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2.3.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로마서 강해설교 131)
본문 : 롬 12:6-8
제목 : 은혜대로 받은 은사
은혜라는 말은 헬라어로 카리스(καριs)라는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값없이 주시는 사랑을 이 은혜라는 말로 씁니다. 은사라는 말은 헬라어로 카리스마(καρισμ)라고 하는데 은혜의 선물이라는 뜻입니다.
은혜나 은사나 다 하나님께서 받을 만한 자격이 없는 우리에게 주시는 특별한 선물입니다. 그러나 은혜라는 말은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게 하는 하나님의 특별하신 사랑이라고 한다면 은사란 그 은혜를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다른 사람에게 나타내게 하기 위하여 특별히 받은 사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받은 우리는 그 은혜에 늘 감사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특별한 은사를 받은 사람은 그 받은 은사대로 다른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은사라고 할 때 그 은사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가하기 보다 또 그 은사를 주신 하나님의 뜻을 생각하기보다는 은사 그 자체에 관심을 많이 두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그 은사로 다른 사람을 위해 봉사하기보다는 그 은사로 자기 자신을 나타내며 자신이 영광을 받는 일이 많습니다. 그 은사로 다른 사람에게 봉사하기보다는 자기 자신을 위해 쓰는 경우가 많다는 것입니다.
신약성경에서는 이 은사라는 말이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속 사람에 역사하셔서 특별한 기적적인 일을 행하실 때 쓰기도 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은사라고 하면 어떤 기적적인 일들과 결부하여 생각하기 시작을 했습니다.
M.베버라는 사람은 이 말의 원 뜻을 확대하여 보통의 인간과는 다른 초자연적·초인간적 재능이나 힘을 이렇게 불렀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카리스마가 있다라고 할 때 다른 사람을 지배하는 특별한 능력을 가진 사람을 말하는 것이 여기에서 온 것입니다. 그 사람에게 대한 절대적 신앙을 근거로 맺어지는 지배와 복종의 관계를 카리스마적 지배라고 이름한 것입니다.
이 지배는 법률에 따른 지배(합법적 지배)나 관습에 따른 지배(전통적 지배)와는 달리 어디까지나 카리스마의 소유자에 대한 개인적인 절대적 신앙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들은 은사란 말에 대한 잘못된 생각에서 온 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은사는 특별한 시대 특정한 사건에 있어서는 우리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기적적인 일로 이루어질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은사 자체가 항상 그렇게 기적으로 신비한 일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보편적인 시대 보편적인 일에는 초자연적인 것이 아닌 자연의 질서에 의해서 하나님의 법칙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일들이 더 많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가 은사라는 말을 쓸 때는 기저적인 것 신비한 것보다는 우리 스스로에게 이미 주어주신 달란트대로 그 달란트를 사용하여 봉사하는 일을 은사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은사 자체에 관심을 두기보다는 그 은사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와 하나님의 뜻을 먼저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받은 은사로 어떻게 봉사를 하여야 할 것인가를 먼저 생각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일부 은사주의자들에 의해서 이 은사 운동이 엉뚱한 데로 흘러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은사의 참된 의미를 알고 바른 은사 운동을 해야 할 것입니다.
1. 은사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6절 말씀에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은사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혜로 주신 것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은사는 우리가 어떤 기도나 고행이나 아주 심오한 경건 생활에 의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은혜로 즉 자격여하를 불문하고 일방적으로 나누어주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람들은 특별한 은사를 사모하여서 그 은사를 받으려고 고행을 하고 기도를 하고 열심히 노력을 하여서 그 은사를 받으려고 노력을 합니다.
그래서 어떤 은사를 받았다고 하면 은근히 그것을 통하여 자기 자신을 자랑하고 그것을 통하여 자기의 이익을 챙기려고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날 자칭 신유의 은사를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은사를 받았다는 사람들이 그 은사를 사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 보다 자신을 우월하게 생각하고 자기의 세력을 키우며 자신이 영광을 받고 자신의 이익을 챙기는 사람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물론 그들 중에 기적을 일으키지도 못하는 사이비가 많습니다. 그러나 실제로 어떤 기적이 거기에 있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어떤 신비한 기적이 일어난다고 해서 다 하나님의 은사로 생각을 하시면 안됩니다. 기적은 엉뚱한 곳에서도 수없이 많이 일어나는 현상이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하나님께 신유의 은사라고 하는 특별한 은사를 받았다고 한다면 그 은사는 매우 조심스럽게 사용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교회를 위하여 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 값없이 받은 그대로 거저 주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임금님이 나라에 가난한 사람이 많아서 그들을 구제하는 기관을 만들고 누구를 책임자로 세울까 궁리를 하다가 돈 많고 권력이 있는 양반보다는 가난한 그들 가운데서 책임자를 세우기로 했습니다. 자신이 가난해 봤고 자신이 굶주려 봤으니까 가난한 사람의 심정도 알고 굶어 죽는 사람의 심정도 잘 헤아려 많은 사람에게 골고루 나누어주게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이 슬슬 자기의 배나 채우고 자기에게 주어진 임무를 소홀히 하더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은사를 주실 때 우리가 그 은사를 활용하여 다른 사람에게 봉사할만한 것이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은사를 주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 은사로 내 자신만을 위하여 산다면 그 은사를 주신 하나님께 실망을 안겨 드리는 일이 되고 만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부산에 어떤 교회의 목사님이 간증을 하시는데 목사님은 자신이 어릴 때 너무나 고생을 했다고 합니다. 먹을 것이 없어서 굶기도 많이 하고 참 가난하게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목사님에게 은혜를 주셔서 아주 큰 교회의 목사님이 되게 해 주셨고 이제는 제일 좋은 것으로 누리고 산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때 평신도였지만 그 간증을 들으면서 아 이 목사님은 하나님께 받은 은사를 잘 못 사용하고 있구나 하고 생각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가난했던 그에게 부를 주셨다면 그 의도는 무엇이었을까요 그 부가 하나님의 은사라고 한다면 그 부가 어떻게 사용이 되어져야 할까요 그것은 너무나 자명한 일입니다. 그 부를 가지고 주변을 둘러보고 자신처럼 가난하게 사는 사람들을 돌봐 주라고 주신 은사가 아니겠느냐는 것입니다.
우리 교회가 특별히 사랑나누기 운동을 펼치고 매주일 국수를 삶아서 노인들 이웃들을 대접을 하고 C.M.S. 학교를 통해서 가르치기를 힘쓰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 교회에 특별히 주신 은사라고 생각을 합니다.
저도 가난한 시절 먹을 것이 없어서 먹지 못한 시절을 지냈고요 공부를 하고 싶은데 길을 열어 주는 사람이 없어서 참 힘들게 공부를 했습니다. 그런 심정을 아는 목사가 이 교회를 담임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의 특별하신 섭리라고 생각을 합니다.
우리 교회 사랑나눔 담당목사님도 학교 다닐 때 꽤 난하게 노신 분입니다. 변소 뒤에서 다리 꽤나 떠신 분이고 아이들에게 꽤나 공포의 대상이 되셨던 분입니다.
그런데 그런 자신을 교회의 목사님만 특별히 인정을 해 주시고 사랑을 해 주시고 등을 두드려 주시더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사랑에 감격하여 새 사람이 되고 오늘날 이렇게 목사님이 되셨습니다. 그 받은 은사를 어떻게 쓸까라고 생각을 하시고 이제 그들의 등을 두드려 주는 목사가 되기 위하여 청소년 복지 사역을 시작하게 되신 것입니다.
은사란 이렇게 그 은사를 주신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하게 하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은혜에 보답하기 위하여 쓰여져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받은 은사는 무엇인가 생각을 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 은사를 받은 은혜를 보답하는 일에 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각 사람이 받은 은사가 다릅니다
역시 오늘 본문 6절 말씀 중에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지난 시간에 배운 4절의 말씀대로 우리가 한 몸에 많은 지체를 가졌고 모든 지체가 같은 직분을 가진 것이 아니라고 하신 그 말씀대로 우리가 받은 임무가 우리가 받은 사명이 우리가 받은 은사가 각각 다르다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은사는 직접적으로 언급이 되어 있는 은사는 20여 개 정도로 나와 있습니다. (고전 12:8-11, 고전 28-30, 엡 4:11, 롬 12:6-8)
지혜의 말씀, 지식의 말씀, 믿음, 병 고치는 은사, 능력 행함, 예언함, 영들 분별함, 각종 방언 말함, 방언들 통역함, 사도, 선지자, 교사, 서로 돕는 것, 다스리는 것, 복음 전하는 자, 목사, 섬기는 일, 가르치는 자, 권위하는 자, 구제하는 자, 긍휼을 베푸는 자. 등을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물론 이 은사들이 지금 우리가 사는 시대에도 다 있는 은사는 아닙니다. 이미 없어진 은사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구속의 역사를 진행하시면서 때로는 이런 은사를 주셔서 쓰시기도 하고 때로는 저런 은사를 주셔서 쓰시기도 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은사가 성경에 나와 있다고 해서 다 지금도 사용이 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반대로 성경에 없는 은사라도 하나님의 구속의 역사를 위해서 쓰시는 것이라면 그것이 오늘날의 은사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다만 성경의 정신에 어긋나거나 어떤 자기 자신의 욕심을 위해서 이익을 위해서 잘못 사용이 되어지는 것은 은사에서 제외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각기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를 가지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한 사람도 은사를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날 때 각자 사명을 가지고 이 땅에 태어났다고 했습니다. 그 다양한 은사 중에 내가 받은 은사가 무엇인가를 발견하고 그 은사를 바르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내가 해야 할 모든 일이 하나님께서 주신 은사라고 생각을 합니다. 나에게 주어진 은사를 사용해서 나에게 주어진 임무들을 수행하면서 살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 일은 꼭 교회 내에서만 이루어지는 일은 아니라고 생각을 합니다. 가정에서 혹은 직장에서 사업장에서 나에게 주어진 모든 일들을 책임감있게 해 나갈 수 있는 은사를 우리가 받았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세상에 태어나서 나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이 은사라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신비한 일만 은사가 아닙니다. 남들에게 크게 들어나 보이는 것만 은사가 아닙니다. 내가 해야 할 모든 일 그것이 은사입니다. 우리 각 사람에게 아주 다양한 은사들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 은사가 무엇인지를 알고 그 은사를 잘 활용하여 여러분에게 주어진 임무들 사명들을 잘 완수하시기를 기원합니다.
3.은사는 우리 서로를 위해 봉사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은사란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주신 다양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각 사람에게 다양한 은사를 나누어주신 것은 하나님께 받은 은혜를 알고 나 자신도 다른 사람에게 은혜를 베풀면서 살게 하신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이 자신에게 주어진 은사를 서로 서로를 위해서 사용할 때 그 사회는 참으로 행복한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자기에게 주어진 은사를 사용하지 않고 있는 사람이 많을수록 그 사회는 어렵고 힘든 사회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군에 가면 단체기합을 많이 줍니다. 군 생활 같은 단체 생활에 있어서는 각자에게 주어진 임무를 서로를 위하여 확실하게 완수를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봉 체조라는 것이 있습니다. 큰 기둥같은 나무를 2-30명이 함께 들어 올렸다가 내렸다가 하는 운동입니다. 그 운동은 참여한 모든 사람이 함께 힘을 쓸 때 운동이 됩니다. 그러나 그 중에 몇몇 사람이 꾀를 부리고 힘을 쓰지 않으면 나머지 사람에게는 큰 고통이 따르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 모든 사람들이 모두 함께 주어진 임무에 충실할 때 이 세상은 참으로 밝고 행복한 세상이 되는 것입니다. 가정이나 교회나 회사나 다 같은 원리입니다.
가정의 한 가장이 남편으로서 아버지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 그 아내와 자녀들은 참으로 불행한 사람들이 되고 맙니다
한 가정의 주부가 아내로서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다하지 못했을 때 그 가정은 참으로 불행한 가정이 되고 마는 것을 우리는 많이 보고 있습니다.
내가 좀 더 게으름을 피우고 내가 할 일을 다 못할 때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더욱 불편하고 더욱 불행해 집니다. 내가 좀 더 부지런하여 내가 할 일을 다 하고 남의 일을 좀더 했을 때 나의 주변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 편하고 더욱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게으르고 무책임한 것처럼 나쁜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부지런하고 책임감 있는 것 보다 더 좋은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책임을 다하지 못해서 내가 부주의해서 생긴 작은 실수가 다른 사람의 일생을 좌우하는 큰 상처가 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내가 한 작은 봉사가 다른 한 사람의 인생에 너무나 큰 역할을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각자에게 주어진 달란트, 은사, 사명들을 최선을 다하여 잘 감당하심으로 모든 사람이 행복해지는 그런 가정 교회 사회를 만드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