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11. 11. 광성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골08)

본문 : 골 1:25

제목 :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내가 교회의 일꾼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니라.”

  

정말로 인생을 성공적으로 산 사람들의 경험담을 들어보면 그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서 살기보다는 남을 위해서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을 위해서 공헌을 하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기 자신을 희생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을 살면서 남에게 비난을 받고 비참한 삶을 산 사람들은 철저하게 자기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만 산 사람들입니다.

남이야 고통을 당하든 말든 자기 주머니에 돈만 챙기려고 한 사람은 결국 고통을 당하고 비난을 받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다니는 제일차 목적은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영원한 천국에서 복된 삶을 살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가 이 세상을 살면서 하나님의 자녀답게 성공적인 삶을 사는 것도 우리가 교회에 오는 이유 중에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교회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고 가르치는 것은 십자가의 복음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의 진리를 바르게 알고 그 복음에 있는 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믿고 의로운 사람이 되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삶도 성공적으로 사는 것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도 참된 행복을 누리면서 살게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나 이 세상에서 복된 삶을 사는 것이나 사실 따지고 보면 그 원리가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희생하시고 고난을 당하신 그런 삶을 살면 우리도 예수님처럼 영광을 받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이나 예수님의 제자들이나 예수님을 사랑하고 따르는 사람들의 삶을 보면 다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기희생과 헌신이 성공적인 삶을 살게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사도바울이 자신의 직분에 대해서 말씀을 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자신이 교회의 일꾼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을 따라 일꾼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일꾼이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하기 위함이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을 그냥 보면 별 의미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이 말씀 속에 교회의 일꾼 된 지도자들이나 우리 성도들이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하는가를 말씀해주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가 살아온 일생이 예수 그리스도를 본받는 삶이고 우리가 본받아야 할 삶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특별히 교회의 직분을 맡은 자들이 또 예수님의 제자로 이 세상을 살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듣고 배워야 할 귀한 말씀입니다.

 

1.교회의 일꾼입니다.

우리가 생각할 때 바울정도 되면 교회의 일꾼이라기보다는 교회의 지도자입니다.

그가 비록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당시에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배운 제자는 아니지만 특별한 만남을 통해 부활승천하신 예수님을 만난 사람이고 천국까지 가서 그 아름다운 관경을 보고 온 사람입니다.

  

성령님께 능력을 받아서 많은 병자들도 고쳤고 죽은 사람도 살린 능력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심지어 사람들이 바울의 몸에서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가져다가 병든 사람에게 얹으면 병도 떠나고 악귀도 나가더라고 했습니다(행 19:12절 참조).

 

이런 정도의 사람이 자신을 소개할 때 그것도 공식적인 서신에다가 일꾼이라고 할 필요는 없었을 것입니다.

적당히 서신을 시작할 때처럼 사도라고 하든지 사자라고 하든지 권위 있고 좋은 단어들이 많이 있었을 것인데 일꾼이라고 자기를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일꾼 이라는 단어는 헬라어로 디아코노스(διάκονος)라는 단어입니다.

하인, 봉사자, 섬기는 자, 사환, 수종자, 일군, 사역자, 집사 등으로 번역이 되는 말입니다.

마태복음 20:26절에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라고 하셨는데 여기 “섬기는 자”로 번역된 단어가 “일꾼”으로 번역된 단어와 같은 단어입니다.

 

 

바울은 자신을 섬기는 자 교회를 섬기는 자라고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교회의 모든 지도자나 또한 교회안의 성도들은 이런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란 하나님께서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을 이 세상에서 불러내서 따로 세워둔 특별한 사람들이 모인 단체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거룩한 무리 즉 성도라고 부르는 것입니다.

 

 

그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인 성도들이 모인 교회를 위하여 부름을 받는 지도자들은 철저하게 그들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거기 누가 군림을 하거나 사사로이 자기 이익을 위해서 일을 하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데 오늘날 많은 교회의 지도자들이 일꾼이 아니라 섬기는 자가 아니라 군림하고 자기의 이익을 챙깁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이익거리가 없으면 안 하려고 합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자기의 이익에 먼저 마음을 둡니다.

 

제가 배구경기 보는 것을 좋아합니다.

젊은 시절에는 취미로 배구를 좀 했습니다.

배구를 하면 제일먼저 서브를 넣습니다.

처음에 상대방이 공격을 하도록 공을 넘겨주는 것을 왜 서브라고 했는지 잘 모르지만 아마도 서비스 정신으로 상대방에게 공격을 잘 할 수 있도록 공손하게 넘겨주는 것이기 때문에 서브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요즘 프로 배구를 보면 요즘 서브는 서브가 아닙니다.

스카이 서브라고 해서 공격수들이 공격하는 것처럼 강하게 서브를 넣습니다.

그러니까 상대방은 서브를 받는 것이 아니라 공격을 받는 것이 됩니다.

목사님 배구경기는 이기려고 하는 것인데 서브라고 공손하게 주면 되겠습니까? 될 수 있는 대로 못 받게 강하게 주고 이상하게 주는 것이 당연한 것 아닙니까?

 

예 당연합니다. 운동경기니까 이기려고 하는 것이니까 할 수 있는 대로 강하게 해야 합니다.

 

 

문제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도 그렇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봉사를 하고 섬기면서 살아야 하는 것이 우리가 사는 세상인데 모든 사람들이 다 서로 이기려고만 하니까 섬기는 정신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다들 자기가 이기는 데만 신경을 쓰니까 실패한 사람들의 마음은 안중에도 없는 것입니다.

성공한 사람들을 알아주고 성공한 사람이 되어야 행복한 삶을 산다고 생각을 하니까 누구든지 이기려고만 합니다.

 

 

눈앞에 일어나는 일만 보면 당장 내가 이기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멀리 내다보면 꼭 그런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져주는 것이 행복하기도 하고 지금 실패가 후일 진정한 성공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일본에서 성공적인 삶을 산 기업가 미타니 야스토라는 사람이 지은 “섬김형 인간”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세상에서 소금과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 진정한 성공자이고 기업에서 원하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소금과 같은 사람의 첫 번째 조건은 덕망을 갖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덕망이란 사랑, 성실, 공정, 겸손 이 네 가지를 갖춘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이 넷을 합해서 승화시키면 나 자신을 버리고 남을 섬기는 사람의 모습이 나타난다고 했습니다.

 

 

나를 버리고 남을 섬기는 사람이 덕이 있는 사람이고

덕이 있는 사람이 사랑과 성실과 공정과 겸손을 갖춘 사람이고

이 네 가지를 갖춘 사람이 이 세상이 이 세상의 기업가들이 필요로 하는 소금과 같은 존재라고 했습니다.

 

 

이 세상에서의 성공도 나 자신이 아닌 남을 섬기는 삶을 사는 것이 성공의 길이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이 그럴진대 교회에서는 더 말할 것이 없습니다.

목사나 장로나 모든 성도들이나 나보다 다른 사람을 더 낫게 여기고 서로 봉사하는 자세로 일을 하는 것이 진정한 교회의 일꾼이라는 것입니다.

 

 

2.하나님께서 성도를 위해서 주신 직분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 바울은 자신이 일꾼이 된 것은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직분을 따라” 된 것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받은 직분이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 일하라고 주신 직분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교회의 일꾼은 철저하게 교회의 성도들을 위해서 일을 해야 합니다.

성도들이 잘 살게 해 주고 성도들이 참된 진리를 깨닫고 진리 안에서 자유를 누리게 해 주어야 합니다.

 

 

오늘날 많은 목사들이 겉으로는 성도들을 위한다고 하면서 성도들을 괴롭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도들에게 복을 받게 해 주겠다는 미명하에 충성을 강요하고 있는 나쁜 목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도들은 가난해지게 만들고 자신만 부자가 되는 엉터리 목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여기 직분으로 번역된 헬라어는 오이코노미아(οἰκονομία)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청지기 직, 관리, 경영, 직분, 경륜, 행정 등의 뜻으로 번역이 되는 말입니다.

 

 

전에 보던 개역 한글 성경에서는 이 단어를 “경륜”이라고 번역을 했습니다.

“하나님이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경륜을 따라”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직분이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를 이 말씀을 통해서 짐작을 할 수 있습니다.

이 직분은 하나님의 경륜을 이루어나가는 직분이라는 것입니다.

 

 

경륜에 대한 것은 에베소서 3장을 설교할 때 자세히 말씀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의 역사 가운데서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하신 일을 계획하시고 그 계획대로 경영해 나가시는 일을 하나님의 경륜이라고 했습니다.

 

그 경륜은 은혜의 경륜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역사의 현장에서 늘 우리의 편에 서서 이 세상의 모든 역사들을 진행해나가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지금 여기 이 자리에 서 있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에 의해서 된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선택하신 우리를 구원해서 성도들이 모이는 이 교회에 와서 있게 해 주시기 위해서 이 세상의 모든 역사를 우리 편에서 진행해나가시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교회의 일꾼은 하나님께서 우리 편에 서서 일하신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고 계신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 사랑과 은혜를 받아 누리게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복을 받을까 어떻게 하면 최후의 승리를 누릴까 그런 것 가르쳐주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우리가 복을 받은 사람이고 이미 우리가 최후의 승리를 얻은 사람이고 이미 하나님께서 우리 편에서 이 역사를 주관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교회에 오셔서 나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내가 얼마나 많은 복을 이미 받은 사람인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을 누리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까 어떻게 하면 복을 받을까 연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노력하고 애를 쓸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단 하나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고 따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 사람들처럼 이기려고 경쟁하고 남에게 나쁜 짓하고 그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하신 것처럼 바울이나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이 한 것처럼 우리도 봉사하고 섬기면서 사는 것입니다.

그것이 손해 보는 것이 아니고 참된 기쁨과 행복을 맛보면서 사는 것입니다.

 

 

3.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입니다.

사도바울이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경륜)을 따라 교회의 일꾼이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는 것이 일꾼 된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말이나 뜻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하는 것이 바울의 임무라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말에 “어른 말을 잘 들으면 자다가도 떡을 얻어먹는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부모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말씀을 실천하는 사람이 효자라고 했습니다.

 

앞서 인용한 ‘미타니 야스또’ 라는 일본의 사장님은 아버지께 들은 말씀대로 실천해서 출세한 사람입니다.

아버지께서 하시는 말씀이 “애야 네가 커서 직장에 들어가거든 남들보다 30분 일찍 출근해라.”라고 하셨는데 그 말씀대로 언제나 30분 일찍 출근을 해서 자기가 할 일을 생각하기도 하고 현장을 돌아보기도 했는데 그것이 엄청나게 유익했다는 것입니다.

 

 

요즘 그렇게 했다가는 동료들에게 욕을 바가지로 얻어먹을 것입니다.

저 나쁜 놈이 자기만 출세하려고 남을 욕먹게 한다고 미워할 것입니다.

그래도 눈치 안채게 미움 안 받게 하는 방법이 있으면 해 보세요.

 

 

이런 말을 몰랐어도 저는 약속이 있어서 어디 갈 때 30분쯤 일찍 나갑니다.

얼마나 여유로운지 모릅니다.

급한 차들이 끼어들기를 해도 다 용서가 되고 아주 안전하게 갈 수가 있어서 좋고 가서 먼저 기다리면 상대방에게 기분 좋게 하기도 하니까 너무 좋습니다.

 

목사님들 약속해 보면 꼭 시간 맞추어서 정시에 나타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조금도 손해 보지 않고 그 시간 맞춰서 나오려다가 보니까 대부분은 늦습니다.

그 조금 손해 보지 않으려는 마음 때문에 참 어렵게 삽니다.

 

 

교회에 오시는 것도 30분쯤 일찍 와야겠다고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일찍 와서 교회도 한 번 돌아보고 오는 사람 여유 있게 인사도 나누고 기도도 좀 하고 그러면 참 좋습니다.

 

 

사람이 말을 듣고 실천해도 좋은 일이 많은데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의 어떤 말씀을 먼저 들을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것이 다 하나님의 말씀인데 그 말씀을 다 알고 다 실천하기가 쉽지 않을 것입니다.

물론 다 알고 다 실천하는 것처럼 좋은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 일일이 알 수 없고 실천하기 어렵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다행하게도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한 것은 막연하게 성경전체에 기록된 모든 말씀들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또 이룬다는 말도 우리가 다 실천해서 이룬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말하는지는 앞뒤에 기록된 말씀들을 살펴보면 됩니다.

다행하게도 바로 앞에 말씀이 무엇을 가리키는지를 알게 하는 구절이 있습니다.

 

 

5절 말씀입니다.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 쌓아 둔 소망으로 말미암음이니 곧 너희가 전에 복음 진리의 말씀을 들은 것이라” 라고 했습니다.

 

 

어떤 말씀이라고 했습니까?

“복음 진리의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바울이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말씀은 복음진리의 말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완전하게 전해져서 사람들이 이 복음을 믿고 구원을 받는 일을 위해서 바울은 일꾼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복음이 무엇입니까? 기쁜 소식입니다.

무슨 소식이 제일 기쁜 소식입니까?

이 세상이 끝이 아니고 영원한 세상이 하나님의 나라 천국이 있다는 것이 가장 기쁜 소식입니다.

 

 

그 천국에 들어가려면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아야 되는데 그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는 방법이 너무 쉽다는 것이 기쁜 소식입니다.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그 믿음이 우리를 영원히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받게 해 준다는 것이 너무나 기쁜 소식입니다.

 

 

그 영원한 나라가 너무나 좋다는 것이 기쁜 소식입니다.

늙고 병들고 죽는 이별이 없는 나라.

상함이나 쇠함이 없는 영원한 나라 빛나고 영화로운 나라 그 나라가 우리를 위해서 준비되었다는 것이 기쁜 소식 복음입니다.

 

 

“이루려 함이라”라는 말도 숨김없이 충분하게 잘 알아듣도록 전한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이런 복된 소식을 잘 모르고 잘 알아듣지 못하고 엉뚱한 길로 갈까봐 완벽하게 잘 알도록 그래서 참된 자유를 누리도록 하는 것이 바울이 일꾼이 된 목적이라는 것입니다.

 

 

설교를 들으면서 눈치를 채신 분들은 알겠지만 저는 오늘 저에게 매우 불리한 설교를 했습니다.

안 그래도 목사 알기를 우습게 알고 대접도 잘 안 해 주는데 구태여 나는 여러분을 섬기는 여러분의 종입니다 라고 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나는 종이 아니고 주님의 사자라고 해도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기 때문에 별로 틀린 말은 아닙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잘못되어가는 한국교회를 향해서 이 말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많은 교회에서 목사들이 봉사자로서 섬기는 자로서의 삶을 살지 않습니다.

성도들을 위해서 성도들에게 필요한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성도들을 억압하여 자기들의 이익을 챙기고 자기들이 영광을 받으려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면서 예수님처럼 살려고 하지 않습니다.

바울이 전한 복음을 전하면서 바울처럼 안타까운 마음이 없습니다.

이 귀한 복음을 충분하게 전하기 위해서 노력을 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 큰 은혜를 받은 성도들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남을 섬기는 삶을 살지 않고 욕심만 채우려고 합니다.

복음의 진리를 완전하게 알지 못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바울은 자신을 일꾼 즉 섬기는 자 봉사자라고 했습니다.

교회를 위한 하나님의 은혜의 경륜을 따라 일꾼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진리의 복음의 말씀을 완전히 전하려고 일꾼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런 일꾼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 세상의 삶도 섬기며 봉사하면서 남을 잘 되게 해주는 것이 참된 성공이고 참된 행복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