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3. 24. 광성교회 고난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절기13-1)

본문 : 고전 1:18

제목 : 십자가의 능력.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사순절이라는 말을 많이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사순절은 40일이라는 뜻이고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부활절이 오기 전 40일 동안을 말합니다.

정확하게는 주일을 빼니까 46일 동안을 말합니다.

이 기간이 되면 특별 새벽기도회를 한다든지 금식 기간을 정한다든지 또 오락을 금하고 경건한 삶을 살라고 하다든지 여러 행사들을 합니다.

 

사순절을 비롯해서 여러 가지 교회의 절기들이 있고 그런 절기들을 교회력에 넣고 잘 지키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개혁주의 교회에서는 이런 절기들을 지키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이런 절기들이 성경에 근거하기 보다는 사람들에 의해서 주로 천주교회에서 만든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런 절기들을 통해서 때로는 성도들의 삶을 통제하고 인간의 의를 앞세우려고 하기 때문에 개혁주의를 바르게 받아들이는 교회에서는 잘 지키지 않습니다.

 

우리 교회도 철저하게 개혁주의를 따르는 교회이기 때문에 부활절이나 성탄절 그리고 추수감사주일과 같은 특별한 절기 외에 다른 절기들은 잘 지키지 않습니다.

 

절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에 의하면 오늘은 종려주일입니다.

종려주일이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하시기 위해서 마지막으로 예루살렘에 나귀를 타고 들어가실 때 이스라엘 사람들이 종려나무 가지를 들고 나와서 흔들며 호산나라고 외치며 환영했던 그 날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내일부터는 예수님의 고난이 시작되는 주간이기 때문에 고난주간이라고 해서 특별히 예수님의 고난을 생각하면서 한 주간 보내는 날로 정하고 특별한 행사들을 합니다.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고난에 동참을 할 수 있을까를 생각하면서 경건하게 한 주간을 보낸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바르게 이해를 하면 이런 생각들이 좀 달라질 수 있습니다.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셨는가를 살펴보면 좀 생각이 바뀔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고난을 당하신 것이 우리에게 그런 고난의 길을 걷게 하기 위해서일까요?

물론 제자들에게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라고 하셨고 우리가 이 세상을 사는 동안은 우리 각자가 지고 가야하는 고난의 십자가가 있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그런 고난을 우리에게서 없애기 위해서 지신 것이지 그 십자가를 지고가게 하려고 지신 것이 아닙니다.

죄 짐을 지고 고통 속에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그 짐을 벗겨주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비록 이 세상에서는 우리에게 고난이 있지만 그런 고난이 없는 영원한 세상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

 

주님께서 고난당하신 고난주간이 오면 오히려 우리는 쓸데없이 지고 있는 세상 짐들을 주님 앞에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참된 자유와 평안을 누려야 합니다.

 

또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신 것은 우리에게 선행이나 고행을 통해서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고 도덕적인 삶을 살고 종교적인 행위를 통해서 구원을 받아야만 했던 것을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게 해 주시기 위해서 지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고난당하신 고난주간이 되면 우리도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하고 우리도 그 고난에 동참해야 하고 우리도 더 경건하게 살아야 되고 하는 이런 것들을 오히려 없애버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고가신 그 십자가의 능력의 위대함을 찬송하고 그 능력에 힘입어서 우리는 참된 자유와 평화를 누리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더 자유롭게 더 평안하게 그 은혜를 누리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그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1.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본문 말씀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1)십자가의 도

옛날에 보던 개역한글성경이나 지금 우리가 보는 개역개정성경에는 ‘십자가의 도’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사실 헬라어는 ‘십자가의 도’가 아니라 ‘십자가의 말씀’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현대어 성경이나 새번역성경에서는 ‘십자가의 진리’ 혹은 ‘십자가의 말씀’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영어성경에서도 ‘십자가의 메시지’ 혹은 ‘십자가의 말씀’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왜 이렇게 말씀을 드리는가 하니 십자가의 도라고 할 때 조금은 오해의 소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도라고 하면 십자가의 길 십자가를 지고 가는 길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 길로 생각을 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제가 어느 교회에 가서 십자가의 복음을 전합시다. 라고 설교를 했더니 설교를 들은 어느 분이 목사님 저도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겠습니다. 라고 말합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복음을 잘못 전했구나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십자가의 도를 따르는 것 하고 십자가의 말씀 십자가의 복음을 따르는 것 하고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십자가의 말씀 십자가의 진리 혹은 십자가의 복음을 따르는 것은 십자가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그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어서 하나님과 평화로운 삶을 살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십자가의 도를 따르겠다는 것은 물론 이 말도 바르게 해석을 하면 십자가의 진리를 따르겠다는 것이고 십자가의 복음을 따르겠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고 오해하여 스스로 고난의 길을 가면서 의로운 삶을 살겠다는 각오를 말하기도 한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고난의 길을 가면서 의로운 삶을 살겠다는 것이 나쁘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을 십자가와 결부시키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부르는 찬송가 461장 “십자가를 질 수 있나”라는 찬송이 있습니다.

“십자가를 질 수 있나 주가 물어 보실 때 죽기까지 따르오리 성도 대답하였다 우리의 심령 주의 것이니 당신의 형상 만드소서 주인도 따라 살아 갈 동안 사랑과 충성 늘 바치오리다.”

얼마나 대단한 고백입니까? 정말 이렇게만 고백하고 이렇게 살수만 있다면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노래는 이렇게 부르면서 정말로 그렇게 합니까?

정말로 여러분들이 십자가를 질 수 있습니까?

진짜로 지고가지 못하면서 말로만 그렇게 하지 말고 못 지겠다고 그러세요.

우리가 질 수 없다는 것을 아시고 예수님께서 대신 지신 것이니까 우리가 못 지겠다고 해도 예수님이 뭐라고 하시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그것이 정답이라고 인정을 해 주실 것입니다.

 

십자가의 도 즉 우리가 십자가의 길을 가고 고난을 당하고 경건한 삶을 사는 것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나는 것이 아닙니다.

십자가에 관한 말씀 십자가에 관한 진리 십자가의 복음에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내가 지은 모든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의 형벌을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그로 인해서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로 회복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물론 하나님이신 예수님께서 이 벌레만도 못한 나를 위해서 그렇게 고통스러운 십자가를 지셨다는 것은 정말 죄송스럽고 어떻게 하든지 그 은혜에 보답하려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하루 이틀 금식이 거기에 보답이 된다고 하면 아니 일주일 사십일 금식이 거기에 보답이 된다고 하면 못할 것이 뭐 있겠습니까?

그런 것들이 죄송한 우리 마음을 조금은 위로할 수 있겠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런 것을 원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그 은혜에 감사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면서 행복하게 사는 것이 십자가의 복음을 주신 하나님의 뜻입니다.

 

2)멸망할 자

오늘 본문 말씀에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라고 하셨는데 여기에 보면 멸망할 자가 있고 구원을 받을 자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멸망하는 자와 구원을 받을 자들이 있다고 했습니다.

멸망할 자란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지은 죄에 대해서 그 행위대로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심판을 받고 십자가와 같은 형벌을 당하거나 영원한 지옥에서 고통을 당하는 것을 말합니다.

 

구원을 받을 자란 이런 멸망당할 자리에서 건짐을 받고 최후의 심판대 앞에 서지 않고 바로 의로운 사람이라는 판정을 받아서 영원한 하나님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자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멸망하는 자와 구원을 받은 자의 차이는 엄청난 차이입니다.

사람들이 잘 모르고 알아도 실감이 나지 않아서 그렇지 이 구별을 확실히 안다면 멸망하는 자에서 벗어나서 구원받을 자가 되기 위해서 목숨을 걸고 총력을 다 할 것입니다.

 

이 구원을 받을 자와 멸망을 받을 자를 어떻게 구별합니까?

십자가의 진리의 말씀을 믿고 따르는가, 그렇지 않은가를 가지고 구별을 합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따르면 구원을 받게 됩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믿지 않고 딴 길로 가면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교회에 다니다가 교회에 다니지 않거나 딴 종교로 가는 사람을 배교자라고 합니다.

이 사람들은 분명히 말하지만 멸망을 당할 자들입니다.

나중에 자신들이 직접 십자가의 형벌을 받고 영원한 지옥에 가야할 자들입니다.

 

아직 교회 안에 있지만 진리를 따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배도자라고 합니다.

 

교회에는 다니는데 십자가의 복음을 따르지 않습니다.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려고 하지 않고 스스로 선행이나 고행이나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어 보겠다고 하는 사람들입니다.

아무리 노력을 해도 스스로는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고 분명하게 말씀을 하는데도 그 길을 가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3)미련한 자

십자가의 도를 모르고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사람들을 미련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스스로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자처하면서도 정말 지혜로 알아야 할 십자가의 도를 모르거나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오늘 읽지는 않았지만 22-24절 말씀에 멸망당할 미련한 자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하니 유대인에게는 거리끼는 것이요 이방인에게는 미련한 것이로되 오직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능력이요 하나님의 지혜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에서 멸망을 당할 미련한 자를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과 지혜를 찾는 헬라인이라고 묘사를 했습니다.

 

여기 십자가를 구하지 않고 십자가보다는 표적을 구하는 유대인들과 지혜를 구하는 헬라인들이 오늘날 우리 시대의 교회에도 있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보다는 표적을 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잘 모르시겠지만 오늘날 한국교회에 신사도 운동이라는 것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대형교회들에서 이런 것들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신사도 운동은 사도시대에 일어났던 기적적인 일들을 다시 재현하는 것입니다.

기도를 해서 능력을 받고 전도를 많이 하고 또 방언을 하고 입신을 하고 병자들이 고침을 받고 여러 기적들이 일어나고 성공적인 삶을 살게 하고 그러기 위해서 집회를 하고 기도회를 하고 찬양집회를 하고 눈에 보이게 이적을 행함으로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 신사도 운동입니다.

 

이미 성경에 계시된 십자가의 복음보다는 새롭게 계시를 받고 이적을 행하고 이 세상의 성공을 추구하는 것이 신사도 운동입니다.

 

이런 신사도 운동을 비롯해서 눈에 보이는 표적을 구하고 이 세상의 성공을 위하고 십자가의 복음 천국복음을 외면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뭘 하는 것 같고 그들에게서 많은 표적들이 보인다고 해도 십자가의 복음을 모르면 그들은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사람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보다 세상의 지혜를 구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의 설교들을 보면 그것도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대형교회 목사들의 설교를 보면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의 지혜 세상의 철학 세상의 도덕을 가르치는 설교가 많습니다.

 

그런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미련한 것처럼 보일 것입니다.

무식하고 고리타분한 영감님들이나 전하는 것으로 알 것입니다.

 

그러나 반대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전하지 않고 세상의 지혜 세상의 철학 세상의 성공학 세상의 행복학을 말하는 사람들은 정말로 미련한 자들이요 멸망으로 달려가는 사람일 뿐입니다.

자신만 멸망의 길로 달려가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많은 사람들을 멸망의 길로 가게 하는 아주 나쁜 사기꾼에 불과합니다.

 

2.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십자가의 도가 멸망을 당할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지만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여기 있는 우리는 구원을 얻은 사람이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우리는 십자가의 복음을 알고 제일로 여기는 사람들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알고 믿는 사람들은 확실하게 구원을 받은 사람들임이 분명합니다.

 

미련한 사람들은 이 진리를 알지도 않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안다고 해도 소중하게 여기지 않고 믿지 않지만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만 알 수 있는 이 진리를 알고 믿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에는 우리보다 똑똑한 사람들이 많습니다.

공부 많이 한 목사들 신학자들 박사들 많이 있습니다.

그들이 쓴 글들을 보세요.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그 사람들의 학식을 보면 우리는 참 무식하고 미련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세상에는 우리보다 강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많은 돈을 가지고 있고 많은 권력을 가지고 있어서 우리가 힘으로 어떻게 당해볼 수 없는 강력한 힘을 가진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 막강한 권력 앞에서 우리는 너무나 연약한 사람일 뿐입니다.

 

세상에는 귀하게 대우를 받고 존경을 받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 앞에 서면 우리는 천하고 별 볼일이 없는 사람일 뿐입니다.

 

이렇게 미련한 사람처럼 보이고 이렇게 연약한 사람처럼 보이고 이렇게 천하고 멸시받는 사람처럼 보이는 것이 우리들입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들아 너희를 부르심을 보라 육체를 따라 지혜로운 자가 많지 아니하며 능한 자가 많지 아니하며 문벌 좋은 자가 많지 아니하도다”(고전1:26)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미련하고 연약하고 천한 것 같은 우리에게 아주 강한 무기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십자가의 복음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최고로 알고 그 복음을 따르는 것입니다.

 

27절 이하를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자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시려고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시려 하시려고 우리에게 이 십자가의 복음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미련하고 약하고 천하고 멸시를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정말로 귀한 지혜를 주셨고 정말로 막강한 무기를 주셔서 능히 이 세상의 사람들이 받을 수 없는 구원을 받을 수 있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아무것도 몰라도 상관없습니다.

아무것도 가지지 못해도 상관없습니다.

이 십자가의 복음만 알면 이 십자가의 능력만 우리에게 있으면 됩니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사랑하는 로마서 1:16절의 말씀을 기억해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이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여기 복음이란 십자가의 복음을 말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복된 소식을 말합니다.

 

이 복음은 십자가를 믿는 자들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고행을 하거나 선행을 하거나 기적적인 일들을 행하거나 환상을 보거나 계시를 받거나 장래 일을 예언하거나 그런 것과는 상관이 없이 십자가를 믿는 그 믿음으로 통해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통해서 주시는 이 능력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그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며

그 십자가가 나대신 죽어주신 십자가라는

이 사실을 믿는 믿음을 가진 자에게 주시는 능력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십자가의 진리를 아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련한 사람들 같지만 세상에서 제일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연약한 사람들 같지만 가장 강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에서 아무것도 가지지 못한 사람들 같지만 가장 귀한 것을 가진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 십자가의 복음을 늘 간직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이 십자가의 복음을 가장 귀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고난 주간에는 오히려 기뻐하며 자랑하며 주님께서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