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23.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골34)

본문 : 골 4:15-18

제목 :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

 

“라오디게아에 있는 형제들과 눔바와 그 여자의 집에 있는 교회에 문안하고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

 

 

사도바울이 골로새교회에 쓴 편지를 마감하고 있습니다.

이 편지는 단순히 한 인간이 한 지역의 교회에게 자기 개인의 생각을 써서 보낸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바울의 생각이나 사상을 통해서 골로새교회의 성도들에게 진리를 바로 전하고 있는 귀한 편지입니다.

골로새교회 성도들에게 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든 교회들에게 쓴 편지이고 오늘날 세계만방에 퍼져 있는 모든 교회들에게 쓴 하나님의 편지입니다.

 

골로새교회에는 잘못된 이단들이 많이 들어와 있었습니다.

이단들은 예수님을 무시했습니다.

예수님은 그냥 많은 선지자 중의 한 사람으로 생각했습니다.

이단들은 하나님의 말씀보다 인간의 철학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이단들은 천사숭배를 요구하고 유대인들이 요구하는 대로 할례나 랍비의 전통이나 안식일이나 절기들을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이런 이단들을 따르려는 사람들에게 우리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분명하게 알려주고 그 위대하신과 거룩하심을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이 진리이고 예수님을 믿는 믿음만이 구원의 길로 인도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하는 것이 골로새서의 핵심 내용입니다.

이런 귀한 진리의 말씀을 전하고 마지막 인사로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인사의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하나님의 은혜를 바르게 알고 그 은혜에 보답하는 삶을 사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문임을 마지막으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이런 이단들과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런 때에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는 것이 우리의 신앙을 바로 세우는 아주 귀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1.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요즘 우리 교회가 20주년 감사예배를 준비하면서 제 마음 속에 제 입술에 계속해서 오르내리는 노래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나를 지으신 이가 하나님이시고

나를 하나님의 자녀로 목사로 부르신 이가 하나님이시고

나를 여기 인천 광성교회에 보내신 이도 하나님이십니다.

나의 나 된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라고 믿습니다.

 

나의 달려갈 길 다가도록 나의 마지막 호흡 다하도록

나로 그 십자가 품게 하시니 나의 나 된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어떻게 저 같은 무지렁이 목사가 십자가를 품고 십자가의 은혜를 알고 십자가의 진리를 전하는 사람이 되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한량없는 은혜입니다.

너무나 엄청나서 도저히 갚을 길이 없는 은혜입니다.

 

정말로 제 인생을 다하도록 저의 호흡이 끊어지는 그날까지 이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이 십자가의 복음을 가슴에 품고 많은 사람들에게 이 복음을 전하면서 이 은혜를 이 기쁨을 함께 나누면서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모든 성도들이 이 은혜를 깨닫고 이 은혜에 감격하고 이 은혜 앞에서 기뻐 찬송하며 춤을 추고 이 은혜를 누렸으면 좋겠습니다.

 

이렇게 많은 설교를 듣고도

주일마다 십자가의 복음을 듣고도

그 십자가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이 귀한 시간에 딴 생각이나 하고 잠이나 자고 있는 사람을 보면 정말 가슴이 아픕니다.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 앞에 나와서 기뻐할 줄 모르고 이런저런 핑계로 찬송도 안 부르고 오히려 하나님을 무시하고 경멸하는지도 모르고 교만하게 앉아 있는 사람을 보면 가슴이 메어터집니다.

 

이렇게 큰 은혜를 받고서도 그 은혜에 감격할 줄 모른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아직 은혜도 모르고 진리도 모르는 어리석은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일까요

여러분은 하나님의 은혜 하면 무엇이 생각나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 중에서 가장 감격스러운 은혜가 무엇일까요?

그 은혜가 무엇인지 내 마음 속에 잘 정리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그 은혜를 모르고는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 은혜를 잘 모르기 때문에 교회도 잘 안 오고 예배도 잘 안 드리고 찬송도 잘 안 부르고 기뻐하지도 못하고 오히려 원망하고 불평하고 작은 일에 토라지고 삐집니다.

어떤 핑계나 이유도 이 하나님의 은혜 앞에서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이 되고 맙니다.

 

골로새서 1장에서는 하나님의 은혜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이 복음이 이미 너희에게 이르매 너희가 듣고 참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은 날부터 너희 중에서와 같이 또한 온 천하에서도 열매를 맺어 자라는도다.”(골1:6)라고 했습니다.

 

골로새교회 교인들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이 복음을 듣고 그 복음 안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럼으로 하나님의 은혜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이해할 때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믿는 믿음으로 의로운 사람이 된다는 이 진리 속에서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자신이 엄청난 죄인이요 무능력한 자라는 것을 알 때 깨닫게 됩니다.

 

당시의 골로새교회에는 다른 사람의 종으로 살다가 예수님의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에게는 하나님의 은혜가 더 분명하게 확실하게 엄청나게 드러나 있었을 것입니다.

 

종이 어떤 사람인지 우리는 잘 모릅니다.

남의 이야기만 들어서는 잘 모릅니다.

얼마나 비참하고 얼마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아야 하는지 잘 모릅니다.

일어나면 일해야 되지요 뭐든지 주인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합니다.

일은 하지만 대가가 없습니다.

주는 대로 겨우 배나 채우면 그것으로 끝입니다.

인권이 있습니까? 휴일이 있습니까? 자신의 뜻이나 생각은 철저히 무시되고 아무도 알아주지 않고 미래도 없는 비참한 상태가 종입니다.

 

그런 종에게 십자가의 복음은 말할 수 없는 은혜였습니다.

사람들도 나를 무시하는데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께서 나에게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제 네 죄를 사해주겠다.

죄 때문에 노예로 살았는데 그 죄를 깨끗하게 용서해서 노예의 신분을 벗어나게 해 주겠다.

내가 너를 내 아들이 되게 해 주겠다.

그리고 영원한 행복의 나라를 네게 기업으로 주겠다.

하루하루 절망과 고통 속에서 살아가는 그들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었겠습니까?

 

당시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오늘날 우리도 그와 같은 처지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성경말씀은 언제나 항상 우리 인간이 얼마나 하나님께 죄를 많이 지은 자인가를 알게 해줍니다.

노아시대에 홍수로 다 몰살당했던 사람들이 나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소돔과 고모라에서 유황불에 타죽은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에게 종살이하던 비참한 사람이 나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전쟁에 다 패해서 나라가 망하고 다 죽임을 당하고 포로로 끌려갔던 이스라엘 사람이나 유대인들이 다 나라는 것을 알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었다면 나도 사탄의 종이 되어서 비참한 삶을 살고 그들처럼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하고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형벌을 받아 영원히 지옥으로 끌려갈 수밖에 없었던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우리가 어떻게 여기 이 거룩한 자리에 와 있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로 우리는 아무런 노력이나 대가도 치르지 않고 값없이 거저 이런 복된 자리에 와 있습니다.

그 은혜를 알면 그 하나님 앞에 이렇게 교만하게 있을 수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나를 구원해 주셨는가를 알 때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시고 죄지은 자는 철저하게 징벌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셨다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죄를 가볍게 여기시고 적당히 용서도 해 주시는 분으로 생각합니다.

 

그것은 오해입니다.

하나님은 죄에 대해서 철저하신 공의의 하나님이십니다.

그 사람이 누구이든지 그 사람이 과거에 얼마나 훌륭한 일을 했든지 그 사람이 나와 얼마나 친하든지 그런 것 상관없습니다.

죄지은 사람은 반드시 그 형벌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멸망을 당해야 합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그런 우리 인간에게 엄청난 은혜를 베푸셨는데 그 죄 사함을 받는 길을 만들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십자가에서 대신 형벌을 받아 죽게 하시고 그것을 믿는 자들에게 죄 사함을 받게 해 주셨습니다.

 

그 은혜를 아는 사람은 교만하게 자기의 자랑을 할 수 없습니다.

자기가 왕년에 누구의 자손이고 어떤 선한 일을 했고 어떤 충성을 했다고 자랑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의 은혜를 깨닫지 못하고 자기를 내세우고 자기를 자랑하고 하나님 앞에 고개를 드는 사람을 제일 미워하십니다.

대화를 하면서 내가 왕년에 뭘 했다고 자기 자랑을 하는 사람은 멀리하시기 바랍니다.

그 자랑을 하면서 우리 마음을 노리고 우리 주머니를 노리는 사람일 뿐입니다.

 

부득불 자랑을 하려면 내가 과거에 죄를 많이 지은 죄인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는 이렇게 못된 짓을 많이 했는데 이런 나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셨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나의 나 된 것은 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고백해야 할 것입니다.

 

 

2. 은혜 받은 자의 삶이 어떤 것인지를 알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오늘 본문에 마지막 인사를 하면서 몇 가지 당부를 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그것이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자들이 생각하면서 살아야 할 것들입니다.

 

1)읽게 하고 읽으라.

본문 16절 말씀에 “이 편지를 너희에게서 읽은 후에 라오디게아인의 교회에서도 읽게 하고 또 라오디게아로부터 오는 편지를 너희도 읽으라.”라고 했습니다.

 

읽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니까 많이 읽는 것이 제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읽기 하면 하루에 몇 장을 읽고 1년에 신구약 성경 몇 번을 보는가를 자랑하기 위해서 읽는 사람도 있습니다.

 

성경을 읽는 목적은 읽는 회수를 위해서가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깨닫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가 무엇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교회에서 설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그 말씀의 뜻을 여러분에게 해석해서 전달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읽기의 가장 중요한 부분은 교회에 와서 담임목사의 설교를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의 담임목사를 통해서 여러분이 지금 들어야 할 말씀을 전하려고 하십니다.

성경말씀은 성령님께서 조명하시고 역사할 때 그 능력을 발휘합니다.

지금 성령님께서 목사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여러분에게 전달하여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고 계십니다.

이런 중요한 순간이 귀를 막고 마음의 문을 닫으면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역사하시지 않습니다.

 

혼자 있을 때 성령님의 역사가 없이 그냥 성경을 읽으면 사탄이 와서 이상한 말로 여러분을 유혹하여 시험에 들게 할 뿐입니다.

 

 

2)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이루라

본문 17절 말씀에 “아킵보에게 이르기를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서신을 마감하면서 골로새교회에 있는 아킵보라는 성도에게 “주 안에서 받은 직분을 삼가 이루라고 하라”고 당부를 하고 있습니다.

 

아킵보라는 사람이 어떤 직분을 받았는지 잘 모릅니다.

주석가들은 당시의 아킵보라는 이름은 “스스로 복음을 섬기는 일에 헌신한 사람에 대하여 상징적으로 사용한 호칭”이라고 했습니다.

 

누가 시키지는 않았지만 복음을 알고 그 복음이 전파되는 일에 스스로 헌신을 한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성도들도 우리가 직분을 받았든지 받지 못했든지 복음을 전하는 일에 다 직분 자처럼 일을 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직분을 맡은 사람처럼 그 직분을 삼가 이루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주의 일을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돈을 벌어서 교회당을 건축하고 복지관을 세우고 그런 것이 주의 일이 아닙니다.

주의 일을 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지 그것이 주의 일이 아닙니다.

 

주의 일은 이렇게 함께 모여 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고 그 은혜에 감사하고 감격하여 기쁨을 춤을 추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목사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를 전할 때 아멘으로 화답하고 이 복음을 세계만방에 전하는 일에 합심하여 협력하는 것입니다.

 

 

3)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

본문 18절 말씀에 “나 바울은 친필로 문안하노니 내가 매인 것을 생각하라 은혜가 너희에게 있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서신서를 보내면서 자신이 지금 매여 있다는 것을 기억해달라고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복음을 전하다가 붙잡혀서 감옥에 있다는 것을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이 지금 복음을 전하는 것은 바울 자신의 안일을 위해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장사꾼처럼 자신의 이익을 챙기기 위해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복음을 받고 하나님의 은혜 안에 참된 기쁨과 복을 누리게 될 사람들을 위해서 자신은 비록 죄수가 되고 감옥에 갇히고 고통을 당하는 일이 있어도 이 복음을 전하고 있다는 것을 생각해보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일생은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많은 고통을 당한 사람입니다.

복된 소식을 전해준다고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누가 알아주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고난만 당하면서도 끝까지 이 복음을 전한 사람입니다.

 

십자가의 복음 속에 있는 진리의 비밀을 알았기 때문에

십자가의 복음 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귀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에

십자가의 복음 속에 있는 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 혜택을 누리게 될지를 알았기 때문에 이 복음을 전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목사들이 돈을 벌기 위해서 명예를 얻기 위해서 복음을 전합니다.

오늘날 많은 성도들이 이 세상의 복을 위해서 복음을 이용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가진 이 십자가의 복음은 이 세상의 안일이나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고난을 당하고 오히려 가난하게 될수록 우리 하나님의 은혜가 넘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가장 행복하게 사는 섬이 하나 있다고 합니다.

그 섬 이름이 무엇인줄 아세요?

이번 수련회 강사님이 알려준 것인데 한번 알아 맞혀 보시기 바랍니다.

 

“지라도”라는 섬이라고 합니다.

어디에 나오는 섬인지 아세요?

하박국 3장에 나오는 지라도입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하지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먹을 것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나는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리로다.”(합3:17-18)

 

나무들이 무성하지 못해서 열매가 없고 소출이 없을지라도

우리에 양이 없고 외양간에 소가 없을지라도

그런 것 가지고 슬퍼하거나 낙심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왜요?

나에게 이 귀한 복음을 주신 여호와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에

나를 구원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있기 때문에

세상의 일들이 좀 잘못된다고 해도

즐거워하고 기뻐한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엄청난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우리가 받고 전하는 이 십자가의 복음 속에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이 엄청난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유일한 길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은혜를 사모하고 이 은혜 안에 거하시기 바랍니다.

 

이 엄청난 은혜를 받은 사람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 말씀을 큰 소리로 읽으시기 바랍니다.

복음을 전하고 복음을 전하는 일에 수종 드는 일에 헌신하시기 바랍니다.

이 일로 인해서 고난을 받는 것이 복된 일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