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10. 14.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226)
본문 : 행 19:13-16
제목 : 너희는 누구냐.
“13.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14.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 15.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16.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
이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누구나가 다 신들린 사람들입니다. 어떤 사람은 하나님께서 보내주신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는 사람들이고 어떤 사람은 사탄의 지시를 받는 악한 귀신이 들린 사람들입니다. 성령님을 받은 사람들도 어떤 사람은 성령님께서 함께 하시는 것조차도 잘 모를 정도로 그 역사가 잘 느껴지지 않은 사람도 있고 어떤 사람은 성령님께서 주시는 각종 은사를 체험할 수 있도록 충만한 역사를 받는 사람도 있습니다. 악령 즉 귀신을 받은 사람도 어떤 사람은 자신이 귀신을 받은 것을 전혀 모르고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어떤 사람은 신 내림굿을 받아서 점도 치고 굿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는 사람은 그것을 느끼는 사람이나 그렇지 않은 사람이라도 다 결과는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바르게 살아갑니다. 악한 귀신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도 그것을 알고 느끼는 사람이나 잘 모르고 전혀 느끼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해도 결국은 사탄의 뜻을 따라서 악하게 살게 되고 사탄의 종으로서 살게 됩니다.
우리 성도들은 다 성령님을 마음에 모시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에게 믿음을 주시고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해 주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인을 쳐주시고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도 함께 하시면서 영원한 천국까지 이르도록 도와주십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다 그 속에 악한 영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에 진리를 보지 못하고 예수님을 믿지 못합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자유인이라고 생각하고 바른 길로 가는 사람들이라고 착각을 하고 살지만 다 악한 영의 지배를 받아서 죄악 속에서 살다가 영원한 지옥으로 끌려가는 불쌍한 사람들입니다.
오늘 본문에는 악한 영의 지배를 받으면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을 받는 사람처럼 가장하다가 실패를 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소개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처럼 가장을 하여서 귀신을 쫓아내려고 하다가 가짜임이 들통이 나서 망신을 당했습니다. 예수님을 믿지 않는 가짜 교인들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려고 하자 귀신이 내가 예수님도 알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는 바울도 잘 아는데 도대체 “너희들은 누구냐”고 따져 물었습니다.
오늘날도 교회에 다닌다고 하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진실로 믿지 못하고 믿는 사람처럼 행세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들에게 “너희들은 누구냐”고 물을 줄 알아야 합니다. 후일 에베소교회가 하나님께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을 칭찬 받은 것처럼 우리도 그런 칭찬을 받을 수 있도록 가짜를 거짓된 것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오늘 설교 제목을 “너희는 누구냐”로 정했습니다. 우리도 에베소교회처럼 악한 자들과 거짓 사도들과 거짓 복음을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그런 사탄의 세력들을 향하여 “너희는 누구냐”라고 당당하게 맞설 줄 알아야 합니다.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본문 13-14절에 “이에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 시험삼아 악귀 들린 자들에게 주 예수의 이름을 불러 말하되 내가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 너희에게 명하노라 하더라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바로 앞의 성경본문에서 하나님께서 사도바울을 통하여 능력을 행하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11-12절에 “하나님이 바울의 손으로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시니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그 병이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의 손을 통하여 놀라운 능력을 행하게 하셨고 심지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얹으면 병도 떠나고 악귀도 물러갔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본 사람들이 흉내를 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를 의지하여”라고 하면서 귀신들린 사람에게서 귀신을 쫓아내려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님을 의지하여 명령을 하니까 나오라고 했습니다.
이런 흉내를 내는 사람을 “돌아다니며 마술하는 어떤 유대인들”이라고 했습니다. 돌아다닌다고 하는 것은 근본이 없는 유대인이라는 뜻입니다. 유대인이라고는 하지만 뚜렷한 근거가 없고 하나님을 바르게 섬긴다거나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려고 하는 노력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냥 유대인이라는 이름만 가지고 행세만 하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마술을 한다는 것은 좀 다양하게 해석이 되는 말입니다. “유대인 무당”으로 번역하기도 하고(현대인의 성경), “귀신 축출가”로 번역을 하기도 하고(새번역 성경), “마귀를 쫓아낸다고” 하는 사람이라고 번역을 하기도 했습니다(공동번역 성경). 여기 마술이라고 번역된 말은 오늘날 우리들이 생각하는 그런 마술이 아니라 귀신을 쫓아내는 무당을 말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에는 귀신들의 역사가 많았고 많은 사람들이 귀신이 들려서 미친 사람처럼 지내거나 귀신으로 인해서 병이든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이런 귀신을 축출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귀신들린 많은 사람들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셨습니다. 그 때 사람들이 “그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 귀신을 쫓아낸다.”(눅11:15)고 했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어떻게 귀신이 귀신을 쫓아내겠느냐고 하셨습니다. 본문에 마술을 하는 사람들도 사실은 자신들이 귀신들인 사람이기 때문에 귀신을 쫓아낼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귀신을 좇아내는 것을 보고 흉내를 내려고 했습니다.
“시험 삼아”라고 했습니다. 안 될 줄을 알면서도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한번 시도해 봤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자신들이 여러 가지 방법을 동원하여 귀신을 쫓아내려고 노력을 했지만 잘 안됐는데 바울이라는 사람이 아주 쉽게 귀신을 쫓아내는 것을 보고 한번 따라해 봤다는 것입니다.
“유대의 한 제사장 스게와의 일곱 아들도 이 일을 행하더니”라고 했습니다. 유대교의 한 제사장 스게와가 누구인지 잘 모릅니다. 진짜 제사장이었는지 가짜로 제사장이라고 했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제사장이라고 하면서 예루살렘 성전에서 먼 에베소에 와서 사는 것으로 보아서 진짜 제사장은 아닌 것 같아 보입니다. 그냥 자기들 스스로 제사장 집안이었다고 말하고 다니는 것 같습니다.
이 제사장에게 일곱 아들이 있었는데 이 아들들이 근본 없이 떠돌아다니는 마술사들처럼 예수님의 이름을 빙자하고 바울의 이름을 빙자해서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려고 했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잘난 척하기 위해서 제사장으로서 해서는 안 될 일들을 행하고 있습니다.
칼빈은 본문을 주석하면서 이들의 잘못을 두 가지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바울의 가르침이나 믿음에 대하여 아는 것이 전혀 없었는데도 그리스도의 이름을 마치 마술의 주문처럼 악용했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말로는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더 나아가서 바울이 전파하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명령을 한다고 했지만 그 예수님이 누구인지 바울이 전파하는 복음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그냥 주문으로만 그 이름을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이름을 주문처럼 악용한 것이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의 부르심이 없었는데도 불구하고 사람이 주관하도록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을 자기들의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적을 행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것이고 사람들이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자기 마음대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이적을 행하려고 한 것이 잘못이라고 했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도 이런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돌아다니며 마술을 하는” 사람과 같은 사람들이 교회 안에도 있습니다. 오늘날 돌아다닌다는 것은 신학의 근본이 없는 사람을 말합니다. 어느 날은 순복음의 오순절 신학을 따르고 어느 날은 감리교의 알미니안 신학을 따르고 어느 날은 칼빈주의 신학을 따르고 어느 날은 자유주의 신학을 따르고 어느 날은 개혁주의 신학을 따릅니다.
근본이 없이 자기 이익을 따라서 여기저기 기웃거리는 목회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옛날에는 우리 고신 하면 확실하게 칼빈주의를 따르는 개혁파들이었습니다. 오늘날에는 그런 색깔이 뚜렷하지 않고 희미한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심지어 스스로 순복음 장로교라고 자칭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이 많이 모이고 재산이 많아지고 교회가 외형적으로 성장하기만 하면 그것이 성경적인지 그것이 하나님의 뜻인지 살펴보려고 하지 않고 무조건 따르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마술을 하는 사람들도 오늘날 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사람들의 눈을 속이고 무당들처럼 이상한 짓을 하는 이단 거짓 선생들이 교회 안에도 많이 침투해 있습니다. 시험 삼아 그냥 한번 해 보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한번 되든지 말든지 해 보는 그런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런 거짓 선생 이단의 무리들을 향하여 “너희는 누구냐”라고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말을 하기 위해서는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라고 사탄이 말한 것처럼 우리도 예수님에 관하여 바울이 전하는 복음에 관하야 확실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일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반복하여 살펴보고 있는 것은 이런 확신을 가지고 바른 신앙생활을 하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을 잘 모르고 바울이 전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잘 모르고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본문 15-16절에 “악귀가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 하며 악귀 들린 사람이 그들에게 뛰어올라 눌러 이기니 그들이 상하여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하는지라”라고 했습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 편에서 있거나 사탄의 편에 서 있다는 것을 서론에서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창조해주시고 우주 만물을 주신 하나님을 따르지 않고 하나님을 배반하고 떠난 사탄을 따르는 것을 제일 싫어하십니다. 사탄이 자신의 졸개들인 악한 귀신들을 동원해서 인간들을 유혹하여서 하나님을 떠나게 하고 자신들의 뒤를 따르게 하려고 온갖 방법을 다 동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 민족을 애굽에서 끌어내서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살게 하셨습니다. 그들을 통하여 사탄의 권세에서 구원할 그리스도를 오시게 하기 위해서 특별한 민족을 만드셨습니다.
이스라엘백성을 출애굽하게 하시고 광야에서 훈련을 시킨 다음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기 이전에 특별히 당부한 말씀들이 신명기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1.너희 중에 선지자나 꿈 꾸는 자가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네게 보이고 2.그가 네게 말한 그 이적과 기사가 이루어지고 너희가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우리가 따라 섬기자고 말할지라도 3.너는 그 선지자나 꿈 꾸는 자의 말을 청종하지 말라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10.그는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에게서 너를 꾀어 떠나게 하려 한 자이니 너는 돌로 쳐죽이라”(신13:1-10)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하시면서 가나안 땅에 사는 원주민들을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모두 다 죽이라고 하셨습니다. 그 이유는 가나안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우상숭배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이 하나님만 섬기고 따라야 하는데 이방인들이 우상을 섬기는 것을 보면 따라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는 이방인들을 깨우쳐서 참 하나님을 섬기며 살게 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고 오히려 이방 잡신들을 따라갑니다. 사람들의 심리가 눈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우상들을 더 쉽게 믿습니다. 그 우상이 한낱 돌이나 나무기둥에 불과한 것인데도 이상하게 그것들을 섬깁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우상숭배를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하였고 심지어 제사장이라고 하는 사람들까지도 이런 무당 같은 짓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로 끝난 것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는 교회에까지도 이런 무당 같은 이상한 신앙이 들어왔습니다.
이런 무당 신앙이 하나님 나라를 망신시키는 아주 나쁜 신앙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복음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되고 천국백성이 되는 것인데 이것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무당들이나 따라하는 잘못된 신앙 때문에 교회가 엉뚱한 길로 가고 있습니다.
교회안의 진실한 성도들도 자신도 모르게 무당들처럼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십자가 형상이나 다른 어떤 귀중품들이 나를 지켜준다고 생각하고 지니고 다니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것은 바른 신앙이 아니고 무속신앙입니다.
사도신경을 고백할 때 무당이 주문 외우는 것처럼 외우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사도신경은 주문이 아닙니다. 그 내용을 바르게 이해하고 그렇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다행히 우리교회는 사도신경을 특별히 공부를 했고 해설을 한 책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한 사람도 그 냉용도 모른 채 주문처럼 외우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찬송가를 부를 때도 그냥 무당 주문 외우듯이 부르는 사람도 있습니다. 가끔 오래된 성도들이 잘 아는 찬송가를 부르지 왜 새로운 노래들을 부르는가라고 불평을 하기도 합니다. 옛날 잘 아는 찬송을 그냥 의미도 모르고 노래 부르듯이 부르자고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노래이지 찬송이 아닙니다. 그 때 상황에 맞는 노래를 의미를 알고 부르며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부르는 것이 찬송입니다.
오늘 본문에도 보니까 마술 즉 무당 짓을 하는 유대인들이 악귀에게 망신을 당하고 있습니다. 예수님 이름으로 귀신을 나가라고 하는데 그 말을 하는 사람들이 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이 아니더라는 것입니다. 귀신이 모르는 것이 없습니다. 귀신이 무당 유대인을 보니까 예수님도 모르면서 바울이 전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도 모르면서 예수님 이름만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런 무당 같은 유대인에게 “내가 예수도 알고 바울도 알거니와 너희는 누구냐”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누구인지도 모르면서 복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말로만 예수님 이름을 대는 사람에게 사탄이 너는 누구냐고 묻습니다.
그러고 나서 귀신 들린 사람이 무당 짓을 하는 유대인 제사장 아들들에게 달려들어 모두 때려 눕혔습니다. 그들은 상처를 입고 벗은 몸으로 그 집에서 도망쳐 나갔다고 했습니다. 사탄에게 굴복을 당하고 만 것입니다.
오늘날 무당 같은 짓을 하는 이단이나 거짓 선생이 지도하고 있는 교회들이 부흥을 하고 성장을 하여 많은 사람들이 모입니다. 그들이 우리 개혁주의 교회를 비웃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들을 비웃습니다. 그들이 승리한 것처럼 보이지만 웃는 것은 하나님아 아니라 사탄입니다. 하나님 편에서 승리한 것이 아니라 사탄 편에서 승리한 것입니다. 사탄에게 농락을 당하고 성도들을 사탄의 소굴로 끌어넣은 위험한 짓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모르고 예수님의 복음도 모르는 사람들이 예수님 믿는척하고 하나님의 능력을 받은 척하고 거짓으로 행하다가 주님 오실 때 아주 엄한 벌을 받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상 숭배는 하나님께서 가장 싫어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모르면서 복음도 모르면서 무당처럼 행하는 것을 싫어하십니다. 바른 믿음을 가지지 못하고 교회에 다니던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도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너희는 누구냐?”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실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복음을 바로 알고 믿는 것이 너무나 귀한 것입니다. 이 귀한 믿음 이 위대한 믿음을 가졌다는 자부심을 가지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