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7. 8.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213)

  본문 : 행 17:19-23

  제목 :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19.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20.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 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21.모든 아덴 사람과 거기서 나그네 된 외국인들이 가장 새로운 것을 말하고 듣는 것 이외에는 달리 시간을 쓰지 않음이더라 22.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3.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

 

  지난주에 살펴 본대로 아덴이라고 하는 도시는 아주 특별한 도시입니다. 그 아덴 사람들은 종교심이 특출하여 가는 곳마다 우상을 섬기고 있었고 사람을 만나는 것보다 우상을 만나는 것이 더 쉽다는 말이 나올 정도로 우상이 많은 도시였습니다. 아덴은 종교심만 특출한 것이 아니라 인간의 삶과 행복을 깊이 있게 연구하던 철학자들도 많은 도시였습니다. 지금도 사람들이 기억하는 유명한 철학의 학파들이 있었던 유명한 철학의 도시였습니다.

 

  그곳 사람들의 공통점은 어떻게 하든지 인생을 행복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종교인들은 이런저런 우상을 만들어서 그 우상을 섬김으로서 행복을 찾으려고 했습니다. 철학자들은 이런저런 삶의 원리들을 만들어서 행복을 추구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우상이나 철학이 진정한 행복을 가져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늘 새로운 것을 찾아서 다녔습니다. 새로운 종교를 만들어보고 새로운 철학을 만들어보고 또 새로운 것이 없는가를 살폈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바울과의 만남은 아주 특별한 만남이었습니다. 그동안 그들이 섬겼던 우상과는 다른 하나님을 전했고 그들이 연구했던 철학과는 다른 이야기를 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요즘 사람들은 이런 것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인생이 무엇인지, 인생이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어떻게 살아야 바르고 행복한 삶을 사는 것인지에 대해서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냥 오늘 하루 잘 먹고 별일 없이 잘 살면 그만이고 안 아프고 평안하면 그만입니다. 늙어서 죽으면 그만이고 늙기 전에 병들기 전에 잘 먹고 여기저기 여행이나 다니면서 재미있는 시간을 보내면 그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사람들과 아주 다른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인생의 의미도 알고 복음의 진리도 알고 우리가 어디로 가고 있는가도 아는 사람들입니다. 혹시 잘 모르는 분들이 계시면 성경을 많이 읽으시고 설교를 잘 들으시고 우리 인생에 꼭 필요한 것들을 알고 누리면서 사시기를 바랍니다.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본문 19절에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아덴 사람들이 사도바울을 붙잡아서 아레오바고로 끌고 갑니다. 아레오바고는 그리스의 수도 아덴에 있는 고등 재판소였습니다. 재판소라고 해서 건물이 있는 것은 아니고 산 위에 공설운동장처럼 계단으로 좌석을 만들고 원고 피고를 중앙에 세우고 재판관이 재판을 하는 곳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곳은 재판만 하는 곳이 아니라 어떤 논쟁거리가 있을 때 거기 모여서 공식적으로 토론하는 장소였습니다. 만약에 아레오바고가 아닌 다른 장소에서 사람들을 모아놓고 연설을 하는 것은 불법이었고 잡혀가서 사형을 당하게 되어있었습니다.

 

  아덴 사람들이 사도바울을 아레오바고로 데리고 간 것은 바울이 잘못한 것이 있어서 재판을 하려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이 알고 있는 것을 공개적인 장소에서 공적으로 토론을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바울이 단순히 말쟁이라서 말로만 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뭔가는 있는 것 같아서 공식적으로 한번 알아보기 위함이었습니다.

 

  지금의 교회는 또 다른 아레오바고라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을 재판하여 죽이고 살리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만왕의 왕이시며 예수님께서 최후의 심판을 하는 재판장이심을 알리는 곳입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죄인이라고 하시고 어떤 사람을 의인이라고 하시는지를 알려주는 곳입니다.

 

  또 교회는 목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게 하시고 성도들이 그 말씀을 듣고 진리를 깨닫고 참된 행복의 길로 가게 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하는 말에 무조건 아멘하지 마시고 과연 그런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것이 성경적인가 이것이 하나님의 뜻인가를 곰곰이 생각해 보시고 진리를 바로 알고 확신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그저 세상의 지식이나 배우는 곳이라면 굳이 교회에 올 필요가 없습니다. 요즘은 네이버에 물어보면 무엇이든지 알 수 있습니다. 세상사는 이야기를 해주는 사람은 여기저기 많이 있습니다. 교회가 그저 세상에서 복이나 받고 잘 살게 하는 곳이라면 꼭 교회에 올 필요가 없습니다. 지독하게 못살 때는 교회에 오면 좀 나은 삶을 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요즘같이 잘 살게 된 세상에서는 교회에 오면 오히려 가난해집니다.

 

  교회는 우리가 얼마나 흉악한 죄인인가를 알려주고 그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는 곳입니다. 죄의 형벌을 받게 하고 죄의 대가를 치르게 하고 의로운 사람이 되게 해 주는 곳입니다. 더 정확하게 말씀 드리면 어떻게 죄를 용서 받는가를 알려주는 곳입니다. 나의 죄 대신 죽어주신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해주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나의 흉악한 죄가 깨끗해진다는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곳입니다. 여러분을 교회로 인도하려고 애를 쓰는 것은 여기 구원의 길이 있기 때문입니다. 유일한 길 오직 한길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고 의로운 사람이 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 여기에 있기 때문입니다.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19-20절을 다시 한 번 읽어 드리겠습니다. "그를 붙들어 아레오바고로 가며 말하기를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 네가 어떤 이상한 것을 우리 귀에 들려주니 그 무슨 뜻인지 알고자 하노라 하니"

 

  "네가 말하는 이 새로운 가르침"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가르치는 교훈 즉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우상숭배자들이 보기에 전혀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그들이 지금까지 알고 따랐던 것들과는 전혀 다른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동안 우리가 믿고 따랐던 그런 신을 섬기고 따르는 것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사탄과 그 졸개 귀신을 따르는 것과 참 신이신 우리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제가 자주 말씀을 드리는 것이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이 복음을 바르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은 기독교를 불교나 유교나 무속신앙과 비슷하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는 그런 저급한 종교들과는 전혀 다릅니다. 기독교는 사람들 편에서 노력하여 원하는 것을 얻는 그런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피조물인 인간이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사람들이 모인 곳이 교회입니다.

 

  “이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우리가 알 수 있겠느냐”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전하는 복음 즉 그들이 보기에 새로운 것에 대해서 호기심이 많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그 새로운 가르침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알게 해 달라고 합니다.

 

  아덴 사람들은 그동안 많은 신화들을 만들어서 이런저런 신들을 섬겨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게 말이 신이지 다 거짓이고 헛된 것이었습니다. 이상한 돌탑을 세워놓고 당신이 신이라고 하면 그 돌탑이 신이 됩니까? 큰 돌로 그럴듯한 형상을 만들어서 세운다고 해서 그것이 신이 됩니까? 나무가 오래됐다고 그 나무에 천번만번 절을 한다고 그것이 인생에게 무슨 도움을 줄 수 있습니까? 그래서 또 이런 신을 만들고 또 저런 신을 만들고 온 도시가 우상이 가득한 도시가 된 것입니다.

 

  아덴 사람들은 이러저런 철학을 만들어서 이것이 참된 인생이다 저것이 참된 행복이라고 하면서 그 철학을 따라 살아 보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법칙을 만들어 놓는다고 해도 타락한 인생들이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사는 인생들이 그런 법을 따라 살수가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법이 있으면 뭐합니까? 아무리 좋은 철학이 있으면 뭐합니까? 타락한 인생이 그 좋은 법이나 철학을 따라 살 수가 없는데 좋은 것이 있으면 무슨 소용입니까? 그래서 이런 철학을 만들고 안 되니까 또 저런 철학을 만들어서 이런 저런 철학의 학파들이 많이 생긴 도시가 되었습니다.

 

  그래도 아덴 사람들은 아주 특별한 사람들입니다. 인간 편에서 뭔가를 알아보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인생이 이런저런 고통을 당하고 살면서도 인생이 하루하루 늙어가고 병들어가고 허무하게 죽어가면서도 그냥 그런 것이려니 하고 체념하고 사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종교 저런 종교를 만들어서 나름대로 신을 찾아 섬기려고 노력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이런저런 철학을 만들어서 인간답게 살아보려고 노력을 했던 사람들입니다.

 

  지금 알고 행하고 있는 것들이 뭔가 부족하고 완전하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정말로 바른 참된 그 무엇을 찾으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바울에게 바울이 전하는 그 새로운 것에 대해서 호기심을 가지고 자세하게 설명을 해달라고 하는 것입니다.

 

바울이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우리 인생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이제 다음시간부터 우리도 배우게 되겠지만 죽 설명을 합니다.

 

  불행하게도 그런 설명을 듣는다고 복음을 이해하고 예수님을 믿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게 설명을 해도 믿고 따르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여기 모인 우리들은 그 극소수에 해당이 되는 사람들입니다. 교회가 무엇인지 교회가 전하는 복음이 무엇인지를 알고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이 우주만물의 주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찾아오셔서 인생이 무엇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바른 삶인지를 알려주셔서 그 가르침을 따라 사는 사람들이 모인 곳입니다.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죄가 그 하나님을 배반하고 사탄에게 속아서 우상을 섬기고 하나님께서 정해주신 법칙을 따라 살지 않은 것임을 압니다. 그 죄로 인하여 이 세상에서도 고통 속에 살고 또 영원한 형벌을 받을 사람들이라는 것을 압니다. 그 죄악에서 그 죄의 형벌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 믿음을 따라 사는 것이 참된 진리요 참된 행복의 길이라는 것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교회 다닌다고 해서 다 이런 진리를 바르게 알고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말씀을 들고 강단에 서서 설교를 하는 사람이라고 해서 다 이런 복음의 진리를 알고 따르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강단에 서서 아무 소용이 없는 자기 경험이나 자기 철학을 이야기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우상섬기는 것처럼 섬기는 것을 자랑스럽게 말하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성경의 핵심도 모르고 복음의 진리도 모르고 설교를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복음을 이야기 하는데 다른 복음을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을 믿고 따르자고 하는데 엉뚱한 행함의 길을 제시합니다. 전도를 하자고 외치는 데 사람들을 끌어 모으는 일은 열심히 하는데 바른 복음을 전하는 데는 별로 관심이 없습니다.

 

  참 희한한 것은 그렇게 엉터리 철학을 말하고 다른 복음을 전하고 하나님을 우상 숭배하는 사람처럼 섬기는 교회가 사람들은 엄청 많이 모인다는 것입니다. 복음도 없는데, 진리도 모르는데, 온갖 거짓이 난무하는 데 거기 사람들은 많고 돈은 많다는 것입니다. 그 엉터리 사람들이 박수를 받고 그 장사꾼이나 사기꾼 같은 사람들이 호화롭게 잘 산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사람들 틈에서 복음을 알고 따르는 사람이라는 것이 너무나 자랑스럽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렇게 알고 싶어 했던 구원의 진리를 우리는 아는 사람들입니다. 참 하나님 참 진리 세상에 가장 귀한 십자가의 복음을 바로 알고 믿는 엄청난 사람들이 바로 우리들입니다.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22-23절에 “바울이 아레오바고 가운데 서서 말하되 아덴 사람들아 너희를 보니 범사에 종교심이 많도다 내가 두루 다니며 너희가 위하는 것들을 보다가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고 새긴 단도 보았으니 그런즉 너희가 알지 못하고 위하는 그것을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리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아덴에 와서 그들의 도시를 살펴보고 또 그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들어보니까 아덴사람들의 마음에는 특별히 좋은 것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범사에 종교심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신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신을 찾으려고 하는 기특한 마음이 그들에게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는 인생을 바르게 행복하게 살아보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철학을 통하여 인간의 의미를 연구하고 어떻게 하든지 바르게 좀 더 행복하게 사는 길이 무엇인지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많음을 보았습니다.

 

  그런 좋은 마음을 칭찬하면서 그들의 원하는 것의 핵심을 이제부터 말해주겠다고 했습니다. 너희들이 갈망하는 것 너희들이 알고 싶어 하는 것을 알게 해주겠다고 했습니다. 그 내용을 다음 주부터 우리도 살펴보게 될 것입니다. 인생이 알아야 할 가장 소중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우리들 마음에도 세상 사람들이 가지지 못한 특별한 것이 있다는 것을 말씀드리고 오늘 설교를 마치겠습니다. 우리들에게도 바울이 말한 그 종교심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가지고 있는 종교심은 아덴 사람들이 가지고 있었던 종교심과는 아주 다른 특별한 것입니다.

 

  아덴 사람들은 그저 신이 있다고 믿고 그 신을 찾아 섬기려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런 종교심은 사실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도 하나님께서 만드신 피조물이기 때문에 그 마음에 하나님을 찾으려는 마음이 있습니다.

 

  세상 사람들이 겉으로 보기에는 아주 대단한 사람처럼 행동합니다. 돈을 많이 벌었기 때문에 그 돈을 자랑하고 그 돈이 모든 것을 다 해결해주는 것이라고 자랑하면서 삽니다. 권력이 지식이 최고라고 자랑하면서 삽니다. 그러나 홀로 있으면 외롭고 허무한 것이 인생입니다. 돈도 지식도 권력도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늙고 병들고 죽어가는 이 인생의 문제를 그 무엇으로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래서 괴롭습니다. 그 괴로움을 술로 마약으로 일시적인 쾌락으로 세상의 행복으로 잊으려고 하지만 그런 것으로 해결되지 않음을 압니다. 그래서 그 문제에 해답을 얻지 못한 사람들은 자살로 인생을 마감해버리려고 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가진 종교심은 세상 사람들이 가진 종교심과는 다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이 세상에 보내실 때 우리의 영혼에 어떤 특별한 것을 주셨다고 제가 자주 말씀을 드립니다. 우리는 태어날 때부터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특별한 사람 하나님께 선택을 받은 특별한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납니다. 저의 주장이 아니고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종교심은 참 신이신 우리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마음입니다. 복음의 진리를 깨닫고 알 수 있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시고 행하시는 일, 즉 하나님의 경륜은 비밀의 경륜이라고 했습니다. 신비한 비밀 미스터리한 비밀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그 비밀을 알 수 있는 마음을 주신 특별한 사람들만이 들을 수 있고 듣고 알 수 있고 알고 믿을 수 있는 아주 특별한 비밀입니다.

 

  그 비밀을 알 수 있는 특별한 종교심을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왜요? 우리가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특별한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아주 특별한 마음을 우리가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비밀의 경륜을 깨달을 수 있는 특별한 마음을 우리가 가지고 있습니다. 그게 저의 자부심이고 여러분의 자부심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인생이 알아야 할 최고의 지식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알고 믿고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많은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해도 알 수 없었던 복음의 진리를 우리는 아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특별한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지지 못하는 특별한 마음을 주시고 특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런 특별한 사람이 되었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이 가진 이 믿음이 얼마나 위대한지를 날마다 확인하시고 믿음을 더욱 굳게 하시기 바랍니다. 자랑스럽게 자부심을 가지고 위대한 믿을 가진 사람답게 사시기 바랍니다. 보람 있게 멋있게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