사는 것은 세상 사람들과 똑 같다면 우리가 구원받은 백성이 된 증거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복음의 비밀을 알지 못하고 영원한 천국복음을 믿지 못하고 교회에 다니고 목사가 되고 하니까 교회 안에 별 별 사람이 다 있습니다.
  목사가 자전거 도둑질이나 하고 보이스피싱으로 사기 치는 사람들의 심부름이나 하고 장로가 무당 앞에 고개 숙이고 자살을 합니다.
  그런 모습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겠습니까?
  욕이나 하고 비난이나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교회는 기도나 하고 성경이나 연구하고 교리나 만들고 하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녀답게 영원한 천국 시민답게 우리의 삶을 바꾸는 곳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저 앉은뱅이처럼 일어서지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남에게 구걸이나 하던 그런 사람이었는데 
  이제는 일어나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성전에 들어가기도 하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사람이 된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그런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그렇게 초보자처럼 앉아만 있을 것입니까?
  일어나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고 하나님을 찬송하기도 하고 그런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확실한 변화를 보여주는 것이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를 비난하지 못하게 하는 일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있습니다. 
  그 복음을 믿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 복음을 담대하게 전하시기 바랍니다.
  이 복음과 함께 예수님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이 복음을 믿고 따르는 확실한 증거들을 변화된 삶으로 보여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