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31.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98)
본문 : 행 7:11-16
제목 : 애굽과 온 가나안에 흉년이 들어.
“11.그 때에 애굽과 가나안 온 땅에 흉년이 들어 큰 환난이 있을새 우리 조상들이 양식이 없는지라 12.야곱이 애굽에 곡식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우리 조상들을 보내고 13.또 재차 보내매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또 요셉의 친족이 바로에게 드러나게 되니라 14.요셉이 사람을 보내어 그의 아버지 야곱과 온 친족 일흔다섯 사람을 청하였더니 15.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가 자기와 우리 조상들이 거기서 죽고 16.세겜으로 옮겨져 아브라함이 세겜 하몰의 자손에게서 은으로 값 주고 산 무덤에 장사되니라.”
요셉의 이야기는 여러 가지 면에서 예수님을 예표 한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장차 오실 예수님의 모습을 요셉에게서 몇 가지 찾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스데반이 유대인의 산헤드린공회에서 재판을 받으면서 행한 설교는 예수님을 믿지 않는 유대인들을 힐난하는 것이기 때문에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서 예수님을 이야기하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서 또 한 가지 알아야 할 것은 요셉의 형들과 야곱을 통해서 유대인들이 자랑하고 있는 그들의 조상이 별 볼일이 없는 사람들이었고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했던 사람들이었음을 지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쉽게 잊어버리고 믿지 못하고 엉뚱한 길로 갔던 조상들의 잘못을 지적하면서 당시 유대인들과 그와 같은 전철을 밟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들에게도 그런 교훈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하시는 영원한 가나안 천국을 믿지 못하고 하나님의 뜻과 반대방향으로 가고 있는 우리들을 돌아보게 하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을 구원하시려는 계획을 철회하지 않으시고 끝까지 진행을 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잘못을 용서하시고 그런 잘못들을 통하여 더 좋은 길로 인도하시는 하나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 때에 애굽과 온 땅에 흉년이 들어
본문 11절 말씀에 “그 때에 애굽과 가나안 온 땅에 흉년이 들어 큰 환난이 있을새 우리 조상들이 양식이 없는지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갈대아 우르에 살고 있던 아브라함에게 약속을 하시고 가나안땅으로 오게 하셨습니다.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과 그의 자손들에게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의 후손들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 언약이 미래적인 것이고 이루어질 것 같지 않는 일이었기 때문에 아브라함이 처음부터 전적으로 믿지는 못했지만 하나하나 되어지는 일들을 보면서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99세까지 아들 하나 없었던 그에게 아들 이삭이 태어나고 이삭에게서 야곱이 태어나고 야곱에게서 열두 아들이 태어나서 점점 그 숫자가 많아지기 시작을 합니다. 그 자녀들을 통하여 하늘의 별과 같은 무수한 후손들이 생기게 될 것이라는 믿음을 아브라함과 그의 자녀들이 가지게 되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는 약속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아직도 가나안 원주민들 곁에서 빌붙어서 사는 신세를 면하지 못했습니다. 땅 주인이 아닌 나그네로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문제는 축복의 땅 약속의 땅이라고 생각되는 그 가나안 땅이 별로 매력이 느껴지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풍요로운 땅도 아니고 넓은 땅도 아니고 비가오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척박한 땅이었습니다. 그 땅에 흉년이 들었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뿐만 아니라 아래지방에 좀 비옥하다고 생각되는 애굽땅에 까지도 흉년이 들었습니다. 애굽땅이야 약속의 땅도 아니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살지 않은 곳이니까 흉년이 들기도 하겠지만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까지도 흉년이 들었습니다. 당장 먹고 살아야 하는데 일용할 양식마저 떨어지고 이대로 있다가는 온 식구들이 굶어죽을 판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미 죽었고 이삭도 죽었고 야곱이 가장이고 족장이었지만 야곱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언약을 그대로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야곱은 하나님의 언약의 자손이 되기 위해서 형을 속이고 팥죽 한 그릇에 장자권을 샀고 아버지를 속이고 하나님의 축복을 받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정도 믿음의 사람이라고 하면 이럴 때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가족들을 모으고 가족회의를 하고 기도회를 했을만한 집안입니다. 우리가 당장 먹을 것이 없어서 이대로 있다가는 죽을 것 같지만 하나님의 언약을 믿자 하나님께서 이 가나안 땅을 우리 자손들에게 주신다고 약속을 하셨고 우리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약속을 하셨으니까 그 언약을 믿고 이 땅에서 버터보자 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을 아무리 뒤져봐도 그런 회의나 그런 고민을 한 흔적이 없습니다. 어려운 일을 만나면 그것도 생명과 관계가 되는 일을 만나면 하나님의 언약은 생각도 나지 않는 사람처럼 자기들 마음대로 살길을 찾습니다. 그래서 야곱은 자식들을 애굽땅으로 보냅니다. 애굽 땅에 곡식이 있다는 소식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애굽으로 가면 거기서 양식을 얻을 수 있고 살길이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고 먹을 양식이 없어서 그대로 있다가 온 가족들이 굶어 죽을 판인데 애굽으로 양식을 구하러 가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문제는 야곱이 하나님의 언약을 생각하지 않고 있다는 점입니다. 애굽으로 가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는 하나님의 마음을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어서 먹을 것이 없어서 애굽으로 향하는 일이 야곱 때뿐만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 때도 가나안에 흉년이 들었고 그 흉년을 피해서 가나안을 떠나서 애굽으로 내려왔던 일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가나안 땅으로 오자마자 그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 흉년을 피해서 애굽까지 내려가서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하다가 바로 왕에게 아내를 빼앗길 뻔한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바로에게 역사하셔서 무사하게 빠져나오긴 했습니다. 지나온 역사를 읽으니까 별로 무덤덤하지만 그 때 잘못되었더라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사라의 자손을 통해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언약에 크게 차질이 생길 뻔한 사건이었습니다.
이삭의 때에도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이삭도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직접적인 말씀이 있었기 때문에 애굽까지 내려가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가나안 땅의 끝부분인 그랄 지방으로 가서 살았습니다.
그랄 지방은 아브라함이 좀 살기 좋다고 생각을 하여 내려왔다가 또 아내를 누이라고 거짓말을 하여서 아내를 빼앗길 뻔한 일이 있었던 곳입니다. 그 때도 하나님께서 역사하셔서 그랄 왕 아비멜렉의 도움으로 아내를 빼앗기지 않고 살 수 있었던 곳입니다. 이삭도 아버지에게 배웠는지 그랄 지방에 와서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이삭도 아비멜렉의 아들 아비멜렉에게 도움을 받고 아내를 빼앗기지 않고 그곳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야곱 때도 또 흉년을 만나서 애굽 땅을 바라보게 됩니다. 처음에 곡식을 구하러 아들들을 한두 번 보냈지만 나중에는 결국 온 가족을 데리고 가나안을 떠나 애굽 땅에 거주하게 되고 거기서 생애를 마감하게 됩니다. 물론 야곱이 애굽으로 내려갈 때에는 하나님의 허락이 있었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것이고 약속대로 다시 가나안으로 돌아와서 살게 해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야곱이 믿음이 없이 가나안을 떠나서 당장 먹고 살기 위해서 애굽으로 가겠다고 하니까 가서 고생할 것이 뻔 하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함께 하실 것이고 그 애굽을 벗어나게 해 주시겠다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기분이 좋으셔서 그들이 잘 했다고 그런 언약을 주신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를 여러분은 아실 것입니다. 흉년을 피해서 애굽으로 가서 당장 목숨은 구할 수 있었겠지만 가나안 땅에 있어야 할 그들의 후손들이 애굽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가슴 아프게 생각하시고 예언하셨던 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400여년을 살게 되고 결국에는 잡신을 섬기는 애굽 사람들의 종이 되어서 비참한 삶을 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간의 습성을 다 아시고 예언을 하셨고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셨지만 우리 인간들이 이렇게 비참한 인간들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도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들은 과거 이스라엘 사람들보다 더 귀한 언약을 받았습니다. 우리들은 피로 세운 새 언약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영원한 가나안 땅인 천국에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참된 복락을 누리면서 살도록 약속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세상에 살면서 하나님나라를 떠나지 말아야 합니다. 교회를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즉 십자가의 복음을 중심으로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들도 아브라함이나 이삭이나 야곱과 같은 사람들입니다. 막상 먹을 것이 없으면 하나님의 언약을 떠나려고 합니다. 자꾸 세상이 좋아 보이니까 세상으로 발걸음을 옮기려고 합니다. 애굽 땅 즉 세상 까지는 가지 않는다고 할지라도 세상과 가장 가까운 경계선에서 여기 한 발 저기 한 발 걸치고 살려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말씀 안으로 들어와서 말씀이 왕성해지게 하고 말씀을 중심으로 살아야 하는데 눈에 보이는 세상의 부귀영화 때문에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교회 안에 있으면서도 세상의 가치관 세상의 행복들을 교회 안으로 끌어들이고 마치 세상 사람들처럼 살려고 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교회 같지가 않습니다. 세상 보다 더 악해지고 있습니다. 정말로 영적인 가나안 땅인 천국을 사모하면서 그 나라를 향해서 가려고 하는 사람들이 많지가 않습니다.
강단의 설교가 세상을 향하고 있습니다. 강단의 설교가 설교자의 이익추구를 위한 장사꾼들처럼 하고 있습니다. 강단의 설교가 하나님은 없어지고 사람들이 주인공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은 간 곳이 없습니다. 가나안이 아닌 애굽을 향하여 가야 된다고 외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은 세상으로 나가더라도 언젠가는 하나님나라로 돌아오게 해 주실 것입니다. 그러나 그 하나님나라를 떠나있는 동안 비참한 삶을 살게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렇게 진리 가운데서 참된 자유를 누리지 못합니다. 하나님나라에서 이렇게 좋은 일 보람된 일을 하지 못합니다. 인간의 참된 목적인 하나님을 찬양하고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이런 귀한 일에 참여하지 못하는 불행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사탄의 종, 죄의 종이 되어서 거기서 벗어나지 못하고 비참한 삶을 살게 됩니다. 자신들은 그것이 자유라고 착각을 하고 살지만 실은 사탄의 종이 되어서 그들이 시키는 대로 온갖 죄를 지으면서 비참하게 사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 기회가 있겠지만 만신창이가 되어서 비참한 모습으로 돌아올 것입니다.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도 흉년이 들었던 것처럼 언약의 백성인 우리가 사는 삶 가운데도 극심한 흉년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실직을 하기도 하고 사업이 망하기도 하고 불치의 병에 걸리기도 합니다. 인간관계가 복잡해질수록 우리의 삶도 복잡해져서 온갖 걱정과 고통 속에서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입니다. 그럴 때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가나안 땅 천국을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애굽으로 세상으로 나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과 가까운 곳으로 자꾸 나가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과 더 가까운 곳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언약을 더 붙잡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 즉 십자가의 복음이 여러분의 가슴속에 여러분의 삶 속에 더 왕성해지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요셉이 자기 형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본문 12절과 13절을 다시 읽어 보겠습니다. “야곱이 애굽에 곡식 있다는 말을 듣고 먼저 우리 조상들을 보내고 또 재차 보내매 요셉이 자기 형제들에게 알려지게 되고 또 요셉의 친족이 바로에게 드러나게 되니라”
곡식을 구하러 애굽으로 간 야곱의 아들들에게 아주 드라마틱한 일이 일어납니다. 거기에서 자기들이 노예 상인에게 팔았던 요셉을 만나게 됩니다. 그것도 애굽이라는 막강한 나라의 총리가 되어 있는 요셉을 만나게 됩니다. 요셉이 처음에 만났을 때 형들을 알아보았으나 모르는 척 했습니다. 두 번째 곡식을 사러 갔을 때에 자신이 그 요셉이라는 것을 밝힙니다. 자신이 형들이 노예상인에게 팔았던 그 요셉이라는 것을 형들에게 밝힌 것입니다.
그 말을 들은 형들의 마음은 어땠을까요? 동생이 이렇게 막강한 권력을 가진 총리가 되었다는 것을 기뻐했을까요? 모르긴 해도 형들의 마음은 억장이 무너지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미워하면서 노예 상인에게 팔아버렸던 그 요셉이 총리라는 막강한 권력을 가진 사람이 되어서 나타났다는 것이 그들에게는 엄청난 괴로움과 무서움이 되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자신을 밝힐 때 한 말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요셉이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이르되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45:4-5) 자신들이 저지를 죄 때문에 벌벌 떨고 있던 형들에게 안심을 시켜주고 있습니다. 형님들 형님들이 나를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거나 한탄하지 마세요. 형님들이 나를 판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나를 먼저 애굽에 보내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가족들의 목숨을 살리시려고 나를 먼저 애굽에 보내신 것이니까 형님들은 자책할 것이 없습니다.
벼락같은 불호령이 떨어질 것 같았는데 이제 나는 죽었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동생의 입에서 정말로 다행스런 말이 나온 것입니다. 형님들 책임이 아니니까 염려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니까 자책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신 것이니까 안심하라는 것입니다. 정말 기쁜 소식이고 정말로 복된 소식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복음입니다. 형제들이 서로 껴안고 눈물을 흘리며 기뻐했습니다.
요셉은 우리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사용하신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요셉을 애굽에 보내셔서 그들을 구원하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스데반이 요셉 이야기를 하는 것은 그 사실을 알라고 하는 것입니다. 당신들 조상이 동생 요셉을 애굽에 종으로 팔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요셉을 통하여 당신들을 구원하셨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팔았고 예수님을 로마 총독에게 보내서 죽임을 당하게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 예수님을 통하여 모든 사람들을 구원하시려고 하신다는 사실을 알려주고자 한 것입니다.
당신들이 예수님을 팔고 당신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를 질렀지만 그것에 대해서 너무 자책하거나 실망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 십자가를 통하여 여러분들을 구원하시려고 하는 것이니까 이제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되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이제 그만 그 고집을 버리고 예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이제 그만 그 기득권이나 세상의 욕망들을 내려놓고 영원한 생명을 얻으라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만나주신 예수님께서도 우리에게 그렇게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들의 죄로 내가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았다고 해서 두려워하거나 자책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너희들을 사랑하셔서 너희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나를 보내시고 나를 십자가에 못 박히게 하신 것이니까 죄책감에 사로잡혀 있지 말라고 하십니다.
너희들이 예수님께로 나오기만 하면 너희들이 예수님을 구주로 알고 믿기만 하면 과거에 어떤 흉악한 죄를 지었든지 아무런 상관이 없이 너희를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해주고 다시 하나님의 자녀라는 이 고귀한 신분으로 살게 해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는 세상에도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 어려움을 당할 때 세상을 바라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세상과 타협하거나 세상으로 가까이 가거나 세상 사람들을 따라 살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새롭게 주신 피로세운 새 언약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이 세상에 오셔서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고 영원한 천국 백성으로 살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