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6. 27.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후 14)
본문 : 벧후 2:6-8
제목 : 소돔과 고모라가 주는 교훈.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생들을 심판하시는 장면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를 심판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거두시고 남자는 땀을 흘려야 먹고 살고 여자는 해산을 하는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야 하는 벌을 내리셨습니다.
노아시대 때 죄를 범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물로 심판을 하셔서 노아 가족만 살아남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기록된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도 하나님께서 죄를 범한 인간을 심판하신 일에 빼놓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창세기 19장은 역사상 보기 드문 대재앙의 하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즉 소돔과 고모라가 단 하루 만에 완전히 잿더미로 화하고 멸망한 사건입니다.
어떻게 손쓸 겨를도 없었고 피할 수 있는 시간도 없었고 순식간에 일어난 대재앙입니다.
이 소돔과 고모라가 어디에 있었는가를 연구하는 고고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아마도 사해의 남단이 소돔과 고모라가 있었던 지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유황과 불이 소나기처럼 퍼 부었다는 것을 가지고 이거 화산 폭발이나 지진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연현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유황을 내려서 멸망시킨 것이라고 믿습니다.
유황이 있을 수 없는 지역인 사해남단지역에 크고 작은 유황 수천 개가 깔려 있어서 그 사실을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건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시고자 하는 것은 후세에 사는 우리들에게 교훈을 주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자들은 반드시 심판을 하시고 벌을 내리신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은 노아홍수나 소돔과 고모라성에 유황을 내려서 심판을 하신 것은 그냥 만들어 낸 이야기라고 하기도 하고 우연한 자연재해로 그렇게 된 것이라고들 말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을 하십니다.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예정을 하시고 실행을 하신일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또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보이시기 위하여 하신 일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또 죄악된 세상에 살면서 고통당하는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시기 위한 일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1.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일어날 예정된 일입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에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라고 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보여주려고 하나님께서 멸망하기로 정하신 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그때 그 때 바로 일어난다면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바르게 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언제나 항상 그때그때 죄악을 심판하시지는 않습니다.
가끔 본때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악을 징벌하시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짓는 죄에 대해서는 죽을 때까지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서기까지는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죄에 대해서 심각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죄를 지어도 무사하고 오히려 양심 바르게 사는 사람들보다 더 잘살기도 하기 때문에 심판에 대한 감각이 무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바로 심판이 없다고 영원히 죄가 묻히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낱낱이 들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예정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실을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죄악의 도시를 심판하심으로 우리에게 본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크게 두 가지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도 없으며 죄를 지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죄를 짓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하나님께 죄를 지으면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편에도 속하지 못하고, 저편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도 속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세상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을 중간지대에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늘 이 중간지대에 머무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생각으로는 하나님을 믿지만 죄를 짓습니다.
세상과 교회 중간에 서서 이쪽도 따르고 저쪽도 따르면서 살아갑니다.
소돔성에 살던 롯이 그런 사람입니다.
삼촌 아브라함을 잘 만나서 그래도 삼촌 따라 가다가 예배도 드리고, 제사도 드렸습니다.
그러다가 물욕과 세상의 욕심에 따라서 삼촌을 배신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죄악에 빠진 세상으로 떠납니다.
비옥한 땅을 자신이 차지하려고 “내가 저 쪽 동쪽으로 갑니다.”라고 하면서 삼촌을 떠납니다.
결국 너무나 좋게 보였던 그 땅을 따라가다가 보니 그 땅이 축복의 땅이 아니라 저주의 땅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을 섬기면서 죄를 짓지 않고 사는 하나님의 편에 있는 사람 같게 보이기도 합니다.
또 어떻게 보면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죄와 더불어서 사는 세상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같기도 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같기도 합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중간지대에 머무르면서 사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교회는 다니는데 하나님도 모르고 죄 가운데서 사는 세상 사람들처럼 삽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백성 같기도 한데 어떻게 보면 하나님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성경말씀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계시는 것 같기도 하고 죄를 지으면 벌을 받을 것 같기도 한데 세상에 나가보면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기도 하고 죄를 지어도 아무 탈이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때로는 죄를 짓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때로는 의롭게 살려고 손해를 보면서 살다가도 이렇게 사는 것이 어리석은 짓은 아닐까 손해 보는 짓은 아닐까 라고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을 하시기 바랍니다.
죄를 범하면 벌을 받는 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살게 하시려고 소돔과 고모라를 잿더미가 되게 하셨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습니다.
앞서 인용한 6절 말씀에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신 이유를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라고 하셨습니다.
경건한 삶이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사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후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께 반항하고 죄와 더불어서 사는 불경건한 사람들에게 샘플케이스로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의 죄가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에는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앞서 2절 말씀에도 거짓 선생들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호색 하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호색하는 것” 이란 잘못된 문란한 성행위를 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음란한 행실도 호색하는 것과 비슷한 말입니다.
부도덕적이고 변태적인 성생활이 소돔과 고모라의 죄라고 했습니다.
소돔 사람들이 롯을 찾아온 손님을 내어놓이라고 하면서 그들과 관계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소돔사람들의 죄를 동성애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소돔이라는 말에서 영어의 동성연애자(Sodomite)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의 죄가 단순히 성적타락만을 말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의 “무법한 자” 라는 말에서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의 또 다른 죄를 볼 수 있습니다.
무법한 자란 본성 혹은 자연적인 양심의 법조차 무시하는 부도덕한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인간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양심마저 지키지 않는 악한 사람들이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회의 정의를 지키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사1:9)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법을 지키지 아니하고 정의롭게 살지 않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하여 소돔의 관원들아 고모라의 백성아 라고 말씀합니다.
에스겔서 16장에서는 소돔의 죄를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도와주지 않은 것이 그들의 죄라고 말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소돔과 고모라 성의 죄는 어떤 특정한 죄만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 타락을 비롯해서 의로운 삶을 살지 않는 것 그리고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돌보지 않고 자기 이익만을 위해서 사는 여러 가지의 죄악들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소돔과 고모라 못지않은 총체적으로 타락한 세상입니다.
성적인 타락은 강단에서 입에 담지 못할 정도로 타락을 했습니다.
이기주의는 극에 달해서 도무지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남에게 선을 베풀고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도 없어졌습니다.
기본적인 양심이라도 지키며 그래도 의롭게 살려고 애를 쓰는 사람도 많지 않는 세상입니다.
요즈음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서 보면 사람들이 참 악해졌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조금도 양보를 하거나 남을 이해를 하거나 용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디모데 후서 3: 1-5절에 말세에 일어날 현상을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사도바울을 통해서 지적한 말세의 현상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행동을 하면서 도무지 자신이 죄인이며 잘못된 행동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마음으로 세팅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서로 싸우는 사람이 있으면 가서 화해를 붙이면 서로 사과하기도 하고 또 상대방뿐만 아니라 나도 잘못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하고 원만한 타협점을 찾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도대체 말이 통하지가 않습니다.
자기 생각은 절대 틀림이 없는 법이고 다른 사람은 절대 잘못한 것이고 잘못한 사람은 응당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교만하고, 비방하고,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이런 세상을 살면서 다들 그렇게 사는데 나도 그렇게 살자 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악한 사람들이 결국에는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소돔과 고모라를 재로 만들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고통당하는 의로운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합니다.
본문 7-8절 말씀에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롯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떠나 죄악된 도시로 와서 산 사람이고 구원 받은 후에도 비윤리적인 삶을 살았고 그의 악한 후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역사적인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 그가 악한 죄인이었지 의로운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를 의로운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만한 의로움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교적 소돔 사람들보다는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소돔사람들이 멸망당할 때 구원을 받았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그에게는 그를 위해서 염려하고 기도하는 삼촌 아브라함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성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내려온 천사를 대접했고 그에게 롯을 부탁했음을 봅니다.
나의 뒤에서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그 기도가 나를 직접 구원에 이르게 할 수는 없지만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 즉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또 롯은 비록 죄악의 도성에 살고 있었지만 그 사람들과 완전히 동화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천사를 나그네로 알고 손님으로 받아들였고 그 손님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의 딸을 내주려고 하는 희생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소돔 사람들은 외지인을 악한 마음으로 공격을 했지만 롯은 그들처럼 하지 않고 오히려 영접을 하고 보호를 함으로 아직 완전히 죄악에 물들지 않은 그의 의로움을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그들과 같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하고 악하게 살지라도 우리 성도들은 그들과 같지 않게 의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 의로움을 통하여 참된 의를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죄악의 세상에서 의롭게 살려고 몸부림을 치는 사람들을 그 고통에서 건져주신다고 했습니다.
롯은 극도의 죄악을 저지르고 사는 소돔 사람들 가운데서 의로운 사람으로 살기가 쉽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함께 죄를 짓지 않고 사는 롯을 왕따 시키려고 했을 것이고 비웃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많이 흔들렸을 것이고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런 고통을 당하는 롯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죄악된 세상에 살면서 의롭게 살려고 하니까 마음이 상하는 일이 많습니다.
저 사람들은 악하게 사는데도 잘 사는데 왜 나는 의롭게 사는데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되는가 하고 원망을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이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런 마음이라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믿음을 주셨고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해 주셨고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셨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소돔성의 롯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은 롯이 구원을 받을 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사람들을 통해서 교훈을 받습니다.
롯의 사위들을 통해서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비록 소돔사람들과 같은 죄를 짓고 사는 사람들이었지만 가족이라는 이유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구원에 관한 이야기를 농담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복음을 전해도 우리가 하는 말을 농담정도로 생각하고 심각하게 듣지를 않습니다.
복음을 심각하게 받지 않고 농담으로 여겼던 사람들의 비참한 최후를 보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도 그 멸망의 길로 가지 않도록 우리의 말을 농담으로 여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은 롯의 처입니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천사의 말을 무시하고 세상에 것이 너무나 아까워서 뒤를 돌아보다가 함께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구원의 길을 가는 성도들이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것에 마음을 두고 세상의 부귀영화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의 것 아까워서 뒤를 돌아보다가 세상과 함께 불타고만 롯의 처를 통하여 교훈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통하여 우리가 교훈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잿더미로 만들고 멸망시키신 것은 후세에 경건하지 않을 자들에게 본보기로 삼으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경건한 자들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며
의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고통을 당하는 우리들을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좋아보일지라도 흔들리지 말고 의로운 삶을 살려고 몸부림을 치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진리의 말씀을 따라 승리의 길로 가시기 바랍니다.
본문 : 벧후 2:6-8
제목 : 소돔과 고모라가 주는 교훈.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생들을 심판하시는 장면들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께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를 심판하셔서 영원한 생명을 거두시고 남자는 땀을 흘려야 먹고 살고 여자는 해산을 하는 고통을 당하면서 살아야 하는 벌을 내리셨습니다.
노아시대 때 죄를 범한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물로 심판을 하셔서 노아 가족만 살아남을 수 있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기록된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도 하나님께서 죄를 범한 인간을 심판하신 일에 빼놓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창세기 19장은 역사상 보기 드문 대재앙의 하나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즉 소돔과 고모라가 단 하루 만에 완전히 잿더미로 화하고 멸망한 사건입니다.
어떻게 손쓸 겨를도 없었고 피할 수 있는 시간도 없었고 순식간에 일어난 대재앙입니다.
이 소돔과 고모라가 어디에 있었는가를 연구하는 고고학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직 확실하게 밝혀지진 않았지만 아마도 사해의 남단이 소돔과 고모라가 있었던 지역이라고 생각합니다.
또 유황과 불이 소나기처럼 퍼 부었다는 것을 가지고 이거 화산 폭발이나 지진으로 일어난 사건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자연현상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유황을 내려서 멸망시킨 것이라고 믿습니다.
유황이 있을 수 없는 지역인 사해남단지역에 크고 작은 유황 수천 개가 깔려 있어서 그 사실을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사건들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을 하시고자 하는 것은 후세에 사는 우리들에게 교훈을 주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죄를 범하는 자들은 반드시 심판을 하시고 벌을 내리신다는 사실을 알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사람들은 노아홍수나 소돔과 고모라성에 유황을 내려서 심판을 하신 것은 그냥 만들어 낸 이야기라고 하기도 하고 우연한 자연재해로 그렇게 된 것이라고들 말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분명히 말씀을 하십니다.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미리 예정을 하시고 실행을 하신일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또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보이시기 위하여 하신 일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또 죄악된 세상에 살면서 고통당하는 의로운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시기 위한 일이라고 말씀을 하십니다.
1.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일어날 예정된 일입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에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라고 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 성이 멸망한 것은 우연이 아니라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보여주려고 하나님께서 멸망하기로 정하신 일이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그때 그 때 바로 일어난다면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바르게 살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언제나 항상 그때그때 죄악을 심판하시지는 않습니다.
가끔 본때를 보여주시기 위해서 악을 징벌하시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짓는 죄에 대해서는 죽을 때까지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서기까지는 기다리십니다.
그래서 사람들이 죄에 대해서 심각성을 느끼지 않습니다.
죄를 지어도 무사하고 오히려 양심 바르게 사는 사람들보다 더 잘살기도 하기 때문에 심판에 대한 감각이 무디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반드시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지금 바로 심판이 없다고 영원히 죄가 묻히는 것이 아니라 마지막 심판대 앞에서 낱낱이 들어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예정이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실을 소돔과 고모라와 같은 죄악의 도시를 심판하심으로 우리에게 본을 보이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크게 두 가지의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살고 있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도 없으며 죄를 지어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하고 죄를 짓고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께서 살아계시며 하나님께 죄를 지으면 반드시 심판을 받는다는 생각을 가지고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노력을 하면서 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편에도 속하지 못하고, 저편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도 속하지 못하고 그렇다고 세상에도 속하지 못하는 사람을 중간지대에 있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늘 이 중간지대에 머무르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마음으로, 생각으로는 하나님을 믿지만 죄를 짓습니다.
세상과 교회 중간에 서서 이쪽도 따르고 저쪽도 따르면서 살아갑니다.
소돔성에 살던 롯이 그런 사람입니다.
삼촌 아브라함을 잘 만나서 그래도 삼촌 따라 가다가 예배도 드리고, 제사도 드렸습니다.
그러다가 물욕과 세상의 욕심에 따라서 삼촌을 배신하고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죄악에 빠진 세상으로 떠납니다.
비옥한 땅을 자신이 차지하려고 “내가 저 쪽 동쪽으로 갑니다.”라고 하면서 삼촌을 떠납니다.
결국 너무나 좋게 보였던 그 땅을 따라가다가 보니 그 땅이 축복의 땅이 아니라 저주의 땅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을 섬기면서 죄를 짓지 않고 사는 하나님의 편에 있는 사람 같게 보이기도 합니다.
또 어떻게 보면 하나님을 떠나서 세상 사람들과 함께 죄와 더불어서 사는 세상 사람들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 같기도 하고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 같기도 합니다.
오늘날에도 이런 중간지대에 머무르면서 사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교회는 다니는데 하나님도 모르고 죄 가운데서 사는 세상 사람들처럼 삽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백성 같기도 한데 어떻게 보면 하나님과 전혀 상관이 없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성경말씀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계시는 것 같기도 하고 죄를 지으면 벌을 받을 것 같기도 한데 세상에 나가보면 하나님이 안 계신 것 같기도 하고 죄를 지어도 아무 탈이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때로는 죄를 짓지 않으려고 조심하면서 때로는 의롭게 살려고 손해를 보면서 살다가도 이렇게 사는 것이 어리석은 짓은 아닐까 손해 보는 짓은 아닐까 라고 생각이 들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분명히 기억을 하시기 바랍니다.
죄를 범하면 벌을 받는 것이 하나님께서 정하신 법칙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 사실을 잊지 않고 기억하고 죄를 범하지 않으려고 몸부림을 치면서 살게 하시려고 소돔과 고모라를 잿더미가 되게 하셨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습니다.
앞서 인용한 6절 말씀에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신 이유를 “후세에 경건하지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라고 하셨습니다.
경건한 삶이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서 사는 것을 말씀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후세에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기는커녕 오히려 하나님께 반항하고 죄와 더불어서 사는 불경건한 사람들에게 샘플케이스로 소돔과 고모라 성의 멸망을 보여주셨다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의 죄가 무엇이었을까요?
오늘 본문의 말씀에는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이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앞서 2절 말씀에도 거짓 선생들의 특징을 설명하면서 “호색 하는 것”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호색하는 것” 이란 잘못된 문란한 성행위를 말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음란한 행실도 호색하는 것과 비슷한 말입니다.
부도덕적이고 변태적인 성생활이 소돔과 고모라의 죄라고 했습니다.
소돔 사람들이 롯을 찾아온 손님을 내어놓이라고 하면서 그들과 관계를 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소돔사람들의 죄를 동성애라고 말하기도 합니다.
이 소돔이라는 말에서 영어의 동성연애자(Sodomite)라는 말이 나왔습니다.
그러나 소돔과 고모라의 죄가 단순히 성적타락만을 말씀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본문의 “무법한 자” 라는 말에서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의 또 다른 죄를 볼 수 있습니다.
무법한 자란 본성 혹은 자연적인 양심의 법조차 무시하는 부도덕한 자를 가리키는 말입니다.
인간이 기본적으로 지켜야 하는 양심마저 지키지 않는 악한 사람들이 소돔과 고모라 사람들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사회의 정의를 지키지 않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이렇게 말합니다.
“너희 소돔의 관원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너희 고모라의 백성아 우리 하나님의 법에 귀를 기울일지어다.(사1:9) 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법을 지키지 아니하고 정의롭게 살지 않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향하여 소돔의 관원들아 고모라의 백성아 라고 말씀합니다.
에스겔서 16장에서는 소돔의 죄를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을 도와주지 않은 것이 그들의 죄라고 말씀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소돔과 고모라 성의 죄는 어떤 특정한 죄만을 말씀하는 것이 아니라 성적 타락을 비롯해서 의로운 삶을 살지 않는 것 그리고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을 돌보지 않고 자기 이익만을 위해서 사는 여러 가지의 죄악들을 범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이 세상도 소돔과 고모라 못지않은 총체적으로 타락한 세상입니다.
성적인 타락은 강단에서 입에 담지 못할 정도로 타락을 했습니다.
이기주의는 극에 달해서 도무지 자기밖에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남에게 선을 베풀고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도 없어졌습니다.
기본적인 양심이라도 지키며 그래도 의롭게 살려고 애를 쓰는 사람도 많지 않는 세상입니다.
요즈음 우리 주변에 일어나는 일들을 통해서 보면 사람들이 참 악해졌다는 생각이 많이 듭니다.
조금도 양보를 하거나 남을 이해를 하거나 용서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디모데 후서 3: 1-5절에 말세에 일어날 현상을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이것을 알라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러
사람들이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자랑하며
교만하며 비방하며 부모를 거역하며
감사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지 아니하며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쾌락을 사랑하기를 하나님 사랑하는 것보다 더하며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사도바울을 통해서 지적한 말세의 현상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 사람들과 똑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문제는 모든 사람들이 이렇게 행동을 하면서 도무지 자신이 죄인이며 잘못된 행동을 한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이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잘못된 마음으로 세팅이 되어 있는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서로 싸우는 사람이 있으면 가서 화해를 붙이면 서로 사과하기도 하고 또 상대방뿐만 아니라 나도 잘못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기도 하고 원만한 타협점을 찾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요즘은 도대체 말이 통하지가 않습니다.
자기 생각은 절대 틀림이 없는 법이고 다른 사람은 절대 잘못한 것이고 잘못한 사람은 응당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을 합니다.
교만하고, 비방하고, 무정하며, 원통함을 풀지 아니하며, 모함하며,
절제하지 못하며, 사나우며, 선한 것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배신하며, 조급하며, 자만하며......,
이런 세상을 살면서 다들 그렇게 사는데 나도 그렇게 살자 라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런 악한 사람들이 결국에는 심판을 받는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소돔과 고모라를 재로 만들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고통당하는 의로운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알게 합니다.
본문 7-8절 말씀에 “무법한 자들의 음란한 행실로 말미암아 고통당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이는 이 의인이 그들 중에 거하여 날마다 저 불법한 행실을 보고 들음으로 그 의로운 심령이 상함이라)”라고 했습니다.
상식적으로는 롯을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자기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아브라함을 떠나 죄악된 도시로 와서 산 사람이고 구원 받은 후에도 비윤리적인 삶을 살았고 그의 악한 후손들을 통해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고통을 받는 역사적인 사실들로 미루어 볼 때 그가 악한 죄인이었지 의로운 사람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그를 의로운 사람이라고 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을만한 의로움을 말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비교적 소돔 사람들보다는 의로운 사람이었기 때문에 소돔사람들이 멸망당할 때 구원을 받았고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기회가 그에게 주어졌습니다.
그에게는 그를 위해서 염려하고 기도하는 삼촌 아브라함이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성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내려온 천사를 대접했고 그에게 롯을 부탁했음을 봅니다.
나의 뒤에서 나를 위해서 기도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참으로 다행한 일입니다.
그 기도가 나를 직접 구원에 이르게 할 수는 없지만 구원받을 수 있는 기회 즉 믿음을 가질 수 있는 기회를 주기 때문입니다.
또 롯은 비록 죄악의 도성에 살고 있었지만 그 사람들과 완전히 동화되지는 않았다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천사를 나그네로 알고 손님으로 받아들였고 그 손님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자신의 딸을 내주려고 하는 희생정신을 보여주었습니다.
소돔 사람들은 외지인을 악한 마음으로 공격을 했지만 롯은 그들처럼 하지 않고 오히려 영접을 하고 보호를 함으로 아직 완전히 죄악에 물들지 않은 그의 의로움을 보여 주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그들과 같지 않기를 바라십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죄를 범하고 악하게 살지라도 우리 성도들은 그들과 같지 않게 의로운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그 의로움을 통하여 참된 의를 주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죄악의 세상에서 의롭게 살려고 몸부림을 치는 사람들을 그 고통에서 건져주신다고 했습니다.
롯은 극도의 죄악을 저지르고 사는 소돔 사람들 가운데서 의로운 사람으로 살기가 쉽지를 않았을 것입니다.
함께 죄를 짓지 않고 사는 롯을 왕따 시키려고 했을 것이고 비웃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마음이 많이 흔들렸을 것이고 고통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런 고통을 당하는 롯을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셨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죄악된 세상에 살면서 의롭게 살려고 하니까 마음이 상하는 일이 많습니다.
저 사람들은 악하게 사는데도 잘 사는데 왜 나는 의롭게 사는데 이렇게 고통스러운 삶을 살게 되는가 하고 원망을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럴 때 이 말씀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그런 마음이라도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특별히 믿음을 주셨고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해 주셨고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셨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소돔성의 롯의 이야기를 통해서 우리가 받을 수 있는 또 하나의 교훈은 롯이 구원을 받을 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비참한 최후를 맞이한 사람들을 통해서 교훈을 받습니다.
롯의 사위들을 통해서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도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비록 소돔사람들과 같은 죄를 짓고 사는 사람들이었지만 가족이라는 이유로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구원에 관한 이야기를 농담으로 여겼다고 했습니다.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복음을 전해도 우리가 하는 말을 농담정도로 생각하고 심각하게 듣지를 않습니다.
복음을 심각하게 받지 않고 농담으로 여겼던 사람들의 비참한 최후를 보고 우리 주변의 사람들도 그 멸망의 길로 가지 않도록 우리의 말을 농담으로 여기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또 한 사람은 롯의 처입니다.
뒤를 돌아보지 말라는 천사의 말을 무시하고 세상에 것이 너무나 아까워서 뒤를 돌아보다가 함께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구원의 길을 가는 성도들이 뒤를 돌아보아서는 안 됩니다.
세상의 것에 마음을 두고 세상의 부귀영화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세상의 것 아까워서 뒤를 돌아보다가 세상과 함께 불타고만 롯의 처를 통하여 교훈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을 통하여 우리가 교훈을 받기를 원하십니다.
소돔과 고모라를 잿더미로 만들고 멸망시키신 것은 후세에 경건하지 않을 자들에게 본보기로 삼으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불경건한 자들을 반드시 심판하실 것이며
의로운 삶을 살기 위해서 고통을 당하는 우리들을 구원해 주실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좋아보일지라도 흔들리지 말고 의로운 삶을 살려고 몸부림을 치시기 바랍니다.
끝까지 진리의 말씀을 따라 승리의 길로 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