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1. 2.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막 01)
본문 : 막 1:2-5
제목 :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2.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3.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 4.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5.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
우리는 그동안 사도바울이 전한 복음에 대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사도바울이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잡아서 처벌하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중에 극적으로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 만남을 통해서 예수님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가 되심을 알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가지는 것이 죄에서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다는 복음을 온 세상에 전파하였습니다.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길은 참 험난한 길이었습니다. 육신적으로도 헐벗고 굶주리고 매를 맞고 돌에 맞고 감옥에 갇히고 늘 반대자들의 위협에 시달리면서 살아야 했습니다. 요즘 사람들이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 속에서도 복음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알았기 때문에 목숨을 걸고 복음을 전했습니다.
정신적으로도 고통을 당했습니다. 바울과 같이 하나님의 율법을 연구하고 따르던 같은 민족인 유대인들이 복음을 반대했습니다. 복음을 전해서 교회를 세워놓으면 거짓 선생을 파송해서 복음을 떠나게 했습니다. 유대인들뿐만 아니라 수많은 거짓 선생들이 그럴듯한 교리를 가지고 교회 안에 들어와서 복음을 엉뚱하게 변질시켰습니다.
이런 고통 가운데도 굴하지 않고 이스라엘에서 소아시아로 유럽으로 계속 복음을 전했고 드디어 그가 꿈꾸던 당시 세계를 정복하고 다스리던 세계의 중심이었던 로마까지 와서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습니다.
문제는 지금까지 겪어왔던 고난과 비교할 수 없는 엄청난 핍박이 시작된 것입니다. 세상 역사 속에도 잘 알려진 로마의 네로황제가 기독교를 박해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로마 대화재사건은 주후 64년 7월에 로마에서 일어난 대화재사건입니다. 기름 창고에서 우연히 일어난 작은 불이 전 로마를 뒤덮어서 로마 도시의 4분의 3이 화재로 전소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이 당시 로마 황제 네로에게 누명이 씌워져서 네로가 불을 지르고 그 불을 보면서 노래를 불렀다는 소문이 퍼져나갔습니다. 그러자 네로는 눈엣가시 같던 기독교인들에게 방화범이라는 누명을 씌워서 기독교인들을 체포해서 화형에 처하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그로 인해 베드로 사도나 사도바울을 위시해서 예수님의 열두 제자나 수많은 기독교인이 순교를 당하기에 이릅니다,
이런 고난을 당한 기독교인들이 당국의 눈을 피해서 숨어서 믿음을 지켰지만, 마음에 회의가 일기 시작합니다. 우리가 사도바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었는데 복음을 전한 바울을 위시해서 많은 지도자들이 붙잡혀 갔는데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면 앞이 깜깜했을 것입니다.
과연 예수님이 누구이시길래 이렇게 목숨을 내놓고 믿어야 하는가, 예수님이 과연 우리를 이런 고통 속에서 구원하실 수 있는 분인가라는 의심이 들기 시작했고 사람들이 믿음을 떠나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이런 사건으로 인해 체포되어서 로마 감옥에 있던 사도바울은 성도들의 이런 마음을 알고 그들이 믿는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더 자세하게 가르쳐야 할 필요를 느꼈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셔서 활동하실 당시에 예수님의 제자는 아니었습니다. 사도바울은 부활 승천하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신 예수님을 만나 보았지만, 세상에서 행하신 일들이나 말씀은 직접 듣지는 못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당시의 예수님을 목격하고 따랐던 사람 중에서 베드로의 제자로 알려진 마가를 불러서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기록하여 고난으로 인해서 의심하던 로마의 기독교인들에게 보여주고자 기록한 책이 마가가 쓴 마가복음입니다.
오늘날 우리가 처해있는 형편이 그때와 비슷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살기가 참 힘들 때가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는 유대교 같은 율법주의자들이 많이 들어왔고 철학이나 도덕주의자들도 많이 들어왔습니다.
사도바울이 전한 그 복음을 따르고 오직 믿음을 외치는 사람들이 설 자리가 없을 정도로 오히려 변질된 교리를 가지고 복음을 무시하는 사람들이 교회를 차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교회가 변질되어 있습니다.
거기에다가 코로나 19가 생각보다 더 오랫동안 계속됨으로 인해서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교회를 떠날 빌미를 제공했고 그것을 핑계로 이미 많은 사람이 교회를 떠났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현재 코로나 시국을 로마 대화재사건과 흡사하다고 말합니다. 어쩌다가 코로나 19가 들어와서 많은 사람이 고통을 당하고 불평을 하니까 그 원인을 교회에다가 뒤집어씌웠다는 것입니다. 마치 교회에서 코로나를 생산해서 퍼뜨리는 것처럼 몰아가서 교회를 원망하게 만들고 예배드리는 것을 막고 사람들이 믿음을 버리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때에 우리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우리가 믿고 따르는 그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좀 더 자세하게 살펴보는 것이 좋을 줄로 압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마가를 보내주셔서 마가가 전한 복음에 예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셨습니다. 저에게 많은 시간이 없기 때문에 마가복음 전체를 강해 설교하듯이 살펴볼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사건을 중심으로 예수님에 대해서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어려운 시기에 우리가 믿고 따르는 예수님이 누구신지 무슨 일을 하셨는지를 살펴보는 뜻깊은 시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작년 마지막 주일 설교에 마가복음의 제목이라고 할 수 있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라는 말씀을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로 오심은 하나님께서 미리 계획하시고 준비되었던 것임을 살펴보겠습니다.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본문 2~3절 말씀에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기록된 것과 같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역사를 기록할 때는 늘 세례 요한의 이야기가 먼저 등장합니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기 6개월 전에 태어났습니다. 그가 잉태될 때도 예수님처럼 천사의 수태고지가 있었고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명을 가지고 태어나게 한 사람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가는 먼저 이 세례 요한의 사역이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미리 예언하신 말씀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선지자 이사야의 글에”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 선지자들을 통하여 미리 예언하신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마가가 인용한 말씀은 다 이사야 선지자의 말은 아닙니다. 구약성경을 인용하면서 대표 선지자인 이사야의 말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내가 사자를 네 앞서 보내어 길에서 너를 보호하여 너를 내가 예비한 곳에 이르게 하리니”(출 23:2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보내리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준비할 것이요”(말 3:1)
“외치는 자의 소리여 이르되 너희는 광야에서 여호와의 길을 예비하라 사막에서 우리 하나님의 대로를 평탄하게 하라”(사 40:3)
당시에는 성경이 오늘날처럼 장절로 구별해서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성경을 장절로 나눈 때가 주후 1500년경입니다. 그래서 마가는 무슨 책 몇 장 몇 절을 정확하게 이야기하지 않고 세례 요한에 대한 구약성경의 예언을 선지자의 예언으로 인용하였을 것입니다.
이 인용구는 세례 요한의 사역에 대해서 직접적으로 해당되는 말씀을 소개했지만, 사실은 구약성경의 모든 말씀이 사실 예수님의 길을 예비하는 내용들입니다. 직접적으로 간접적으로 예수님이 메시야로 이 세상에 오실 것을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의 중요한 사건들이나 또는 절기들이 다 예수님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심지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지키라고 명하신 계명이나 율법들도 거기서 구주가 필요함을 이야기하는 것이고 예수님께로 인도하기 위해서 기록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사람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몽학 선생(초등교사)과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예언을 통해서 주시는 세례 요한의 사명은 예수님의 길을 예배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세례 요한은 하나님께서 보내신 사자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이전에 먼저 보내신 하나님의 사자였습니다.
먼저 보내신 이유는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누군가는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소개하는 사람이 있어야 했고 누군가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도록 인도하는 사람이 있어야 했습니다. 그 길을 준비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세례 요한을 예수님 보다 먼저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세례 요한은 늘 예수님을 높이고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알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요한이 드러내어 말하고 숨기지 아니하니 드러내어 하는 말이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한 대”(요 1:20)
“요한이 대답하되 나는 물로 세례를 베풀거니와 너희 가운데 너희가 알지 못하는 한 사람이 섰으니 곧 내 뒤에 오시는 그이라 나는 그의 신발끈을 풀기도 감당하지 못하겠노라 하더라”(요 20:26-27)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내가 와서 물로 세례를 베푸는 것은 그를 이스라엘에 나타내려 함이라 하니라”(요 20:31)
이런 말씀들로 미루어 보면 세례 요한은 늘 예수님을 높이고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알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세례 요한을 추종하고 따르는 제자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세례 요한의 외침을 듣고 세례 요한에게 와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그 정도가 되면 자신을 내세우고 자기 세상을 만들고 싶어 하지만 세례 요한은 철저하게 예수님을 높이고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알렸습니다.
오늘날 목회자들도 세례 요한처럼 철저하게 예수님을 높이고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알려야 합니다. 그러나 많은 목회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자기를 드러내고 자기 제자를 삼고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심을 말하지 않습니다. 말은 주의 종이라고 하면서 주님을 받들어 섬기지 않고 자기가 주인이 되어서 섬김을 받으려고 합니다.
교회의 목회자들이나 성도들은 우리 주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들입니다. 주님의 길은 십자가와 부활을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일입니다. 주님을 통해 주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일을 잘하실 수 있도록 그 길을 준비해야 합니다. 교회에서 맡은 바 일에 충성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헌신함으로써 구원받는 백성들이 많아지도록 해야 합니다.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본문 4~5절에 “세례 요한이 광야에 이르러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하니 온 유대 지방과 예루살렘 사람이 다 나아가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더라”라고 했습니다.
주님의 길을 준비하기 위해서 세례 요한이 가장 먼저 한 일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계의 세례를 전파하는 일이었습니다. 요한의 세례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세례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님을 통해서 죄 사함을 받게 하기 위해서 먼저 회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외친 것입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메시야를 기다리고 있었지만, 자신들의 잘못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은 율법도 잘 지키고 제사도 잘 드리는 사람들인데 억울하게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눈에 그리스도가 보이지 않습니다.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 한 그리스도를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 당시에도 가난한 사람 어려운 사람들만 예수님을 만날 수 있었습니다. 자신이 죄인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만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을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이유는 자신들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죽음으로 지옥의 형벌로 달려가는 불쌍한 인간이라는 것을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알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알려고 노력하지 않고 영원토록 살 것처럼 착각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까지도 자신의 죄를 발견하지 못합니다.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착각하면서 살기 때문입니다. 티끌 같은 존재를 사람으로 만들어주신 하나님께 감사할 줄 모르고 자신이 대단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삽니다.
우리가 유일하게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은 내가 하나님의 선택하심을 받아서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를 통해서 죄 사함을 받고 다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선택받은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것입니다. 그 믿음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지 않는 믿음은 다 헛된 믿음이고 잘못된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 그리스도가 되심을 믿기 위해서 먼저 필요한 것이 내가 죄인임을 깨닫는 것이고 회개하는 마음을 갖는 것입니다. 회개하는 마음이란 단순히 잘못을 인정하고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그런 잘못에서 돌이켜서 바른 삶을 살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구약성경은 인간이 어쩔 수 없는 죄임이라는 것을 가르쳐주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아무리 잘해주어도 배반하고 또 배반하는 것이 인생이고 아무라 가르쳐주어도 또 다른 길로 가고 죄악의 길로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것이 인생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구약의 율법을 정통적으로 배운 사도바울이 로마서를 통해서 선언합니다. “기록된 바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롬 3:10-12)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말하기를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 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롬 3:13-17)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인생들도 그보다 더하면 더했지 못하지는 않을 것입니다. 특별히 말세의 마지막 때를 사는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하고 교만한 마음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흉악한 죄를 지으면서 살면서도 자신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착각하고 삽니다.
금년에 우리가 마가복음을 중심으로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가를 더 자세하게 살펴보고 과연 우리가 믿는 믿음이 믿을만한 것인가를 점검하고 확인하는 시간을 가지려고 합니다. 그것이 말세의 마지막을 살아가는 우리가 믿음을 잃지 않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예수님을 바로 알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죄임임을 깨닫고 회개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이미 우리는 죄인임을 인정하고 손들고 주님께 온 사람들이기 때문에 더 회개할 것이 없는 사람들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믿기 전에 우리가 얼마나 흉악한 죄인이었으며 이 믿음을 떠나면 다시 그 흉악한 죄인의 길로 돌아가서 하나님의 진노의 심판을 받게 된다는 것을 확인하자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례 요한은 예수님 보다 앞서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예수님의 길을 준비한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게 하기 위해서 먼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는 것이 예수님을 통해서 죄 사함을 받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예수님을 나의 구주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바른 믿음을 가지기 위해서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얼마나 흉악한 죄인인지를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나 자신도 믿음을 떠날 때 얼마나 비참한 사람이 되는가를 기억하며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