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7. 28.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신경02)

본문 : 엡 2:8-9

제목 : 나는 믿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오늘부터 사도신경 본문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우리가 옛날에 사용하던 사도신경이 새번역으로 바뀌었습니다.

우리 고신교단 총회에서 새번역 사도신경을 사용하기로 결의했지만 우리교회는 아직까지 옛날 것을 그대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다음 주부터 새번역 사도신경을 사용할 것입니다.

사도신경을 공부하면서 새번역으로 된 것을 외우시기 바랍니다.

 

옛날 것은 이렇게 시작을 합니다.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라고 시작을 합니다.

새번역은 좀 다르게 시작을 합니다.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라고 했습니다.

 

무엇이 다르다고 느껴집니까?

내용은 같은 내용인데 순서가 좀 다릅니다.

이전에 사도신경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이 먼저 나오고 새번역 사도신경은 “나는”이 먼저 나옵니다.

 

신경이라는 말은 라틴어 "credo"에서 기원합니다.

“나는 믿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영어에서도 “I believe”가 먼저 나옵니다.

그래서 새번역도 “나는”이라는 말을 먼저 넣었다고 생각합니다.

 

어차피 먼저 나오나 나중 나오나 내가 믿는 것은 마찬가지인데 무슨 상관이 있겠느냐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이 문제를 심각하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 중심을 중요하게 여기는 개혁주의 교회 사람들은 하나님보다 나를 앞세우는 것은 매우 위험한 착상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아예 새로 번역된 사도신경을 사용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저도 바꾸지 말아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많이 망설였는데 교단에서 바꾸라고 했고 교단 교회들이 새번역을 사용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우리교회도 이참에 바꾸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나는”이라고 할 때 조심해야 할 것을 미리 말씀을 드리는 것이 옳을 줄로 알고 오늘은 이 “나는 믿습니다.”라는 말에 대해서 생각을 해 보려고 합니다.

 

“나는 믿습니다.”라고 할 때 이 믿음이 나에게서 나온 것이라거나 나의 공로라는 생각을 해서는 안 됩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요 나의 행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믿는다고 내가 믿었다는 것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나는 믿게 되었습니다.”라고 고백을 하는 것이 오히려 나을 것입니다.

 

 

1.믿음은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닙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다시 한 번 보겠습니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라고 했습니다.

 

구원이란 하나님의 은혜에 의해서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너희의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그럼으로 믿음은 행위에서 난 것과 반대되는 개념을 가졌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레이 프리차드 목사는 “나는 믿사오며”라는 책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은 자판기에 넣는 동전이 아니다. 그것은 동전처럼 충분히 넣으면 당신에 하나님께 원하는 것을 얻게 되는 그런 것이 아니다. 믿음은 왕의 선물을 받기 위하여 거지가 내미는 빈손과 같은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자동판매기에서 커피를 뽑아서 마시려고 하면 요구하는 동전을 다 넣고 스위치를 누르면 커피가 나옵니다.

믿음이란 이런 것처럼 하나님께서 요구하는 것을 다 행하고 그 대가로 내가 원하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믿음이라는 것은 마치 왕이 주는 선물을 받기 위해서 거지가 내미는 손과 같다는 것입니다.

믿음 자체에 아무런 공로가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런 공로나 아무런 대가가 없이 그냥 내밀면 받을 수 있는 손과 같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오랫동안 불교나 유교나 무속종교 속에서 살아왔습니다.

그래서 믿음이라는 말을 오해합니다.

믿음이란 마치 불교에서나 유교에서나 무속종교에서와 같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믿음은 그 행위를 강조합니다.

 

오랫동안 불교의 영향을 받은 사람은 믿음이 좋다고 할 때 고행을 많이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새벽기도를 하루도 빠짐이 없이 하고 그것도 오랜 시간동안 하는 것을 믿음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40일 금식기도를 하고 철야기도를 하고 수시로 일주일 혹은 한 달씩 기도 기간을 정하고 기도 하면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랫동안 유교의 영향을 받은 사람은 도덕적으로 깨끗한 삶을 살고 인간관계를 잘 하고 양심적으로 사는 사람을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기독교를 바르게살기운동 본부처럼 생각을 합니다.

 

오랫동안 무속신앙에 영향을 받은 사람은 믿음이 좋다고 할 때 어떤 신비한 말을 하고 예언을 하고 기적이 일어나고 하면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우리 기독교에 그런 것이 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금식을 하면서 철야를 하면서 기간을 정하면서 기도를 해야 합니다.

우리가 도덕적으로 양심적으로 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인간이 할 수 없는 일들을 하나님께 기도해서 기적을 체험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러나 그런 행위가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라고 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 믿음이 있는 것이고

그렇게 해야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런 행위를 하고 나서 하나님 이만하면 됐지요 이런 공로가 있는 저에게 이제 구원을 주십시오. 라고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최후의 심판을 하실 때 우리가 이런 일들을 행하였는가를 살펴보고 거기에 따라서 의로운 사람이니 악한 사람이니 하고 판단하시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가 마땅히 행하여야 할 그런 일들을 행할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40일이 아니라 수천 일을 금식을 하면서 고행을 한다고 해도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양심적으로 도덕적으로 바른 삶을 살려고 몸부림을 친다고 해도 우리 스스로 의로운 삶을 살 수 없음을 고백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우리가 기도를 해서 죽은 사람을 다시 살린다고 해도 그런 것을 통해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믿음이란 나의 의로운 행위를 하나님께 보여드리고 그것을 통해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으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나의 부족함을 인정하고 스스로 의로운 사람이 될 수 없음을 고백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믿음입니다.

 

“내가 믿습니다.”라고 할 때 혹시 내가 이렇게 행합니다, 내가 이렇게 바르게 삽니다, 내가 이렇게 괜찮은 사람입니다. 라고 교만하게 고백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도신경의 고백은 나 자신의 의로움을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대하신 하나님 앞에 나는 너무나 부족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겸손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것이 신앙의 고백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2.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믿음은 우리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기 때문에 우리가 이런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사도 베드로가 신앙을 고백했을 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날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으시고 이어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내가 누구라고 하냐고 물으셨습니다.

그 때 시몬 베드로가 이렇게 고백을 합니다.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여 이르되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마16:16)라고 했습니다.

 

그 신앙고백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마16:17)라고 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정말로 멋있는 신앙고백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리스도가 되시며 하나님의 아들이 되신다는 것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 신앙고백 위에다가 교회를 세우시겠다고 약속을 하시고

그 교회에 천국의 열쇠를 주시겠다는 약속을 하실 정도로 이 신앙고백은 정말로 귀한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멋있는 신앙고백 즉 그 멋있는 믿음이 베드로 자신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평생을 성경만 연구하면서 살았던 서기관들도 있었습니다.

그들은 성경에 관한 한 박사였습니다.

성경을 줄줄 외울 수 있는 성경 전문가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 성경의 약속을 따라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고 그런 믿음을 가지지 못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이나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있어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바리새인들도 많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안식일을 아주 엄격하게 지켰고 제사를 드리는 일 제물을 바치는 일과 기도와 구제를 하는 일 어느 것 하나 소홀함이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예수님을 믿지는 못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직접 만나서 예수님께서 행하신 기적들을 본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 귀신이 쫓겨나고 병든 자가 일어나고 죽은 사람이 살아나는 것을 직접 본 사람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예수님을 다 믿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서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졌습니다.

그것도 비교적 못 배운 사람 비교적 못난 사람 비교적 죄가 많고 가난한 사람들이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믿음이란 자신의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자신이 가진 지식이나 자신이 가진 똑똑함으로 가지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사람에게 은혜의 선물로 주시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동안 로마서나 에베소서를 통해서 믿음의 중요성을 알았고 그 믿음이 어떻게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인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선택을 한 사람에게 믿음을 선물로 주시는 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선택한 사람이 이 세상에서 믿음을 가지고 살게 하시려고 역사를 그 사람의 편에서 주관하고 계셨음을 보았습니다.

 

오늘 우리가 이렇게 사람으로 이 세상에 태어나서 이런 귀한 믿음을 가지고 이런 귀한 자리에 앉아 있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인 것일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를 향하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특별한 역사를 통하여 나에게 이런 믿음을 주셨기에

우리가 오늘 여기에서 이런 믿음을 고백하게 되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에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정말로 참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똑똑하다고 열심히 있다고 잘났다고 다 바른 믿음을 가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우리처럼 별 볼일이 없는 것 같은 사람들에게 왜 진리의 말씀을 깨닫게 하시는지 왜 바른 믿음을 가지게 해 주셨는지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 외에는 달리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제가 사도신경 강해설교를 시작하면서 왜 우리의 신앙고백이 우리의 행위에서 나온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인 것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이것이 너무나 중요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믿음을 나의 고백이고 나의 공로라고 생각한다면 믿음으로 구원받는 진리를 반대로 생각하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믿음으로 구원받는 것은 나의 공로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나는 믿음이 좋은 사람이라고 자랑하는 것은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며 하나님께서 그런 교만한 사람을 가장 싫어하신다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늘 고백해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너무나 부족한 사람입니다.

저는 너무나 많은 죄를 짓고 사는 사람입니다.

저 같은 사람에게 믿음을 은혜로 선물로 주셔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이것이 구원에 이르는 믿음이라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믿음을 따라 삽니다.

믿음이 나의 행위가 아니고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할 때 오해하기 쉬운 것은 나는 그저 아무 일도 하지 않고 그 선물만 간직하고 믿는다고 고백만 하고 있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선물로 주신 믿음은 살아서 역사하는 믿음입니다.

그 믿음이 내 속에 들어왔을 때 그 믿음은 능력이 있어서 우리를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해서 구원에 이르게 할 뿐만 아니라 이 세상에 사는 동안 우리가 의로운 사람으로 점점 변화시켜주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믿음에는 세 가지 요소가 있다고 했습니다.

지적인 요소 감정적인 요소 의지적인 요소가 그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선물로 우리에게 주신 믿음은 우리 속에서 이런 믿음을 가지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 속에서 진리를 알게 해줍니다.

우리가 무엇을 믿는지를 알게 해줍니다.

성경의 핵심인 십자가의 복음을 알게 해줍니다.

 

십자가의 복음의 진리는 성경을 수천 독 한다고 아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 당시에 그렇게 성경을 줄줄 외우던 서기관들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공부를 많이 한 신학자들도 잘 모르는 사람도 많이 있습니다.

그렇게 엄청난 일을 많이 한 대형교회 목사라고 다 아는 것이 아닙니다.

밀림에서 병원을 세우고 수많은 흑인들을 무료로 치료해주었던 슈바이처 박사처럼 훌륭한 사람이라고 다 복음의 진리를 아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선택을 하시고 그 속에 성령님을 보내주시고 믿음을 선물로 주신 특별한 사람들만 믿음을 알고 십자가의 복음의 진리를 안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우리 속에서 마음에 뜨거움을 일으켜주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고 그 은혜에 감사의 눈물을 흘리게 해주십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께 기쁨으로 찬송을 하며 춤을 추며 영광을 돌리게 해주십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도 각자가 가진 성격대로 예배를 드립니다.

사람에 따라 감정을 드러내지 않고 아주 조용하게 점잖은 모습으로 예배를 드릴 수도 있을 것입니다.

문제는 믿음에 교만함이 있거나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함이 없거나 뜨거운 마음이 없는 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을 가지지 못한 것 때문이 아닌가 하여 걱정이 될 뿐입니다.

하나님 앞에서는 감정을 억누르지 말고 눈물이 나면 울고 기쁘면 마음껏 기뻐하고 마음껏 찬송하고 춤을 추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믿음에는 그런 감정적 요소가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우리에게 하나님께 충성하고 헌신하며 살 의지를 주십니다.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이제 나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나는 희생하고 나는 죽어지는 그런 삶을 살게 됩니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헌신 할 마음이 없고 늘 나의 욕심만을 위해서 살고 싶어 한다면 여러분이 고백하는 믿음이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지를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선물로 주신 믿음은 그렇게 시시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은 살아 역사하셔서 우리가 전적으로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살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늘 믿음을 고백합니다.

특별히 사도신경을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합니다.

 

이 믿음은 나의 행위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이 믿음을 하나님께서 은혜로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이 믿음은 우리의 삶이 전적으로 하나님나라를 위해서 살도록 해 주신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런 참된 믿음으로 참된 고백을 하면서 믿음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