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2. 16.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딤전 07)
본문 : 딤전 1:9-11
제목 :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9.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 10.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 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11.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
우리가 올해부터 디모데전서의 말씀을 가지고 강해 설교를 듣고 있습니다. 바울이 에베소에 머물러서 목회하고 있는 디모데에게 어떻게 성도들을 가르쳐야 하는가를 기록한 것이 디모데전후서입니다.
사도바울이 이 디모데전서를 기록하면서 맨 먼저 한 중요한 말이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3절에서 11절까지가 다른 교훈을 가르치지 말라는 것을 주제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다른 교훈 즉 잘못된 교훈, 거짓 교훈을 가르치지 않고 올바른 교훈, 진짜 교훈을 가르치는 것이 목회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 입장에서 생각하면 교회에 와서 바른 교훈을 배우는 것이 최고의 복입니다. 다른 교훈 가짜 교훈 잘못된 교훈을 배워서 바른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엉터리 믿음을 가진다면 그것처럼 불행한 일이 없기 때문입니다.
교회에 다니면서 신앙생활 하는 목적은 죄에서 구원받고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께만 있는 영원한 생명 영원한 천국을 영원한 기업을 상속받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그런 특별한 혜택을 받는가를 가르치는 것이 바른 교훈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방법이 아닌 다른 것을 가르치는 것을 다른 교훈입니다.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잘 먹고, 잘 살고, 행복하게 사는 것을 원합니다. 모든 사람이 다 그런 것을 좋아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도 그런 사람들의 요구에 따라서 이 세상에서의 행복을 가르칩니다.
세상의 행복이 불필요하다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 것을 가르쳐서는 안 된다는 것도 아닙니다. 이 세상의 행복도 바른 교훈 안에서 얻어야 합니다. 바른 교훈을 떠난 행복은 우리를 멸망으로 이끄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교회에 와서 제일 먼저 알아야 할 것은 다른 교훈이 무엇인지 올바른 교훈이 무엇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설교가 다른 교훈을 따르는 것인지 올바른 교훈을 따르는 것인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3절에서 11절 말씀을 살펴보면 ‘교훈’이라는 단어와 ‘율법’이라는 단어가 자주 나옵니다. 원어를 자세하게 보면 교훈, 율법, 명령, 교리 등으로 번역할 수 있는 단어들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교훈이 무엇인지 율법이 무엇인지 혼란스럽습니다.
초대교회 당시 바울과 디모데 입장에서 생각하면 교훈이 무엇을 말하는지 율법이 무엇을 말하는지가 정확하게 구별이 되어 있었을 것입니다. 서로 말을 하지 않는다고 해도 교훈이라고 하면 무엇을 말하는 것이고 율법이라고 하면 무엇을 말하는지를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초대교회 때에 가장 큰 쟁점은 유대인들의 주장대로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인가? 예수님의 제자들의 주장대로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인가 하는 것이었습니다.
초대교회 내에도 가장 큰 문제가 유대인이었으면서 기독교로 개종한 사람들 중에 예수님을 믿어도 율법을 지켜야 의로운 사람이 된다고 주장하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이런 사람들에게 오직 복음을 믿는 믿음만이 의로운 사람이 되는 유일한 길임을 강조했습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여기 교훈은 바울의 주장을 따라 복음과 그 복음에서 나오는 가르침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율법은 유대인들의 주장대로 구약 성경에 기록된 모든 율법을 말하며 그 율법을 지켜야 된다는 주장을 말하는 것입니다.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본문 9절에 “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라고 했습니다.
율법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알아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지난 시간에 배운 바로 앞 절에서 “그러나 율법은 사람이 그것을 적법하게만 쓰면 선한 것임을 우리는 아노라”(8절) 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율법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의미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율법의 용도를 잘 알고 적법하게만 사용하면 율법은 우리에게 참 선하고 유익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율법을 주셨는지 우리가 그 율법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바르게 알면 율법은 참 좋은 것이며 유익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9절에서는 이 율법에 대해서 더 설명하기를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라고 말합니다.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해서 세운 것이 아니라 옳지 않은 사람을 위해서 세운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율법은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생들에게 최소한 이 정도는 지키면서 살아야 질서가 유지된다는 것을 아시고 주신 것입니다. 잘 지키는 사람에게 상을 주시기 위함이 아니라 지키지 못하는 사람에게 벌을 주어서 최소한의 질서를 유지하기 위함입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하나님께 율법을 받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4백여 년 동안 애굽에서 노예살이를 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자유인으로서 특별히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지켜야 할 법이 필요했습니다.
애굽에서 온갖 잡신을 섬기는 것을 보고 산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오직 하나님만 섬기고 살라고 계명을 주셨습니다. 애굽에서 노예로 살고 노예를 학대하면서 살던 애굽 사람들을 보면서 살았던 그들에게 서로 사랑하며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서 계명을 주셨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해서 주신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아주 최악의 경우를 살았던 사람들에게, 죄인으로서 노예 생활을 하던 사람들에게 주신 것이 율법입니다.
그나마 그런 최소한의 법칙마저도 제대로 지킬 수 없는 것이 우리 타락한 인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해서 율법을 주셨습니다. 인간이 뭐 그렇게 대단한 것이 아니라 참 보잘것없는 연약한 인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인간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법도 잘 지킬 수가 없어서 짐승을 대신 잡아서 피를 흘리고 죽게 함으로 죄 사함을 받아야 하는 연약한 인간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리고 이런 율법을 지킴으로가 아닌 다른 방법으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아야 할 것이 필요함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라는 말은 당시 유대인들의 교만을 지적하는 말이기도 합니다. 초대교회 당시 유대인들이 자신들은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이며 그래서 의로운 사람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켜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으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을 지킨다고는 하지만 외형적이고 가식적으로 율법을 지키는 척하면서 자신들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착각을 했습니다. 율법은 그렇게 외형적으로 가식적으로 율법을 지키는 척하는 사람들을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하기 위함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더 나가서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함이 아니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의 기준이 율법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의의 기준은 믿음이라는 것을 로마서를 통해서 배웠습니다.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은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지만 아무리 율법을 잘 지킨다고 해도 하나님께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율법으로는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서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을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하시기 위해서 만드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은 오직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밖에 없음을 강조하시는 말씀입니다.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
본문 9~10절에 “9.알 것은 이것이니 율법은 옳은 사람을 위하여 세운 것이 아니요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 살인하는 자며 10.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 매매를 하는 자와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맹세하는 자와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바른 교훈을 반대하는 자들을 위해서 있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른 교훈을 반대하고 율법을 지킴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 율법이 적용된다고 했습니다.
바른 교훈은 복음을 따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복음을 따르는 것이 바른 교훈입니다.
그런데 이런 바른 교훈을 반대하는 것은 믿음을 따르지 않고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게 된다는 다른 교훈을 따르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이런 사람들에게 율법은 그들을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의롭게 살지 못함을 처벌받게 하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율법은 어차피 모든 인간이 죄인임을 깨닫게 하기 위한 것이며 자신이 죄인임을 깨닫지 못하고 율법을 지켜서 의로운 사람이 되겠다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을 처벌하기 위한 것입니다.
바울은 율법을 설명하면서 십계명을 염두에 두고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정확하게 십계명의 순서나 문장을 따르지는 않지만 대강의 내용들이 십계명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오직 불법한 자와 복종하지 아니하는 자와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과 거룩하지 아니한 자와 망령된 자와”라고 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십계명의 1~4계명까지의 하나님에 관한 죄를 지적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우상을 섬긴 사람과,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지 않는 사람, 하나님 앞에 범죄한 사람,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을 말합니다. 율법은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오히려 하나님을 모독하는 사람을 처벌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고 하신 말씀을 어기는 사람을 처벌하기 위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신 창조주임을 믿는 사람은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대로 안식일을 거룩한 날로 구별하여 지켜야 합니다.
“아버지를 죽이는 자와 어머니를 죽이는 자와”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제오 계명의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말씀에 해당됩니다. 인간들이 부모님을 공경하기는커녕 부모님을 죽이는 흉악한 죄인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살인하는 자며”라고 했습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여섯째 계명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요즈음은 인권이 많이 강화되어서 명예를 훼손하는 것까지 죄가 되지만 당시에는 쉽게 사람의 목숨을 빼앗아갔습니다.
“음행하는 자와 남색하는 자와 인신 매매를 하는 자와”라고 했습니다. “간음하지 말라”는 일곱째 계명에 해당되는 말입니다. 간음죄는 남의 아내나 남편을 범하는 것뿐만 아니라 동성연애나 매매춘을 다 포함하는 것임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거짓말하는 자와 거짓맹세하는 자와”라고 했습니다.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아홉 번째 해당하는 말씀입니다. 거짓으로 남을 속이는 것들이 다 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거짓말이나 거짓증거는 팔 계명의 도적질하지 말라는 말씀과 십계명의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라는 말씀과 연결됩니다. 남의 것을 탐내기 위해서 남의 것을 훔치기 위해서 거짓말하는 것을 포함하기 때문입니다.
“기타 바른 교훈을 거스르는 자를 위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여기 바른 교훈은 복음을 따르는 교훈을 말합니다. 오직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을 따르는 것을 말합니다.
이 복음을 거스르는 자 이 복음을 믿는 믿음을 거부하는 자는 이 율법에 의해서 처벌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사람은 죄 사함을 받고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습니다. 그러나 이 복음을 믿는 믿음을 거부하는 사람은 율법에 의해서 처벌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율법을 바르게 사용하는 것은 율법을 지켜서 인간다운 삶을 살려고 노력은 하되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 없음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율법 앞에서 연약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나에게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이 필요하다고 인정하고 십자가를 붙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끝까지 율법을 지켜서 의로운 사람이 되겠다고 고집하는 사람은 그 율법에 의해서 처벌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르고 끝까지 십자가의 복음을 거부하는 사람은 영원히 죄인으로 남게 되고 처벌을 면할 수 없게 됩니다.
이 교훈은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
본문 11절에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라고 했습니다.
율법은 우리를 정죄하고 처벌하는 기능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그러나 교훈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교훈은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른 것이라고 했습니다.
율법에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교훈에도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고 하지 말아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너무나 다르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율법을 지켜서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은 오히려 하나님께 처벌을 자처하는 것이 됩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보다 율법을 지키는 체하는 위선자가 많기 때문입니다. 다 지키지도 못하면서 스스로 의로운체하는 교만한 사람들이 여기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교훈은 교훈을 지켜서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는 사람들이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은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데 가장 영광스러운 복이 이 복음 속에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복되신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복은 하나님이 가까이 계시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해주실 때 그것이 복이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떠났을 때 그것이 저주가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복 중에 가장 귀한 복은 이렇게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나올 수 있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살 수 있고 하나님의 말씀을 배울 수 있고 가장 귀한 복음의 진리를 알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여기가 어딘데 감히 나옵니까? 내가 누군데 감히 이런 엄청난 자리에,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올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 영광스러운 자리에 나오는 것을 주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자랑스럽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복음은 영광의 복음이라고 했습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귀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최고의 것을 주는 것이 복음이고 이 세상의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것이 복음이기 때문에 이 복음을 우리에게 최고의 영광을 주는 복음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영광스러운 삶을 사는가 수치스러운 삶을 사는가 하는 것은 복음을 믿고 따르는가, 복음을 믿지 않고 따르지 않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복음을 믿고 따르는 일만이 우리에게 최후의 승리를 안겨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것도 성공하기 위해서, 성공하여 자랑하고 영광을 얻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의 성공도 사실은 하나님께 가까이할 때 더 쉽게 얻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이 우리가 이 세상에서도 성공하고 행복하게 잘 살 수 있게 해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노력을 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해주실 때와 하나님을 떠나서 내 마음대로 할 때는 현저하게 다릅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할 때 진정한 성공의 삶을 살 수가 있습니다.
최후의 승리를 얻어서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은 말할 것이 없습니다. 그 유일한 길이 복음을 믿고 따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았는가 하는 것은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판결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때 슬피 울고 후회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기뻐하며 춤을 출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우리가 복음을 믿고 따르는 제일의 목적이 바로 이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의인으로 인정받고 영광의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믿고 따르는 복음을 영광의 복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 복음을 믿는 일 이 복음을 믿는 사람들이 행하여야 할 일들이 무엇인지를 잘 배워서 최후의 승리자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 율법이 있습니다. 율법을 바로 알고 적법하게 따르면 율법도 선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율법의 목적을 잘 모르고 율법을 행함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려고 하면 오히려 그 율법에 의해서 처벌을 받는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에게 교훈이 있습니다. 이 교훈은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르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이 복음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에게 주는 교훈이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들이 그 구원의 감격으로 구원을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하는 것이 교훈입니다.
이 교훈을 따라 멋있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그 교훈이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복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서도 참된 행복을 누리게 하는 너무나 귀한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