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5.2.6.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58)
본문 : 엡 4:5
제목 : 믿음도 하나이요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세상에 이런 일이"라는 텔레비전 프로가 있습니다.
세상에서 보기 드문 희한한 일들을 취재해서 보도하는 프로그램입니다.
몇 일전에 이 방송 프로그램에서 "목탁소리를 내는 소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이 소는 희한하게 입에서 목탁소리를 낸다는 것입니다.
실제로 보니까 소가 혀를 이렇게 돌리면서 목탁소리처럼 똑 똑 하는 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소는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입니다.
한쪽에 있는 위에다가 잔뜩 집어넣어 놓고 한가하면 조금씩 다시 꺼내서 먹는 것입니다.
아마 다시 꺼내 먹는 과정에서 좀 특이하게 혀가 돌아가면서 그런 소리를 내는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합니다.
그 목탁 소리를 내는 소에게 동생 소가 있었는데 그 동생 소도 똑 같이 목탁소리를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경꾼들이 많이 모여서 구경을 잘 했습니다.

그런데 더 희한한 것은 그 근방 절에서 스님이 이 소식을 듣고 찾아와서 그 소에게 법명을 하사하고 나중에는 소 두 마리를 다 절로 데리고 가서 스님으로 입적을 했다는 것입니다. 

요즘은 개나 돼지같은 짐승이나 도롱룡과 같은 미물들까지도 아주 사람의 목숨처럼 귀하게 취급을 받는 세상이긴 하지만 소를 사람처럼 스님으로 입적을 하는 것은 처음 보았습니다. 
더 가관인 것은 스님들과 불자들이라는 사람들이 소 앞에서 합장을 하고 인사를 하고 성불하소서 하고 기원을 하는 것입니다.

이 소가 전생에 스님이었다는 것입니다. 
어쩌다가 잘못되어서 이번에는 소로 태어났으니까 다음 세상에서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서 스님이 되어서 성불하여 부처가 되라는 것입니다.

전생을 믿고 그래서 소를 사람처럼 대우를 하고 다시 사람으로 태어날 수 있고 부처가 될 수 있다는 것은 다 그렇게 믿는 믿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신앙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자신들이 그렇게 믿는다고 하는데 누가 아니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런 것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는 온갖 종류의 미신들을 믿는 믿음들이 있습니다.
별별 것들을 다 자신의 신이라고 믿고 별별 짓들을 다 신앙의 행위라는 미명으로 자행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는 그 믿음에 대한 정의를 이렇게 내리고 있습니다.
히브리서 11:1절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일반적으로 말하는 믿음의 정의가 아니라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가지고 있는 믿음은 이 세상 사람들이 가진 믿음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모든 사람들이 아직은 이루어지지 않는 장래의 일들이 그렇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말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 사람들이 가진 믿음, 즉 마음으로 바라는 것들은 실상이 아니라 허상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내세에 다시 사람으로 태어나기를 바라거나 진리를 깨닫고 부처가 되기를 바라는 믿음은 실상이 없는 허상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한번도 그렇게 된 일도 없고 그렇게 되지도 않는 것을 그렇게 되기를 억지로 바라고 믿는 것입니다.

또 그들이 눈에 보이지 않는 전생을 믿는 것은 아무런 증거가 없는 허무맹랑한 이야기일 뿐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믿음은 다르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는 믿음은 확실한 증거가 있는 것들이요 실제로 존재하고 실제로 이루어질 것들을 믿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참된 믿음의 정의는 바라는 것들이 실제로 존재해야 하는 것이고 보이지는 않지만 확실한 증거들이 있는 것이어야 참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눈으로 보이지는 않지만 그 증거들이 너무나 확실한 그런 믿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아직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실지로 존재하는 세계가 확실이 있는 그런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모든 역사적 사실들이 먼저 살았던 아벨이나 노아나 아브라함이나 모세나... 이런 수많은 신앙의 선진들의 삶이 그 증거가 되는 믿음을 우리는 가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1.교회 안에도 다양한 믿음들이 있습니다.
영적인 연합, 교회의 통일성에 대해서 계속해서 말씀을 드리고 있습니다.
오늘은 "믿음도 하나이요"라는 대목입니다.
이 세상의 다양한 믿음들을 가지고 하나가 될 수는 없다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말일 것입니다.

당연히 교회 내에서 우리 성도들이 가진 믿음으로 하나가 되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교회 내에도 다양한 종류의 믿음들이 존재를 하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죽도록 충성을 하고 하나님의 축복도 많이 받고 하는 것을 신앙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 충성을 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축복을 받아 누리는 것도 참 좋은 신앙입니다.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충성도 할 줄 모르고 하나님의 축복도 받을 줄 모르는 것이 어떻게 신앙인이냐 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일전에 잘 아는 사장님 한 분이 저에게 이런 질문을 해 왔습니다.
목사님 교회에 다니는 사람은 모두 소득의 십 분의 일을 바친다는데 정말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렇다고 하니까 대단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도 하는 말이 자기 친구들도 교회에 다니는데 다 십일조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친구들이 모두 다 잘 되더라는 것입니다.
자기가 물어 놓고 자기가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를 바치는 신앙은 참으로 대단한 신앙입니다
믿음이 없이는 그 많은 돈을 바칠 수가 없습니다
바친 만큼 아니 그보다 더 많은 축복을 받는다는 신앙이 없고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신비주의적인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앙이란 좀 신비스럽고 좀 뭔가 기적적인 일들이 일어나야 신앙생활을 하는 것 같이 느끼는 사람들입니다.
그 사람들은 맹숭맹숭하고 보편적이면 신앙이 재미가 없어 합니다.
하다못해 방언이라도 해야 속이 풀리는 것입니다. 

이런 신비적인 신앙을 가진 사람들도 그 열심이 대단합니다.
열심히 기도하고 열심히 신앙생활을 잘 합니다.
이런 신비주의적인 신앙도 사실 참 좋은 신앙입니다.
맨날 긴가민가해서 제대로 교회에도 안 나오는 사람들보다는 앗사라비아라도 하고 랄랄라 땃땃따를 해서라도 자기가 가진 믿음에 대해서 확신을 갖는 것 참 좋은 일일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할 수 있다 신앙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라고 하면서 기도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살고 또 성공을 해서 잘 삽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데 열등감을 가지고 기죽어서 살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편이고 하나님께서 나를 도와주시는데 우리가 뭘 두려워하고 자신없게 살고 할 필요가 무엇이겠습니까

어떤 사람은 도덕적이고 양심적인 삶을 제일로 하는 신앙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신앙인이라고 하면서 도덕적으로 부패하고 남에게 손가락질이나 받으면서 살아서야 되겠습니까
좋은 일 선한 일 많이 하면서 자선사업도 많이 하고 불우이웃돕기도 많이 하고 그렇게 살아야 신앙인입니다.

어떤 사람은 율법을 잘 지키고 종교적 열심을 내는 것을 신앙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율법을 잘 지키는 것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주일을 지키고 예배에 꼭꼭 참석하고 절기나 행사들에 열심히 참석을 하는 것은 참 좋은 일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이런 다양한 믿음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각각의 믿음들은 나름대로 좋은 것들입니다.
때로는 그 신앙에만 너무 집착하고 다른 신앙을 인정하지 않는 것 때문에 문제가 되기는 하지만 그것 자체들이 나쁜 것은 아닐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믿음들은 우리를 하나로 만들기보다는 오히려 여러 갈래로 분열시키는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러므로 믿음은 이런 것들을 초월하는 어떤 것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여러 가지의 신앙들을 초월하고 능가하는 믿음 우리 모두를 하나가 되게하는 참된 믿음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2.본문이 말하는 믿음은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이 의미하고 있는 믿음이란 우리가 구원에 이르게 하는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종교생활을 하고 선행을 하고 행복하게 살고 하는 그런 목적을 가진 신앙이 아니라 인생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믿음 그 믿음이 참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일전에 제가 믿음을 크게 믿음 A와 믿음 B 이 두 가지로 나누어서 말씀을 드린 일이 있습니다.
A라는 믿음은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이라고 하고
B라는 믿음은 믿음의 사람이 믿음으로 사는 삶 즉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라고 정리를 해서 말씀을 드렸습니다.

믿음에는 믿음A. 즉 믿음의 사람이 되게 하는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 되는 것은 우리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믿음의 사람이 되어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에 속한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말을 잘 못 생각하여 마치 우리가 믿음을 가지고 우리가 노력을 해야 구원을 받는 것처럼 생각하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성경말씀을 잘 살펴보면 구원에 이르는 믿음 즉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믿음은 전적으로 하나님 편에서 성령님의 역사로 되어지는 것이지 전혀 나의 행동과 관계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내가 한 것이 아니라 성부하나님께서 창세 전에 이미 우리를 선택해 주셨고 성자 예수님께서 선택받은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해 주셨고 성령하나님께서 그 구원을 우리에게 적용시켜 주심으로 우리가 이런 신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우리의 신분을 사탄의 노예 죽음의 노예 영원한 지옥에서 형벌을 받을 진노의 대상에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입니다.
그 신분의 변화를 주신 것을 우리의 노력이 아닌 하나님의 은혜로 되었다는 것을 말할 때 믿음으로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믿음 B, 즉 믿음생활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사람이 그 신분에 합당한 생활을 하게 되는데 그것을 또 하나의 믿음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앞서서 말씀을 드린 교회 내의 여러 가지 믿음들은 이 믿음 B에 속하는 믿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구원을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 세상을 살면서 누리는 축복들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고 있는 믿음은 믿음 A, 즉 믿음의 사람이 되어서 구원에 이르게 되는 믿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축복을 받고 잘 살고 우리의 노력으로 바르게 사는 것은 참으로 좋은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참으로 중요한 문제가 있는데 그것은 이 세상을 떠날 때 우리의 운명에 관한 것입니다.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참된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이 영원한 운명을 결정짓는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평생 지은 죄들을 용서 받고 영원한 생명을 얻고 영원원한 하나님의 나라 천국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는 것이 너무나 중요한 것이기 때문에 그 문제를 해결하는 믿음이 참된 믿음이라는 것입니다.

또 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중요한 것은 이 믿음은 우리가 스스로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의 선물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은 크고 작은 것이 없습니다 좋고 나쁜 것이 없습니다.
모두가 하나님께서 은혜의 선물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그 효력에 대해서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믿음으로 의의 기준으로 삼으셨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을 하나님께 받았느냐 영원한 의인입니다.
이 믿음을 받지 못했느냐 영원한 죄인일 뿐입니다. 

이 믿음이 우리 모두를 하나가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 믿음 앞에서면 우리 모두가 똑 같은 의인이요 하나님의 자녀요 영원한 천국 백성이 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가 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하나님께 은혜로 선물로 받아 소유한 사람들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이 많은 세상 사람들 중에 우리를 선택하시고 하나님의 자녀로 삼으시기 위해서 이 믿음을 선물로 주셨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 우리를 의인으로 인정하시기 위해 주신 믿음 영원한 나라에서 영생복락을 주시기 위해 주신 이 믿음을 소중히 여기시기 바랍니다.


3.오직 믿음으로!
믿음에는 헛된 믿음도 있고 조금은 덜 중요한 믿음도 있다는 것을 살펴보았습니다.
그리고 구원에 이르는 이 믿음이 가장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을 드렸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헛된 믿음을 가지고 있고 또 교회 내에서도 여러 가지의 믿음들 때문에 이 중요한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 홀대를 받고 있는 실정입니다.
우리는 이 소중한 참된 믿음을 귀하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1:16-17절에 복음을 소개하면서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라고 했고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라고 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믿음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때 그 중에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믿음을 말합니다.
나의 죄를 대신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어 주신 그 보혈의 공로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구원을 받고 의인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박국 시대에도 사람들은 자기의 의를 내세우며 율법을 지킴으로 의를 이루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말씀을 하시기를 "그러나 의인은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이 율법을 행한다고 해도 스스로는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의지하고 믿는 믿음만이 의로운 사람이라 칭함을 받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 시대에도 사람들은 율법을 행하고 선을 행하여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렇게 노력을 한다고 해도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는 것입니다.
오직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만이 하나님 보시기에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종교개혁 시대에도 사람들은 자기의 선행이나 고행이나 율법을 행함으로 인간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된다고 생각을 하고 수도원에서 수도를 하고 온갖 종교적인 행위로 의를 이루어 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이 되기는커녕 오히려 위선적이고 가식적인 행위가 만연하고 속은 썩을 대로 썩어졌을 때 루터나 칼빈같은 사람들이 로마서의 이신칭의의 진리를 깨닫고 "오직 믿음"이라고 외치면서 교회를 개혁했던 것입니다.

스펄전 목사님이 활동하던 시대에도 사람들은 우리 인간들이 얼마나 나약한 존재인가를 잊어버리고 나 자신이 십자가의 형벌을 받아야 하는 죄인임을 잊어버리고 스스로 의인이 되고자 했으며 십자가를 믿는 믿음을 무시했기 때문에 교회가 힘을 잃고 내리막으로 달려가기 시작을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한국교회가 이 믿음을 잊어버렸습니다.
기복신앙, 성공 신앙, 신비주의 신앙, 사회 참여, 이런 것들 때문에 정작 가져야 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이 참된 믿음을 잊어버렸거나 소홀히 대하게 되고 만 것입니다. 

이제 우리 한국교회도 다시 한번 교회의 개혁을 단행해야만 하는 그런 시점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오직 믿음으로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만 의롭게 된다는 이 참된 믿음을 모두가 가질 때 우리가 모두 하나가 될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 세상에 사는 많은 사람들이 헛된 믿음을 가지고 오히려 멸망을 자초하고 있습니다.
교회 내에서까지도 여러 가지의 믿음들 때문에 참된 믿음을 잊어버리고 엉뚱한 길로 가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러한 때에 저와 여러분들이 이 참된 믿음에 대해서 듣게 된 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히 우리를 사랑하셔서 이런 진리를 알게 해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이 참된 믿음을 가지고 있으면서 그냥 잠잠히 있어야 되겠습니까
오직 믿음이라고 외쳐야 되지 않겠습니까
잘못된 길로 가고 있는 이 한국교회를 향하여 오직 믿음이라고 다시 한번 외칠 수 있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오직 믿음 할렐루야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
이 믿음만이 우리를 구원하는 참된 믿음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