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10. 13.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271)

  본문 : 행 27:1-8

  제목 : 로마로 향하는 바울의 여정.

 

 

  “1.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2.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3.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기를 허락하더니 4.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맞바람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항해하여 5.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러 6.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7.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로 항해하여 8.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시에서 가깝더라.”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행1:8)라고 하셨습니다.

  이 명령을 따라 예수님의 제자들과 그들을 따르는 무리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다니면서 전파하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루살렘에서도 복음을 전했지만 주로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명을 받은 사람입니다. 바울은 이 사명을 위해서 그동안 근 30여 년 동안을 소아시아지방과 동유럽 지방에 다니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그리고 이제 마지막으로 당시의 가장 큰 패권 국가인 로마제국의 수도인 로마에 들어가서 복음을 전하는 것이 바울의 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앞서 살펴본 대로 “로마도 보아야 하리라”라고 하면서 죽음의 길도 마다하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올라왔습니다.

 

  예상했던 대로 예루살렘에서 유대인들에게 고발을 당하고 죄수의 몸이 되고 재판을 받다가 최종적으로 로마 황제 가이사에게 재판을 받기 위하여 로마로 호송됨으로 그의 소원대로 로마로 가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마지막 부분인 27장과 28장은 사도 바울이 로마로 가는 여정과 로마에서 복음 전파하는 장면을 마지막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그중에서 바울 일행이 로마로 출발하여서 미항이라는 곳에 도착하는 장면까지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본문 1~3절에 “1.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 바울과 다른 죄수 몇 사람을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 2.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새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하니라 3.이튿날 시돈에 대니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 받기를 허락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배를 타고 이달리야에 가기로 작정되매”라고 했습니다. 이달리야는 이탈리아를 말합니다. 로마가 있는 지금의 이탈리아를 말합니다.

  여기서 ‘우리’라고 한 것은 이 사도행전을 기록한 누가가 동행하고 있음을 말하고 또 2절에 마게도냐의 데살로니가 사람 아리스다고도 함께 갔기 때문입니다.

 

  누가는 사도행전의 기록을 보아서 늘 바울과 함께 다녔고 아리스다고도 사도행전에서 여러 번 바울과 동행하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행19:29, 20:4) 그리고 빌레몬서에서는 바울이 그를 “나의 동역자”로 소개하고 골로새서에서는 “나와 함께 갇힌 자”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여기 빌레몬서나 골로새서는 로마의 감옥에서 기록한 것입니다. 바울과 함께 로마까지 동행한 아리스다고는 감옥까지 함께 가서 끝까지 바울과 동역하면서 바울을 섬긴 것으로 보입니다.

 

  “아구스도대의 백부장 율리오란 사람에게 맡기니”라고 했습니다. 바울 일행과 다른 죄수 몇 명을 로마까지 인솔한 책임자는 아구스도대의 백부장인 율리오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아구스도대란 로마군대의 총사령관 직속의 보병부대로 로마 황제와 지방의 주둔군 사이를 왕래하면서 왕의 명령을 수행하는 특별한 부대라고 했습니다. 그 부대의 책임자는 백부장인 율리오라는 사람이었습니다.

 

  율리오 백부장이 바울에게 매우 친절했다는 것을 3절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배가 이튿날 시돈에 도착했는데 “율리오가 바울을 친절히 대하여 친구들에게 가서 대접받기를 허락하더니”라고 했습니다.

  배가 항구에 들어왔을 때 짐을 내리기도 하고 또 다른 짐을 싣기도 했기 때문에 아마도 시간이 좀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 시간을 이용해서 시돈에 살고 있는 친구들 즉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서 대접을 받고 오도록 허락했습니다.

 

  바울이 비록 죄수의 몸이었지만 그의 행동을 보아 보통 사람이 아님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호송을 부탁한 베스도 총독에게 특별하게 대하라는 부탁을 받았을 것입니다. 베스도는 이미 바울이 죄가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사도행전을 통해서 바울의 행적을 살펴보면서 두 부류의 사람들이 대립하고 있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끊임없이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반대하고 바울을 죽이려고 하는 유대인들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가진 기득권을 놓치지 않기 위해서 자신들의 육신적인 이익을 위해서 바울이 전하는 복음을 끝까지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의 육신적 이익을 포기하고 오히려 자신들이 가진 것을 다 내어놓고 바울을 따랐습니다.

 

  이것은 단순히 이익을 추구하느냐 아니냐가 아니라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얼마나 참된 것이고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알게 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잘 알지 못하는 유대교 지도자들은 끝까지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바울을 해치려고 하지만 바울의 복음을 믿고 따르는 사람들은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미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모두 내어버리고서라도 복음을 따르려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누가는 특별히 아리스다고라는 사람에 대해서 그가 동행하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그 많은 사람들과 바울을 따르던 그 많은 사람들 중에 특별히 한 사람 아리스다고만 바울과 함께하고 있음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누가는 거기에 대한 아쉬움을 나타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바울과 함께 하고 있는 아리스다고를 칭찬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바울이 출세를 하기 위해서 가는 길도 아니고 돈을 벌기 위해서 가는 길도 아닙니다. 재판을 받아야 하는 죄수이고 사형을 당할지도 모르는 이 길을 끝까지 함께 가고 있습니다.

 

  누가는 여러분이 잘 아는 대로 의사 출신이라고 했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의사는 밥 먹고 사는 데 지장이 없는 사람들이고 병든 사람들을 고쳐주는 보람된 일도 할 수 있고 돈도 벌어서 잘 살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누가는 그런 것들을 다 버리고 바울을 따르고 있는 것은 사도행전을 기록하라는 하나님의 특별한 임무를 수행하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바울의 건강을 돌보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를 바울 곁에 두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리스다고는 제법 재산이 많은 사람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바울이 오랫동안 전도 여행을 다니는 도중에 많은 비용이 필요했을 것입니다. 그 비용들을 대어주는 사람들이 바울 주변에 있었기 때문에 이렇게 여행을 다니면서 복음을 전할 수가 있었습니다.

  특별히 로마까지 가고 로마에서 2년 동안 구금되어 있는 상태에서 복음을 전할 때 많은 비용이 들었을 것인데 아리스다고가 그런 비용을 다 감당할 수 있는 재력가였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본문을 가지고 제가 여러분에게 여러분도 복음을 위해서 헌금하라고 설교하고 싶은 생각은 없으니까 오해는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누가나 아리스다고가 누가 강요한다고 이런 일을 했겠습니까? 그들이 복음의 위대함을 알고 복음을 땅끝까지 전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그 하나님의 뜻을 바울이 수행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에 그들 스스로 이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보면서 우리가 알아야 할 소중한 것은 복음이 소중하다 우리가 믿는 믿음이 위대하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자기의 이익을 위해서 만들어낸 이야기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큰 은혜를 베푸시기 위해서 계획하시고 만들어주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본문 4~8절에 “4.또 거기서 우리가 떠나가다가 맞바람을 피하여 구브로 해안을 의지하고 항해하여 5.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러 6.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 7.배가 더디 가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 풍세가 더 허락하지 아니하므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로 항해하여 8.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 라새아 시에서 가깝더라”라고 했습니다.

 

  앞에 인용한 2절에서 “아시아 해변 각처로 가려 하는 아드라뭇데노 배에 우리가 올라 항해할새”라고 했습니다. 바울 일행이 가이사랴에서 처음 탄 배는 ‘아드라뭇데노’라는 배였습니다.

  이 배는 비교적 소형의 배로 아시아지역의 해변을 오가는 배라고 했습니다. 이 배로 시돈에 갔다가 구브로 해안을 지나 길리기아와 밤빌리아 바다를 건너서 루기아의 무라 시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소아시아 지역의 해안들을 거쳐서 몇몇 항구를 거쳐서 무라 시에 도착했습니다. 무라 항구는 소아시아 중남부에 위치한 항구 도시였습니다.

 

  “거기서 백부장이 이달리야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 우리를 오르게 하니”라고 했습니다. 무라 항구에서 이달리아로 가려 하는 알렉산드리아 배를 만나서 배를 갈아타게 했다는 것입니다.

  알렉산드리아 호는 먼저 탔던 배와 달리 대형선박이었습니다. 원래 이 배는 아시아에서 곡물을 싣고 유럽으로 가는 곡물 운반선이었습니다. 그러나 화물만 싣고 가는 것이 아니라 사람들도 많이 탈 수 있는 여객선 역할도 했습니다. 그래서 이 배에 승객 276명이나 탈 수 있었습니다.

 

  이 알렉산드리아라는 배를 타고 니도 맞은편으로 살모네 앞을 지나 그레데 해안을 바람막이로 항해하여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렀다고 했습니다.

  누가는 이렇게 바울의 로마 여정을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느 배를 타고 어느 항구에서 어떤 항로를 통해서 어떻게 로마까지 가게 되었는가를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냥 배를 타고 로마까지 갔다고 기록을 한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연환경이나 도시나 항구 지명들을 상세하게 기록을 한 것은 사도행전의 기록이 사실에 입각한 기록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냥 읽고 지나간 부분들을 조목조목 따져보면 실제로 그 시대에 그 장소에서 일어난 사실을 보고 기록한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누가 상상해서 기록할 수 없는 아주 자세한 내용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 하나 더 살펴볼 것은 이 여정이 참 힘든 여정이었다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신 명령을 수행하는 과정이지만 그것도 쉽게 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배가 풍랑을 만나서 잘 가지 못하였습니다. 옛날 배는 돛을 세우고 풍랑이 부는 방향으로 가야 잘 갔습니다. 그런데 그런 바람의 방향들을 잘 만나지 못해서 애를 먹고 있는 것을 봅니다.

  ‘간신히’라는 말이 7절과 8절에 나옵니다. “여러 날 만에 간신히 니도 맞은편에 이르러”(7절) “간신히 그 연안을 지나 미항이라는 곳에 이르니”(8절)라고 했습니다. 힘들고 어렵게 겨우 도착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어려운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목적지를 향해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사람이나 자연환경이나 세상의 그 무엇이라도 막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면서도 또 하나의 교훈은 이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도 그렇게 쉽게 되는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뜻과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고 사탄의 세력은 틈만 있으면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방해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복음이 전파되고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이 일에도 어떤 사람의 수고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이라고 해서 자동으로 모든 일이 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수고와 헌신이 있어야 되고 그 수고와 헌신의 길이 결코 쉬운 일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주님의 일을 할 때 모든 것이 잘 되고 모든 것이 다 순조로우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신앙생활이 꿩 먹고 알 먹고 하는 일이라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누군가의 희생과 헌신 노력이 있어야 합니다.

 

  왜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일을 이렇게 힘들게 해두셨을까? 왜 이렇게 좋은 복음을 전하는 일을 이렇게 어렵게 해두셨을까? 초대교회처럼 기적이 일어나고 성령님께서 충만하게 역사하셔서 사람들이 기적을 체험하고 쉽게 예수님을 믿게 했으면 얼마나 좋을까? 이런 생각들을 해봅니다.

 

  하나님께서는 엄청 쉽게 구원의 길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선행이나 고행을 요구하시지도 않으시고 희생이나 헌신을 요구하시지도 않으십니다. 맹목적인 충성을 요구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오히려 더 자유를 누리고 더 행복하고 더 기쁘게 살도록 해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사탄의 방해 공작이 심하다는 것입니다. 사탄이 우리의 마음을 유혹해서 우리 속에 있는 죄악 된 본성을 자극해서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일을 힘들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그런 사탄의 유혹을 이기고 성령님께 의지하고 정말로 예수님을 믿고 따르기로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죄악 된 본성을 이기지 못하고 오히려 그 본성에 충실히 하려고 하기 때문에 힘들게 생각될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것을 그냥 용납해두신 것은 믿음으로 죄악 된 본성을 이기는 것이 우리의 믿음을 테스트하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과연 믿음이 있는가?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고백이 진실성이 있는가 하는 것은 그런 유혹이 올 때 얼마나 잘 이기고 잘 견디느냐 하는 것입니다.

 

  진실한 믿음이 있는 사람은 누가 뭐라고 해도 어떤 어려운 형편이 온다고 해도 그런 것들을 이깁니다. 믿음이 신실하지 못한 사람은 아주 작은 시험만 와도 무너집니다. 누가 시빗거리를 주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쉽게 믿음을 버리려고 합니다.

 

  사도 바울이 그렇게 복음을 전하는 귀한 일을 하려 함에 있어서도 많은 어려움을 당한 것처럼 우리가 이렇게 귀한 믿음을 가지고 믿음을 따라 살려고 할 때도 많은 유혹이나 시험이 따릅니다. 아무리 어려운 일이 있어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기 때문에 여러분들이 믿음을 따라 살겠다고 마음만 먹으면 어떤 어려움도 이기고 승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사도 바울이 드디어 예수님의 명령을 끝까지 수행하기 위해서 로마로 가고 있습니다. 그가 가는 길이 힘든 길이었지만 그의 동역자들이 있어서 잘 갈 수 있었습니다. 그가 가는 길이 풍랑이 이는 험한 길이었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심으로 잘 갈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가는 이 십자가의 길도 어렵고 힘든 길이지만 하나님께서 함께하시고 우리 서로가 힘이 되어준다면 능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어려운 시험이 올 때 이길 힘을 주시는 하나님께 의지하고 끝까지 믿음으로 사시기 바랍니다.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귀한 일인가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