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9. 28.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요이 02)
본문 : 요이 1:4-6
제목 : 진리와 사랑 그리고 계명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인사말을 통해 진리를 강조한 사도요한은 계속해서 진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서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들을 보니 심히 기쁘다고 했습니다.
진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엉뚱한 생각을 가지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많은데 이렇게 진리를 알고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기 때문에 그들을 보니 심히 기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부를 하기를 서로 사랑하자고 당부를 합니다.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알고 진리 안에서 행한다고 하면서 사랑하지 못하면 그것은 진리를 잘못 이해하고 잘못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부언해서 설명을 하기를 사랑이란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 계명은 새로운 계명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우리에게 주신 계명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진리는 사랑이고 사랑은 계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 잘못된 이단들은 진리를 알기만 하면 다 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런 이단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 진리와 사랑 그리고 계명이 다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해서 설명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도 교회 내에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생각들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엇이 진리인지 그 진리의 핵심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공의를 내세워서 사랑을 행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사랑을 행한다고 하면서 엉뚱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또 진리 즉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강조한 나머지 계명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계명을 지키는 것을 강조하여 믿음을 무시하는 경향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도 오늘 말씀 즉 진리와 사랑 그리고 계명과의 관계를 잘 정리하여 서로 연관이 되어 있으며 함께 소중히 여겨야 된다는 것을 알고 진리를 바르게 행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1.진리를 행하는 것이 심히 기쁜 일입니다.
본문 4절 말씀에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거짓에 속아서 진리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삽니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이것저것 잡다한 자기주장을 늘어놓기 때문에 무엇이 진짜인지를 모르면서 삽니다.
건강에 관한 것도 이 사람 말을 들으면 고기를 먹지 말아야 되겠고 저 사람 말을 들으면 고기를 먹는 것이 오히려 좋을 것도 같고 어떤 사람의 말을 들으면 하루 종일 웃고만 있어도 모든 병이 다 치료될 것 같고.... 별별 건강비법들이 많이 있지만 진짜 무엇이 나에게 좋은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돈을 버는 방법이나 공부를 하는 방법이나 행복하게 사는 법들을 나름대로 연구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많이 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잘 모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참 혼동이 될 때가 많습니다.
무엇이든지 기도만 하면 다 될 것 같은데 기도한다고 되는 것도 없는 것 같고
봉사하고 충성하면 복을 많이 받을 것 같지만 그런다고 금방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말씀대로 살면 금방 행복해질 것 같은데 말씀을 다 실천하지도 못하지만 조금 더 잘 지켜보려고 하면 오히려 어려운 일들이 더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복을 받아서 성공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
아니다 이 세상은 가난하게 살아야 하고 천국을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
아니다 이 세상도 잘 살고 천국도 가야 진짜다.
누구의 말에 장단을 맞춰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혼란의 시대에 살면서 참된 진리의 말씀을 알고 그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사도는 지금 그런 사람들을 보고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작은 교회의 사람들이 그것도 신앙생활을 한지 별로 오래되지도 않은 사람들이 진리를 알고 진리를 실천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기쁘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을 할 것입니다.
진리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기 때문에 진리 안에서 진리를 행하고 사는 것처럼 좋게 보이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1) 진리가 무엇인지 알려고 애를 쓰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도 지식을 쌓고 그 지식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이 참 좋은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상식 이하의 지식을 가지고 삽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것도 잘 모르고 삽니다.
길을 가다가 보면 육교 밑이나 횡단보도가 없는 위험한 곳에서도 무조건 길을 건너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때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은 깜짝깜짝 놀라면서 손가락질을 합니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그렇게 쉬운 것 가르쳐 드려도 잘 안 합니다.
제발 나쁘다고 하지 말고 잘한다고 칭찬하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옛날에 좀 배운 것이나 경험한 것 가지고 모든 사람들을 판단하고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뭐라고 합니다.
말 한마디 해도 상대방 기분 조금만 생각하고 말을 하면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일반 상식만 가지고 이야기 하는 사람보다는 과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이야기 할 때 그것이 좀 더 진리에 가까울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몸이 아프면 친구나 아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병원에는 잘 안 간다고 합니다.
의사에게 가면 좀 더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진단을 하고 약을 처방해 줄 텐데 먼저 친구를 찾아가면 친구가 무슨 이야기를 합니까?
아 그 병에는 웅담하나만 먹으면 직발이야, 홍삼을 먹으면 좋대, 산삼 한 뿌리면 만병통치야…….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은 대부분 오히려 몸에 좋지 않다고 합니다.
과학을 많이 안다고 해도 이세상의 모든 이치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과학으로 대답을 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과학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들은 철학으로 해답을 얻습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일반상식이나 과학으로 대답이 나오겠습니다.
그래서 고상한 철학으로 대답을 합니다.
인생은 하숙생이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야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것이 인생이야
그래서 이 세상에 정이나 미련을 두지 말고 살아야 해(유행가 가시지만 참 철학적인 가사입니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진리가 무엇인지 연구를 하였지만 해답이 없습니다.
아 그 때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았구나 하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지 그것이 해답이 되거나 진리가 되지 못합니다.
철학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신학으로 해결을 합니다.
인간의 상식이나 과학이나 철학은 진리를 말하지 못합니다.
오직 신학 즉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왜 기독교만 최고냐 불교나 다른 종교도 인정을 해라 신을 믿는 것은 다 같은 것이고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다 같은 것이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것이지 왜 너희들만 잘난척하느냐 말이 많습니다.
왜 우리가 그들과 다른가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달라도 다른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하루 종일 말해도 다 못할 것이지만 한 마디로 말한다면 그들의 종교는 사람들이 철학적으로 연구해서 만든 종교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진리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많이 배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배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참된 진리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그 진리를 발견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와 영원히 함께할 소중한 진리는 성경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영생이 진리입니다.
그것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천국백성이 되는 이신칭의의 교리가 진리입니다.
이 영원한 진리 우리가 꼭 붙잡아야 할 진리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이 진리와는 바꾸지 마시기 바랍니다.
2) 이 진리를 행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고, 구술이 서 말이 있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아무리 진리를 안다고 해도 그 지리 안에 거하지 않으면 그 진리를 행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교회의 맹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기도회는 많이 하는데 그 기도를 통해서 힘을 얻고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공부는 많이 하는데 그 배운 대로 실천은 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 목사님이 한 때 유행하던 성경공부를 많이 시켰다고 합니다.
베델성서, 크로스웨이, 이것저것 생기는 대로 다 시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만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성경공부를 하면 실천을 해야 하는데 머리만 커져서 남들 비판만 하고 자신은 말씀대로 살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왜 기도하십니까?
왜 성령 충만하여 능력받기를 원하십니까?
왜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습니까?
왜 진리를 사모하십니까?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진리 따라 행하기 위해서 이렇게 진리를 배우는 것이 아닙니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실천할 때 비로소 그 진리가 내 것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진리 안에서 사는 사람은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본문 5절 말씀에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더 귀한 일입니다.
너무나 몰라서 상식이하의 삶을 사는 사람도 많은데 그래도 과학보다 철학보다 더 높은 차원의 진리를 알고 그 진리 안에서 산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 진리대로 행하면서 사는 것은 더 귀한 일입니다.
진리 따라 살아갈 때 비로소 그 진리 안에 있는 좋은 것들이 나의 것이 되고 그 진리가 나에게 효력을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행함에 있어서 가장 우선되어져야 하는 것은 사랑을 행하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 진리를 행한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사랑하면서 산다는 말입니다.
진리 안에서 진리를 행하면서 산다고 해서 뭐 거창하게 삶의 방법을 정하고 고상하게 특별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사랑을 집어넣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사도는 진리 안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권면을 합니다.
“부녀여, 이제 내가 권하노니 서로 사랑하자.”라고 했습니다.
진리를 아는 것은 정말로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그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이제부터 사랑을 하면서 살자는 것입니다.
우리 고신교단은 진리의 말씀인 하나님 말씀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교단입니다.
그리고 진리를 안 사람이라면 진리를 행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교단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행함도 따라서 믿음과 행위가 일치 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 때 천황을 신으로 알고 거기에다가 참배를 하는 것은 잘못이기 때문에 하나님만 섬기라는 말씀을 진리로 알고 그 말씀에 위배되는 신사참배를 하지 않고 감옥에 갇혀서 고난을 당하기도 하고 순교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 할 또 하나를 소홀히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진리에 반드시 따라야 할 사랑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순교로서 신앙을 지킨 사람들의 후예다, 우리는 옥중성도다, 우리는 진리를 행하면서 산다. 라고 하면서 진리와 함께 해야 할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 것입니다.
공의만 앞세우고 남을 비판할 줄만 알았지 사랑으로 이해하고 용서하는 일에는 인색했습니다.
사랑을 제일로 해야 하는 교회에서 늘 비판하는 일 정죄하는 일만 앞세우고 남을 비하시키고 자기 행위를 자랑하고 잘난 척 하는 일에만 열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간곳이 없고 싸늘한 찬바람만 불어오는 것이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스럽고 따뜻한 얼굴은 없고 무섭고 사나운 얼굴만 가득하고 뭐 하나 잘못하면 사정없이 뭐라고 해서 가슴에 상처만 남게 하는 곳이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나가서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도를 해 보면 교회에 다니다가 마음에 상처를 받고 그만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교회에 다니기는 하지만 과거에 입은 상처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진리를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면서도 진리를 아는 자들이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리를 잘 살펴보면 거기에는 하나같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알면서도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를 알면서도 그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값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인간이 아닙니다. 진리를 바르게 알지 못했거나 아주 고약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교회 안에 성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은 성도 사랑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성도를 사랑하는 것은 간접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좋은데 우리 예수님은 좋은데 교회는 가기 싫고 성도들을 꼴도 보기 싫다. 라고 하는 사람은 아직 진리를 알지 못하거나 진리를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사랑을 집어넣는 것이 진리를 아는 사람들이 살아야 할 가장 기본이 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하든지 사랑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야기 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진심으로 위로하고 도와줄 때 비로소 우리가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천사의 말을 하고,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고,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한다고 해도 거기에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3.사랑은 우리가 계명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본문 6절 말씀에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군에 가면 모든 일에 질서가 있어야 되고 군기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훈련을 받을 때나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는 물론이지만 식사를 할 때나 심지어 오락을 하면서 놀 때도 질서를 강조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행함에 있어서도 이 질서가 필요합니다.
사랑하라고 해서 아무나 아무렇게나 사랑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도 잘못하면 안 됩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다 비슷하지만 사랑에는 종류가 참 많이 있습니다.
부부간에 사랑, 부모와 자식 간에, 사랑 형제간에 사랑, 친구의 사랑 이웃 사랑…….
사랑의 종류도 많고 대상도 많고 방법도 많이 있습니다.
그 사랑의 방법이 계명을 따라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다가 사랑하는 방법들을 다 기록을 해 두셨습니다.
그 계명들을 질서로 해서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부부가 사랑을 할 때 부부간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많이 강조해 두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자식이 부모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웃이 누구이면 어떻게 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지 왜 사랑이 중요한지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기록하실 때 여러 가지 계명들을 기록하신 목적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하면서 살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일 크고 첫째 되는 계명과 그 다음 둘째 되는 계명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했고 그 사랑이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대강령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계명을 사랑으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계명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할 줄만 알았지 계명의 근본정신인 사랑을 행할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사랑하라는 것은 새로운 계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고 계명이 바로 사랑의 명령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명을 지키는 것은 사랑을 행하는 것이며 사랑을 행하는 것도 이 계명 안에서 행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 가운데서 진리를 알고 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 가운데서 특별히 진리의 핵심이 무엇인줄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천국복음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 진리를 소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진리를 배우는 일에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그 진리를 따라 사시기를 바랍니다.
진리를 아는 자는 사랑을 해야 하고 그 사랑은 계명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랑의 방법을 바르게 알고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시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 요이 1:4-6
제목 : 진리와 사랑 그리고 계명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그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
인사말을 통해 진리를 강조한 사도요한은 계속해서 진리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성도들 가운데서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들을 보니 심히 기쁘다고 했습니다.
진리가 무엇인지도 모르고 엉뚱한 생각을 가지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도 많은데 이렇게 진리를 알고 진리 안에서 행한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이기 때문에 그들을 보니 심히 기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당부를 하기를 서로 사랑하자고 당부를 합니다.
진리 안에서 행하는 자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서로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알고 진리 안에서 행한다고 하면서 사랑하지 못하면 그것은 진리를 잘못 이해하고 잘못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부언해서 설명을 하기를 사랑이란 우리가 하나님의 계명을 따라 사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리고 있습니다.
이 계명은 새로운 계명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처음부터 우리에게 주신 계명이 바로 사랑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에서 진리는 사랑이고 사랑은 계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당시에 잘못된 이단들은 진리를 알기만 하면 다 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그런 이단들의 주장을 반박하기 위해서 진리와 사랑 그리고 계명이 다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해서 설명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오늘날도 교회 내에 서로 다른 여러 가지 생각들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무엇이 진리인지 그 진리의 핵심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공의를 내세워서 사랑을 행하지 않는 사람도 있고 사랑을 행한다고 하면서 엉뚱한 사랑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또 진리 즉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강조한 나머지 계명을 무시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계명을 지키는 것을 강조하여 믿음을 무시하는 경향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우리에게도 오늘 말씀 즉 진리와 사랑 그리고 계명과의 관계를 잘 정리하여 서로 연관이 되어 있으며 함께 소중히 여겨야 된다는 것을 알고 진리를 바르게 행하는 것이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1.진리를 행하는 것이 심히 기쁜 일입니다.
본문 4절 말씀에 “너의 자녀 중에 우리가 아버지께 받은 계명대로 진리에 행하는 자를 내가 보니 심히 기쁘도다.”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거짓에 속아서 진리가 무엇인지 잘 모르고 삽니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이것저것 잡다한 자기주장을 늘어놓기 때문에 무엇이 진짜인지를 모르면서 삽니다.
건강에 관한 것도 이 사람 말을 들으면 고기를 먹지 말아야 되겠고 저 사람 말을 들으면 고기를 먹는 것이 오히려 좋을 것도 같고 어떤 사람의 말을 들으면 하루 종일 웃고만 있어도 모든 병이 다 치료될 것 같고.... 별별 건강비법들이 많이 있지만 진짜 무엇이 나에게 좋은 것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돈을 버는 방법이나 공부를 하는 방법이나 행복하게 사는 법들을 나름대로 연구해서 여러 가지 이야기들을 많이 하지만 무엇이 진짜인지 잘 모릅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도 참 혼동이 될 때가 많습니다.
무엇이든지 기도만 하면 다 될 것 같은데 기도한다고 되는 것도 없는 것 같고
봉사하고 충성하면 복을 많이 받을 것 같지만 그런다고 금방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고
말씀대로 살면 금방 행복해질 것 같은데 말씀을 다 실천하지도 못하지만 조금 더 잘 지켜보려고 하면 오히려 어려운 일들이 더 많이 생기는 것 같습니다.
이 세상에서 복을 받아서 성공하고 행복하게 잘 살아야 한다.
아니다 이 세상은 가난하게 살아야 하고 천국을 바라보고 살아야 한다.
아니다 이 세상도 잘 살고 천국도 가야 진짜다.
누구의 말에 장단을 맞춰야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혼란의 시대에 살면서 참된 진리의 말씀을 알고 그 말씀대로 산다는 것은 참으로 즐거운 일입니다.
사도는 지금 그런 사람들을 보고 기뻐하고 있는 것입니다.
작은 교회의 사람들이 그것도 신앙생활을 한지 별로 오래되지도 않은 사람들이 진리를 알고 진리를 실천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 무엇보다도 기쁘다는 것입니다.
진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게 생각을 할 것입니다.
진리는 너무나 소중한 것이기 때문에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귀한 것이기 때문에 진리 안에서 진리를 행하고 사는 것처럼 좋게 보이는 일은 없었을 것입니다.
1) 진리가 무엇인지 알려고 애를 쓰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서도 지식을 쌓고 그 지식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이 참 좋은 일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상식 이하의 지식을 가지고 삽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모든 사람들이 다 아는 것도 잘 모르고 삽니다.
길을 가다가 보면 육교 밑이나 횡단보도가 없는 위험한 곳에서도 무조건 길을 건너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럴 때 차를 운전하는 사람들은 깜짝깜짝 놀라면서 손가락질을 합니다.
나이가 든 사람들은 그렇게 쉬운 것 가르쳐 드려도 잘 안 합니다.
제발 나쁘다고 하지 말고 잘한다고 칭찬하라고 해도 말을 듣지 않습니다.
옛날에 좀 배운 것이나 경험한 것 가지고 모든 사람들을 판단하고 자기 마음에 맞지 않는다고 뭐라고 합니다.
말 한마디 해도 상대방 기분 조금만 생각하고 말을 하면 정말 지혜로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일반 상식만 가지고 이야기 하는 사람보다는 과학적인 지식을 가지고 이야기 할 때 그것이 좀 더 진리에 가까울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몸이 아프면 친구나 아는 사람들에게 이야기를 하고 병원에는 잘 안 간다고 합니다.
의사에게 가면 좀 더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진단을 하고 약을 처방해 줄 텐데 먼저 친구를 찾아가면 친구가 무슨 이야기를 합니까?
아 그 병에는 웅담하나만 먹으면 직발이야, 홍삼을 먹으면 좋대, 산삼 한 뿌리면 만병통치야…….
그런데 그런 이야기들은 대부분 오히려 몸에 좋지 않다고 합니다.
과학을 많이 안다고 해도 이세상의 모든 이치를 깨달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 세상에는 과학으로 대답을 할 수 없는 일들이 더 많기 때문입니다.
과학으로 해결이 되지 않는 문제들은 철학으로 해답을 얻습니다.
인생이란 무엇인가? 일반상식이나 과학으로 대답이 나오겠습니다.
그래서 고상한 철학으로 대답을 합니다.
인생은 하숙생이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야 구름이 흘러가듯 떠돌다 가는 것이 인생이야
그래서 이 세상에 정이나 미련을 두지 말고 살아야 해(유행가 가시지만 참 철학적인 가사입니다.)
수많은 철학자들이 진리가 무엇인지 연구를 하였지만 해답이 없습니다.
아 그 때 그 사람은 그렇게 생각하면서 살았구나 하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지 그것이 해답이 되거나 진리가 되지 못합니다.
철학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를 신학으로 해결을 합니다.
인간의 상식이나 과학이나 철학은 진리를 말하지 못합니다.
오직 신학 즉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서 진리를 발견하고 그 진리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즘 사람들이 왜 기독교만 최고냐 불교나 다른 종교도 인정을 해라 신을 믿는 것은 다 같은 것이고 구원을 받으려고 하는 것은 다 같은 것이고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되는 것이지 왜 너희들만 잘난척하느냐 말이 많습니다.
왜 우리가 그들과 다른가 하는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달라도 다른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에 하루 종일 말해도 다 못할 것이지만 한 마디로 말한다면 그들의 종교는 사람들이 철학적으로 연구해서 만든 종교지만 기독교는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서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진리의 종교이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많이 배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배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참된 진리 영원히 우리와 함께할 그 진리를 발견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와 영원히 함께할 소중한 진리는 성경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 영생이 진리입니다.
그것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천국백성이 되는 이신칭의의 교리가 진리입니다.
이 영원한 진리 우리가 꼭 붙잡아야 할 진리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이 진리와는 바꾸지 마시기 바랍니다.
2) 이 진리를 행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부뚜막의 소금도 집어넣어야 짜고, 구술이 서 말이 있어도 꿰어야 보배라는 속담도 있습니다.
아무리 진리를 안다고 해도 그 지리 안에 거하지 않으면 그 진리를 행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우리나라 교회의 맹점이 여기에 있습니다.
기도회는 많이 하는데 그 기도를 통해서 힘을 얻고 일은 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공부는 많이 하는데 그 배운 대로 실천은 하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어떤 교회 목사님이 한 때 유행하던 성경공부를 많이 시켰다고 합니다.
베델성서, 크로스웨이, 이것저것 생기는 대로 다 시켰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만 두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성경공부를 하면 실천을 해야 하는데 머리만 커져서 남들 비판만 하고 자신은 말씀대로 살지 않더라는 것입니다.
왜 기도하십니까?
왜 성령 충만하여 능력받기를 원하십니까?
왜 설교를 듣고 성경을 읽습니까?
왜 진리를 사모하십니까?
말씀대로 살기 위해서 진리 따라 행하기 위해서 이렇게 진리를 배우는 것이 아닙니까?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진리를 실천할 때 비로소 그 진리가 내 것이 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진리 안에서 사는 사람은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본문 5절 말씀에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진리를 안다는 것은 이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더 귀한 일입니다.
너무나 몰라서 상식이하의 삶을 사는 사람도 많은데 그래도 과학보다 철학보다 더 높은 차원의 진리를 알고 그 진리 안에서 산다는 것은 참으로 귀한 일입니다.
더 나아가서 그 진리대로 행하면서 사는 것은 더 귀한 일입니다.
진리 따라 살아갈 때 비로소 그 진리 안에 있는 좋은 것들이 나의 것이 되고 그 진리가 나에게 효력을 발생하기 때문입니다.
진리를 행함에 있어서 가장 우선되어져야 하는 것은 사랑을 행하는 것입니다.
진리 안에서 진리를 행한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사랑하면서 산다는 말입니다.
진리 안에서 진리를 행하면서 산다고 해서 뭐 거창하게 삶의 방법을 정하고 고상하게 특별하게 사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삶 속에 사랑을 집어넣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사도는 진리 안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권면을 합니다.
“부녀여, 이제 내가 권하노니 서로 사랑하자.”라고 했습니다.
진리를 아는 것은 정말로 기뻐해야 할 일이지만 그것으로 만족하지 말고 이제부터 사랑을 하면서 살자는 것입니다.
우리 고신교단은 진리의 말씀인 하나님 말씀을 가장 소중하게 여기는 교단입니다.
그리고 진리를 안 사람이라면 진리를 행하면서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교단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행함도 따라서 믿음과 행위가 일치 되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일제 강점기 때 천황을 신으로 알고 거기에다가 참배를 하는 것은 잘못이기 때문에 하나님만 섬기라는 말씀을 진리로 알고 그 말씀에 위배되는 신사참배를 하지 않고 감옥에 갇혀서 고난을 당하기도 하고 순교를 당하기도 했습니다.
그런 가운데서 우리가 소중히 여겨야 할 또 하나를 소홀히 했던 것이 사실입니다.
진리에 반드시 따라야 할 사랑을 잃어버렸던 것입니다.
우리는 순교로서 신앙을 지킨 사람들의 후예다, 우리는 옥중성도다, 우리는 진리를 행하면서 산다. 라고 하면서 진리와 함께 해야 할 사랑을 실천하지 못한 것입니다.
공의만 앞세우고 남을 비판할 줄만 알았지 사랑으로 이해하고 용서하는 일에는 인색했습니다.
사랑을 제일로 해야 하는 교회에서 늘 비판하는 일 정죄하는 일만 앞세우고 남을 비하시키고 자기 행위를 자랑하고 잘난 척 하는 일에만 열심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 하나님의 사랑은 간곳이 없고 싸늘한 찬바람만 불어오는 것이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랑스럽고 따뜻한 얼굴은 없고 무섭고 사나운 얼굴만 가득하고 뭐 하나 잘못하면 사정없이 뭐라고 해서 가슴에 상처만 남게 하는 곳이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 나가서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 전도를 해 보면 교회에 다니다가 마음에 상처를 받고 그만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이 있습니다.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중에도 교회에 다니기는 하지만 과거에 입은 상처 때문에 고통당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진리를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그러면서도 진리를 아는 자들이 사랑으로 행하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진리를 잘 살펴보면 거기에는 하나같이 하나님의 사랑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진리를 아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을 알면서도 그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가를 알면서도 그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얼마나 값진 것이라는 사실을 알면서도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 사람은 인간이 아닙니다. 진리를 바르게 알지 못했거나 아주 고약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교회 안에 성도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 사랑은 성도 사랑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성도를 사랑하는 것은 간접적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좋은데 우리 예수님은 좋은데 교회는 가기 싫고 성도들을 꼴도 보기 싫다. 라고 하는 사람은 아직 진리를 알지 못하거나 진리를 알면서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삶 속에 사랑을 집어넣는 것이 진리를 아는 사람들이 살아야 할 가장 기본이 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무엇을 하든지 사랑으로 하시기 바랍니다.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야기 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서로를 이해하고 용서하고 진심으로 위로하고 도와줄 때 비로소 우리가 진리 안에서 행하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천사의 말을 하고,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이 있고,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한다고 해도 거기에 사랑하는 마음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니라고 했습니다.
3.사랑은 우리가 계명을 따라 사는 것입니다.
본문 6절 말씀에 “또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군에 가면 모든 일에 질서가 있어야 되고 군기가 있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훈련을 받을 때나 업무를 수행함에 있어서는 물론이지만 식사를 할 때나 심지어 오락을 하면서 놀 때도 질서를 강조합니다.
우리가 사랑을 행함에 있어서도 이 질서가 필요합니다.
사랑하라고 해서 아무나 아무렇게나 사랑을 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사랑도 잘못하면 안 됩니다.
사랑하는 마음은 다 비슷하지만 사랑에는 종류가 참 많이 있습니다.
부부간에 사랑, 부모와 자식 간에, 사랑 형제간에 사랑, 친구의 사랑 이웃 사랑…….
사랑의 종류도 많고 대상도 많고 방법도 많이 있습니다.
그 사랑의 방법이 계명을 따라서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에다가 사랑하는 방법들을 다 기록을 해 두셨습니다.
그 계명들을 질서로 해서 사랑을 하는 것입니다.
부부가 사랑을 할 때 부부간의 사랑을 다른 사람에게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많이 강조해 두고 있습니다.
부모가 자식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자식이 부모를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를 성경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이웃이 누구이면 어떻게 하는 것이 이웃을 사랑하는 것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진정한 사랑은 무엇인지 왜 사랑이 중요한지도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기록하실 때 여러 가지 계명들을 기록하신 목적이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고 서로를 사랑하면서 살게 하기 위해서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제일 크고 첫째 되는 계명과 그 다음 둘째 되는 계명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고 했고 그 사랑이 모든 율법과 선지자의 대강령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계명을 사랑으로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계명을 가지고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정죄할 줄만 알았지 계명의 근본정신인 사랑을 행할 줄은 몰랐던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이 이렇게 말씀을 합니다.
사랑하라는 것은 새로운 계명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사랑은 처음부터 있었던 것이고 계명이 바로 사랑의 명령이라고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계명을 지키는 것은 사랑을 행하는 것이며 사랑을 행하는 것도 이 계명 안에서 행하여야 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 거짓이 난무하는 세상 가운데서 진리를 알고 사는 행복한 사람들입니다.
그 가운데서 특별히 진리의 핵심이 무엇인줄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 천국복음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 진리를 소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날마다 진리를 배우는 일에 열심을 내시기 바랍니다.
그 진리를 따라 사시기를 바랍니다.
진리를 아는 자는 사랑을 해야 하고 그 사랑은 계명을 중심으로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사랑의 방법을 바르게 알고 사랑을 실천하면서 사시는 참된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