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9. 4.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25)
본문 : 행 8:39-40
제목 :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39.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40.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며칠 전 제가 자동차 키를 잊어버려서 동네에 열쇠가게에서 열쇠를 하나 만들었습니다. 늦은 시간이었고 비도 부슬부슬 오고해서 나중에 만들려고 했는데 마침 열쇠 가게가 눈앞에 보여서 억지로 만들었습니다. 키를 잘 못 깎았는지 들어가기는 하는데 잘 안돌아가기에 주인에게 가서 잘 안돌아 간다고 했더니 키는 처음에는 다 좀 빡빡하다가 나중에는 괜찮다고 그래서 문은 열리고 시동은 걸려서 됐다고 생각했습니다.
며칠 있다가 그 키로 운전을 하는데 갑자기 뭐가 타는 냄새가 나고 연기가 나서 얼른 차에서 내려서 정비공장으로 끌고 갔더니 문제는 그 열쇠에 있었습니다. 자동차 열쇠는 문을 여는 것처럼 시동을 켜면 끝이 나는 것이 아니라 시동을 건 후에 조금 후퇴를 해야 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처음 시동을 걸 때는 끝까지 밀면 세루 모터(스타트 모터)라는 것이 돌아가서 시동을 걸게 하고 시동이 걸리면 뒤로 돌아와야 된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다행히 타버린 세루 모터 하나 바꾸는 것으로 끝이 났습니다. 멀리 가서 그랬든지 차에 불이라도 났으면 큰 일 날 뻔 했습니다. 열쇠하나 잘 못 만들어서 낭패를 당할 뻔 했습니다. 차를 잘 모르는 비전문가에게 자동차 열쇠를 맡긴 것이 잘못이었습니다. 장사를 하는 사람들이 자기들이 아는 지식만 가지고 남이 당하는 낭패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일부러 돈을 벌기 위해서 거짓말을 하고 나쁜 것은 말을 해주지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을 설명하기 위해서 제가 겪은 일을 예로 말씀을 드렸습니다. 복음에는 장사꾼의 이권이 개입되어서는 안 됩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는 장사꾼 같은 마음으로 복음을 전하면 그 복음이 변질되기가 쉽기 때문입니다. 비슷하게 생겼다고 다 믿음이 아닙니다. 성경 들고 교회에 다닌다고 다 성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착하게 살고 좋은 일 많이 하면서 산다고 해서 다 성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믿는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거기에 다른 것이 조금이라도 섞여서는 안 됩니다. 믿음은 100%로 순전한 것이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지난주와 연결되는 말씀입니다. 에디오피아의 내시가 빌립이 풀어준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하고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는 믿음을 고백하자 빌립이 그에게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는 믿음을 가지고 세례를 받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특별한 은혜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은혜들을 받아 누리는 것이 얼마나 귀한 것인가를 살펴보았습니다.
오늘은 그런 귀한 일을 행한 후에 빌립과 내시의 행동을 통해서 교훈을 받고자 합니다. 이런 엄청난 일을 행하고 난 후의 빌립과 그런 엄청난 은혜를 받은 내시의 모습이 우리가 생각할 때 좀 엉성합니다. 왜 두 사람의 이별 모습을 이렇게 엉성하게 표현하고 있는지를 살펴보면서 복음을 전하는 자와 복음을 받는 자의 모습을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본문 39절 상반 절에 “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라고 했습니다. 빌립이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믿게 하고 세례를 베푼 것은 정말로 대단힌 일이었습니다. 단순히 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를 통하여 에디오피아의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한 것입니다.
에디오피아의 내시는 나름대로 자기 나라에서 재정을 맡은 막강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들이 자신들도 하나님의 백성 즉 솔로문의 후예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를 드리는 일도 알고 실천을 했고 성경말씀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알고 읽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바로 알고 섬기는 사람이라기보다는 그냥 하나의 종교로 보고 비슷하게 종교생활을 하려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냥 하나님이라는 신이 계시고 그 신이 다른 신보다 좀 좋고 그 신을 따르는 것이 복을 받는 일이라고 생각하고 따르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사실 그들은 이방인에 불과 했고 예배도 드릴 수 없는 사람이었고 성경을 읽어도 무슨 뜻인지도 알지 못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정말로 답답한 사람이었습니다. 차라리 하나님을 전혀 몰랐다면 자기들 마음대로 살았으면 될 것인데 어중간하게 하나님을 알았지만 진리도 알지 못하여서 답답한 마음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런 그에게 속 시원하게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가르쳐 주고 예수님의 복음을 전하고 예수님을 믿는다는 믿음을 고백하게 하고 세례를 받고 싶다고 해서 세례를 베풀었으니까 사실 대단한 일을 했습니다.
대단한 일을 했으면 사람인 이상 무슨 대가라도 받고 싶어 하고 인사라도 받고 싶은 마음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의 영이 나타나서 빌립을 이끌고 가버렸습니다. 잡아채서 강제로 이끌고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인사를 받을 시간도 없이 주소라도 주고받을 시간도 없이 그냥 사라져버렸다는 것입니다.
제가 몇 년 전에 할아버지 양용근 목사님이 시무하시다가 순교하신 구례중앙교회에 가서 주일 낮예배에 설교를 했습니다. 모처럼 큰 교회 주일 낮예배 설교를 하니까 힘이 나고 열심히 목이 터져라고 복음을 외쳤더니 사람들이 처음에는 좀 의아한듯하더니 점차 은혜를 받는 모습이 보여서 뿌듯했습니다. 목사가 설교를 잘 하고 내려가면 성도들이 은혜 받았습니다. 라고 인사를 하면 보람도 있고 기분도 좋습니다. 그런데 같이 간 고모님이 빨리 가자고 재촉하시는 바람에 제대로 인사도 못 받고 밥도 안 먹고 사례도 안 받고 도망치듯 나와 버렸습니다. 고모님 생각은 우리가 그들에게 뭘 얻어먹고 덕을 보려고 온 것이 아니라 순교자의 후손으로서 당당하게 바른 복음을 전하고 오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도 어떻게 섭섭하든지 조금만 있다가 오면 인사도 받을 것이고 식사대접도 잘 받을 것이고 또 큰 교회니까 사례도 좀 줄 것이고 기대를 했는데 그냥 오니까 좀 섭섭하고 허전했습니다. 목사는 복음을 전하면 그만이고 사람에게 인사 받으려고 설교를 하는 것도 아니고 사례를 받으려고 설교를 하는 것은 아닌데 어느새 나도 그런 물이 들어서 은근히 칭찬도 바라고 사례도 바라더라는 것입니다.
오늘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이는 평범한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하는 이유는 오늘날 설교자들이 설교를 하고 난 후에 사람들에게 칭찬을 바라고 또 사례를 바라는 것 때문에 복음이 변질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하게 사례조금 바라고 칭찬 좀 받는 것을 넘어서서 인기 있는 사람이 되고 대단한 조직을 만들고 거기 군림하고 아주 재산을 많이 모으려는 속셈으로 복음을 전하고 목회를 사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이 전해지고 있는 이 초기에 이러한 일을 행하게 하고 성경에 기록하신 특별한 이유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복음을 전하고 설교를 하고 예수님을 믿게 하고 세례를 받게 하고 이런 엄청난 혜택을 누리게 해 주고 그다음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 것인가를 보여줍니다. 그것으로 끝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복음은 처음부터 하나님의 복음이고 그 모든 일들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이기 때문에 중간에서 그 복음을 전하는 자는 아무것도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목회자들이 복음을 전하는 자들이 고생하는 것을 보기 좋으셔서 그러시는 것은 아닙니다. 복음은 전적으로 은혜이지 전하는 사람이나 받는 사람의 공로가 포함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이익의 도구로 사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복음을 전하는 목회자들이 장사꾼처럼 변질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복음을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 이용하는 사람들 때문에 복음의 내용이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것으로 변질이 되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많은 거짓선생들이나 이단들이 이미 자기 이익을 위해서 자기 영광을 위해서 자기 목적달성을 위해서 바른 복음을 전하지 않고 이상한 세상 이야기를 복음이라고 변질시켜서 다른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이 듣기 좋아하는 말만 합니다. 사람들이 듣고 감동을 받을 이야기만 합니다. 지금 당장 이익이 되는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래서 그런 변질된 복음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을 좋아하고 그들을 따라가고 그들에게 충성을 다합니다. 사람들은 오히려 엉터리로 공갈협박을 하는 사람들의 말을 따릅니다. 이상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을 따라갑니다.
저처럼 진리의 말씀을 바르게 전파하는 목사를 존경하고 따르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이렇게 바른 진리 구원에 이르는 믿음을 가르쳐주면 모든 사람들이 저를 존경하고 따라야 할 것이지만 그렇지가 않습니다. 정말로 진리를 바르게 알고 복음을 바르게 아는 소수의 사람들만 저를 좋아합니다. 여러분은 제가 전하는 원색복음을 좋아하시지요. 십자가의 복음을 바로 알고 우리가 가진 믿음이 위대한 믿음이라는 것을 바로 알고 진실 되게 고백하시는 여러분이 진짜 성도라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복음을 전한 빌립을 강제로 이끌고 가버리셨습니다. 복음은 무슨 대가를 요구하는 것이 아님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대가를 받기 위해서 엉터리 복음을 전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입니다. 복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눈에 보이지 않은 엄청난 전쟁이 벌어져 있습니다. 교회를 지키느냐 신앙을 지키느냐 하는 싸움입니다. 사람들을 많이 모아서 큰 교회를 만들고 세력을 키우느냐 적은 무리라도 정말로 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을 중심으로 교회를 하느냐의 싸움입니다. 교회가 바른 생활을 하고 착하게 사는 사람들로 훈련시키느냐 진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가진 사람으로 만드느냐의 싸움입니다. 교회를 통하여 존경받는 사람이 되고 잘 사는 사람이 되고 부자가 되기 위해서 목회를 하는 사람들 때문에 교회가 바른 믿음의 길로 가지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본문 39절 하반 절에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라고 했습니다. 빌립은 하나님께서 강제로 끌고 가버리셨기 때문에 그렇다고 쳐도 내시의 행동은 좀 이상합니다. 그렇게 귀한 것을 깨닫게 해 준 빌립이 갑자기 없어졌는데도 어디에 갔는지 찾아보지도 않고 자기는 기쁘게 자기 갈 길로 가버린 것입니다. 오던 길로 되돌아가서 찾아본다든지 소리쳐서 불러본다든지 어떻게 해서라도 찾아서 이름이라도 물어보고 주소라도 물어보고 감사인사라도 좀 해야 하는 것이 도리가 아니겠습니까? 그런데 그런 생각은 조금도 없이 기뻐하면서 자기가 갈 길로 가버렸다는 것입니다.
감사를 중요하게 여기는 목사님들이 이 본문을 가지고 설교를 하면 내시를 나쁜 사람이라고 뭐라고 할 것입니다. 세상에 그렇게 큰 은혜를 받고도 그냥 가는 사람이 어디 있어 이 사람은 인간도 아니야 이런 사람을 본받으면 안 됩니다. 무슨 일이든지 감사를 할 줄 알아야 합니다. 작은 일에도 감사를 해야 하는데 이렇게 큰 은혜를 받고도 감사도 없이 그냥 가는 사람은 나쁜 사람입니다. 라고 설교를 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은혜를 입은 사람이라면 은혜를 베푼 사람에게 당연히 감사를 드리는 것이 예의일 것입니다. 그런데 본문의 내시는 그 큰 은혜를 받았으면서도 은혜를 베푼 빌립을 찾으려고 하지도 않고 그냥 유유히 사라졌다는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본문은 한마디 감사 인사도 하지 않고 그냥 돌아가는 내시를 비난하지 않습니다. 자기 갈 길로 가는 것을 당연하게 생각하게 합니다. 은혜를 베푸신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빌립은 은혜의 전달자일 뿐 아무 것도 아닙니다. 은혜를 베풀어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중간에 전달자인 사람이 그 영광을 차지해서는 안 되기 때문입니다.
열왕기하 5장에 보면 아람왕의 군대장관 나아만이라는 사람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가 문둥병이 걸렸는데 그 이스라엘 출신 여종이 이스라엘에 가면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해서 이스라엘의 선지자 엘리야에게 가서 요단강물에 일곱 번 씻으라는 명령을 받고 그대로 했더니 병이 깨끗하게 나았습니다. 문둥병이 나았는데 뭐가 아깝겠습니까? 가지고 갔던 엄청난 재물들을 엘리사에게 주었더니 엘리사가 거절을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신 일을 가지고 하나님의 종이 자기가 한 것처럼 중간에서 예물을 받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보고 있던 게하시라는 엘리사의 사환이 너무 아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몰래 뒤따라가서 우리 주인이 뭐 좀 달라고 했다고 속이고 은 한달란트 하고 옷 두벌을 받아서 자기 집에 가지고 갔다가 벌을 받아서 게하시가 그 문둥병이 걸려 버렸다는 이야기입니다.
사도행전의 기록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계만방으로 펴져나가는 것을 기록한 책이지만 그러면서도 복음을 전하는 자와 받는 자들이 알아야 할 교훈들을 아울러서 기록한 책이라고 했습니다. 복음이 전해질 때 복음을 전하는 자와 받는 자 사이에 아무런 거래관계나 감사의 표시가 없게 함으로 복음을 전하고 받는 과정에서 무엇을 주고받는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없게 하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올 때마다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사헌금도 드리고 이런저런 헌금도 드립니다. 우리가 받은 은혜에 지극히 작은 정성이라도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헌금을 드리면서 나는 하나님께 은혜를 갚았다고 생각하거나 그런 자신의 행동을 대단하게 생각하거나 자랑을 하면 안 됩니다. 그것은 그냥 우리가 할 도리를 조금이라도 하려고 하는 성의를 보이는 것일 뿐 우리가 받은 은혜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갔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받은 은혜를 생각하니까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을 것입니다. 너무나 귀한 것을 깨달았고 너무나 엄청난 은혜를 받았기 때문에 너무 기쁜 나머지 다른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도 너무나 소중한 것을 은혜로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서 하나님나라를 상속받는 것 하나님 안에만 있는 영원한 생명을 받는 것 이런 중요한 것들을 아무런 대가없이 조건 없이 그냥 은혜로 선물로 주셨습니다.
이런 소중한 것들을 조건 없이 그냥 주신 것은 그것을 받아서 기쁘게 살고 누리며 살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냥 받아서 누리며 기쁘고 즐겁게 살면 됩니다. 더 이상 율법의 종이 될 필요가 없습니다. 더 이상 죄에 매여 살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저런 의무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은혜를 받았으면 감사해라. 은혜를 받았으면 똑바로 살아라. 은혜를 받았으면 좋은 일 좀 하면서 살아라. 라고 말합니다. 좋은 말씀입니다. 당연히 우리가 그렇게 해야 할 일들입니다. 감사해야 하고 바르게 살아야 하고 좋은 일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런 말 듣고 또 다시 종처럼 살 필요가 없습니다. 똑바로 못 살았다고 좋은 일 많이 못했다고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건 의무가 아닙니다. 즐겁게 사시면 됩니다. 똑 바로 살 수 없는 우리에게 좋은 일 하면서 살 수 없는 우리에게 겨우 그저 최소한의 양심을 가지고 살 수 밖에 없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쁘고 즐겁게 사시되 주안에서 기쁘고 즐겁게 사시면 됩니다. 즐겁게 살라고 한다고 사탄의 유혹에 넘어가서 거짓된 즐거움을 누리며 살려고 하십니까? 성경에 기록된 모든 법칙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참된 행복을 주시기 위해서 만들어 주신 것들입니다.
사랑을 하면서 왜 남의 남자 남의 여자를 사랑하려고 하느냐고요 자기에게 주어진 남편이 아내가 좀 부족하더라도 하나님께서 나에게 맞춰주신 배필로 알고 그 사람과 사랑하면서 사시면 됩니다.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그 안에서 행복하게 사세요. 왜 남의 것에 탐을 내고 부러워하면서 빼앗으려고 합니까? 지나치게 욕심을 내니까 그렇지 세상은 그리스도 안에서 참된 행복을 누리면서 살만한 세상입니다. 나를 위해서 살지 말고 내 주변에 있는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살아보세요. 말 한마디라도 그 사람을 배려하는 말을 해보시고 작은 일이라도 칭찬해 보시고 작은 일에라도 감사해보세요 정말로 행복한 세상이 됩니다.
내시가 기뻐했던 또 하나의 이유는 그가 받은 복음을 자기 민족에게 전할 수 있다는 기쁨이었을 것입니다. 내시가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마다 왕명을 받았을 것입니다. 가서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어떻게 해야 되는지를 배워서 오라고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동안 한 번도 만족할만한 답을 가지고 가지 못했는데 이제 하나님의 큰 뜻을 알았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이고 그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경의 예언대로 십자가에서 죽으셨고 부활하셨고 이제 그 예수님이 나의 구주가 되시며 하나님이심을 믿는 믿음만 가지면 된다는 귀한 복음을 알았기 때문에 기쁘게 고국으로 돌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저도 오랫동안 교회에 다녔지만 복음을 잘 모르는 사람이었습니다. 할아버지가 세운 교회에서 아버님이 세운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했지만 복음을 바르게 알려주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신앙생활이란 그저 율법을 중요하게 여기고 도덕적으로 바르게 살고 좋은 일 하면서 사는 것인 줄 알았습니다. 주일 지켜라, 헌금해라, 거짓말하지 말고 똑바로 살아라. 이런 이야기는 많이 들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제대로 듣지 못했습니다. 예수님 믿는 것이 교회에 다니는 것인 줄 알았지 진짜 믿음이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그래서 교회에 다니는 것이 고역이었고 기쁨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복음을 알고 난 후에는 주일이 기다려집니다. 이렇게 시간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기쁩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게 이 진짜 복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내시는 그가 받은 복음을 가지고 기쁘고 고국으로 돌아가서 복음을 전했을 것입니다. 그로인해 지금도 에티오피아는 인구의 절반이 기독교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다니며 복음을 전했고 가이사랴에까지 이르렀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렇게 온유다로 사마리아로 전 세계로 퍼져나가고 있었습니다.
아소도는 구약성경에서 아스돗을 말하는데 이스라엘 땅이지만 여호수아가 완전히 정복하지 못해서 아낙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이었고 가이사랴는 로마황제 가이사랴가 특별히 세우고 지배한 도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이방인이건 우상을 섬기는 곳이건 권력을 가진 황제가 특별히 다스리는 곳이건 아무런 제한이 없어 퍼져나갔고 모든 사람들이 다 믿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말씀이었습니다.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는 하나님의 복음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빌립은 복음을 전하고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내시는 복음을 받고 기쁘게 자기 갈 길로 갔습니다. 복음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에 전하는 자나 받는 자가 다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려야 됩니다. 이 은혜의 선물을 받았으니까 기쁘게 사시기 바랍니다. 이 기쁜 소식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전하시기 바랍니다. 이 세상에 죽어가는 모든 불쌍한 인생들에게 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