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3. 29.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전 12)
본문 : 벧전 1:20-21
제목 : 하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소망.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어려운 일을 당했는데도 걱정을 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사는 사람을 보고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너는 뭘 믿고 그렇게 걱정도 안 해, 넌 뭘 믿고 그렇게 당당해, 뭔가 믿는 구석이 있긴 있는 모양이네…….
뭔가 믿을 것이 있고 의지할 데가 있는 사람은 어려움을 당해도 당당하게 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이런 믿을 데가 없고 의지할 데가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자식도 없고, 친구도 없고, 어려움을 당해도 도와줄 사람도 없고 나 자신을 믿고 맡길만한 사람이 없는 사람이 참 불행한 사람입니다.
또 장래에 대한 소망이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지만 소망이 없이 절망 속에서 사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뭔가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사람과 꿈도 없이 소망도 없이 그저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과의 차이는 엄청난 차이가 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 믿음과 소망에 관한 말씀입니다.
믿음이 있되 누구를 믿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믿을 수 없는 사람을 믿다가 낭패를 당하는 사람이 많고 믿지 말아야 할 것을 믿고 있다가 실망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있되 그 소망이 참된 소망인지 헛된 소망인지를 구별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을 가졌거나, 이루어졌다고 할지라도 그 이룬 소망이 별 볼일이 없는 일이라고 한다면 낭패를 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을 하시기를 우리가 가진 믿음은 하나님 안에 있는 믿음이요 우리가 가진 소망도 하나님 안에 있는 소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소망이 진짜 믿음이요 참된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1.창세전부터 준비 된 것입니다.
본문 20절 말씀에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바 되신 이나”라고 했습니다.
‘미리 알린바 되었다’는 말은 그렇게 준비되고 계획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과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갖게 된 것입니다.
그 예수님은 창세전에 이미 준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천국의 소망을 가지게 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마련된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예수님을 통하여 그 일을 하시도록 미리 선택을 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을 받은 것도 창세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를 지실 것도 이미 창세전에 계획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창세전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이전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이 생기기도 전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실 줄 아셨고 어떻게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줄을 일일이 다 아셨는지 참으로 신비합니다.
우리가 가진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말씀이고 또 생각하기 따라서는 오해의 소지도 많은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기도 전에 이미 타락을 할 줄도 아셨을까?
그렇다면 그런 인간을 왜 만드셨을까?
타락하지 못하도록 만드시지 왜 이렇게 타락이나 하고 죄나 짓도록 인간을 만드셨을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이런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고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훨씬 더 많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말씀에서 창세전이라는 시간의 개념보다 여러 가지의 의미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에베소서 1:4절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는 말씀을 배울 때 이 창세전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말씀을 다시 한 번 반복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선택의 확실성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면 먼저 온 사람부터 줄을 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새치기를 하면 왜 당신이 늦게 와서 앞에 서려고 합니까? 라고 합니다.
그러면 아니요, 나는 한 시간 전부터 왔었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제부터 왔소. 아니오, 나는 10년 전부터 여기 있었소. 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일이 어제그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 옛날부터 미리미리 정해놓은 확실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아예 우리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이 세상이 생기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선택을 하시고 이 세상을 시작하셨으니 우리의 선택은 너무나 확실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그렇게 확실하게 선택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일에 쓰임 받도록 선택을 하신 일도 그 어떤 일보다 확실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2)구원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할 때에 중요한 일부터 먼저 합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은 다음으로 미루기도 하지만 꼭 해야 할 일은 우선적으로 해야 안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전에 선택을 하셨다는 것은 구원 받을 자로 선택을 받는 일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 주는 말씀입니다.
다른 것은 다 대강 적당히 해도 이 구원을 받는 일에 대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우리가 생각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최우선적으로 그 일을 계획하시고 그 일에 쓰임 받을 자를 선택하시고 그 일을 통하여 구원을 받을 자도 미리 선택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3)우리의 삶과 무관하게 선택하셨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시지만 우리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 마음대로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가 착할 것을 미리 아시고 선택을 하셨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로봇처럼 만드시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생각을 가지고 우리의 의지를 가지고 우리가 선택을 하고 우리가 행동을 하도록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를 미리 알고 선택을 하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깨끗할지 더러울지 생각을 하시지 않고 선택을 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모든 인간은 죄인이요 스스로 깨끗할 수 없다는 것을 미리 아시고 스스로 의인이 될 수 없는 사람들 중에서 그 죄와 관계없이 구원 받을 자를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4)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에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실 권한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면 그 상대방의 조건에 따라서 이렇게 해 주시고 저렇게 하면 또 그렇게 바꾸시고 하실 의무가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마치 토기장이가 흙을 가지고 어떤 때는 귀한 그릇을 만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천한 그릇을 만들기도 하고 어떤 때는 기분 나쁘면 만들다 깨어 버리기도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무 일이나 마음대로 하실 수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나무가 목수보고 왜 당신은 나를 젓가락으로 만들었소. 왜 당신은 나를 지팡이로 만드셨소. 라고 불평을 할 수 없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일에 대해서도 인간들이 왜 나를 선택하시지 않으셨느냐고 항의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편에서 왜 하나님께서 꼭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게 하셨느냐고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시든지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는 것이고 우리는 그렇게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천국의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미리 알리신 것입니다.
이 일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최우선적으로 가장 소중하게 이 일을 계획하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이 일을 즉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는 것과 그로인하여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을 그 무엇보다도 더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중요하게 여기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2.말세에 우리를 위하여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소망은 말세에 우리를 위하여 나타내신 것입니다.
말세라는 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의 종말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학적으로 말세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때부터 다시 오실 때까지를 말세라고 합니다.
창세전에 계획하신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이제 드디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시작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보통 종교들은 어떤 철학적 사상에서 나온 것이거나 깨달음이나 개인적인 신념을 가지고 만든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믿음과 소망은 하나님께서 제일 우선적으로 계획을 세우시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역사 속에서 실제적으로 그 일을 진행하셨고 그 진행과정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신 확실한 것입니다.
창세전에 이 일을 위하여 계획하신 대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저 미개한 나라 오지까지도 예수님의 복음이 이미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모든 세계만민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다 들어 보았습니다.
저 지구 한쪽 구석에서 내가 구세주다. 라고 외치는 그런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우리나라에도 자칭 구세주들이 참 많습니다.
안상홍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자기가 예수님이라고 떠들고 다니는데 또 거기에 속아서 넘어가는 사람도 많다고 하니까 이상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하러 오신 메시야라는 것은 이 세상에 실제로 일어난 일들 가운데서 수많은 증거들을 통해서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런 확실한 사실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다시 살리신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은 부활과 승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심 이 세상을 심판할 심판주가 되게 하심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님만을 하나님께로 나아올 수 있는 유일한 길로 지정을 하셨고 그를 믿는 자에게 큰 은혜를 베푸시기로 하셨습니다.
때로는 이런 역사적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왜 이런 방법을 사용하셨을까 라는 의구심을 가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뭔가 좀 더 고상한 방법으로 철학적으로 도덕적으로 우리가 100% 이해를 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하시지 않으셨음에 대해서 의아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이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신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죄에서 구원을 받고 영원한 천국의백성이 되는 일에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라고 하셔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만 가지면 된다는 데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일에 참여만 하면 된다는데 어려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믿음을 소중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을 통한 소망을 소중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3.참된 믿음과 소망은 하나님 안에만 있습니다.
본문 21절에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믿음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을 말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그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분이십니다.
사람은 믿을만한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믿을 것이 못됩니다.
오직 하나님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만 우리가 믿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의 말이나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너무 믿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나중에는 그것이 사람의 계획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거짓말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기 위해서 제일먼저 사용한 것이 거짓말입니다.
거짓말로 우리를 속여서 먹지 말아야 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게 한 것입니다.
그 열매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거짓말에 속아서 우리의 신세가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남도 믿을 것이 못되지만 나 자신도 스스로를 믿을 것이 못됩니다.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그렇게 되지를 않더라는 것입니다.
이번 일은 틀림없어 꼭 이루고 말거야 라고 다짐을 한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새해가 될 때만다 결심을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생각대로 되면 결심하고 계획한 대로 된다면 뭘 걱정을 하겠습니까?
우리가 믿고 의지할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이 귀하다고 하는 것은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실망이나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의 믿음은 우리를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 믿음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날 대신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그 보혈의 공로를 믿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의로운 사람이 되는 기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가진 자만 의롭다고 하십니다.
다른 모든 행위들은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그 믿음으로만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여러 가지의 믿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기도하면 만사가 잘 되고 기도하면 건강도 하고 기도하면 부자도 되고 하는 그런 믿음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 믿음으로 원하는 것들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런 믿음도 없이 힘들고 어렵게 살지는 마십시오.
그러나 반드시 꼭 이것만은 가져야할 믿음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만은 어떻게 하든지 잘 간직하고 소중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이 믿음만이 여러분을 구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망도 하나님 안에 있는 소망만이 참된 소망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소망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가지는 소망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하셨고 그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게 해 주실 것이라는 소망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사람은 그 소망하는 바를 이루고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아동센터 구호가 “꿈꿀 수만 있다면”입니다.
희망을 가지고 목표를 가지고 꿈을 가지고 살 수만 있다면 그렇지 않고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꿈이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비현실적인 꿈들도 많이 있습니다.
평생 꿈만 꾸다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일생을 마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또 막상 그 꿈을 이루었다고 할지라고 그 앞에는 오르지 못할 더 큰 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공한 후에 자살로 일생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내가 중요하다고 세운 그 목표가 막상 이루고 보면 내가 생각했던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이 길을 오지 말았을 것을 하고 후회를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있는 이 소망은 정말로 참된 소망이요 꼭 이루어지고 말 확실한 소망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이 소망은 절대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이 소망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가 아무 것도 믿을 것이 없는 이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을 아시고 특별한 믿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참된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이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 벧전 1:20-21
제목 : 하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소망.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 너희는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어려운 일을 당했는데도 걱정을 하지 않고 아무렇지도 않은 것처럼 사는 사람을 보고 이런 이야기를 합니다.
너는 뭘 믿고 그렇게 걱정도 안 해, 넌 뭘 믿고 그렇게 당당해, 뭔가 믿는 구석이 있긴 있는 모양이네…….
뭔가 믿을 것이 있고 의지할 데가 있는 사람은 어려움을 당해도 당당하게 살 수가 있을 것입니다.
세상에서 제일 불쌍한 사람은 이런 믿을 데가 없고 의지할 데가 없는 사람일 것입니다.
자식도 없고, 친구도 없고, 어려움을 당해도 도와줄 사람도 없고 나 자신을 믿고 맡길만한 사람이 없는 사람이 참 불행한 사람입니다.
또 장래에 대한 소망이 있는 사람은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지만 소망이 없이 절망 속에서 사는 사람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입니다.
뭔가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사람과 꿈도 없이 소망도 없이 그저 하루,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과의 차이는 엄청난 차이가 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 믿음과 소망에 관한 말씀입니다.
믿음이 있되 누구를 믿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믿을 수 없는 사람을 믿다가 낭패를 당하는 사람이 많고 믿지 말아야 할 것을 믿고 있다가 실망을 하는 사람들이 참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망이 있되 그 소망이 참된 소망인지 헛된 소망인지를 구별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이루어질 수 없는 소망을 가졌거나, 이루어졌다고 할지라도 그 이룬 소망이 별 볼일이 없는 일이라고 한다면 낭패를 당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을 하시기를 우리가 가진 믿음은 하나님 안에 있는 믿음이요 우리가 가진 소망도 하나님 안에 있는 소망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믿음과 소망이 진짜 믿음이요 참된 소망이라는 것입니다.
1.창세전부터 준비 된 것입니다.
본문 20절 말씀에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바 되신 이나”라고 했습니다.
‘미리 알린바 되었다’는 말은 그렇게 준비되고 계획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과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갖게 된 것입니다.
그 예수님은 창세전에 이미 준비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천국의 소망을 가지게 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마련된 것이 아니고 처음부터 하나님의 계획 속에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예수님을 통하여 그 일을 하시도록 미리 선택을 하고 계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선택을 받은 것도 창세전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를 지실 것도 이미 창세전에 계획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창세전이라는 말은 문자적으로 이 세상을 창조하시기 이전이라는 말씀입니다.
이 세상이 생기기도 전에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나실 줄 아셨고 어떻게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줄을 일일이 다 아셨는지 참으로 신비합니다.
우리가 가진 상식으로는 도저히 이해를 할 수 없는 말씀이고 또 생각하기 따라서는 오해의 소지도 많은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기도 전에 이미 타락을 할 줄도 아셨을까?
그렇다면 그런 인간을 왜 만드셨을까?
타락하지 못하도록 만드시지 왜 이렇게 타락이나 하고 죄나 짓도록 인간을 만드셨을까? 하는 여러 가지 생각들을 하게 됩니다.
우리가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이런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시고 우리가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이 훨씬 더 많으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말씀에서 창세전이라는 시간의 개념보다 여러 가지의 의미들이 포함되어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에베소서 1:4절의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라는 말씀을 배울 때 이 창세전이라는 의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 말씀을 다시 한 번 반복해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1) 선택의 확실성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무엇을 하려면 먼저 온 사람부터 줄을 섭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이 새치기를 하면 왜 당신이 늦게 와서 앞에 서려고 합니까? 라고 합니다.
그러면 아니요, 나는 한 시간 전부터 왔었습니다. 그러면 나는 어제부터 왔소. 아니오, 나는 10년 전부터 여기 있었소. 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일이 어제그제 일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주 오래 전 옛날부터 미리미리 정해놓은 확실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아예 우리들이 이 세상에 태어나기도 전에 이 세상이 생기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먼저 선택을 하시고 이 세상을 시작하셨으니 우리의 선택은 너무나 확실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그렇게 확실하게 선택하신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일에 쓰임 받도록 선택을 하신 일도 그 어떤 일보다 확실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2)구원의 중요성을 말합니다.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할 때에 중요한 일부터 먼저 합니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은 다음으로 미루기도 하지만 꼭 해야 할 일은 우선적으로 해야 안심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세전에 선택을 하셨다는 것은 구원 받을 자로 선택을 받는 일이 너무나 중요하다는 것을 알려 주는 말씀입니다.
다른 것은 다 대강 적당히 해도 이 구원을 받는 일에 대해서는 가장 우선적으로 우리가 생각을 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통한 구원이 그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기 때문에 최우선적으로 그 일을 계획하시고 그 일에 쓰임 받을 자를 선택하시고 그 일을 통하여 구원을 받을 자도 미리 선택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3)우리의 삶과 무관하게 선택하셨음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고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시지만 우리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셨기 때문에 우리 마음대로 살아가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리가 착할 것을 미리 아시고 선택을 하셨다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로봇처럼 만드시지 아니하시고 우리의 생각을 가지고 우리의 의지를 가지고 우리가 선택을 하고 우리가 행동을 하도록 만드셨기 때문에 우리가 어떤 행동을 할 것인가를 미리 알고 선택을 하신 것은 아닙니다.
우리의 삶이 깨끗할지 더러울지 생각을 하시지 않고 선택을 하신 것은 사실입니다.
오히려 반대로 모든 인간은 죄인이요 스스로 깨끗할 수 없다는 것을 미리 아시고 스스로 의인이 될 수 없는 사람들 중에서 그 죄와 관계없이 구원 받을 자를 미리 정하신 것입니다.
4)하나님의 절대주권을 말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일에 스스로 모든 것을 결정하실 권한이 있으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면 그 상대방의 조건에 따라서 이렇게 해 주시고 저렇게 하면 또 그렇게 바꾸시고 하실 의무가 있는 분이 아니십니다.
마치 토기장이가 흙을 가지고 어떤 때는 귀한 그릇을 만들기도 하고 어떤 때는 천한 그릇을 만들기도 하고 어떤 때는 기분 나쁘면 만들다 깨어 버리기도 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아무 일이나 마음대로 하실 수 있으시다는 것입니다.
나무가 목수보고 왜 당신은 나를 젓가락으로 만들었소. 왜 당신은 나를 지팡이로 만드셨소. 라고 불평을 할 수 없듯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신 일에 대해서도 인간들이 왜 나를 선택하시지 않으셨느냐고 항의를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의 편에서 왜 하나님께서 꼭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게 하셨느냐고 이의를 제기할 수 없습니다.
어떤 방법을 사용하시든지 그것은 하나님의 뜻대로 하시는 것이고 우리는 그렇게 따르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천국의 소망을 가질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미리 알리신 것입니다.
이 일이 너무나 중요하기 때문에 최우선적으로 가장 소중하게 이 일을 계획하셨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이 일을 즉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는 것과 그로인하여 천국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을 그 무엇보다도 더 우선적으로 생각하고 중요하게 여기고 사시기를 바랍니다.
2.말세에 우리를 위하여 나타내신 것입니다.
“그는 창세전부터 미리 알린바 되신 이나 이 말세에 너희를 위하여 나타내신바 되었으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소망은 말세에 우리를 위하여 나타내신 것입니다.
말세라는 말은 우리가 생각하는 세상의 종말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신학적으로 말세라는 말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때부터 다시 오실 때까지를 말세라고 합니다.
창세전에 계획하신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이제 드디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시작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보통 종교들은 어떤 철학적 사상에서 나온 것이거나 깨달음이나 개인적인 신념을 가지고 만든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믿음과 소망은 하나님께서 제일 우선적으로 계획을 세우시고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의 역사 속에서 실제적으로 그 일을 진행하셨고 그 진행과정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신 확실한 것입니다.
창세전에 이 일을 위하여 계획하신 대로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이라면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 별로 없을 것입니다.
저 미개한 나라 오지까지도 예수님의 복음이 이미 들어가고 있기 때문에 모든 세계만민들이 예수님의 이름을 다 들어 보았습니다.
저 지구 한쪽 구석에서 내가 구세주다. 라고 외치는 그런 사람들과는 다릅니다.
우리나라에도 자칭 구세주들이 참 많습니다.
안상홍인가 뭔가 하는 사람이 자기가 예수님이라고 떠들고 다니는데 또 거기에 속아서 넘어가는 사람도 많다고 하니까 이상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고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시고 예수님께서 우리를 구하러 오신 메시야라는 것은 이 세상에 실제로 일어난 일들 가운데서 수많은 증거들을 통해서 우리가 다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그런 확실한 사실을 믿는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고 십자가에서 죽임을 당하신 예수님을 하나님께서 다시 살리셨습니다.
다시 살리신 예수님을 영화롭게 하셨습니다.
영화롭게 하셨다는 것은 부활과 승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심 이 세상을 심판할 심판주가 되게 하심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예수님만을 하나님께로 나아올 수 있는 유일한 길로 지정을 하셨고 그를 믿는 자에게 큰 은혜를 베푸시기로 하셨습니다.
때로는 이런 역사적 사실이 믿겨지지 않을 때도 있을 것입니다.
때로는 왜 이런 방법을 사용하셨을까 라는 의구심을 가질 때도 있을 것입니다.
뭔가 좀 더 고상한 방법으로 철학적으로 도덕적으로 우리가 100% 이해를 할 수 있는 방향으로 하시지 않으셨음에 대해서 의아한 마음을 가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이 이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지혜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하신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죄에서 구원을 받고 영원한 천국의백성이 되는 일에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라고 하셔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만 가지면 된다는 데 하나님께서 이루어 놓으신 일에 참여만 하면 된다는데 어려울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이 믿음을 소중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이 믿음을 통한 소망을 소중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3.참된 믿음과 소망은 하나님 안에만 있습니다.
본문 21절에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믿음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로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에 대한 믿을 말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그 믿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우리가 믿을 수 있는 분이십니다.
사람은 믿을만한 대상이 되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믿을 것이 못됩니다.
오직 하나님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만 우리가 믿을 수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의 말이나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대해서 너무 믿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사람들이 일부러 거짓말을 하는 것이 아니더라도 나중에는 그것이 사람의 계획대로 되지 않기 때문에 거짓말이 되어버리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사탄이 우리를 유혹하기 위해서 제일먼저 사용한 것이 거짓말입니다.
거짓말로 우리를 속여서 먹지 말아야 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게 한 것입니다.
그 열매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서 하나님과 같이 된다는 거짓말에 속아서 우리의 신세가 이렇게 되고 말았습니다.
남도 믿을 것이 못되지만 나 자신도 스스로를 믿을 것이 못됩니다.
마음이야 굴뚝같지만 그렇게 되지를 않더라는 것입니다.
이번 일은 틀림없어 꼭 이루고 말거야 라고 다짐을 한 일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새해가 될 때만다 결심을 하는 일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생각대로 되면 결심하고 계획한 대로 된다면 뭘 걱정을 하겠습니까?
우리가 믿고 의지할 분은 하나님뿐이십니다.
우리가 가진 믿음이 귀하다고 하는 것은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 실망이나 후회가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약속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의 믿음은 우리를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고 하나님께로 나아가게 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그 믿음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날 대신 십자가에서 흘려주신 그 보혈의 공로를 믿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의롭다고 인정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는 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의로운 사람이 되는 기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믿음을 가진 자만 의롭다고 하십니다.
다른 모든 행위들은 소용이 없습니다.
오직 그 믿음으로만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살면서 여러 가지의 믿음을 가질 수가 있습니다.
기도하면 만사가 잘 되고 기도하면 건강도 하고 기도하면 부자도 되고 하는 그런 믿음도 가질 수 있습니다.
그런 믿음을 가진 사람들은 그 믿음으로 원하는 것들을 이루시기 바랍니다.
그런 믿음도 없이 힘들고 어렵게 살지는 마십시오.
그러나 반드시 꼭 이것만은 가져야할 믿음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능력을 믿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만은 어떻게 하든지 잘 간직하고 소중히 여기시기를 바랍니다.
이 믿음만이 여러분을 구원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소망도 하나님 안에 있는 소망만이 참된 소망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소망이란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가지는 소망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는 자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고 하셨고 그 영원한 생명을 가진 자들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행복하게 살게 해 주실 것이라는 소망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소망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서 노력을 하는 사람은 그 소망하는 바를 이루고 살게 될 것입니다.
우리 아동센터 구호가 “꿈꿀 수만 있다면”입니다.
희망을 가지고 목표를 가지고 꿈을 가지고 살 수만 있다면 그렇지 않고 아무렇게나 사는 사람들보다는 훨씬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꿈이 다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이루어지지 않는 비현실적인 꿈들도 많이 있습니다.
평생 꿈만 꾸다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하고 일생을 마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또 막상 그 꿈을 이루었다고 할지라고 그 앞에는 오르지 못할 더 큰 산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성공한 후에 자살로 일생을 마감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또 내가 중요하다고 세운 그 목표가 막상 이루고 보면 내가 생각했던 것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이럴 줄 알았다면 이 길을 오지 말았을 것을 하고 후회를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안에 있는 이 소망은 정말로 참된 소망이요 꼭 이루어지고 말 확실한 소망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이 소망은 절대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을 것입니다.
이 소망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가 아무 것도 믿을 것이 없는 이 세상에서 살게 될 것을 아시고 특별한 믿음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 믿음은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하는 믿음입니다.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은 하나님 안에서 참된 소망을 가지고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이 믿음과 소망을 가지고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