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1. 24.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후4)

  본문 : 딤후 1:9

  제목 :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라라는 디모데후서의 주제를 올해 우리 교회의 표어로 삼고 한 해를 시작했습니다. 요즘같이 신앙 생활하기 어려운 시기에 우리가 믿고 따르고 있는 이 진리의 말씀 즉 이 복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자주 확인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성경 말씀 한 구절 한 구절을 면밀하게 살펴서 그 말씀 안에 있는 복음의 진리를 옳게 분별해내야 합니다. 자세하게 살피지 않으면 성경을 성경의 핵심인 복음과 다른 방향으로 해석을 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면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은 정말로 대단한 일입니다. 그냥 오다가 가다가 우연히 교회에 다니는 친구를 만나서 교회에 다니는 배필을 만나서 교회에 다니는 가정에서 태어나서 교회에 다니게 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주 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시고 지정하여 불러주셔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따라서 영원 전부터 예정하신 대로 우리를 불러주셨습니다.

 

 

  그런 부르심을 받은 우리에게 주시는 것도 정말 대단한 것입니다. 영원한 생명으로의 부르심입니다. 심판도 없고 다시 죽어 없어지지도 않고 멸망도 없이 영원토록 보존되는 영원하고 완전한 생명을 얻게 해주십니다.

 

 

  “거룩한 소명으로 부르심이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주셔서 우리가 이 귀한 자리에 오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생각해보는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본문에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라고 했습니다.

  구원이라는 말은 성경에서 제일 많이 쓰이는 말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고통당하는 인간들이 하나님께 가장 많이 호소한 것이 이 구원이었습니다. 타락하여 하나님을 떠난 인생들은 수많은 고통을 당해야만 했습니다. 그 많은 고통이 결국은 인간들이 하나님께 죄를 범하여 당하는 형벌이었습니다.

 

 

  인간들끼리 인간들 마음대로 살면 행복하게 잘 살 줄 알았는데 서로 경쟁하고 싸우면서 힘든 삶을 살아야만 했습니다. 누군가는 전쟁에 패하여 포로가 되어야 하고 누군가는 경쟁에 져서 가난한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런 고통을 당하면 하나님께 구원을 호소해야만 했습니다.

 

 

  전쟁에서 이기거나 경쟁에서 이긴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그들이 영원히 행복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일시적으로는 이겼지만 그들 역시 어쩔 수 없이 늙고 병들어서 죽어가는 인생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런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인간들을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시는 구원의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시면 인간들은 다시 하나님을 떠나서 죄에 빠지고 그 죄로 인하여 고통을 당하면 다시 하나님께서 구원해주시는 구원의 이야기가 성경의 중심입니다.

 

 

  구약성경에서 대표적인 구원의 이야기 중의 하나가 노아 시대에 홍수에서 노아 가족을 구원하신 이야기일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인간이 타락하여 죄를 저질렀을 때 하나님께서 그 모든 사람을 다 홍수로 죽게 하시고 노아와 그의 가족만 방주에 타게 해서 구원해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의 땅 가나안을 떠나 애굽으로 가서 살다가 거기서 애굽 사람들의 노예가 되었을 때 모세를 보내서 그들을 구원해서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해주셨습니다. 고통스러운 노예에서 건져내서 다시 하나님의 백성이 되게 해주신 것이 구원이었습니다.

 

 

  그들이 또다시 하나님께 죄를 범하여 이웃 나라 바벨론에 침략을 당하고 전쟁으로 거의 모든 사람이 죽임을 당하고 남은 사람들은 포로로 잡혀가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해서 포로에서 해방시키시고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이런 구원의 역사들은 타락한 인간의 모습을 보여 주시는 것이고 예수님을 통한 구원을 보여 주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타락한 인간에게는 구원이 필요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구원을 메시야를 통해서 완성하신다는 것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도 사람들은 참 비참한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나라는 로마에게 빼앗겨서 핍박받는 민족으로 살고 있었습니다. 전쟁으로 인해서 가난으로 인해서 노예로 살아야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의식주도 해결하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 불치의 병에 걸려서 신음하는 사람 특별히 귀신이 들려서 고통 속에 사는 사람도 많았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그런 비참한 삶에서 자신을 구원해줄 구주가 필요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메시야가 오시면 그런 고통 속에 있는 자신들을 구원해주실 줄로 믿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자신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 메시야이심을 믿게 하기 위해서 가난한 자에게 먹을 것을 주시고 병든 자 귀신들린 자들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런 것 역시 구원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가난한 자 병든 자를 고쳐주시는 것이 구원이 아니라 구원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시는 것이고 예수님이 메시야 즉 그리스도가 되심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구약 시대의 구원이나 예수님 당시의 그런 구원은 임시적으로 보여 주시기 위한 구원이었고 영원한 구원은 아니었습니다. 구원의 역사를 진행하시면서 구원에 관한 것들을 알게 하시기 위해서 상징적으로 보여 주신 것입니다.

 

 

  구원해 놓고 나면 또 죄를 짓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또다시 고통 속에 빠져버립니다. 불치의 병을 고쳐주시면 영원히 건강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또다시 다른 병에 걸려서 죽게 됩니다. 귀신의 종에서 놓임을 받고 자유를 얻게 해주시면 또다시 다른 것에 종이 되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래서 성경의 구원은 죄에서 죽음에서 멸망에서 구원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죄로 인한 고통에서의 구원은 임시적이고 불완전한 것이지만 죄에서의 구원은 영원하고 완전한 구원이기 때문입니다.

 

 

  다음 주에 살펴보게 되겠지만 우리가 받은 구원은 사망을 폐하시고 생명과 썩지 않는 것으로의 구원입니다.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여러 가지 어려움에서의 구원이 아니라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으로 살게 하시는 구원입니다.

 

 

  다시는 늙거나 병들거나 죽는 일이 없는 완전한 구원입니다. 다시 타락하거나 다시 사탄의 종이 되는 일이 없는 완전한 구원 영원한 구원이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구원이고 우리가 받은 구원입니다.

 

 

  이 구원을 하나님의 구원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세상의 구원하고는 다른 구원을 말합니다. 이 세상의 돈으로 권력으로 사회 제도로 사람의 도움으로 받는 그런 구원과는 다르다는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런 세상적인 구원은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 순간을 모면하는 것이지 영원한 구원은 아니기 때문입니다. 부분적으로 일시적으로 임시방편으로 어려움에서 잠시 모면하게 하는 것이지 완전하고 영원한 구원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우리의 죗값을 완전히 지불해 주신 구원입니다. 우리를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게 해주심으로 받는 구원입니다. 다시는 그 누구라도 우리를 고발하거나 정죄하거나 심판해야 할 일이 없는 완전한 의인으로 만들어주신 구원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우리가 받은 구원은 이렇게 완전한 방법으로 구원해주신 구원입니다. 이런 큰 구원을 받았다는 확신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이 구원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은이라고 했습니다.

  소명이란 부르심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나라 말에서는 소명을 임금이나 신으로부터의 부름을 소명이라고 하지만 헬라어에서는 그냥 부르심을 뜻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거룩하신 소명이라고 했습니다. 부르심은 부르심이지만 거룩하신 부르심 즉 아주 특별하신 부르심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부르심이라는 뜻입니다.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불러주심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께 나와서 구원이라는 엄청난 선물을 받을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특별한 부르심을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이라고 합니다.

 

 

  거룩하신 소명으로 부르심이란 거룩한 소명에게로 우리를 부르셨다는 말이 아니라 거룩하신 소명으로써 우리를 부르셨다는 말씀입니다. 우리를 거룩한 자리로 부르신 것은 맞지만 하나님의 부르심이 거룩하고 아주 특별하신 부르심이라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소명의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부름은 우리가 어떤 사람인가 하는 것에 좌우합니다. 착하거나 능력이 있거나 이용가치가 있는 사람을 부릅니다. 악하거나 무기력하거나 이용가치가 없는 사람은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부르심 즉 특별한 부르심은 우리의 그런 행위나 사람됨에 좌우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의 뜻에 따라 하나님 마음대로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잘난 사람을 부르시기도 하지만 못난 사람도 부르십니다. 선한 사람도 부르시지만 악한 사람도 부르십니다. 능력 있는 사람도 부르시지만 무능력한 사람도 부르십니다. 잘난 사람보다는 못난 사람을 선한 사람보다는 악한 사람을 능력 있는 사람보다는 무능력한 사람을 더 잘 부르십니다.

 

 

  이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26.형제 여러분, 하나님이 여러분을 부르셨을 때 여러분이 어떠했는지를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인간적으로 볼 때 여러분 가운데는 지혜로운 사람도 많지 않았고 유능한 사람도 많지 않았으며 가문이 좋은 사람도 많지 않았습니다. 27.그러나 하나님은 세상의 지혜로운 사람과 강한 사람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어리석고 약한 사람들을 택하시고 28.세상이 대단한 인물로 여기는 사람들을 형편없이 낮추려고 천한 사람과 멸시받는 사람과 보잘것없는 사람들을 택하셨습니다. 29.이것은 아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는 것입니다”(고전 1:26-29, 현대인성경).

 

 

 거룩하신 소명의 부르심오직 자기의 뜻과 영원 전부터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으로 부르심은 그냥 우연히 지나가다가 부르시는 그런 부르심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영원 전부터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예정된 사람을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영원 전의 시간을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 이전에 이 세상이 생기기 이전에 미리 선택하신 사람만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이 말은 우선 앞서서 말씀하신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라는 말을 더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우리의 행위대로 부르신다면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난 후에 어떻게 성장하고 어떤 삶을 사는가를 보고 불러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영원 전부터 부르심은 그런 우리의 행위나 삶에 전혀 상관하지 않고 불러주신다는 말씀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정하신 뜻대로 우리를 불러주시는 것이 거룩하신 부르심이요 특별한 부르심이라는 것입니다.

 

 

  또 영원 전부터 부르심이란 그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부르셨음을 의미합니다. 우리를 구원받을 자리로 부르시는 것은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 일입니다. 그 가장 소중한 일을 하나님께서도 가장 우선적으로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영원 전부터 부르심이란 변함이 없는 부르심을 말씀하기도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시는 부르심에는 중간에 바꾸시거나 취소하지 않으신다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기쁘신 뜻대로 한번 예정하신 것은 어떤 일이 있어도 취소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거룩하신 소명의 부르심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도 우선은 우리를 구원의 자리로 부르시는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님을 강조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종교란 사람들의 행위나 삶에 많은 관심을 가집니다. 착하게 살고 선하게 살아서 신의 노여움을 사지 않고 복을 받아서 잘 사는 것이 일반 종교의 공통점입니다.

 

 

  우리가 오랫동안 믿고 따르는 유교나 불교나 무속신앙까지도 인간의 행위에 중심을 둡니다. 기독교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유대교까지도 인간의 삶이 그 중심입니다. 그래서 오늘날의 기독교까지도 인간의 선행에 그 중심을 두려고 합니다.

 

 

  그러나 기독교의 복음은 인간의 선행에 중심을 두지 않습니다. 철저하게 하나님의 은혜에 중심을 둡니다. 인간의 선행이나 고행으로 구원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럴 수 없는 인간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주십니다.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도 인간의 행위가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라는 말을 뒷받침하는 말씀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즉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대신 죽으심으로 인해서 우리가 구원을 받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 하나님의 부르심은 아주 특별하신 부르심입니다. 사람들이 그냥 한번 불러주는 그런 부름이 아니라 아주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를 부르시기 때문에 거룩하신 부르심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영원 전부터 계획을 세우시고 우리가 그 부르심에 응답할 때까지 부르고 또 부르셔서 우리를 오늘 이 자리에 있게 하신 것입니다. 구원이라는 엄청난 것을 차지하도록 부르고 또 부르시고 애태우시며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늘 들으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안타까운 것은 이런 하나님의 부르심에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 쉽게 응답을 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좋은 것을 주시려고 이렇게 영원 전부터 계획을 세우시고 애타게 간절하게 불러주시는데도 못 들은 척하고 듣고도 차일피일하면서 오지 않습니다.

 

 

  불려와서도 저 맨 끝에서 아슬아슬하게 붙어 있습니다. 세상에 한 다리 걸치고 교회에 한 다리 걸치고 기분 나쁘면 나가고 좀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으면 다시 오고 그런 모습을 하고 사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내가 하나님 같으면 그런 사람은 부르지 않습니다. 불렀다가도 내쳐버릴 것입니다. 무슨 이익을 바라고 부르신 것도 아니고 전적으로 우리에게 큰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부르시면서도 이렇게 간절하게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하나님의 구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구원을 주시기 위해서 우리를 어떻게 불러주셨는지를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죄에서 사망에서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해주셨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구원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영원 전부터 우리를 선택하시고 가장 우선적으로 우리를 불러 주셨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우리를 불러 주셨음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족하고 못나고 별 볼 일 없는 우리를 특별히 지명하여 불러 주셨음에 감격하고 감사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