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4. 10.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14)
본문 : 마 5:21-22
제목 : 살인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옛날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어떤 바보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그에게 외갓집에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보내면서 외할아버지가 뭘 주시면 잃어버리지 않게 가슴에 꼭 안고 와야 한다고 당부를 해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외할아버지께 염소새끼 한 마리를 주시면서 가지고 가서 잘 키워서 생활에 보태 쓰라고 했습니다. 그 바보가 염소를 어떻게 가지고 왔을까요? 어머니 말씀대로 가슴에 꼭 안고 왔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끌고 오면서 엄마 원망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얼마 후에 또 외갓집에를 보냅니다. 이번에도 그런 것을 주시면 안고 오지 말고 새끼줄로 목을 묶어서 끌고 오면 된다고 당부를 해서 보냈습니다.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쌀을 한 자루 주셨습니다. 쌀을 어떻게 가지고 왔을까요? 어머님의 말씀을 따라서 새끼줄로 쌀자루 목을 묶어서 질질 끌고 왔습니다. 자루가 터져서 쌀이 다 흐르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집에 오니까 쌀은 한 톨도 남아있지 않았답니다.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입니다. 정말로 미련한 바보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니까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그렇게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백성들이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잘 살게 하려고 계명들을 만들어 주셨는데 꼭 앞에 나오는 바보처럼 그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잘 못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의 말씀을 통해서 하시고자 하시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들이 잘 못 알고 있는 것을 바로잡아 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 말씀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살인을 하지 말라고 하셨는지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옛 사람에게 말한 살인에 관한 교훈
본문 21절 말씀에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라고 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십계명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20장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십계명이 기록되어 있는데 여섯 번째 계명이 “살인하지 말라‘라는 계명입니다.
살인을 하면 심판을 받는다는 말은 십계명에는 없지만 다른 성경에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창9:6)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출21:12)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죽인 사람은 그 사람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고의가 아닌 과실로 사람을 죽인 사람은 도피성으로 피해서 죽음을 면하게 하는 제도를 만들어 주셨지만 고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은 반드시 그 사람도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것이 구약의 율법입니다.
아담 이후의 최초의 죄에 대한 기록이 이 살인죄입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벌을 받은 사건을 성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인은 그 죄로 인해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죄를 짓고 쫓겨나는 가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가인을 죽인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라고 하시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일러주셨습니다.
죄 때문에 지상의 모든 사람이 형벌을 받아서 죽임을 당한 노아홍수 사건 이후에도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겨야 된다고 당부를 하시면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생명은 참 중요한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각 사람에게 하나밖에 없는 것이고 한 번 죽으면 이 세상에 다시 살 수 없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16:26).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동물들이나 식물에도 생명이 있지만 그런 생명들을 인간의 생명처럼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우리 인간의 생명은 특별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만드실 때는 특별하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을 특별히 사랑을 하시고 보호하십니다.
요즘 애완동물들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어서 함부로 말을 못합니다.
그러나 개나 고양이나 짐승은 짐승일 뿐입니다.
아무리 개를 예뻐하고 잘 훈련시키고 그래서 주인의 목숨까지 구했다고 해도 개는 개일 뿐 거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명은 없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미움을 받고 천대를 받고 별로 하는 일도 없는 인간일지라도 인간은 귀한 생명을 가진 인간입니다.
그 뒤에는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잘나고 훌륭한 일을 많이 한 사람만 귀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별 볼일이 없는 사람들은 천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누구나가 다 귀한 생명입니다.
오히려 가난한 자와 애통하는 자를 연약한자 못난 자를 더 큰 관심을 가지시고 바라보시며 그들을 사랑하시고 위로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생명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살인을 금한 계명은 너무나 당연한 계명일 것입니다.
지금도 모든 나라 모든 국법이 금하고 있고 제일 큰 죄로 여기는 것이 이 살인에 대한 계명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생각할 때 살인죄는 정말 큰 죄인데 그런 당연한 것을 계명에 넣었을 까? 라는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그러나 십계명을 주실 당시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까지도 사람들은 사람의 생명을 그렇게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종들이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생명은 귀하게 여기지 않고 파리 목숨처럼 쉽게 죽이곤 했습니다.
전쟁에 나가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조금 기분이 나쁘다고 힘이 있는 사람들이 힘없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특별히 그들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 속에 들어 있는 이웃사랑이라는 큰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목숨뿐만 아니라 인격을 서로 존중하고 아끼고 사랑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귀한 뜻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2.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살인에 관한 재해석
본문 22절 말씀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라고 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신 참 뜻이 무엇인지를 예수님께서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인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꼭 생명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을 가지고 있는 연격에 관한 것까지도 계명에 포함이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교훈은 단순히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것 보다는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그 생명과 그 생명이 가지고 있는 인격의 소중함을 알고 그 생명을 가진 사람들을 서로 존중하게 여기며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습니다.
화를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꼭 사람의 목숨을 끊는 것만을 살인이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형제에게 노하는 것도 살인과 같다는 것입니다.
살인은 분노에서 시작에 되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부터 금해야 살인하는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형제라는 말을 사용하실 때는 대부분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된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합니다.
물론 우리가 원수까지 사랑해야 할 사람이라고 하시기 때문에 살인죄를 형제에게만 적용시켜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가까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 된 우리 성도들로부터 자주 만나는 가까운 이웃부터 모든 사람들에게 까지 사랑이 실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보시는 것은 인간의 생명이고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명을 귀하게 보십니다.
그런 특별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 성도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특별하게 지으신 생명을 가지고 있고 또 더 특별하게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또 다른 사람들보다도 부족하여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에게 화를 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냥 화를 내지는 않습니다.
상대방이 화를 낼 일을 하니까 화가 나는 것입니다.
나를 화나게 하고 나의 성질을 돋우게 한다고 해서 화를 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화를 낼 때 고통을 당하는 상대방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화를 낼 때 상대방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성질을 잘 내는 사람과 있으면 늘 불안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의 행위를 본받아 네 영혼을 올무에 빠뜨릴까 두려움이니라.”(잠 22: 24-25).라고 했습니다.
금방 금방 화를 내는 사람도 문제지만 정말로 문제는 가슴에 화를 안고 사는 사람이 더 큰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화를 내지만 금방 풀어버리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금방 화를 표출하지는 않지만 가슴에 화를 품고 억누르면서 삽니다.
그 분노가 자꾸 쌓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또 언제 그 분노가 표출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4:26-27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라고 했습니다.
화가 나면 해가 지도록 그 분을 품고 있지 말고 풀어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분노를 가슴에 품고 있으면 마귀가 틈을 타고 들어와서 죄를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2)형제에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됩니다.
‘라가’라는 단어는 일종의 욕이라고 합니다.
아람어 '레카'를 헬라어로 음역한 것으로 상대의 인격을 매우 경멸할 때 사용하던 일종의 욕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말로 바보, 돌대가리 정도의 욕입니다.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에게 “라가”라고 욕을 하는 것 그 자체가 살인과 다름이 없다는 말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아예 입에 욕을 달고 삽니다.
그 뜻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그냥 나쁜 욕을 합니다.
욕을 하는 것은 상대방의 인격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나쁜 행동이며 다 나아가서 살인죄에 속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요즘은 욕을 인터넷에서 합니다.
인터넷을 해보면 거기 ‘악풀’이라는 글들이 많이 달려 있습니다.
“악의적인 댓글”을 말합니다.
인터넷 블로그나 홈 페이지에 리플이라는 댓글을 달게 됩니다.
이 때 사람들이 누군지 모르니까 마음대로 욕설을 퍼붓습니다.
인격 모독적인 비방이나 인신공격으로 마음에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주는 글들이 올라옵니다.
이런 악의적인 댓글 때문에 자살을 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욕들이 살인을 하는 무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3)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됩니다.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시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형제를 무시하는 것 그 자체가 살인과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미련한 놈이라는 말은 바보짓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상대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상대방을 무시하고 나아가 경멸하는 말입니다.
미련한 짓을 한 사람에게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말을 듣는 사람은 아주 큰 모욕감을 느끼게 됩니다.
상대방에게 무시당하고 모욕을 당하는 일은 그 당하는 사람에게 큰 상처가 되는 것입니다.
며칠 전 신문에 보니까 어떤 경찰간부가 검찰에게 일을 잘 처리 못했다고 뺨을 맞고 그 모멸감 때문에 자살을 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검찰이라고 우쭐대면서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심한 모욕감을 준 것입니다.
4)심판, 공회에 잡힘, 지옥 불
형제에게 화를 내거나 라가라고 욕을 하거나 형제를 미련한 놈이라고 무시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되고 공회에 잡히게 되고 지옥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3가지의 사형에 관한 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①교수형은 재판에 의해 부과되었고, ②돌로 치는 형은 산헤드린 공의회에 의해, ③ 화형은 예외적인 특별한 경우에 "힌놈의 아들들의 골짜기에서"집행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심판을 받는다는 말과 공회에 잡힌다는 말, 그리고 지옥 불에 들어간다는 말씀은 이런 사형 제도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 되는 과정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죄이며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며 영원한 지옥과 연결되는 악한 죄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죄는 결국 우리를 지옥으로 가게 하는 큰 죄악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과거에 유대인들은 욕을 하든지 무시를 하든지 분을 품든지 살인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특별한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의 인격자체를 무시하는 것도 살인죄에 해당하는 나쁜 짓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3.오늘날 우리가 받아야 할 교훈
우리는 이 말씀을 대하면서 살인을 하지 말아야 되겠다.
더 나아가서는 사람들에게 분노하고 욕하고 미련하다고 모욕을 주는 일도 살인죄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되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어떻습니까?
사람들에게 성질을 내지도 않고 욕도 하지 않고 무시하지도 않고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성질내고 욕하고 무시하고 사는 사람들이 다 재판을 받고 잡혀가고 지옥에 간다고 하면 여러분은 그렇게 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보통 목사님들은 오늘 본문을 설교하면서 여기까지만 말하고 마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별로 근심을 하지 않습니다.
성질내고 욕하고 무시하는 자마다 다 지옥 불에 들어간다고 하는데도 근심도 없이 걱정도 없이 그냥 늠름하게 돌아갑니다.
아예 성경말씀까지 목사 설교까지 완전히 무시해버리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지 안 듣는지 내용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잘들 넘어갑니다.
저는 가끔 설교를 준비하면서 아 이 말씀은 아무개 성도가 들으면 시험을 받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주 조심스럽게 설교를 하는데 그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갑니다.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도 깨닫지 못했던 사실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약성경에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자주 들었습니다.
살인하는 자는 반드시 자신도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을 늘 들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알지 못한 것은 하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 속에 가지고 계시는 그 참 뜻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살인은 꼭 직접 남의 생명을 끊은 것으로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계명이 가지고 있는 이웃 사랑의 뜻을 알지 못해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 앞에서 사람들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화를 내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 살인죄에 해당하는 나쁜 짓을 하면서도 당당하게 저희들은 어려서부터 계명을 다 지켰습니다. 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율법 앞에서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하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물론 그 율법을 지킴으로 서로 사랑하면서 살라는 뜻도 있지만 그 율법을 지켜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고 모든 인생들은 그래서 사형을 받을 죄인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일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 됩니다.
그 십자가가 없었다면 나는 영락없이 잡혀가서 재판을 받고 그 벌로 영원한 지옥 불에 들어가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교훈 앞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도 그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살 수가 없습니다.
노력은 하겠지만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게 고백하고 십자가를 붙드는 것이 계명 앞에서 우리가 할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인은 우리가 재판을 받고 우리도 죽임을 당해야만 하는 큰 죄악입니다.
살인이라고 해서 꼭 남의 목숨을 끊는 것만 살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형제들에게 화를 내고 욕을 하고 멸시하는 것도 다 실인 죄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형제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려고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서로 존경하고 좋은 말로 위로하고 서로를 높여주는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더 절실한 것은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죄에서 날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지신 그 십자가를 더 사랑하고 의지해야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본문 : 마 5:21-22
제목 : 살인에 대한 예수님의 교훈.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옛날이야기 중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옛날에 어떤 바보가 살고 있었습니다. 어머니가 그에게 외갓집에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보내면서 외할아버지가 뭘 주시면 잃어버리지 않게 가슴에 꼭 안고 와야 한다고 당부를 해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외할아버지께 염소새끼 한 마리를 주시면서 가지고 가서 잘 키워서 생활에 보태 쓰라고 했습니다. 그 바보가 염소를 어떻게 가지고 왔을까요? 어머니 말씀대로 가슴에 꼭 안고 왔습니다.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끌고 오면서 엄마 원망도 많이 했을 것입니다.
얼마 후에 또 외갓집에를 보냅니다. 이번에도 그런 것을 주시면 안고 오지 말고 새끼줄로 목을 묶어서 끌고 오면 된다고 당부를 해서 보냈습니다. 이번에는 할아버지가 쌀을 한 자루 주셨습니다. 쌀을 어떻게 가지고 왔을까요? 어머님의 말씀을 따라서 새끼줄로 쌀자루 목을 묶어서 질질 끌고 왔습니다. 자루가 터져서 쌀이 다 흐르는지도 모르고 그렇게 집에 오니까 쌀은 한 톨도 남아있지 않았답니다.
어처구니없는 이야기입니다. 정말로 미련한 바보들이나 하는 짓입니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니까 예수님 당시의 유대인들이 그렇게 하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백성들이 서로 사랑하며 행복하게 잘 살게 하려고 계명들을 만들어 주셨는데 꼭 앞에 나오는 바보처럼 그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고 잘 못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의 말씀을 통해서 하시고자 하시는 것이 바로 그런 것입니다.
그들이 잘 못 알고 있는 것을 바로잡아 주시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그 첫 번째 말씀이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에 대한 말씀입니다.
왜 하나님께서 살인을 하지 말라고 하셨는지를 바르게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옛 사람에게 말한 살인에 관한 교훈
본문 21절 말씀에 “옛 사람에게 말한바 살인하지 말라 누구든지 살인하면 심판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라고 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십계명에 기록된 말씀입니다.
출애굽기 20장에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십계명이 기록되어 있는데 여섯 번째 계명이 “살인하지 말라‘라는 계명입니다.
살인을 하면 심판을 받는다는 말은 십계명에는 없지만 다른 성경에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피를 흘리면 그 사람의 피도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으셨음이니라.”(창9:6)
“사람을 쳐 죽인 자는 반드시 죽일 것이나”(출21:12)라고 했습니다.
다른 사람을 죽인 사람은 그 사람도 사형에 처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고의가 아닌 과실로 사람을 죽인 사람은 도피성으로 피해서 죽음을 면하게 하는 제도를 만들어 주셨지만 고의로 사람을 죽인 사람은 반드시 그 사람도 사형에 처해야 한다는 것이 구약의 율법입니다.
아담 이후의 최초의 죄에 대한 기록이 이 살인죄입니다.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고 벌을 받은 사건을 성경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가인은 그 죄로 인해서 아담과 하와가 죄를 짓고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것처럼 하나님 앞에서 쫓겨나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죄를 짓고 쫓겨나는 가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가인을 죽인 자는 벌을 칠 배나 받으리라.” 라고 하시면서 생명의 소중함을 일러주셨습니다.
죄 때문에 지상의 모든 사람이 형벌을 받아서 죽임을 당한 노아홍수 사건 이후에도 하나님께서 사람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겨야 된다고 당부를 하시면서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특별한 존재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예나 지금이나 인간의 생명은 참 중요한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각 사람에게 하나밖에 없는 것이고 한 번 죽으면 이 세상에 다시 살 수 없는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과 바꾸겠느냐”(마16:26).라고 하셨습니다.
다른 동물들이나 식물에도 생명이 있지만 그런 생명들을 인간의 생명처럼 귀하게 여기지 않는 것은 우리 인간의 생명은 특별한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만드실 때는 특별하게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하셨기 때문에 인간의 생명을 특별히 사랑을 하시고 보호하십니다.
요즘 애완동물들을 사랑하시는 분들이 많이 있어서 함부로 말을 못합니다.
그러나 개나 고양이나 짐승은 짐승일 뿐입니다.
아무리 개를 예뻐하고 잘 훈련시키고 그래서 주인의 목숨까지 구했다고 해도 개는 개일 뿐 거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생명은 없습니다.
반대로 아무리 미움을 받고 천대를 받고 별로 하는 일도 없는 인간일지라도 인간은 귀한 생명을 가진 인간입니다.
그 뒤에는 하나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잘나고 훌륭한 일을 많이 한 사람만 귀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별 볼일이 없는 사람들은 천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누구나가 다 귀한 생명입니다.
오히려 가난한 자와 애통하는 자를 연약한자 못난 자를 더 큰 관심을 가지시고 바라보시며 그들을 사랑하시고 위로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의 생명이 천하보다 귀한 것입니다.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생명을 가진 존재들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생명을 소중하게 여기고 살인을 금한 계명은 너무나 당연한 계명일 것입니다.
지금도 모든 나라 모든 국법이 금하고 있고 제일 큰 죄로 여기는 것이 이 살인에 대한 계명입니다.
지금 우리들이 생각할 때 살인죄는 정말 큰 죄인데 그런 당연한 것을 계명에 넣었을 까? 라는 생각이 드실 것입니다.
그러나 십계명을 주실 당시나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까지도 사람들은 사람의 생명을 그렇게 귀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특별히 종들이나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의 생명은 귀하게 여기지 않고 파리 목숨처럼 쉽게 죽이곤 했습니다.
전쟁에 나가 수많은 사람들이 죽었고 조금 기분이 나쁘다고 힘이 있는 사람들이 힘없는 사람을 죽였습니다.
특별히 그들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 속에 들어 있는 이웃사랑이라는 큰 뜻을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목숨뿐만 아니라 인격을 서로 존중하고 아끼고 사랑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하나님의 귀한 뜻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2.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살인에 관한 재해석
본문 22절 말씀에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게 되고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 라고 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신 참 뜻이 무엇인지를 예수님께서 설명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살인을 하지 말라고 하신 것은 꼭 생명 자체에 관한 것이 아님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생명을 가지고 있는 연격에 관한 것까지도 계명에 포함이 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교훈은 단순히 사람을 죽이면 안 된다는 것 보다는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그 생명과 그 생명이 가지고 있는 인격의 소중함을 알고 그 생명을 가진 사람들을 서로 존중하게 여기며 사랑하며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1)형제에게 노하는 자마다 심판을 받습니다.
화를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꼭 사람의 목숨을 끊는 것만을 살인이라고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형제에게 노하는 것도 살인과 같다는 것입니다.
살인은 분노에서 시작에 되기 때문에 분노하는 것부터 금해야 살인하는 죄를 범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형제라는 말을 사용하실 때는 대부분 그리스도 안에서 한 형제 된 우리 하나님의 백성들을 가리키는 말로 이해합니다.
물론 우리가 원수까지 사랑해야 할 사람이라고 하시기 때문에 살인죄를 형제에게만 적용시켜서는 안 될 것입니다.
가까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 된 우리 성도들로부터 자주 만나는 가까운 이웃부터 모든 사람들에게 까지 사랑이 실천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보시는 것은 인간의 생명이고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명을 귀하게 보십니다.
그런 특별한 하나님의 자녀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우리 성도들이 해야 할 일입니다.
우리가 만나는 그 사람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특별하게 지으신 생명을 가지고 있고 또 더 특별하게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또 다른 사람들보다도 부족하여서 하나님의 보호를 받고 있는 사람이라고 한다면 그 사람에게 화를 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그냥 화를 내지는 않습니다.
상대방이 화를 낼 일을 하니까 화가 나는 것입니다.
나를 화나게 하고 나의 성질을 돋우게 한다고 해서 화를 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화를 낼 때 고통을 당하는 상대방이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는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화를 낼 때 상대방은 엄청난 스트레스를 받습니다.
성질을 잘 내는 사람과 있으면 늘 불안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노를 품는 자와 사귀지 말며 울분한 자와 동행하지 말지니 그의 행위를 본받아 네 영혼을 올무에 빠뜨릴까 두려움이니라.”(잠 22: 24-25).라고 했습니다.
금방 금방 화를 내는 사람도 문제지만 정말로 문제는 가슴에 화를 안고 사는 사람이 더 큰 문제입니다.
어떤 사람은 화를 내지만 금방 풀어버리는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금방 화를 표출하지는 않지만 가슴에 화를 품고 억누르면서 삽니다.
그 분노가 자꾸 쌓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고 또 언제 그 분노가 표출이 될지 모르기 때문에 불안한 것입니다.
에베소서 4:26-27절에 “분을 내어도 죄를 짓지 말며 해가 지도록 분을 품지 말고 마귀에게 틈을 주지 말라.” 라고 했습니다.
화가 나면 해가 지도록 그 분을 품고 있지 말고 풀어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분노를 가슴에 품고 있으면 마귀가 틈을 타고 들어와서 죄를 짓게 된다는 것입니다.
2)형제에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됩니다.
‘라가’라는 단어는 일종의 욕이라고 합니다.
아람어 '레카'를 헬라어로 음역한 것으로 상대의 인격을 매우 경멸할 때 사용하던 일종의 욕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말로 바보, 돌대가리 정도의 욕입니다.
“형제를 대하여 라가라 하는 자는 공회에 잡혀가게 되고”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제에게 “라가”라고 욕을 하는 것 그 자체가 살인과 다름이 없다는 말입니다.
요즘 아이들은 아예 입에 욕을 달고 삽니다.
그 뜻이 무엇인지도 잘 모르고 그냥 나쁜 욕을 합니다.
욕을 하는 것은 상대방의 인격을 무시하고 멸시하는 나쁜 행동이며 다 나아가서 살인죄에 속하는 것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요즘은 욕을 인터넷에서 합니다.
인터넷을 해보면 거기 ‘악풀’이라는 글들이 많이 달려 있습니다.
“악의적인 댓글”을 말합니다.
인터넷 블로그나 홈 페이지에 리플이라는 댓글을 달게 됩니다.
이 때 사람들이 누군지 모르니까 마음대로 욕설을 퍼붓습니다.
인격 모독적인 비방이나 인신공격으로 마음에 씻을 수 없는 큰 상처를 주는 글들이 올라옵니다.
이런 악의적인 댓글 때문에 자살을 하는 사람도 많이 있다고 합니다.
이런 욕들이 살인을 하는 무기가 된다는 것입니다.
3)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됩니다.
“미련한 놈이라 하는 자는 지옥 불에 들어가게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시하지 말라는 말입니다.
형제를 무시하는 것 그 자체가 살인과 다름이 없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미련한 놈이라는 말은 바보짓을 하고 다니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상대할 수 없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상대방을 무시하고 나아가 경멸하는 말입니다.
미련한 짓을 한 사람에게 미련한 놈이라고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라고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런 말을 듣는 사람은 아주 큰 모욕감을 느끼게 됩니다.
상대방에게 무시당하고 모욕을 당하는 일은 그 당하는 사람에게 큰 상처가 되는 것입니다.
며칠 전 신문에 보니까 어떤 경찰간부가 검찰에게 일을 잘 처리 못했다고 뺨을 맞고 그 모멸감 때문에 자살을 하고 말았다고 합니다.
검찰이라고 우쭐대면서 자기보다 못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에게 심한 모욕감을 준 것입니다.
4)심판, 공회에 잡힘, 지옥 불
형제에게 화를 내거나 라가라고 욕을 하거나 형제를 미련한 놈이라고 무시하는 사람은 심판을 받게 되고 공회에 잡히게 되고 지옥에 들어간다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3가지의 사형에 관한 법을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①교수형은 재판에 의해 부과되었고, ②돌로 치는 형은 산헤드린 공의회에 의해, ③ 화형은 예외적인 특별한 경우에 "힌놈의 아들들의 골짜기에서"집행되었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심판을 받는다는 말과 공회에 잡힌다는 말, 그리고 지옥 불에 들어간다는 말씀은 이런 사형 제도를 염두에 두고 한 말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꼭 그렇게 되는 과정을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죄이며 심판을 받게 되는 것이며 영원한 지옥과 연결되는 악한 죄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죄는 결국 우리를 지옥으로 가게 하는 큰 죄악임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과거에 유대인들은 욕을 하든지 무시를 하든지 분을 품든지 살인만 하지 않으면 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특별한 존재로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들의 인격자체를 무시하는 것도 살인죄에 해당하는 나쁜 짓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3.오늘날 우리가 받아야 할 교훈
우리는 이 말씀을 대하면서 살인을 하지 말아야 되겠다.
더 나아가서는 사람들에게 분노하고 욕하고 미련하다고 모욕을 주는 일도 살인죄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조심해야 되겠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잘 생각해 보면 어떻습니까?
사람들에게 성질을 내지도 않고 욕도 하지 않고 무시하지도 않고 그렇게 살 수 있을 것 같습니까?
성질내고 욕하고 무시하고 사는 사람들이 다 재판을 받고 잡혀가고 지옥에 간다고 하면 여러분은 그렇게 되지 않을 자신이 있습니까?
보통 목사님들은 오늘 본문을 설교하면서 여기까지만 말하고 마칩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별로 근심을 하지 않습니다.
성질내고 욕하고 무시하는 자마다 다 지옥 불에 들어간다고 하는데도 근심도 없이 걱정도 없이 그냥 늠름하게 돌아갑니다.
아예 성경말씀까지 목사 설교까지 완전히 무시해버리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는지 안 듣는지 내용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냥 잘들 넘어갑니다.
저는 가끔 설교를 준비하면서 아 이 말씀은 아무개 성도가 들으면 시험을 받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아주 조심스럽게 설교를 하는데 그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갑니다.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이 성경 말씀을 읽으면서도 깨닫지 못했던 사실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약성경에 살인하지 말라는 말씀을 자주 들었습니다.
살인하는 자는 반드시 자신도 죽임을 당한다는 사실을 늘 들으면서 살았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알지 못한 것은 하나님께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 속에 가지고 계시는 그 참 뜻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살인은 꼭 직접 남의 생명을 끊은 것으로만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그 계명이 가지고 있는 이웃 사랑의 뜻을 알지 못해서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 앞에서 사람들을 무시하고 멸시하고 화를 내고 했던 것입니다.
그런 살인죄에 해당하는 나쁜 짓을 하면서도 당당하게 저희들은 어려서부터 계명을 다 지켰습니다. 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은 율법 앞에서 가장 먼저 깨달아야 하는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주신 목적은 물론 그 율법을 지킴으로 서로 사랑하면서 살라는 뜻도 있지만 그 율법을 지켜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고 모든 인생들은 그래서 사형을 받을 죄인들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하시는 것입니다.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사람은 그리스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죽으신 일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 됩니다.
그 십자가가 없었다면 나는 영락없이 잡혀가서 재판을 받고 그 벌로 영원한 지옥 불에 들어가야 할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이 교훈 앞에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것도 그것입니다.
나는 그렇게 살 수가 없습니다.
노력은 하겠지만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게 고백하고 십자가를 붙드는 것이 계명 앞에서 우리가 할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살인은 우리가 재판을 받고 우리도 죽임을 당해야만 하는 큰 죄악입니다.
살인이라고 해서 꼭 남의 목숨을 끊는 것만 살인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형제들에게 화를 내고 욕을 하고 멸시하는 것도 다 실인 죄에 해당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형제들을 사랑하는 마음을 가지고 살려고 노력을 하시기 바랍니다.
서로 존경하고 좋은 말로 위로하고 서로를 높여주는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더 절실한 것은 우리가 이 말씀대로 살 수 없는 죄인이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런 죄에서 날 구원해 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지신 그 십자가를 더 사랑하고 의지해야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