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2. 28. 송년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절기0307)
본문 : 눅 7:36-50
제목 : 이 여자를 보느냐.
“한 바리새인이 예수께 자기와 함께 잡수시기를 청하니 이에 바리새인의 집에 들어가 앉으셨을 때에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자가 있어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집에 앉아 계심을 알고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닦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 예수를 청한 바리새인이 그것을 보고 마음에 이르되 이 사람이 만일 선지자라면 자기를 만지는 이 여자가 누구며 어떠한 자 곧 죄인인 줄을 알았으리라 하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시몬아 내가 네게 이를 말이 있다 하시니 그가 이르되 선생님 말씀하소서 이르시되 빚 주는 사람에게 빚진 자가 둘이 있어 하나는 오백 데나리온을 졌고 하나는 오십 데나리온을 졌는데 갚을 것이 없으므로 둘 다 탕감하여 주었으니 둘 중에 누가 그를 더 사랑하겠느냐 시몬이 대답하여 이르되 내 생각에는 많이 탕감함을 받은 자니이다 이르시되 네 판단이 옳다 하시고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 너는 내게 입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말하노니 그의 많은 죄가 사하여졌도다 이는 그의 사랑함이 많음이라 사함을 받은 일이 적은 자는 적게 사랑하느니라 이에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 하시니 함께 앉아 있는 자들이 속으로 말하되 이가 누구이기에 죄도 사하는가 하더라 예수께서 여자에게 이르시되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 하시니라.”
오늘 본문 말씀에 대조적인 두 사람이 등장합니다.
한 사람은 바리새인인 시몬이라는 사람입니다.
또 한 사람은 이름도 언급하지 않은 한 여인입니다.
바리새인은 하나님을 잘 섬기고 하나님께서 주신 율법을 잘 지킨다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위선자라고 꾸짖으셨습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들이라고 자처했지만 사실 하나님의 뜻을 잘 모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자신들이 하나님 앞에 죄인이라는 사실도 몰랐고 하나님께서 약속하신대로 보내주신 메시야이신 예수님도 몰라봤습니다.
한 여인은 바리새인과 여러모로 반대되는 사람이었습니다.
한 여인은 사람들이 볼 때 정말로 형편이 없는 여인이었습니다.
“그 동네에 죄를 지은 한 여인이 있어”라고 표현을 했는데 당시의 이런 표현은 몸을 파는 창기들을 지칭할 때 주로 쓰는 용어이기 때문에 이 여인은 창기이거나 아주 나쁜 죄를 지은 여인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보통 초대를 받은 사람만 그 집에 들어갈 수 있지만 이 여인은 초대를 받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초대를 받지 않고 그 집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밥을 얻어먹는 거지들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여인은 창기와 같은 사람이고 거지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사람이 예수님을 대하는 태도는 엄청나게 달랐습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께서 들어오실 때 발 씻을 물도 주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께 입맞춤의 인사를 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이 여인은 예수님의 발에 입을 맞추었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값비싼 향유를 예수님 발에다가 부었다고 했습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을 믿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율법을 잘 지킨다고 생각하고 그래서 자신이 의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그런 바리새인을 꾸짖고 있습니다.
아주 기본 예의도 갖추지 않는 교만한 사람으로 꾸짖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비록 세상 사람들에게는 손가락질을 받았지만 예수님께는 칭찬을 받았습니다.
비록 율법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하나님을 어떻게 섬기는 것인지도 잘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죄를 많이 지어서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았지만 그녀는 자신이 죄인인 줄 알았고 구주가 필요한 줄을 알았습니다.
흉악한 죄인까지 용서해주시는 그 사랑과 은혜를 안 여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대하는 그녀의 모습에서 참된 믿음을 보았기 때문에 예수님을 그를 칭찬을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녀에게 죄 사함과 구원과 평안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나는 이 두 사람 중에 어떤 사람에게 가까운 사람일까요?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라고 여기다가 책망을 받은 바리새인 시몬에게 가까운 사람인가요?
죄 사함 받은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지를 알고 예수님 앞에 무릎을 꿇은 이 여인에 가까운 사람인가요?
오늘은 2013년도 마지막 주일입니다.
마지막 주일 예배를 이렇게 드리고 있습니다.
이 뜻 깊은 시간에 이 두 사람과 나의 모습을 비교해 보면서 한 해를 마무리 하는 시간을 가져보려고 합니다.
1.이 여인은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신 사람입니다.
본문 38절에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라고 했습니다.
44절에는 “그 여자를 돌아보시며 시몬에게 이르시되 이 여자를 보느냐 내가 네 집에 들어올 때 너는 내게 발 씻을 물도 주지 아니하였으되 이 여자는 눈물로 내 발을 적시고 그 머리털로 닦았으며”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지역에서는 손님을 초청하고 그 손님이 오면 가장 먼저 발 씻을 물을 주는 것이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샌들을 신고 다녀서 발에 먼지가 많았기 때문에 발을 씻어야 했습니다.
그래서 발을 씻어주든지 발 씻을 물을 주는 것이 예의였습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을 초청해놓고 예수님께 가장 기본적인 예의도 지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어쩌다가 초청을 하기는 했는데 별로 반갑게 대하지도 않았고 대접을 할 생각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하기야 당시의 바리새인으로서 예수님을 집에 초청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결심을 한 것입니다.
당시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죄인으로 취급을 했고 어떻게 하면 흠을 잡아서 예수님을 죽일까만 연구하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 바리새인 중의 한 사람인 시몬이 예수님을 집으로 초청을 했다는 것은 대단한 일일 것입니다.
역시 바리새인이고 율법사인 니고데모도 예수님을 찾아 온 일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니고데모는 자신의 신분을 감추고 몰래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밤중에 예수님을 찾아 왔다고 했습니다.
다른 바리새인들이 알면 비난을 받을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도 시몬은 공개적으로 예수님을 자기 집에서 식사를 같이하자고 초대를 한 것입니다.
여러 가지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치심도 대단하다고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들도 다 고치시고 기적적인 일도 많이 하신다는 소식도 들었을 것입니다.
거기에 대한 호기심도 있었을 것이고 그 호기심에서 예수님을 초청했을 것입니다.
또 이런저런 질문을 하고 무슨 하자가 있으면 고발을 하기 위해서 초청을 했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반가운 손님으로 대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아주 기본적으로 초청받은 사람이라면 누구에게나 행하던 것마저도 행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초대하기는 했지만 반가운 손님도 아니었고 대접을 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고 시험 삼아서 호기심을 채우기 위해서 그냥 한번 불러 본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자기 집에 초청을 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당시의 신분으로 예수님을 초청할 엄두도 못 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로 뒤 따라오다가 기회를 잡아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반갑고 기쁘든지 예수님 발 앞에 엎드려서 눈물을 흘리고 그 눈물이 예수님 발에 떨어졌고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을 발을 씻게 된 것입니다.
어쨌거나 이 두 사람은 다 예수님에 대해서 소문을 들었든지 은혜를 입었든지 예수님을 만나고 싶었던 사람입니다.
두 사람 다 예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은혜를 입었고 한 사람은 책망만 받았을 뿐입니다.
한 사람은 최선을 다해서 예의를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 더 큰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한 사람은 아주 기본적인 예의도 표현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책망만 들었을 뿐입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예수님을 알고 예수님을 통하여 진리의 말씀을 알고 그 은혜를 받기 위해서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다 은혜를 받는 것은 아닙니다.
교회 안에도 그냥 왔다가 갔다가 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성도가 행하여야 할 기본적인 행동도 하지 못하고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예수님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의 몸 된 교회를 별로 사랑하지 않습니다.
교회가 어떻게 운영이 되는지 교회의 일원이 되면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겉으로 보기에는 멀쩡한데 바리새인처럼 자신이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데 기본적인 의무도 행하지 않는 사람들이 교회에 많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교회에 올 때마다 이 여인처럼 발 씻을 물을 주는 기본적인 행동뿐만 아니라 눈물로 예수님의 발에 적시고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아야 하는 그런 사람입니다.
사실 우리는 이방인이었고 예수님을 믿을만한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특별하신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흉악한 죄를 지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은혜를 생각해서 늘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셔도 모자라는 사람들입니다.
형식적으로 교회에 다니지 않았는지
교만하게 교회에 다니지 않았는지
그 은혜를 잊어버리고 교회만 왔다가 갔다가 하지 않았는지 자신을 한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2.이 여인은 예수님의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않는 사람입니다.
본문 45절 말씀에 “너는 내게 입 맞추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내가 들어올 때로부터 내 발에 입 맞추기를 그치지 아니하였으며”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지역에서는 손님을 초청하고 그 손님이 오면 인사를 하는 것이 자연스러운 인사방법이었습니다.
서로 각자의 어깨에 손을 얹고서 앞으로 끌어당기면서 입을 맞춥니다. 오른쪽 뺨과 왼쪽 뺨을 번갈아가면서 입을 맞춥니다.
특별히 손님에게 애정과 존경을 표시하는 것이 입맞춤의 인사였습니다.
각별한 우정을 표시하고 안부를 묻고 진정으로 걱정해주는 그런 인사가 입맞춤의 인사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를 했으면서도 관습적으로 하는 인사도 하지 않았습니다.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고 존경하는 마음이 없었기 때문에 입 맞추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얼굴에 입을 맞추는 대신 예수님의 발에다가 입맞춤을 했습니다.
발에다가 입을 맞추는 것은 가장 헌신적인 복종과 존경을 표하는 행동이라고 했습니다.
이 여인은 그냥 한번만 발에다가 입을 맞춘 것이 아니라 계속해서 발에 입을 맞추고 있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이렇게 교회에 오는 것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존경과 복종을 표현하는 가장 소중한 행위입니다.
하나님께도 정성을 다해서 경배를 드려야 하고
성도 간에도 거룩한 입맞춤으로 서로 인사를 나누고 교제를 해야 합니다.
이 예배가 우리가 교회에 오는 제일 큰 목적입니다.
이런 경배와 존경의 표시가 없이 교회에 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우리 교회는 특별히 이 예배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이 예배를 바르게 잘 드리는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오는 것을 예배드리는 것을 그냥 구경이나 하고 참관이나 하고 예배의 한 부분에 봉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 오는 모든 사람들이 이 예배에 참여해서 하나님께 존경을 표하고 하나님께 복종하겠다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목사나 장로나 예배에 수종을 드는 사람들이나 성도들이나 모두가 하나님께 경배를 드리는 일에 집중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이 예배의 의미를 바르게 안다면 예배를 대하는 태도가 바뀌어야 합니다.
예배가 형식적이거나 타성에 젖어버리면 안 됩니다.
그냥 마음도 없이 순서에 다라 피동적으로 움직이는 것은 바른 예배가 아닙니다.
전정으로 하나님을 존경하고 그 은혜 감사하고 감격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사랑을 표현하는 유일한 것이 이 예배입니다.
예배를 바르게 드리지 못하는 사람이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거짓말이거나 믿음이 무엇인지를 잘 모르는 사람입니다.
예배 시간에 지각하는 버릇은 빨리 고쳐야 합니다.
하나님께 존경을 표시하기 위해서 오는 사람들이 시간하나도 지키지 못한다면 그것은 큰 잘못입니다.
복잡한 시대에 교통체증도 생기고 또 이런 저런 복잡한 일이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잘 살펴보면 지각하는 사람은 습관적으로 지각을 합니다.
예배시간 20분전이나 30분전을 목표로 교회에 오면 별로 지각을 할 일이 없을 것입니다.
사람들과 사귀는 것도 약속시간에 늦는 사람과는 사귀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신실하지 못한 사람이 저지르는 실수이기 때문입니다.
늦게 오면 예배에 집중을 하지 못합니다.
준비도 안 되고 기도시간에 헌금하러 가고 화장실에 가고 전화 받으러 나가고 집중하지 못합니다.
미리 와서 몸과 마음을 준비해야 그런 일이 없습니다.
바리새인 시몬처럼 예수님께 문안 인사도 하지 않고 존경의 표시도 하지 않는 그런 자세로 교회에 오시면 안 됩니다.
이 여인처럼 늘 최고의 존경과 복종의 표시는 하지 못할망정 그래도 존경하는 마음을 담아서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서 예배를 드리려고 노력을 해야 할 것입니다.
새해에는 30분 전에 교회에 와야 된다고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안 되면 20분 전에라도 교회에 와야 한다는 다짐을 스스로 하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존경을 표하는 기본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새해부터는 성경읽기와 우리가 신앙생활을 하면서 기본적으로 해야 할 일들을 말씀 드리고 실천하도록 할 것입니다.
일찍 오셔서 기도도 하시고 성경도 읽으시면 정말 좋을 것입니다.
3.이 여인은 향유를 예수님의 발에 부은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46절에 “너는 내 머리에 감람유도 붓지 아니하였으되 그는 향유를 내 발에 부었느니라.”라고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 이스라엘 지역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기름이 “감람유” 즉 “올리브기름”이었습니다.
이 올리브기름이 요즘처럼 요리에도 사용을 했지만 머리에 바르는 향유로 상처에 바르는 약으로도 사용을 했다고 합니다.
당시에 사람들은 아주 특별한 손님이 아니라고 해도 손님이 오면 누구에게나 머리에 이 감람유를 발라주었다고 합니다.
뜨거운 태양 밑에서 걸어 다닌 사람의 머리에 기름을 발라주는 것은 좋은 일이었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손님이 오면 머리에 이 감람유를 발라주었다고 합니다.
그러나 바리새인 시몬은 누구에게나 발라주는 감람유도 예수님 머리에 발라주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예수님의 머리가 아닌 발에 그것도 흔한 감람유가 아닌 향유를 발라주었다는 것입니다.
향유를 담은 옥합이라고 했는데 이 옥합에 담긴 향유는 당시에 매우 귀하고 비싼 것이어서 재산으로 여기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옥합 속에 담겨 있는 향유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그릇의 목 부분을 깨뜨려야만 했습니다.
목을 깨고 사용한 옥합에 든 향유는 다시 사용할 수 없기 때문에 다 사용을 해 버려야 하는 것입니다.
감람유와 옥합은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머리와 발도 엄청난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조금 쓰고 다시 쓸 수 있는 것과 한번 쓰면 다시 쓸 수 없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커피 한잔도 대접을 하지 않았다고 한다면
한 사람은 재산의 가치가 있는 아주 소중한 것을 예수님께 바친 것입니다.
한 사람은 아주 거만하게 대했다고 한다면
한 사람은 아주 겸손하게 대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한 사람은 조금의 헌신도 없었다고 한다면
한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바쳤다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어떤 사람은 나의 것은 아주 작은 것도 희생하거나 헌신하지 않고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 모든 것을 희생하고 헌신하고 목숨까지 바치면서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리새인 시몬은 예수님을 집으로 초대해서 식사를 대접할 수 있는 것을 보면 제법 재산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는 아주 작은 대접도 하지 않았고 작은 존경심도 표시하지 않았고 작은 희생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여인은 그가 지은 죄나 사람들의 시선을 통해서 볼 때 정말로 형편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옥합에 든 향유 한통이 그가 가진 재선 전부일수도 있습니다.
그 옥합을 깨트려서 예수님의 발에 붓고 난 다음에는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모르는 여인일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 여인은 조금도 주저 없이 조금도 아까워하지 않고 예수님의 발에 그것을 깨뜨려서 부었습니다.
예수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고 위대함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자신의 죄가 사함을 받는 것이 너무나 귀한 것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그로 인해서 받는 평안이 너무나 귀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줄 수 없는 죄 사함이라는 귀한 것을 받았고
이 세상에서 그 무엇으로도 살 수 없는 평안함이라는 귀한 것을 받았고
이 세상에서 그 누구도 그 무엇으로도 받을 수 없는 구원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마음을 가진 이 여인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48절) 하셨습니다.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으니 평안히 가라”(50절) 라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아주 대조되는 두 사람을 비교해 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만났을 때의 행동이 아주 다른 두 사람을 비교해서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여인을 보느냐”라고 하시면서 이 여인을 본받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눈물로 머리카락으로 예수님의 발을 씻기고
예수님의 발에 입 맞추며 가장 소중한 것을 깨뜨려 예수님의 말에 부은 이 여인의 행동이 우리의 삶에도 나타나야 될 줄로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