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1. 2. 27.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산상보훈08)
본문 : 마 5:10-12
제목 :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의 복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산상보훈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오늘날 우리나라 교회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소위 성공했다는 일부 중대형교회들을 생각해 봅니다.
그들은 가난하지도 않고 애통해하지도 않고 온유하지도 않습니다.
의에 주리지도 않고 긍휼히 여기지도 않고 마음이 청결하지도 않고 화평케 하지도 않습니다.
산상보훈을 통해 팔복을 말씀해 주신 예수님께서 그런 교회의 모습을 보시면 뭐라고 말씀을 하실까요?
복 있는 교회라고 말씀을 하실까요?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말씀을 하실까요?
물론 우리 예수님은 우리와는 다르게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고 또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좀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복을 주시고 천국을 가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들에 비추어볼 때 과연 오늘날 우리나라의 교회가 그런 복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팔복의 말씀에 의하면 복이 있는 사람들처럼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들처럼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성도도 아닌 이방인들과 같은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교회는 참 다행스러운 교회입니다.
사람들이 말할 때는 왜 저 교회는 부자들이 없어서 늘 돈 때문에 어려움을 당해?
왜 저 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아서 늘 그 모양이야? 라고 은근히 비웃지만 사실 그것이 참 다행입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작은 교회이기 때문에 우리 주님과 더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아서 참 다행한 일입니다.
우리는 가진 것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가난한 심령으로 삽니다.
우리는 우리의 처지를 바라보면서 늘 애통해 하면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무엇이 있어야 교만도 할 텐데 어쩔 수 없이 온유한 마음으로 삽니다.
힘이라도 있어야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고 압력을 가하기도 하겠지만 나 자신이 불쌍한 사람으로 삽니다.
비교적 착하게 비교적 화평을 이루려고 노력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에서 살고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긍휼히 여김을 받고 진리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오늘은 팔복 그 마지막 말씀입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천국을 소유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나라의 대형교회는 물론이고 작은 우리교회까지도 참 지키기가 어려운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온갖 복을 다 받고 세상에서도 잘 된다고 해야 사람들이 교회에 오기도 하고 충성도 할 것인데 오히려 세상에서 욕을 먹고 박해를 당하고 악한 말을 들어야 복을 받는다고 하니까 누가 이런 말씀을 듣고 그런 각오를 하고 교회에 다니겠습니까?
이런 설교를 들으면 교회에 다니던 사람까지도 아이고 잘못 왔구나 하고 도망을 가버릴 그런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보다 더 중요한 말씀은 없을 것입니다.
앞서 말한 일곱 복들의 결론이 여기에 해당이 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게 살면 욕을 먹는 세상입니다.
애통해 하면 놀림을 받고 죄인 취급을 하는 세상입니다.
온유한 자는 손해를 보고 긍휼이 여기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것이고 마음이 청결해지려면 악한 말을 듣고 화평하게 하는 사람들도 손해를 많이 봅니다.
정말 순교자의 정신이 아니면 이렇게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그렇게 살면 세상에서 욕을 먹고 박해를 받고 악담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박해를 받는가, 그렇지 않는가가 참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1.의는 예수님이십니다.
10절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을 하시고 이어서 11절에는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11절에서 말씀하는 그 ‘의’가 12절에서 ‘나’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나, 즉 예수님을 위하여 박해를 받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1)구약의 율법이 예수님으로 안내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에 보면 율법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갈3:24) 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라고 했습니다.
당시의 초등교사는 아이들을 가정에서 초등학문을 가르쳐주고 의복이나 식사 등을 돌봐주며 학교에 갈 때 학교까지 데리고 다니는 노예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초등 교사를 옛날성경에서는 몽학선생이라고 했습니다.
몽학선생은 아이를 서당까지 데려다 주는 역할을 하는 하인을 말합니다.
양반집 아이들을 서당에 보내면 아이가 서당에 가다가 샛길로 빠져서 놀러 다니니까 아이가 딴 길로 가지 않고 서당에 가서 공부하도록 인도하는 하인이 몽학선생이었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입니다.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데 그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의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말합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직 율법의 역할을 잘 알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몽학선생의 말을 잘 들었겠습니까? 안 들었겠습니까?
당연히 잘 안 들었을 것입니다.
하인인 주제에 제가 상전을 오라 가라 하니까 그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그것도 놀고 싶은데 공부하러 가라고 하니까 들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아이에게 말합니다.
너를 서당까지 인도하는 사람도 선생님이시다. 선생님이니까 선생님 하는 말을 잘 들어야 한다. 그래서 하인이 몽학선생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이 하도 말을 잘 안 듣고 깨닫지 못하고 딴 길로 가니까 우리에게 율법을 주어서 바르게 가라고 하셨습니다.
율법을 주어서 그리스도가 필요함을 알고 그리스도께로 우리를 인도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사람들이 그 몽학선생에게 매를 맞고 있습니다.
율법을 안 지키면 큰 일이 나는 사람들처럼 율법에 매여서 사는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의로운 사람은 율법을 통해서 우리를 그런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오는 사람들입니다.
2)하나님나라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천국은 하늘나라 즉 하나님나라를 말하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가는 나라나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사람이 복을 받아서 가는 나라를 천국이라고 했습니다.
이 천국 즉 하나님나라는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천국은 시작이 되고 완성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창조 때 만들어진 그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파손되었고 어떻게 회복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처음 창조된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교제하면서 사는 곳 그곳이 하나님나라였습니다.
그 하나님 나라가 아담과 하와의 반역으로 인해서 없어져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지도 않고 섬기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사는 곳은 사탄이 지배하는 그래서 저주를 받은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인생들을 그대로 두시지 않으시고 다시 하나님의 나라에 와서 살 수 있도록 해 주시기로 마음을 정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도록 설계가 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그분이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하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 의로운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그 분이 하나님의 나라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몸 된 이 교회에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이 되고 우리는 거기서 그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복락을 누리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3)하나님나라 의의 기준이 예수님이십니다.
의로운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신 칭의” 믿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무조건 무엇이든지 믿습니다. 라고 한다고 해서 그 믿음을 의로 여기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그 믿음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받게 하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날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이 복음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영원한 나라를 준비하시기 위해 승천하셨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고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다시 오신다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복음입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것이 의의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를 위해서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위해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을 위해 박해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율법은 우리를 예수님께로 인도하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나라도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의 기준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2.의가 되시는 예수님을 위해서 박해를 받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본문 11절 말씀에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라고 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는 것은 뭔가 세상에서 좀 평안하게 좋은 일 하면서 살아보려고 교회에 다닙니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려면 할수록 평안함이 아니라 박해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고 싶은데 사실 그 화평이 쉽지 않고 예수님께서 주신 검을 들고 싸워야 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싸워야 할 그 대상이 남편과 아내이며 부모와 자식이며 형제간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그 핍박을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욕을 먹는 것 박해를 당하는 것 그리고 악한 말을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1)너희를 욕하고
욕을 한다는 말은 비난하고 비방하고 책망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비난하고 욕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 때문에 욕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요 거룩한 성도들이 내가 한 잘못된 행동 때문에 욕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 때문에 욕을 먹는 것은 복이 되지만 나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서 욕을 먹는 것은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 되기 때문에 조심을 해야 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좀 오해를 해서 잘못된 행동을 함으로 욕을 먹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목사님들이 교회차를 끌고 다니면서 교통신호를 잘 안 지킵니다.
신호도 무시하고 속도제한도 무시하고 막 달립니다.
세금도 잘 안내고 기부도 잘 안하고 공과금이나 은행돈도 잘 안 갚습니다.
질서도 잘 안 지키고 우리 아저비가 만든 세상이고 다 우리 아버지 것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욕을 먹습니다.
이런 잘못으로 욕을 먹는 것은 아무런 복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하는 빌미만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심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욕을 먹어도 기뻐해야 하는 것은 우리 예수님 때문에 욕을 먹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욕을 먹을 때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만 구원이 있다고 하면 세상 사람들이 욕을 하기 시작합니다.
당신들은 죄인이고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에 가게 된다고 하면 벌떼처럼 달려들어서 욕을 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어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세상 사람도 욕을 하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욕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고 애통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면 교회에 다니는 많은 잘 난 사람들이 부자들이 욕을 합니다.
이럴 때 그들이 욕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이 욕을 하는 것은 천국 백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런 욕을 먹는 것은 우리는 이미 하나님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박해하고
박해한다는 말은 옛날 성경에서는 핍박하고 라고 번역했습니다.
박해보다 핍박이라는 말이 더 실감이 나는데 왜 박해라는 말로 바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말은 헬라어에서 ‘달아나다’의 사역형인데 ‘내쫓다’ ‘몰아내다’ 그런 뜻을 가진 말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 때문에 추방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가족으로부터 내어쫓김을 당하고 시민권도 박탈당하고 고향으로부터 고국으로부터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헐벗음 감옥살이 고문과 비참한 죽음 많은 박해 속에서 신앙을 지켰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님을 위해서 박해를 당해 보셨습니까?
예수님 믿는다고 집안에서 쫓겨나보셨습니까?
예수님 믿는다고 주일 지킨다고 직장에서 쫓겨나보셨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3)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한다는 것은 거짓말로 온갖 악담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끔 기독교에 관한 신문 기사가 나서 보면 거기 언제나 꼭 등장하는 저주의 댓글들이 주룩주룩 달려있습니다.
얼마나 똑똑한지 자기들이 이 세상 온 우주 다음세상 까지 다 갔다가 오고 다 조사를 마친 사람들처럼 하나님이 없다고 강하게 확실하게 주장을 합니다.
그 짧은 인생동안 이 이우주의 아주 눈곱만한 공간에서 눈 깜박할 동안의 짧은 인생을 산 사람이 영원을 산 사람처럼 말합니다.
작은 두뇌를 가지고 이 우주에 일어나는 일의 수천억 수조분의 일도 모르는 사람이 마치 이 우주의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처럼 무식이 담대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하는 말이 얼마나 무식하고 그래서 알지도 못하고 함부로 말하는 악담인지도 모르고 그냥 지껄이고 있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마치 세상에서 제일 악한 사람들처럼 얼마나 악담을 하고 저주를 하는지 모릅니다.
저들에게 뭘 달라고 했습니까? 저들에게 무슨 손해를 입힙니까? 좋은 길로 안내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려고 애를 쓰는 우리들에게 아주 흉악한 악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악담을 들을 때 아 좀 잘하지 우리가 이런 욕을 먹어서 되겠는가? 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우리를 거슬러 악한 말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말을 듣는 것이 오히려 복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들이 악한 말을 하든지 말든지 우리는 우리에게 주이진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세상을 향하여 이 복음을 외치며 전해야 할 것입니다.
3.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본문 12절 말씀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욕을 먹고 박해를 받고 악한 말을 들으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상이 크기 때문에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성도들이나 성직자까지도 박해를 당함으로 얻는 이런 기쁨을 원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그 기쁨에 동참하려고 하고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지 박해를 당함으로 얻는 참된 기쁨에는 별 관심들이 없어 보입니다.
많은 목사들이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지 않고 세상축복에 관한 설교를 많이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런 설교를 듣고 기뻐하니까 그렇습니다.
세상의 축복설교를 듣고 헌금을 많이 해야 교회의 재정도 든든하고 그래야 목사도 잘 살게 되니까 함께 그 길로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큰 교회, 많은 성도, 좋은 집, 좋은 차, 많은 돈, 그것이 목적이 된 목사들이 많습니다.
희생을 하고 헌신을 하고 박해를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크고 작고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목사들이 그런 목적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 목사 밑에서 배운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그들이 교회에 다니는 목적입니다.
예수님 믿는다고 박해를 받은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작은 박해만 있어도 아주 자연스럽게 교회를 떠나버립니다.
하늘의 상은 영원한 천국은 그들의 관심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은 예수님을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박해를 받을 때 정말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의를 위해서 박해를 받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의가 되시는 예수님을 위해서 욕을 먹고 박해를 당하고 악한 말을 들으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나라 천국이 그들이 것이요 그 하늘에서 상이 크다고 했습니다.
박해를 당함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 마 5:10-12
제목 :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의 복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산상보훈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오늘날 우리나라 교회의 모습을 생각해 봅니다.
소위 성공했다는 일부 중대형교회들을 생각해 봅니다.
그들은 가난하지도 않고 애통해하지도 않고 온유하지도 않습니다.
의에 주리지도 않고 긍휼히 여기지도 않고 마음이 청결하지도 않고 화평케 하지도 않습니다.
산상보훈을 통해 팔복을 말씀해 주신 예수님께서 그런 교회의 모습을 보시면 뭐라고 말씀을 하실까요?
복 있는 교회라고 말씀을 하실까요?
천국이 그들의 것이라고 말씀을 하실까요?
물론 우리 예수님은 우리와는 다르게 사랑이 많으신 분이시고 또 긍휼히 여기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좀 잘못된 길을 가더라도 복을 주시고 천국을 가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들에 비추어볼 때 과연 오늘날 우리나라의 교회가 그런 복을 받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습니다.
팔복의 말씀에 의하면 복이 있는 사람들처럼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국에 갈 수 있는 사람들처럼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회의 성도도 아닌 이방인들과 같은 삶을 살기 때문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교회는 참 다행스러운 교회입니다.
사람들이 말할 때는 왜 저 교회는 부자들이 없어서 늘 돈 때문에 어려움을 당해?
왜 저 교회는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지 않아서 늘 그 모양이야? 라고 은근히 비웃지만 사실 그것이 참 다행입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작은 교회이기 때문에 우리 주님과 더 가까운 사이가 된 것 같아서 참 다행한 일입니다.
우리는 가진 것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가난한 심령으로 삽니다.
우리는 우리의 처지를 바라보면서 늘 애통해 하면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무엇이 있어야 교만도 할 텐데 어쩔 수 없이 온유한 마음으로 삽니다.
힘이라도 있어야 다른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고 압력을 가하기도 하겠지만 나 자신이 불쌍한 사람으로 삽니다.
비교적 착하게 비교적 화평을 이루려고 노력하면서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천국에서 살고 하나님의 위로를 받고 긍휼히 여김을 받고 진리 안에서 사는 것입니다.
오늘은 팔복 그 마지막 말씀입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들이 천국을 소유한다고 했습니다.
오늘 말씀은 우리나라의 대형교회는 물론이고 작은 우리교회까지도 참 지키기가 어려운 말씀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온갖 복을 다 받고 세상에서도 잘 된다고 해야 사람들이 교회에 오기도 하고 충성도 할 것인데 오히려 세상에서 욕을 먹고 박해를 당하고 악한 말을 들어야 복을 받는다고 하니까 누가 이런 말씀을 듣고 그런 각오를 하고 교회에 다니겠습니까?
이런 설교를 들으면 교회에 다니던 사람까지도 아이고 잘못 왔구나 하고 도망을 가버릴 그런 말씀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보다 더 중요한 말씀은 없을 것입니다.
앞서 말한 일곱 복들의 결론이 여기에 해당이 되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가난하게 살면 욕을 먹는 세상입니다.
애통해 하면 놀림을 받고 죄인 취급을 하는 세상입니다.
온유한 자는 손해를 보고 긍휼이 여기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것이고 마음이 청결해지려면 악한 말을 듣고 화평하게 하는 사람들도 손해를 많이 봅니다.
정말 순교자의 정신이 아니면 이렇게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처럼 그렇게 살면 세상에서 욕을 먹고 박해를 받고 악담을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박해를 받는가, 그렇지 않는가가 참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1.의는 예수님이십니다.
10절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나니”라고 말씀을 하시고 이어서 11절에는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11절에서 말씀하는 그 ‘의’가 12절에서 ‘나’라고 말씀을 하신 것입니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나, 즉 예수님을 위하여 박해를 받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1)구약의 율법이 예수님으로 안내하는 것입니다.
갈라디아서 3장에 보면 율법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같이 율법이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가 되어 우리로 하여금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함을 얻게 하려 함이라.”(갈3:24) 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초등교사라고 했습니다.
당시의 초등교사는 아이들을 가정에서 초등학문을 가르쳐주고 의복이나 식사 등을 돌봐주며 학교에 갈 때 학교까지 데리고 다니는 노예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초등 교사를 옛날성경에서는 몽학선생이라고 했습니다.
몽학선생은 아이를 서당까지 데려다 주는 역할을 하는 하인을 말합니다.
양반집 아이들을 서당에 보내면 아이가 서당에 가다가 샛길로 빠져서 놀러 다니니까 아이가 딴 길로 가지 않고 서당에 가서 공부하도록 인도하는 하인이 몽학선생이었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몽학선생입니다.
율법은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데 그 사명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의로운 사람이 되기 위해서 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말합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런 사람들은 아직 율법의 역할을 잘 알지 못해서 그렇습니다.
아이들이 몽학선생의 말을 잘 들었겠습니까? 안 들었겠습니까?
당연히 잘 안 들었을 것입니다.
하인인 주제에 제가 상전을 오라 가라 하니까 그 말을 잘 듣지 않습니다.
그것도 놀고 싶은데 공부하러 가라고 하니까 들을 리가 없습니다.
그래서 주인이 아이에게 말합니다.
너를 서당까지 인도하는 사람도 선생님이시다. 선생님이니까 선생님 하는 말을 잘 들어야 한다. 그래서 하인이 몽학선생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들이 하도 말을 잘 안 듣고 깨닫지 못하고 딴 길로 가니까 우리에게 율법을 주어서 바르게 가라고 하셨습니다.
율법을 주어서 그리스도가 필요함을 알고 그리스도께로 우리를 인도하려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사람들이 그 몽학선생에게 매를 맞고 있습니다.
율법을 안 지키면 큰 일이 나는 사람들처럼 율법에 매여서 사는 사람들이 그들입니다.
의로운 사람은 율법을 통해서 우리를 그런 죄에서 구원하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나아오는 사람들입니다.
2)하나님나라의 완성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천국은 하늘나라 즉 하나님나라를 말하는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사람이 가는 나라나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사람이 복을 받아서 가는 나라를 천국이라고 했습니다.
이 천국 즉 하나님나라는 예수님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천국은 시작이 되고 완성이 되었습니다.
성경은 창조 때 만들어진 그 하나님 나라가 어떻게 파손되었고 어떻게 회복되었는가를 보여주는 책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 처음 창조된 에덴동산은 하나님의 나라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뜻에 따르는 하나님의 백성이 함께 교제하면서 사는 곳 그곳이 하나님나라였습니다.
그 하나님 나라가 아담과 하와의 반역으로 인해서 없어져 버렸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의 뜻을 따르지 않고 말씀에 순종하지도 않고 섬기지도 않습니다.
그들이 사는 곳은 사탄이 지배하는 그래서 저주를 받은 곳이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인생들을 그대로 두시지 않으시고 다시 하나님의 나라에 와서 살 수 있도록 해 주시기로 마음을 정하셨습니다.
그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이루어지도록 설계가 되어 있는 나라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그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 그분이셨습니다.
그러면서도 예수님은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뜻에 절대 순종하는 참된 하나님의 백성이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 의로운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의 머리가 되십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그 분이 하나님의 나라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몸 된 이 교회에서 하나님 나라를 만들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언젠가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그 날에는 하나님의 나라가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이 되고 우리는 거기서 그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원토록 복락을 누리면서 살게 될 것입니다.
3)하나님나라 의의 기준이 예수님이십니다.
의로운 사람이 누구인가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드렸습니다.
“이신 칭의” 믿는 사람이 의로운 사람이다. 라는 말씀입니다.
여기 믿음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무조건 무엇이든지 믿습니다. 라고 한다고 해서 그 믿음을 의로 여기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그 믿음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받게 하는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날 대신하여 십자가에 죽으심이 복음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영원한 나라를 준비하시기 위해 승천하셨다는 것이 복음입니다.
그 예수님께서 세상을 심판하고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하시기 위해서 다시 오신다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복음입니다.
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것이 의의 기준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의를 위해서 박해를 받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위해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을 위해 박해를 받는 것을 말합니다.
율법은 우리를 예수님께로 인도하는데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나라도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의의 기준도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2.의가 되시는 예수님을 위해서 박해를 받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본문 11절 말씀에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라고 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교회를 다니는 것은 뭔가 세상에서 좀 평안하게 좋은 일 하면서 살아보려고 교회에 다닙니다.
그런데 사실 알고 보면 신앙생활을 바르게 하려면 할수록 평안함이 아니라 박해를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화평을 누리고 싶은데 사실 그 화평이 쉽지 않고 예수님께서 주신 검을 들고 싸워야 할 때가 많다는 것입니다.
심지어 싸워야 할 그 대상이 남편과 아내이며 부모와 자식이며 형제간이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그 핍박을 세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욕을 먹는 것 박해를 당하는 것 그리고 악한 말을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1)너희를 욕하고
욕을 한다는 말은 비난하고 비방하고 책망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비난하고 욕을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자신 때문에 욕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요 거룩한 성도들이 내가 한 잘못된 행동 때문에 욕을 먹어서는 안 됩니다.
예수님 때문에 욕을 먹는 것은 복이 되지만 나 자신의 잘못으로 인해서 욕을 먹는 것은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 되기 때문에 조심을 해야 합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좀 오해를 해서 잘못된 행동을 함으로 욕을 먹는 일들이 많이 있습니다.
목사님들이 교회차를 끌고 다니면서 교통신호를 잘 안 지킵니다.
신호도 무시하고 속도제한도 무시하고 막 달립니다.
세금도 잘 안내고 기부도 잘 안하고 공과금이나 은행돈도 잘 안 갚습니다.
질서도 잘 안 지키고 우리 아저비가 만든 세상이고 다 우리 아버지 것이기 때문에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에게 욕을 먹습니다.
이런 잘못으로 욕을 먹는 것은 아무런 복도 받지 못하고 오히려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게 하는 빌미만 제공하는 것이기 때문에 조심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욕을 먹어도 기뻐해야 하는 것은 우리 예수님 때문에 욕을 먹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욕을 먹을 때 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님께만 구원이 있다고 하면 세상 사람들이 욕을 하기 시작합니다.
당신들은 죄인이고 회개하지 않으면 지옥에 가게 된다고 하면 벌떼처럼 달려들어서 욕을 합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어야만 구원을 받는다고 하면 세상 사람도 욕을 하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욕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복이 있고 애통하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하면 교회에 다니는 많은 잘 난 사람들이 부자들이 욕을 합니다.
이럴 때 그들이 욕을 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이 욕을 하는 것은 천국 백성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런 욕을 먹는 것은 우리는 이미 하나님나라에 살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2)박해하고
박해한다는 말은 옛날 성경에서는 핍박하고 라고 번역했습니다.
박해보다 핍박이라는 말이 더 실감이 나는데 왜 박해라는 말로 바꿨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 말은 헬라어에서 ‘달아나다’의 사역형인데 ‘내쫓다’ ‘몰아내다’ 그런 뜻을 가진 말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님 때문에 추방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을 따른다는 그 이유 하나 때문에 가족으로부터 내어쫓김을 당하고 시민권도 박탈당하고 고향으로부터 고국으로부터 쫓겨나야만 했습니다.
얼마나 많은 핍박을 받았는지 모릅니다.
헐벗음 감옥살이 고문과 비참한 죽음 많은 박해 속에서 신앙을 지켰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님을 위해서 박해를 당해 보셨습니까?
예수님 믿는다고 집안에서 쫓겨나보셨습니까?
예수님 믿는다고 주일 지킨다고 직장에서 쫓겨나보셨습니까?
그러면 여러분은 복 있는 사람들입니다.
3)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한다는 것은 거짓말로 온갖 악담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가끔 기독교에 관한 신문 기사가 나서 보면 거기 언제나 꼭 등장하는 저주의 댓글들이 주룩주룩 달려있습니다.
얼마나 똑똑한지 자기들이 이 세상 온 우주 다음세상 까지 다 갔다가 오고 다 조사를 마친 사람들처럼 하나님이 없다고 강하게 확실하게 주장을 합니다.
그 짧은 인생동안 이 이우주의 아주 눈곱만한 공간에서 눈 깜박할 동안의 짧은 인생을 산 사람이 영원을 산 사람처럼 말합니다.
작은 두뇌를 가지고 이 우주에 일어나는 일의 수천억 수조분의 일도 모르는 사람이 마치 이 우주의 모든 것을 다 아는 사람처럼 무식이 담대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자기 하는 말이 얼마나 무식하고 그래서 알지도 못하고 함부로 말하는 악담인지도 모르고 그냥 지껄이고 있는 것을 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마치 세상에서 제일 악한 사람들처럼 얼마나 악담을 하고 저주를 하는지 모릅니다.
저들에게 뭘 달라고 했습니까? 저들에게 무슨 손해를 입힙니까? 좋은 길로 안내하고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해 주려고 애를 쓰는 우리들에게 아주 흉악한 악담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 악담을 들을 때 아 좀 잘하지 우리가 이런 욕을 먹어서 되겠는가? 라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이 우리를 거슬러 악한 말을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입니다.
그런 말을 듣는 것이 오히려 복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사람들이 악한 말을 하든지 말든지 우리는 우리에게 주이진 이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세상을 향하여 이 복음을 외치며 전해야 할 것입니다.
3.기뻐하고 즐거워하라.
본문 12절 말씀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욕을 먹고 박해를 받고 악한 말을 들으면 우리에게 주어지는 상이 크기 때문에 오히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의 성도들이나 성직자까지도 박해를 당함으로 얻는 이런 기쁨을 원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즐기는 그 기쁨에 동참하려고 하고 세상의 즐거움을 누리려고 하지 박해를 당함으로 얻는 참된 기쁨에는 별 관심들이 없어 보입니다.
많은 목사들이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지 않고 세상축복에 관한 설교를 많이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그런 설교를 듣고 기뻐하니까 그렇습니다.
세상의 축복설교를 듣고 헌금을 많이 해야 교회의 재정도 든든하고 그래야 목사도 잘 살게 되니까 함께 그 길로 가는 것을 좋아합니다.
큰 교회, 많은 성도, 좋은 집, 좋은 차, 많은 돈, 그것이 목적이 된 목사들이 많습니다.
희생을 하고 헌신을 하고 박해를 받으려고 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크고 작고의 차이는 있지만 대부분의 목사들이 그런 목적을 가지고 살고 있습니다.
그런 목사 밑에서 배운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이 그들이 교회에 다니는 목적입니다.
예수님 믿는다고 박해를 받은 생각은 조금도 없습니다.
작은 박해만 있어도 아주 자연스럽게 교회를 떠나버립니다.
하늘의 상은 영원한 천국은 그들의 관심에서 사라졌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뻐하고 즐거워할 것은 예수님을 때문에 예수님을 믿는 믿음 때문에 박해를 받을 때 정말로 기뻐하고 즐거워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의를 위해서 박해를 받는 사람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의가 되시는 예수님을 위해서 욕을 먹고 박해를 당하고 악한 말을 들으면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영원한 하나님나라 천국이 그들이 것이요 그 하늘에서 상이 크다고 했습니다.
박해를 당함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