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2. 2.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골10)
본문 : 골 1:28-29
제목 :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
여러분들이 교회에 오셔서 예배를 드릴 때 하나님의 임재하심으로 나아가십시오. 혹은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라고 하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하나님의 임재가 무엇이지? 하나님을 어떻게 만나지? 궁금하게 생각이 되십니까?
기도를 열심히 해서 하나님의 환상을 보거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나 어떤 신비한 체험을 하라는 말로 생각을 하시지는 않습니까?
그것도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것입니다.
성경에서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신비함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기도 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도 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불가능한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그런 신비한 체험을 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특별하게 쓰시는 중요한 사람들에게 나타난 현상이고 또 그런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언제나 항상 그런 신비함 속에서 사는 것이 아니라 특별한 때에만 그런 일이 일어났습니다.
우리 보통 사람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의 임재에 들어간다는 말은 그렇게 어려운 말이 아닙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아주 간단하고 쉬운 일입니다.
지금 우리가 교회에 와서 찬송을 불렀습니다.
어떤 마음으로 찬송을 부르셨습니까?
대강 적당히 부르다가 말다가 그러셨습니까?
가사가 무슨 뜻인지도 모르고 그냥 입으로만 목소리로만 부르셨습니까?
그러셨다면 아직 하나님의 임재하심 속으로 들어오지 못한 것입니다.
찬송을 부르는 것은 하나님을 높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을 노래로 부르는 것입니다.
그렇게 찬송을 부르는 것은 여기 하나님께서 계신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지금 여러분은 설교말씀을 듣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설교를 듣는 사람은 지금 하시는 말씀을 하나님께서 나에게 하신 말씀을 듣는 것입니다.
아무 생각 없이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리면서 듣는다거나 나와 상관이 없는 말로 듣는다거나 딴 생각을 하면서 듣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하심 속에 들어오지 못한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여기에 오셔서 지금 바로 나에게 정말 필요한 생명의 양식을 주신다고 믿고 말씀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의 임재하심 속에 들어온 사람입니다.
설교가 끝이 나면 함께 기도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 기도가 진심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기도가 아니라 형식적이거나 기도를 하나님께서 직접 들으시고 응답해 주신다는 믿음이 없거나 간절한 마음이 없는 기도를 드린다면 하나님의 임재하심에 들어오지 못했다는 증거가 됩니다.
여러분은 이 귀한 시간을 내어서 교회에 오셨습니다.
교회에 오셔서 그냥 구경만 하고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조금만 마음을 바꾸시면 하나님을 만나고 가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흠뻑 받고 돌아가실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임재하심 속으로 들어오시기 바랍니다.
찬송을 하나님께 정성껏 드리십시오.
설교를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알고 경청하십시오.
여기 오셔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는 하나님께 진심으로 기도를 드리십시오.
이왕 시간 내서 한 시간 예배를 드리면서 어떤 마음으로 어떤 자세로 예배에 임하는가에 따라서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마음껏 받아 가시는 귀한 시간되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본문 말씀의 주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입니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각 사람에게 전파하고 각 사람을 권면하고 모든 지혜로 가르치는 것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고 하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를 위해서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서 힘을 다하여 수고한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다 구원을 받은 사람들이 분명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로운 사람이 됐고 영원한 생명을 받았습니다.
죄에서 구원을 받는 것,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으로 칭함을 받는 것,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을 받아서 예수님처럼 부활하는 것, 영원한 천국에 들어가서 복락을 누리면서 사는 것 이런 것들은 너무나 중요한 것들입니다.
받아도 되고 받지 못해도 그만이고 그런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다 바쳐서라도 우리의 모든 것을 다 희생해서라도 반드시 차지해야 할 소중한 것입니다.
이런 소중한 것을 받기 위해서 이렇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데 이 신앙생활이 흐지부지 해서 우리가 믿음을 받은 사람인가 못 받은 사람인가, 선택을 받은 하나님의 자녀인가가 버림을 받은 세상 사람인가 확신이 없이 산다면 참으로 불행한 사람일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이렇게 애타는 심정으로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떻게 해서든지 하나님 앞에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해서 혼신의 노력을 다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잘 들으시고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저와 여러분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1. 각 사람을 완전한 자로 세우는 것이 복음전파의 목적입니다.
본문 28절 말씀에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라고 했습니다.
사도바울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각 사람들을 권하고 각 사람들을 지혜로 가르치는 것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1)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움을 받아야 합니다.
완전한 자란 어린아이가 아닌 성년이 된 사람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신앙생활을 처음 할 때는 어린아이와 같지만 늘 어린아이로 있어서는 안 됩니다.
세월이 흐르면 육신이 장성한 자가 되는 것처럼 신앙도 성숙해져야 합니다.
성숙한 어른이 되었다고 할지라도 늘 모든 면에 완전한 것은 아닙니다.
어느 면에서는 부족한 점도 많이 있고 때로는 넘어지기도 하지만 그래도 아이처럼 행동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완전한 자가 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성장하고 아무리 성숙해진다고 해도 타락한 인간 스스로가 정말로 완벽한 자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우리가 완전한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할 때 그 앞에 “그리스도 안에서”라는 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 스스로는 완벽한 자가 될 수 없지만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완전한 자가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완전한 자가 되라는 말은 우리 스스로 완전한 자가 되라는 말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가 되라는 말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하나님께서 의로운 사람이라고 인정해 준다는 사실을 우리는 압니다.
완전한 자가 되기 위해서는 우리의 믿음이 완전한 믿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믿음 자체는 하나님께서 은혜의 선물로 주신 것이기 때문에 누구든지 이 믿음만 가진 사람이라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은 완전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믿음을 우리가 완전하게 소유한 사람인가 그 믿음이 정상적으로 우리 속에서 역사 하는가 이런 것들을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가끔은 올바른 믿음이 아닌 가짜 믿음을 가진 사람도 있고 바른 믿음을 가졌다고 착각을 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진 믿음이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바른 믿음인지를 점검해보고 그 믿음을 따라서 살고 있는가도 점검을 해봄으로서 우리가 가진 믿음이 완전한 믿음인지를 살펴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믿음을 가지고 있는지 그 정상적인 믿음을 따라 살고 있는지를 살펴봄으로서 완전한 사람이 되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세움을 받는다는 것도 두 가지의 의미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최후의 심판대 앞에서 완전한 자 즉 성숙한 신앙을 가진 사람으로 세움을 받아서 넉넉하게 하나님나라에 들어가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늘 드리는 말씀이지만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것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이 세상을 사는 동안 평생 신앙생활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법고시를 준비하는 사람은 사법시험에 합격을 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의대에 다니는 사람은 의사가 되기 위해서 의대에 다니면서 공부를 합니다.
그런데 시험에 떨어져 버리면 공부한 것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그와 같이 우리가 이 세상의 삶을 다 마친 후에 하나님 앞에 섰을 때 불합격 판정을 받는다면 그동안 우리가 노력했던 것들이 다 소용이 없게 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시험에 떨어지는 것은 다른 방법으로 살아갈 수도 있을 것입니다.
꼭 의사나 법관이 되어야만 잘 산다는 법은 없으니까 안 되면 다른 일을 해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면 이건 너무나 큰 비극이고 너무나 비참하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반드시 합격을 해야 합니다.
아슬아슬하게 합격을 할 것이 아니라 완전하게 완벽하게 100% 확실하게 합격을 해야 합니다.
그것이 완전한자로 세움을 받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이 세상에 살면서 성도답게 사는 일에 완전한 자가 되게 한다는 것입니다.
전적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삶을 살게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한없는 은혜를 받아서 엄청나게 귀한 신분을 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안다면 그런 은혜에 만에 하나 천에 하나라도 보답하려는 마음으로 주를 위해서 헌신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게 될 때 하나님께서도 기뻐하시지만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이 바른 믿음의 소유자라는 확신을 가지고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의로운 사람이고 완전한 사람인데 그 믿음이 바른 믿음인지를 어떻게 알겠습니까?
그 사람의 삶 속에 믿음이 나타날 때 그 믿음이 살아있는 믿음이요 바른 믿음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예배시간에 자꾸 빠지거나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세상 사람들처럼 죄에 빠져서 살거나 믿음이 있다고 하면서 하나님의 일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한다면 그런 일이 늘 계속 된다면 그 믿음은 온전한 믿음이 아닐 수도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2) 그를(그리스도를) 전파하는 목적이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본문 말씀에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라고 했습니다.
여기 “우리가”라고 하는 말은 강조형입니다.
특별히 다른 사람들과 다른 우리들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당시에 십자가의 복음이 아닌 거짓된 것들을 가르치는 거짓선생들과 바른 진리 즉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전파하는 자신들을 비교해서 강조하는 말입니다.
당시의 거짓선생들과 다르게 바울이나 디모데나 에바브로는 정말로 성도들에게 필요한 바른 진리의 말씀을 선포하였고 그 이유는 성도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게 하기 위해서였다는 것입니다.
오늘날도 교회내이 많은 거짓선생들이 십자가의 복음이 아닌 다른 말로 성도들의 귀를 즐겁게 해 줍니다.
그들의 관심은 성도들이 확실한 신앙위에 서는 것에 대해서 별 관심이 없습니다.
특별히 성도들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섰을 때 정말로 확실하게 합격을 받게 하는 일에 별 관심이 없습니다.
성도들을 이용해서 자기들의 욕심만 채우려고 합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영원한 생명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그 일을 아주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전파한다는 것입니다.
즉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하여 성도들로 하여금 올바른 믿음을 가지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바른 믿음을 가지고 바른 신앙생활을 하며 주님 다시 오실 때 그 앞에서 넉넉하게 합격할 수 있도록 한다는 것입니다.
3) 각 사람을 권하고 가르치는 목적이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함입니다.
본문 말씀에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을 한번 들었다고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가만히 있으면 들을 것을 잊어버리기도 하고 믿고 있던 것을 의심하기도 하고 바르게 살려고 하는 마음이 흐려져서 나쁜 짓을 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늘 성도들을 권면하고 진리를 가르치기도 해서 성숙한 신앙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
이런 권면과 가르침을 받지 못한 사람은 신앙이 자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오히려 퇴보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이 매주 교회에 와서 설교말씀을 잘 들어도 특별하게 나아지는 것이 없이 늘 그대로인데 만약에 교회에 오는 것을 소홀히 하거나 설교 듣는 일에 열중을 하지 않으면 신앙생활을 유지하기가 힘이 듭니다.
옛날 사람들은 날마다 교회에 왔습니다.
새벽마다 교회에 와서 말씀을 듣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래야만 신앙을 유지하고 바르게 살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요즘은 바쁘게 살다가 보니까 새벽마다 교회에 오기가 힘이 듭니다.
그러면 주일이라도 교회에 잘 나오고 주일 설교라도 잘 들어야 합니다.
교회에 오지 않는 평일이라도 말씀을 읽고 묵상하고 기도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시간을 통해서 말씀으로 권면 받지 못하고 가르침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온전한 신앙생활을 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성도들을 가르칠 때 모든 지혜로 가르친다고 했습니다.
지식은 모든 일에 대한 일반적인 상식이라면 지혜는 정말 우리가 바르게 알아야 할 참된 지식을 말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머리가 좋아서 공부를 많이 했다고 지혜로운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뭘 많이 알면 오히려 머리만 아프고 어느 길을 가야할지 잘 판단을 할 수가 없습니다.
참된 지식 즉 지혜로운 사람이 되어야 바른 길을 갈 수 있습니다.
여기 지혜는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통해서 구원의 길로 바르게 가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그 길을 바로 알고 가는 것입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가르치고 싶은 것이 이 지혜입니다.
성경을 수백 독을 했다고 다 아는 것이 아닌 이 진리의 말씀을 여러분에게 가르치려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전파하고 지혜로운 말씀으로 여러분을 권하고 가르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말씀을 늘 잘 들으시고 완전한 자로 이 세상을 사시고 또 완전한 자로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그 일을 위해서 힘을 다하여 수고합니다.
본문 29잘 말씀에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라고 했습니다.
여기 “이를 위하여”란 앞서서 말한 성도들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기 위한 일을 말합니다.
그것을 위해서 복음을 전파하고 권면하고 지혜로 가르치는 모든 일들을 말합니다.
그 일을 위해서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서 힘을 다하여 수고를 한다고 했습니다.
이 일에 두 가지가 동원되고 있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바울의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가 있고 또 하나는 바울의 힘을 다하여 하는 수고가 있음을 봅니다.
우리가 주의 일을 할 때도 또 신앙생활을 할 때도 이런 원리가 적용이 됩니다.
먼저 우리 속에서 역사하신은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신 성령님의 능력의 역사를 힘입어야 합니다.
성도는 무슨 일을 하든지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받아야 합니다.
내 마음대로 하려고 하면 그 능력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찾고 그 뜻대로 실천하려고 할 때 성령님의 능력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 능력의 실천은 우리의 수고와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능력을 달라고 기도만 한다고 다 되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을 주실 때 나의 노력과 수고도 함께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노력을 다할 때 우리가 할 수 없는 범위까지도 할 수 있게 해 주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완전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서는 복음의 전파와 권면과 가르침을 잘 받아야 합니다.
그리고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뜻을 잘 따라서 수고하고 힘써 노력을 해야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으로 최선을 다할 때 하나님께서 더 많은 힘을 주셔서 더 선한 일을 많이 할 수 있게 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사람으로 세움을 받아야 할 성도들입니다.
이 일을 위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하고 권면하고 지혜로 가르칠 때 그 말씀을 잘 받고 따르시기 바랍니다.
내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말씀에 의지하여 힘써 수고하고 노력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서 이 세상에서도 성도로서 완전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주님 다시 오실 때 그 주님 앞에서도 부끄러움이 없는 완전한 자로 서게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