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10.31.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엡44)
   본문 : 엡 3:12
   제목 : 담대함과 당당함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감을 얻느니라."

  오늘 아침에는 썰렁한 웃기는 이야기 하나 하고 시작하겠습니다.
  어떤 사람이 차를 몰고 가다가 머리에 무거운 보따리를 이고 가는 할머니를 만났답니다. 
  마음 착한 이 사람이 그냥 보고 갈 수가 없어서 차를 세우고 할머니 어디까지 가세요 같은 방향이면 제가 태워다 드리겠습니다 하고 그 할머니를 차에 태우고 목적지로 가는데 한참 가다가 보니까 아 이 할머니가 차안에서도 계속 보따리를 머리에 이고 있더라는 것입니다.
  할머니 보따리 의자에 내려놓으셔요 머리 아픈데 왜 이고 계십니까
  괜찮아 내 몸만 태워 주는 것도 감사한데 짐까지 미안해서 어떻게 신세를 지나...
  이런 마음이 은혜를 알고 고마움을 아는 착한 사람들의 마음일 것입니다. 
   
  어떤 할아버지는 비행기를 타고 가게 되었더랍니다.
  한참 가는데 예쁜 아가씨가 와서 할아버지 식사하세요 하고 큼직한 도시락을 주더라는 것입니다.
  할아버지가 깜짝 놀라서 아 나 속이 안 좋아서 식사를 못해 다음에 먹을께 하고 사양을 했습니다.
  그리고 집에 와서 아 비행기 속에서 파는 그 도시락 참 맛있겠더라 얼마씩이나 하는지 알아보고 다음에는 꼭 사 먹고 와야지 하더랍니다.
  비행기 표 값에 그 음식값이 다 포함된 줄 모르고 못 챙겨 먹은 할아버지의 이야기입니다.

  우리 인생살이가 그렇습니다.
  뭔가를 좀 알고 나면 늘 미안하고 늘 죄송스러운 마음으로 살게 되고요
  그런 미안한 마음 때문에 당연히 챙겨야 될 것도 놓치는 일이 많은 것이 우리네 인생입니다.

  큰소리를 치면서 당당하게 살고 싶은데 그럴 만한 것이 없습니다.
  남에게 은혜를 베푼 것도 없고 돈도 없고 권력도 없고 자신감도 없고 그저 겨우 하루하루 살아가는 인생이 무슨 근거를 가지고 큰소리를 치면서 당당하게 살겠습니까 그래서 늘 풀이 죽어서 사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신앙 생활을 하는 것도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알고 나면 모든 것이 너무 감사하고 어떻게 생각하면 나 같은 주제에 염치도 없이 이런 은혜를 받는구나 하고 송구스럽고 죄스러운 마음을 가질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이 세상에서 우리 자신도 하나님의 작품이요 어느 것 하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 것이 없이 모두 하나님의 은혜 속에 살아가는 것이 우리 인생입니다. 
    
  그래서 이래저래 늘 어깨가 쳐지고 부끄럽게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네 인생일 것입니다.

  그런 마음을 가지고 사는 우리에게 오늘 본문의 말씀은 큰 위로가 되고 용기를 주는 귀한 말씀입니다.

  담대함으로 나오라, 당당하게 나오라 라고 하시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로 나아갈 때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때 담대하고 당당하게 받을 수 있게 해 주신 하나님의 사랑을 다시 한번 음미하는 귀한 시간 되시기를 바랍니다.   
  
1.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본문 말씀에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담대하게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는 조건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라는 말씀은 바로 앞 11절 말씀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라는 말씀과 연결된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구속 계획은 시간이 시작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설계하신 것이며
  그 계획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우리들을 구원하시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세상에서 되어질 모든 일들을 이미 계획을 하시고 그 계획에 의해 구원을 받게 하는 방법과  구원받을 하나님의 백성을 예정하셨다고 했습니다.

  그 예정하신 방법은 예수님을 믿는 믿음을 가진 자들을 구원하시려는 것이요
  구원 받을 백성은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사람만 예수님을 믿는 사람만 하나님께 담대하게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1)누구든지 예수님 안에 있으면 담대함을 얻습니다.
  이 세상에 사는 사람은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바로 나갈 수가 없는 죄인들입니다.
  크거나 작거나 죄를 가진 사람은 하나님 앞에 나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공의의 하나님으로 죄를 미워하시고 죄 지은 자를 저주하시고 멸시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단 한 가지 예외 규정을 두고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에 한해서 그 죄를 용서하시고 하나님께 나아올 수 있게 해 주셨습니다.

  물론 아무나 예수님 안에 들어와서 예수님을 믿을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사람을 미리 예정하시고 선택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누가 어떤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로 택함을 받았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알 수 있는 한 가지 방법이 있는데 그 결과를 가지고 압니다
  즉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믿는 것을 보고 아 이 사람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이구나 하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그 사람의 신분에 관계가 없이 하나님의 자녀로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갈 수 있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가난한 자든지 부자든지 잘난 사람이든지 못난 사람이든지 훌륭한 사람이든지 별볼 일 없이 지낸 사람이든지 상관이 없습니다.
  교회 안에는 오히려 잘난 사람보다 못난 사람이 성공한 사람보다 실패한 사람이 더 많이 있습니다.
  세리같이 남을 착취한 사람도, 눈먼 자 병든 자같이 힘없는 사람도, 추한 일을 하는 창기와 같은 사람도 심지어 엄청난 죄를 지어서 비참하게 사형을 당하는 강도까지도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예수님 안으로 즉, 교회 안으로 들어오기만 하면 구원을 받고 하나님께 당당한 사람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2)나 자신의 힘만으로는 담대함을 얻을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 앞에서 당당하고 떳떳한 사람이 되려고 한다면 어떻게 살아야 하겠습니까.
  얼마만큼 선한 일을 많이 하고 얼마만큼 양심적으로 살아야 하나님 앞에 떳떳한 사람이 되겠습니까

  그것은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아무리 노력을 하고 아무리 힘을 쓴다고 해도 사람들 보기에는 사람들과 비교해서는 좀 선한 사람이 될 수 있을지 몰라도 하나님 앞에서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은 내가 내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님께서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시고 교회로 발걸음을 인도하시고 신앙생활을 하도록 해 주시기 때문에 우리가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선택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로 예수님 안에 있게 하고 예수님을 믿게 하고 하나님께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게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2.담대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감
  담대함이란 말은 헬라어로 '파르레시안'(παρρησιαν)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자유로운 말, 기탄 없는 말, 명백, 확신, 담대함" 등으로 번역되는 말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파르레시안'은 두 가지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는 "모든 것을 말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 를 의미한다"고 했습니다.
  또 하나는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담대함을 가진다는 것은 하나님께 무슨 말이든 할 수 있는 언론의 자유를 가지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아무 말이나 규탄 없이 할 수 있는 사이는 보통의 사이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아주 특별한 사이 아주 친밀한 사이가 아니고는 아무 말이나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가 길지 않은 인생이지만 살면서 터득한 지혜 중에 하나는 말을 조심해서 잘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말을 하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이 좋은 사람도 되고 나쁜 사람도 되더라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참 정직합니다.
  좋으면 좋다고 말하고 나쁘면 나쁘다고 말하지 거짓말은 할 줄을 모릅니다.
  그런데 좋은 사람에게 좋다고 하는 말은 괜찮지만 나쁜 사람에게 나쁘다고 하면 아주 큰일입니다.

  사람들은 자신이 나쁘다는 것을 알지만 막상 남이 나쁘다고 하면 되게 기분이 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마다 나쁜 성질을 가지고 있고 나쁜 마음도 가지고 있습니다. 
  좋은 사람이란 다른 사람의 좋은점만을 이야기하는 사람이고
  좋은 사람이란 자기의 나쁜 감정을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래서 언어훈련이 어떻게 되어 있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이 좋은 사람인가 나쁜 사람인가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는 것 같습니다.

  남편들 가운데 밖에서는 참 좋은 사람인데 가정에만 오면 아내에게만은 나쁜 사람이 되는 사람이 가끔 있습니다.
  이 사람은 밖에서는 말을 조심해서 하는 사람입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이든지 좋은 자리에서 체면을 지켜야 하는 사람이든지 간에 밖에서는 남을 배려하면서 말을 가려서 잘 하니까 좋은 사람이 됩니다.
  그런 사람일수록 집에 들어오면 긴장을 풀어 버리고 아무렇게나 말을 합니다.
  그러니까 아주 중요한 아내나 가족들이 상처를 받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평생을 하고 싶은 말 제대로 하지 못하고 조심하면서 살아야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말할 때 그 때만큼은 아무 말이나 해도 된다는 것입니다.
  어차피 마음에 없는 말을 하더라도 우리의 마음 깊이까지 다 아시는 분이시니까 소용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서 만큼은 마음에 있는 그대로 말씀을 드려도 됩니다.

  우리 하나님은 우리가 아무 말을 해도 있는 그대로를 말씀 드려도 내 마음에 잇는 죄악들 내 마음에 있는 못된 것들 내 마음에 있는 상처들... 무엇이든지 다 받아 주시고 우리 편에서 이해해 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사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들을 잘 분석해 보면 말도 안 되는 억지들도 많고 예의에도 맞지 않는 말들이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도하라고 하는 것은 우리에게 이런 담대함이 허락되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알아주지 않아도 하나님께서는 알아주시고 사람들은 흉을 보고 손가락질을 해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못난 것 부족한 것 다 이해를 해주시고 끝까지 우리편이 되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담대하게 무슨 말이든지 하나님께 기도로 아뢰시기 바랍니다.
  누구에게도 할 수 없고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가슴속의 이야기를 하나님께 아뢰시고 하나님의 위로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또 이 담대함이라는 말은 "하나님 앞에서 두려움이나 부끄러움이 없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하나님 앞에 나간다고 할 때 제일 먼저 오는 것은 부끄러움 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 앞에 부끄러운 모습으로서는 것에 대한 두려움일 것입니다.

  우리가 일주일동안 세상에서 보내고 이렇게 주일날 하나님 앞에 나올 때도 부끄러운 일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다행하게도 지금 우리 눈에 안 보이니까 조금은 안심이 됩니다.
  만약이 하나님께서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여기에 게신다고 한다면 두려워서 나오지 못할 것입니다.

  히브리서 4장에 보면 하나님의 보좌를 "은혜의 보좌"로 표현을 하고 있습니다.
  만약에 하나님의 보좌가 공의로 세상을 다스리시는 만 왕의 왕이 되시는 하나님께서 그 권위로 앉아 계시는 보좌라고 한다면 그 보좌 앞에 감히 나아갈 담대함을 가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보좌에다가 "은혜"라는 말을 붙여서 은혜의 보좌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히4:16)라고 했습니다.

  그 보좌는 권위로 우리를 다스리는 보좌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때를 따라 우리를 도와주시는 은혜로 우리를 다스리시는 보좌라는 것입니다.
  그 은혜의 보좌 앞에 그리스도 안에 있는 우리는 담대하게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3.당당히 하나님께 나아감
  여기 "당당히"(πεποιθησιs)라는 말은 "확신, 신뢰"라고 번역이 되는 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당당히 나아가기 위해서는 신뢰와 확신이 필요합니다.
  신뢰와 확신이 있을 때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신뢰와 확신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자에게 주신 것입니다.
  내가 노력해서 얻어지는 것이라면 신뢰도 확신도 가질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가 한 일을 우리가 어떻게 확신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가진 이 당당함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신뢰이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나아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은 하나님을 신뢰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의 전적인 희생과 우리를 사랑하는 큰 은혜로 넘치기 때문입니다.

  요즘 우리가 사는 세상에는 자기들의 이익을 위해서 우리를 속이는 것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래서 아무나 함부로 믿을 수가 없는 세상입니다.

  몇 일 전에 방송을 보니까 할머니들의 심각한 문제가 방송이 되었습니다.
  우리 동네에도 있지만 약 장사들 그들이 말하는 행사장에서 입은 피해가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저는 할머니들이 거기가서 잘 해야 몇 십만 원짜리 물건 어쩌다 한두 개 사는 사람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피해자들을 조사해 보니까 그 단위가 몇 천만 원씩 되더라는 것입니다.
  아무짝에도 쓸데없는 물건들을 엄청난 비싼 값을 주고 사다가 재어놓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많이 샀느냐고 하니까 그 사람들이 너무나 말을 잘하고 너무나 잘해 주니까 살 수 밖에 없더라는 것입니다.
  그 물건 팔기 위한 목적으로 그렇게 잘 해 준 것을 모르고 속아 넘어 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의 사랑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 우리 주님 안에 있는 구원의 은혜는 일방적으로 우리에게 베푸시는 사랑이 너무나 진실되게 나타나 있기 때문에 그 하나님을 신뢰할 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또 이 당당함은 우리 속에 있는 이 확신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불확실한 세상 이 믿을 수 없는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 확신을 주시기 위해 말씀으로 여러 가지 훈련을 통해서 이런 확신을 가지고 살도록 해 주시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이런 확신을 가지고 살게 해 주시는 분이십니다.
  무조건 믿어라 그렇게 하시지 않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 말씀 속에 우리가 살아가는 이 인생의 여정 속에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많은 길들을 만들어 주신 것입니다. 

  성경 말씀을 보지 않고 살기 때문에 의심하는 것이고
  설교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듣지 않기 때문에 의심하게 되는 것이며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 즉 하나님의 섭리를 보지 않기 때문에 의심을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참 하나님 앞에서 사람 앞에서 부끄럽고 죄스러운 마음으로 살 수 밖에 없는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하나님 앞에서 너무나 부끄럽고 죄스러운 마음으로 살 수 밖에 없는 것이 우리 인생들입니다.

  그래서 특별히 해 놓은 일이 없고 특별히 선하거나 잘나지 못한 우리들은 어깨를 늘어뜨리고 자신감이 없이 힘없이 사는 것이 우리의 모습일 것입니다.

  그런 우리를 향해서 하나님께서 말씀을 하십니다.
  너희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이 아니냐 
  그 믿음은 아무나 가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창세 전에 선택한 특별한 사람들에게만 주는 특별한 은혜의 선물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즉 교회 안에서 믿음으로 사는 너희들은 담대하게 당당하게 살아라...라고 하시는 음성을 들으시기 바랍니다.

  어깨를 펴고 고개를 들고 담대하게 당당하게 하나님께 나오시기를 바랍니다.
  담대하고 당당하게 사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