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23.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전 08)
본문 : 딤전 1:12-14
제목 :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12.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14.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
우리 교회에 와서 듣는 설교가 대부분이 사도바울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로마서나 에베소서와 같은 서신서 대부분이 바울서신입니다. 사도행전도 대부분이 사도바울의 행적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올해부터 시작한 디모데전후서 역시 사도바울이 기록한 서신입니다.
그래서 여러분들이 우리 교회는 왜 늘 사도바울 이야기만 하는가 하고 불만이 있으실지 모르겠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사도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우리 교회 설교의 핵심입니다. 사도바울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사도바울이 전한 그 복음을 전하는 것이 교회의 핵심사역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하면서 본받아야 할 롤 모델 한 사람을 지정하려고 한다면 바로 이 사도바울을 지정하면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 중에서는 사도바울이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예수님을 본받는 삶이 더 좋은 삶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감히 우리가 본받아서 따를 수가 없고 예수님을 따라 행하는 것보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것을 보고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구약 성경의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다윗왕이나 신약성경의 베드로나 요한 같은 사도도 좋은 사람들이지만 사도바울처럼 직접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이해하고 그 복음을 위해서 산 사람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사도바울 이야기만 한다고 혹시 불평하시는 분이 계실까 봐 말씀드립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도 사도바울의 이야기입니다. 사도바울이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직분을 맡겨주신 것에 대한 감사를 하면서 자신이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과 만난 후의 삶을 비교하면서 예수님의 복음에 대해서 알고 난 후의 감격을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며 우리 주님이 되신다는 사실과 그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직분을 맡겨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이 오늘 설교 제목입니다. 그가 왜 감사하고 있는지를 살펴보고 그가 받은 은혜를 우리도 받고 있음을 확인하고 감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사도바울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바로 알고 믿고 따르게 된 것은 그냥 어쩌다가 그 사실을 깨닫게 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삶이 180도 변한 데는 특별한 계기가 있었습니다.
그는 구약 성경의 율법을 따르는 유대인 중의 유대인이었고 바리새인이었고 그 누구보다 유대교에 열심을 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그토록 반대하던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아주 특별한 체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을 잡아다가 감옥에 가두기 위해서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에 대낮의 태양보다 더 밝은 빛을 보게 되었고 눈이 멀어서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고 그로 인해서 새로운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때가 너무나 그에게 유익한 시간이었기 때문에 사도행전에서 세 번이나 그때의 감격을 이야기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에서도 그로 인해서 변화된 자신의 모습을 소개하면서 그런 기회를 주신 주님께 감사드리고 있습니다. 그 감격이 자신이 그리스도의 복음의 일꾼이 되어서 죽기까지 충성하고 헌신한 계기가 되었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우리 교회는 장로님과 집사님을 세우는 임직 감사예배를 드렸습니다. 설교하신 목사님을 통해서 권면하신 목사님을 통해서 좋은 말씀 들었지만, 오늘 한 번 더 임직을 받게 된 것에 대한 의미를 생각하고 감격하고 감사하는 시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가 직분자들입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모든 사람은 예수님의 제자이면서 복음의 일꾼들입니다. 그런 일꾼이 된 것에 대해서 감사하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본문 12절에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직분을 맡기심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요즘은 취직하기가 힘드니까 일을 하는 것 자체가 자랑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나 사도바울이 맡은 일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맡겨 주신 일이기 때문에 너무나 자랑스러웠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자신에게 일을 맡기시면서 그냥 맡기신 것이 아니라 그 일을 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셨고 또 부족하지만 자신을 충성스러운 사람이라고 여겨 주시고 일을 맡기셨음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1) 나를 능하게 하신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사도 직분을 주시면서 그 일을 감당할 수 있도록 능력을 주셨습니다. 사도행전을 통해서 사도바울이 사도직을 수행하면서 많은 기적적인 일을 행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날 때부터 서지 못한 사람이 일어났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기도 했습니다.
그가 선교여행을 다니면서 여러 가지 위험을 당하였습니다. 여행 중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고후11:26)라고 했습니다.
이런 어려움 속에서도 선교 여정이 중단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계속해서 다닐 수 있었던 것은 예수님께서 주신 능력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바울 개인의 힘으로 선교를 하려고 했으면 할 수 없는 일들을 예수님께서 주신 능력으로 계속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지금 본문에서 사도바울이 예수님께서 나를 능하게 하셨다는 말은 이런 능력들만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사도바울은 그런 능력보다 엄청난 능력을 예수님께 받았습니다. 사도바울이 받은 가장 큰 능력은 복음이었습니다. 바울이 받은 다른 능력들도 이 복음을 전할 수 있게 하려고 주신 능력입니다.
로마서 1:16절 우리가 너무 잘 아는 말씀에 그 능력을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고린도전서 1:18절에도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받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라고 했습니다.
복음은 사도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직무를 수행함에 있어서 엄청난 능력이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하는 일이 그냥 이런저런 종교 중에 하나를 이야기하여 내가 섬기는 신이 좀 나으니까 개종하라는 정도라면 그렇게 열심을 낼 수 없었을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하는 일이 그저 이 세상에 사는 동안 복을 받아서 평안하게 행복하게 살게 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그렇게 세상에서 고생하면서 일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가 전하는 복음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 있어서 누구든지 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기만 하면 죄에서 죽음에서 영원한 멸망에서 구원을 받게 하는 엄청난 일이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십자가의 도는 멸망을 당하는 사람들에게는 미련한 것으로 생각되는 것이지만 구원을 받는 우리들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하면 세상 사람들은 미련하다고 비웃지만, 그러나 그 십자가의 도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 있다는 것을 그들이 모르기 때문입니다.
저와 여러분도 이런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 있는 복음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 복음을 통하여 구원을 받았고 그 복음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전할 직분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장로나 집사나 권사들뿐만 아니라 우리 모든 성도들이 예수님의 제자로서 복음의 일꾼으로서 사명을 가졌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사업을 하면서도 제가 취급하는 물건에 대해서 그 가치를 소중하게 생각했습니다. 좋은 물건을 싼값으로 팔면 그 물건을 사는 고객들이 기뻐할 것을 생각하면서 좋은 물건을 싸게 팔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것은 그렇게 모든 사람이 좋아할 만한 것은 없습니다. 값이 싸면 물건이 좋지 않고 물건이 좋으면 값이 비쌉니다. 어떤 사람은 겉모양을 중요시하고 어떤 사람은 겉모양보다 속의 성능을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맡은 이 복음은 완벽한 것입니다. 값은 없습니다. 은혜로 선물로 거저 받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능력은 엄청난 것이어서 수천억을 주고도 살 수 없는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남을 속이거나 사기를 쳐서 이익을 챙기라고 우리에게 직분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너무나 좋은 것을 선물로 거저 주는 직분을 맡기신 것입니다. 우리에게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은 엄청난 복을 받게 된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 충성되이 여겨 직분을 맡기신 것에 대한 감사입니다.
여기 ‘충성되이’라는 말은 ‘충성’이라는 뜻과 함께 “믿을 수 있는, 진실한, 신임하는”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바울을 충성되이 여기고 믿을 수 있는 사람으로 여기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으로 인정해서 직분을 맡겨 주셨다는 것입니다.
여기 충성이라는 말 속에는 믿을 수 있는 신실한 이라는 뜻이 들어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믿고 신뢰하지만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믿고 신뢰할 수 있을 때 일을 맡기십니다. 믿을 수 있는 사람,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 일꾼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여겼다는 말은 아직 충성되지 못하지만 충성된 사람으로 인정하고 일을 맡겨 주셨다는 것입니다. 일을 할 만한 능력을 갖추고 자격을 갖춘 사람에게 일을 맡겨 주었다면 그렇게 감사할 것까지는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을 할 만한 충성심도 자격도 갖추지 못한 자신에게 충성스럽게 여겨 주시고 자격이 있는 사람으로 인정해주시고 일을 맡기셨다는 것이 감사한 일이라는 것입니다.
교회의 일꾼은 모든 것을 갖춘 사람에게만 맡기는 것이 아닙니다. 때로는 부족한 사람이라고 해도 하나님께서 충성스러운 일꾼으로 인정해주시고 일을 맡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인간적으로 부족한 사람에게 일을 맡기십니다. 똑똑한 사람이 일을 하면 그 머리로 일을 했다고 할 것이고 돈을 많이 가진 사람이 그 돈으로 일을 하면 돈에다가 능력을 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인간이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의 머리가, 인간이 가진 돈이, 인간이 가진 권력이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고 하나님만 영광을 받으셔야 합니다.
사도바울에게 치명적인 질병이 있었습니다. 그 질병이 사역하는 데 방해가 되어서 하나님께 치료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에 응답하지 않으시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나에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고후12:9)
우리도 주님의 일을 하는 데 있어서 부족한 것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부족한 것이 오히려 하나님의 능력을 나타내고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는 것이 됩니다. 내가 똑똑하고 잘났으면 내가 일을 하는 것이 되지만 내가 부족하고 못날수록 하나님께서 나를 통해서 하시는 일이 됩니다.
우리는 부족하지만 하나님께서 충성된 자라고 인정을 해주십니다. 우리가 연약할수록 우리에게는 더 큰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십니다. 우리가 부족할수록 우리가 가진 복음을 자랑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부족하다고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는 이렇게 놀라운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 있는 복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연약할수록 더욱 도와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있습니다. 연약한 사람이 일을 할수록 하나님의 영광이 더욱 빛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본문 13-14절에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우리 주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과 함께 넘치도록 풍성하였도다”라고 했습니다.
만약에 바울이 예수님을 잘 알면서 복음을 잘 알면서 그렇게 박해를 했다면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잘 몰라서 그렇게 행동했기 때문에 긍휼히 여김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비방하던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믿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붙잡아다가 옥에 가두고 죽이기까지 한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예수님께서 바울에게 하신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행 26:14)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울이 이렇게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을 박해한 것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을 때 알지 못하고 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이신 줄 알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 줄 알지 못했습니다. 복음 안에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 있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사도바울은 구약 성경을 줄줄 외울 정도로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율법은 당시에 가장 정통적으로 가르치는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운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라고 자신하던 사람이고 하나님의 율법을 가장 잘 지킨다고 자부하던 사람이고 하나님의 일을 누구보다도 더 열심히 행하는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졌던 사람입니다.
만약에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면 예수님께서 그를 만나주시지 않으셨다면 평생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그런 사상을 버리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메섹 도상에서 특별하게 예수님을 만났기 때문에 생각을 바꿀 수가 있었을 것입니다. 십자가에 형벌을 받고 죽은 줄만 알았던 예수님이 제자들이 말한 대로 부활하셨고 승천하셔서 하나님 나라에서 영광스러운 모습을 하고 계신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그동안 자신이 비방하고 박해한 일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가를 알았을 것입니다. 성경을 그렇게 잘 안다고 자부하던 자신이 얼마나 어리석었는지를 알았을 것입니다.
사람들이 자기가 한번 배운 것을 잘 바꾸지 않습니다. 그것도 자기가 배운 것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남이 무슨 이야기를 해도 곧이듣지 않습니다. 교회에 오랫동안 다녔다고 하는 사람도 옛날에 배운 것을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옛날에 배웠던 것은 복음이라고 하기보다는 율법을 많이 배웠습니다. 교회에 와서 착하게 살고 바르게 살고 좋은 일 많이 해서 복을 받는 것이 최고라고 배웠습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복음을 이야기해도 잘 알아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주장하는 사람도 있겠거니 하고 자기가 그동안 배운 것을 바꾸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로 알고 믿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렇게 귀한 복음을 알게 되었는데 이 복음을 모르는 사람들처럼 행동하면 안 됩니다.
복음을 소중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믿는 믿음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몰랐을 때처럼 예수님을 믿는 것을 소홀히 여기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사도로서 직분을 맡은 것에 대해서 감사하고 있습니다. 이 일을 감당하도록 능력을 주셨음을 감사했습니다. 충성된 사람으로 여겨 주신 것을 감사했습니다. 긍휼을 입은 것을 감사했습니다.
우리도 바울과 같이 예수님께 귀한 직분들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 모두가 예수님의 제자이고 복음을 맡은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들어 있는 복음을 우리가 받았습니다.
이 귀한 복음을 전하여 죽어가는 인생들에게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을 주는 귀한 일을 우리가 하고 있다는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