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2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전 15)
본문 : 벧전 2:1-3
제목 :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우리 동네에 노숙자 아저씨 한 사람이 있습니다.
리어카에 가방 하나 싣고 다니다가 아무데서나 노숙을 합니다.
옷은 있는 대로 겹쳐서 입고 늘 술에 취해서 살고 있습니다.
파출소에 신고를 하고 동 사무소에 이야기를 해도 해결책이 없어서 늘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저도 가끔 그 사람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이 인간답게 살게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을 해 보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돈이 좀 있어서 방이라도 하나 구한다면 먼저 그 사람을 목욕탕으로 데리고 가서 입고 있던 헌 옷을 속옷부터 겉옷까지 다 벗어서 버리게 하고 목욕을 깨끗하게 시키고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해야 할 것입니다.
병원에 데리고 가서 병이 없나 검사를 하고 그동안 잘 못 살아왔던 습관들을 다 버리게 하고 이제 술도 끊고 바르게 살 수 있는 방법도 가르쳐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구제를 해 주고 살 길을 열어 주어도 본인의 삶이 바뀌지 않고 늘 옛날처럼 산다면 구제해 준 것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신앙생활도 이 사람의 삶에 비유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새 사람이 되기 이전의 모습은 영적으로 이 노숙자와 같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을 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세례를 받을 때 입고 있던 옷을 벗어놓고 물속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물에서 나와서는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버리고”라는 말이 그런 의미가 있는 말이기에 이렇게 예를 들어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거듭나서 영원한 새 생명을 받은 우리는 과거에 모든 죄악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누더기처럼 걸치고 있던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갓난아기들 같이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가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고, 이미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났고,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았고,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직 그 구원이 완성이 되지 않은 채로 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가, 이미 썩지 않을 씨로 거듭난 우리가,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그 신분에 걸맞은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구원에 이르도록 성장하게 도와주는 곳입니다.
세례를 베풀면서 과거의 죄악들을 청산하게 하여 새로운 옷을 입혀주고 수시로 우리의 영적인 건강상태를 진단하게 해주면서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말씀에 그렇게 우리를 성장시키시기 위해서 여러 가지 말씀들을 기록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우리가 성장하는데 아주 중요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에 이르도록 서장하기 위해서는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나쁜 습성들은 다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 우리가 구원에 이르도록 성장하는 비결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실천하려고 다짐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모든 악독을 버려라.
오늘 본문 1절 말씀에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라고 했습니다.
여기 “버리고”라는 말은 앞서서 설명을 했듯이 “옷을 벗어 버리다”에서 온 말입니다.
낡고 지저분한 헌 옷을 벗어서 멀리 던져 버리는 것처럼 우리의 모든 죄악된 행동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악된 행동들을 벗어버리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죄의 습성들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에는 우리가 바르게 알고 지켜야 할 많은 계명들과 규칙들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계명들을 통해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그 계명들에 비추어 보아서 흉악한 죄인임을 아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르게 살려고 해도 내 속에 있는 죄악은 어쩔 수가 없고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 율법들을 통하여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흉악한 죄인인가 얼마나 지저분한 누더기를 입고 있는가를 먼저 발견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누더기를 벗어던지려고 몸부림을 치게 될 것이고 몸부림을 쳐 봐도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죄악된 습성을 더욱 알게 되어서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간절히 사모하고 붙잡게 될 것입니다.
1)모든 악독을 버리라.
악독이란 마음이 악하고 독살스럽다는 뜻입니다.
악한 것도 나쁜 것인데 거기에 독하기까지 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좀 고집이 세고 지독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집이 있고 아주 강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 자체는 나무랄 것이 없다고 봅니다.
마음이 약해 빠져가지고 아무 일도 지긋하게 하지 못하는 사람보다는 아주 굳은 결심을 하고 독하게 하는 것은 좋을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일에 독하면 좋겠지만 악한 일에 독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좋은 일은 하다가 쉽게 그만 두면서 악한 일에는 지독하게 끝까지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는 독종처럼 해도 됩니다.
그런데 세상 사는데 있어서 욕심을 채우는데 있어서 너무 지독하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악한 일이나 선한 일이나 너무 지독한 것은 좋지 않습니다.
신앙생활과 관계가 없는 이 세상일이라면 때로는 양보도 하고 때로는 손해도 보고 그렇게 사는 것이 좋습니다.
2)모든 기만을 버리라
옛날 성경에서는 ‘기만’을 ‘궤휼’이라고 했습니다.
기만이나 궤휼이나 비슷한 말입니다.
남을 속이거나, 사기를 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을 기만 혹은 궤휼이라고 합니다.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은 나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이것을 그렇게 심각한 죄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너무나 쉽게 속이고 너무나 쉽게 거짓말들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너무나 거짓말을 많이 하니까 무엇이 진실인지를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런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요즘 해양심층수가 그렇게 인기가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을 음료수보다 더 비싼 값에 팔아도 잘 팔린다고 합니다.
몸에 좋은 미네랄 같은 영양분이 많다고 하니까 건강을 챙기는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이 해양심층수를 사다가 먹는다고 합니다.
보통 물에 있는 영양분보다 300배가 들어 있다고 하니까 엄청나게 영양분이 많은 줄 알고 사다가 먹었답니다.
그런데 소비자고발 프로에서 조사한 것을 보니까 세상에 그 물 한 병에 들어 있는 영양분 중에 마그네슘은 콩 반쪽에 있는 영양분과 같고 칼슘은 멸치대가리 하나에 들어 있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300배 이야기만 하지 그 영양분이 콩 반쪽에도 있고 멸치 대가리 하나에도 있다는 이야기는 해 주지 않는 것입니다.
3)외식을 버리라.
본문에서 외식이라는 말은 “연극을 하다, 가장하다, 꾸미다.”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말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도 거짓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겉에 보이는 행동이나 속으로 먹음 마음이 일치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당시의 지도자들이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가장 많이 꾸짖으신 말씀이 외식하는 것에 대해서였습니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마15:7-9)라고 하셨습니다.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마음은 하나님께서 멀리 떠나 있고 하나님의 말씀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것이 외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정말로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라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늘 오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를 늘 점검해 보라는 것입니다.
예배를 억지로 형식적으로 드리면 아무 소용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하나님의 노여움만 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4)시기를 버리라.
시기 질투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죄악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 시기심 질투심이 많이 있습니다.
오죽하면 사촌이 논을 사도 배가 아프다고 했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잘 하면 박수를 쳐주고 함께 기뻐해주고 축하해주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나라는 너무나 부요해서 다른 사람이 축복을 많이 받는다고 내가 받을 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많은 복을 받아도 내 몫은 또 따로 있습니다.
5)모든 비방의 말을 버리라.
중상모략, 비방, 험담하는 것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시기심이 많은 사람은 질투심이 많은 사람은 남이 잘 되는 것을 보기 싫어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고 깎아내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험담을 해서 남을 깎아 내림으로 순간적으로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나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목하고 죄만 짓게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좋은 이야기를 해 주고 칭찬을 해주고 격려를 해 주는 것이 서로를 위해서 매우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외에도 우리가 버려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장해야 하는데 방해가 되는 죄악된 습성들이 우리 속에 많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런 잘못들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아서 발견을 하고 하나하나 고쳐나가는 것이 우리 성도들이 평생을 통해서 해야 할 일입니다.
평생을 노력하고 애를 써도 이런 죄악들을 완전히 없애버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는 그날까지 날마다 이 작업을 해야 합니다.
겸손하게 늘 나 자신의 부족함을 살펴보고 고쳐야 할 것입니다.
2.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본문 2절 말씀에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갓난아기란 문자 그대로 지금 막 태어난 아기를 말합니다.
지금 막 태어난 아기에게는 오직 엄마젖밖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오직 엄마젖만 생각하고 그것만 바라보고 그것만 찾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 성도들은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사모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고 신령한 젖으로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순전하다는 말은 1절의 기만과 반대되는 의미로 쓴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말이나 글들은 우리를 속이고 우리를 기만하는 말들이 많습니다.
우리를 속여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거나 우리를 유혹해서 죄를 범하도록 만들거나 우리를 망하게 하는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속임수가 전혀 없는 아주 깨끗하고 순전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시적으로 듣기에는 세상 사람들의 말이 그럴듯하고, 좋을 것 같고, 이치에 맞는 것 같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말인 것 같지만 거기에는 속임수가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거짓말일수록 우리를 속이는 말일수록 우리에게 사기를 치려는 말일수록 정말 그럴듯하게 들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가끔 성경을 보면 뭔가 잘 맞지 않은 것 같고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 같은 말씀들이 더러 있습니다.
꾸미지 않은 순수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다듬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속이려고 하지 않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서 서로 짜 맞추거나 그럴듯하게 꾸미거나 조작을 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 순수한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이 젖은 신령한 젖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신령한 이란 앞서서 배운 “말씀” 즉 “로고스”(λογοs)와 같은 단어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로고스가 단순히 말씀으로 번역이 되지만 이 단어에는 아주 특별한 뜻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그 원리와 능력을 가리키는 말로 이 로고스라는 말을 썼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우주 만물을 운행하고 다스리는 지혜와 능력을 이 로고스라는 말로 썼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 신령한 젖이란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있는 말씀이라는 뜻으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이 로고스는 결국 예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로고스 즉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갓난아기처럼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사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보혈을 사모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사모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 진리의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모한다는 말은 갈망하고 그리워하고 간절히 원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아주 간절히 애타게 찾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목마른 놈이 샘을 판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목이 마르지 않는 사람은 슬슬 혹시 나중을 대비해서 물을 찾지만 이미 목이 마르고 갈증이 심한 사람은 죽을힘을 다해서 물을 찾아 나선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모든 것이 풍년입니다.
먹을 것도 풍성하고 마실 것도 풍성합니다.
설교 말씀도 얼마나 풍성한지 언제라도 들을 수 있습니다.
텔레비전만 틀면 유명한 목사님들이 나와서 좋은 설교들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간절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먹을 것을 주어도 마실 것을 주어도 별로 좋아하지를 않습니다.
설교는 짧을수록 좋고 생략하면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별로 간절히 사모하지도 않습니다.
자꾸만 멀리하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진짜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은 흔하지가 않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우리가 꼭 알고 믿어야 하는 이신칭의의 진리는 흔하지가 않습니다.
이런 진짜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쓸데없는 세상 사람들의 경험담 재미난 이야기 들으려고 하지 말고 십자가의 복음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의 자리까지 자라게 하는 아주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3.주의 인자하심을 맛보라
본문 3절 말씀에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의 자리에까지 이르도록 노력을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가지고 있던 모든 죄악들을 다 버려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신령한 젖 즉 우리 주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말이 그렇지 그게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닙니다.
이 죄악이 만연한 세상에 살면서 어찌 모든 죄악을 그렇게 쉽게 벗어던질 수가 있겠습니까?
지겹도록 듣는 설교말씀을 어떻게 시간마다 간절히 사모하면서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 어려운 일을 쉽게 하는 방법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는 일입니다.
우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기만 한다면 그보다 더 어려운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맛본다는 것은 시편 34편 8절 이하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34:8-10)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이 어떠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계시는가를 체험하게만 된다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어떤 사랑을 베푸셨는가를 경험하게 된다면 그 주님을 위해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지 말고 그 주님의 인자하심을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 그 은혜, 그 인자하심을 한번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형식적으로만 교회에 다니지 말고 정말로 죄로 얼룩진 누더기 같은 옷을 벗어서 깨끗하게 멀리 던져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직 주님의 말씀을 사모해 보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복음 이신칭의의 진리 영생의 말씀을 사모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미 의인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원한 생명을 가진 씨로 거듭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해야 할 일은 우리가 그 구원에 이르도록 성장을 하려고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살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중요성을 알고 그 구원에 완성되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야 한다는 이 말씀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악독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악한 것을 늘 버리고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늘 사모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 벧전 2:1-3
제목 :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이는 그로 말미암아 너희로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하려 함이라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
우리 동네에 노숙자 아저씨 한 사람이 있습니다.
리어카에 가방 하나 싣고 다니다가 아무데서나 노숙을 합니다.
옷은 있는 대로 겹쳐서 입고 늘 술에 취해서 살고 있습니다.
파출소에 신고를 하고 동 사무소에 이야기를 해도 해결책이 없어서 늘 그렇게 살고 있습니다.
저도 가끔 그 사람을 보면서 어떻게 하면 저 사람이 인간답게 살게 할 수 있을까 라고 생각을 해 보지만 별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만약에 돈이 좀 있어서 방이라도 하나 구한다면 먼저 그 사람을 목욕탕으로 데리고 가서 입고 있던 헌 옷을 속옷부터 겉옷까지 다 벗어서 버리게 하고 목욕을 깨끗하게 시키고 새 옷으로 갈아입히고 새로운 삶을 살게 해야 할 것입니다.
병원에 데리고 가서 병이 없나 검사를 하고 그동안 잘 못 살아왔던 습관들을 다 버리게 하고 이제 술도 끊고 바르게 살 수 있는 방법도 가르쳐주고 해야 할 것입니다.
구제를 해 주고 살 길을 열어 주어도 본인의 삶이 바뀌지 않고 늘 옛날처럼 산다면 구제해 준 것이 아무 소용이 없을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성도들의 신앙생활도 이 사람의 삶에 비유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믿고 새 사람이 되기 이전의 모습은 영적으로 이 노숙자와 같다고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을 때 이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그들이 세례를 받을 때 입고 있던 옷을 벗어놓고 물속으로 들어갔다고 합니다.
그리고 물에서 나와서는 새 옷으로 갈아입었다고 합니다.
오늘 본문에 “버리고”라는 말이 그런 의미가 있는 말이기에 이렇게 예를 들어서 설명을 드렸습니다.
거듭나서 영원한 새 생명을 받은 우리는 과거에 모든 죄악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누더기처럼 걸치고 있던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갓난아기들 같이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 우리가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선택을 받았고, 이미 영원한 생명으로 거듭났고, 이미 하나님으로부터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았고, 이미 구원을 받은 사람입니다.
그런데 아직 그 구원이 완성이 되지 않은 채로 이 세상을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하나님의 백성이 된 우리가, 이미 썩지 않을 씨로 거듭난 우리가,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된 우리가 그 신분에 걸맞은 사람으로 성장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교회는 성도들이 구원에 이르도록 성장하게 도와주는 곳입니다.
세례를 베풀면서 과거의 죄악들을 청산하게 하여 새로운 옷을 입혀주고 수시로 우리의 영적인 건강상태를 진단하게 해주면서 건강하게 성장하도록 도와주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말씀에 그렇게 우리를 성장시키시기 위해서 여러 가지 말씀들을 기록해 주셨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우리가 성장하는데 아주 중요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구원에 이르도록 서장하기 위해서는 버릴 것은 버리고 취할 것은 취하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있는 나쁜 습성들은 다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 우리가 구원에 이르도록 성장하는 비결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 실천하려고 다짐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모든 악독을 버려라.
오늘 본문 1절 말씀에 “그러므로 모든 악독과 모든 기만과 외식과 시기와 모든 비방하는 말을 버리고”라고 했습니다.
여기 “버리고”라는 말은 앞서서 설명을 했듯이 “옷을 벗어 버리다”에서 온 말입니다.
낡고 지저분한 헌 옷을 벗어서 멀리 던져 버리는 것처럼 우리의 모든 죄악된 행동들을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죄악된 행동들을 벗어버리기 전에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지니고 있는 죄의 습성들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구약성경에는 우리가 바르게 알고 지켜야 할 많은 계명들과 규칙들이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이 계명들을 통해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우리가 그 계명들에 비추어 보아서 흉악한 죄인임을 아는 것입니다.
아무리 바르게 살려고 해도 내 속에 있는 죄악은 어쩔 수가 없고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오늘날 우리도 이 율법들을 통하여 우리 스스로가 얼마나 흉악한 죄인인가 얼마나 지저분한 누더기를 입고 있는가를 먼저 발견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그 누더기를 벗어던지려고 몸부림을 치게 될 것이고 몸부림을 쳐 봐도 어쩔 수 없는 우리의 죄악된 습성을 더욱 알게 되어서 우리 주님의 십자가를 간절히 사모하고 붙잡게 될 것입니다.
1)모든 악독을 버리라.
악독이란 마음이 악하고 독살스럽다는 뜻입니다.
악한 것도 나쁜 것인데 거기에 독하기까지 하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좀 고집이 세고 지독한 성격을 가진 사람들이 있습니다.
고집이 있고 아주 강한 마음을 가지고 사는 것 자체는 나무랄 것이 없다고 봅니다.
마음이 약해 빠져가지고 아무 일도 지긋하게 하지 못하는 사람보다는 아주 굳은 결심을 하고 독하게 하는 것은 좋을 일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일에 독하면 좋겠지만 악한 일에 독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좋은 일은 하다가 쉽게 그만 두면서 악한 일에는 지독하게 끝까지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는 독종처럼 해도 됩니다.
그런데 세상 사는데 있어서 욕심을 채우는데 있어서 너무 지독하게 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악한 일이나 선한 일이나 너무 지독한 것은 좋지 않습니다.
신앙생활과 관계가 없는 이 세상일이라면 때로는 양보도 하고 때로는 손해도 보고 그렇게 사는 것이 좋습니다.
2)모든 기만을 버리라
옛날 성경에서는 ‘기만’을 ‘궤휼’이라고 했습니다.
기만이나 궤휼이나 비슷한 말입니다.
남을 속이거나, 사기를 치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을 기만 혹은 궤휼이라고 합니다.
남을 속이거나 거짓말을 하는 것은 나쁜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사람들은 이것을 그렇게 심각한 죄로 받아들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너무나 쉽게 속이고 너무나 쉽게 거짓말들을 합니다.
세상 사람들이 너무나 거짓말을 많이 하니까 무엇이 진실인지를 도무지 알 수 없는 그런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요즘 해양심층수가 그렇게 인기가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물을 음료수보다 더 비싼 값에 팔아도 잘 팔린다고 합니다.
몸에 좋은 미네랄 같은 영양분이 많다고 하니까 건강을 챙기는 사람들이 너나할 것 없이 이 해양심층수를 사다가 먹는다고 합니다.
보통 물에 있는 영양분보다 300배가 들어 있다고 하니까 엄청나게 영양분이 많은 줄 알고 사다가 먹었답니다.
그런데 소비자고발 프로에서 조사한 것을 보니까 세상에 그 물 한 병에 들어 있는 영양분 중에 마그네슘은 콩 반쪽에 있는 영양분과 같고 칼슘은 멸치대가리 하나에 들어 있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300배 이야기만 하지 그 영양분이 콩 반쪽에도 있고 멸치 대가리 하나에도 있다는 이야기는 해 주지 않는 것입니다.
3)외식을 버리라.
본문에서 외식이라는 말은 “연극을 하다, 가장하다, 꾸미다.”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말만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행동도 거짓으로 한다는 것입니다.
겉에 보이는 행동이나 속으로 먹음 마음이 일치를 해야 하는데 그렇지가 못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당시의 지도자들이었던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에게 가장 많이 꾸짖으신 말씀이 외식하는 것에 대해서였습니다.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 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마15:7-9)라고 하셨습니다.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마음은 하나님께서 멀리 떠나 있고 하나님의 말씀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것이 외식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정말로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는가를 점검해 보라는 것입니다.
교회에는 늘 오는데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가를 늘 점검해 보라는 것입니다.
예배를 억지로 형식적으로 드리면 아무 소용이 없을뿐더러 오히려 하나님의 노여움만 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4)시기를 버리라.
시기 질투를 버리라는 것입니다.
죄악된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 시기심 질투심이 많이 있습니다.
오죽하면 사촌이 논을 사도 배가 아프다고 했겠습니까?
다른 사람이 잘 하면 박수를 쳐주고 함께 기뻐해주고 축하해주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의 나라는 너무나 부요해서 다른 사람이 축복을 많이 받는다고 내가 받을 것이 없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아무리 많은 복을 받아도 내 몫은 또 따로 있습니다.
5)모든 비방의 말을 버리라.
중상모략, 비방, 험담하는 것을 버리라는 것입니다.
시기심이 많은 사람은 질투심이 많은 사람은 남이 잘 되는 것을 보기 싫어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험담을 하고 깎아내리는 것을 좋아합니다.
험담을 해서 남을 깎아 내림으로 순간적으로 기분이 좋아지기도 하겠지만 그것이 나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목하고 죄만 짓게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오히려 좋은 이야기를 해 주고 칭찬을 해주고 격려를 해 주는 것이 서로를 위해서 매우 좋은 일이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 외에도 우리가 버려야 할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가 성장해야 하는데 방해가 되는 죄악된 습성들이 우리 속에 많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이런 잘못들을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보아서 발견을 하고 하나하나 고쳐나가는 것이 우리 성도들이 평생을 통해서 해야 할 일입니다.
평생을 노력하고 애를 써도 이런 죄악들을 완전히 없애버리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죽는 그날까지 날마다 이 작업을 해야 합니다.
겸손하게 늘 나 자신의 부족함을 살펴보고 고쳐야 할 것입니다.
2.신령한 젖을 사모하라
본문 2절 말씀에 “갓난아기들 같이 순전하고 신령한 젖을 사모하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갓난아기란 문자 그대로 지금 막 태어난 아기를 말합니다.
지금 막 태어난 아기에게는 오직 엄마젖밖에 다른 것이 없습니다.
오직 엄마젖만 생각하고 그것만 바라보고 그것만 찾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 성도들은 신령한 젖인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사모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순전하고 신령한 젖으로 비유를 하고 있습니다.
순전하다는 말은 1절의 기만과 반대되는 의미로 쓴 말입니다.
세상의 모든 말이나 글들은 우리를 속이고 우리를 기만하는 말들이 많습니다.
우리를 속여서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을 빼앗거나 우리를 유혹해서 죄를 범하도록 만들거나 우리를 망하게 하는 말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그런 속임수가 전혀 없는 아주 깨끗하고 순전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시적으로 듣기에는 세상 사람들의 말이 그럴듯하고, 좋을 것 같고, 이치에 맞는 것 같고, 과학적이고 체계적인 말인 것 같지만 거기에는 속임수가 많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거짓말일수록 우리를 속이는 말일수록 우리에게 사기를 치려는 말일수록 정말 그럴듯하게 들린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가끔 성경을 보면 뭔가 잘 맞지 않은 것 같고 이해가 잘 되지 않는 것 같은 말씀들이 더러 있습니다.
꾸미지 않은 순수한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다듬지 않고 있는 그대로를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속이려고 하지 않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을 속이기 위해서 서로 짜 맞추거나 그럴듯하게 꾸미거나 조작을 하지 않은 있는 그대로 순수한 말씀인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또 이 젖은 신령한 젖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신령한 이란 앞서서 배운 “말씀” 즉 “로고스”(λογοs)와 같은 단어에서 파생된 말입니다.
로고스가 단순히 말씀으로 번역이 되지만 이 단어에는 아주 특별한 뜻이 있다고 했습니다.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그 원리와 능력을 가리키는 말로 이 로고스라는 말을 썼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 우주 만물을 운행하고 다스리는 지혜와 능력을 이 로고스라는 말로 썼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여기 신령한 젖이란 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운행해 나가시는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 있는 말씀이라는 뜻으로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이 로고스는 결국 예수님이시라고 했습니다.
로고스 즉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세상에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가 갓난아기처럼 신령한 젖을 사모해야 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사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의보혈을 사모해야 합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사모해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이 진리의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사모한다는 말은 갈망하고 그리워하고 간절히 원하는 상태를 말합니다.
목마른 사슴이 시냇물을 찾듯이 아주 간절히 애타게 찾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나라 속담에 “목마른 놈이 샘을 판다“라는 속담이 있습니다.
목이 마르지 않는 사람은 슬슬 혹시 나중을 대비해서 물을 찾지만 이미 목이 마르고 갈증이 심한 사람은 죽을힘을 다해서 물을 찾아 나선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모든 것이 풍년입니다.
먹을 것도 풍성하고 마실 것도 풍성합니다.
설교 말씀도 얼마나 풍성한지 언제라도 들을 수 있습니다.
텔레비전만 틀면 유명한 목사님들이 나와서 좋은 설교들을 많이 합니다.
그래서 간절함이 없는 것 같습니다.
먹을 것을 주어도 마실 것을 주어도 별로 좋아하지를 않습니다.
설교는 짧을수록 좋고 생략하면 더 좋아합니다.
그래서 별로 간절히 사모하지도 않습니다.
자꾸만 멀리하려고만 합니다.
그러나 진짜 우리가 들어야 할 말씀은 흔하지가 않습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우리가 꼭 알고 믿어야 하는 이신칭의의 진리는 흔하지가 않습니다.
이런 진짜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쓸데없는 세상 사람들의 경험담 재미난 이야기 들으려고 하지 말고 십자가의 복음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는 간절한 마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의 자리까지 자라게 하는 아주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3.주의 인자하심을 맛보라
본문 3절 말씀에 “너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았으면 그리하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구원의 자리에까지 이르도록 노력을 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우리가 가지고 있던 모든 죄악들을 다 버려야 된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신령한 젖 즉 우리 주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말이 그렇지 그게 그렇게 쉬운 것은 아닙니다.
이 죄악이 만연한 세상에 살면서 어찌 모든 죄악을 그렇게 쉽게 벗어던질 수가 있겠습니까?
지겹도록 듣는 설교말씀을 어떻게 시간마다 간절히 사모하면서 들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 어려운 일을 쉽게 하는 방법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는 일입니다.
우리가 주의 인자하심을 맛보기만 한다면 그보다 더 어려운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의 인자하심을 맛본다는 것은 시편 34편 8절 이하의 말씀을 인용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시34:8-10)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이 어떠한 사랑으로 우리를 사랑하시고 계시는가를 체험하게만 된다면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 어떤 사랑을 베푸셨는가를 경험하게 된다면 그 주님을 위해 어떤 일도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지 말고 그 주님의 인자하심을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사랑, 그 은혜, 그 인자하심을 한번 체험해 보시기 바랍니다.
형식적으로만 교회에 다니지 말고 정말로 죄로 얼룩진 누더기 같은 옷을 벗어서 깨끗하게 멀리 던져버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오직 주님의 말씀을 사모해 보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의 복음 이신칭의의 진리 영생의 말씀을 사모해 보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이미 의인이 되었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고 영원한 생명을 가진 씨로 거듭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런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해야 할 일은 우리가 그 구원에 이르도록 성장을 하려고 노력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냥 아무렇게나 살면 안 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구원의 중요성을 알고 그 구원에 완성되도록 노력을 해야 됩니다.
구원에 이르도록 자라야 한다는 이 말씀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모든 악독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사모해야 된다고 했습니다.
악한 것을 늘 버리고 신령한 하나님의 말씀을 늘 사모하고 그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