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7. 18.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후 15)
본문 : 벧후 2:9-11
제목 : 경건한 자와 불의한 자.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처음 들어올 때는 좋은 일을 참 많이 했습니다.
병원을 세워서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살렸습니다.
학교를 세워서 많은 사람들을 깨우치기도 했습니다.
6.25 전쟁이후에는 고아원을 세워서 전쟁고아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많은 복지관들 좋은 단체들이 다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서 세워나갔습니다.
기독교를 통해서 무지한 자들이 지식인이 되었고 가난한 자들이 부자가 되기도 했고 어리석은 자들이 지혜로운 삶을 살기도 했습니다.
삶의 목표가 없는 사람들이 인생의 참된 의미를 알고 보람된 삶을 살기도 했습니다.
그 때는 사람들이 교회를 좋아했고 성직자들을 존경했고 교인들을 좋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새롭게 나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그 인식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교회 하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단체라 보다는 자기 이익만을 위해서 교회만 크게 짓고 교인들만 끌어 모으기에 혈안이 되어 있고 성직자들이 호화스럽게 살기 위해서 이용하는 단체로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사가 교회하면 돈 벌고 잘 산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목회사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인들이 미움을 받기 시작했고 교회가 욕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안티기독교 단체들이 생겨나고 기독교 하면 욕부터 먼저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기독교가 변질이 되어서 그렇다고 생각을 합니다.
교회가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겨났습니다.
그것은 교회 내에 가만히 들어와서 잘못된 사상을 퍼트린 거짓선생들 때문에 교회가 이렇게 되고 말았다고 생각합니다.
거짓선생들의 잘못된 가르침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서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까지도 진리 따라 살지 않고 세상 사람들처럼 살기 때문에 교회가 이런 타락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과 불의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짓선생들의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교회 안에도 경건과 불의가 공존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불의를 용납하시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져내시고 불의한 자는 심판하신다는 것이 본문의 요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이 무엇인자를 살펴보고 그들의 가르침에 현혹되지 않고 경건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1.불의한 자의 특징과 심판.
오늘 본문 9절 말씀에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라고 했습니다.
10절에는 주님께서 그들을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교회 내에도 거짓선생들이 있고 거짓선생들을 따라 불의를 행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다 괜찮은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주님께서 그들을 형벌 아래에 두시고 심판 날까지 지켜보시고 계시다가 꼭 벌을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끔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처럼 세상 쾌락을 누리면서 살고 진리를 따르지도 않고 악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눈감아 주시나 라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서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저도 목사지만 화려하게 세상의 것들을 누리면서 사는 목사들을 보면서 가끔은 좀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나도 저렇게 좀 살아야 되지 않을 까 나만 손해 보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악한 자를 심판하시고 경건하게 사는 사람을 그 시련에서 건지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거짓선생들이 너무나 판을 쳐서 그들의 주장이 마치 옳은 것처럼 세뇌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특징을 잘 살펴보고 진리의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1)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거짓 선생의 잘못된 가르침의 특징은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는 것입니다.
육체를 따른다는 것은 우리 타락한 육신이 하고 싶은 대로 따라 한다는 것입니다.
반대가 되는 말은 영혼을 따라 성령님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타락한 육신을 따르는 마음이 있고 영혼을 따라 즉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대로 행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타락한 우리의 육신을 따라 사는 것은 죄악 가운데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으로 통제받고 법으로 통제를 받으니까 이렇게라도 사는 것이지 정말로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우리의 삶은 엉망진창일 것입니다.
자유라는 것이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자유가 억압을 당하고 마음대로 살지 못하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쳐서 정말로 자유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자유가 너무나 지나쳐서 자유롭게 나쁜 일도 하고 있습니다.
공부 안하고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일도 안하고 자유롭게 놀고, 몸에 해로운 것도 자유롭게 먹고 마시고, 남이 싫어하건 좋아하건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행동한다면 그 사람의 앞날은 뻔합니다.
자유를 추구하다가 보면 자유롭게 아무데서나 먹고 잘 수 있는 노숙자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자유롭게 알아서 하게 하면 기도하고 싶으면 하고 예배드리고 싶으면 드리고 충선하고 싶으면 하고 그렇게 하다가 보면 불신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육체를 따르다가 보면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게 됩니다.
욕심도 더러운 욕심이 있고 깨끗한 욕심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욕심이 좀 있어야 합니다.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것은 좋은 욕심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려고 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욕심입니다.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은 좋은 욕심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욕심이 지나쳐서 더러운 욕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의 남편 나의 아애 외에 다른 남자나 여자를 사랑하려고 하는 것은 더러운 욕심에 속합니다.
힘들이지 않고 땀을 흘리지 않고 남의 돈을 빼앗아 와서 잘 살려고 하는 것은 더러운 욕심입니다.
평생 다 쓰지도 못할 것들을 창고에 넣어두고 썩히는 것도 더러운 욕심에 속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을 안 하고 돈을 버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넥타이나 매고 책상에 앉아서 땀을 흘리지 않고 남에게 일을 시켜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쓰지도 못할 엄청난 돈을 모아야 성공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더러운 욕심들은 사탄이 거짓선생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심어준 잘못된 생각 더러운 욕심에서 온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깨끗한 욕심은 열심히 땀을 흘려 일을 하고 그래서 번 돈으로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더 많이 희생하고 더 많이 헌신하는 삶을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더러운 욕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모든 것이 그 더러운 욕심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경건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의 돈을 사랑하고 이 세상의 쾌락을 사랑하고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 그 사람은 경건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서 제일먼저 내려놓아야 할 것이 이 더러운 욕심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
거짓선생들이 우리 마음에 뿌려놓은 악은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주관하는 이”란 다른 견해도 있지만 이 우주만물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말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짓선생들이 교회에 침투해서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하도록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의 가장 큰 차이는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 교회와 사람 중심의 인본주의 교회입니다.
하나님 중심교회는 개혁주의 보수주의 교회이고 인본주의 교회는 자유주의 교회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 교회는 우리 장로교를 중심으로 한 몇몇 교단이고 나머지는 자유주의 인본주의 사상을 가진 교회들입니다.
성경말씀은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을 말합니다.
우리 인간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도리는 삶을 살아야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본주의 교회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도 않고 사람들을 중심으로 사람이 자유롭게 잘 사는 것이 교회의 존재 목적이라고 가르칩니다.
사람들의 생각에 특별히 더러운 욕심으로 가득 찬 타락한 인간들의 생각에는 철저하게 인본주의가 좋습니다.
사람 잘 살자고 하는 것인데 사람만 행복하면 되고 사람만 자유를 누리면서 더 부자로 성공자로 잘 살게 해 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그저 복이나 주시고 좋은 것만 주시면 되고 나만 잘 살게 도와주면 되고 마음에 의지나 되어 주시면 되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거나 섬기거나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지 않음으로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기들이 영광을 받으려고 하면서 하나님을 멸시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이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려는 마음이 조금도 없이 교회 안에 있는 잘못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3)당돌하며 자긍하며 떨지 않고 비방하는 자들
본문 10절에 거짓 선생의 가르침을 받은 자들의 특징을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대담하고 거만해서, 하늘에 있는 영광스러운 이들을 모욕하면서도, 두려운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무식이 담대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많이 아는 사람은 겸손하고 고개를 숙이는데 잘 모르는 사람이 더 아는 척하고 교만해 한다는 것입니다.
많이 배운 사람은 무슨 일을 할 때 많이 망설이게 됩니다.
많이 알수록 무엇을 잘 시작을 못합니다.
잘못될 것들이 많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뭘 잘 모르는 사람은 막무가내입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다 옳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르고 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 앞에 나서기가 두려워집니다.
기도도 함부로 할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나의 삶을 보여드리기가 겁이 납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그저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는 기도 밖에 할 수 없게 됩니다.
사탄은 우리의 마음에 교만한 마음을 넣어주어서 자랑하게 만들고 교만하게 만들고 당돌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사탄이 교회 안에 들여보낸 거짓선생들의 가르침에 속아서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타락한 인간의 욕심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제라도 육체의 더러운 욕망들을 버리고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경건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그러나 그렇게 말씀대로 바르게 사는 것이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경건한 자를 시험에서 건져주심
본문 9절 말씀에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라고 했습니다.
여기 경건한 사람이란 앞에서 살펴본 불의한 사람 즉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가운데서 행하는 것과 반대가 되는 말입니다.
거짓 선생은 더러운 육신의 욕심을 따라 살라고 하지만 그러나 경건한 사람은 그런 거짓에 속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경건한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은 시험에 빠집니다.
여기 시험은 시련을 말하는 것입니다.
경건한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은 어렵고 힘든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남의 것을 착취하며 사는 사람은 쉽게 잘 살지만 정직하게 노력하며 사는 사람은 가난한 삶을 살게 됩니다.
남이야 피해를 보든지 말든지 상관이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지만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면서 사는 사람은 좀 힘든 삶을 살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바르게살기 위해서 시련을 당하는 사람들을 그대로 두시지 않고 그 시련에서 건져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 때에도 참된 행복을 누리게 해 주십니다.
사람들은 사탄이 준 욕심을 다라 살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참된 행복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저기 적이 생기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인간으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을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기 것만 챙기는 이기주의의 사람을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결국 자기 혼자 외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욕심을 버리고 살 때 거기에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나누워 주고 도와줄 때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나를 존경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경건한 삶 즉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사는 사람은 손해 보는 삶이 아니라 복을 받는 삶입니다.
더 나아가서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많은 상급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주시고 인정해 주시고 환영해 주시는 그런 대접을 받게 됩니다.
디모데 후서 3:12절 이하에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말씀을 하시기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라고 했습니다.
성경말씀은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한다는 것입니다.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박해를 받게 될 것이지만 그래도 경건하게 살려고 노력을 하면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을 하면 성경 말씀 속에 그런 경건한 삶을 살게 하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말씀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과 불의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불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지만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탄의 사주를 받은 거짓선생의 가르침을 따라 더러운 욕심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경건한 삶을 사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본문 : 벧후 2:9-11
제목 : 경건한 자와 불의한 자.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는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더 큰 힘과 능력을 가진 천사들도 주 앞에서 그들을 거슬러 비방하는 고발을 하지 아니하느니라.”
우리나라에 기독교가 처음 들어올 때는 좋은 일을 참 많이 했습니다.
병원을 세워서 죽어가는 많은 사람들을 살렸습니다.
학교를 세워서 많은 사람들을 깨우치기도 했습니다.
6.25 전쟁이후에는 고아원을 세워서 전쟁고아들을 먹여 살렸습니다.
많은 복지관들 좋은 단체들이 다 기독교인들이 중심이 되어서 세워나갔습니다.
기독교를 통해서 무지한 자들이 지식인이 되었고 가난한 자들이 부자가 되기도 했고 어리석은 자들이 지혜로운 삶을 살기도 했습니다.
삶의 목표가 없는 사람들이 인생의 참된 의미를 알고 보람된 삶을 살기도 했습니다.
그 때는 사람들이 교회를 좋아했고 성직자들을 존경했고 교인들을 좋게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새롭게 나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은 그 인식이 많이 달라졌습니다.
교회 하면 다른 사람에게 유익을 주는 단체라 보다는 자기 이익만을 위해서 교회만 크게 짓고 교인들만 끌어 모으기에 혈안이 되어 있고 성직자들이 호화스럽게 살기 위해서 이용하는 단체로 생각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목사가 교회하면 돈 벌고 잘 산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목회사업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교인들이 미움을 받기 시작했고 교회가 욕을 먹기 시작했습니다.
안티기독교 단체들이 생겨나고 기독교 하면 욕부터 먼저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기독교가 변질이 되어서 그렇다고 생각을 합니다.
교회가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렸기 때문에 이런 현상이 생겨났습니다.
그것은 교회 내에 가만히 들어와서 잘못된 사상을 퍼트린 거짓선생들 때문에 교회가 이렇게 되고 말았다고 생각합니다.
거짓선생들의 잘못된 가르침이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쳐서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까지도 진리 따라 살지 않고 세상 사람들처럼 살기 때문에 교회가 이런 타락한 모습으로 변해가고 있고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과 불의한 삶을 사는 사람들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거짓선생들의 잘못된 가르침 때문에 교회 안에도 경건과 불의가 공존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불의를 용납하시지 않으신다고 하셨습니다.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져내시고 불의한 자는 심판하신다는 것이 본문의 요지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거짓 선생들의 가르침이 무엇인자를 살펴보고 그들의 가르침에 현혹되지 않고 경건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1.불의한 자의 특징과 심판.
오늘 본문 9절 말씀에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에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라고 했습니다.
10절에는 주님께서 그들을 “형벌할 줄 아시느니라.” 라고 했습니다.
교회 내에도 거짓선생들이 있고 거짓선생들을 따라 불의를 행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다 괜찮은 것처럼 보이지만 우리 주님께서 그들을 형벌 아래에 두시고 심판 날까지 지켜보시고 계시다가 꼭 벌을 내리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끔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처럼 세상 쾌락을 누리면서 살고 진리를 따르지도 않고 악하게 사는 사람들을 보면서 하나님께서 눈감아 주시나 라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 안에서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손해를 보는 것은 아닐까 라고 생각할 때도 있습니다.
저도 목사지만 화려하게 세상의 것들을 누리면서 사는 목사들을 보면서 가끔은 좀 혼란스러울 때가 있습니다.
나도 저렇게 좀 살아야 되지 않을 까 나만 손해 보는 것은 아닐까 라는 생각이 들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악한 자를 심판하시고 경건하게 사는 사람을 그 시련에서 건지신다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이런 생각을 하는 것은 거짓선생들이 너무나 판을 쳐서 그들의 주장이 마치 옳은 것처럼 세뇌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특징을 잘 살펴보고 진리의 길을 가야 할 것입니다.
1)특별히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거짓 선생의 잘못된 가르침의 특징은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는 것입니다.
육체를 따른다는 것은 우리 타락한 육신이 하고 싶은 대로 따라 한다는 것입니다.
반대가 되는 말은 영혼을 따라 성령님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행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속에는 타락한 육신을 따르는 마음이 있고 영혼을 따라 즉 성령님이 역사하시는 대로 행하려고 하는 마음이 있습니다.
타락한 우리의 육신을 따라 사는 것은 죄악 가운데서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말씀으로 통제받고 법으로 통제를 받으니까 이렇게라도 사는 것이지 정말로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하면 우리의 삶은 엉망진창일 것입니다.
자유라는 것이 참으로 좋은 것입니다.
자유가 억압을 당하고 마음대로 살지 못하는 것처럼 고통스러운 것이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외쳐서 정말로 자유로운 세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그 자유가 너무나 지나쳐서 자유롭게 나쁜 일도 하고 있습니다.
공부 안하고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일도 안하고 자유롭게 놀고, 몸에 해로운 것도 자유롭게 먹고 마시고, 남이 싫어하건 좋아하건 상관없이 내 마음대로 자유롭게 행동한다면 그 사람의 앞날은 뻔합니다.
자유를 추구하다가 보면 자유롭게 아무데서나 먹고 잘 수 있는 노숙자가 되는 것입니다.
교회도 자유롭게 알아서 하게 하면 기도하고 싶으면 하고 예배드리고 싶으면 드리고 충선하고 싶으면 하고 그렇게 하다가 보면 불신자가 되고 말 것입니다.
육체를 따르다가 보면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게 됩니다.
욕심도 더러운 욕심이 있고 깨끗한 욕심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욕심이 좀 있어야 합니다.
맛있고 몸에 좋은 음식을 먹으려고 하는 것은 좋은 욕심입니다.
사랑하는 사람과 사랑을 나누려고 하는 것도 하나님께서 주신 좋은 욕심입니다.
열심히 일을 해서 돈을 벌고 좀 더 나은 삶을 살고 싶고 다른 사람에게 칭찬을 받고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은 좋은 욕심일 것입니다.
그러나 그 욕심이 지나쳐서 더러운 욕심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나의 남편 나의 아애 외에 다른 남자나 여자를 사랑하려고 하는 것은 더러운 욕심에 속합니다.
힘들이지 않고 땀을 흘리지 않고 남의 돈을 빼앗아 와서 잘 살려고 하는 것은 더러운 욕심입니다.
평생 다 쓰지도 못할 것들을 창고에 넣어두고 썩히는 것도 더러운 욕심에 속합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일을 안 하고 돈을 버는 것이 좋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넥타이나 매고 책상에 앉아서 땀을 흘리지 않고 남에게 일을 시켜서 돈을 벌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쓰지도 못할 엄청난 돈을 모아야 성공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런 더러운 욕심들은 사탄이 거짓선생들을 통해서 우리에게 심어준 잘못된 생각 더러운 욕심에서 온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깨끗한 욕심은 열심히 땀을 흘려 일을 하고 그래서 번 돈으로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에게 나누어 주고 더 많이 희생하고 더 많이 헌신하는 삶을 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더러운 욕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은 생각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모든 것이 그 더러운 욕심의 지배를 받기 때문에 경건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이 세상의 돈을 사랑하고 이 세상의 쾌락을 사랑하고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기를 바라는 마음이 나를 지배하고 있는 그 사람은 경건한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경건한 삶을 살기 위해서 제일먼저 내려놓아야 할 것이 이 더러운 욕심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
거짓선생들이 우리 마음에 뿌려놓은 악은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주관하는 이”란 다른 견해도 있지만 이 우주만물의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말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짓선생들이 교회에 침투해서 우주 만물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무시하고 멸시하도록 만들어 버린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들의 가장 큰 차이는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 교회와 사람 중심의 인본주의 교회입니다.
하나님 중심교회는 개혁주의 보수주의 교회이고 인본주의 교회는 자유주의 교회입니다.
하나님 중심의 신본주의 교회는 우리 장로교를 중심으로 한 몇몇 교단이고 나머지는 자유주의 인본주의 사상을 가진 교회들입니다.
성경말씀은 철저하게 하나님 중심을 말합니다.
우리 인간의 삶의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을 섬기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도리는 삶을 살아야 된다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본주의 교회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하지도 않고 사람들을 중심으로 사람이 자유롭게 잘 사는 것이 교회의 존재 목적이라고 가르칩니다.
사람들의 생각에 특별히 더러운 욕심으로 가득 찬 타락한 인간들의 생각에는 철저하게 인본주의가 좋습니다.
사람 잘 살자고 하는 것인데 사람만 행복하면 되고 사람만 자유를 누리면서 더 부자로 성공자로 잘 살게 해 주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그저 복이나 주시고 좋은 것만 주시면 되고 나만 잘 살게 도와주면 되고 마음에 의지나 되어 주시면 되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거나 섬기거나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앞에 바르게 살지 않음으로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고 자기들이 영광을 받으려고 하면서 하나님을 멸시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조금도 없이 하나님을 두려운 마음으로 섬기려는 마음이 조금도 없이 교회 안에 있는 잘못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3)당돌하며 자긍하며 떨지 않고 비방하는 자들
본문 10절에 거짓 선생의 가르침을 받은 자들의 특징을 “이들은 당돌하고 자긍하며 떨지 않고 영광 있는 자들을 비방하거니와” 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대담하고 거만해서, 하늘에 있는 영광스러운 이들을 모욕하면서도, 두려운 줄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말에 “무식이 담대하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많이 아는 사람은 겸손하고 고개를 숙이는데 잘 모르는 사람이 더 아는 척하고 교만해 한다는 것입니다.
많이 배운 사람은 무슨 일을 할 때 많이 망설이게 됩니다.
많이 알수록 무엇을 잘 시작을 못합니다.
잘못될 것들이 많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뭘 잘 모르는 사람은 막무가내입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것이 다 옳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각 없이 일을 저지르고 봅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알면 알수록 하나님 앞에 나서기가 두려워집니다.
기도도 함부로 할 수 없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 나의 삶을 보여드리기가 겁이 납니다.
그래서 우리의 기도는 그저 나를 불쌍히 여겨 달라는 기도 밖에 할 수 없게 됩니다.
사탄은 우리의 마음에 교만한 마음을 넣어주어서 자랑하게 만들고 교만하게 만들고 당돌하게 만듭니다.
우리는 사탄이 교회 안에 들여보낸 거짓선생들의 가르침에 속아서 올바른 가치관을 가지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과 반대되는 타락한 인간의 욕심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제라도 육체의 더러운 욕망들을 버리고 성령님께서 인도하시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경건한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렇게 사는 것이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그러나 그렇게 말씀대로 바르게 사는 것이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경건한 자를 시험에서 건져주심
본문 9절 말씀에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실 줄 아시고” 라고 했습니다.
여기 경건한 사람이란 앞에서 살펴본 불의한 사람 즉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가운데서 행하는 것과 반대가 되는 말입니다.
거짓 선생은 더러운 육신의 욕심을 따라 살라고 하지만 그러나 경건한 사람은 그런 거짓에 속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을 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경건한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은 시험에 빠집니다.
여기 시험은 시련을 말하는 것입니다.
경건한 삶을 살려고 하는 사람은 어렵고 힘든 삶을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남의 것을 착취하며 사는 사람은 쉽게 잘 살지만 정직하게 노력하며 사는 사람은 가난한 삶을 살게 됩니다.
남이야 피해를 보든지 말든지 상관이 없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자유롭게 살지만 남을 생각하고 배려하면서 사는 사람은 좀 힘든 삶을 살게 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바르게살기 위해서 시련을 당하는 사람들을 그대로 두시지 않고 그 시련에서 건져주신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살 때에도 참된 행복을 누리게 해 주십니다.
사람들은 사탄이 준 욕심을 다라 살면 행복할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그러나 참된 행복은 거기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기저기 적이 생기고 미워하는 사람들이 생기고 인간으로서의 대접을 받지 못하게 됩니다.
욕심이 많은 사람을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자기 것만 챙기는 이기주의의 사람을 사람들이 좋아하지 않습니다.
결국 자기 혼자 외로운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욕심을 버리고 살 때 거기에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나누워 주고 도와줄 때 많은 사람들이 나를 좋아하고 나를 존경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경건한 삶 즉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사는 사람은 손해 보는 삶이 아니라 복을 받는 삶입니다.
더 나아가서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은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많은 상급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알아주시고 인정해 주시고 환영해 주시는 그런 대접을 받게 됩니다.
디모데 후서 3:12절 이하에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에 대해서 이렇게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라고 했습니다.
이어서 말씀을 하시기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딤후 3:16-17) 라고 했습니다.
성경말씀은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한다는 것입니다.
경건하게 살려고 하는 사람은 박해를 받게 될 것이지만 그래도 경건하게 살려고 노력을 하면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을 하면 성경 말씀 속에 그런 경건한 삶을 살게 하는 능력을 갖추게 하는 말씀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과 불의한 삶을 사는 사람이 있습니다.
불의를 행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되지만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탄의 사주를 받은 거짓선생의 가르침을 따라 더러운 욕심을 따라 사는 사람이 되지 마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경건한 삶을 사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