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13.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07)
본문 : 마 5:9
제목 :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will be called sons of God.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서로에게 경쟁자가 되고 적이 되고 원수가 되는 일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함께 더불어서 평화롭게 잘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세상은 서로 경쟁을 해야 되고 다른 사람을 이겨야 내가 살게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로 경쟁자가 되고 적이 되고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 평화에 관한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느 한 두 사람이 해결을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오랜 세월 동안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서 우리를 괴롭게 하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연간 예산이 300조원쯤 된다고 합니다.
그 중에 1/10인 약 30조원이 연간 국방예산입니다.
북한이라는 서로 싸워야 하는 적대국이 있기 때문에 쓰는 돈이 이렇게 어마어마합니다.
북한과 우리가 평화롭게 산다면 이 국방예산만 가지고도 모든 백성들이 먹고 사는 일은 해결이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고소공화국이라고 부릅니다.
연간 60만 건 정도가 고소고발 사건으로 접수가 된다고 합니다.
그 중에 60%정도는 정확한 근거가 없어서 기소도 되지 못하는 엉터리 고발이고 1%정도만 구속이 되는 사건이라고 합니다.
고소고발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청주의 한 70대 노인은 192명을 고소했고 이 모 씨라는 사람은 누나와 조카를 29차례나 고소를 하다가 무고혐의로 자신이 구속됐다고 합니다.
이 고소고발 건수를 인구비례로 하면 일본 사람의 155배라고 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웬만하면 봐주는데 우리나라 사람은 무조건 고발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것이 옛날에 비하면 엄청나게 잘 삽니다.
이 좋은 세상에 살면서도 옛날보다 불행하다고 생각이 되는 것은 잘 살면 잘 살수록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서로에게 경쟁자가 되어야 하고 서로 적군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잘 살면서도 늘 불안하고 평화롭지 못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이 평화에 대한 문제일 것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은 이런 의미에서 참 중요한 것입니다.
1.예수님의 화평사역
1)예수님의 화평사역의 핵심은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사역입니다.
우리 인생에게 가장 큰 잘못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만물의 영장인 사람으로 살도록 만들어 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섬기며 살기보다는 하나님과 경쟁자가 되고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하다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서 이 세상을 살게 된 것이 제일 큰 불행입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고 이렇게 늙고 병들고 죽고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과의 원수관계를 청산하고 하나님과 다시 평화를 누리게 하려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이사야 9:6)
예수님은 “평강의 왕”으로 불리게 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원수에서 평강을 누리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14절 이하에는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라고 하셨습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2:14-18)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낮고 천한 인간의 몸으로 오시고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내어주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원수관계를 청산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2)예수님의 화평사역의 원칙은 인간 본연의 위치로 복귀입니다.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 인간이 하나님과 화해를 하기 위해서는 죄 문제가 우선 해결이 되어야 합니다.
죄인인 인간이 그대로 회개도 없이 용서도 받지 못한 채로 하나님과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평케 하시는 것도 이 원칙이 적용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 되고 인간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 속에는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에 의지함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놀라운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만 하나님과 가까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없는 채로 즉 인간 본연의 위치로 가지 않은 채로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길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평화의 사역 화해의 사역은 이 십자가를 통한 사역임을 반드시 알고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이 믿음을 견고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3)모든 평화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평화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평강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평화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평강을 누리면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모든 평화가 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평화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장 34절 이하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 10:34-36)라고 하셨습니다.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오셨다고 하십니다.
성도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기 위해서 때로는 검을 가지고 싸워야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라고 해도 집안 식구라고 해도 예수님을 믿지 않을 때 그 믿음이 바른 믿음이 되지 못할 때 그들과 평화롭게 지내야 되는 것이 아니라 검을 들고 말씀을 들고 의를 위해서 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요즘 종교다원주의자들이 불교나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 그러니 그들과 원수처럼 지내지 말고 서로 화해하고 평화롭게 지내자고 주장을 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진리를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여의도에 제일 큰 교회 목사라는 사람이 동국대 강연에서 '불교와 기독교는 똑 같다. 부처님의 자비와 예수님의 사랑이 같다는 것이다'라고 하여 중들의 박수를 받았답니다.
우리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해서 그들과 싸울 필요가 없이 그냥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런 발언을 했을 것입니다.
만약에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다면 그 사람은 개신교 목사가 아닙니다.
그저 종교인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들과 원수처럼 전쟁을 하면서 싸울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그들과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한 후에 인간 본연의 위치를 찾게 한 다음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울에 유명한 교회 목사님이 이 본문으로 설교를 하면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고 했으니까 이 두 사람이 정상회담을 하면서 손을 잡고 화해를 했기 때문에 둘 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큰 교회 담임목사고 설교도 잘 하는 목사이고 책도 많이 쓴 목사가 이런 말을 하니까 참 답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시고 예수님께서도 이 평화를 주려고 이 세상에 오셨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평화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검을 들고 싸워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 대상이 가까운 가족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2.우리의 평화사역
예수님께서도 화평하게 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서 화평하게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는 자의 특징은 화평하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가 보면 여러 사람들을 만납니다.
어떤 사람은 가는 곳마다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조용하던 세상에 그 사람만 나타나면 문제가 제기 되고 싸움이 일어납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문제가 있다가도 이 사람만 나타나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됩니다.
이 사람을 우리는 피스메이커(peacemaker)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화평하게 하는 자를 영어성경에서 피스메이커(peacemakers)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1)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 충성도를 높이고 뭔가 업적을 많이 남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은혜를 많이 받았으니까 우리도 뭔가 은혜를 갚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경쟁을 해서 뭔가 좀 더 많이 하고 잘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은혜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애 쓰는 것을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바르게 살고 충성을 다 하는 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런 노력을 통하여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바르게 받지 못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하나님과 더 친밀해지고 하나님과 더 화평을 누리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더 튼튼히 붙잡는 일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님을 늘 고백하고 나는 정말로 부족한 죄인임을 더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나를 하나님께로 이끌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 십자가를 믿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더 가난한 자가 되어서 겸손하게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더 철저하게 애통해 하시기 바랍니다.
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더 평화를 누리는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다른 사람들도 하나님과 화평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계명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고 그 다음이 우리 이웃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가 라고 했을 때 우리의 도움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이웃의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유일 한 것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진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가 되게 해 주는 일이야 말로 그 사람에게 가장 큰 일일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고 복음을 전하고 하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평화를 누림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화평을 이루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군가와 원수가 된 상태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예물을 두고 가서 화해하고 난 후에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인간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서로 평화롭게 사는 것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서로 미워하고 서로 원수관계를 이루고 사는 것처럼 힘이 드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틈만 있으면 나의 잘못을 들추어내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로 피곤할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웬만하면 원수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적을 만들고 경쟁자를 만들어서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사는 것처럼 힘이 드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텔레비전 뉴스를 보니까 어떤 사람이 차를 몰고 가다가 시비가 붙었습니다.
한 사람이 차를 난폭하게 몰고 가니까 뒤 따라 가던 사람이 그냥 좀 바쁜가보다 하고 갔으면 될 것인데 따라가서 시비를 붙습니다.
아마 삿대질을 하면서 욕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난폭운전을 한 사람이 화를 참지 못하고 차를 몰고 그 사람을 치고 도망을 가 버렸습니다.
정말로 어떤 사람은 혼을 내 주고 싶을 정도로 난폭운전을 하기도 하고 나쁜 짓을 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조금 참고 지나가면 서로 별 일이 없을 것인데 가서 시비를 하고 싸워서 점점 일을 크게 만드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조금만 참고 이해를 하고 서로 화평을 이루면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서로 미안해하고 그 사람도 서로를 이해하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원수관계가 된 것은 죄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도 이런 죄 때문에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지나친 욕심 그로인한 이기심 교만 자랑 등의 죄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시기의 대상이 되고 질투 속에서 서로 견제하고 싸우고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죄악 된 속성들을 버리고 더 겸손하고 더 이타적이고 더 많이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앎으로 서로 평화를 누리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화평하게 하는 자가 받는 복
화평하게 하는 자가 받는 복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피스메이커가 되어서 사람들과 평화를 누리고 살면 사람들이 아 저 사람들은 정말 하나님의 자녀구나 라는 인정을 받으면서 칭찬도 받으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일부 잘못된 교회들이 교회 안에서 서로 싸웁니다.
교회 안에서 교회법으로 싸우다가 안 되니까 세상법정에까지 가서 서로 싸웁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비웃습니다.
저런 것들이 무슨 성도고 하나님의 자녀냐고 비웃습니다.
이런 비웃음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교회 안에서 성도들 간에는 정말로 서로 화평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란 단순히 사람들에게 그런 인정을 받는 정도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존엄과 영예와 신분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헬라어에서 아들이라는 단어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어린아이 혹은 자녀를 가리키는 테크논(τεκνον)이라는 단어와 자손 혹은 아들이라고 번역하는 휘오스(υιοs)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휘오스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이 말은 특별히 히브리 문화권에서 상속자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아들로서의 명예와 권세를 가진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에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는 것은 엄청난 행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은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호와 인도를 받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가서 거기에서 참된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천국을 여러 가지 좋은 모양으로 소개를 합니다.
그 중에 가장 좋은 것은 이 평화로운 나라라는 점이 정말 좋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경쟁이 없고 싸움이 없고 시기나 질투가 없고 평화롭게 사는 나라 그 나라가 우리가 받게 될 영원한 하나님나라 천국입니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하나님 나라의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11:6-9)
꼭 이런 모습은 아니겠지만 중요한 것은 천국에는 이런 평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평화의 나라를 우리가 상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평화로운 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화평하게 하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평화를 귀하게 생각하고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평화를 위해서 노력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위대한 신분을 주시고 그 신분에 맞는 귀한 것을 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본문 : 마 5:9
제목 : 화평하게 하는 자의 복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will be called sons of God.
사람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가장 큰 문제가 되는 것은 서로에게 경쟁자가 되고 적이 되고 원수가 되는 일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함께 더불어서 평화롭게 잘 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세상은 서로 경쟁을 해야 되고 다른 사람을 이겨야 내가 살게 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로 경쟁자가 되고 적이 되고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 평화에 관한 문제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어느 한 두 사람이 해결을 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닙니다.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이래로 오랜 세월 동안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해결되지 않은 채로 남아서 우리를 괴롭게 하는 아주 중요한 문제입니다.
우리나라 연간 예산이 300조원쯤 된다고 합니다.
그 중에 1/10인 약 30조원이 연간 국방예산입니다.
북한이라는 서로 싸워야 하는 적대국이 있기 때문에 쓰는 돈이 이렇게 어마어마합니다.
북한과 우리가 평화롭게 산다면 이 국방예산만 가지고도 모든 백성들이 먹고 사는 일은 해결이 될 것입니다.
우리나라를 고소공화국이라고 부릅니다.
연간 60만 건 정도가 고소고발 사건으로 접수가 된다고 합니다.
그 중에 60%정도는 정확한 근거가 없어서 기소도 되지 못하는 엉터리 고발이고 1%정도만 구속이 되는 사건이라고 합니다.
고소고발만 전문으로 하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청주의 한 70대 노인은 192명을 고소했고 이 모 씨라는 사람은 누나와 조카를 29차례나 고소를 하다가 무고혐의로 자신이 구속됐다고 합니다.
이 고소고발 건수를 인구비례로 하면 일본 사람의 155배라고 합니다.
일본 사람들은 웬만하면 봐주는데 우리나라 사람은 무조건 고발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사는 것이 옛날에 비하면 엄청나게 잘 삽니다.
이 좋은 세상에 살면서도 옛날보다 불행하다고 생각이 되는 것은 잘 살면 잘 살수록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들이서로에게 경쟁자가 되어야 하고 서로 적군이 되어야 하기 때문에 잘 살면서도 늘 불안하고 평화롭지 못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러한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이 이 평화에 대한 문제일 것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가 복이 있다는 말은 이런 의미에서 참 중요한 것입니다.
1.예수님의 화평사역
1)예수님의 화평사역의 핵심은 하나님과 인간의 화해사역입니다.
우리 인생에게 가장 큰 잘못은 하나님과 원수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 세상에 만물의 영장인 사람으로 살도록 만들어 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그 하나님을 섬기며 살기보다는 하나님과 경쟁자가 되고 하나님처럼 높아지려고 하다가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서 이 세상을 살게 된 것이 제일 큰 불행입니다.
그 결과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서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고 이렇게 늙고 병들고 죽고 영원한 형벌을 받아야 하는 신세가 된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과의 원수관계를 청산하고 하나님과 다시 평화를 누리게 하려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래서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님의 탄생을 예언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이는 한 아기가 우리에게 났고 한 아들을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는데 그의 어깨에는 정사를 메었고 그의 이름은 기묘자라, 모사라, 전능하신 하나님이라, 영존하시는 아버지라, 평강의 왕이라 할 것임이라”(이사야 9:6)
예수님은 “평강의 왕”으로 불리게 될 것임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원수에서 평강을 누리는 사람으로 만들어 주신다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2:14절 이하에는 “그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 둘로 하나를 만드사 원수 된 것 곧 중간에 막힌 담을 자기 육체로 허시고 법조문으로 된 계명의 율법을 폐하셨으니 이는 이 둘로 자기 안에서 한 새 사람을 지어 화평하게 하시고” 라고 하셨습니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 원수 된 것을 십자가로 소멸하시고 또 오셔서 먼 데 있는 너희에게 평안을 전하시고 가까운 데 있는 자들에게 평안을 전하셨으니 이는 그로 말미암아 우리 둘이 한 성령 안에서 아버지께 나아감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엡2:14-18)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낮고 천한 인간의 몸으로 오시고 자신의 몸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내어주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원수관계를 청산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2)예수님의 화평사역의 원칙은 인간 본연의 위치로 복귀입니다.
죄인인 인간이 하나님과 원수가 된 인간이 하나님과 화해를 하기 위해서는 죄 문제가 우선 해결이 되어야 합니다.
죄인인 인간이 그대로 회개도 없이 용서도 받지 못한 채로 하나님과 평화를 이룰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과 우리 사이를 화평케 하시는 것도 이 원칙이 적용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을 중요하게 여기는 것도 이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 되고 인간 본연의 위치로 돌아가게 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 속에는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고 오직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공로에 의지함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놀라운 능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먼저 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이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만 하나님과 가까이 나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없는 채로 즉 인간 본연의 위치로 가지 않은 채로 하나님을 만난다는 것은 죽음을 자초하는 길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평화의 사역 화해의 사역은 이 십자가를 통한 사역임을 반드시 알고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이 믿음을 견고하게 해야 할 것입니다.
3)모든 평화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평화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평강의 왕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평화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평강을 누리면서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모든 평화가 다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평화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10장 34절 이하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 식구리라”(마 10:34-36)라고 하셨습니다.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오셨다고 하십니다.
성도가 되기 위해서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기 위해서 때로는 검을 가지고 싸워야 할 때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부모라고 해도 집안 식구라고 해도 예수님을 믿지 않을 때 그 믿음이 바른 믿음이 되지 못할 때 그들과 평화롭게 지내야 되는 것이 아니라 검을 들고 말씀을 들고 의를 위해서 싸워야 된다는 것입니다.
요즘 종교다원주의자들이 불교나 타 종교에도 구원이 있다 그러니 그들과 원수처럼 지내지 말고 서로 화해하고 평화롭게 지내자고 주장을 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진리를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여의도에 제일 큰 교회 목사라는 사람이 동국대 강연에서 '불교와 기독교는 똑 같다. 부처님의 자비와 예수님의 사랑이 같다는 것이다'라고 하여 중들의 박수를 받았답니다.
우리만 구원이 있다고 주장해서 그들과 싸울 필요가 없이 그냥 잘 지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그런 발언을 했을 것입니다.
만약에 진심으로 그렇게 말했다면 그 사람은 개신교 목사가 아닙니다.
그저 종교인일 뿐입니다.
우리는 그들과 원수처럼 전쟁을 하면서 싸울 필요는 없을 것입니다.
다만 그들과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는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한 후에 인간 본연의 위치를 찾게 한 다음에 하나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서울에 유명한 교회 목사님이 이 본문으로 설교를 하면서 김대중 대통령과 김정일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고 했으니까 이 두 사람이 정상회담을 하면서 손을 잡고 화해를 했기 때문에 둘 다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입니다.
큰 교회 담임목사고 설교도 잘 하는 목사이고 책도 많이 쓴 목사가 이런 말을 하니까 참 답답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평강을 주시기를 원하시고 예수님께서도 이 평화를 주려고 이 세상에 오셨지만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평화는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때로는 검을 들고 싸워야 할 때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하고 그 대상이 가까운 가족이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2.우리의 평화사역
예수님께서도 화평하게 하는 일을 하셨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본받아서 화평하게 하는 일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일컬음을 받는 자의 특징은 화평하게 하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다가 보면 여러 사람들을 만납니다.
어떤 사람은 가는 곳마다 문제를 만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조용하던 세상에 그 사람만 나타나면 문제가 제기 되고 싸움이 일어납니다.
반대로 어떤 사람은 문제가 있다가도 이 사람만 나타나면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됩니다.
이 사람을 우리는 피스메이커(peacemaker)라고 합니다.
오늘 본문의 화평하게 하는 자를 영어성경에서 피스메이커(peacemakers)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1)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기 위해서 충성도를 높이고 뭔가 업적을 많이 남겨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은혜를 많이 받았으니까 우리도 뭔가 은혜를 갚기 위해서 노력을 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사람들과 경쟁을 해서 뭔가 좀 더 많이 하고 잘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은혜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갚기 위해서 노력을 하고 애 쓰는 것을 잘못됐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최선을 다하여 바르게 살고 충성을 다 하는 일에 게으르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생각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그런 노력을 통하여 하나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하나님의 은혜를 바르게 받지 못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더 가까워지고 하나님과 더 친밀해지고 하나님과 더 화평을 누리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더 튼튼히 붙잡는 일임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나는 아무것도 아님을 늘 고백하고 나는 정말로 부족한 죄인임을 더 고백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나를 하나님께로 이끌 수밖에 없다는 것을 명심하고 그 십자가를 믿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더 가난한 자가 되어서 겸손하게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더 철저하게 애통해 하시기 바랍니다.
더 의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더 평화를 누리는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다른 사람들도 하나님과 화평하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에게 주어진 가장 큰 계명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고 그 다음이 우리 이웃의 사람들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이웃이 누구인가 라고 했을 때 우리의 도움을 간절히 기다리는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이웃의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는 유일 한 것이면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가 가진 복음을 전하여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는 사람들을 하나님과 화해시키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에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녀가 되게 해 주는 일이야 말로 그 사람에게 가장 큰 일일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하고 복음을 전하고 하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평화를 누림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는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사람들과의 관계에서도 화평을 이루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려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 원망들을 만한 일이 있는 것이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5:23-24) 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누군가와 원수가 된 상태로 하나님 앞에 나와서 예배를 드리는 것을 원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예물을 두고 가서 화해하고 난 후에 예배를 드리라고 말씀을 하시는 것입니다.
그만큼 우리 인간들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서로 평화롭게 사는 것을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살면서 서로 미워하고 서로 원수관계를 이루고 사는 것처럼 힘이 드는 것은 없을 것입니다.
틈만 있으면 나의 잘못을 들추어내려고 하는 사람이 있다면 정말로 피곤할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웬만하면 원수를 만들지 말아야 합니다.
적을 만들고 경쟁자를 만들어서 서로 시기하고 질투하고 사는 것처럼 힘이 드는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텔레비전 뉴스를 보니까 어떤 사람이 차를 몰고 가다가 시비가 붙었습니다.
한 사람이 차를 난폭하게 몰고 가니까 뒤 따라 가던 사람이 그냥 좀 바쁜가보다 하고 갔으면 될 것인데 따라가서 시비를 붙습니다.
아마 삿대질을 하면서 욕을 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난폭운전을 한 사람이 화를 참지 못하고 차를 몰고 그 사람을 치고 도망을 가 버렸습니다.
정말로 어떤 사람은 혼을 내 주고 싶을 정도로 난폭운전을 하기도 하고 나쁜 짓을 하기도 합니다.
그럴 때 조금 참고 지나가면 서로 별 일이 없을 것인데 가서 시비를 하고 싸워서 점점 일을 크게 만드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조금만 참고 이해를 하고 서로 화평을 이루면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서로 미안해하고 그 사람도 서로를 이해하기도 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과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원수관계가 된 것은 죄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사람과 사람과의 관계도 이런 죄 때문에 평화를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있는 지나친 욕심 그로인한 이기심 교만 자랑 등의 죄 때문에 다른 사람들과 시기의 대상이 되고 질투 속에서 서로 견제하고 싸우고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이런 죄악 된 속성들을 버리고 더 겸손하고 더 이타적이고 더 많이 다른 사람들을 배려할 줄 앎으로 서로 평화를 누리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3.화평하게 하는 자가 받는 복
화평하게 하는 자가 받는 복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피스메이커가 되어서 사람들과 평화를 누리고 살면 사람들이 아 저 사람들은 정말 하나님의 자녀구나 라는 인정을 받으면서 칭찬도 받으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날 일부 잘못된 교회들이 교회 안에서 서로 싸웁니다.
교회 안에서 교회법으로 싸우다가 안 되니까 세상법정에까지 가서 서로 싸웁니다.
이런 모습을 보고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비웃습니다.
저런 것들이 무슨 성도고 하나님의 자녀냐고 비웃습니다.
이런 비웃음을 받지 않기 위해서라도 교회 안에서 성도들 간에는 정말로 서로 화평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아들이란 단순히 사람들에게 그런 인정을 받는 정도를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아들의 존엄과 영예와 신분을 가진다는 것입니다.
헬라어에서 아들이라는 단어가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어린아이 혹은 자녀를 가리키는 테크논(τεκνον)이라는 단어와 자손 혹은 아들이라고 번역하는 휘오스(υιοs)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휘오스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이 말은 특별히 히브리 문화권에서 상속자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는 아들로서의 명예와 권세를 가진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 때에도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는 것은 엄청난 행복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라를 상속 받은 자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특별하신 보호와 인도를 받게 됩니다.
뿐만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가서 거기에서 참된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천국을 여러 가지 좋은 모양으로 소개를 합니다.
그 중에 가장 좋은 것은 이 평화로운 나라라는 점이 정말 좋은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경쟁이 없고 싸움이 없고 시기나 질투가 없고 평화롭게 사는 나라 그 나라가 우리가 받게 될 영원한 하나님나라 천국입니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며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어린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있어 어린 아이에게 끌리며
젖 먹는 아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며
젖 뗀 어린 아이가 독사의 굴에 손을 넣을 것이라
하나님 나라의 모든 곳에서 해 됨도 없고 상함도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사11:6-9)
꼭 이런 모습은 아니겠지만 중요한 것은 천국에는 이런 평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 평화의 나라를 우리가 상속하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 평화로운 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릴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화평하게 하는 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그 평화를 귀하게 생각하고 하나님과 사람들과의 평화를 위해서 노력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위대한 신분을 주시고 그 신분에 맞는 귀한 것을 주신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