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2. 14. 광성교회 주일낮예배 설교 양향모 목사(사도행전 044)
  본문 : 행 3:6-10   
  제목 :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니 모든 백성이 그 걷는 것과 하나님을 찬송함을 보고 그가 본래 성전 미문에 앉아 구걸하던 사람인 줄 알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인하여 심히 놀랍게 여기며 놀라니라.”
 
  오늘날 한국교회를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이 앞으로 10년 후를 걱정하고 있습니다.  
  지금 교회에 헌신하고 있는 사람들은 주로 50대까지인데 이 50대가 60대가 되는 10년 후에는 교회에 헌신하는 사람이 없을 것이기 때문에 교회들이 어려움을 당하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지금 50대쯤 되는 사람들은 옛날부터 바른 신앙을 배워서 교회에 충성할 줄도 알고 헌신할 줄도 알지만 그 이후에 잘못된 믿음을 배우고 자랐거나 진리를 알지 못하고 교회를 중심으로 살지 않고 대강 교회에만 왔다가 갔다가 한 사람들은 그렇지가 못하다는 것입니다.

  또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아이를 많이 낳지 않기 때문에 자연적으로 젊은 청년들이 줄어들고 중고등부도 줄어들고 주일학교도 없어지는 형편이기 때문에 교회가 텅텅 비게 될 것이라고 걱정들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걱정들은 하고 있지만 그러나 교회가 없어지거나 문을 닫지는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생각을 가지고 있고 그런 일을 당하기 전에 우리 교회는 그런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서 열심히 전도를 해야 한다고 하면서 마지막 성도들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문제의 원인을 찾고 그 문제를 시정하려는 노력은 하지 않고 그냥 지금까지 하던 방법으로 더 버텨보려고 몸부림을 치는 것이 우리나라 교회의 현실입니다.

  저는 왜 교회가 이렇게 비탈길로 내리막길로 달려가고 있는가를 아는 사람입니다.
  제가 무슨 특별한 계시를 받거나 신비한 능력이 있어서가 아닙니다.
  역사 속에 이런 일들이 반복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역사를 볼 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역시 속에서 반복적으로 행하시는 일들을 볼 수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려운 삶을 살 때는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고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말씀 속에 있는 진리의 핵심인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의지하고 영원한 천국을 바라보는 바른 신앙을 가지게 됩니다.

  그러나 삶이 넉넉해지고 세상적으로 재미가 있으면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천국에 소망을 두지 않고 이 세상의 부귀영화를 바라보며 챙기려고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지 않고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고 세상에서 착한일 선한일 많이 하는 것에 중점을 둡니다.

  교회가 그런 세상적인 일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을 하고 그런 일에 중점을 두면 교회는 교회가 해야 할 가징 중요한 기능을 잃어버리게 되고 세상의 종교로 변해버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런 교회를 더 필요로 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그런 와중에도 소망을 가질 것은 아직도 십자가의 복음을 자랑스럽게 여기며 십자가의 복음 안에 있는 구원의 진리를 외치는 교회가 있기 때문입니다.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외칠 때 그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실 것이고 그 교회를 하나님께서 붙잡고 사용하실 줄 믿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중점을 두고 있는 일은 교회가 전하고 행하여야 할 핵심적인 진리가 무엇인가를 알고 실천하는 일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에베소교회에게 하신 말씀대로 처음 사랑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일인지를 찾아서 회개하고 처음 그 믿음을 가지는 일이 우리가 해야 할 일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렇게 사도행전을 살펴보면서 처음 사도들이 가졌던 신앙과 그들의 설교와 그들의 행한 것을 살펴보면서 무엇이 우리가 가져야 할 신앙인지를 확인하는 것입니다.

  아울러 교회의 역사를 살펴보면서 특별히 루터나 칼빈 같은 교회 개혁자들의 사상을 살펴보면서 변질되지 않은 진짜 개혁주의 신앙을 찾아봅니다.
  루터가 로마교회의 행함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가르침이 성경적이지 못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성경에서 말씀하고 있는 진리인 오직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다는 진리를 외쳤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회유와 협박과 반대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 이 진리를 외쳤습니다.

  칼빈은 거기에 덧붙여서 그 믿음은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서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선택하신 하나님의 백성에게 은혜로 선물로 준신 것임을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그 중심에 계시고 우리는 그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살아야 한다는 귀한 가르침을 알게 해주었습니다. 

  이런 귀한 진리가 교회 안에서 바르게 전달되지 못하고 조금씩 변질되기 시작해서 아예 정 반대되는 것들을 가르치는 교회들도 많아졌습니다.
  하나님 중심 성경 중심 교회중심 오직 은혜로 오직 믿음으로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야 한다는 개혁주의자들의 신학과 신앙이 다시 회복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것이 교회이고 그래야 교회가 이 세상에 계속 존재해야할 이유가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도 계속해서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고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던 사람이 베드로와 요한을 만나 고침을 받는 이야기입니다. 오늘도 이 이야기를 가지고 생각을 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에는 그가 고침을 받는 장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특별히 6절 말씀에는 그가 고침을 받게 되는 핵심적인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베드로가 그 사람을 향하여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명령을 하는 장면입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베드로 사도가 이 병든 자에게 일어나 걸으라고 명령을 하면서 처음 시작하는 첫마디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라는 말입니다.
  돈을 구걸하려고 쳐다보고 있는 그에게 은과 금이 없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가 기대하는 은과 금을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님을 먼저 말하고 있습니다.

  그냥 일어나 걸으라고 하면 됐지 굳이 은과 금이 있느니 없느니 말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실제적으로 그들에게 은이나 금 같은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베드로와 요한 같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를 때 세상의 소유들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기 때문에 그들에게 은이나 금 같은 재물이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형편 그대로를 말했을 뿐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돈을 얻을 것이라고 기대하는 그에게 그 기대하는 것에 대해서 실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먼저 했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돈을 얻으려는 것이 거지의 목적인데 나를 보라고 하면서 잔뜩 기대감을 가지게 해 놓고 돈을 안 주면 실망할 것이기 때문에 그 실망을 하지 않게 하기 위해서 그런 말을 먼저 했는지도 모릅니다.

  물론 이 말씀은 뒤에 따라오는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기 위한 것임을 우리는 압니다.
  은이나 금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은 은이나 금이 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한 말입니다.

  그저 돈이나 한두 푼 얻어서 육신의 목숨이나 연명하고 살려고 하는 그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소개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의 운명을 바뀌게 해 준다는 것입니다.
  그는 육신의 몸이 회복 되었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찬양하는 인생의 본분도 되찾게 되었다는 것을 우리가 압니다.

  이런 간단한 말씀을 통해서 오늘날 교회가 무엇이 잘못되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아직도 성전 문 앞에서 구걸하는 앉은뱅이처럼 세상 사람들이 바라는 은이나 금을 구걸하고 있는 것이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 아닌가 하고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돈을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돈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세상이 오늘날 우리가 사는 세상인데 누가 돈의 위력을 부인하겠습니까?
  예수님을 믿는 신자가 되어도 교회를 섬기는 목사라고 할지라도 돈이 없으면 되는 일이 없는데 누가 감히 돈을 무가치한 것이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아무리 이상한 사람이라고 해도 돈만 있으면 사람들이 그 앞에서 고개를 숙이는데 누가 돈을 업신여기겠습니까?
  그래서 교회도 세상처럼 돈을 좋아하고 돈을 내라하고 돈이 있어야 교회도 운영이 되니까 돈 때문에 돈 돈돈 하면서 돈이 최고처럼 생각을 합니다.

  동네 이발소에서 아는 사람을 만나서 전도를 합니다.
  옛날 우리교회에 나왔던 아이들 아버지라서 누구인지 알고 늘 만나면 눈인사는 하는 사이라서 제가 혹시나 해서 말을 걸고 전도를 합니다.
  그런데 그 옆에 같이 온 사람이 끼어듭니다.
  요즘 교회에 돈 없는 사람은 못가 목사도 돈을 좋아해서 헌금 많이 하는 사람은 알아주고 집사도 시키고 장로도 시키지만 돈 없는 사람은 사람 취급도 안 해 하고 전도하는데 찬물을 끼얹습니다.

  그래서 제가 재치 있게 대답을 합니다.
  예 교회는 돈 많은 사람에게 돈을 많이 내라고 해서 돈 없는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려고 그럽니다.
  그래서 돈이 많은 사람은 돈을 많이 내고 적은 사람은 적게 내고 없는 사람은 안 내도 됩니다.
  그런데 그게 잘 안 되고 목사가 돈을 다 가져가니까 문제는 문제입니다.

  어느 날부터 교회가 돈을 사랑하고 돈을 많이 내는 사람에게 축복을 하고 성도들도 돈을 많이 벌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고 돈이 많아서 교회를 화려하게 짓고 돈으로 이런 저런 좋은 일을 많이 하는 교회를 성공한 교회라고 말을 하니까 돈이 교회를 지배하게 되었습니다.
  
  그런 교회들을 향해서 주님께서 하시는 말씀이 아닐까? 하고 생각을 해 보는 것입니다.
  "은과 금은 내개 없거니와"라고 말씀입니다.
  교회에 와서 은과 금을 구하는 자들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땅을 사고 교회 건물을 더 확장하고 재테크까지 하는 교회들을 향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서 살고 돈을 많이 쓰고 다니는 일부 잘나가는 목사들을 향해서 하시는 말씀입니다.

  어느 유명한 신학자가 로마교회의 교황을 찾아 갔더랍니다.
  교회가 돈을 많이 가지고 있는 것을 보고 뼈 있는 말을 한마디 합니다.
  "이제 교회가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라는 말은 하지 못하겠네요," 
  그러자 교황이 하는 말이 "예 그래서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는 말도 못합니다"라고 하더랍니다.
  황금만능의 세상에서
  돈을 의의 척도로 성공의 척도로 삼는 세상에서
  교회마저 돈을 사랑하는 이런 세상에서
  우리 모두가 한번쯤 되새겨 보아야 할 말씀이라고 생각합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라고 했습니다.
  은과 금은 내게 없지만 내가 가진 것이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은이나 금보다 더 귀하고 값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세상에 나와서 무엇을 별로 가져본 적이 없는 사람입니다.
  땅 한 평도 제 이름으로 가져보지 못했고 목돈 몇 백만 원이라도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목회를 하면서도 교회건물을 소유하는 것은 고사하고 전세 건물도 가져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가끔은 부모님에 대해서 제 자신에 대해서 원망도 해보고 실망도 해봅니다.
  하나님 앞에서도 불평조로 기도를 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부터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것이 참 많고 그것이 무엇보다 더 귀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것저것 다 말씀을 드릴 수는 없고 정말 중요한 것 하나만 말씀을 드리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게 성경을 중심으로 목회를 하려는 마음을 주셨고 성경을 읽을 때 거기서 진리를 바르게 파악할 수 있는 지혜를 주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알게 하시고자 하는 그 핵심진리를 발견하는 눈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바르게 알고 전할 수 있게 해 주신 것입니다.
  그 십자가의 복음 속에 들어 있는 진리의 무한한 보고를 알게 해주신 것이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제일 큰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여러분에게 입만 열면 십자가의 복음을 말하니까 당연한 것이고 별로 소중한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으실 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여러분 주위를 살펴보십시오.
  교회를 다닌다고 하는 사람들 중에서도 복음의 진리를 알고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과연 얼마나 되는지 살펴보십시오.
  수많은 사람들이 복음도 모르고 진리도 모르고 교회에 다니고 있습니다.
  심지어는 십자가의 복음과 반대의 길을 가면서도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목사라고 하는 사람들이 복음의 바른 진리를 알지 못하고 혹은 알면서도 목회의 성공을 위해서 다른 것을 강조하고 여러분을 속이는 잘못된 목사들이 많이 있습니다.
  성경의 예언대로 거짓선생이나 이단들이 이미 많이 교회에 침투해 있습니다.
  많은 목사들이 자신들이 거짓선생 노릇을 하면서도 그 사실조차도 모르고 있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세상에서 엎드리면 복음의 진리가 생각나고 성경을 펼치면 그 어느 곳이나 예수님의 십자가가 보이고 입만 열면 이 십자가의 복음을 말하게 되는 것이 제 자신이 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시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설교나 목회의 기본은 성경말씀과 성령님이라고 했습니다.
  성경 말씀에 의지하지 않고 성령님의 역사만 강조하는 사람은 저급한 신비주의에 빠져서 무당노릇을 하기 쉽습니다.
  반대로 성령님의 역사를 의지하지 않고 성경만 보면 성경을 자기 마음대로 해석을 해서 엉뚱한 길로 가기 쉽습니다.
 
  성경을 읽을 때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면 성경말씀 속에서 십자가의 진리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아무리 머리가 좋고 공부를 많이 하고 성경을 수백 독을 해도 성령님께서 역사하시지 않으시면 복음의 진리를 깨달을 수가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세전에 선택하신 특별한 사람들만 알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복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의인으로 간주해주시는 그 믿음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은이나 금으로 살 수 없는 영원한 생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이 세상을 다 준다고 해도 얻을 수 없는 하나님의 자녀라는 귀한 신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세상에서 세상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은과 금을 보고 너무 부러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그런 것은 비록 조금 부족하다고 할지라도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이 너무나 소중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 좋은 것을 주시기 위해서 세상 사람들이 가진 것들을 조금은 제한하셨는지도 모릅니다.
  은과 금이 우리에게 없기 때문에 그 소중한 하나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임한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내게 있는 이것들이 모든 사람들에게 다 주어도 넘치고 넘치는 것이며
  받는 사람들이 정말 기뻐하고 즐거워할 너무나 좋은 것임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베드로 사도가 그 앉은뱅이를 향하여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에게 은과 금은 없었지만 그보다 더 좋은 엄청나게 좋은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었습니다.
  그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고 명령한 것입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 속에도 많은 뜻이 들어 있습니다.
  나사렛은 예수님께서 자라신 곳입니다.
  호적을 하러 조상의 고향인 베들레헴에 가서 거기서 태어났지만
  자라기는 나사렛에서 자랐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나사렛 사람이라고 부르는 것은 사람들의 생각에는 나사렛에서는 선한 것이 날수 없는 아주 별 볼일 없는 시골이고 거기에서 태어난 사람에게 무엇을 기대하겠느냐고 우리 예수님을 비하하는 말입니다.
 
  그렇게 생각하는 그분이 예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비하하는 그분이 하나님이시요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그 이름 속에서 예수님은 그렇게 기다리던 메시야이시고 우리를 구원하시러 오신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들을 나사렛 사람들과 같다고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이 작은 교회에 무슨 선한 일이 있겠느냐고 생각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여기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고 여기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시고 특별하게 주신 십자가의 복음이 있습니다.
  그 복음을 믿는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고 그 복음의 증인으로 살고 있습니다.

  우리들에게 뭐 선한 것이 있겠느냐고 비웃지만
  우리에게는 최선의 것 최고의 것이 있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런 우리에게도 같은 명령을 주십니다.
  일어나 걸으라.
  잘못된 교회 변질된 진리에서 일어나 걸으라는 것입니다.
  너희들은 특별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고 잘못된 자리에 있지 말고 일어나 걸으라는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이 가는대로 가지 말고
  거짓선생들 돈에 눈이 어두워서 교회를 자기의 이익의 도구로 삼는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지 말고
  세상 부귀영화에 빠져서 은과 금을 최고로 여기는 사람들이 가는 길로 가지 말고 
  거기서 일어나서 주님께서 말씀 앞으로 진리 앞으로 십자가의 복음 앞으로 걸어 나오라는 것입니다.

  언제까지 그 형식적이고 가식적인 자리에 있으려고 하십니까?
  언제까지 그 무지한 자리에 있으려고 하십니까?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걸으시기 바랍니다.
  교회 안으로 들어오시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자리로 나오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에게는 은이나 금 같은 세상 재물은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너무나 귀한 것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그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기 바랍니다.
  이 진리의 복음 십자가의 복음을 자랑하면서 마음껏 기뻐 뛰며 즐거워하면서 행복한 삶을 사기기 바랍니다.