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6. 30.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절기0303)
본문 : 골 1:9-14
제목 :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이로써 우리도 듣던 날부터 너희를 위하여 기도하기를 그치지 아니하고 구하노니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 그의 영광의 힘을 따라 모든 능력으로 능하게 하시며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
오늘은 맥추감사주일입니다.
보리농사를 추수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던 날입니다.
우리는 직접 농사하지 않지만 농부를 통해서 농사를 짓게 하셔서 우리 도시사람들도 먹고 살게 해 주신 것에 대해서 감사를 드리는 날로 정했습니다.
성경에 나와 있는 모든 절기들은 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게 하는 절기들입니다.
인간들이 하도 은혜를 잘 잊어버리기 때문에 중간 중간 감사 절기를 만들어 두고 지키게 하면서 잊어버리기 쉬운 하나님의 은혜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면서 늘 감사하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제가 어떤 사람을 10년 동안 도와 준일이 있습니다.
큰 도움은 아니지만 제 깐에는 힘들게 어려운 가운데서도 도와주었는데 그 사람은 저에게 감사하다는 말을 잘 안합니다.
가끔 만나면 그 감사하다는 말 한마디가 듣고 싶어서 귀를 기울이는데도 그 사람은 그런 말을 하는 것이 자존심이 상해서인지 한마디도 안합니다.
처음부터 감사하다는 말 들으려고 도와준 것은 아니기 때문에 별로 실망을 하지는 않고 지내왔는데 감사하다는 표현을 안 하니까 나중에는 기분이 살짝 나빠지면서 여러 가지 생각이 들었습니다.
나는 별 상관도 없는 사람을 힘써 도와주었는데 그 사람은 오히려 나를 원망하는 것 같았습니다.
더 많이 도와줄 수 있었는데 겨우 그것 도와주면서 생색낸다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런 마음이 있으니까 감사하기는커녕 제가 하는 일을 은근히 비난합니다.
저를 속 좁은 좀생이쯤으로 생각하고 믿음도 없는 사람으로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마음이 참 좋지 않습니다.
도와주고 감사하다는 말도 못 듣고 오히려 많이 도와주지 않았다고 원망을 들을 바엔 차라리 그만 도와주고 싶은 생각이 듭니다.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그런 사람인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도와줄만한 이유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것들을 우리에게 주셨습니다.
그런데 감사할 줄 모릅니다.
오히려 은근히 하나님을 비난합니다.
왜 나에게는 좋은 머리를 안 주셔서 실력이 안 오르게 하십니까?
왜 나에게는 돈을 많이 안 주셔서 가난하게 살게 하십니까?
왜 나에게는 예쁜 얼굴을 안 주셔서 연예인이 못되게 하십니까?
하나님께서 세상을 공평하게 다스리지 못해서 불쌍한 사람들이 많은 것 아닙니까?
그렇게 감사할 줄 모르고 원망하고 사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이런 감사절을 만들고 하나님께서 얼마나 감사를 받으실만한 분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은 우리가 그동안 배운 골로새서의 말씀 중에서 오늘 읽은 본문 말씀을 중심으로 감사해야 할 이유들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1.신령한 지혜와 총명으로 하나님을 알게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12절 말씀에 사도바울은 골로새서 교인들이 하나님께 감사하기를 바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감사의 이유들을 9절부터 14절에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를 9절에서는 “너희로 하여금 모든 신령한 지혜와 총명에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으로 채우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10절에서도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에 기록한 신령한 지혜와 총명 그리고 하나님을 아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지 이미 배운 것이기에 설명을 하지는 않겠습니다.
다만 우리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뜻도 모르고 왜 교회에 다니는지도 모르는데 우리는 그것이 무엇인지를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정말로 하나님께 감사를 드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즘 천주교 신부님 중에서 인기가 좋은 강사 한 사람이 있습니다.
여기저기 강연도 많이 다니고 방송국에도 자주 나옵니다.
황창연 신부님이라고 평창에서 사역하시는 분입니다.
이분의 인기강연 중에 “성당에 왜 다니십니까?”라는 주제의 강의가 있습니다.
이분의 주장에 의하면 성당에 다니는 사람 70%가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하여” 성당에 다닌다고 했습니다.
마음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는 성당이 괜찮은 것 같습니다.
개신교회는 사람들이 말도 많고 만날 서로 잘났다고 싸우기만 하는데 성당에 가면 점잖은 사람들이 조용하 와서 미사만 드리고 가기 때문에 평안을 느끼기 쉽기 때문에 골치 아픈 교회를 떠나서 성당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성당도 마음의 평안을 위해서 가는 곳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성당에도 우리가 가진 대소요리문답 같은 것이 있습니다.
천주교 요리문답이라는 것이 있는데 그 첫 번째가 우리하고 비슷합니다.
“1 문 사람이 무엇을 위하여 세상에 났느뇨? 답 사람이 천주를 알아 공경하고, 자기 영혼을 구(救)하기 위하여 세상에 났느니라.”입니다.
성당에 다니는 이유는 천주 즉 하나님을 알아서 공경하는 것이고 영혼 구원을 위한 것인데 그런 것에는 아무런 관계도 없이 그냥 마음만 평안하면 된다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기 위해서 성당에 가야 되는데 하나님은 상관이 없고 내 마음만 편하면 된다고 생각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몰라도 너무 모르고 알려고도 하지 않고 자기들 마음 편한 대로 생각하고 성당에 다닌다는 것입니다.
어떤 할머니가 성당에 오면서 시골이다가 보니까 오는 길에 성황당이 있는데 그냥 지나기가 뭐하니까 다른 사람들이 하는 대로 돌 몇 개 얹어주고 귀신에게 자식 잘 되게 해 달라고 빌고 지나갑니다.
성황당이 뭐지 잘 모르는 분들이 많으니까 잠간 설명을 하면 옛날 시골 마을에는 마을 입구에 원형으로 돌탑을 쌓아 놓고 거기에 귀신을 모시고 소원을 비는 자리입니다.
지나가다가 돌을 얹고 소원을 빌어야 재수가 좋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좀 올라가다가 보면 절이 하나 있는데 거기도 그냥 지나가기가 허전하니까 합장을 하고 절을 하고 소원하나 빌고 지나갑니다.
성당을 들어서면 성모마리아상이 있으니까 거기는 더 크게 절을 하고 소원을 빕니다.
우리 편이니까 복을 잘 줄 것이라고 믿을 것입니다.
성당 안에 들어서면 거기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고 계시기 때문에 아주 진지하게 엎드려서 소원을 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그 할머니가 생각하기를 이 중에 하나라도 당첨이 되면 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진짜면 복을 줄 것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점쟁이 무당을 제일 많이 찾아가는 사람들이 천주교 신자라고 합니다.
어떤 신이 참 신인지는 관심이 없으니까 어디 가서나 마음의 평안만 얻으면 된다고 생각하니까 성당에서 신부가 신통치 않게 이야기 하면 얼른 점쟁이 무당에게 찾아가서 이야기를 듣고 마음의 평안을 얻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개신교는 어떤 것 같습니까?
모르긴 해도 도진개진일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왜 교회에 다니는 줄 모르면서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 인간이 이 세상에서 사는 이유도 잘 모르고 교회에만 다니고 있습니다.
우리 개신교 성도들도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나 영혼구원에는 관심이 없고 복만 달라고 기복신앙으로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잘 몰라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그 하나님께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 얼마나 큰 은혜인지를 잘 몰라서 그런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바르게 알게 해 주신 것이 제일 큰 감사일 것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그 하나님을 더욱 잘 알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너무나 거룩하시고 너무나 위대하시고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을 바르게 알아야 할 것입니다.
그분을 더욱 잘 알수록 우리는 늘 감사할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그동안 우리 하나님께 대하여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다른 교회에서 인간들에 대해서 배울 때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나님께 대해서 배웠습니다.
다른 교회에서 인간의 경험에 대해서 배울 때 우리는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배웠습니다.
하나님의 절대주권, 하나님의 계획, 하나님의 섭리, 하나님의 경륜, 하나님의 의의 기준,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을 위해서 베푸신 구속사역에 대해서 공부를 많이 했습니다.
그 하나님을 더욱 잘 알기 위해서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에 대하여 높은 차원의 지식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 하나님을 바로 알고 바르게 섬기시기 바랍니다.
2.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무엇인줄 알게 해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본문 10절 말씀에 “주께 합당하게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라고 했습니다.
분몬 11절에는 “기쁨으로 모든 견딤과 오래 참음에 이르게 하시고”라고 했습니다.
우리 성도들의 본분은 범사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고 우리들도 기쁜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면서 사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천주교에는 천주교 요리문답이 있듯이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대소요리문답을 가지고 있습니다.
“문 1.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이 무엇인가? 답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를 즐거워하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리 개신교 성도들이 왜 교회에 다니는가라고 물으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그것을 즐거워하기 위해서라고 대답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 인간의 제일 되는 목적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는 것은 무엇을 얻으려고 다니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많은 것들을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모든 것들을 하나님께 받았습니다.
그리고 우리 성도들은 은혜로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럼으로 우리가 교회에 가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를 드리고 그 하나님께 영광을 돌려드리고 그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 드리기 위해서 교회에 가는 것입니다.
앞서 인용한 그 신부님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춤, 성가, 시, 그림 이 네 가지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섬기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춤을 추는 것이고 성가를 부르는 것이고 시편과 같은 시를 만들어서 낭송하는 것이고 그림을 그려서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천주교 신부가 하나님을 섬기는 것 즉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을 첫 번째로 춤이라고 하는 것을 보고 놀랐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춤을 출 때 기뻐하신다는 것입니다.
신들을 섬기는 사람들은 신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춤을 춘다고 했습니다.
불교에서는 승무라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나라 무속신앙의 특징은 춤입니다.
무당들은 춤으로 신 내림을 받습니다.
개신교에는 춤을 추는데 성당에서는 춤을 추지 않는다고 우리를 굉장히 부러워합니다.
우리가 춤을 추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우리들도 즐거워하는 것을 굉장히 자랑스럽게 생각을 해야 합니다.
우리가 춤을 출 때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답니다.
우리가 기뻐하면서 춤을 추는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신다는 데 그것을 못할 이유가 뭐 있겠습니까?
또 우리가 기뻐하면서 찬송을 부르는 것을 굉장히 부러워합니다.
천주교의 성가는 기쁨이 없는 장송곡이고 우리 개신교의 찬송은 정말로 기뻐하면서 즐거워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찬송이라는 것입니다.
천주교는 성가를 이렇게 부른답니다.
내-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십-자-가 짐-같-은 고-생-이-나
주님을 가까이 하기가 얼마나 고생스러운지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처럼 힘들고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쁨이 없고 장례식에서 장송곡 부르는 것처럼 노래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 개신교는 같은 노래를 불러도 힘차게 부릅니다.
내주를 가까이 하려함은 십자가 짐 같은 고생이나
그까짓 고생 별거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아무리 고생스러운 일이 있어도 기뻐하면 노래하며 춤추면서 하나님께 나아간다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이렇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바르게 알고 하나님을 섬기는 찬송을 춤을 추면서 부를 수 있어서 너무나 감사합니다.
우리 남자집사님들 장립집사님들 정말 감사합니다.
남자가 그것도 어른이 손을 들고 찬송을 한다는 것 쉬운 일이 아닙니다.
너무나 유교문화에 오랫동안 젖어 있는 나라에 살기 때문에 남자가 그러면 방정맞아 보이고 상스러워 보이기 때문에 쉽지 않는 일입니다.
그런데 함께 춤을 춰주시니까 감사합니다.
앞으로 더 자신 있게 손을 번쩍 들고 춤을 추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고 자신도 기뻐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기뻐 받으시고 여러분의 삶에도 기쁨이 넘치는 복을 주시고 마음의 소원도 들어주실 것입니다.
아직도 마음이 내키지 않아서 손을 들지 못하고 춤을 못 추는 분이 계시면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보시기 바랍니다.
우리의 삶의 목적이 무엇인지를 다시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해도 되고 안 해도 되는 그런 선택사항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하나님을 섬기면서 살려고 하는 사람은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 줄 아는 사람은 춤을 추며 찬송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3.영원한 나라를 기업으로 받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12절 말씀에 “우리로 하여금 빛 가운데서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성도의 기업은 영원한 하나님나라입니다.
기업으로 얻는다는 것은 마치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는 것처럼 받는다는 말입니다.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를 아들이 아버지의 재산을 상속받는 것처럼 받을 수 있는 권한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로 하나님나라의 상속자가 된 것이 어떤 의미인 줄 안다면 감사하지 않을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13절 14절에는 우리가 그런 상속자가 어떻게 해서 된 것인지를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속량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속량 곧 죄 사함을 받게 하고 흑암의 권세에서 건지셔서 하나님의 나라로 옮겨주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을 좋아하고 죽는 것을 정말 싫어한다고 합니다.
우리나라 말에 “죽은 정승이 산개만 못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죽어서 정승이 되는 것보다 개같이 살아도 이 세상에서 사는 것이 좋다는 말일 것입니다.
그래서 늘 하나님나라에 대해서 이야기하지만 이 세상에서 누리는 하나님나라만 좋아하지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는 별로 좋아하지를 않는 것 같습니다.
나이든 권사님이 늘 천국가고 싶다고 말은 하는데 막상 하나님께서 천국에 데려가려고 하면 못 간다고 발버둥을 칩니다.
대전에 어떤 권사님이 암에 걸려서 죽게 되었습니다.
자녀들을 모아놓고 하시는 말씀이 내 재산 다 팔아도 좋으니 내 병을 고쳐달라고 했답니다.
그 심정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아니지만 권사나 장로나 목사라도 죽는 것 싫어하고 이 세상에서 잘 사는 것을 원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서 잘 살아야 할 것입니다.
사는 날 동안 부자도 되고 성공도 하고 어려운 사람도 도와주고 그렇게 사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이 세상이 영원한 세상이라고 생각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아이들이 소꿉놀이를 합니다.
나는 아빠 너는 엄마 너는 아들 이렇게 정하고 집을 짓고 음식을 차리고 재미있게 삽니다.
그러다가 엄마가 애들아 그만하고 밥 먹어라 하면 남편이고 아내이고 집이고 음식이고 다 내버리고 집으로 갑니다.
우리 인생이 그런 것입니다.
정말로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사는 이 인생이 끝이 아니고 영원한 하나님나라가 우리를 위해서 준비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영원하고 완전한 나라를 생각하면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은 특별히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는 맥추감사주일입니다.
진리를 알게 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기뻐 춤추며 찬송하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며 나 자신도 기뻐할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영원한 하나님나라를 준비하시고 우리에게 들어갈 자격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모든 것을 은혜로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