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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11. 7.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전종합 6)
본문 : 딤전 6:17-19
제목 :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두라
“17.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이 세상을 사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재물을 모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 재물을 모으는데 소망을 두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학교에 다니면서 힘들게 공부를 하는 것이나 취직을 해서 일을 하거나 사업을 하거나 모든 목적이 돈을 벌기 위해서입니다.
이 세상을 사는데 돈처럼 편리한 것이 없을 것입니다. 돈이 있으면 뭐든지 할 수 있고 돈이 없으면 하고 싶은 것도 참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심지어 돈이 신분을 나타내기도 합니다. 돈이 있으면 훌륭하고 지위가 높은 사람이고 돈이 없으면 천한 사람 취급을 받으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런 세상에서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 재물보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세상의 나라보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가 더 소중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는 비록 가난하게 산다고 할지라도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5~6장은 성도들이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는 5장을 중심으로 성도의 대인관계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6장에는 성도의 물질 관계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두라”가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평안하고 행복하게 살기 위해서 재물에 소망을 두고 삽니다. 그러나 세상 재물은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타락의 길로 인도하여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도구로 사용되는 일이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은 재물을 많이 모아서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사는 것보다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입니다.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지만 고난을 당하고 순교를 당하면서까지 도전해야 할 가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노파심에서 말씀드리는데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해서 재물은 악한 것이고 돈은 벌지 말아야 한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필요한 돈은 땀을 흘려서 벌어야 합니다. 지나치게 돈에 욕심을 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하나님께 두라
본문 17절에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라고 했습니다.
1) “정함이 없는 제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라고 했습니다.
정함이 없다는 말은 불확실한, 덧없는, 믿을 수 없는, 곧 없어질 등의 뜻을 가진 말입니다. 이 세상의 재물은 불확실하여 믿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있다가도 곧 없어지기도 하고 생각보다 우리를 행복하게 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 입장에서 보면 돈만 있으면 모든 문제가 다 해결하고 정말로 재미있게 살 것 같습니다. 그런데 막상 돈을 가져보면 많은 부분에서는 하고 싶은 일도 하고 갖고 싶은 것도 가질 수 있지만 그 자체가 우리를 행복하고 만족하게 해주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된 6장에서도 여러 곳에서 재물에 대해서 부정적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돈은 좋은 것이지만 그로 인해서 많은 부작용이 있고 심지어 하나님을 떠나게 하는 가장 악한 일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에 빠진다고 했습니다.
9절에는 “부하려 하는 자들은 시험과 올무와 여러 가지 어리석고 해로운 욕심에 떨어지나니 곧 사람으로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부하려 하는”이라는 말은 부자가 되려고 하는 강한 욕구를 가진 것을 말합니다. 부자가 되려고 하는 것을 삶의 목적으로 삼고 사는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시험’은 시련이나 유혹을 말합니다. 부자가 되려는 지나친 욕망을 가진 사람은 우선 유혹에 넘어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올무’는 함정이나 덫을 말합니다. 유혹을 받아서 결국은 함정에 빠지게 된다는 것입니다.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라고 했습니다.
파멸은 이 세상에서도 망하고 영원한 세상에서도 망하는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10절에서 돈을 사랑하는 사람이 믿음을 버리고 영원한 멸망의 길로 간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에 여기서는 이 세상에서의 파멸을 말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세상에서 잘 살기 위해서 부자가 되려고 하지만 결국은 그 지나친 욕심 때문에 파멸의 길로 가게 된다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됩니다.
10절에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되나니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했습니다.
부자가 되려고 하는 사람은 돈을 사랑하게 되어 있습니다. 돈이 우리를 부자로 만들어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가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가 되고 모든 악의 출발점이 된다고 하는 것입니다.
돈을 사랑한다는 말은 단순히 돈만 사랑한다는 말이 아닙니다. 돈을 사랑한다는 말은 하나님과 돈 사이에서 하나님보다 돈을 더 사랑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돈을 의지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믿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보다 돈을 더 의지하고 더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도다”라고 했습니다.
믿음에서 떠난 사람은 그 결과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기 때문에 자기를 찌른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잘 되려고 자신이 잘살려고 한 일인데 그 결과는 자신을 찔러서 피투성이가 되게 하고 영원한 지옥의 고통으로 빠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2)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돈이냐 하나님이냐 라고 할 때 우리는 확실하게 하나님을 택할 것입니다. 돈에 소망을 두느냐 하나님께 소망을 두느냐 할 때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돈은 이 세상에서 일부만 우리에게 행복을 주지만 하나님은 이 세상에서 또 영원한 세상에서 그것도 충분하게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돈은 불확실하고, 믿을 수 없고, 곧 없어질 것이지만 하나님은 확실하시고 믿을 수 있으신 분이시고 영원하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이라고 했습니다.
돈은 언제나 풍족하지 못합니다. 늘 부족합니다. 부자가 될수록 나는 됐다, 이만하면 됐다고 말하는 사람 못 봤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다고 해도 돈 자체가 만족을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돈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항상 더 많은 돈을 요구합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은 모든 것이 풍족합니다. 하나님께서 은혜의 선물로 주신 믿음은 우리를 구원하기에 아주 넉넉한 것입니다. 까다로울 것도 없습니다. 그냥 믿기만 하면 됩니다.
믿음으로 가게 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모든 것이 다 풍성합니다. 부족하거나 모자람이 없습니다. 우리가 가진 언어로는 표현할 수 없는 완전한 나라 영원한 나라가 우리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후하심은 풍족하게 하심은 이 세상에서도 누리고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도 풍족하게 누리며 살고 참된 기쁨을 가지고 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지혜를 가지고 이 세상을 살면 풍족한 삶,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소망을 “하나님께 두라”라고 하셨습니다.
소망이나 희망은 우리나라 말로 서로 교차해서 쓸 수 있는 말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는 소망은 희망과 다른 차원에서 쓰고 있습니다. 희망은 이 세상에서 바라는 것을 말하는 것이라면 소망은 영원한 천국을 바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세상에서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것도 하나님께 그 희망을 두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바라는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께 그 소망을 두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어떠한 인간의 노력도 불가능하고 오직 하나님께서만 하실 수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라
본문 18절 말씀에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라고 했습니다.
재물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선하게 살기가 힘듭니다. 선하게 해서는 재물이 모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를 향하여 가는 사람은 선을 행하게 됩니다.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의 부자들에게 가르쳐야 할 것은 그 부를 가지고 선한 일을 많이 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늘 선한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고 선한 일을 행하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말을 함에 있어서도 이 말이 선한 말인지 악한 말인지 생각하고 해야 합니다.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라는 것은 선한 일에 부요한 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자꾸 재물을 쌓고 더 쌓아서 더 부자가 되려고 하지만 말고 선한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부자가 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는 부자이면서 가난하게 사는 사람이 있고 가난하면서 부자처럼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많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를 위해서만 쓰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는 아주 가난한 사람입니다.
가난해서 남에게 나누어줄 것이 없어서 나누어주지 못한 사람이야 어쩔 수 없지만 많은 재물을 가지고 자기를 위해서는 많은 돈을 쓰면서 남에게 베풀지 못하는 사람은 참으로 가난한 사람입니다.
비록 가진 것이 많지 않아서 가난한 삶을 사는 사람이라고 해도 자기의 것을 남에게 나누어줄 줄 아는 사람이 참으로 부자입니다. 나보다 더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작은 것이라도 나누어줄 줄 아는 사람이 진짜 부자입니다.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라고 했습니다.
나누어 줄줄 아는 사람은 너그러운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마음이 너그럽지 못한 사람은 남에게 좋은 것을 나누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평소에 그 마음을 잘 알 수 없습니다. 그런데 돈 앞에 서보면 그 사람의 본심이 나타납니다. 내 욕심을 차리기에 급급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남에게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누구든지 자기 욕심을 차리고 싶어 하지만 다른 사람과의 관계를 생각하면서 양보할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로운 사람이고 선한 사람입니다. 돈보다 인간관계를 더 중요하게 생각할 줄 아는 사람이 지혜롭고 선한 사람입니다.
돈은 또 벌 기회가 있지만 인간관계는 회복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눈앞에 보이는 작은 이익 때문에 소중한 인간관계를 놓치고 사람에게 불신을 받는 것처럼 불행한 일이 없을 것입니다.
머리가 좋은 사람은 그 좋은 머리를 써서 자기의 이익을 챙깁니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그 지혜를 가지고 자기의 이익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집니다. 머리 좋은 사람이 자기 것을 잘 챙겨서 잘 될 것 같지만 남을 배려할 줄 아는 지혜로운 사람이 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것이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본문 19절에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1)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라고 했습니다.
선한 일을 많이 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는 것은 남에게 좋은 일을 하고 자신은 손해를 보는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자신을 위해서 좋은 터를 쌓아서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좋은 터를 쌓는다는 것은 튼튼한 기초를 쌓는 것이라는 말입니다. 모든 일에는 그 기초가 있고 그 기초가 튼튼해야 그 일이 든든하게 세워집니다. 기초가 없거나 부실하면 그 일이 쉽게 무너지고 밉니다.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는 것도 그 기초가 튼튼해야 합니다.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면 쉽게 믿음을 떠나고 교회를 떠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신앙생활 하다가 교회를 떠나는 사람은 대부분 기초가 튼튼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따르면 그 기초를 쌓는 정지작업이 우리가 선한 마음을 가지는 것이고 너그러운 마음을 가지는 것이고 나보다 남을 위해서 헌신하는 마음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선을 행하고 선한 일을 많이 하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하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사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요즘같이 개인주의적이고 이기주의적인 세상에서 이렇게 산다는 것은 바보들이나 하는 일로 생각이 됩니다.
그러나 그것이 자신에게 손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유익이 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유익도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가장 큰 유익이 되는 것입니다.
2)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참된 생명은 영원한 생명을 말합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이 육신의 생명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참된 생명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에게 주시는 생명이 영원한 천국에서 영원토록 살 수 있는 참된 생명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육신의 생명을 위하여 사는 것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이 육신의 생명은 영원한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믿음을 가지고 믿음 생활을 잘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참된 생명이란 “열매가 풍성한 그리스도인의 생활”로 번역하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미 이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이 세상에서도 그 참된 생명 영원한 생명을 가진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육신의 생명에만 관심을 가지고 이 세상에서 부귀영화를 누리고 세상적인 쾌락을 누리는 데 급급하지 말고 영원한 천국을 소유한 사람답게 살아야 하고 그 영원한 생명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참된 생명을 가진 사람의 보람된 삶이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믿음의 튼튼한 기초를 쌓는 것이고 영원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재물이 삶에 중요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사는 우리도 흔들릴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이냐 재물이냐 선택을 해야 할 때 재물을 택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재물은 정함이 없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히려 우리를 시험과 올무에 빠지게 하고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욕심 때문에 소중한 믿음을 잃지 말고 선을 행하고 나누어주기를 좋아하는 성도님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참된 생명 영원한 생명을 취하게 하는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