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8. 28.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124)
  본문 : 행 8:36-40 
  제목 :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36.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37.(없음) 38.이에 명하여 수레를 멈추고 빌립과 내시가 둘 다 물에 내려가 빌립이 세례를 베풀고 39.둘이 물에서 올라올새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어간지라 내시는 기쁘게 길을 가므로 그를 다시 보지 못하니라 40.빌립은 아소도에 나타나 여러 성을 지나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가이사랴에 이르니라.” 

 

 

  빌립이 에디오피아의 내시에게 복음을 전하는 장면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에디오피아의 내시가 예루살렘에 예배를 드리러 왔다가 돌아가는 길에 수레에서 성경을 읽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사자를 통하여 빌립을 그 장소로 내려가라고 하셨고 성령님께서 수레로 가까이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내시가 성경을 읽고 있었는데 그 본문이 마침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을 예언한 이사야서 53장의 말씀이었습니다. 빌립이 가서 그 읽고 있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가르쳐주는 사람이 없어서 모른다고 했습니다. 빌립이 그 성경에서 예수님을 가르쳐주고 복음을 전했더니 그가 진리를 알고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오늘 본문이 계속됩니다. 길을 가다가 보니까 물이 있는 곳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내시가 말을 합니다.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라고 했습니다. 내가 세례 받는데 누가 방해를 허거나 받지 못할 이유가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그 다음 37절은 “없음”이라고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대부분의 사본에 37절이 빠져 있습니다. 그런데 몇몇 사본에는 37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현대어 성경과 킹제임스 영어성경에는 이 구절을 넣어서 변역하고 있는데 현대어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빌립이 그에게 ‘당신이 진심으로 믿는다면 받을 수 있습니다.’ 하자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내가 믿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사실은 이 구절이 들어가야 문맥이 맞습니다. 세례를 받기 전에 예수님을 믿는가를 확인해야 하고 공적으로 고백을 해야 되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내시의 신앙고백을 확인한 빌립은 물로 내려가서 내시에게 세례를 베풀었다고 했습니다.

 

  세례를 베풀고 물에서 올라왔는데 주의 영이 빌립을 이끌고 가버렸고 내시는 자기 가던 길로 기쁘게 돌아갔다고 했습니다. 엄청난 것을 가르쳐 준 빌립이나 엄청난 것을 배우고 엄청난 것을 얻은 내시의 이별 장면치고는 뭔가 좀 허접합니다. 고맙다고 인사라도 하든지 주소라도 서로 주고받든지 좀 진지하게 인사를 하고 헤어져야 할 일인데 그냥 서로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갈 길로 가버린 것입니다.  

 

  이런 본문 말씀을 가지고 “내가 세례 받는데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세례 받는다는 의미가  무엇인가

 

  세례라는 말은 헬라어에서 밥티조((βαπτίζω)라고 합니다. 이 말에서 영어의 baptize라는 단어가 나왔습니다. 물에 담근다는 뜻으로 “세례를 베풀다”라는 말로 쓰이는 단어입니다. 그런데 이 말의 뜻은 ‘담그다’라는 말 외에 ‘씻다’, ‘끼얹다’라는 뜻도 있습니다. ‘담그거나 끼얹어서 깨끗하게 하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우리 장로교에서는 끼얹어서 깨끗하게 하다라는 말을 중심으로 세례라는 말로 쓰고 침례교에서는 담가서 깨끗하게 하다는 말을 중심으로 세례라는 말 대신 침례라는 말을 씁니다.

 

  세례를 받을 때 물 속에 들어갔다가 나오느냐 장로교처럼 물을 찍어 바르면서 받느냐는 별로 중요하지가 않습니다. 형식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세례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무엇 때문에 세례를 받는 것이며 서례를 받은 사람이 어떤 사람이기에 이런 세례를 받을 수 있었느냐가 중요합니다.

 

  구약시대의 세례는 정결의식이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 제사를 드리러 갈 때 몸을 깨끗이 씻고 나아가는 정결의식의 하나였습니다. 몸만 씻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죄도 씻어 내고 하나님께 나아갈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 당시 세례요한이 요단강에서 세례를 베풀었는데 그 세례는 예수님을 통한 하나님나라를 맞이하기 위해서 회개하고 준비하게 하는 세례였습니다. 요한의 세례는 완전한 세례가 아니라 준비단계의 세례였습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만난 후에 다시 완전한 세례를 받게 됩니다.

 

1)예수님의 이름으로 받는 세례는 죄 사함의 표시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을 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받는다는 의미는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을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신데 그 하나님인 예수님께서 나의 죄 대신십자가에 죽어주셨음을 믿는 믿음을 가질 때 우리의 죄가 깨끗하게 용서를 받고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을 해 주십니다. 세례를 베풀기 전에 예수님을 믿는가를 확인하는 것은 모든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공식적으로 시인을 하게 하는 것은 그 믿음이 있어야 죄 사함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례 자체가 죄를 씻어주는 것은 아닙니다. 세례를 받기 위해서 고백하는 그 신앙고백이 우리의 죄를 깨끗하게 사해주는 것입니다.

 

  세례는 예수님을 나의 구주로 믿는다는 신앙고백을 하여 죄 사함을 받은 사람에게 그것을 기념하는 예식입니다. 우리의 죄가 다 사해지고 의로운 사람이 되었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고백하고 공식적으로 선포하는 예식입니다.

 

2)세례는 신분의 변화를 나타내는 예식입니다.


  세례는 단순히 물에 들어갔다가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다른 모습이 되는 것입니다. 세례를 나타내는 단어인 헬라어에 밥티조(βαπτίζω)라는 단어에도 그런 뜻이 들어 있습니다. 그냥 담갔다가 그 모습 그대로 나온다는 뜻이 아닙니다. 


  우리가 김장을 할 때 소금물에 배추를 담구면 어떻게 됩니까? 소금물에 절여져서 김치를 담글 수 있는 자료로 나옵니다. 원래 그 모습대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도 그런 뜻입니다. 들어갈 때는 죄인이었는데 나올 때는 의인으로 나옵니다. 들어갈 때는 사탄의 종이었는데 나올 때는 하나님의 자녀로 나옵니다. 들어갈 때는 지옥백성이었는데 나올 때는 천국백성으로 나옵니다. 과거의 내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새로운 신분으로 변화된 새 사람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3)세례는 예수님과 한 편이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예식입니다.


  우리의 신분이 변화된 것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에 하나가 들어갈 때는 사탄의 편이었는데 나올 때는 하나님의 편이 되어서 나온다는 것입니다. 그동안 나는 사탄의 편이었는데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두 편으로 나뉘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편과 사탄의 편입니다. 나는 이편도 저편도 아니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을 것입니다. 그런 중간지대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편이 아니면 모두가 다 사탄의 편에 속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몰랐을 때는 예수님을 몰라서 믿지 못했을 때는 다 사탄의 편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모르고 예수님을 믿을 수 없게 하는 것이 사탄이기 때문에 믿기 전에는 다 사탄의 속임수에 넘어갔든지 사탄을 좋아하고 따르든지 간에 다 사탄의 편입니다. 우리가 우주 만물의 주인이시고 만왕의 왕이시고 최후의 심판자이시고 우리의 영원한 생명을 좌우하시고 이 세상의 모든 생사화복을 주관하시는 하나님의 편이 된다는 것은 너무나 큰 복이고 영광입니다.
 
  우리는 지금까지 일평생을 늘 힘없는 사람 약한 사람의 편에서 살았습니다.  우리 곁에는 강한 사람 성공한 사람 출세한 사람 돈이라도 많은 사람 별로 없습니다. 있다고 해도 우리 편이 되어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너무 감사하게도 아주 중요한 일에 아주 중요한 싸움에서는 우리가 최강의 편에 섰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편입니다. 예수님도 우리 편이십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한편이 되었다는 것은 여기 모인 우리가 다 한편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우주적인교회 차원에서 생각하면 이 세상에 사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다 한편이지만 여기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 모여서 예배를 드리고 있는 우리들은 특별한 의미에서 한편입니다.
  
  한 지역의 교회에서 같은 진리를 가지고 같은 목적을 가지고 함께 가는 우리교회의 성도들은 특별하게 한 편입니다. 교회가 배라면 함께 힘을 합하여 노를 저어야 합니다. 어느 한 사람이 게으름을 피우면 어느 한 사람이 배나 더 땀을 흘려야 됩니다. 교회가 단체 달라기 경기를 하는 것이라면 우리 중에 낙오자가 한 사람도 없도록 서로 격려하며 함께 달려야 합니다.

 

  우리가 교회에 와서 서로를 위하여 봉사도 하고 각각 자기가 받은 달란트대로 충성을 합니다. 우리가 같은 편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편이 아니라 한 몸의 지체들이기 때문입니다. 몸의 한 지체가 아프면 온몸 전체가 아프듯이 우리 중 한 사람이 아프면 우리 모두가 아파해야 합니다. 그리고 함께 도와주고 모두가 건강하게 해야 합니다. 한 몸처럼 서로 섬기고 한 몸처럼 서로 사랑하는 그런 교회가 진정한 교회입니다. 

 

4)세례는 예수님과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을 나타내는 예식입니다.   


  세례를 받음으로 우리가 예수님과 한편이 되었고 우리 서로가 한편이 된 사람들이라고 했습니다. 한편보다 더 강한 말씀은 한 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한 몸을 이룬 성도들입니다. 교회는 예수님을 머리로 하고 모든 성도들이 각 지체가 된 한 몸과 같은 존재라고 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과 같이 우리도 죽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형벌을 받으면서 피를 흘리고 죽으실 때 죄를 범한 우리도 함께 형벌을 받아서 죽었습니다. 우리가 의롭다고 하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서 죽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부활하심과 함께 우리도 다시 살아났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우리의 영혼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우리의 육신도 때가 되면 다시 부활할 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과 한 몸이 되었다는 것은 예수님 안에 있는 영원한 생명이 우리의 생명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영원토록 왕 노릇할 영원한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생복락을 누리며 살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5)세례는 하나님의 표를 받는 나타내는 예식입니다.


  세례를 받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편이요 예수님과 한 몸이라는 것을 나타내는 예식이지만 동시에 하나님께서도 이 사실을 인정하신다는 표를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세례를 받으면서 예수님을 믿는다고 사람들 앞에서 하나님 앞에서 고백하는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받으셨다는 인을 치는 것이 세례입니다. 도장을 찍고 사인을 하고 확정을 하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세례를 다 받으셨지요? 세례가 이렇게 엄청난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받으셨습니까? 얼떨결에 받으신 분들도 계실 것입니다. 알고 받았든지 모르고 받았든지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참으로 엄청난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이 세례를 받는 것은 아무 거리낌이 없다.

 

  본문 36절에 “길 가다가 물 있는 곳에 이르러 그 내시가 말하되 보라 물이 있으니 내가 세례를 받음에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내가 믿나이다.”라고 고백을 했는데 이런 신앙고백을 한 사람이 세례를 받지 못할 이유가 있느냐는 것입니다. 없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시오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에게 세례를 받지 못하게 할 근거는 아무데도 없습니다.

 

  과거에 이런 정도의 혜택을 받으려면 우리는 꿈도 꿀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엄청난 노력을 해도 받을 수 없는 하늘의 별따기와도 같은 것들입니다.

 

  우리가 앞서서 세례를 받은 사람이 받는 혜택들을 살펴보았습니다. 제가 그냥 설명을 하니까 별로 실감이 안가서 그것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를 잘 모르시겠지만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아서 의인이 되고, 우리같이 힘없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편이 되고, 우리가 예수님과 한 몸이 되어서 예수님 안에 있는 그 축복들을 다 받아 누린다는 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것들입니다.

 

  과거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기 위해서는 엄청나게 까다로운 조건과 엄청난 노력이 필요했습니다. 우선은 유대인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죽었다가 다시 태어나기 전에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유대인이 된다고 자동으로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유대인에게 주어진 율법을 다 지켜야 하고 시시 때때로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드려야 하고 선하게 살아야 하고 보통해서는 안 됩니다. 유대인들도 자신 스스로 도달하지 못한 곳입니다.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자신 스스로 자신의 노력으로 한 사람도 될 수 없었던 일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걱정할 것이 없습니다. 성경은 너무나 쉽고 나무나 간단하게 이런 혜택을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받는 혜택을 은혜라고 합니다. 값없이 노력 없이 그냥 선물로 받는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잘난 사람이든지 못난 사람이든지 돈이 있든지 없든지 성공을 했든지 못했든지 누구든지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서례를 받을 수 있고 세례를 받은 사람이 누리는 혜택들을 다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가 고백하는 이 신앙고백이 엄청난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신앙고백을 하고 못하고는 엄청난 차이입니다. 신앙고백을 하면 세례를 받고 이런 혜택을 누리는 것이고 신앙고백을 하지 못하면 세례도 받지 못하고 혜택도 받지 못합니다.

 

  왜 우리가 믿는 믿음이 우리가 고백하는 신앙고백이 그렇게 위대한 능력을 발휘하는 것일까요? 예수님이 그리스도이심을 믿습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 되심을 믿습니다. 이렇게 고백하는 것이 뭐 그리 대단한 일이라고 이런 고백을 하는 사람에게 세례를 주고 그런 엄청난 혜택을 받게 하는 것일까요?

 

  우리가 고백하는 이 신앙고백이 이 신앙을 고백하게 하는 믿음이 나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나에게서 나온 것이라면 별 의미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믿음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만 특별한 선물로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믿음이 나에게서 나온 것인 줄 알았는데 내가 알고 내가 깨닫고 믿고 고백하는 것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라는 것입니다. 창세전에 하나님께서 나를 지정하여 선택을 하시고 성령님께서 나에게 오셔서 말씀을 통해서 그 믿음을 알게 하시고 고백하게 하셔서 내가 이렇게 믿습니다. 라고 고백을 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령세례라는 말을 들어보셨을 것입니다. 세례요한이 자신은 물로 세례를 베풀지만 예수님께서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풀 것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미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는다는 것은 성령님께서 그 사람에게 들어가셔서 예수님을 알게 하고 예수님을 믿게 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예수님을 믿고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이미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고백하는 신앙고백이기 때문에 그 고백이 엄청난 능력을 발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교회에서 받은 세례가 엄청난 위력을 발휘하는 것은 그 세례 자체에 위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사람들에게 베푸는 예식이기 때문에 위력이 있는 것입니다. 성령님께서 그 능력으로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고 신앙고백을 하게 만들고 그 고백하는 사람에게 세례를 베푸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선택도 받지 못한 사람들이 성령의 역사하심도 없는 사람들이 제 멋대로 지껄이는 말이 믿습니다, 믿습니다. 라고 하면 다냐. 똑바로 살아야지 착하게 살아야지 믿는다고 다 되느냐고 빈정댑니다. 그래 믿으면 다다. 믿기만 하면 된다. 너희들은 못 믿어서 배가 아프지? 믿기만 하면 돼? 아무나 믿을 수 있나? 아무나 믿을 수 없고 하나님의 택한 백성만 믿을 수 있게 하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믿기만 하면 된다.
  
  이 말이 오늘 본문에서 하고 있는 말입니다. 내가 신앙을 고백했는데 세례를 받는데 무슨 거리낌이 있느냐? 내가 신앙을 고백하고 세례를 받았는데 하나님께서 주시는 그 많은 엄청난 은혜들을 받는데 거리낌이 있느냐? 없습니다. 충분합니다. 넘칩니다. 받고도 주리가 남습니다. 할렐루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다 세례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예수님 믿는다는 고백하나로 세례를 받았지만 이 세례 속에 이렇게 엄청난 축복이 있다는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는 세례를 받은 사람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사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