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1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삼 04)
본문 : 요삼 1:9-10
제목 :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자.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게 썼으나 저희 중에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접대하지 아니하니 이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폄론하고도 유위부족하여 형제들을 접대치도 아니하고 접대하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어쫓는도다.”
우리는 보통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돈이 얼마나 있고 지위는 무엇인가라는 것으로 평가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잘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 좋은 직업을 가지려고 하고 돈도 많이 벌고 지위도 높아지려고 노력을 합니다.
물론 세상을 살면서 좋은 직업을 가지고 돈도 많고 지위도 높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 좋은 일을 위해서 노력을 하고 사는 것이 귀한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그 사람의 지위나 돈이나 직업에 있지 않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즉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를 가지고 평가를 하고 좋아하게 됩니다.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고, 같은 수준의 일을 하고, 같은 수준의 삶을 산다고 해도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평가는 엄청 달라집니다.
좋은 일을 하는 직업을 가졌다고 그 사람들이 다 좋은 사람은 아닙니다.
세상의 직업 중에 가장 소중한 직업 중의 하나가 사회복지사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찾아다니며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돌보아 주는 직업이기 때문에 참 아름다운 직업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비록 남들이 알아주지 않고 보수도 적고 힘이 드는 직업이지만 그 일의 성격으로 보아서 참으로 보람된 일을 하는 직업입니다.
그런데 그런 귀한 일을 하는 사람도 그런 귀한 일들을 하기 위해서 그 분야의 많은 공부를 한 사람도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도 있습니다.
가끔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서 보도가 되지만 어찌 사회 복지를 담당한 사람이 오히려 어려운 사람들의 것을 착취하고 나쁜 짓을 할 수가 있을까 하는 정도로 나쁜 사람도 있습니다.
목사는 직업이라고 하기 보다는 직업 이상의 귀한 일을 하기 때문에 성직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의 영혼이 구원을 받게 하고,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하고, 이 세상에서도 보람된 일을 하게 하고, 참된 인간의 모습으로 바른 삶을 살게 해 주는 목사야 말로 참으로 귀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귀한 일을 하는 성직자들 가운데도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습니다.
목사후보생인 신학생을 뽑을 때 성경을 얼마나 아느냐 영어를 얼마나 잘 하느냐 이런 지식적인 것을 위주로 뽑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면접을 통해서 인성도 보고 신앙도 본다고 하지만 그 잠깐 동안에 사람을 바르게 파악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교의 책임 있는 교수님이 신학생들을 뽑아 놓고 나중에 신학교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을 잘 살펴보면 실망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50%정도는 야 너는 왜 신학교 왜 왔니 그만 가 봐라 라고 말하고 싶은 정도이고, 30%정도는 보통으로 그래 잘 해봐라 하는 정도이고, 나머지 20%정도만 아 너 참 잘 왔다. 너는 훌륭한 목사가 되겠다. 라고 할 수 있더라고 했습니다.
무엇이 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사는가가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이런 말씀들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늘 질문하는 말이 너는 커서 무엇이 될래? 라고만 묻습니다.
어떻게 살래 착하게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데 관심을 가지고 말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머리가 되고 출세를 하고 돈 많이 벌어라 라고만 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하는 데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그런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오늘 본문 말씀은 귀한 교훈이 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그 영혼이 잘 된 가이오와는 정 반대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디오드레베”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교회 안에 있는 성도였습니다.
당시에 성도는 참으로 귀한 존재였습니다. 요즘은 발에 밟히는 것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지만 당시는 지구상에서 몇몇 안 되는 귀한 존재였습니다.
그것도 초신자도 아닌 교회의 지도자였습니다.
교회의 주도적인 인물로 교회를 자기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교회의 개척멤버요 수석장로쯤 되는 그런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마음도 착하고 모든 사람에게 모범이 되는 좋은 사람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 교회에 순회전도자들이 찾아오면 당연히 교회의 대표로서 그 사람들을 잘 접대해서 보내는 것이 상식이지만 이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대접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한 말로 망령되이 폄론을 하고 그것도 부족하여서 접대를 하는 사람들까지 교회에서 쫓아내어 버렸다고 합니다.
그 소식을 듣고 사도 요한이 그러지 말라고 편지를 했는데도 오히려 더 악하게 행동을 하니까 요한 같이 마음 좋은 사람도 화가 나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점잖게 표현을 해서 그렇게 쓴 것이지 진짜는 “너 두고 보자 내가 가면 가만히 안 둔다. 야! 이 못된 놈아!” 이런 정도의 표현입니다.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이 이렇게 악한 사람이 된 이유를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거룩한 무리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귀한 진리를 아는 사람들이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의 비밀을 알고 영원한 천국을 향하여 가는 정말로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선하게 행동하면서 선한 일들을 많이 하면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선한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으뜸이 되려고 하는 그 마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내가 으뜸이라는 그 교만함과
내가 으뜸이 되어야 한다는 그 욕심 때문에 좋은 신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신분에 걸맞은 삶을 살지 못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 으뜸이 되고자 하는 “디오드레베”라고 하는 사람의 악한 행동을 살펴보면서 우리 속에도 있는 이 으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없애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다른 사람을 망령되이 폄론합니다.
오늘 본문 10절 말씀 중에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의 행동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폄론하고도”라고 했습니다.
여기 “폄론[貶論]”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서 “남을 깎아내려 헐뜯음. 또는 그런 말.”이라고 해석합니다.
헬라어에서의 뜻은 '허튼 소리'나 '남을 모함하는 말'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있지도 않은 거짓말을 가지고 허튼 소리로 남을 모함하고 중상모략을 하고 다른 사람을 깎아 내리고 헐뜯고 하는 아주 나쁜 행위를 말합니다.
남의 이야기 좋게 해 주지 않으려는 습성은 정도의 차이이지 우리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다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교만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좋게 평가해주면 그 순간에 나는 낮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이 잘 되면 좋은 평가를 하기 보다는 악평을 하는 것이 우리의 습성입니다.
어떤 아이가 시험을 봐서 좋은 대학에 입학을 했다고 하면 아이고 참 머리가 좋구나, 노력을 많이 했구나, 잘 됐다 축하한다, 이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 개는 원래 머리도 안 되고 노력도 안 했는데 이번에 운대가 맞아서 세상에 아는 문제만 나왔대…….
개네 엄마가 돈 써서 빽으로 넣어 준거야…….
이런 정도야 우리네 마음씨가 이러니 농담으로 듣고 흘릴만한 것이고 남 잘되는 것이 배가 아파서 하는 말이라고 그렇게 넘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때로는 내가 이런 말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내가 나쁜 사람으로 오해를 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의 나쁜 점을 말할 때도 있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다가 보니까 본의 아니게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고 나쁜 사람이라고 욕을 먹는 일도 있습니다.
그럴 때 저를 변명하려고 하니까 상대방의 나쁜 점을 말해야 하고 본의 아니게 상대방을 깎아 내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야 내가 누명을 벗고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받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니까 서로서로 나쁜 점만 들추어내게 되고 나중에는 둘 다 나쁜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은 누가 뭐라고 해도 변명을 잘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때가 되면 알아줄 날이 오겠지, 알아주지 않으면 어때 원래 나는 그보다 더 나쁜 놈인데……. 그렇게 넘어가려고 애씁니다.
우리 주변에는 악의적으로 거짓말로 남을 깎아 내리고 남을 비평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악한 사람들이 있는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다 몰아내버리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자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성도들 가운데도 은연중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을 깎아 내리는 나쁜 습성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신이 으뜸이라는 생각 때문에 자신을 기준으로 보고 자신과 같지 않은 다를 사람을 악평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남을 악평하는 그 자체도 문제가 되겠지만 더 큰 문제는 그로 인해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보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출발은, 복음에 있는 믿음의 출발은 나 자신이 나쁜 죄임임을 발견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드는 것인데 남을 나쁘게 비판하는 것은 아직 자신의 부족함을 보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나는 으뜸이 아니다, 나는 으뜸이 될 수 없는 부족한 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가질 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게 되고 진정한 믿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대접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10절 말씀에 “…….유위부족하여 형제들을 접대치도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여기 “유위부족[猶爲不足]”이라는 말은 “오히려 모자람”이라는 뜻입니다.
악한 말로 망령되이 폄론을 하고도 그것도 부족해서 형제들을 접대하지도 않고 접대하는 사람들을 내어 쫓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대접할 줄 모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존경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사람은 그 사람을 존경하고 그 사람을 대접할 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존경심이 없으면 밥 한 그릇이라도 사서 대접할 줄 모릅니다.
자기가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남을 대접하지 않습니다.
구약 신명기 28:13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알고 성도들이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 우리 자녀가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앞뒤를 잘 살펴보면 머리가 되려고 기도하고 애쓰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고 살 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머리가 되려고 내가 으뜸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오히려 다른 사람을 섬기고 오히려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가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은 자리에 두시지 않으시고 높이 올려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기독교의 황금률이라 불리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복음 7장 12절)라는 말씀이 기독교의 황금률이라고 불리어지는 말씀입니다.
3세기의 로마 황제 세베루스 알렉산데르가 이 문장을 금으로 써서 거실 벽에 붙인 데에서 이 말씀을 황금률이라고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내가 으뜸이 되려고 하면 오히려 남이 으뜸이 되게 해주라는 것입니다.
내가 존경을 받고 싶으면 먼저 다른 사람을 존경할 줄 알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고 싶은 사람은 먼저 사랑하고, 도움을 받고 싶은 사람은 먼저 도와주고, 인정을 받고 싶은 사람은 먼저 남을 인정하고, 외롭지 않고 싶은 사람은 먼저 남의 친구가 되어주고…….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말씀 중에 가장 소중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분은 없으시겠지만 혹시 여러분들 중에 자기가 제일이라는 생각 때문에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다른 사람을 대접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얼른 자신의 마음을 바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남을 대접하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가진 것이 없어서 형편이 안돼서 그렇겠지만 작은 것이라도 남에게 베풀 줄 아는 마음을 가진다면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남에게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결국은 그것이 나의 행복이 되고 나의 기쁨이 된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은 남을 대접하지 않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남을 대접하는 사람마저 대접을 하지 못하게 하고 그래도 대접을 하자 교회에서 쫓아내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으뜸이 되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다른 사람이 선한 일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하기 싫으면 남이 하는 것이라도 좋게 봐주고 잘 대접하도록 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가 하지 않는 선한 일을 남들이 하니까 배가 아파서 그 사람들을 쫓아내어 버렸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에도 가끔 그런 비슷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자신이 선한 일을 하지 않으니까 다른 사람도 선한 일을 하지 못하게 막는 사람이 있습니다.
헌금도 자기보다 많이 하지 못하게 하고 충성도 자기보다 더 많이 하지 못하게 합니다.
어떤 좋은 일을 하려고 해도 자기가 어렵다고 남도 못하게 막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자기가 선한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참 부끄러운 일이지만 남이 선한 일을 하려는데 그것을 막는 사람은 참으로 나쁜 사람입니다.
나는 형편이 어려워서 선한 일을 많이 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선한 일을 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좋은 일입니다.
오늘은 비록 나의 형편이 좋지 못하여서 다른 사람이 좋은 일을 하지만 또 내일은 나의 형편이 좋아져서 다른 사람들 보다 선한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을 대접하는 일은 참으로 선한 일입니다.
형편이 되시면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을 대접하시기를 바랍니다.
3.하나님께서는 그 으뜸이 되고자 하는 악한 일을 잊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10절 말씀에 “이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와 이서를 공부하시면서 사도요한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도인지 대강은 짐작을 하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3:14)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s나서 하나님을 알고”(요일4:7)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일4:20)
우리는 사도 요한을 사랑의 사도라고 할 만큼 그는 사랑을 강조했습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또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교회 안에 있는 형제인 디오드레베를 아주 강하게 질책을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내가 가면 네가 행한 악한 일들을 다 들쳐 내어서 강하게 문책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으뜸이 되고자 해서 남을 대접하지도 않고 대접하는 일을 방해하고 거짓말로 남을 모함하고 하는 일이 아주 악한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냥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일이 아니라 우리 성도라면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아주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해당이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우리가 행한 대로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들을 지키기 위해서 수고하고 애쓴 것들을 외면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물론 그런 상급을 바라고 우리가 바르게 살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우리가 주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이미 받은 것 외에 다른 것을 주시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조심할 것은 실컷 믿음으로 산다고 하고, 열심히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우리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을 하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것도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즉 주님께 칭찬을 많이 듣고자 하는 사람이 오히려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왕 신앙생활을 시작하셨으면
이왕 우리 주님이 살아계시고 우리의 모든 행위를 아시고 다시 오셔서 주님의 뜻대로 산 우리에게 상을 주실 것이라고 믿고 사는 성도라고 한다면 상을 받기 위해서 애를 써야 되지 않겠습니까?
상을 받기는커녕 벌을 받을 일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으뜸이 되려고 애를 쓰기 보다는 남을 대접하고 섬기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가운데는 이런 디오드레베 같은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고 서로를 대접할 줄 아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남을 비하시키고 비난하지 말고 오히려 존경하고 칭찬해줄 줄 아는 성숙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잘 했다고 칭찬을 많이 받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 요삼 1:9-10
제목 :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자.
“내가 두어 자를 교회에게 썼으나 저희 중에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 우리를 접대하지 아니하니 이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 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폄론하고도 유위부족하여 형제들을 접대치도 아니하고 접대하고자 하는 자를 금하여 교회에서 내어쫓는도다.”
우리는 보통 사람을 평가할 때 그 사람이 무엇을 하는 사람인가 돈이 얼마나 있고 지위는 무엇인가라는 것으로 평가를 합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잘난 사람으로 보이기 위해서 좋은 직업을 가지려고 하고 돈도 많이 벌고 지위도 높아지려고 노력을 합니다.
물론 세상을 살면서 좋은 직업을 가지고 돈도 많고 지위도 높으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 좋은 일을 위해서 노력을 하고 사는 것이 귀한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정작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는 것은 그 사람의 지위나 돈이나 직업에 있지 않고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 즉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를 가지고 평가를 하고 좋아하게 됩니다.
같은 직업을 가지고 있고, 같은 수준의 일을 하고, 같은 수준의 삶을 산다고 해도 그 사람이 어떤 생각을 하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사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평가는 엄청 달라집니다.
좋은 일을 하는 직업을 가졌다고 그 사람들이 다 좋은 사람은 아닙니다.
세상의 직업 중에 가장 소중한 직업 중의 하나가 사회복지사라고 생각을 합니다.
사회의 어두운 구석을 찾아다니며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돌보아 주는 직업이기 때문에 참 아름다운 직업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비록 남들이 알아주지 않고 보수도 적고 힘이 드는 직업이지만 그 일의 성격으로 보아서 참으로 보람된 일을 하는 직업입니다.
그런데 그런 귀한 일을 하는 사람도 그런 귀한 일들을 하기 위해서 그 분야의 많은 공부를 한 사람도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도 있습니다.
가끔 신문이나 방송을 통해서 보도가 되지만 어찌 사회 복지를 담당한 사람이 오히려 어려운 사람들의 것을 착취하고 나쁜 짓을 할 수가 있을까 하는 정도로 나쁜 사람도 있습니다.
목사는 직업이라고 하기 보다는 직업 이상의 귀한 일을 하기 때문에 성직이라고 합니다.
사람들의 영혼이 구원을 받게 하고, 영원한 생명을 가지게 하고, 이 세상에서도 보람된 일을 하게 하고, 참된 인간의 모습으로 바른 삶을 살게 해 주는 목사야 말로 참으로 귀한 일을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귀한 일을 하는 성직자들 가운데도 좋은 사람이 있고 나쁜 사람이 있습니다.
목사후보생인 신학생을 뽑을 때 성경을 얼마나 아느냐 영어를 얼마나 잘 하느냐 이런 지식적인 것을 위주로 뽑을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면접을 통해서 인성도 보고 신앙도 본다고 하지만 그 잠깐 동안에 사람을 바르게 파악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어떤 신학교의 책임 있는 교수님이 신학생들을 뽑아 놓고 나중에 신학교에서 생활하는 모습을 보고 그 사람을 잘 살펴보면 실망을 많이 한다고 합니다.
50%정도는 야 너는 왜 신학교 왜 왔니 그만 가 봐라 라고 말하고 싶은 정도이고, 30%정도는 보통으로 그래 잘 해봐라 하는 정도이고, 나머지 20%정도만 아 너 참 잘 왔다. 너는 훌륭한 목사가 되겠다. 라고 할 수 있더라고 했습니다.
무엇이 되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을 가지고 어떻게 사는가가 참으로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리기 위해서 이런 말씀들을 드렸습니다.
우리가 자녀들에게 늘 질문하는 말이 너는 커서 무엇이 될래? 라고만 묻습니다.
어떻게 살래 착하게 바르게 살아야 한다는데 관심을 가지고 말하지 않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머리가 되고 출세를 하고 돈 많이 벌어라 라고만 하고 인간다운 삶을 살게 하는 데는 별로 신경을 쓰지 않는 그런 시대를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런 우리들에게 오늘 본문 말씀은 귀한 교훈이 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그 영혼이 잘 된 가이오와는 정 반대의 인물이 등장합니다.
그의 이름은 “디오드레베”라고 했습니다.
이 사람은 교회 안에 있는 성도였습니다.
당시에 성도는 참으로 귀한 존재였습니다. 요즘은 발에 밟히는 것이 교회에 다니는 사람이지만 당시는 지구상에서 몇몇 안 되는 귀한 존재였습니다.
그것도 초신자도 아닌 교회의 지도자였습니다.
교회의 주도적인 인물로 교회를 자기 마음대로 좌우할 수 있는 힘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요즘말로 하면 교회의 개척멤버요 수석장로쯤 되는 그런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런 위치에 있는 사람이라면 당연히 마음도 착하고 모든 사람에게 모범이 되는 좋은 사람일 줄 알았는데 그렇지가 않았던 모양입니다.
그 교회에 순회전도자들이 찾아오면 당연히 교회의 대표로서 그 사람들을 잘 접대해서 보내는 것이 상식이지만 이 사람은 그렇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대접을 하기는커녕 오히려 악한 말로 망령되이 폄론을 하고 그것도 부족하여서 접대를 하는 사람들까지 교회에서 쫓아내어 버렸다고 합니다.
그 소식을 듣고 사도 요한이 그러지 말라고 편지를 했는데도 오히려 더 악하게 행동을 하니까 요한 같이 마음 좋은 사람도 화가 나서 이렇게 이야기 합니다.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점잖게 표현을 해서 그렇게 쓴 것이지 진짜는 “너 두고 보자 내가 가면 가만히 안 둔다. 야! 이 못된 놈아!” 이런 정도의 표현입니다.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이 이렇게 악한 사람이 된 이유를 오늘 본문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으뜸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가”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요 거룩한 무리들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귀한 진리를 아는 사람들이요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의 비밀을 알고 영원한 천국을 향하여 가는 정말로 소중한 사람들입니다.
그런 우리는 세상 사람들과 다르게 착하게 살아야 합니다.
선한 마음을 가지고 선하게 행동하면서 선한 일들을 많이 하면서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그런 선한 삶을 살지 못하는 이유 중에 하나가 으뜸이 되려고 하는 그 마음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내가 으뜸이라는 그 교만함과
내가 으뜸이 되어야 한다는 그 욕심 때문에 좋은 신분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 신분에 걸맞은 삶을 살지 못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이 으뜸이 되고자 하는 “디오드레베”라고 하는 사람의 악한 행동을 살펴보면서 우리 속에도 있는 이 으뜸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없애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다른 사람을 망령되이 폄론합니다.
오늘 본문 10절 말씀 중에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의 행동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저가 악한 말로 우리를 망령되이 폄론하고도”라고 했습니다.
여기 “폄론[貶論]”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에서 “남을 깎아내려 헐뜯음. 또는 그런 말.”이라고 해석합니다.
헬라어에서의 뜻은 '허튼 소리'나 '남을 모함하는 말'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있지도 않은 거짓말을 가지고 허튼 소리로 남을 모함하고 중상모략을 하고 다른 사람을 깎아 내리고 헐뜯고 하는 아주 나쁜 행위를 말합니다.
남의 이야기 좋게 해 주지 않으려는 습성은 정도의 차이이지 우리 모든 사람들의 마음속에 다 있는 것입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속에는 다 으뜸이 되고자 하는 교만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다른 사람들을 좋게 평가해주면 그 순간에 나는 낮아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남이 잘 되면 좋은 평가를 하기 보다는 악평을 하는 것이 우리의 습성입니다.
어떤 아이가 시험을 봐서 좋은 대학에 입학을 했다고 하면 아이고 참 머리가 좋구나, 노력을 많이 했구나, 잘 됐다 축하한다, 이러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아 개는 원래 머리도 안 되고 노력도 안 했는데 이번에 운대가 맞아서 세상에 아는 문제만 나왔대…….
개네 엄마가 돈 써서 빽으로 넣어 준거야…….
이런 정도야 우리네 마음씨가 이러니 농담으로 듣고 흘릴만한 것이고 남 잘되는 것이 배가 아파서 하는 말이라고 그렇게 넘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또 때로는 내가 이런 말을 하지 않으면 오히려 내가 나쁜 사람으로 오해를 받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남의 나쁜 점을 말할 때도 있습니다.
제가 목회를 하다가 보니까 본의 아니게 사람들에게 오해를 받고 나쁜 사람이라고 욕을 먹는 일도 있습니다.
그럴 때 저를 변명하려고 하니까 상대방의 나쁜 점을 말해야 하고 본의 아니게 상대방을 깎아 내려야 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야 내가 누명을 벗고 내가 그런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인정받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니까 서로서로 나쁜 점만 들추어내게 되고 나중에는 둘 다 나쁜 사람이 되어 버립니다.
그래서 저는 요즘은 누가 뭐라고 해도 변명을 잘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때가 되면 알아줄 날이 오겠지, 알아주지 않으면 어때 원래 나는 그보다 더 나쁜 놈인데……. 그렇게 넘어가려고 애씁니다.
우리 주변에는 악의적으로 거짓말로 남을 깎아 내리고 남을 비평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악한 사람들이 있는 세상을 우리가 살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다 몰아내버리고 아름다운 사회를 만들자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우리 성도들 가운데도 은연중에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남을 깎아 내리는 나쁜 습성을 가진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자신이 으뜸이라는 생각 때문에 자신을 기준으로 보고 자신과 같지 않은 다를 사람을 악평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남을 악평하는 그 자체도 문제가 되겠지만 더 큰 문제는 그로 인해서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보지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복음의 출발은, 복음에 있는 믿음의 출발은 나 자신이 나쁜 죄임임을 발견하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드는 것인데 남을 나쁘게 비판하는 것은 아직 자신의 부족함을 보지 못하는 데서 오는 것이기 때문에 문제가 됩니다.
나는 으뜸이 아니다, 나는 으뜸이 될 수 없는 부족한 사람이다. 라는 생각을 가질 때 예수님의 십자가를 붙들게 되고 진정한 믿음을 가지게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대접하지 않습니다.
오늘 본문 10절 말씀에 “…….유위부족하여 형제들을 접대치도 아니하고”라고 했습니다.
여기 “유위부족[猶爲不足]”이라는 말은 “오히려 모자람”이라는 뜻입니다.
악한 말로 망령되이 폄론을 하고도 그것도 부족해서 형제들을 접대하지도 않고 접대하는 사람들을 내어 쫓았다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을 대접할 줄 모르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존경할 줄 모르는 사람입니다.
다른 사람을 나보다 낫게 여기는 사람은 그 사람을 존경하고 그 사람을 대접할 줄 알게 됩니다.
그러나 존경심이 없으면 밥 한 그릇이라도 사서 대접할 줄 모릅니다.
자기가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것 때문에 남을 대접하지 않습니다.
구약 신명기 28:13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너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어떻게 알고 성도들이 자녀들을 위해서 기도할 때 “하나님 우리 자녀가 머리가 될지언정 꼬리가 되지 않게 해 주시옵소서...“라고 기도를 합니다.
그러나 이 말씀의 앞뒤를 잘 살펴보면 머리가 되려고 기도하고 애쓰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대로 순종하고 살 때 하나님께서 그렇게 해 주신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머리가 되려고 내가 으뜸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오히려 다른 사람을 섬기고 오히려 더 낮은 자리로 내려가려고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낮은 자리에 두시지 않으시고 높이 올려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기독교의 황금률이라 불리는 성경 말씀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복음 7장 12절)라는 말씀이 기독교의 황금률이라고 불리어지는 말씀입니다.
3세기의 로마 황제 세베루스 알렉산데르가 이 문장을 금으로 써서 거실 벽에 붙인 데에서 이 말씀을 황금률이라고 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내가 으뜸이 되려고 하면 오히려 남이 으뜸이 되게 해주라는 것입니다.
내가 존경을 받고 싶으면 먼저 다른 사람을 존경할 줄 알라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고 싶은 사람은 먼저 사랑하고, 도움을 받고 싶은 사람은 먼저 도와주고, 인정을 받고 싶은 사람은 먼저 남을 인정하고, 외롭지 않고 싶은 사람은 먼저 남의 친구가 되어주고…….
이렇게 하는 것이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말씀 중에 가장 소중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분은 없으시겠지만 혹시 여러분들 중에 자기가 제일이라는 생각 때문에 다른 사람을 업신여기고 다른 사람을 대접할 줄 모르는 사람이 있다면 얼른 자신의 마음을 바꾸어 보시기 바랍니다.
남을 대접하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가진 것이 없어서 형편이 안돼서 그렇겠지만 작은 것이라도 남에게 베풀 줄 아는 마음을 가진다면 참으로 행복한 사람이 될 것입니다.
남에게 베푸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하겠지만 결국은 그것이 나의 행복이 되고 나의 기쁨이 된다는 것을 아시기 바랍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오는 이 디오드레베라는 사람은 남을 대접하지 않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남을 대접하는 사람마저 대접을 하지 못하게 하고 그래도 대접을 하자 교회에서 쫓아내고 말았습니다.
자신이 으뜸이 되고자 하는 마음 때문에 다른 사람이 선한 일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하기 싫으면 남이 하는 것이라도 좋게 봐주고 잘 대접하도록 했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런데 이 사람은 자기가 하지 않는 선한 일을 남들이 하니까 배가 아파서 그 사람들을 쫓아내어 버렸습니다.
오늘날의 교회에도 가끔 그런 비슷한 일들이 일어납니다.
자신이 선한 일을 하지 않으니까 다른 사람도 선한 일을 하지 못하게 막는 사람이 있습니다.
헌금도 자기보다 많이 하지 못하게 하고 충성도 자기보다 더 많이 하지 못하게 합니다.
어떤 좋은 일을 하려고 해도 자기가 어렵다고 남도 못하게 막는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
자기가 선한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참 부끄러운 일이지만 남이 선한 일을 하려는데 그것을 막는 사람은 참으로 나쁜 사람입니다.
나는 형편이 어려워서 선한 일을 많이 하지 못하더라도 다른 사람이 선한 일을 하도록 길을 열어주는 것이 좋은 일입니다.
오늘은 비록 나의 형편이 좋지 못하여서 다른 사람이 좋은 일을 하지만 또 내일은 나의 형편이 좋아져서 다른 사람들 보다 선한 일을 더 많이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남을 대접하는 일은 참으로 선한 일입니다.
형편이 되시면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사람들을 대접하시기를 바랍니다.
3.하나님께서는 그 으뜸이 되고자 하는 악한 일을 잊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10절 말씀에 “이러므로 내가 가면 그 행한 일을 잊지 아니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요한일서와 이서를 공부하시면서 사도요한이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는 사도인지 대강은 짐작을 하셨을 것입니다.
“우리가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치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거하느니라.“(요일3:14)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s나서 하나님을 알고”(요일4:7)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요일4:20)
우리는 사도 요한을 사랑의 사도라고 할 만큼 그는 사랑을 강조했습니다.
우리 성도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하고 또 그리스도 안에 있는 형제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런 그가 교회 안에 있는 형제인 디오드레베를 아주 강하게 질책을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내가 가면 네가 행한 악한 일들을 다 들쳐 내어서 강하게 문책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가만두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으뜸이 되고자 해서 남을 대접하지도 않고 대접하는 일을 방해하고 거짓말로 남을 모함하고 하는 일이 아주 악한 일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냥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일이 아니라 우리 성도라면 반드시 하지 말아야 할 아주 중대한 문제이기 때문에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말씀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해당이 되는 말씀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시면 우리가 행한 대로 상급을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계명들을 지키기 위해서 수고하고 애쓴 것들을 외면하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물론 그런 상급을 바라고 우리가 바르게 살려고 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미 우리가 주님께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이미 받은 것 외에 다른 것을 주시지 않는다고 해도 우리는 주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조심할 것은 실컷 믿음으로 산다고 하고, 열심히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우리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일을 하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그것도 으뜸이 되고자 하는 사람이 즉 주님께 칭찬을 많이 듣고자 하는 사람이 오히려 주님께서 싫어하시는 그런 일을 하는 사람은 참으로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이왕 신앙생활을 시작하셨으면
이왕 우리 주님이 살아계시고 우리의 모든 행위를 아시고 다시 오셔서 주님의 뜻대로 산 우리에게 상을 주실 것이라고 믿고 사는 성도라고 한다면 상을 받기 위해서 애를 써야 되지 않겠습니까?
상을 받기는커녕 벌을 받을 일을 해서야 되겠습니까?
오늘 말씀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으뜸이 되려고 애를 쓰기 보다는 남을 대접하고 섬기려고 애를 쓰는 사람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가운데는 이런 디오드레베 같은 사람이 없기를 바랍니다.
오히려 나보다 남을 더 낫게 여기고 서로를 대접할 줄 아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남을 비하시키고 비난하지 말고 오히려 존경하고 칭찬해줄 줄 아는 성숙한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우리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잘 했다고 칭찬을 많이 받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