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 10.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95)
본문 : 행 7:8
제목 :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할례의 언약을 아브라함에게 주셨더니 그가 이삭을 낳아 여드레 만에 할례를 행하고 이삭이 야곱을, 야곱이 우리 열두 조상을 낳으니라.”
우리가 사는 세상은 약속과 그 약속에 대한 믿음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국가도 사회도 가정도 내 자신도 이런 약속과 약속에 대한 믿음에 의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국가도 백성들 사이의 약속을 법으로 정하고 있습니다. 사회도 규약이나 제도들을 통하여 서로간의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가정도 부부간의 약속과 가족들 간의 책임과 의무에 관한 약속을 하고 있습니다. 나 자신도 스스로 규칙을 정하고 그 규칙대로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약속들은 공통적으로 약점을 가지고 있는데 서로가 그 약속을 지킨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입니다. 실지로 많은 사람들이 이런 약속을 잘 지키지 않고 삽니다. 약속을 서로 잘 지키면 모두가 행복할 수 있는데 그렇지 않으니까 불행한 삶을 사는 것입니다. 좋은 세상이 되려면 좋은 가정이 되려면 또 나 스스로 좋은 사람이 되려면 모든 사람들이 이 약속을 지킨다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믿음을 가질 때 나 자신도 약속을 지키면서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이런 약속과 약속에 대한 믿음과 또 그 믿음으로 순종하는 삶의 이야기로 구성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해주시면 인간은 그 약속을 믿고 따르면 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고 세상의 풍습대로 자기가 생각해서 옳은 대로 살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자꾸 반복해서 언약을 맺으시고 그 언약이 어떻게 이루어지는가를 보여주시고 또 언약을 믿는 사람들이 받은 복을 보여주시고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살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에게 할례의 언약을 주신 하나님
오늘 본문의 말씀은 스데반이 창세기 17장에 기록된 말씀을 인용해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의 언약을 주셨음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스데반은 간단하게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의 언약을 주셨다는 것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자 그 언약대로 8일 만에 할례를 행하였고 이삭이 야곱을 낳았고 야곱이 이스라엘의 열두 조상을 낳았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7장에는 좀 더 자세하게 아브라함이 하나님께 할례의 언약을 받는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할례 언약을 언제 받았는지를 살펴보면 왜 이렇게 언약을 주시는지를 잘 알 수가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전의 사람들도 하나님께 약속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약속을 믿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약속보다 자기들의 생각이 더 좋아보였기 때문이고 또 하나님의 약속이 실천할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처음 약속은 에덴동산에서의 약속이었습니다. 아담과 하와에게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의 열매를 먹을 것을 허락하시고 단,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만 먹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생명나무 열매만 먹으면 영원한 생명을 유지하게 되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죽게 된다고 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생각할 때 그 약속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속이는 것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사탄의 유혹 때문에 그런 것이지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으면 자신들도 하나님과 같아질 수 있는데 그것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못 먹게 하시는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생각대로 자기들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하나님의 약속을 어기고 그 열매를 먹고 말았습니다.
노아홍수 때의 이야기도 여러분이 잘 아실 것입니다. 인간들이 너무나 하나님의 뜻을 어기고 자기들 마음대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람들을 만드셨음을 후회하시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홍수로 죽이기로 작정하셨습니다. 그리고 노아에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방주를 만들고 거기에 들어가라고 하셨습니다. 노아는 비가 오지 않는 세상에 살았으면서도 한 번도 홍수가 나는 것을 보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약속을 믿고 방주를 만들고 거기 들어가서 생명을 건졌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런 하나님의 약속을 비웃었을 것입니다. 무슨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야 그런 일이 어떻게 일어난다고 그 말을 믿으라고 하냐고 비웃었을 것입니다.
노아홍수 이후 하나님께서는 무지개를 보여주시면서 다시는 물로 온 세상을 심판하는 일을 하지 않겠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약속을 믿지 못하고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아서 만든 것이 바벨탑을 쌓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면 탑을 타고 하늘까지 올라가서 살아보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하나님의 약속을 믿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범하고 타락한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미래의 큰 계획을 세우시고 그것을 실천해야 하는데 사람들이 그 약속을 믿지 못할 것임을 아시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실천할 이스라엘 민족의 시작이 되는 아브라함을 불러서 그가 세상 사람들과는 달리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훈련을 시키셨습니다. 아브라함을 불러 세우시고 하나님께서 지시할 가나안 땅으로 가게 하시고 거기에서 하나님의 약속을 따라 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크게 세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가나안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신다는 약속입니다. 또 하나는 아브라함의 자손이 번성하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그 후손을 통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복을 받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아브라함도 처음부터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믿음의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아브라함도 세상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약속보다는 자기의 생각을 따라 살기를 좋아했습니다. 가나안땅을 후손에게 주신다고 약속했지만 가나안보다 살기 좋은 애굽으로 내려가려고 했습니다. 흉년이 들면 바로 애굽으로 향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자손들을 하늘의 별처럼 많게 해 주신다고 약속을 하셨지만 그 약속을 믿고 하나님을 따르지 못하고 자기의 생각대로 세상의 풍습대로 행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이 아들이 생기지 않으니까 자기 집에서 키운 종 엘리에셀을 상속자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네 씨에서 나온 자손으로 번성케 하겠다는 약속을 다시 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다시 아브라함은 그 약속을 기다리지 못하고 첩에게 들어가서 아들 이스마엘을 낳고 그 아들을 상속자로 삼으려고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75세에 고향을 떠났고 10년 동안 아이가 없자 인간적인 방법을 동원해서 종에게서 아들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속을 믿지 못하고 기다리지 못한 아브라함에게 섭섭한 마음을 가지셨는지 그 후 15년 동안 하나님께서는 침묵하셨습니다. 15년이 지난 후에 하나님께서 다시 나타나셔서 할례언약을 주시고 그 약속을 다시 확인하게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99세가 되었을 때 이 할례언약을 주신 것입니다.
창세기 17장에는 이 장면을 이렇게 소개하고 있습니다.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하나님께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동안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지 못하고 자기 뜻대로 행하였음에 대한 질책의 말씀입니다. 나는 너희 인간들과 다른 전능한 하나님인데 왜 그것을 믿지 못하느냐고 질책을 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의 모든 법칙을 만드시고 정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그 자연의 법칙을 따르지 않고도 무엇이든지 하실 수 있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모르거나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을 믿지 않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많은 사람들이 성경의 기록을 믿지 못합니다. 특별히 좀 배웠다는 지식인들은 알량한 그 지식 때문에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일어난 기적적인 일들을 믿지 않습니다.
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그동안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세상 풍습을 따라 믿음이 없는 사람처럼 행하였음을 질타하시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이라면 믿음이 있는 사람답게 행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다면 그 약속을 믿고 가만히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지저분하게 인간의 생각대로 하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99세였고 사라가 90세였으니까 물론 지금 우리의 나이로 비교할 수 있는 나이는 아닙니다. 그러나 그동안 아이가 없는 것으로 보아서 불가능한 일을 약속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런 불가능한 일을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시고 그 약속을 믿게 하기 위해서 눈에 보이는 약속들을 주십니다.
아브라함도 원래 이름이 아브람이었으나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을 가진 아브라함으로 바꾸어주셨습니다. 사라도 원래 이름은 사래였으나 사라로 바꾸게 하시고 민족의 어머니가 되게 해주신다는 약속을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과 그 가족의 남자들에게 포피를 베게 하는 할례의식을 행하여 하나님의 약속의 징표로 삼았습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못하고 그 약속들을 자꾸 잊어버리니까 하나님께서 눈에 보이는 약속의 상징들을 만들어 주시면서 제발 약속을 잊지 말고 믿을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를 때마다 사라를 부를 때 마다 그 이름 속에 있는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나는 열국의 아버지다, 민족의 어머니다) 남자들이 자신의 신체의 중요한 부분을 볼 때마다 하나님의 언약을 기억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순순히 이 약속을 믿었을까요? 아닙니다. 그 때도 믿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이 궁시렁 거립니다. 내 나이 이미 99세고 아내도 90세라 이미 생리도 멈춘 후인데 무슨 나와 아내 사이에 아이가 있단 말인가 믿는다고 대답은 하지만 글쎄 되어 봐야 되는 것이지 하고 진짜 믿지 않았습니다. 사라도 하나님의 사자가 내년 이만 때쯤 아이가 있을 것이라고 예언을 했을 때 그 말을 듣고 웃었다고 했습니다. 비웃었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낳은 아들 이름이 이삭인데 웃음이라는 뜻입니다.)
아브라함의 이야기는 믿음의 조상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언약을 어떻게 믿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약속들을 해 주시고 그 약속을 이루어나가시면서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자기의 생각을 버리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런 훈련을 통해서 그의 믿음이 점점 강해졌고 드디어 완전한 믿음을 가진 믿음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스데반이 이 할례언약 이야기를 하는 이유
스데반이 지금 자기 생명이 달린 재판을 받으면서 왜 아브라함의 이야기를 하며 왜 할례언약 이야기를 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의 복음만 선포하면 되지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것일까요? 그것은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할례언약을 주신 하나님의 뜻을 설명하기 위함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 할례를 받고 할례를 소중하게 생각하지만 그 할례의 의미를 잘 모르고 할례만 중요하게 여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할례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후손들을 특별히 선택하셨다는 것을 알게 하는 표식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보통 사람들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하시는 큰일을 위해서 부름을 받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표시입니다. 그들을 하나님께서 특별히 세우셨으니까 다른 민족들과 섞이지 말고 다른 민족들처럼 살지 말고 특별히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특별히 불러 세우신 것은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그 약속을 이루어나가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가나안 땅을 주실 것과 자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과 세상 만민들이 그의 자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이었습니다. 그 약속의 궁극적인 의미는 영적인 가나안 땅인 영원한 천국과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서 나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를 통해서 세상 모든 사람들이 구원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그 사실을 알지 못했습니다. 그냥 아브라함의 후손인 것에 대한 자부심만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기들만 할례를 받은 특별한 사람들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는 몰랐다고 하는 것입니다.
할례언약을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지고 그 후손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오시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구원을 받게 된다는 그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그 약속이 성취되어서 그리스도가 오시고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되었음에도 그 사실을 부인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약속이 이루어졌다고 선포하는 사람들을 잡아서 재판을 하고 있습니다.
스데반은 그런 유대교 지도자들에게 그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해서 아브라함의 이야기와 하나님께서 그와 맺었던 할례언약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당신들이 할례 받은 백성이라고 자랑만 할 것이 아니라 그 할례언약의 의미가 무엇인 줄 알고 그 할례언약을 통해서 오신 예수님을 믿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받을 교훈
아브라함의 이야기와 아브라함에게 주신 할례언약을 통해서 우리가 받아야 할 교훈이 있습니다. 구약시대의 할례가 지금 우리가 받은 세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하나님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믿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언약을 주시면서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릴 때 우리 하나님이 전능하신 분임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약속은 때로는 우리 인간의 머리로 이해할 수 없는 부분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1장에는 아브라함을 비롯한 믿음의 조상들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이 나온바 본향을 생각하였더라면 돌아갈 기회가 있었으려니와 그들이 이제는 더 나은 본향을 사모하니 곧 하늘에 있는 것이라”(히11:15 -16). 우리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이루어질 그 하나님나라를 주시기 위해서 다시 오시는 예수님을 기다리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세상은 지금도 아브라함의 때처럼 믿음을 가지고 살기가 참 어렵습니다. 눈에 보이는 것들이 더 중요하게 보이고 미래의 일보다는 지금 현재의 일들이 더 중요해 보이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먼 미래의 일에 대해서 믿음을 가지고 살기가 어렵습니다.
또 그 하나님나라 영원한 천국이 있다는 증거들이 없어서 불확실하기 때문에 믿음을 가지고 살기가 힘이 듭니다. 성경 말씀에는 그렇게 기록이 되어 있고 그것이 하나님의 언약이기는 하지만 약속을 꼭 이행한다는 보증이 없기 때문에 믿기가 힘이 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믿음의 사람으로 만들기 위해서 그렇게 오랜 세월 동안 훈련을 시켰고 오늘날 우리도 그런 훈련을 통하여 강한 믿음을 가지게 하시는 것입니다.
우리에게 주어질 미래의 영원한 하나님나라 거기에서 영원한 생명을 가지고 살게 될 것을 하나님께서 약속하셨고 우리는 그 언약을 믿고 따르고 있습니다. 이 믿음이 너무나 귀한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훈련을 통해서 이 믿음을 더 튼튼히 가지시기 바랍니다.
우리도 하나님 앞에서 행하여 완전해야 합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라고 하신 말씀처럼 우리도 완전하게 행하여야 합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그 행동은 세상 풍습을 따랐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기다리지 못하고 성급하게 인간의 방법을 동원하여 세상 사람들처럼 행동했습니다.
우리도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지만 전적으로 믿음의 삶을 살지 못합니다. 전적으로 예수님을 믿는 일에 올인 하지 않습니다. 주일을 지키는 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사는 일 교회를 중심으로 헌신하면서 사는 일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세상 일이 더 중요해 보이고 더 좋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속에는 하나님이 안 계시는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도 연단이 필요하고 훈련이 필요합니다. 힘들지만 전적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말씀대로 살아보아야 합니다. 삶속에서 하나님의 역사하심을 보고 믿음을 키워나가야 합니다. 믿을 수 없는 약속이지만 전능하신 하나님을 믿고 따라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할례언약을 주신 것처럼 우리들에게는 세례언약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 영원한 가나안 땅을 차지할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을 믿음으로 그 나라에서 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되었습니다.
그 나라를 사모하며 기다리며 그 나라를 향하여 사시기 바랍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완전한 믿음으로 행하며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