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0. 2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삼 01)
본문 : 요삼 1:1-2
제목 : 네 영혼이 잘됨같이.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삼서도 요한이서처럼 “장로는”으로 시작을 합니다.
이 서신의 저자가 장로라는 말인데 이 장로가 요한이서처럼 사도요한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습니다.
편지를 받는 사람은 요한이서에서처럼 교회가 아니라 “가이오”라는 한 개인에게 이 편지를 쓴다고 했습니다.
모든 성경말씀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 모두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믿는 우리에게는 그 형식상 누가 누구에게 썼는가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형식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늘 이 말씀도 결국은 여기 있는 우리에게 나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편지가 쓰인 그 배경이나 그 대상을 생각하면서 말씀의 의미를 바르게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서신의 첫머리에 통상적으로 하는 인사말입니다.
그러나 이 인사말을 통하여 우리가 큰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인사말 속에 우리가 깨달아야 할 귀한 교훈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편지의 수신자를 등장하는 “가이오”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본문의 가이오 말고 세 명의 가이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등장합니다.
마게도니아의 가이오라는 사람은 바울과 같이 다니던 바울의 동역 자였던 사람이었습니다.(행19:29)
더베의 가이오라는 사람도 역시 바울과 함께 한 사람으로 바울의 마지막 선교여행 때 드로아까지 갔던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바울에게 세례를 받고 바울이 고린도에 머무는 동안 온 교회의 식주인이 되어주었던 사람입니다.(고전1:14, 롬16:23)
그러나 이 세 사람 모두가 오늘 본문의 가이오와는 동명이인으로 생각이 됩니다.
본문의 가이오에 관하여는 아무 것도 알려진 사실이 없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을 따라 “영혼이 잘 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범사에 잘 되는 것과 강건한 것에 대해서 강조점을 두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중심점은 그의 영혼이 잘 되었다는 점입니다.
영혼이 잘 되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영혼이 잘 된 사람이 범사에도 잘 되고 강건하게 된다는 것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1.영혼이 잘됨같이
사도요한이 가이오에게 복을 빌면서 “네 영혼이 잘됨같이”라는 단서조항을 붙이고 있는 것을 봅니다.
영혼이 잘 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말씀입니다.
영혼이 잘 되지 않은 이 세상의 행복은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영혼이 잘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세상에서의 삶이 잘 되는 복이 아니라 저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행복 때문에 가장 중요한 영혼이 잘 되는 일을 소홀히 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 말씀을 통해서 영혼이 잘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먼저 영혼이 잘 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할 때 영혼을 생각하면 우리의 육신의 몸과 대비하여 육신이냐 영혼이냐? 라고 구별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의 영혼이 잘 된다는 의미는 우리의 몸을 구별하여 영혼이 잘 되고 육신이 못되고 하는 차원으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영혼이 잘 된 것이라는 말씀은 신앙생활을 바르게 잘 하느냐 못하느냐로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느냐, 세상의 사랑을 받느냐
천국을 향하여 가느냐. 이 세상의 행복을 위해서 사느냐
천국 가는 길을 위하여 투자하며 사느냐, 세상 잘 사는 일에 투자하며 사느냐 하는 것을 가지고 영혼이 잘 되었느냐 잘 못 되었느냐, 잘되어가고 있느냐 잘 못된 길로 가고 있느냐를 판단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몇 가지 문제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우리 자신을 한번 점검해 보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1)하나님의 사랑을 받느냐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느냐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네 영혼이 잘됨같이 라는 말을 하기 전에 사랑하는 이라는 말을 세 번이나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사랑하는 가이오”,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사랑하는 자여“라고 세 번이나 반복하여 말함으로서 요한이 가이오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가이오가 무엇을 해서 이렇게 요한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는 요한삼서를 공부하면서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그가 그이 영혼을 위하여 하는 일들이 너무나 선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이런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 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면 우리의 영혼이 잘 된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 밖에 있으면 영혼이 잘 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 되려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것인가를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 애쓰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일을 소홀히 한다면 영혼이 잘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서로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화장도 하고 애교도 부리고 음식도 잘 해주고 여러 가지 잘 해주려고 애를 씁니다.
물론 가끔 보면 그런 노력도 없이 나 사랑해 하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그래가지고 사랑을 받겠습니까?
남편들도 아내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합니다.
돈도 버는 대로 갔다가 주고 옛날에는 돈만 잘 가져다주면 그만이었는데 요즘은 같이 음식도 만들고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해줘야 사랑을 받습니다.
옛날처럼 남자라고 고함만 질렀다가는 젖은 낙엽 신세가 되고 맙니다.
자녀도 부모에게 부모도 자녀에게 형제끼리도 사로의 사랑을 받으려면 사랑받을 일을 해야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을 일도 하지 않고 사랑받기를 바라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을 받을만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다 인정하는 일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일인데 보통 노력으로 그 사랑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목숨을 바쳐서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고 해도 우주만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눈길이나 주시겠습니까?
우리끼리 서로 비교해보면 좀 잘난 사람도 있고 충성을 많이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 보시면 별로 특별히 잘나게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겠습니까?
사실 우리가 행하는 그 무엇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은 우리의 생각처럼 우리의 잘남이나 우리의 행위를 보고 사랑하시기 보다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의 부족함이나 우리의 죄나 우리의 연약함과는 관계가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즉,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이 교회 안에 있을 때, 그 안에서 신앙을 고백할 때, 그 신앙고백이 십자가를 붙잡고 있는 신앙 고백일 때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많은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복을 받는다. 기도하면 복을 받는다. 라고 말을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왜 기도를 하는지 원칙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라는 것은 알지만 그 핵심이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자기의 행위를 내세워서 자기의 선함을 내세워서 사랑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보다는 자기의 부족함을 알고 자기의 죄를 알고 자기의 연약함을 알고 십자가를 붙드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나를 구원할 유일한 것임을 알고 의지하는 사람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천국을 향하여 가느냐. 이 세상의 행복을 위해서 사느냐
영혼이 잘 된다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의 행복을 위해서 살지 않고 우리의 삶이 천국을 향하여 가고 있을 때 우리의 영혼이 잘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1절 말씀에 “참으로 사랑하는”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이라는 말로 번역을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우리말 성경이나 쉬운성경에서는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이라는 말로 번역을 했습니다.
요한이서에서도 언급을 했고 요한삼서 3,4절에도 또 언급을 하고 있듯이 우리가 진리 안에 있을 때 우리가 진리 안에서 행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성부하나님이 진리가 되시며 성자예수님이 진리요 성령님이 진리라고 했습니다. 그 삼위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의 핵심이 예수님이요, 예수님의 핵심이 십자가요 십자가의 핵심이 구원이요 구원의 핵심이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을 향하여 나아갈 때 우리의 영혼이 잘 되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즉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잡고 살 때 우리가 천국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을 때 우리의 영혼이 잘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혼이 잘됨같이“라고 할 때 ”잘 되다. “ 라는 말은 헬라어로 유오도오(ευοδοω)라는 말입니다.
이 말의 뜻은 "좋은"이라는 말과 "길"이라는 말이 합하여져서 직역을 하면 “좋은 길“이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좋은 길로 인도함을 받는다, 좋은 여행을 한다. 라는 뜻을 가졌지만 은유적으로 번영하다 성공하다. 라는 뜻을 나타내기도 하는 말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좋은 길로 가고 있다는 말은 우리의 영혼이 천국을 향하여 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천국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뒤에 나오는 “범사에 잘 되고“와 ”강건“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국으로 향하는 길로 가는 것 보다는 이 세상에서 잘 되고 강건함에 관심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의 행복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천국을 향하여 가기 위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천국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갈 때 우리의 영혼이 잘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혼이 잘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신앙생활을 위하여 투자하며 사느냐, 세상 잘사는 일에 투자하며 사느냐
진리는 아는 것으로 끝이 나서는 안 됩니다.
사도요한은 진리를 아는 것으로 기뻐한다. 라고 말하지 않고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는 소식을 듣고 기뻐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이론도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진리는 너무나 좋은 것이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 그 진리가 행하여지지 않으면 그 진리와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선한 일을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백성은 그 믿음 생활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믿음이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내속에서 항상 그냥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이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고 살기 위해서 신앙으로 살기 위해서는 노력을 많이 해야 합니다.
주일날 빠지지 않고 교회에 와서 예배에 참석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진심으로 예배를 잘 드리고 뜨겁게 찬양하고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듣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헌금을 드리고 또 몸으로 봉사를 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을 받기는 했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우리 속에 있는 이 죄성 때문에 우리 속에 있는 이 욕심 때문에 우리 속에 있는 이 게으름과 나태함 때문에 노력하기 애쓰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없습니다.
그 일에 우리가 얼마나 애를 쓰고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영혼이 잘되고 안 되고 가 결정이 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은 어떻게라도 구원을 받게 되겠지만 이왕 천국을 가려면 아주 확실하게 안전하게 가야지 이렇게 좋은 영생의 길을 가면서 그렇게 뺀들뺀들 거리면서 위태위태하게 가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이 확실하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 길로 갈 줄 믿습니다.
말은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고 하면서 막상 우리가 우리의 신앙을 위해서 얼마나 투자를 하고 삽니까?
쓰고 남은 돈 몇 푼, 쓰고 남은 시간 조금, 취미삼아 하는 봉사 몇 시간 그런 것 가지고 이 귀한 신앙생활을 위해서 투자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전적으로 신앙생활을 잘 하시기 위해서 사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 잘 하는 일에 여러분의 모든 것을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학교에 가는 일도, 직장을 구하는 일도, 결혼을 하는 일도, 돈을 버는 일도 이 신앙을 위해서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영혼이 잘 되게 하는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범사에 잘되고 강건함
사도요한이 가이오를 볼 때 영혼이 잘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도 잘되고 강건하기를 기원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바라는 것도 그와 같을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됨같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의 삶도 모든 일들이 좋은 길로 즉 번영의 길로 가게 되고 또 육신도 건강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것도 이 세상에서의 모든 일이 잘 되게 살고 또 건강하게 살다가 천국에 오기를 바라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서로 서로를 위해서 이런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천국에 가면 정말로 잘 살게 되겠지만 이 세상에서의 삶도 길다면 긴 세월을 살기 때문에 세상에서의 삶도 번성하고 건강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천국은 멀리 있고 세상은 바로 눈앞에 있기 때문에 천국을 가는 성도라고 할지라도 이 세상의 삶을 등한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의 바람이 세상의 번성함과 강건함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고생고생만 하다가 천국에 오기를 바라시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길로 가면서 건강하게 살면서 행복을 누리면서 살다가 때가 되면 천국에 오라고 하십니다.
문제는 세상에서의 잘 됨 때문에 우리가 가야할 천국 길을 놓치는 것이 문제요 걱정입니다.
세상에서의 안일함 때문에, 세상에서의 부요함 때문에, 천국의 소망을 잃어버리고 천국에 가는 길을 포기하는 사람이 될까봐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는 것을 허용하시고 계시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잘 살고 행복하고 번성한다고 해도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진리 안에서 행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문제는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타락을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생이 얼마나 간사한지 모릅니다.
조금만 환경이 바뀌어도 등 돌리는 것은 너무나 쉽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바뀌고 변해도 나는 신앙을 잘 지킬 수 있다 문제없다. 라고 장담을 하시겠지만 그건 장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되고 강건하려면 먼저 영혼이 잘 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진리를 바르게 알고 그 진리 안에서 행하고 천국을 가는 확실한 목표를 정하고 신앙생활 잘 하려고 하는 일에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할 때 그리고 나서 오는 번영과 강건함이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이 땅에서의 번성함과 강건함을 원하신다면 먼저 영혼이 잘 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영혼이 잘 되면 자연적으로 세상에서의 참된 번성과 강건함과 행복함이 여러분에게 임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사도요한이 가이오라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 그의 영혼의 잘됨과 영혼이 잘 됨과 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기를 기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이 우선 영혼이 잘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이 잘 된 것처럼 범사도 잘 되시고 몸과 마음도 건강한 삶을 사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본문 : 요삼 1:1-2
제목 : 네 영혼이 잘됨같이.
“장로는 사랑하는 가이오 곧 나의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편지하노라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
요한삼서도 요한이서처럼 “장로는”으로 시작을 합니다.
이 서신의 저자가 장로라는 말인데 이 장로가 요한이서처럼 사도요한이라는 데는 이의가 없습니다.
편지를 받는 사람은 요한이서에서처럼 교회가 아니라 “가이오”라는 한 개인에게 이 편지를 쓴다고 했습니다.
모든 성경말씀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며 하나님께서 우리 성도들 모두에게 주신 말씀이라고 믿는 우리에게는 그 형식상 누가 누구에게 썼는가는 별로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형식은 그렇다고 하더라도 오늘 이 말씀도 결국은 여기 있는 우리에게 나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다만 이 편지가 쓰인 그 배경이나 그 대상을 생각하면서 말씀의 의미를 바르게 해석하고 이해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서신의 첫머리에 통상적으로 하는 인사말입니다.
그러나 이 인사말을 통하여 우리가 큰 교훈을 받을 수 있습니다.
이 인사말 속에 우리가 깨달아야 할 귀한 교훈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에 편지의 수신자를 등장하는 “가이오”라는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는 잘 알려져 있지 않습니다.
성경에는 본문의 가이오 말고 세 명의 가이오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등장합니다.
마게도니아의 가이오라는 사람은 바울과 같이 다니던 바울의 동역 자였던 사람이었습니다.(행19:29)
더베의 가이오라는 사람도 역시 바울과 함께 한 사람으로 바울의 마지막 선교여행 때 드로아까지 갔던 사람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 사람은 바울에게 세례를 받고 바울이 고린도에 머무는 동안 온 교회의 식주인이 되어주었던 사람입니다.(고전1:14, 롬16:23)
그러나 이 세 사람 모두가 오늘 본문의 가이오와는 동명이인으로 생각이 됩니다.
본문의 가이오에 관하여는 아무 것도 알려진 사실이 없지만 오늘 본문의 말씀을 따라 “영혼이 잘 된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오늘 본문을 대하면서 범사에 잘 되는 것과 강건한 것에 대해서 강조점을 두고 생각을 합니다.
그러나 본문의 중심점은 그의 영혼이 잘 되었다는 점입니다.
영혼이 잘 되었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영혼이 잘 된 사람이 범사에도 잘 되고 강건하게 된다는 것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1.영혼이 잘됨같이
사도요한이 가이오에게 복을 빌면서 “네 영혼이 잘됨같이”라는 단서조항을 붙이고 있는 것을 봅니다.
영혼이 잘 되는 것이 그 무엇보다도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게 하는 말씀입니다.
영혼이 잘 되지 않은 이 세상의 행복은 의미가 없습니다.
오히려 영혼이 잘 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 세상에서의 삶이 잘 되는 복이 아니라 저주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세상의 행복 때문에 가장 중요한 영혼이 잘 되는 일을 소홀히 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이 말씀을 통해서 영혼이 잘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하고 먼저 영혼이 잘 되는 일에 최선을 다해야 될 줄로 믿습니다.
우리가 보통 생각할 때 영혼을 생각하면 우리의 육신의 몸과 대비하여 육신이냐 영혼이냐? 라고 구별을 합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에서의 영혼이 잘 된다는 의미는 우리의 몸을 구별하여 영혼이 잘 되고 육신이 못되고 하는 차원으로 생각해서는 안 될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에서의 영혼이 잘 된 것이라는 말씀은 신앙생활을 바르게 잘 하느냐 못하느냐로 생각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느냐, 세상의 사랑을 받느냐
천국을 향하여 가느냐. 이 세상의 행복을 위해서 사느냐
천국 가는 길을 위하여 투자하며 사느냐, 세상 잘 사는 일에 투자하며 사느냐 하는 것을 가지고 영혼이 잘 되었느냐 잘 못 되었느냐, 잘되어가고 있느냐 잘 못된 길로 가고 있느냐를 판단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이 몇 가지 문제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서 우리 자신을 한번 점검해 보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되는 것이 무엇보다도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1)하나님의 사랑을 받느냐 세상 사람들의 사랑을 받느냐
사도 요한이 가이오에게 네 영혼이 잘됨같이 라는 말을 하기 전에 사랑하는 이라는 말을 세 번이나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사랑하는 가이오”, “참으로 사랑하는 자에게“ ”사랑하는 자여“라고 세 번이나 반복하여 말함으로서 요한이 가이오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가이오가 무엇을 해서 이렇게 요한의 사랑을 받고 있는지는 요한삼서를 공부하면서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그가 그이 영혼을 위하여 하는 일들이 너무나 선하고 아름다웠기 때문에 이런 사랑을 받을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 된다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으면 우리의 영혼이 잘 된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 밖에 있으면 영혼이 잘 되지 못한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 되려면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것인가를 연구해야 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 애쓰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일을 소홀히 한다면 영혼이 잘 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서로에게 사랑을 받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사랑받기 위해서 화장도 하고 애교도 부리고 음식도 잘 해주고 여러 가지 잘 해주려고 애를 씁니다.
물론 가끔 보면 그런 노력도 없이 나 사랑해 하고 묻는 사람도 있는데 그래가지고 사랑을 받겠습니까?
남편들도 아내의 사랑을 받기 위해서 노력을 많이 합니다.
돈도 버는 대로 갔다가 주고 옛날에는 돈만 잘 가져다주면 그만이었는데 요즘은 같이 음식도 만들고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해줘야 사랑을 받습니다.
옛날처럼 남자라고 고함만 질렀다가는 젖은 낙엽 신세가 되고 맙니다.
자녀도 부모에게 부모도 자녀에게 형제끼리도 사로의 사랑을 받으려면 사랑받을 일을 해야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사랑을 받을 일도 하지 않고 사랑받기를 바라는 사람은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사랑을 받기 위해서는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사랑을 받을만한 일을 해야 한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다 인정하는 일입니다.
하물며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일인데 보통 노력으로 그 사랑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이 목숨을 바쳐서 하나님을 위해서 일한다고 해도 우주만물의 주인 되시는 하나님께서 눈길이나 주시겠습니까?
우리끼리 서로 비교해보면 좀 잘난 사람도 있고 충성을 많이 하는 사람도 있는 것 같지만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내려 보시면 별로 특별히 잘나게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면 우리가 무엇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겠습니까?
사실 우리가 행하는 그 무엇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은 우리의 생각처럼 우리의 잘남이나 우리의 행위를 보고 사랑하시기 보다는 무조건적인 사랑을 하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이기 때문에 우리의 부족함이나 우리의 죄나 우리의 연약함과는 관계가 없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십니다.
단 한 가지 조건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을 때 즉,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이 교회 안에 있을 때, 그 안에서 신앙을 고백할 때, 그 신앙고백이 십자가를 붙잡고 있는 신앙 고백일 때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을 받는 것입니다.
많은 설교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는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면 복을 받는다. 기도하면 복을 받는다. 라고 말을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이 무엇인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왜 기도를 하는지 원칙을 말해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도들이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한다. 라는 것은 알지만 그 핵심이 예수님의 십자가 복음이라는 것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은 자기의 행위를 내세워서 자기의 선함을 내세워서 사랑을 받으려고 하는 사람보다는 자기의 부족함을 알고 자기의 죄를 알고 자기의 연약함을 알고 십자가를 붙드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만이 나를 구원할 유일한 것임을 알고 의지하는 사람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천국을 향하여 가느냐. 이 세상의 행복을 위해서 사느냐
영혼이 잘 된다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의 행복을 위해서 살지 않고 우리의 삶이 천국을 향하여 가고 있을 때 우리의 영혼이 잘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1절 말씀에 “참으로 사랑하는”이라는 말이 나오는데 이 말은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이라는 말로 번역을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우리말 성경이나 쉬운성경에서는 “진리 안에서 사랑하는”이라는 말로 번역을 했습니다.
요한이서에서도 언급을 했고 요한삼서 3,4절에도 또 언급을 하고 있듯이 우리가 진리 안에 있을 때 우리가 진리 안에서 행할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입니까
성부하나님이 진리가 되시며 성자예수님이 진리요 성령님이 진리라고 했습니다. 그 삼위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했습니다.
그 말씀의 핵심이 예수님이요, 예수님의 핵심이 십자가요 십자가의 핵심이 구원이요 구원의 핵심이 천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천국을 향하여 나아갈 때 우리의 영혼이 잘 되어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때 즉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붙잡고 살 때 우리가 천국을 향하여 나아가고 있을 때 우리의 영혼이 잘되고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영혼이 잘됨같이“라고 할 때 ”잘 되다. “ 라는 말은 헬라어로 유오도오(ευοδοω)라는 말입니다.
이 말의 뜻은 "좋은"이라는 말과 "길"이라는 말이 합하여져서 직역을 하면 “좋은 길“이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좋은 길로 인도함을 받는다, 좋은 여행을 한다. 라는 뜻을 가졌지만 은유적으로 번영하다 성공하다. 라는 뜻을 나타내기도 하는 말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좋은 길로 가고 있다는 말은 우리의 영혼이 천국을 향하여 가고 있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천국으로 인도함을 받는 것보다 더 좋은 일은 없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뒤에 나오는 “범사에 잘 되고“와 ”강건“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천국으로 향하는 길로 가는 것 보다는 이 세상에서 잘 되고 강건함에 관심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의 행복에 관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교회에 와서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천국을 향하여 가기 위하여 신앙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천국을 향하여 힘차게 나아갈 때 우리의 영혼이 잘되는 것입니다.
그것이 영혼이 잘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신앙생활을 위하여 투자하며 사느냐, 세상 잘사는 일에 투자하며 사느냐
진리는 아는 것으로 끝이 나서는 안 됩니다.
사도요한은 진리를 아는 것으로 기뻐한다. 라고 말하지 않고 진리 안에서 행한다 하는 소식을 듣고 기뻐한다고 말했습니다.
아무리 좋은 이론도 실천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진리는 너무나 좋은 것이지만 우리의 삶 속에서 그 진리가 행하여지지 않으면 그 진리와 나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선한 일을 해서 구원을 받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은 백성은 그 믿음 생활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믿음이란 그냥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란 내속에서 항상 그냥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탄이 우리가 믿음으로 사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고 살기 위해서 신앙으로 살기 위해서는 노력을 많이 해야 합니다.
주일날 빠지지 않고 교회에 와서 예배에 참석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예배를 드리면서 진심으로 예배를 잘 드리고 뜨겁게 찬양하고 설교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잘 듣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헌금을 드리고 또 몸으로 봉사를 하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일이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나님의 자녀로 인정을 받기는 했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는 우리 속에 있는 이 죄성 때문에 우리 속에 있는 이 욕심 때문에 우리 속에 있는 이 게으름과 나태함 때문에 노력하기 애쓰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없습니다.
그 일에 우리가 얼마나 애를 쓰고 노력을 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영혼이 잘되고 안 되고 가 결정이 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백성은 어떻게라도 구원을 받게 되겠지만 이왕 천국을 가려면 아주 확실하게 안전하게 가야지 이렇게 좋은 영생의 길을 가면서 그렇게 뺀들뺀들 거리면서 위태위태하게 가서야 되겠습니까?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백성이 확실하다면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 길로 갈 줄 믿습니다.
말은 우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한다고 하면서 막상 우리가 우리의 신앙을 위해서 얼마나 투자를 하고 삽니까?
쓰고 남은 돈 몇 푼, 쓰고 남은 시간 조금, 취미삼아 하는 봉사 몇 시간 그런 것 가지고 이 귀한 신앙생활을 위해서 투자한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전적으로 신앙생활을 잘 하시기 위해서 사시기 바랍니다.
신앙생활 잘 하는 일에 여러분의 모든 것을 투자하시기 바랍니다.
학교에 가는 일도, 직장을 구하는 일도, 결혼을 하는 일도, 돈을 버는 일도 이 신앙을 위해서 하시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여러분의 영혼이 잘 되게 하는 일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범사에 잘되고 강건함
사도요한이 가이오를 볼 때 영혼이 잘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영혼이 잘됨같이 범사도 잘되고 강건하기를 기원한다고 했습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에게 바라는 것도 그와 같을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잘됨같이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의 삶도 모든 일들이 좋은 길로 즉 번영의 길로 가게 되고 또 육신도 건강하게 잘 살기를 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는 것도 이 세상에서의 모든 일이 잘 되게 살고 또 건강하게 살다가 천국에 오기를 바라고 계실 것입니다.
우리 모두도 서로 서로를 위해서 이런 기도를 해야 할 것입니다.
천국에 가면 정말로 잘 살게 되겠지만 이 세상에서의 삶도 길다면 긴 세월을 살기 때문에 세상에서의 삶도 번성하고 건강하게 살아야 할 것입니다.
천국은 멀리 있고 세상은 바로 눈앞에 있기 때문에 천국을 가는 성도라고 할지라도 이 세상의 삶을 등한시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많은 성도들의 바람이 세상의 번성함과 강건함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고생고생만 하다가 천국에 오기를 바라시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길로 가면서 건강하게 살면서 행복을 누리면서 살다가 때가 되면 천국에 오라고 하십니다.
문제는 세상에서의 잘 됨 때문에 우리가 가야할 천국 길을 놓치는 것이 문제요 걱정입니다.
세상에서의 안일함 때문에, 세상에서의 부요함 때문에, 천국의 소망을 잃어버리고 천국에 가는 길을 포기하는 사람이 될까봐 걱정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이 세상에서 고난을 당하는 것을 허용하시고 계시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잘 살고 행복하고 번성한다고 해도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진리 안에서 행한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문제는 등 따뜻하고 배부르면 타락을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인생이 얼마나 간사한지 모릅니다.
조금만 환경이 바뀌어도 등 돌리는 것은 너무나 쉽습니다.
다른 사람은 다 바뀌고 변해도 나는 신앙을 잘 지킬 수 있다 문제없다. 라고 장담을 하시겠지만 그건 장담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되고 강건하려면 먼저 영혼이 잘 되어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진리를 바르게 알고 그 진리 안에서 행하고 천국을 가는 확실한 목표를 정하고 신앙생활 잘 하려고 하는 일에 모든 것을 걸고 최선을 다할 때 그리고 나서 오는 번영과 강건함이 축복이 되는 것입니다.
만약에 여러분이 이 땅에서의 번성함과 강건함을 원하신다면 먼저 영혼이 잘 되는 일에 최선을 다하시기 바랍니다.
영혼이 잘 되면 자연적으로 세상에서의 참된 번성과 강건함과 행복함이 여러분에게 임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사도요한이 가이오라는 사람에게 보낸 편지를 통해서 그의 영혼의 잘됨과 영혼이 잘 됨과 같이 범사가 잘 되고 강건하기를 기원하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우리도 그와 같이 우선 영혼이 잘 되어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우리의 영혼이 잘 된 것처럼 범사도 잘 되시고 몸과 마음도 건강한 삶을 사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