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3. 14.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벧후 03)
본문 : 벧후 1:4
제목 :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가정마다 아이를 교육시키는 방법이 다릅니다.
어떤 가정은 회초리를 들고 아이를 가르칩니다.
잘못하면 무조건 벌을 주어서 아이가 잘못된 길로 가지 못하게 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옛날 아이들은 부모님 사랑을 회초리로 받았습니다.
어떤 가정은 아이와 타협을 합니다.
이것 잘하면 상을 준다. 공부 잘하면 용돈을 많이 준다. 시험 성적 오르면 컴퓨터 사준다. 1등하면 핸드폰 바꿔준다.
그러나 잘못하면 용돈삭감 외출금지 귀가시간 조정 이런 벌로 다스립니다. 이렇게 타협을 하여서 아이가 착하고 바른 길을 가도록 해줍니다.
어떤 가정은 아이를 무조건 사랑으로 대합니다.
뭐든지 좋은 것 해주고, 뭘 잘못해도 사랑으로 덮어주고, 이상한 행동을 해도 이해를 해주고, 좋은 것만 좋은 것만 주어서 아이가 스스로 은혜를 알고 바른 길로 가도록 해 줍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바르게 인도하시는 방법도 세월에 따라 다르신 것 같습니다.
창세기 시절에는 아주 엄하신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다고 영원한 생명을 빼앗아버리고 그 좋은 에덴동산에서 쫓아내버렸습니다.
노아시대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홍수로 다 죽게 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은 유황불로 다 타죽게 했습니다.
죄를 짓는 인생에게 아주 엄하신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에게서는 아이와 타협하는 부모님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잘 지키면 복을 주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벌을 주는 것입니다.
벌을 주기 위해서 이런 법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 이런 법을 만드셨습니다.
신약시대에 들어오면 특별히 서신서들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의 약속들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은혜를 베푸시고 그 은혜를 받은 자들은 마음껏 자유와 평화를 누리면서 살게 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시키십니까?
그냥 몽둥이를 들고 잘못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교육을 시키십니까?
아니면 어떤 법을 정하고 타협을 하십니까?
아니면 잘못해도 용서하고 자꾸 잘해주기만 하십니까?
부모입장에서 보면 몽둥이를 들고 그때그때 벌을 주는 것이 가장 쉽고 효과적이라고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교육이라고 생각들을 많이 하실 것입니다.
만날 오냐 오냐 하고 사랑만 베풀면 아이 버릇이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면 잘못을 해도 바로 용서해 주시고 이해를 해 주시고 더 많은 사랑을 주시는 부모님을 원할 것입니다.
교회의 목사들도 목회를 하면서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합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무섭게 몽둥이를 들고 잘못하면 혼난다. 라고 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겁을 내고 바로 고치고 바르게 사는 것 같습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타협을 하게 합니다.
이렇게 잘 살면 복을 받는다.
충성하고 헌신하면 복을 받는다. 그러니 열심히 신앙생활 잘 하라고 교육을 해서 바르게 살게 합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무조건의 사랑을 외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무조건 용서하시고 사랑하신다.
우리 하나님은 너무나 좋으신 분이시다.
이렇게 함으로서 사람들이 그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해서 바른 삶을 살게 합니다.
저는 신약시대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무조건의 사랑 일방적인 은혜를 너무나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도 그런 방법으로 목회를 하고 싶습니다.
바로 바로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지만 그것이 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후서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말씀의 핵심을 보면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에게 베푸신 소중한 것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1절 말씀에는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3절 말씀에는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4절 말씀에는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설교의 목적입니다.
이 약속의 참된 의미를 알고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오늘 본문 말씀에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의 전체적인 뜻을 살펴서 그 약속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전체가 약속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여러 가지의 약속들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구약 즉 오래된 약속과 신약 즉 새 언약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베드로사도는 이런 많은 약속들 가운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요?
약속은 약속인데 어떤 “그 약속”을 말한다고 했고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라고 했습니다.
보배롭고 지극히 큰 그 약속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이로써” 우리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로써”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그 약속이 무엇인지를 아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로써”라는 말은 앞 절의 “영광과 덕으로 말미암아”를 뜻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영광과 덕이란 지난주에 배운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덕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보좌우편에서 세상만물을 다스리심 그리고 영광의 재림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란 이런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보좌우편에 앉으심과 재림의 영광으로 우리에게 주어질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절에 약속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을 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복음이란 십자가의 복음 천국복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고 천국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25절은 약속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또 베드로후서 3:13절에는 약속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약속은 새 하늘과 새 땅 즉 영원한 천국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정리해보면 약속이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천국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해 주신다는 약속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약속을 보배로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보배롭다"라고 번역된 헬라어(τιμιοs)는 “가치 있는, 귀중한, 진귀한” 등의 말로 번역이 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에 대한 이 약속은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 있고 귀중한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맺은 약속들 중에 가장 소중한 약속이 무엇입니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약속들을 하게 됩니다.
채무관계의 약속도 있을 것이고, 결혼하신 분들은 결혼생활에 관한 약속을 하셨을 것입니다.
친구와 약속, 부모님과 약속, 선생님과의 약속...., 이런저런 약속들이 많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런 약속들 가운데 정말로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약속들이 있다면 반드시 지켜야 할 것입니다.
별로 소중하지 않는 약속들은 그냥 지나가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약속들이 아무리 귀하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해 주신 약속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그냥 주신다는 약속보다 귀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보배로운 약속에다가 지극히 큰 약속이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아주 아주 귀하고 큰 약속 그 약속을 받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그 약속을 잘 몰라서 알면서도 믿지를 못해서 그렇지 정말로 바르게 알고 그 약속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된다면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부러워하겠습니까?
사업이 망했습니까?
그게 뭐 그리 중요합니까? 어차피 다들 실패하면서 사는데요.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습니까?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놀림을 당합니까?
그게 뭐 그리 중요합니까? 어차피 사람들은 서로 비웃고 욕하고 배반하면서 사는데요.
몸이 아프세요? 불치의 병에 걸렸습니까?
뭐 그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어차피 모든 사람들이 하루하루 늙어가고 병들어가고 있는데요.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고요 어차피 우리는 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받지 못했다면 이런 일들이 얼마나 서글픈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 약속 때문에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난다고 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이렇게 모여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불러드리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이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것을 아는 사람이 어찌 그렇게 잠잠하게 모르는척하고 앉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 약속을 우리가 같이 받은 거룩한 성도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오늘 본문 말씀에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라고 했습니다.
이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받은 사람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약속을 받지 못한 사람은 즉 영원한 생명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소망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욕심을 가지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의 삶뿐이라면 이 세상에서 열심히 잘 살아야할 것입니다.
매일 매일 즐기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얼마나 시간이 아깝습니까?
매일 매일 술 마시고 취하고 즐기면서 살려는 사람은 이 세상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썩어서 없어지는 줄을 알면서도 그 썩어질 세상을 위하여 사는 것은 그것이 전부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라고 술 취하고 노래하고 즐기면서 살고 싶은 욕심이 없겠습니까?
우리라고 이 세상에 흥청망청 살고 싶은 생각이 왜 없겠느냐고요
존경도 받고 싶고 칭찬도 듣고 싶고 교만하게 의시대고도 싶습니다.
좋은 차도 타고 싶고 좋은 집에서 화려하게 살고도 싶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에 욕심 부리지 않고 이렇게 사는 것은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받지 못한 위대한 약속 영원한 약속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이 구름을 타시고 영광중에 다시 오시는 그날이 되면 그 약속이 얼마나 크고 위대하고 존귀한 것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화려하게 살던 많은 사람들이 슬피 울며 가슴을 칠 때 우리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세상에서 당했던 고난을 꿈에 본 듯 잊게 될 것입니다.
그 약속 때문에 그 기대감 때문에 세상 사람들처럼 이 세상의 욕심에 눈이 멀지 않고 이 세상에 썩어질 것에 대하여 연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약속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산다고 해도 때로는 유혹이 시험이 우리 앞에 다가옵니다.
아무리 강심장을 가지고 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을 쳐봐도 일순간에 결심이 무너지고 유혹에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혼자 힘으로 이기려고 하지 말고 주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런 유혹을 시험을 피할 길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주님만 의지하고 나아가면 세상의 어떤 유혹이라도 피하여 갈 힘이 생기게 됩니다.
언제나 혼자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고 주님께로 피하시기를 바랍니다.
3.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오늘 본문 말씀에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이 세상의 썩어질 것을 피하게 하신 것은 성도로 하여금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게 하려고 하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일개 사람이 신의 성품 혹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처럼 될 수는 없겠지만 아주 일부지만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성품과 같은 성품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큰 영광일 것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성품과 같아지는 것인지 본문은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큰 약속에 포함되어 있는 영원한 생명일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안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그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가지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끝이 없는 다함이 없는 영원한 시간을 살 수 있는 그 생명을 우리가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가지는 성품들도 우리 하나님을 많이 닮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베푸신 자비하심을 우리도 가지게 됩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죄를 미워하고 바른 삶을 살게 됩니다.
어리석지 않고 지혜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상을 보면서 살게 됩니다.
이런 것들이 다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약속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약속에 의해서 영원한 생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본문 : 벧후 1:4
제목 :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가정마다 아이를 교육시키는 방법이 다릅니다.
어떤 가정은 회초리를 들고 아이를 가르칩니다.
잘못하면 무조건 벌을 주어서 아이가 잘못된 길로 가지 못하게 합니다.
옛날 사람들은 대부분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옛날 아이들은 부모님 사랑을 회초리로 받았습니다.
어떤 가정은 아이와 타협을 합니다.
이것 잘하면 상을 준다. 공부 잘하면 용돈을 많이 준다. 시험 성적 오르면 컴퓨터 사준다. 1등하면 핸드폰 바꿔준다.
그러나 잘못하면 용돈삭감 외출금지 귀가시간 조정 이런 벌로 다스립니다. 이렇게 타협을 하여서 아이가 착하고 바른 길을 가도록 해줍니다.
어떤 가정은 아이를 무조건 사랑으로 대합니다.
뭐든지 좋은 것 해주고, 뭘 잘못해도 사랑으로 덮어주고, 이상한 행동을 해도 이해를 해주고, 좋은 것만 좋은 것만 주어서 아이가 스스로 은혜를 알고 바른 길로 가도록 해 줍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바르게 인도하시는 방법도 세월에 따라 다르신 것 같습니다.
창세기 시절에는 아주 엄하신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따먹었다고 영원한 생명을 빼앗아버리고 그 좋은 에덴동산에서 쫓아내버렸습니다.
노아시대는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홍수로 다 죽게 했습니다.
소돔과 고모라성은 유황불로 다 타죽게 했습니다.
죄를 짓는 인생에게 아주 엄하신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타나신 하나님에게서는 아이와 타협하는 부모님 같은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잘 지키면 복을 주고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하면 벌을 주는 것입니다.
벌을 주기 위해서 이런 법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복을 받게 하기 위해서 이런 법을 만드셨습니다.
신약시대에 들어오면 특별히 서신서들을 살펴보면 하나님의 일방적인 사랑의 약속들을 만나게 됩니다.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은혜를 베푸시고 그 은혜를 받은 자들은 마음껏 자유와 평화를 누리면서 살게 하십니다.
여러분들은 자녀들을 어떻게 교육시키십니까?
그냥 몽둥이를 들고 잘못하면 그 자리에서 바로 교육을 시키십니까?
아니면 어떤 법을 정하고 타협을 하십니까?
아니면 잘못해도 용서하고 자꾸 잘해주기만 하십니까?
부모입장에서 보면 몽둥이를 들고 그때그때 벌을 주는 것이 가장 쉽고 효과적이라고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올바른 교육이라고 생각들을 많이 하실 것입니다.
만날 오냐 오냐 하고 사랑만 베풀면 아이 버릇이 나빠질 것이라고 생각을 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자녀들의 입장에서 생각을 하면 잘못을 해도 바로 용서해 주시고 이해를 해 주시고 더 많은 사랑을 주시는 부모님을 원할 것입니다.
교회의 목사들도 목회를 하면서 이런 생각들을 많이 합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무섭게 몽둥이를 들고 잘못하면 혼난다. 라고 바르게 가르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겁을 내고 바로 고치고 바르게 사는 것 같습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타협을 하게 합니다.
이렇게 잘 살면 복을 받는다.
충성하고 헌신하면 복을 받는다. 그러니 열심히 신앙생활 잘 하라고 교육을 해서 바르게 살게 합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무조건의 사랑을 외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무조건 용서하시고 사랑하신다.
우리 하나님은 너무나 좋으신 분이시다.
이렇게 함으로서 사람들이 그 은혜에 감격하고 감사해서 바른 삶을 살게 합니다.
저는 신약시대에 나타나신 하나님을 너무나 좋아합니다.
무조건의 사랑 일방적인 은혜를 너무나 좋아합니다.
그래서 저도 그런 방법으로 목회를 하고 싶습니다.
바로 바로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지만 그것이 바른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베드로후서를 시작하면서 우리가 만나게 되는 말씀의 핵심을 보면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에게 베푸신 소중한 것들을 만날 수 있습니다.
1절 말씀에는 보배로운 믿음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3절 말씀에는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4절 말씀에는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오늘은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 무엇인지를 알아보는 것이 설교의 목적입니다.
이 약속의 참된 의미를 알고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오늘 본문 말씀에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는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 무엇인지를 구체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지 않습니다.
성경의 전체적인 뜻을 살펴서 그 약속이 무엇인지를 알아보아야 합니다.
성경은 전체가 약속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입니다.
여러 가지의 약속들이 많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구약 즉 오래된 약속과 신약 즉 새 언약으로 나누는 것입니다.
베드로사도는 이런 많은 약속들 가운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요?
약속은 약속인데 어떤 “그 약속”을 말한다고 했고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라고 했습니다.
보배롭고 지극히 큰 그 약속이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이로써” 우리에게 주셨다고 했습니다.
“이로써”가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아보는 것이 그 약속이 무엇인지를 아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로써”라는 말은 앞 절의 “영광과 덕으로 말미암아”를 뜻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영광과 덕이란 지난주에 배운 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과 덕입니다.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보좌우편에서 세상만물을 다스리심 그리고 영광의 재림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 본문에서 말씀을 하고 있는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이란 이런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보좌우편에 앉으심과 재림의 영광으로 우리에게 주어질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로마서 1:2절에 약속을 이렇게 말합니다.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을 하셨는데 그것이 바로 복음이라는 것입니다.
여기 복음이란 십자가의 복음 천국복음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영생을 얻고 천국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2:25절은 약속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이것이니 곧 영원한 생명이니라.”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약속하신 것은 영원한 생명을 주신다는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또 베드로후서 3:13절에는 약속을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약속은 새 하늘과 새 땅 즉 영원한 천국을 우리에게 주신다는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정리해보면 약속이란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천국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게 해 주신다는 약속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약속을 보배로운 것이라고 했습니다.
"보배롭다"라고 번역된 헬라어(τιμιοs)는 “가치 있는, 귀중한, 진귀한” 등의 말로 번역이 되는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약속해 주신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에 대한 이 약속은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가치 있고 귀중한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이 세상에서 다른 사람들과 맺은 약속들 중에 가장 소중한 약속이 무엇입니까?
세상을 살아가면서 많은 약속들을 하게 됩니다.
채무관계의 약속도 있을 것이고, 결혼하신 분들은 결혼생활에 관한 약속을 하셨을 것입니다.
친구와 약속, 부모님과 약속, 선생님과의 약속...., 이런저런 약속들이 많이 있으실 것입니다.
그런 약속들 가운데 정말로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소중한 약속들이 있다면 반드시 지켜야 할 것입니다.
별로 소중하지 않는 약속들은 그냥 지나가기도 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약속들이 아무리 귀하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우리와 해 주신 약속과는 비교할 수가 없습니다.
영원한 생명,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우리에게 그냥 주신다는 약속보다 귀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 보배로운 약속에다가 지극히 큰 약속이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아주 아주 귀하고 큰 약속 그 약속을 받은 사람이 되었다는 것은 정말로 놀라운 일입니다.
우리가 그 약속을 잘 몰라서 알면서도 믿지를 못해서 그렇지 정말로 바르게 알고 그 약속에 대한 확신을 가지게 된다면 우리가 무엇을 두려워하고 무엇을 부러워하겠습니까?
사업이 망했습니까?
그게 뭐 그리 중요합니까? 어차피 다들 실패하면서 사는데요.
사람들에게 버림받았습니까?
사람들에게 손가락질을 받고 놀림을 당합니까?
그게 뭐 그리 중요합니까? 어차피 사람들은 서로 비웃고 욕하고 배반하면서 사는데요.
몸이 아프세요? 불치의 병에 걸렸습니까?
뭐 그게 그렇게 중요합니까? 어차피 모든 사람들이 하루하루 늙어가고 병들어가고 있는데요.
내일 죽을지도 모른다고요 어차피 우리는 다 죽어가고 있습니다.
우리가 이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받지 못했다면 이런 일들이 얼마나 서글픈 일이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이 약속 때문에 아무리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난다고 해도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우겨쌈을 당하여도 싸이지 아니하며 답답한 일을 당하여도 낙심하지 아니하며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이렇게 모여서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하나님께 영광의 찬송을 불러드리고 예배를 드리는 것은 이 약속을 믿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는데 그것을 아는 사람이 어찌 그렇게 잠잠하게 모르는척하고 앉아 있을 수 있겠습니까?
이 약속을 우리가 같이 받은 거룩한 성도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오늘 본문 말씀에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라고 했습니다.
이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받은 사람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게 된다고 했습니다.
약속을 받지 못한 사람은 즉 영원한 생명 영원한 하나님나라에 소망이 없는 사람은 이 세상에 욕심을 가지고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생명이 이 세상에서의 삶뿐이라면 이 세상에서 열심히 잘 살아야할 것입니다.
매일 매일 즐기면서 살아야 할 것입니다.
얼마나 시간이 아깝습니까?
매일 매일 술 마시고 취하고 즐기면서 살려는 사람은 이 세상이 전부이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썩어서 없어지는 줄을 알면서도 그 썩어질 세상을 위하여 사는 것은 그것이 전부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우리라고 술 취하고 노래하고 즐기면서 살고 싶은 욕심이 없겠습니까?
우리라고 이 세상에 흥청망청 살고 싶은 생각이 왜 없겠느냐고요
존경도 받고 싶고 칭찬도 듣고 싶고 교만하게 의시대고도 싶습니다.
좋은 차도 타고 싶고 좋은 집에서 화려하게 살고도 싶습니다.
그러나 그런 것에 욕심 부리지 않고 이렇게 사는 것은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받지 못한 위대한 약속 영원한 약속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이 구름을 타시고 영광중에 다시 오시는 그날이 되면 그 약속이 얼마나 크고 위대하고 존귀한 것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세상에서 화려하게 살던 많은 사람들이 슬피 울며 가슴을 칠 때 우리는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세상에서 당했던 고난을 꿈에 본 듯 잊게 될 것입니다.
그 약속 때문에 그 기대감 때문에 세상 사람들처럼 이 세상의 욕심에 눈이 멀지 않고 이 세상에 썩어질 것에 대하여 연연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약속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산다고 해도 때로는 유혹이 시험이 우리 앞에 다가옵니다.
아무리 강심장을 가지고 바르게 살려고 몸부림을 쳐봐도 일순간에 결심이 무너지고 유혹에 넘어갈 때가 많습니다.
그럴 때 혼자 힘으로 이기려고 하지 말고 주님을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 그런 유혹을 시험을 피할 길을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가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하지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하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10:13)”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마음만 먹으면 주님만 의지하고 나아가면 세상의 어떤 유혹이라도 피하여 갈 힘이 생기게 됩니다.
언제나 혼자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지 마시고 주님께로 피하시기를 바랍니다.
3.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
오늘 본문 말씀에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지나친 욕심을 버리고 이 세상의 썩어질 것을 피하게 하신 것은 성도로 하여금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게 하려고 하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일개 사람이 신의 성품 혹은 신성한 성품에 참여할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처럼 될 수는 없겠지만 아주 일부지만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성품과 같은 성품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너무나 큰 영광일 것입니다.
무엇이 하나님의 성품과 같아지는 것인지 본문은 밝히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지극히 큰 약속에 포함되어 있는 영원한 생명일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 안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그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가지게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끝이 없는 다함이 없는 영원한 시간을 살 수 있는 그 생명을 우리가 가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 외에도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가지는 성품들도 우리 하나님을 많이 닮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일방적으로 베푸신 자비하심을 우리도 가지게 됩니다.
따뜻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가지고 살게 됩니다.
죄를 미워하고 바른 삶을 살게 됩니다.
어리석지 않고 지혜로운 삶을 살게 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영원한 세상을 보면서 살게 됩니다.
이런 것들이 다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약속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약속에 의해서 영원한 생명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신의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이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셨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