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3. 1.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54)
본문 : 행 3:19-21
제목 :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
“그러므로 너희가 회개하고 돌이켜 너희 죄 없이 함을 받으라 이같이 하면 새롭게 되는 날이 주 앞으로부터 이를 것이요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 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는 사도행전을 시작하면서 그 당시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의 가장 큰 관심사를 나타내는 질문이 무엇이었는가를 소개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친히 살아계심을 그들에게 보이시면서 40일 동안 하나님나라의 일을 말씀하셨을 때 그 하나님나라를 회복하는 것이 언제인가 하는 것이 그들의 큰 관심사였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라고 질문을 했습니다.
그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그 때와 시기는 하나님의 권한이기 때문에 너희들이 알 바가 아니라고 하시면서 너희들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고 하시고 하늘로 올라가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대답해주시지 않고 올라가신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오늘 본문을 통해서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 예수님은 하늘에 계시고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만물이 회복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물의 회복은 우리 예수님께서 재림을 하실 때 될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그 날을 기다리면서 사는 것이며 그 날이 올 때까지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에 최선을 다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장 큰 관심사는 무엇입니까?
무엇이 가장 큰 관심거리입니까?
무엇에 여러분의 마음을 두고 사십니까?
교회에 다니시면서 신앙생활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면서도 하나님나라의 일에 대해서 관심이 없습니다.
이 세상나라의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삽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영원한 하나님나라가 아닌 이스라엘 나라의 회복에 관심이 많았듯이 우리들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일에 더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 세상의 어려운 일들이 회복되기를 바라면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는 우리 성도들은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비록 지금은 이 세상에서 살고 있지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 이루어지는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야 하며 그 날에야 만물이 회복된다는 것을 알고 그 만물이 회복되는 것을 기다리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
본문 20절 말씀에 “또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그리스도 곧 예수를 보내시리니”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지금 솔로몬 행각이라고 하는 곳에서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올라가다가 날 때부터 앉은뱅이로 40년간을 살면서 성전미문에 앉아서 구걸을 하던 불구자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일어나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게 만들었습니다.
나은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붙잡고 이 사람이 나를 고쳐준 사람이라고 하자 많은 사람들이 관심을 가지고 모여들었습니다.
모여든 그들에게 이 앉은뱅이가 고침을 받는 과정을 소개하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사람을 우리가 능력이 있어서 우리가 경건생활을 잘 해서 우리가 기도를 열심히 해서 고친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나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너희들이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내어주어서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영화롭게 하셔서 그 이름을 믿는 믿음이 그를 낫게 했다는 것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이제 다시 오실 것인데 그 예수님이 다시 오시면 이 앉은뱅이만 나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기다리는 모든 사람이 나음을 받게 될 것이며 일시적인 나음이 아니라 완전하게 나음을 받을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이 우리의 최고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다시 오실 때 모든 만물이 다 새로워지고 만물이 회복될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완전하게 새롭게 되거나 회복되지 않은 상태라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완전히 회복되지 않은 이 세상에 살면서 모든 것이 좋아지기를 바라고 사는 것은 잘못된 생각임을 알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미래를 위해서 사는 것보다 현재를 보면서 살기를 좋아합니다.
눈앞의 이익에만 몰두하다가 미래를 대비하지 못하고 불행해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들도 눈앞에 일어나는 이익에만 관심을 쏟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불치병 환자들을 고쳐주시고 많은 사람들의 배를 채워주실 때 예수님을 따르면서 이 세상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왕으로 삼고자 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가 관심 밖이었습니다.
지금 당장에 작은 문제라도 해결이 되는 것이 좋지 미래에 아무리 좋은 일이 일어난다고 해도 별 관심이 없었습니다.
지금 당장 몇 만원이라도 주는 것이 좋지 나중에 몇 십 만원 몇 백 만원 준다는 것은 별로 고맙지가 않습니다.
나중에 될 일에는 믿음이 없고 필요를 느끼지도 않습니다.
오늘날 우리나라 교회들도 다가올 미래에 관한 관심보다는 지금 현세에서의 삶을 강조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있을지도 모르고 가보지도 못한 영원한 나라에서 잘 살려고 하지 말고 지금 잘 행복하게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세상에서 지금 우리가 만나는 사람들끼리 서로 사랑하고 행복하게 멋지게 살아보자는 것입니다.
지금 이 세상에서 잘 살려고 하는 사람들은 예수님의 십자가가 별 소용이 없습니다.
예수님의 이웃사랑 정신이 필요한 것이지 예수님을 통한 죄 사함이나 구원이나 영생은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런 생각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교회 생활을 통하여 이 세상의 평안을 얻기를 원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예수님을 믿지 않는 불신에서 나온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교회에 오면서 오히려 예수님을 믿지 못하는 편에 서서 산다면 참으로 우스운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성도들을 위함입니다.
“주께서 너희를 위하여 예정하신” 예수님을 다시 보내주시겠다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것은 우리를 위하여 예정하신 예수님이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초림 하셨을 때, 즉 이 세상에 사람으로 오셨을 때도 우리를 위하여 오셨습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의 재림도 우리 성도들을 위해서 다시 오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시고 다시 부활하심으로 시작하신 그 구원의 역사를 완성시키시기 위해서 다시 오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다시 오시는 것이 아닙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최후의 심판을 위해서 오십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고 자기들 마음대로 살던 사람들 한 사람 한 사람을 다 그들이 이 세상에서 행한 행위대로 죄를 물으시고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기 위해서 오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믿고 있던 이 믿음이 진가를 발휘하는 날입니다.
이 믿음을 우습게 여기던 사람에게 청천벽력과 같은 날입니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떨어지는 것처럼 예기치 못했던 엄청난 일이 이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동안 믿음을 우습게 여기고 살 던 사람들이
다가올 미래를 대비하지 않고 이 세상의 행복만을 위해서 살던 사람들이
슬피 울면서 후회하면서 이를 가는 날이 될 것입니다.
그날 후회하지 않기 위해서
그날 기뻐 뛰며 춤을 추기 위해서 우리가 여기 모여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바른 믿음을 가지고 신앙생활을 잘하려고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다시 오실 예수님을 기다리며 사는 사람들에게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을 믿고 기다리는 사람들의 삶에 대해서 19절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회개하면서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윤리적으로 도덕적으로 잘 못한 것에 대한 회개도 있어야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꼭 해야 할 회개는 예수님에 대한 잘못된 우리의 생각을 고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지 않고 따르지 않고 이 세상의 행복을 바라는 그런 믿음을 가지고 사는 것을 회개해야 합니다.
돌이키면서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돌이키는 것도 이 세상의 잘못된 생활 습관에서 돌이켜야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 세상의 행복을 바라고 넓은 길 넓은 문으로 가던 우리의 삶의 길과 목적지를 바꾸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죄 씻음을 받아야 된다고 했습니다.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기 위한 죄 사함을 받아야 합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런 이 죄 사함은 이 세상의 삶에도 필요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매일 매일 죄를 회개하고 뉘우치지 않으면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장님으로 이 세상을 살게 되기 때문에 우리 마음의 죄를 매일 매일 씻어내야 합니다.
새롭게 되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우리의 영혼이 새로운 호흡을 함으로 날마다 하나님께 가까이 나가는 것을 말합니다.
성령으로 거듭나서 새로운 호흡을 하는 것이 다시 태어난 사람의 삶입니다.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
본문 21절에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바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라고 했습니다.
왜 우리가 이 세상의 행복에 소망을 두지 않고 주님 다시 오시는 날을 기다리면서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만물을 회복하시는 날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 때가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날에 가서야 만물이 원래처럼 회복이 될 것이고 만물이 회복이 되는 그날에 가서야 우리도 완전한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거룩한 선지자들의 입을 통하여 말씀하신바”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구원에 대한 큰 두 가지의 생각이 있습니다.
하나는 우리가 지금 살고 있는 이 세상에서의 구원을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이 세상이 우리 인간의 노력으로 인해서 좋은 세상이 될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만물의 회복이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인간들의 노력으로 이루어질 수 있다고 믿습니다.
반대로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통해 주시는 구원은 우리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완성이 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우리가 아무리 바르게 살아보려고 노력을 해도 이 세상은 죄가 인간의 마음을 지배하기 때문에 인간의 노력으로 불가능하다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이 두 가지의 견해가 다 나름대로 옳다고 여겨집니다.
부분적으로 서로가 공유하기도 하는 견해입니다.
그러나 양자를 택일 할 때 분명하게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구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뚜렷한 뜻이 무엇인가를 알고 그 하나님의 뜻을 따라가야 합니다.
성경은 철저하게 예수님의 재림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구원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을 하실 때 이 세상 만물이 회복이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영원 전부터 예정하신 것이고 선지자들을 통하여 계속해서 말씀하신 사실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은
성경이 인간의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역사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선택을 하시면 됩니다.
이 세상에서 살기 좋아하는 사람은 그 길을 가면 되고
이 세상에서 노력을 하면 잘 살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 길로 가면 됩니다.
다만 하나님의 예정과 계획과 뜻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천번만번 생각해도 우선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우리의 생각일 뿐입니다.
바로 눈앞만 볼 수 있는 우리의 생각일 뿐입니다.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이 어디에 계시냐고 찾을 때 그 예수님은 하늘에 계신다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부활하신 예수님이 승천하셔서 하늘에 계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성경이 그렇게 기록을 하고 있고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고백에도 그렇게 고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여기 이렇게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라고 하면서 “마땅히”라고 강조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왜 그것이 마땅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재림이 하나님이 정한 시간에 이루어질 것이고 그 때에 만물이 회복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라면 그 때까지 예수님께서 하늘에 계시는 것은 당연하다는 말씀일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이 말씀은 왜 예수님께서 부활 하시고 이 세상을 다스리시는 모든 권한을 가지셨음에도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 오시지 않으시고 세상에서 어려움을 당하는 우리를 도와주시지 않으시냐는 질문에 대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우리가 믿음을 가지게 하고 그 믿음을 훈련시키고 어떠한 시련이 오더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지고 예수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곳입니다.
행인이나 나그네와 같이 그저 지나가는 사람처럼 이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여기가 목적지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목적지를 향하여 지나가는 인생길일 뿐입니다.
이런 나그네길 여행길에 풍족하게 누리며 살겠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조금만 힘이 들고 뭐가 마음대로 안 된다고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내가 어려움을 당할 때 하나님은 어디에 계시냐고 원망을 합니다.
우리 예수님은 하늘에 계십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돌이켜 믿음을 가지게 될 때까지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다 회개하고 돌아오면 그 때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준비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마땅히 하실 일이라는 것입니다.
칼빈은 “하늘이 마땅히 그를 받아 두리라”고 한 본문을 주석하면서 “하늘이 아닌 다른 어느 곳에서도 그리스도를 찾아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신비주의자들은 예수님이 자기 곁에 와 계신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과 대화를 나누고 친하게 지낸다고 말합니다.
이단 교주들은 자기가 예수님이고 여기 세상에 비밀리에 와 있다고 주장합니다.
아무도 모르게 재림을 해서 활동하고 있다고 말합니다.
이런 속임수에 속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물을 회복하실 때까지는” 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셔서 회복하시는 것은 만물을 회복하시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이 타락을 했을 때 우리 인간도 벌을 받았고 자연만물들도 벌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본래 가졌던 완전함을 잃어버렸습니다.
만물들이 잃어버린 것들을 다 회복하게 될 것입니다.
특정한 사람만 회복 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이 다 회복이 될 것입니다.
육체가 불구자였던 사람들도 다 회복이 될 것입니다.
정신적인 불구자들도 다 회복이 될 것입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부족한 사람들도 다 회복이 될 것입니다.
못난 사람 어리석은 사람 무책임한 사람 모든 사람들이 다 완전하게 될 것입니다.
그 회복도 약간 나아지는 것이 아니라 완벽하게 회복이 될 것입니다.
예수님처럼 완전한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 부족함이 없는 완전한 사람들이 될 것이며 완전한 자연환경이 될 것입니다.
그 완전한 나라를 우리가 기다리면서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세상의 행복보다는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 누리는 참된 행복을 바라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영원한 우리 하나님나라가 시작 될 것입니다.
그 날에는 세상 모든 만물들이 완전하게 회복될 것이고 우리도 완전한 사람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좀 힘들다고 마음대로 되지 않는다고 실망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그 괴로움을 통하여 영원히 회복되는 완전한 하나님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