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20.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골16)

본문 : 골 2:20-23

제목 : 조금도 유익이 없는 세상의 초등학문.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 (곧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하는 것이니 이 모든 것은 한때 쓰이고는 없어지리라)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

 

인천 부평의 한 경찰서에 아주 착한 한 학생이 잡혀 들어왔습니다.

알고 보니 대학입시를 3개월 앞둔 고3학생이었는데 전교 1등이었고 학력고사로 전국 5위권에 드는 장래가 촉망되는 학생이었습니다.

 

시험공부를 하다가 머리를 좀 식히려고 밖에 나왔는데 그 때 마침 길가에 차가 한대 세워져 있었고 차창문은 열려 있고 차키가 꽂혀 있었습니다.

순간적인 호기심에 문을 열고 차를 탔고 아버지가 운전하는 것을 등 너머로 본 실력으로 차에 시동을 걸고 차를 움직여보았더니 차가 앞으로 나갔습니다.

처음해보는 운전이었기에 얼떨결에 중앙선을 넘었고 마침 지나가던 사람을 다치게 했습니다.

사고를 내고 겁이 나서 차를 두고 도망을 가다가 경찰관에게 잡혀서 온 것입니다.

 

사건을 맡은 경찰관이 이 학생이 너무나 안돼서 구속이 되지 않게 하기 위해서 여기저기 탄원서를 받기도 하고 백방으로 노력을 했지만 합의금을 마련하지 못한 학생은 엄격한 법 때문에 구속이 되었고 실형을 살게 되었습니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이 학생은 형을 다 살고 출옥했지만 현실에 적응하지 못하고 괴로운 나머지 술로 세월을 보내다가 자살을 하고 말았습니다.

실지로 있었던 일로 며칠 전 이 사건을 맡았던 형사에 의해서 신문에 기고된 이야기입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무슨 생각이 드십니까?

사람이 이 세상을 살면서 모든 일을 다 잘해도 한 순간 한가지의 실수로 인해서 그 동한 잘했던 모든 것이 다 물거품이 될 수도 있구나 하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학생이 전교 1등이 되고 전국 5등이 되기까지 얼마나 많은 노력을 했겠습니까?

학교에서 가정에서 모든 일에 착하고 열심이 있는 학생이었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기까지 얼마나 열심히 했을 것이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았겠습니까?

사람들이 입에 침이 마르게 칭찬을 했을 것이며 많은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학생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아주 짧은 순간 아주 작은 일 하나 때문에 죄인이 되고 감옥에 가야하는 비참한 사람이 되고 말았습니다.

 

또 하나 생각할 수 있는 것은 법의 기능에 대해서입니다.

사실 법이란 사람들을 행복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 만든 것입니다.

서로 간에 질서를 지키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하게하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은 하지 못하게 해서 서로 평화롭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해서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결국 법은 죄를 지은 사람에게 형벌을 가하고 죽음에 이르게 하는 기능도 함께 가지고 있기 때문에 법 때문에 장래가 촉망이 되던 한 인생이 죽음에 이르게 하는 악역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법이란 사람들이 그 법을 잘 지킬 때는 유익한 것이지만 그 법을 어길 때는 절망으로 이끌고 가는 악한 것이 되고 마는 것입니다.

우리가 법 아래에 있는 한 우리 모두가 죄를 지을 수 있는 가능성이 있고 사실 다 죄를 짓고 있는 죄인이며 결국 그 죄로 인해서 영원히 멸망을 당할 수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생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율법을 만들어 주신 것도 원래는 우리 인생들이 서로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렇게 행함으로서 우리 인간들이 서로 사이좋게 행복한 삶을 살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율법에 형벌을 첨가하신 것도 율법을 잘 지켜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 한 것이지 결코 사람을 죽게 하려고 만드신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 인생이 죄를 범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우리를 유익하게 할 목적으로 만들어주신 그 율법 때문에 죽게 되고 멸망하게 되고만 것입니다.

 

지난주의 말씀과 오늘 본문의 말씀이 이런 세상의 법과 하나님께서 주신 규례들에 대해서 그림자에 불과한 것이고 무익한 것임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은 세상의 초등학문이나 사람의 명령이나 가르침은 우리가 의로운 삶을 살게 하는데 별 소용이 없다는 것을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1. 세상의 초등학문들은 우리에게 조금도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본문 20절 말씀에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규례에 순종하느냐”라고 했습니다.

또 21절에도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을 따르느냐”라고 했습니다.

 

세상의 초등학문이 있습니다.

앞서 배운 8절 말씀에도 세상의 초등학문이 나옵니다.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초등학문이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과 반대되는 개념으로 말씀을 한 것이라고 설명을 해드렸습니다.

 

20절에서 초등학문이란 새번역성경에서 “세상의 유치한 원리”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이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철학이나 도덕이나 인간들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필요한 이론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자신들이 연구해서 굉장히 중요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이론들이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유치한 것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이 세상에는 천재들도 많이 태어났고 수많은 분야에서 나름대로 연구를 하여 박사학위를 받고 그럴듯한 여러 가지 이론들을 많이 연구해서 발표했는데 그런 이론들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 아주 유치한 것에 불과하더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연구한 이론에 가장 중요한 것이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우주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라는 사실이 빠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배제한 어떤 이론도 엉터리일 뿐입니다.

종로서적이나 교보문고 같은데 가 보십시오.

국회 도서관이나 학교 도서관 같은 데라도 가 보십시오.

거기 얼마나 많은 종류의 책들이 다 나름대로 그 분야의 최고임을 자랑하면서 뽐내고 있습니까?

 

그러나 그 많은 책들이 우리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정확하게 분석하고 정확하게 해결을 한 책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런 이론대로 살아본다고 해도 결국 인생은 죽게 되어 있고 그 후의 삶은 아무도 모릅니다.

 

솔로몬 왕은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 가운데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그 좋은 머리로 자신이 하고 싶은 것 다 해본 사람입니다.

재산도 엄청나게 가져본 사람이고 권력이나 호화로운 삶이나 다른 사람이 따라오지 못할 정도로 화려하게 산 사람입니다.

그가 쓴 잠언들을 읽어보면 정말로 좋은 말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그는 그런 모든 것들이 다 헛되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그 모든 것들은 다 헛될 뿐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없는 인생은 이 세상으로 끝이 나는 것이고 결국은 허무로 돌아갈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지식은 그 속에 하나님이 안계시기 때문에 하나님을 빼고 난 모든 학문들은 다 유치할 뿐이라는 것입니다.

 

규례가 있다고 했습니다.

세상에서 사는 것처럼 규례에 순종하느냐고 했기 때문에 여기 규례를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세상의 규칙들을 말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율법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당시에 골로새교회에 유대주의자들이 들어와서 유대인들처럼 율법을 지켜야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어찌해서 세상에 사는 사람들처럼 율법을 지키려고 하느냐고 반문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세상의 유치한 초등학문과 같이 생각하는 것은 문제가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율법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구원을 받는 사람이 되려고 하는 그것이 문제라는 것입니다.

 

세상에 많은 규칙들이 있고 그 규칙들이 그럴듯하게 좋은 것이라고 해도 그 규칙들을 다 지킴으로 의로운 사람이 된다고 한다면 그것은 유치한 초등학문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무엇이든지 완전하게 행할 수 있는 사람은 이 세상에서 아무도 없기 때문입니다.

행위를 통해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아보려는 시도자체가 어리석은 짓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명령과 가르침이 있다고 했습니다.

당시의 골로새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게 하기 위해서 여러 가지의 명령이나 가르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키되 철저하게 지켜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율법을 지킬 때 “붙잡지도 말고 맛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라고 가르쳤습니다.

 

음식에 관한 율법들을 지킬 때 아주 철두철미하게 지키라고 하는 것입니다.

먹지 말라고 한 음식은 붙잡지도 말고 맛을 보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고 하는 것입니다.

잡아서 맛보고 만져보고 하면 사람들은 다 먹게 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먹지 말라고 한 것들은 보면 먹고 싶고 맛을 보면 더 먹고 싶도록 되어 있기 때문에 아예 멀리하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철저하게 지키기 위한 노력은 좋은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는 그런 사람의 가르침 속에 정말로 하나님의 뜻을 바로 분별하고 하나님의 뜻을 따르려고 하기 보다는 정말로 없애야 할 인간의 욕심이 들어 있기 때문에 그것은 한 때 쓰이고 없어지는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신앙생활에 열심을 내고 무엇이든지 철저하게 하는 것은 좋은 일일 것입니다.

그런데 그런 열심들이 없애버려야 할 이세상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것이라면 세상의 유치한 초등학문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열심을 냅니다.

새벽마다 교회에 와서 예배를 드리고 기도하면서 하루를 시작합니다.

교회에서 이일 저일 맡아서 충성을 다합니다.

금식도 하고 고행도 하면서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노력들이 이 세상에서의 축복을 바라고 이 세상에서의 성공을 바라고 하는 일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그냥 아직 세상에 사는 사람들처럼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유치한 행동에 불과하다는 것입니다.

2.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에게 유익이 되시는 분이십니다.

앞서 인용한 20절 말씀에 “너희가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세상의 초등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사람들입니다.

더 이상 세상의 그 무엇에서 얻을 것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오직 그리스도 안에서만 유익한 것을 찾아야 합니다.

세상의 것들을 버리고 그리스도께 가까이 올 때만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대하여 죽은 사람은 세상 사람들을 따라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 사람들이 따르는 초등학문이나 율법이나 사람의 가르침을 따를 필요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 세상의 유치한 초등학문을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주장하는 것이 아무리 그럴듯해 보이고 좋아 보인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유치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시작부터 잘못된 시작이기 때문에 그 이론들이 맞을 리가 없는 것입니다.

 

또 율법이든지 그보다 좋은 무엇이든지 행함으로 의로운 사람이 된다고 하는 말을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우리의 노력으로는 우리의 행위로는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은 전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종교적 열심을 내라는 사람들의 가르침도 따르지 말아야 합니다.

거기에는 자신을 나타내고자 하는 교만한 마음이 있고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자 하는 의도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의 만족이나 욕망을 버리고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향해서 가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반대되는 길로 가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에 대해서 죽은 사람은 육체의 욕심을 따르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23절의 말씀에 “이런 것들은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데는 지혜 있는 모양이나 오직 육체 따르는 것을 금하는 데는 조금도 유익이 없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새번역 성경에서는 23절을 이렇게 번역했습니다.

“이런 것들은, 꾸며낸 경건과 겸손과 몸을 학대하는 데는 지혜를 나타내 보이지만, 육체의 욕망을 억제하는 데는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라고 했습니다.

 

앞에서 말한 이 세상의 초등학문이나 율법이나 사람의 가르침들은 꾸며낸 경건과 겸손과 몸을 학대하는 데는 그럴듯하게 보이지만 정작 필요한 육체의 욕망을 억제하는 데는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

 

육체를 따르지 않는다는 것은 세상의 욕심을 따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죽은 사람들이기 때문에 다시 세상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이 세상의 재물을 탐내지 말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려고 애를 쓰고 잘살아 보려고 애를 쓰고 재미있게 살아보려고 애를 쓰는 것은 좋은 일이기도 하고 사람이라면 그렇게 살려고 노력을 해야 되겠지만 그것이 우리의 삶의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더더군다나 신앙생활을 하는 목적이 예수님을 믿는 목적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잘못되어도 한참 잘못된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세상에 대해서 죽은 우리가 예수님의 뜻을 받들어서 바른 삶을 살려고 한다면 세상의 욕심들을 버려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입고 호화롭게 살고 사람들에게 칭찬을 받으면서 잘난척하려는 마음이 있는 한 무엇을 해도 바른 삶을 살 수가 없습니다.

 

그런 본질적인 것을 바꾸지 않는 한 겉으로 나타내려고 하는 모든 것이 다 유익이 없는 일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율법에서 먹지 말라고 한 돼지고기를 먹느냐 먹으라고 한 소고기를 먹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철저하게 먹지 말아야 할 음식을 가려서 잡지도 않고 맛보지도 않고 만지지도 않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더 중요한 것이 있기 때문이고 더 중요한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이런 것들을 붙잡고 아무리 노력을 한다고 해도 별로 유익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자기 욕심만 채우기 위해서 자기만 잘 먹고 잘 살려고 하는 것은 소고기만 먹고 비늘이 있는 것만 먹고 뛰고 나는 곤충만 먹는다고 해도 의로운 행동이 아닙니다.

 

구약시대의 이스라엘 백성이 망한 제일 큰 이유가 하나님께 제사 드리는 일에 실패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 다음의 이유를 꼽으라고 한다면 권력자들이 지도자들이 가난하고 힘이 없는 사람들의 것을 착취했기 때문입니다.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남의 것을 강제로 빼앗아오고 자기 배만 자기 창고만 챙기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말로 우리가 먹는 음식이 깨끗한 음식이 되려면 그 음식이 정당하게 내 것이 되었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내가 노력을 해서 내게 주는 내 몫을 먹는 것인지 노력도 없이 남의 것을 빼앗아 먹는 것인지 그것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하는 것 참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 기도가 나의 개인적인 욕심만을 채우기 위한 것이라면 그 기도는 유익한 것이 없습니다.

 

고행을 하고 선행을 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나의 명예를 나타내고 나의 자랑거리로 삼기 위해서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경건한 사람처럼 행동을 하고 그것으로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고 하지만 거기에 자기의 욕심을 채우기 위한 욕망이 있는 한 우리에게 도움을 주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최고의 것임을 확인하라는 것입니다.

골로새서의 주제는 우리 예수님이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최고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온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고 타락한 이 세상을 구원하신 분이시고 온 우주 만물을 통치하고 계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율법이나 세상의 학문이나 바르게 살려고 노력하는 모든 것들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비교해보면 유치하기 짝이 없는 것들이라는 것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죄를 범해서 영원히 멸망할 수밖에 없는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대신 죽어주신 예수님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 고백하면 영원토록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해주시는 예수님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해서 부활하신 예수님 우리가 가서 살 영원한 천국을 준비하고 계시는 예수님

이제 다시 오셔서 영원한 나라로 우리를 데리고 가실 예수님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워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 십자가를 통해서 주시는 은혜를 사모하고 그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 나라를 기다리며 더욱 강하게 내 마음 속에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에서 좋은 것처럼 보이는 것들이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는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것이 아무리 좋은 말씀이라고 해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떠나면 우리에게 아무런 유익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노력이나 고행이나 선행이 아무리 훌륭하다고 해도 십자가의 복음 앞에서는 아무것도 아님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그 하나님 나라가 내 마음속에 더 강하게 이루어지며 날마다 영원한 나라를 기다리면서 살 때 우리는 정말로 복된 삶을 사는 사람이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