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8. 광성교회 주일 낮(성례식)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골11)
본문 : 골 2:11-15
제목 : 할례와 세례.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또 범죄와 육체의 무할례로 죽었던 너희를 하나님이 그와 함께 살리시고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우주 만물을 하나님께서 창조하셨고 하나님께서 주인이 되시고 지금도 하나님께서 운행하고 계신다는 것을 믿는다면 그 하나님께 인정을 받고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 최선을 다하게 될 것입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은 특별한 사람으로 선택을 하셔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용을 하시고 어떤 사람은 버리셔서 아무렇게나 살게 하다가 그 행한 대로 심판을 하시고 벌을 받게 하신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선택을 받아서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유대인 하면 머리가 좋은 사람 그리고 세계 경제를 주름잡고 있는 사람이라고 인정을 합니다.
세계 역사를 주름잡은 사람들 중에 상당수가 유대인이었고 노벨상을 받은 사람 약 30%가 유대인이라고 합니다.
유대인들의 그런 능력은 하나님에 대한 믿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선택해주셨다는 믿음이 그들로 하여금 그런 위대한 일을 하는 위대한 사람들이 되게 했습니다.
유대인들이 자신들이 하나님과 특별한 언약 관계에 있음을 나타내는 징표가 있습니다.
자신들이 이 세상 사람들과 다른 특별한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할례를 받는 것이었습니다.
창세가 17장에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특별히 언약을 맺는 장면이 나옵니다.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리니 내가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며 왕들이 네게로부터 나오리라 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 및 네 대대 후손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창 17:6-7)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내가 너로 심히 번성하게 하겠다.
네게서 민족들이 나게 하고 왕들이 나오게 하겠다.
내 언약을 너와 네 대대 후손과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겠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너희는 포피를 베어라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니라.”(창 17:9-11)
언약을 지킨다는 표시로 포피를 베어내서 할례를 받으라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의 언약의 표징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있어서 할례는 정말로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에는 이 할례와 세례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하나님의 백성 된 표시로 할례를 받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면 우리 성도들에게는 세례를 받는 것이 더 큰 자부심을 가지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는 할례가 아닌 세례로 하나님의 특별한 백성이 되는 것이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받는 혜택이 더 크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서 할례와 세례의 관계를 살펴보고 비교해봄으로서 우리가 받은 세례가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말씀을 잘 들으시고 내가 세례를 받은 것이 얼마나 귀하고 복된 것인가를 생각하고 그 은혜에 감사하고 세례를 받은 하나님의 백성답게 살려고 다짐하는 귀한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1.이스라엘 백성들이 받은 할례
본문 11절 말씀에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라고 했습니다.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라고 했습니다.
“그리스도의 할례”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씀을 하고 있는 할례는 세례를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할례는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 속에서 손으로 행한 할례가 있고 그리스도의 할례가 아닌 다른 할례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 할례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한 할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앞서 살펴보았듯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백성들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면서 그 언약의 징표로 주신 것이 할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 할례를 얼마나 소중하게 생각했는지를 상상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할례를 받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백성에서 끊어내신다고 했기 때문에 다 할례를 받았고 할례를 받았다는데 대해서 엄청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을 것입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과 언약을 받지 못한 이방인과 신분을 구별하는 표시였기 때문에 할례를 받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이 대단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할례를 받은 사람들은 그에 걸맞은 삶을 살아야 하는 의무가 주어집니다.
할례를 받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살겠다는 표시이기 때문입니다.
할례를 받는 것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거나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언약을 맺은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겠다는 약속의 표시이기 때문에 할례를 받은 사람은 할례를 받은 사람답게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할례를 받고 할례를 받은 것에 대해서 자부심을 가지고 자랑을 했지만 정작 그들이 행하여야 할 의무는 이행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언약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세상 사람들보다 더 악을 행하면서 살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러므로 너희는 마음에 할례를 행하고 다시는 목을 곧게 하지 말라”(신 10:16)라고 했습니다.
할례 받은 백성이라고 교만하게 목을 곧게 하지 말고 마음에 할례를 행하라고 했습니다.
외형적으로 할례를 받은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할례 받은 백성으로서 제대로 살지 못함에 대해서 마음으로 회개하고 바르게 살겠다고 다짐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도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렘 4:4)라고 경고했습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백성으로 선택을 받고 많은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었지만 그 뜻을 깨닫지 못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할례를 받지 못한 이방인들에게로 돌아가 버리는 비극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제 할례를 증표로 맺은 언약을 세례를 통하여 이루셨습니다.
세례 받은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인정하시고 세례가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임을 나타내는 증표로 삼으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 당시의 몇몇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았어도 할례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유대교의 엄격한 규례들을 지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영지주의적인 사상과 혼합되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외에 보통 사람들이 접근할 수 없는 영적 지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을 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향하여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구주가 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 최고라는 것을 가르쳐주기 위해서 이 골로새서가 기록이 되었습니다.
할례도 소중한 것이고 율법도 소중한 것이고 바르게 사는 것도 소중한 것이지만 제일 소중한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이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베푸는 세례가 중요한 것임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2.성도들이 받는 세례
앞서 인용한 11절 말씀을 다시 한 번 보시기 바랍니다.
“또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 라고 했습니다.
세례는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라고 했습니다.
또 세례는 “곧 육의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라고 했습니다.
세례는 여러분이 잘 아시는 대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하나님 앞과 사람 앞에서 그 믿음을 공적으로 고백하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철저한 개혁주의자요 복음주의 신학자인 핸드릭슨이라는 분은 11절을 주석하면서 그리스도의 할례와 손 할례의 차이점을 네 가지로 설명했습니다.
1)할례는 손으로 한 수술이지만 세례는 성령님의 사역이다.
할례는 손으로 한 작은 외과 수술이었지만 세례는 성령님의 사역으로 받게 되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할례는 인간의 손에 의한 것이지만 세례는 성령님께서 해 주시는 것입니다.
세례는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하는 사람에게 베푸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고 고백하게 하시는 분이 성령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아무나 예수님을 믿고 아무나 세례를 받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렇지가 않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그 마음에 역사하시지 않는 사람은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할 수 없고 세례를 받을 수도 없습니다.
목사가 이렇게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그 전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셔서 예수님을 믿게 하시고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공적으로 신앙을 고백할 수 있게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2)할례는 표면적인 것이지만 세례는 내적인 것 마음에 한 것이다.
바울은 빌립보서 3:3절에 참된 할례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봉사하며 그리스도 예수로 자랑하고 육체를 신뢰하지 아니하는 우리가 곧 할례파라”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은 눈에 보이는 외형적인 할례를 자랑했지만 진정한 할례는 성령으로 봉사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자랑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3)할례는 드러난 포피의 제거이지만 세례는 악한 본질(육의 몸)을 벗어버리는 것이다.
할례는 포피의 작은 부분을 제거하는 것이지만 세례는 몸 전체에 있는 육신의 더러운 것들을 제거하는 것입니다.
본문 11절에서 “육의 몸을 벗는 것”이란 육신의 몸속에 들어 있는 온갖 죄악된 것들을 제거시킨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몸’이란 우리 인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고 인간의 부패성 죄성을 말합니다.
그래서 ‘육의 몸’이란 육적인 몸 즉 죄악 된 본성을 가진 옛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4)할례는 아브라함과 모세를 통한 것이지만 세례는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이다.
아브라함이나 모세를 통해 받은 할례는 아브라함과 모세를 통해서 받은 언약에 의한 것입니다.
그러나 세례는 그 언약으로 이 세상에 오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아브라함이나 모세는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주시기 위해서 사용하신 사람들일 뿐이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그들을 통해서 이 세상을 구원하시려고 오신 하나님이십니다.
이런 사실들로 미루어보아서 할례와 세례는 비교할 수도 없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할례는 모형에 불과한 것이고 몸의 일부에 관한 것이지만 세례는 우리의 모든 몸과 마음에 역사하는 것입니다.
할례는 사람에 의한 것이지만 세례는 성령하나님의 역사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주어지는 것입니다.
할례를 받은 사람들이 누리는 혜택보다 엄청나게 큰 혜택을 받는 것이 세례입니다.
이런 큰 은혜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우리 성도라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 세례 받은 사람들이 누리는 은혜
12절에서 15절에는 세례를 받은 우리 성도들이 누리는 은혜에 대해서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1)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됨
본문 12절 상반절 말씀에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고”라고 했습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과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는 것을 상징적으로 나타냅니다.
우리는 이렇게 약식세례를 행하지만 침례교에서는 물에 완전히 잠기게 했다가 나오게 함으로 그 상징적인 의미를 더욱 확실하게 보여줍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는 것입니다.
장사되었다는 것은 완전하게 죽으셨음을 나타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으셨고 죽은 시체를 장사까지 지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음으로 우리도 그리스도와 함께 완전히 죽어서 장사지낸 것처럼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죽을 수밖에 없는 인생들이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그런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고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 때 우리가 함께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제 더 이상 죄의 형벌로 인해서 죽임을 당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입니다.
이미 우리는 형벌을 받아버렸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세례 받은 우리가 누리는 혜택입니다.
우리의 죄 값은 이미 치러졌다는 것입니다.
다시는 그런 일로 인하여 사형선고를 받을 일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2)믿음으로 말미암아 일으키심을 받음
분문 12절 하반 절에 “또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세례는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는 것입니다.
물속에 들어갔을 때 죽었으나 나올 때 산 것처럼 죄로 인한 우리가 죽어지고 의로운 사람으로 다시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살리심을 받는 조건은 죽은 자들 가운데서 예수님을 부활시킨 하나님의 능력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의 의미를 알고 그렇게 믿고 예수님의 부활하심을 믿는 믿음이 있는 자를 일으켜주신다는 것입니다.
여기 일으키신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물론 결국은 우리도 예수님처럼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여기서 일으키신다는 것은 부활의 의미보다는 죄로 인해서 영적으로 죽었던 우리의 생명이 새롭게 새 생명을 가진 사람으로 다시 일으켜 세움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과거에 우리는 죄로 인해서 죽은 생명이었지만 이제는 세례를 통해서 새로운 생명을 가지고 이 세상에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새 생명을 받은 우리는 죽어도 다시 살고 영원히 죽지 않는 몸으로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3)불리한 증서를 없애버리심
본문 14절 말씀에 “우리를 거스르고 불리하게 하는 법조문으로 쓴 증서를 지우시고 제하여 버리사 십자가에 못 박으시고”라고 했습니다.
여기 “법조문으로 쓴 증서”란 율법에 의하여 채무가 있음을 나타내는 문서를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간은 다 하나님께 빚을 진 채무자라고 했습니다.
율법을 지켜야할 의무가 있지만 지키지 못했기 때문에 그에 상당하는 죄 즉 빚을 진 사람들입니다.
그 차용증서가 있는 이상 우리는 빚을 갚아야 하고 그 빚을 갚지 못하면 형벌을 받고 죽임을 당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 빚이 얼마나 많은지 일만 달란트나 되는 빚이라고 예수님께서 빚진 자의 비유를 통해서 말씀을 하셔서 우리는 압니다.
그 액수는 우리가 어떤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해도 갚을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차용증서를 없애주신다는 것입니다.
얼마나 확실하게 없애주시는지 삼중 적으로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증서를 지우신다고 하셨습니다.
지우개로 글자를 문질러서 지워버리신다는 뜻입니다.
지우신다고 하니까 완전히 지워지지 않았으면 어떻게 될까 걱정이 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을 위해서 제하여 버리신다고 하셨습니다.
제하여 버린다는 것은 그 문서를 원래의 자리에 보관하지 않고 치워버린다는 것입니다. 문서 저장하는 것에서 치워서 없애버린다는 것입니다.
그것도 못 믿는 사람이 있을 것 같아서 십자가에 못을 박아버린다고 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사람이 죽는 것처럼 이증서는 완전히 죽은 문서 사문서가 되고 말게 한다는 것입니다.
혹자는 이 문서를 율법이고 이 문서를 없애는 것은 율법을 없애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율법이 없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지 못해서 우리가 지은 죄의 장부를 없애주신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지 못했던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용서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4)십자가로 승리함
본문 15절 말씀에 “통치자들과 권세들을 무력화하여 드러내어 구경거리로 삼으시고 십자가로 그들을 이기셨느니라.”라고 했습니다.
통치자들과 권세는 사탄의 통치와 권력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사탄과 사탄을 따르는 세력들이 권세를 잡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 그들의 세력을 완전히 무력화 시키고 승리하실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으로 그들을 이기셨다고 했습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능히 이 세상의 모든 죄악의 세력들을 물리친 능력이 있습니다.
그 능력으로 우리는 최후의 승리자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세례를 받음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죄악 된 모든 것은 십자가와 함께 죽임을 당하고 다 용서함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되었고 주님께서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도 부활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의 범죄를 기록한 문서는 하나님께서 깨끗하게 지워서 없애버렸습니다.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증거가 세례를 받는 것입니다.
오늘 세례를 받는 성도님은 이런 감격을 평생 기억하시기를 바라고 이미 세례를 받으신 성도님들은 세례를 받은 성도가 되었다는 것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세례를 받음으로 우리가 누리게 된 엄청난 혜택들을 늘 기억하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