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2. 10.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골19)

본문 : 골 3:7-11

제목 :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

옛날 우리나라에도 사람의 신분이 다 같지 않고 양반과 상민 그리고 천민 등의 계급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양반은 글을 배워서 관직에 나아가서 벼슬을 하는 사람이고 상민과 천민은 농사일을 하거나 장사를 하거나 천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들은 옷을 입는 것이나 살아가는 법이 서로 달랐습니다.

양반이 입는 옷이 달랐고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달랐습니다.

 

어느 고을에 상민이 어쩌다가 돈을 많이 벌었습니다.

돈이 많아도 사람들이 대우를 해 주지 않으니까 양반이 되고 싶었습니다.

마침 그 고을에 양반인데 빚이 많아져서 어려움을 당한 사람이 있었는데 그 빚을 갚아주고 양반을 샀습니다.

 

돈을 주고 양반이 되기는 했는데 양반이 입는 옷만 입는다고 양반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말이나 행동이 양반다워야 하는데 그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양반은 양반으로서 지켜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습니다.

더워도 버선을 벗지 말고, 밥을 먹을 때 맨상투로 밥상에 앉지 말고, 국을 먼저 훌쩍 떠먹지 말고, 무엇을 후루루 마시지 말고, 젓가락으로 방아를 찧지 말고, 생파를 먹지 말고, 막걸리를 들이켠 다음 수염을 쭈욱 빨지 말고, 담배를 피울 때 볼에 우물이 파이게 하지 말고, 화난다고 처를 두들기지 말고, 성내서 그릇을 내던지지 말고, 아이들에게 주먹질을 말고……. 양반전에 나오는 양반이 해야 할 일 중 일부입니다.

 

돈을 주고 양반을 산 사람이 이런 이야기를 듣고 양반노릇 못하겠다고 양반 도로 주고 가 버렸답니다.

하나님께서도 이 세상 사람들의 신분을 크게 두 가지로 나누었습니다.

하나는 우리 성도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택을 하시고 특별히 불러서 예수님을 믿게 하고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하여서 그 속에 새 생명을 넣어준 사람들을 성도라고 합니다.

 

또 하나는 이 세상에 버려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버린 사람들입니다.

죄를 짓고 타락하고 자기 마음대로 이 세상을 사는 사람들을 그대로 살도록 내버려 두셨다가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멸망시킬 사람들입니다.

 

성도들도 이 세상 사람들과 신분이 다르기 때문에 입는 옷이 다르고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 다릅니다.

가치관이 다르고 삶의 목적이 다르고 살아가는 방법이 다른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서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라고 했습니다.

 

상민이 양반이 되면 옛날에 입던 옷을 벗고 양반의 옷을 입어야 하고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을 고쳐야 하는 것처럼 우리가 성도라는 새로운 신분으로 거듭나면 신분이 바뀐 사람답게 말하는 것이나 행동하는 것이나 살아가는 방법이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거듭난 새 생명을 가진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 벗어버려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입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는 것이 오늘 설교의 목적입니다.

 

1. 새 사람을 입었으니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가장 마음에 품고 살아야 하는 것은 우리가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과거에 양반이나 상민은 겉모습만 보아도 구별이 되었습니다.

입는 옷이 다르고 쓰는 모자가 달랐습니다.

말하는 것이 다르고 행동을 하는 것이 달랐기 때문에 그냥 보기만 해도 저 사람은 양반이고 저 사람은 상민이라는 것을 구분할 수 있었습니다.

일부러 살펴보지 않아도 척 보면 양반인지 상민인지를 바로 구별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과 이 세상 사람들과의 겉모습은 다를 것이 별로 없습니다.

성도들이 입는 옷이 다른 것이 아니기 때문에 겉으로 보아서는 잘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삶을 보면 바로 구별이 되어야 하는데 성도답게 사는 사람이 많지가 않아서 많은 사람들이 잘 구별이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을 알고 보면 우리는 달라도 엄청나게 다른 사람들입니다.

속사람이 다릅니다.

속에 들어 있는 영혼이 다릅니다.

소속이 다르고 신분이 다르고 가는 길이 다르고 받는 은혜가 다르고 편이 다른 편입니다.

전에는 죄 가운데서 행한 사람이었습니다.

7절 말씀에 “너희도 전에 그 가운데 살 때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라고 했습니다.

여기 그 가운데라는 말은 죄 가운데라는 말입니다.

예수님을 믿기 전에 거듭나기 전에는 다 죄 가운데서 살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죄를 지으면서 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교회를 다니는 많은 사람들 가운데서도 아직 죄 가운데서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자신이 중생한 사람 즉 다시 태어난 사람인지를 알지 못하고 옛날과 똑같은 모습으로 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나는 모태신앙이기 때문에 이런 말이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제가 볼 때는 모태신앙으로 태어날 때부터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아직 전에 사람처럼 사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과 똑같은 욕심을 가지고 자기 이기심을 채우려고만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오는 것만 다를 뿐 생각하는 것이나 살아가는 모습이 세상 사람들과 다름없는 사람들이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지금이라도 옛 사람을 벗어버려야 합니다.

세상 사람들의 모습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가 보아도 아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이구나 하는 느낌이 들 때까지 변화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새 사람을 입은 사람입니다.

10절 말씀에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 라고 했습니다.

 

과거에는 세상 사람들과 똑 같은 모습으로 세상에 살면서 세상 사람들이 짓는 죄를 지으면서 사는 사람들이었지만 그러나 이제는 새 사람을 입은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신분이 바뀌었다는 것입니다.

새 사람으로 완전히 신분이 바뀐 사람들입니다.

옛날 모습 조금 고쳐서 좀 착한 사람이 된 그런 정도가 아닙니다.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확 바뀌어버렸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 우리의 바뀐 신분에 대해서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라고 했습니다.

원래 우리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얼굴이 닮았다는 것이 아니고 마음속에 있는 성질이나 사물을 아는 지식이 하나님 안에 있는 것을 닮게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타락해서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기 전에는 그래도 착한 마음을 가지고 살고 서로 사랑하면서 살고 무엇이 바른 것이지 무엇이 그른 것인지를 알 수 있는 능력이 있었습니다.

타락하여서 죄를 범함으로 그런 형상이 희미해지기 시작해서 그런 좋은 것들이 사람들의 마음속에서 없어지고 말았습니다.

 

그런데 다시 그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시켜서 우리들을 다시 태어나게 해 주셨다는 것입니다.

거듭 태어난 우리 성도들의 마음속에는 세상 사람들에게 없는 하나님을 닮은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마음속에 있는 것들이 우리의 마음에도 있어서 하나님을 알게 되고 착한 마음도 가지게 되고 사랑하는 마음도 많아지고 특별히 진리를 아는 지식이 자라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십자가의 복음의 진리를 아는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새롭게 지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지식이 진리에 이르는 참된 지식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의 진리를 모르는 사람은 중생 받은 사람이 아닙니다.

새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새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은 그 속에 십자가의 복음의 진리를 알고 믿고 따르는 마음이 있는 사람이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있는 사람이고 하나님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사랑과 착한 마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과거의 출신성분이 의미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11절 말씀에 “거기에는 헬라인이나 유대인이나 할례파나 무할례파나 야만인이나 스구디아인이나 종이나 자유인이 차별이 있을 수 없나니 오직 그리스도는 만유시요 만유 안에 계시니라”라고 했습니다.

 

헬라인이나 유대인은 엄청난 차이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할례를 받은 사람과 할례를 받지 못한 사람도 엄청난 차이가 있는 사람입니다.

종이나 자유인은 그 신분에 있어서 많은 차이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야만인들과 야만인들보다 더 못한 노예로 보이는 스구디아인은 인간 이하의 취급을 받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이런 엄청난 차이의 사람들도 다 그리스도 안에만 있으면 다 같이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과거의 출신성분아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사람들을 사귀다가 보면 출신성분이 다른 것 때문에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하는 일이 많이 있습니다.

 

전라도 사람과 경상도 사람이 서로 고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잘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과거에 경험한 일들 때문에 과거의 나쁜 경험들 때문에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성격상 장애를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과거에 좋은 가정에서 자라지 못했다거나 학대를 받은 경험 때문에 정상적인 삶을 살지 못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새 사람을 입은 사람은 이런 과거의 출신성분 때문에 불이익을 당하거나 나쁜 길로 빠지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나는 이제 그런 과거와 전혀 관계가 없는 정말로 다른 새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이라는 확신과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과거의 경험에서 오는 옛 사람의 흔적을 완전히 죽여 없애버리고 새 사람을 입으시기 바랍니다.

 

2.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8절 말씀에 “이제는 너희가 이 모든 것을 벗어 버리라 곧 분함과 노여움과 악의와 비방과 너희 입의 부끄러운 말이라”라고 했습니다.

 

양반이 된 사람은 양반답게 살아야 하는 것처럼 새 사람을 입은 사람은 새 사람을 입은 사람답게 살아야 합니다.

 

상민이 양반행세를 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지 않은 사람이 그런 것처럼 살려고 하기 때문에 힘이 드는 것입니다.

속은 그렇지 않으면서 겉으로 흉내만 내려고 하니까 어렵게 느껴지지만 사실 양반이 양반답게 사는 것은 참 쉽고 평안한 일입니다.

 

우리가 과거에 잘못된 길로 가서 그 길에 익숙해 있기 때문에 바른 삶을 사는 것이 힘이 들어 보이지만 사실 새로운 삶을 사는 것이 참으로 행복한 삶입니다.

우리의 속사람이 정말로 새 생명을 입은 자답게 변하면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분함과 노여움을 버려야 합니다.

옛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분노가 가득 차 있습니다.

옛날 우리 보무님들 마음에는 항상 분노가 가득 찬 사람들처럼 보였습니다.

조금만 잘못하면 성질을 부리고 화를 내고 집어 던지고 싸움을 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내가 짜증을 내고 성질을 부리고 신경질을 내면 내 자녀가 얼마나 불안해할지 잘 모르는 사람들처럼 왜 그렇게 화를 내면서 살았는지 모르겠습니다.

술 먹고 구타를 하는 부모님 밑에서 자란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그 분노가 자기 자녀에게 다른 사람에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부모님들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에 좀 높은 사람들은 항상 화를 내는 사람들입니다.

권력이 있고 힘이 있고 돈이 있는 사람들은 자기 마음대로 화를 내고 힘이 없는 사람들은 그 분노 앞에서 두려움으로 떨면서 사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마음에 화를 품고 살았습니다.

억울하게 당한 일들이 많고 마음대로 안 되는 일들이 많았기 때문에 그 울분이 늘 마음속에서 웅크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조금만 좋지 않은 일이 있어도 그 분을 참지 못하고 폭발시켜서 주위사람들을 힘들게 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억울할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선택해 주셨고 내 편이 되어 주셨고 나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풀어주셨는데 억울할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사랑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 미안하게 생각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마음에 품고 있었던 원한 억울한 감정들 다 버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따뜻한 성품 인자하심과 긍휼히 여기심을 본받아서 사람들에게 자비를 베푸는 사람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악의와 비방을 버려야 합니다.

악의란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악한 뜻을 말합니다.

비방이란 상대방을 해치려고 하는 말을 뜻합니다.

악한 마음에서 나오는 상대방을 해치려는 말을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타락한 우리의 마음속에는 악한 마음으로 남을 해하려고 하는 마음으로 차 있습니다.

그 마음이 남을 비방하는 말로 쏟아져 나옵니다.

 

남이 잘 되는 것이 배가 아프고 남이 칭찬 받는 일을 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래서 남이 하는 일은 우선 비방부터 하고 봅니다.

잘 했다는 말은 웬만해서는 잘 안합니다.

그냥 비판부터 하고 비방부터 하는 것이 오늘날 사람들의 악한 마음입니다.

    

제가 여러분들에게 자주 드렸던 말씀입니다.

남의 잘못을 보고 비판하는 눈을 바꾸어서 남의 잘한 것을 보고 칭찬해줄 줄 아는 사람이 되면 그 인생이 바뀐다고 많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말 한마디 잘 할 줄 아는 것이 인생에 있어서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모릅니다.

말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서 좋은 사람이 되기도 하고 나쁜 사람이 되기도 합니다.

 

어차피 타락한 우리의 마음에는 착한 마음보다 악한 마음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한다면 악한 사람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악한 마음을 말로 다 표현을 해서 사람들에게 상처를 줄 필요가 없습니다.

속에는 나쁜 것이 있어도 말을 잘 할 줄 알아야 합니다.

나쁜 말은 하지 말고 좋은 말만 찾아내서 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교회 복지회 이름이 “율로게오 복지회”입니다.

율로게오라는 말을 잘 아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로게오라고 하시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는 뜻이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율로게오라고 하면 하나님을 찬송한다는 말이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서로에게 율로게오라고 하면 하나님의 복을 받게 하는 축복하는 말이 됩니다.

 

그런데 이 율로게오라는 말의 원 뜻은 좋은 말이라는 뜻입니다.

좋은 말을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좋은 말씀을 하시는 것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것이고 우리가 하나님께 좋은 말을 하는 것이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되고 우리가 서로에게 좋은 말을 하는 것이 하나님의 복을 빌어주는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결국 교회는 좋은 말을 하는 곳입니다.

좋은 말씀을 듣고 좋은 말씀을 드리고 좋은 말로 서로에게 복을 주는 곳이 교회가 하는 일입니다.

악한 마음으로 비방하는 말을 하는 것은 이와 반대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성도들이 하지 말아야 할 것임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부끄러운 말이나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합니다.

부끄러운 말은 원어에는 우리 말 번역과 조금 다른 뜻이 들어 있는 말입니다.

부끄러운 말은 부정한 말이라는 혹은 음란한 말이라는 뜻도 있지만 또 대면해서 버릇없이 말하는 것이라는 뜻도 있습니다.

 

앞서 말한 비방이란 말이 상대방이 보지 않는 곳에서 욕한다는 뜻이라면 부끄러운 말이란 아예 보는 앞에서 욕을 하는 것을 말합니다.

 

보지 않는 곳에서 듣지 못하게 비방을 하는 것도 하지 말아야 할 일이지만 특별히 그 사람이 보는 앞에서 무안을 주면서 비방을 하는 것은 상대방에게 더 큰 상처를 주는 정말로 좋지 않은 일임을 알아야 합니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는 말은 그 사람으로 하여금 화를 내게 하고 더 나쁜 행동을 하게하고 죄를 짓게 하는 아주 나쁜 것입니다.

우리가 무심코 한 그 한마디가 그 사람을 궁지에 몰고 가기도 하고 실의에 빠지게 하기도 하고 죄를 짓게 하는 아주 나쁜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거짓말은 우리 성도들에게 아주 좋지 않은 것입니다.

우리가 진실 된 말로 신앙고백을 함으로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을 받은 사람들인데 그 말이 거짓이 되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신앙고백이 진실한 고백이 되게 하려면 우리의 언어생활이 늘 진실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이제 옛 사람을 벗어 버리고 새사람을 입은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분노를 버리시기 바랍니다.

어떤 일이 있어도 화를 내지 마시기 바랍니다.

 

악의와 비방의 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끄러운 말이나 거짓말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늘 좋은 말만 하면서 사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서로 받은 사랑에 감사하고 서로를 칭찬하고 인정하고 축복하는 좋은 말만 늘 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