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4. 5.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전 13)
본문 : 벧전 1:22
제목 :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지난주에 배운 말씀대로 21절에서 하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소망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고 이어서 사랑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은 소망과 함께 교리라고 한다면 사랑은 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서신서들이 늘 이 두가지를 함께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먼저 진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이어서 그 진리를 실천하는 방안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마다 그 취향에 따라서 믿음이나 소망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를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사랑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고린도 전서 13장의 ‘사랑장’에서는 노골적으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어서 기록된 고린도전서 15장의 ‘부활장’을 읽어보면 우리가 부활의 소망을 가진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또 ‘믿음장’으로 알려진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믿음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하신 로마서 1장의 말씀도 믿음의 중요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를 따질 수 없는 서로 붙어 있는 것이며 함께 다 중요한 것입니다.
믿음이 나무의 뿌리라고 한다면 소망은 줄기요 사랑은 그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열매가 중요하긴 하지만 뿌리나 줄기가 없이는 열매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잘 살펴보면 믿음과 사랑 간의 관계를 좀 더 잘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 있는 형제간에 진실한 마음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을 해야 하는데 그 거짓이 없는 사랑은 진리를 순종함에서 또 영혼을 깨끗이 함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고 중요한 일인데 그러나 그 사랑이 진실한 사랑이 되려면 먼저 진리에 순종을 하고 심령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전에 가져야 될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시고 진실된 마음으로 뜨거운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진리를 순종함으로
오늘 본문 말씀에 우리가 거짓이 없는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게 되고 뜨거운 마음으로 서로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은 “너희가 진리에 순종함으로”라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참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 진리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믿음이 너무나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이 나오면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야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제일이야 무조건 믿고 따라가면 돼 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다는데 뭔 말이 많아, 성경을 잘 알고 또 기도도 많이 하는 목사님께서 말씀을 하시는데 뭘 따지긴 따져, 옛말에도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 떡을 얻어먹는다고 했잖아 그냥 순종해 라고 말합니다.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그냥 믿고 따라가겠다는데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잘 모르고 순종을 하는 것은 힘들고 위험합니다.
엉뚱하게 순종을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무조건 순종하고 따라가는 것 때문에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따라가는 사람도 있고 가다가 보면 길도 아닌 엉뚱한 곳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물어보기도 하고 따져보기도 하고 살펴보기도 하고 논리적으로 생각도 좀 해보고 그런 다음에 바른 길에 대해서 결론을 얻고 진리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고 그 진리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진리란 무엇인가?
진리에 순종을 하라고 했는데 그러면 진리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신구약 성경 66권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지만 그래놓으면 사람들이 꿈속에서 헛것을 보고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것을 진리라고 생각해 보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할 때 꼭 신구약 성경 66권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못을 박아야 합니다.
가끔 자칭 믿음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제게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합니다.
목사님 제가 기도를 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데요. 하나님께서 아파트를 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아파트를 사서 제가 부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니까 돈을 버는 법도 잘사는 법도 가끔은 특별한 방법으로 말씀을 하셔서 깨닫게 하시기도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리의 말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파트를 사서 돈을 번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 빚을 내서 아파트를 산 사람들 때문에 경제가 이렇게 위험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사람들이 다 빚내서 아파트 사고 집을 사는 바람에 온 세상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음성을 듣고 깨달음을 갖고 바르게 사는 것을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진리는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할 때는 반드시 신구약 성경 66권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진리라고 할 때는 좀 더 좁은 의미를 갖습니다.
모든 목사님들이 보편적으로 다 보는 ‘호크마’라는 종합주석책이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이 잘 인정을 안 하실 것 같아서 인용을 합니다.
그 주석 책에 의하면 진리를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진리'는 두 가지를 의미한다.
(1) 거짓과 구별된 참됨을 의미한다.
(2) 그리스도의 화육, 대속, 부활, 승천을 뜻한다.
본 절의 '진리'는 후자의 의미로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받아들며 순종함으로 깨끗하여진다.
두란노서원에서 발행한 신학사전에서는 “진리(Truth) “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신약성경에서는 헬라어로 '알레테이아'(aletheia)로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를 설명할 때 이 단어를 많이 사용하여 교리의 근거를 삼아 예수께서 성육신하신 참된 하나님이신 것을 말하고 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진리라고 할 때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신 것과 우리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과 부활하신 것과 승천하신 것을 진리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에 순종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진리에 순종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십자가의 복음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에 기록이 되었다고 해도 그 말씀이 십자가의 복음과 반대방향으로 설명이 되어 진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만이 진리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고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2)진리를 순종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진리가 십자가의 복음이라고 한다면 진리에 순종을 한다는 것은 그 십자가의 복음에 순종을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순종이란 율법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대로 율법을 지키고 절기를 지키고 각종 행사들을 지키는 것이 순종입니다.
그런 율법들을 지킬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여러 가지 계명들이나 규칙들 또 교훈들을 지킴으로 복된 삶을 살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리에 순종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의 복음에 순종한다는 것은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는가를 바르게 알고 그 십자가 앞에 엎드리는 것이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세리처럼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구속자가 필요합니다. 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2.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라고 했습니다.
너희 영혼이란 말을 어떤 성경에서는 너희 자신이라고 번역을 하기도 했고 어떤 성경에서는 심령이라고 번역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육신과 영혼 심령 모든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똑바로 사는 것이 제일 먼저 생각나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깨끗한 삶이란 정직하게 살고, 법을 지키고, 의리를 지키고, 남에게 베풀 줄 알고, 양심에 따라서 바르게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바르고 정직하게 산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그것을 깨끗하다고 보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바르게 산다고 해도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나가서 보면 깨끗하지 못하고 지저분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분적으로 보고 또 좋은 면만 보여주고 잘하는 것만 보여주니까 때로는 좋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우리의 모든 속내를 드러내어놓고 보면 너무나 나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철저하게 도덕을 지키고 법을 지킴으로 깨끗해진다는 사상에 물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깨끗하게 살아 하면 얼른 죄짓지 말고 똑바르게 살아야지 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어려서 가장 많이 듣던 말이 거짓말 하지 마 거짓말하면 지옥 가, 남의 것 탐내거나 훔치지 마 그러면 지옥 간다...., 이런 말이었습니다.
전라도 사투리로 로마서 강해를 재미있게 하는 목사님이 계셨는데 이렇게 말합니다.
야 너 이리 와봐 너 죄가 있으면 천당 가 못 가 못갑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 예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회개하면 됩니다.
그래? 그런데 네가 회개기도를 하고 나오는데 네 동생이 약을 올려서 네가 뺨을 한 대 때려버렸어 그러면 어떻게 돼 그러면 또 지옥에 가겠지요.
그러면 또 교회에 가서 회개하고 나와야 하고 죄 지으면 또 회개하고 만약에 미쳐 죄를 지었는데 회개를 못하고 있는 순간에 예수님이 다시 오시거나 네가 죽으면 너는 지옥에 가야하니?.....
행위로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하려는 사람의 어리석음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노력을 하여서 하나님께 깨끗한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을 자신이 있는 사람은 그렇게 노력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해 보시다가 잘 안되시면 얼른 바꾸시기 바랍니다.
괜히 노력을 해도 되지 않는 일을 가지고 시간만보내지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교만한 사람으로 찍혀서 하나님의 진노를 사지 말고 겸손하게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여기 깨끗하게 한다는 말은 “세례”를 뜻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깨끗하게 하여'와 다음 절의 '거듭난'이 모두 완료 시상으로 과거에 단회 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시사하기 때문입니다.
세례를 받을 때 우리는 나 자신이 죄임임을 고백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지하여야만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을 고백하고 그 예수님을 믿고 따르겠습니다. 라고 서약을 합니다.
꼭 세례를 받을 그 때에 우리가 깨끗하여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믿음의 고백을 통해서 우리가 깨끗한 사람 의인이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미 깨끗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깨끗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다시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면서 살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때로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다시 죄인이 되거나 다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세례를 받거나 다시 의로운 사람으로 거듭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진리에 순종을 하는 것과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같은 의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리에 순종을 하는 것도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도 예수님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깨끗한 사람이 되는 것은 모든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진리의 핵심입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고 해도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고 해도 이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사람이 될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잘 되지도 않는 일을 억지로 무리하게 하지 말고 차라리 얼른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십자가를 붙드시기 바랍니다.
3.거짓이 없는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라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라.”라고 했습니다.
오늘날처럼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 시대도 없었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잘 알지도 못하는 손님보고 고객님 사랑합니다. 라고 인사를 할 정도로 사랑이라는 말을 흔하게 듣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사랑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사랑과는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들처럼 그저 형식적으로 거짓말로 사랑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이 없이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의 사랑은 아가페사랑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런 마음으로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진리에 순종함으로 하게 되는 사랑도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영혼을 깨끗하게 함으로 하게 되는 사랑도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성도가 이 세상에 살면서 서로 나누어야 할 참 사랑의 모델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면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사랑이 우리가 본받고 따라가야 할 사랑의 모델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내일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고난주간이 되면 사람들이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고 금식을 하거나 고행을 함으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을 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필리핀에서는 해마다 예수님처럼 손에다가 못을 박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런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고행을 하고 금식을 하고 수천 수만 명이 십자가에 못을 박고 죽임을 당한다고 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 십자가에서의 고통으로 의미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하는 것에 관심을 두는 것도 좋은 일일 것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르게 아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 속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엄청난 능력을 바르게 이해를 해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통에 대해서 흉내를 내려고 하지 말고 그 사랑을 바르게 알고 그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고난 주간이 되면 그 사랑을 실천해 보는 주간으로 삼고 참된 사랑을 한번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자기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자기의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주는 사랑 그 사랑이 우리가 본받아야 할 아가페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먼저 베풀어 주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아직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었을 때 우리가 아직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죄인이었을 때 먼저 손을 내밀고 우리에게 다가와 주신 사랑입니다.
당신이 먼저 잘하면 나도 잘하겠다고 기다리지 말고 상대방이 잘못을 했더라도 먼저 손을 내미는 그런 사랑을 한번 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을 주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꼴랑 작은 선물 하나 주면서 생색을 내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생의 면류관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필요도 없는 것 있으나 마나 한 것 주면서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내게 있는 소중한 것으로 형제를 사랑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리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진리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 진리 그 십자가의 복음에 순종을 하시기 바랍니다.
영혼을 깨끗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것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의 의지하여 즉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진리를 알고 따르는 사람이라면 형제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본문 : 벧전 1:22
제목 :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서로 사랑하라.”
지난주에 배운 말씀대로 21절에서 하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소망에 대해서 말씀을 하시고 이어서 사랑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믿음과 소망과 사랑은 서로 떼려야 뗄 수 없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믿음은 소망과 함께 교리라고 한다면 사랑은 실천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모든 서신서들이 늘 이 두가지를 함께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먼저 진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이어서 그 진리를 실천하는 방안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사람들마다 그 취향에 따라서 믿음이나 소망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를 하는 사람도 있고 또 어떤 사람은 사랑이 더 중요한 것이라고 강조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여러분이 잘 아시는 고린도 전서 13장의 ‘사랑장’에서는 노골적으로 믿음과 소망과 사랑 중에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어서 기록된 고린도전서 15장의 ‘부활장’을 읽어보면 우리가 부활의 소망을 가진 것 보다 더 중요한 것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또 ‘믿음장’으로 알려진 히브리서 11장을 보면 믿음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는 확신을 가지게 됩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하신 로마서 1장의 말씀도 믿음의 중요성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믿음과 소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를 따질 수 없는 서로 붙어 있는 것이며 함께 다 중요한 것입니다.
믿음이 나무의 뿌리라고 한다면 소망은 줄기요 사랑은 그 열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열매가 중요하긴 하지만 뿌리나 줄기가 없이는 열매도 없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잘 살펴보면 믿음과 사랑 간의 관계를 좀 더 잘 이해를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교회 안에 있는 형제간에 진실한 마음으로 서로 뜨겁게 사랑을 해야 하는데 그 거짓이 없는 사랑은 진리를 순종함에서 또 영혼을 깨끗이 함에서 온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서로 사랑을 하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올바른 일이고 중요한 일인데 그러나 그 사랑이 진실한 사랑이 되려면 먼저 진리에 순종을 하고 심령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 전에 가져야 될 것이 무엇인가를 살펴보시고 진실된 마음으로 뜨거운 마음으로 서로 사랑하시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진리를 순종함으로
오늘 본문 말씀에 우리가 거짓이 없는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게 되고 뜨거운 마음으로 서로 사랑할 수 있게 된 것은 “너희가 진리에 순종함으로”라는 조건이 붙어 있습니다.
참된 사랑을 하기 위해서는 진리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 진리에 순종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믿음이 너무나 좋은 것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말씀이 나오면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야 하나님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하는 것이 제일이야 무조건 믿고 따라가면 돼 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셨다는데 뭔 말이 많아, 성경을 잘 알고 또 기도도 많이 하는 목사님께서 말씀을 하시는데 뭘 따지긴 따져, 옛말에도 어른 말을 들으면 자다가 떡을 얻어먹는다고 했잖아 그냥 순종해 라고 말합니다.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그냥 믿고 따라가겠다는데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런데 잘 모르고 순종을 하는 것은 힘들고 위험합니다.
엉뚱하게 순종을 할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 무조건 순종하고 따라가는 것 때문에 내가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따라가는 사람도 있고 가다가 보면 길도 아닌 엉뚱한 곳으로 가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물어보기도 하고 따져보기도 하고 살펴보기도 하고 논리적으로 생각도 좀 해보고 그런 다음에 바른 길에 대해서 결론을 얻고 진리가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고 그 진리에 순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1)진리란 무엇인가?
진리에 순종을 하라고 했는데 그러면 진리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진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신구약 성경 66권이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모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지만 그래놓으면 사람들이 꿈속에서 헛것을 보고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을 하고 그것을 진리라고 생각해 보리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할 때 꼭 신구약 성경 66권에 나와 있는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못을 박아야 합니다.
가끔 자칭 믿음이 좋다고 하는 사람들이 제게 자랑스럽게 이야기를 합니다.
목사님 제가 기도를 하다가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는데요. 하나님께서 아파트를 사라고 하셨어요. 그래서 아파트를 사서 제가 부자가 되었습니다.
물론 그럴 수도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니까 돈을 버는 법도 잘사는 법도 가끔은 특별한 방법으로 말씀을 하셔서 깨닫게 하시기도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리의 말씀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아파트를 사서 돈을 번 사람도 있겠지만 지금 빚을 내서 아파트를 산 사람들 때문에 경제가 이렇게 위험하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 사람들이 다 빚내서 아파트 사고 집을 사는 바람에 온 세상이 고통을 당하고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그런 음성을 듣고 깨달음을 갖고 바르게 사는 것을 뭐라고 하겠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진리는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할 때는 반드시 신구약 성경 66권만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진리라고 할 때는 좀 더 좁은 의미를 갖습니다.
모든 목사님들이 보편적으로 다 보는 ‘호크마’라는 종합주석책이 있습니다.
제가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이 잘 인정을 안 하실 것 같아서 인용을 합니다.
그 주석 책에 의하면 진리를 이렇게 설명을 합니다.
'진리'는 두 가지를 의미한다.
(1) 거짓과 구별된 참됨을 의미한다.
(2) 그리스도의 화육, 대속, 부활, 승천을 뜻한다.
본 절의 '진리'는 후자의 의미로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받아들며 순종함으로 깨끗하여진다.
두란노서원에서 발행한 신학사전에서는 “진리(Truth) “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신약성경에서는 헬라어로 '알레테이아'(aletheia)로 사도 요한은 그리스도를 설명할 때 이 단어를 많이 사용하여 교리의 근거를 삼아 예수께서 성육신하신 참된 하나님이신 것을 말하고 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진리라고 할 때는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이 세상에 오신 것과 우리를 대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신 것과 부활하신 것과 승천하신 것을 진리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리에 순종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진리에 순종한다는 것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게 된다는 십자가의 복음에 순종한다는 것입니다.
성경말씀에 기록이 되었다고 해도 그 말씀이 십자가의 복음과 반대방향으로 설명이 되어 진다면 그것은 진리가 아닙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만이 진리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구원을 받고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이 진리입니다.
2)진리를 순종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는 진리가 십자가의 복음이라고 한다면 진리에 순종을 한다는 것은 그 십자가의 복음에 순종을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의 순종이란 율법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해주신대로 율법을 지키고 절기를 지키고 각종 행사들을 지키는 것이 순종입니다.
그런 율법들을 지킬 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습니다.
오늘날도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여러 가지 계명들이나 규칙들 또 교훈들을 지킴으로 복된 삶을 살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진리에 순종을 하는 것은 아닙니다.
십자가의 복음에 순종한다는 것은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셨는가를 바르게 알고 그 십자가 앞에 엎드리는 것이 순종하는 것입니다.
내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내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세리처럼 나는 죄인입니다. 나는 구속자가 필요합니다. 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2.영혼을 깨끗하게 하여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라고 했습니다.
너희 영혼이란 말을 어떤 성경에서는 너희 자신이라고 번역을 하기도 했고 어떤 성경에서는 심령이라고 번역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의 육신과 영혼 심령 모든 것을 가리키는 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깨끗하게 해야 한다고 하면 가장 먼저 생각나는 것이 똑바로 사는 것이 제일 먼저 생각나실 것입니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깨끗한 삶이란 정직하게 살고, 법을 지키고, 의리를 지키고, 남에게 베풀 줄 알고, 양심에 따라서 바르게 사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아무리 바르고 정직하게 산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보실 때는 그것을 깨끗하다고 보시지는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바르게 산다고 해도 하나님의 빛 가운데로 나가서 보면 깨끗하지 못하고 지저분한 삶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부분적으로 보고 또 좋은 면만 보여주고 잘하는 것만 보여주니까 때로는 좋은 사람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러나 우리의 모든 속내를 드러내어놓고 보면 너무나 나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은 철저하게 도덕을 지키고 법을 지킴으로 깨끗해진다는 사상에 물이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깨끗하게 살아 하면 얼른 죄짓지 말고 똑바르게 살아야지 라고 생각을 하게 됩니다.
우리 어려서 가장 많이 듣던 말이 거짓말 하지 마 거짓말하면 지옥 가, 남의 것 탐내거나 훔치지 마 그러면 지옥 간다...., 이런 말이었습니다.
전라도 사투리로 로마서 강해를 재미있게 하는 목사님이 계셨는데 이렇게 말합니다.
야 너 이리 와봐 너 죄가 있으면 천당 가 못 가 못갑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돼 예 교회에 가서 하나님께 회개하면 됩니다.
그래? 그런데 네가 회개기도를 하고 나오는데 네 동생이 약을 올려서 네가 뺨을 한 대 때려버렸어 그러면 어떻게 돼 그러면 또 지옥에 가겠지요.
그러면 또 교회에 가서 회개하고 나와야 하고 죄 지으면 또 회개하고 만약에 미쳐 죄를 지었는데 회개를 못하고 있는 순간에 예수님이 다시 오시거나 네가 죽으면 너는 지옥에 가야하니?.....
행위로 자기 자신을 깨끗하게 하려는 사람의 어리석음을 이야기 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노력을 하여서 하나님께 깨끗한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을 자신이 있는 사람은 그렇게 노력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해 보시다가 잘 안되시면 얼른 바꾸시기 바랍니다.
괜히 노력을 해도 되지 않는 일을 가지고 시간만보내지 말고 다른 방법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오히려 교만한 사람으로 찍혀서 하나님의 진노를 사지 말고 겸손하게 엎드리시기 바랍니다.
여기 깨끗하게 한다는 말은 “세례”를 뜻한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깨끗하게 하여'와 다음 절의 '거듭난'이 모두 완료 시상으로 과거에 단회 적으로 이루어진 것을 시사하기 때문입니다.
세례를 받을 때 우리는 나 자신이 죄임임을 고백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에 의지하여야만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을 고백하고 그 예수님을 믿고 따르겠습니다. 라고 서약을 합니다.
꼭 세례를 받을 그 때에 우리가 깨끗하여지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믿음의 고백을 통해서 우리가 깨끗한 사람 의인이 된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입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미 깨끗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다시 깨끗한 사람이 되려고 노력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다시 죄를 짓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면서 살면 되는 것입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때로는 죄를 지을 수밖에 없지만 그렇다고 다시 죄인이 되거나 다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사람이 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다시 세례를 받거나 다시 의로운 사람으로 거듭날 필요는 없다는 것입니다.
결국 진리에 순종을 하는 것과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은 같은 의미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리에 순종을 하는 것도 예수님을 믿는 것이고 자신을 깨끗하게 하는 것도 예수님을 믿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깨끗한 사람이 되는 것은 모든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진리의 핵심입니다.
아무리 똑똑한 사람이라고 해도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라고 해도 이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사람이 될 뿐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잘 되지도 않는 일을 억지로 무리하게 하지 말고 차라리 얼른 자신이 죄인임을 고백하고 십자가를 붙드시기 바랍니다.
3.거짓이 없는 사랑으로 형제를 사랑하라
“거짓이 없이 형제를 사랑하기에 이르렀으니 마음으로 뜨겁게 사랑하라.”라고 했습니다.
오늘날처럼 사랑한다는 말을 많이 하는 시대도 없었을 것입니다.
심지어는 잘 알지도 못하는 손님보고 고객님 사랑합니다. 라고 인사를 할 정도로 사랑이라는 말을 흔하게 듣습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사랑은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사랑과는 너무나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사람들처럼 그저 형식적으로 거짓말로 사랑을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거짓이 없이 진실한 마음으로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본문에서의 사랑은 아가페사랑을 말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런 마음으로 사랑을 하라는 것입니다.
진리에 순종함으로 하게 되는 사랑도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영혼을 깨끗하게 함으로 하게 되는 사랑도 예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 성도가 이 세상에 살면서 서로 나누어야 할 참 사랑의 모델은 예수님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면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사랑이 우리가 본받고 따라가야 할 사랑의 모델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내일부터 고난주간이 시작됩니다.
고난주간이 되면 사람들이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한다고 금식을 하거나 고행을 함으로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을 한다고 합니다.
심지어 필리핀에서는 해마다 예수님처럼 손에다가 못을 박는 사람도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실 그런 것은 별 의미가 없습니다.
우리가 고행을 하고 금식을 하고 수천 수만 명이 십자가에 못을 박고 죽임을 당한다고 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흉내 낼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그 십자가에서의 고통으로 의미가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아프셨을까 하는 것에 관심을 두는 것도 좋은 일일 것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 속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바르게 아는 것입니다.
그 십자가 속에 나타나 있는 하나님의 사랑의 엄청난 능력을 바르게 이해를 해야 할 것입니다.
십자가의 고통에 대해서 흉내를 내려고 하지 말고 그 사랑을 바르게 알고 그 사랑을 실천하려고 노력을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입니다.
고난 주간이 되면 그 사랑을 실천해 보는 주간으로 삼고 참된 사랑을 한번 실천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자기희생적인 사랑입니다.
자기의 목숨을 대속물로 내어주는 사랑 그 사랑이 우리가 본받아야 할 아가페 사랑입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먼저 베풀어 주는 사랑입니다.
우리가 아직 하나님과 원수가 되어 있었을 때 우리가 아직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에서 벗어나지 못한 죄인이었을 때 먼저 손을 내밀고 우리에게 다가와 주신 사랑입니다.
당신이 먼저 잘하면 나도 잘하겠다고 기다리지 말고 상대방이 잘못을 했더라도 먼저 손을 내미는 그런 사랑을 한번 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가장 귀하고 좋은 것을 주는 사랑입니다.
우리는 꼴랑 작은 선물 하나 주면서 생색을 내지만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영생의 면류관을 선물로 주셨습니다.
필요도 없는 것 있으나 마나 한 것 주면서 사랑한다고 하지 말고 내게 있는 소중한 것으로 형제를 사랑해 보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리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진리란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이 진리입니다.
그 진리 그 십자가의 복음에 순종을 하시기 바랍니다.
영혼을 깨끗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영혼을 깨끗하게 하는 것도 예수님의 십자가의 복음의 의지하여 즉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그 진리를 알고 따르는 사람이라면 형제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