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1. 16.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03)
본문 : 마 5:5
제목 : 온유한 자의 복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예수님께서 산상보훈의 말씀을 다 마치실 때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라고 하셨습니다.(마7:21)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많은 사람들이 주님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라고 할 것인데 그 때 우리 주님께서 그들에게 내가 도무지 너희를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라고 하신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는 아주 중요한 두 가지의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는 말로만 주여, 주여, 믿습니다, 믿습니다, 라고 한다고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행함이 있어야 하나님 나라에 들어간다는 사실입니다.

또 하나는 그 행함에 있어서도 거창한 일을 한다고 그것이 믿음의 행위라고 하지 않고 주님의 뜻을 바르게 알고 그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간다는 사실입니다.

그런데 정말로 다행스러운 것은 산상보훈의 말씀을 배워보면 우리가 우리에게 없는 것을 가져오거나 엄청난 노력을 들여서 업적을 쌓거나 하는 그런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우리에게 있는 것들 중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는 것입니다.
돈을 많이 벌어서 부자가 되라는 말이 아니라 있는 것까지 버려서 가난하게 되라는 것입니다.
잘못된 것을 고쳐서 훌륭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잘못을 알고 애통해 하라는 것입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돈을 벌어서 부자가 되는 일은 참으로 어렵습니다.
머리도 좋지 않고 별 능력도 없는 사람에게 성공하라고 하고 훌륭한 일을 하라고 하면 참 어렵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런 것을 요구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내게 있는 것 중에서 불필요한 것들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욕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불필요한 자만심을 버리는 것입니다.
내가 충분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라고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일을 잘 처리하고 스스로 자만심을 갖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잘 하지 못하는 우리의 형편을 알고 슬퍼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심령이 가난해지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앞에서 심령이 애통하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의 교훈들을 잘 들으시고 여러분들의 심령이 꼭 그렇게 변화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는 비결이라는 것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오늘 말씀은 온유한자가 받는 복에 관한 말씀입니다.
“온유한 자가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라고 했습니다.

1.온유한 자가 복이 있나니.
오늘 본문 말씀에 의하면 온유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마음이 따뜻하고 부드러운 자가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1)온유의 뜻
우리나라 말에서 온유(溫柔)라는 말은 따뜻하고 부드럽다는 말입니다.
성격이나 태도가 온화하고 부드럽다는 것입니다.
반대말은 포악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성격이 남을 대할 때 쌀쌀맞고 포악한 사람이 있고 어떤 사람은 온화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대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사실 이 세상에서 땅을 차지하기 위해서는 온유한 사람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힘이 없고 연약하고 그래서 순하게 착하게 사는 사람은 세상에서 땅을 차지하거나 성공하지 못합니다.
세상에서의 성공은 강하고 공격적이고 난폭하고 다른 사람을 밟고 일어서야 성공을 하고 땅을 차지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렇게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을 가져야 땅을 차지하게 된다고 하시니 우리의 생각에는 맞지 않는 말일 것입니다.

온유라는 말이 헬라어에서는 조금 다른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무조건 온순하고 부드럽고 모든 사람들의 말에 순종하고 그런 뜻으로 쓰인 말이 아닙니다.

헬라어에서 온유는 프라우스(πραυs)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이 단어는 선천적으로 가지고 있는 온순함을 말하는 단어가 아닙니다.
원래는 악한 마음이었지만 훈련을 통해서 연단을 통해서 다듬어진 온순함을 말합니다.

집에서 기르는 짐승이 사실 원래부터 온순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망아지가 길들여지지 않으면 여기저기 다니며 사고를 칩니다.
그러나 길들여진 망아지는 좋은 일에 사용이 됩니다.

무더운 여름에 산들바람이 불어오면 참으로 시원합니다.
그러나 바람자체가 언제나 그렇게 좋은 것은 아닙니다.
그 바람이 태풍이로 몰려오면 우리에게 엄청난 피해를 입힙니다.

온유라는 말도 그렇게 쓰였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원래는 난폭한 마음이었지만 성령님의 역사하심으로 훈련되고 순화되어서 따뜻하고 부드러움으로 나타나게 된다는 것입니다.

저는 목사가 되어서 제일 많이 고민이 되었던 것이 이 못된 성질머리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원망도 해 보았습니다.
하나님 목사를 시키실 예정이셨으면 마음이라도 좀 부드럽고 따뜻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나게 해 주시지 왜 이렇게 급하고 차가운 마음을 주셔서 힘들게 하십니까? 그런 원망도 해보았습니다.
선천적으로 착한 마음을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참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사실 진짜 온유함은 그런 강한 마음을 부드럽게 훈련시켜서 사실은 진리에 대한 열망도 있고 공의에 대한 열정도 있으면서 그런 마음을 순화시켜서 부드럽게 순하게 좋은 일에 사용되도록 하는 것이 온유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령의 열매에 이 온유가 들어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오셔서 역사하시면 우리의 강하고 차가운 마음이 부드럽고 따뜻하게 변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온유는 많은 신학자들이 구약성경 시편 37편과 연결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하며 풍성한 화평으로 즐거워하리로다.”(시37:11)라는 말씀을 인용한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시편 37편에서 말하고 있는 온유한 사람이란 여호와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 안에서 기뻐하고, 하나님께 자기 길을 의탁하며, 하나님 안에서 안식을 누리는 사람을 말합니다. 

이 세상에서 악한 사람들이 잘되고 판을 치고 산다고 원망하고 불평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이 주께로부터 왔으니 그 뜻에 자기를 맡기고 인도하심을 따라서 기쁘게 살아가는 삶의 자세를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실 수 있습니까 라고 따지고 원망하는 사람이 아니라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하신 뜻대로 이루어지는 것으로 믿고 따르고 순종하는 사람을 온유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2)성경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
구체적으로 온유함이 어떤 것인가를 살펴보려면 성경에서 가장 온유한 사람이 누구인가를 살펴보고 그의 온유함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보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입니다.

민수기 12장을 보면 모세의 온유함에 대해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민12:3)라고 했습니다.
그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 중에서 모세가 가장 온유한 사람이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는 본래 마음이 부드럽거나 따뜻한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가 젊었을 때는 물불을 가리지 않는 혈기가 왕성한 사람이었습니다.
동족을 사랑하는 열정으로 애굽사람을 단숨에 쳐 죽였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랬던 사람을 세상에서 제일 온유하다고 인정한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출애굽 당시 모세의 누이 미리암과 형제 아론이 모세를 비방했습니다. 
표면적인 이유는 모세가 흑인인 구스 여인, 즉 이방여인과 결혼했다는 것이었습니다. 충분히 꼬투리가 잡힐 만한 일이기는 합니다. 
당시 유대인의 풍습 중에 이방인과 결혼하는 것은 흠이 되기에 충분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정작 그들의 불만은 모세만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지도자가 되는 것이 불만이었습니다.
다 같은 형제인데 누구는 하나님의 음성을 집적 듣는 지도자가 되고 누구는 그를 섬기는 자가 된다는 것이 불만이었습니다.

모세는 화를 낼만도 합니다. 
모세가 누구입니까 그들과 같은 부모에게서 태어나긴 했지만 엄청 다른 사람입니다.
왕궁에서 왕이 되기 위한 공부도 했던 사람이고 당시 가장 문명이 발달했던 애굽의 후계자로 훈련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지도자가 되어서 이스라엘을 저 애굽에서 탈출시킨 위대한 지도자입니다.

그런 자신을 시비하고 자기들과 같다고 주장하는 것을 보면서 화가 많이 났을 것입니다.
그리고 모세에게는 자신의 처지를 변명할만한 구실들이 있었고, 그들에게 벌을 내려서 사형에 처할 힘도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참았습니다.
화를 내지도 않았습니다. 변명을 늘어놓지도 않았습니다. 그들을 비방하지도 처벌하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들이 하나님께 벌을 받고 병에 걸렸을 때 모세는 그들을 위해서 기도했다고 했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고 그들을 용서하고 그들에게 하나님의 자비하심이 임하시도록 기도했다는 것입니다.

온유함이란 이렇게 강한 힘이 있으면서도 다른 사람들에게 대해서 특별히 나보다 힘이 없는 사람들에 대해서 너그러운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힘도 없고 능력도 없고 용기도 없어서 사람들에게 굽실대면서 온순하게 사는 것을 온유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강한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모든 사람에게 부드럽게 선하게 좋게 대하는 것 그것을 온유라고 합니다. 

3)예수님의 온유하심
우리가 본받아야 할 온유함이란 예수님의 온유하심입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 그리하면 너희 마음이 쉼을 얻으리니 이는 내 멍에는 쉽고 내 짐은 가벼움이라 하시니라”(마11:28-30)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수고하고 무거운 짐을 지고 사는 우리 인생들에게 예수님께로 와서 예수님의 온유하심과 겸손하심을 배워서 마음의 쉼을 얻으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예수님의 온유하심은 겸손함입니다.
우리의 마음의 짐이 늘 무거운 것은 나의 교만함 때문입니다.
내가 괜찮은 사람이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인정받고 대접받아야 한다는 생각이 나를 힘들게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 온유한 마음 즉 겸손한 마음이 없으셨다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실 필요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자신을 낮추시고 사람과 같이 되심이 온유하심입니다.

우리의 마음도 늘 낮은 곳으로 향해야 합니다.
나보다 못한 사람들을 보면서 살아야 합니다.
나는 부족하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가난한 마음을 가져야 되고 애통하는 심령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온유한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온유하심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나를 희생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유익을 위해서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 박는 희생을 감수하셨습니다.
그것이 참된 온유하심입니다.

우리도 우리 예수님의 온유하심을 본받아야 합니다.
희생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희생이 없는 믿음은 참된 믿음이 아닙니다.
희생이 없는 사랑은 참된 사랑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온유하심은 겸손함과 희생이 뒤따르는 온유함입니다.
그냥 말로만 부드럽게 대한다고 온유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닙니다.
힘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어려운 사람들을 돌아보고 그들을 위해서 희생을 감수하면서 좋은 것을 줄 수 있는 마음이 참된 온유함일 것입니다.

2.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온유한 자가 받는 복을 “땅을 기업으로 받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선호하는 복이 무엇일가라고 질문하면 대부분이 온유한 자가 받는 복 즉 땅을 기업으로 받는 복이라고 말할 것입니다.

우리는 평생 땅 땅 땅 하고 사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땅만 좀 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리 교회도 땅만 있으면 지으면 되고
시골에 땅만 있으면 노년에 가서 살면 되고
돈 없으면 땅 팔아서 먹고 살면 되고....

많은 사람들이 이 땅을 기업으로 받는 복을 내세적인 것이라고 말합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을 우리가 받게 될 것을 의미하는 말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비단 꼭 영원한 천국에 국한해서 하시는 말씀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도 받는 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영적인 것은 항상 육신적인 것도 포함하여 있음을 우리는 많이 발견합니다.
온유한 자는 이 세상에서도 복을 받고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기업으로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약속은 신약에서 현세적인 약속을 나타낸 거의 유일한 표현이라고 했습니다. 
온유함으로 받는 이 복은 "금생의 약속"을 가지고 있습니다. 
온유함은 이 세상에서도 우리의 건강과 부귀, 위안, 안전을 가져다줍니다.

여기 기업으로 받는다는 말은 유업으로 나에게 주어진 몫으로 받는다는 말입니다.
아버지가 자녀에게 그 몫을 나누어주시듯이 우리가 하나님 나라를 받는 것도 우리 아버지 되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몫으로 정하였다가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성품을 닮아가면서 이 세상을 살다가 하나님께서 자녀들에게 나우주시는 그 기업을 상속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1)세상의 삶도 온유하게 살 때 땅을 기업으로 받습니다.
땅을 문자적인 그대로 땅을 말한다면 도 꼭 땅은 아니더라도 세상의 재물을 말한다면 온유한자보다는 그와 반대되는 포악한 자가 더 많은 땅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땅이 그런 재물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행복의 가치로 본다면 온유한 자가 그 땅을 차지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돈이 마무리 많고 땅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그의 성품이 포악하면 사람들에게 외면을 당합니다.
그 돈 때문에 굽실거리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진정으로 좋아하고 따르는 사람은 없습니다. 

옛날 우리 아버지들은 비교적 참 포악했습니다.
식구들이 그 앞에서 쩔쩔맸습니다.
고함을 지르고 손찌검을 하고 기분 나쁘면 밥상도 뒤엎었습니다.
그 대가로 오늘날 가장들의 지위가 형편이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그냥 돈벌어오는 기계가 되고 말았습니다.
돈 벌어오면 자기만 왕따를 당하고 다른 식구들은 그 돈으로 재미있게 잘 삽니다.

그래도 그 주에서 온유한 가장들은 식구들에게 사랑으로 잘 대했던 가장들은 가족들과 함께 행복하게 잘 삽니다.

세상에서도 교만하고 자기를 내세우고 자기 이익을 챙기고 남을 배려할 줄 모르고 남의 잘못만 지적을 하고 성질도 잘 부리고 그렇게 살면 창고에 재물은 쌓일지 몰라도 정작 우리에게 있어야 할 사랑과 존경과는 거리가 멀어집니다.

사람들이 하나 둘 내 곁을 떠나게 되고 결국 혼자만 남게 될 것입니다.
온유한 사람이 되시기 바랍니다.
아침에 만났는데 또 만나고 싶고 같이 이야기 하면 힘이 되고 같이 있기만 해도 행복해지는 그런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하나님 앞에서 온유함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받게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일부러 잘난 척하고 교만한 사람은 없겠지만 잘 살펴보면 본의 아니게 잘난 척하고 교만하게 사는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사람들의 본심에는 남의 말 듣기 싫어하고 자기 마음대로 하려는 본성들이 다 있습니다.
그 본성을 제어하지 못하고 그대로 사는 사람은 온유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온유는 그런 악한 본성을 고침으로 얻게 되기 때문입니다.

온유하지 못한 사람은 자기의 생각, 자기가 아는 것, 자기의 일, 자기의 계획, 자기의 자존심, 이런 것 하나도 안 버리고 그대로 가지고 있습니다. 
자기의 생각대로 판단해서 자기가 하고 싶은 일 다 하고 자기성격대로 그대로 살고 그러면서 거기에 맞을 때 교회에 오고 말씀을 따르고 하는 것은 교만한 사람일 뿐이지 진정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는 사람은 아닙니다.

온유한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제일 우선순위에 두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 말씀이 나의 삶에 엄청난 손해가 온다고 해도, 나에게 많은 희생을 요구하는 것이라고 해도, 내 생각과 다르고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해도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이 세상 사람들을 심판하실 때 이 온유함이 있는가를 보실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이 온유함이 그 마음에 있는 것이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이 온유함이 있을 때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던 사람이 아님이 증명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온유한 마음을 꼭 간직하시고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온유하고 겸손한 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