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1. 24.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신경18)
본문 : 요 14:16-20
제목 : 나는 성령을 믿으며.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조금 있으면 세상은 다시 나를 보지 못할 것이로되 너희는 나를 보리니 이는 내가 살아 있고 너희도 살아 있겠음이라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나는 성령을 믿으며”
우리가 다 같이 교회에 다니고 있지만 사람에 따라서 신앙의 형태가 여러 가지로 나타납니다.
사람마다 좋아하는 것이 다르고 추구하는 것이 다르고 성격도 달라서 같은 신앙이지만 여러 가지 형태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성부하나님만 좋아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우주만물을 창조하시고 주인이 되시는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율법들을 잘 지키려고 노력을 하고 그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서 선하게 사는 것을 신앙의 제일로 여깁니다.
어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만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을 믿는 믿음을 최고로 여기며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따라 사랑하며 용서하며 사는 것을 좋아합니다.
어떤 사람은 성령하나님만 좋아하는 사람처럼 보입니다.
가슴이 뜨거워져야 하고 뭔가를 체험해야 하고 성령님의 은사를 삶속에 나타내면서 살기를 좋아합니다.
그런데 어느 한부분만을 좋아하고 따라서는 안 됩니다.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하나이시며 같은 목적을 가지시고 같은 뜻을 행하시고 같은 은혜를 우리에게 주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삼위하나님을 다 같이 사랑하고 섬기며 그 뜻을 따라야 합니다.
우리는 그동안 성부하나님과 성자예수님에 대해서 많이 배웠습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에 대해서 많이 배우고 어느 정도는 바르게 이해를 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령하나님의 역사에 대해서는 알기는 하지만 실제적으로 많이 따르지 못하고 사는 것 같습니다.
사실 성부 하나님의 은혜나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성령님이 아니시면 우리가 바르게 이해하지도 못하고 바르게 받지도 못하고 바르게 따르지도 못합니다.
성령하나님께서 그 은혜와 사랑을 우리에게 알게 하시고 적용시키시고 유지시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바르게 이해하고 성령님께서 우리의 마음에 어떻게 역사하시는가를 바르게 알고 따르게 될 때 우리의 신앙이 바른 신앙이 되고 굳건한 반석위에 세워진 믿음이 됩니다.
우리의 신앙고백 속에는 “나는 성령님을 믿으며.”라는 간단한 한 마디만 포함이 되어 있지만 이 한마디 속에 많은 뜻이 함축되어 있습니다.
성령님께서 하시는 일이 정말로 다양하시고 엄청나게 많으시기 때문입니다.
이번 사도신경 강해설교에서는 시간관계로 간단하게 아주 중요한 것만 말씀을 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성령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를 중요한 것만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을 떠나시면서 예수님 대신 보내주실 성령님에 대해서 설명하시는 부분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성령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살펴보겠습니다.
1.성령님은 예수님과 똑 같은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16절 말씀에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리니”라고 했습니다.
삼위하나님을 생각할 때 그저 인간적인 생각으로 이해를 하면 성부하나님이 가장 높으시고 가장 먼저 계신 분이시고 그 하나님이 성자 예수님을 나오게 하셨고 예수님이 그 다음 성령님을 나오게 하셨다고 생각하면 간단합니다.
그런데 그게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이 문제 때문에 오랜 세월동안 수많은 신학자들이 서로 이것이 옳다 저것이 옳다고 싸우다가 많은 사람들이 이단으로 정죄되기도 하는 피가 나는 싸움을 한 끝에 내린 결론이 그렇게 간단하게 설명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삼위 하나님이 각각 다른 위격을 가지고 계시면서 또 동일한 능력과 동일한 권능과 동일한 성품을 가지고 계시는 마치 한 몸과도 같다고 해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이라고 부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도 성부 하나님과 성자 예수님과 성령 하나님이 각각으로 존재하심을 볼 수 있습니다.
“내가”라고 하는 것은 성자 예수님께서 자신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아버지께 구하겠으니”에서 아버지는 성부 하나님을 일컫는 말입니다.
“또 다른 보혜사”는 성령님을 지칭하는 말입니다.
성령님은 또 다른 보혜사이십니다.
오늘 본문 뒤에 나오는 요한복음 14:26에는 보혜사를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이라고 했습니다.
보혜사(保惠師)라는 우리나라 말의 뜻은 보호하며 돕는다는 뜻입니다.
헬라어로 파라클레토스(παράκλητος)인데 부른다, 초청한다, 위로한다, 격려한다. 에서 온 말로 위안자, 보호자, 변호인, 대언자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곁에 오셔서 우리를 위로하시고 보호하시고 변호하시고 대언자가 되어주시기 때문에 이런 별명을 붙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령님을 보혜사라고 하시면서 그 앞에 “또 다른”이라는 말을 써서 “또 다른 보혜사”라고 했습니다.
여기 “또 다른”이라는 말은 좀 특별한 의미를 가진 말입니다.
어떤 다른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똑 같은 것 하나 더”라는 뜻을 가진 말입니다.
제가 가게에 가서 사과를 하나 샀습니다.
또 다른 과일 하나 더 살수도 있습니다.
감이나 배 하나를 더 달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에서 “또 다른”이라는 말은 똑 같은 것 하나 더 라는 말입니다.
사과를 사고 똑 같은 사과 하나 더 살 때 여기 “또 다른”이라는 말을 쓴다는 것입니다.
보혜사 성령님은 예수님과 똑 같은 하나님이시라는 말입니다.
성령님은 예수님과 똑 같은 하나님이신데 몸을 가지시지 않은 영이신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성령님을 인격체가 아닌 어떤 사물처럼 생각하기도 합니다.
성령님을 불과 같은 분이시라고 하니까 마치 불처럼 생각해 버립니다.
뜨거운 불처럼 몸을 뜨겁게 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성령님을 바람 같은 분이시라고 하니까 바람처럼 생각을 해버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바람을 불면서 성령을 받으라고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령님을 바람이라고 할 때 그 뜻은 성령님이 우리 눈으로 볼 수 없다는 뜻입니다.
바람이 불 때 그 바람은 볼 수 없지만 나뭇잎이 흔들거리는 것으로 바람이 부는 것을 아는 것처럼 성령님도 우리 눈으로 볼 수 없지만 그 하시는 일의 결과로 성령님의 역사를 안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은 여러 가지 별명을 가지셨습니다.
그런 별명들은 성령님의 특성을 나타내는 말이지 별명과 같은 물건이 아닙니다.
주고받고 던지는 그런 물건이 아닙니다.
성령님은 인격을 가지신 하나님이십니다.
인격이란 말은 성령님께서 지, 정, 의를 갖추신 분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시고 근심도 하시는 분이시고 그 뜻대로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성령님은 우리가 함부로 대할 수 없는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그 하나님을 섬겨야 합니다.
그런 하나님께 우리가 뭘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 지시할 수 없습니다.
오라 가라고 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시는 분이시고 우리는 따를 뿐입니다.
2.성령님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본문 17절 말씀에 “그는 진리의 영이라 세상은 능히 그를 받지 못하나니 이는 그를 보지도 못하고 알지도 못함이라 그러나 너희는 그를 아나니 그는 너희와 함께 거하심이요 또 너희 속에 계시겠음이라”라고 했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하시는 일 중에 가장 중요한 일은 진리를 알게 하시는 일입니다.
진리가 무엇일까요?
진리란 예수님의 말씀이 진리요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이 진리입니다.
오늘 본문이 기록된 요한복음 14장 6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이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만이 우리가 하나님께서 갈 수 있게 하는 진리가 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26절에는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을 진리의 영이라고 하신 것은 예수님이 진리가 되시는데 성령님께서 오시면 그 진리 되신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생각나게 해 주시고 가르쳐주신다고 하시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오셔서 하시는 일은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하신 일들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해 주신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다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모든 사람들이 성경에서 다 진리의 말씀을 깨닫는 것이 아닙니다.
다 같이 성경을 읽는데 어떤 사람은 그 성경에서 진리이신 예수님을 발견하게 되고 어떤 사람들은 엉뚱한 것을 발견하기도 합니다.
성령님이 그 마음에 계셔서 역사하는 사람은 성경을 읽을 때 성령님께서 조명을 해 주셔서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십니다.
성령님께서 그 마음에 역사하는 사람은 모든 성경에서 성경의 주인공이 되시는 예수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그 마음에 역사하는 사람은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님께로 가는 진리의 길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령님께서 그 마음에 역사하는 사람은 성경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그 마음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마음대로 성경을 해석해서 엉뚱한 길로 가려고 합니다.
뭐든지 자기 마음대로 자기가 좋아하는 대로 성경을 해석하기 때문에 이 귀한 진리를 외면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오셔서 진리를 알게 하시는 목적은 즉 진리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하시는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구속을 우리에게 적용시키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대신해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시고 하나님보좌 우편에 앉으시고 재림하셔서 우리를 영원한 천국으로 데려가신다는 것을 알고 믿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비밀이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사람들이 다 이 복음을 들어도 다 알지 못하고 특별한 사람만 아는 것은 하나님께서 택한 백성에게만 이 사실을 알게 하시고 택함을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비밀로 해두셨기 때문입니다.
택함을 받은 우리가 이 십자가의 복음의 비밀을 알게 되는 것은 우리 속에 오셔서 역사하시는 성령님 덕분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게 이 비밀을 이해하도록 가르쳐 주시고 깨닫게 해 주시고 믿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을 하게 된 것도 성령하나님께서 네 속에서 역사하심을 인함입니다.
우리가 우리 속에 있는 죄를 깨닫고 회개하는 것도 성령님의 역사로 인한 것입니다.
우리가 중생을 받아 새사람으로 거듭나게 된 것도 성령하나님의 역사로 인한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하고 날 대신 죽어주신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를 믿게 하는 것도 성령님의 역사로 인한 것입니다.
우리가 의로운 사람이라고 칭함을 받게 되는 것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입양이 되는 것도 다 성령하나님의 역사로 인한 것입니다.
우리가 성화되고 영화에 이르게 되는 모든 구원에 관한 것들이 성령님의 역사로 인한 것입니다.
성령님의 역사로 우리가 지금 여기에 와 있습니다.
여기가 어떤 자리입니까?
거룩하신 하나님의 백성들만 영원한 생명을 가진 하나님의 자녀들만 올 수 있는 이 엄청난 자리에 저와 여러분이 와 있는 것입니다.
나에게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신 성령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에게 예수님의 구원을 적용시켜주신 성령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로 하여금 이 귀한 하나님의 백성의 자리에 오게 해 주신 성령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3.성령님은 지금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본문 18절 말씀에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아니하고 너희에게로 오리라”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20절 말씀에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라고 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 그리고 성자 예수님께서 우리를 고아와 같이 이 세상에 벼려두시지 않으시려고 성령님을 우리에게 보내주셨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이 하나님 안에 그리고 우리가 예수님 안에 예수님이 우리 안에 계심을 알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와 내주동거하시면서 가장 중점적으로 하시는 일은 앞서 말씀 드린 대로 예수님께서 행하신 진리의 말씀이 생각나게 해서 우리가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백성이 되게 하는 일입니다.
그러면서 또 중요하게 행하시는 것은 거듭난 백성으로서의 삶을 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점점 더 거룩한 삶을 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기독교인으로서 세상 사람들과 다른 차별된 삶을 살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기쁘고 행복한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갈라디아서 5장에는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서 역사하신 결과물 즉 성령의 열매가 무엇인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제일먼저 나오는 열매가 “사랑과 희락과 화평”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살면서 불행한 것은 사랑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할 사람이 없고 사랑할 일이 없고 나를 사랑해 줄 사람이 없기 때문에 불행하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불행한 것은 기쁨이 없기 때문입니다.
즐거워할 일도 없고 웃을 일도 없습니다.
그래서 늘 불행하게 사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불행한 것은 화평이 없기 때문입니다.
모든 사람이 경쟁대상이고 질투대상이고 싸워야 할 대상입니다.
그래서 늘 불행하게 사는 것입니다.
사탄은 우리에게 불행할 요소를 제공합니다.
사랑하는 마음을 없애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을 가지게 합니다.
웃을 일을 만들지만 억지웃음에 불과하고 슬픔과 눈물 흘릴 일만 만듭니다.
모든 사람들과 싸우고 경쟁하게 만듭니다.
그래서 이 세상이 지옥이 되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러나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역사하시면 기쁨과 행복한 삶을 살게 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깨닫게 해주셔서 우리가 정말로 행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해 주십니다.
진리를 바르게만 안다면 우리의 삭막한 가슴 속에도 사랑이 솟아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가 어떤 것인지를 이해하기만 한다면 자다가도 일어나 웃을 일이 생길 것입니다.
하나님과 평화가 이루어지면 모든 사람들과 더불어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진리를 알게 해 주셔서 우리가 이렇게 사랑과 희락과 화평이 넘치는 사람이 되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자처하면서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교회에 와서 기도도 하고 예배도 드리고 교회의 직분을 맡아서 일도하고 바르게 살려고 노력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웬일인지 뜨거움도 없고 즐거움도 없고 오히려 원망과 불평이 흘러나오고 사람들과 갈등만 생기고 미워하는 마음만 생기고 짜증스러운 일도 생깁니다.
교회에 오는 것도 그렇게 즐겁지도 않고 그냥 의무적으로 적당히 왔다가 얼른 가버립니다.
이러다가 때만 되면 핑계거리만 생기면 그만두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왜 이렇게 귀한 신앙생활이 자꾸 지겨워지고 힘들어지는 것일까요?
왜 믿음이 시들시들해지는 것일까요?
왜 자꾸 형식적인 교인이 되어가는 것일까요?
왜 가식적으로 예배에 참석만 하는 것일까요?
여러분 속에 와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역사를 여러분이 거부하기 때문입니다.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도록 여러분의 마음을 내어놓아야 하는데 여러분의 이기심이 여러분의 마음을 여러분 자신이 장악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뭐든지 내 생각대로 하려고 하고 뭐든지 내 뜻을 앞세우고 내 욕심이 나를 장악하려고 하기 때문에 성령님께서 역사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요즘은 사람들과 대화하기가 참 두렵습니다.
얼마나 자기 생각 자기 사상으로 무장이 잘 돼 있는지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해도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진리의 말씀이 자리 잡을 틈이 없습니다.
난공불락의 요새처럼 아주 튼튼히 무장을 하고 자기의 생각을 지키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의 마음에는 성령님께서 역사할 틈이 없습니다.
성령님께서 깨닫게 하셔도 소용이 없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성령님께 맡겨보시기 바랍니다.
내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참된 행복의 길로 인도하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성령님을 믿습니다.
그분이 하나님이심을 믿습니다.
그분이 진리의 영으로 우리에게 오심을 믿습니다.
그분이 우리와 내주동거 해주심을 믿습니다.
그분이 우리의 변호사이시며 보호자가 되시며 안내자가 되심을 믿습니다.
그분이 우리를 참된 행복의 길로 이끌어 주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